이제 막 멈추었던 민아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지아야... 나 진짜 힘드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안아줘.”지아가 부드럽게 등을 두드렸다.“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오늘은 내 안전을 위해 그 사람 대신 나보고 오라고 한 거지?”“멍청아, 다 알았으면서 왜 돌아왔어?”몸을 뗀 지아는 민아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많은 것을 경험한 만큼 생각은 민아보다 훨씬 성숙해져 언니처럼 민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나도 널 구하고 싶었으니까. 널 구할 유일한 기회였으니까.”도윤에게서 며칠 전 지아가 한 일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아가 자기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신까지 걱정할 줄은 몰랐다.“전에는 연락이 안 되던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세찬을 언급하자 민아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다 내 잘못이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다른 사람의 장난감이 되어 버렸어.”지아는 한숨을 쉬었다.“너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의 신분이나 미래만큼 중요하지 않은 거야. 그 정도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집안의 아내를 원하지, 사랑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그래, 처음엔 그 사람도 분명 결혼은 집안의 강요로 하겠지만 앞으로도 나랑 이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내 자리만 빼고 뭐든 줄 수 있다고 했어. 하지만 내가 아무리 돈을 좋아한다고 해도 결혼한 사람 내연녀가 될 수는 없잖아?”“그럼 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민아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난 그 사람 결혼 망칠 생각 없었고 진작 사직서도 제출했어. 그동안 일한 거랑 옛날에 영업 사원이었을 때 벌어둔 돈도 있고, 그 사람이 워낙 통이 큰 데다가 내가 돈을 막 쓰는 성격도 아니라서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이면 남은 생은 충분히 먹고 놀 수 있어. 싱글맘이 될 준비까지 했는데 그 사람 결혼 상대 여자가 수작을 부려서 아이를 잃게 됐어.”민아는 목이 메었다.“아기를 잃고 출혈로 죽을 뻔했어. 의사 선생님은 내가
도윤은 지아가 돌아오자마자 민아로부터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지아가 당신을 만나겠대요.”도윤은 한숨을 쉬었다.“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어.”눈발이 흩날리던 저녁, 지아는 도윤을 다시 만났다.죽은 척한 이후 여러 뉴스에서 도윤을 봤지만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가 얼마나 야위었는지 깨달았다.검은색 울 코트를 입고 차에 기대고 있던 도윤의 머리 위에는 1분도 지나지 않아 눈이 쌓였다.지아는 도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차에서 기다리지.”도윤은 지아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지아의 마음 상태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을 확인한 도윤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빨리 보고 싶어서.”도윤은 다가와서 우산을 들고 눈을 막아주고 싶었지만, 지아가 싫어할까 봐 어쩌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차에 타서 얘기 좀 하자.”“그래.”도윤은 지아를 위해 손수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사적인 얘기였기에 도윤은 혼자 차를 몰고 왔다.도윤은 지아가 무슨 생각인지 몰랐기에 차에 올라도 시동을 걸지 않았다.모든 주도권은 지아에게 있었다.“밥은 먹었어?”“아니, 전화 받고 바로 왔어.”“나도 밥 안 먹었어. 명월당에 가자.”도윤은 서둘러 전화를 걸어 자리를 예약했다.명월당은 두 사람이 자주 가던 한식집이었다.도윤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차를 돌렸고, 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차 안은 조용했고,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도윤은 지아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운명'을 틀었다.가사는 지금 두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도윤은 천천히 차를 몰았고 지아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널 잊을 수 없어.오늘도 넌 내 마음속에 남아 날 괴롭혀.]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두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내가 살아 있는 건 언제 알았어?”지아가 먼저 물었다.도윤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오래전에. 적어도 내가 아는 너는 내가 없을 때 죽지 않을 거야. 장례식장
도윤은 붉게 물든 눈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말해 봐, 그 사람 사랑해?”지아는 오히려 되물었다.“언젠가 내가 정말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돼도 그게 뭐 어때서? 도윤 씨, 우린 이혼했어.”핸들에 올려진 도윤의 손은 아직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고, 그는 이 결혼이 끝났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지아야, 네 자유를 구속할 생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안 돼.”“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도윤은 분명하게 말했다.“죽여버릴 거야, 진짜로.”지아가 도윤에게 달려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당신이 강욱 씨한테 그런 짓을 했지, 벌써 죽었어?”도윤은 이런 식으로 전개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지아에게 자신이 무사하고 살아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더욱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도윤은 지아의 손을 낚아채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럼 오늘 다른 남자 때문에 날 만난 거야?”사실 마음속으로 후회했다. ‘지아야, 너한테 진심으로 화내는 건 아니야.’지아는 도윤이 너무 담담하게 강욱을 언급해서 마음속 의심을 떨쳐 버리던 참이었다.“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날 구해준 사람이고 잘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어.”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만나게 해줄게.”도윤은 다시 시동을 걸고 식당으로 향했고, 재빨리 우산을 들고 조수석으로 다가갔다.지아는 따뜻하게 입고 있었고 도윤은 검은 우산을 들고 눈보라를 막아주었다.두 사람은 막 결혼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지아는 걸음을 멈추고 우산 아래로 날리는 눈을 멍하니 쳐다보았다.“지아야, 왜 그래?”“옛날 생각 나서. 도윤 씨,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지아는 자신도 여전히 도윤을 사랑하고, 그 또한 자신에 대한 감정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멀리 돌고 돌아 이생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음식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맛있었고, 주인은 그들을 알아보고 특별히 지아가 좋아하던 주스를 가져다주었다.그때
정곡을 찌르는 지아의 말에 도윤은 침묵만 지켰다.“처음에는 당신도 동생에게 속았다는 걸 알지만, 소씨 가문에 일어난 일도,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이야.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내 손목을 부러뜨리던 모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해.”“지아야, 미안해.”“그렇게 거듭되는 일들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 미안해, 난 이 오래된 원한을 잊고 다시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평온한 지아의 말은 마치 오래된 친구와 얘기를 나누듯 어떤 흥분도 담겨 있지 않았다.“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데 왜 손을 놓지 않는 거야? 다시 함께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고, 또다시 나와 심지어 내 아이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이야.”도윤은 무덤덤하게 말하는 지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아기를 보고 싶어.”“그럴 필요 없어. 아이들한테는 이미 아빠가 죽었다고 했어. 애들을 보살펴 줄 수 없다면 애초에 만나지 않는 게 낫지.”지아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미워했어. 그러면서도 당신은 여러 번 위험에서 나를 구해 주었어. 이젠 더 이상 과거의 원한도 누구의 잘잘못인지도 잴 수 없어. 칼을 겨누는 대신 서로 헤어지고 잊는 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지 않겠어?”무거워진 도윤의 마음과 반대로 지아의 마음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졌다.모든 것에 무뎌진 지아는 속세에 해탈한 신처럼 침착하고 절제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도윤은 마가 씐 악마처럼 계속해서 두 사람의 과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지금껏 많이 양보한 이유는 아직 인내심의 한계까지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선을 돌파하면 도윤은 모든 통제를 벗어나 완전히 야수로 변할 것이다.도윤은 지금 지아를 또다시 놀라게 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자신의 야수적인 본성을 제대로 숨기고 있었다.“내가 못 하겠다고 하면? 이혼하더라도 너와 아이를 볼 권리가 있지 않나?”도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앞으로 지아를 볼 수 없다면 자신은 분
지아가 침묵하자 도윤은 계속 말했다.“내가 전에 너에게 상처 주는 짓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니까 네가 나와 헤어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네 전남편일 뿐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인데, 소송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양육권이나 만날 권리는 있지 않아? 말 한마디로 내 모든 권한을 빼앗는 게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해?”이 한마디에 지아의 표정이 급변했다.“나한테서 아이를 뺏어갈 생각이야?”정말 둘이 법정으로 간다면 조건상 도윤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지아의 담담한 얼굴이 그 자리에서 조금 무너져 내렸다.“지아야, 불안해하지 마. 비유를 든 거지 양육권을 뺏으려는 게 아니야.”도윤은 서둘러 지아를 진정시키려 했다.“나는 단지 네가 다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나도 너와 아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 거야. 넌 섬에서 마음 놓고 병 치료하고, 아이들도 자유롭게 클 수 있어. 다 안전할 거라고.”지아는 눈을 내리깔고 한참을 생각했다.“좋아, 그렇게 해.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말해.”“민아가 지금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어. 데리고 가서 쉬게 하고 싶어. 서로 돌봐줄 수도 있고.”“알았어, 내가 준비할게.”도윤은 지아의 바닥을 향한 시선에서 승리의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너무 익숙한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는지 지아는 처음부터 도윤의 의도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한 가지 더, 강욱 씨 만나고 싶어요.”도윤의 눈빛에서 불쾌함이 엿보였다.“지아야, 그날 밤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살려줬을 것 같아? 그런 사람을 만날 때 내 기분은 생각해 봤어?”“강욱 씨가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알았어, 내가 데려다줄게.”도윤이 계산을 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가로등 아래 흩날리는 눈은 유난히 낭만적으로 보였다.도윤이 지아를 병원에 내려주고 하빈은 복도를 지켰다.“아가씨 오셨어요.”지아가 날카롭게 물었다.“강욱 씨는 좀 어때요?”“어젯밤 투석을
눈이 점점 많이 내리자 도윤은 차의 속도를 적절히 줄였다.뒤로 다른 차들이 뒤따라오면서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이 만들어졌다.늦은 겨울밤, 설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작은 색색의 불빛들이 사방에 걸려 있는 세상은 조용하고 온화했다.차 안은 조용했고 도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반면에 지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곧 코너를 돌기 전 도윤은 미리 속도를 늦추었다.바로 그 순간, 다른 도로의 차 한 대가 도윤이의 차를 노리고 거칠게 달려들었다.갑작스러운 변화에 도윤은 급하게 핸들을 꺾어 차를 피하고자 도로 옆으로 핸들을 돌렸다.이미 반응 속도가 매우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차량은 도윤의 차량 운전석 가장자리를 스쳤다.중형 트럭이라 강한 힘으로 도윤의 차를 대각선으로 들이받았다.문이 닫힌 가게의 유리문이 앞으로 다가왔을 때 차는 통제 불능 상태였다.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지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도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지아야, 조심해.”지아의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이윽고 고막이 깨질 것 같은 큰 충돌음이 들렸다.지아는 눈을 질끈 감고 귓가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언제 다가왔는지 도윤이 단단한 몸으로 지아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앞유리는 물론 문에 달린 유리마저 사방으로 깨졌고, 지아의 손에 유리가 박혔다.많이 아팠다.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틈도 없이 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에어백이 터지면서 지아를 단단히 감쌌다.잠시 후 차가 움직임을 멈추자 지아는 따뜻한 액체가 볼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눈을 뜨자 코앞에 있는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도윤은 이마를 다쳐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지아의 뺨에 떨어졌다.피였다. 지아는 공포에 질려 눈을 번쩍 떴다.머릿속에 미연이 죽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올랐고 도윤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남자는 이마를 다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지아의 동공은 커졌고, 도윤은 얼굴 상처보다 등에 고슴도치처럼 많은 유리 파편이 박힌 게 더 심각했
곧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진봉은 비극적인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여 이렇게 외쳤다.“대표님!”도윤의 이마에는 고통으로 흘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입술은 하얗게 변했지만 도윤은 그럼에도 이렇게 말했다.“지아부터 구해.”조수석 문은 벽에 눌려서 열리지 않았고, 왼쪽에는 커다란 화물차 한 대가 있었다.진봉은 깨진 차 지붕의 유리창을 따라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대표님, 조금만 버티세요.”지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얼굴에는 눈물이 굵은 방울로 흘러내렸다.도윤은 지아를 향해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지아야, 네 말대로 됐어. 난 널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운명인가 봐.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죽으면 더 이상 너와 애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워. 미안해, 그동안 좋은 아빠, 남편이 되지 못해서 너와 아이들을 많이 힘들게 하고 다치게 했어... 콜록...”기침을 하자 입가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도윤의 머릿속에는 지아밖에 없었다.“울, 울지 마. 다신 널 해치지 않겠다고 했잖아.”하지만 손바닥에 묻은 피 때문에 닦아줄수록 지아의 얼굴은 점점 피로 번졌다.지아는 울먹이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오직 도윤이가 살길 바라는 생각뿐이었다.밖에서는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다행히 도윤은 누군가 지아를 암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정예 요원들을 많이 배치해 두었다.그리고 그들이 들이박은 가게가 엄폐물을 만들어 주었기에 진봉과 다른 사람들이 달려가 구출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총격전은 10분 동안 지속되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야 잦아들었다.조용하고 긴 거리에 경찰차 사이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도윤도 가까스로 구출되었지만 등에 유리가 가득 박혀 있었고 진봉은 차마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119를 불렀다.팔에 상처를 입은 진환은 다친 팔을 가리고 침착하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먼저 안전하게 모실게요, 이 사람들은 킬러가
지아가 도윤의 혈액형을 정확히 모르자 진봉은 이렇게 설명했다.“대표님은 희귀 혈액형인 P1이에요.”이 혈액형을 들은 지아는 눈앞이 시커멓게 변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지아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혈액형이 얼마나 희귀한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P 혈액형 체계는 ABO 혈액형 체계, RH 혈액형 체계와 구분되는 혈액형 체계로, P1, P2, P1k, P2k, p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가장 흔한 혈액형은 P1과 P2이고, 마지막 세 가지 혈액형은 더 희귀했다.하지만 단순히 P형 혈액만으로는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도윤은 부상으로 많은 양의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 정도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높았다.“어떻게 이럴 수가...”지아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진봉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다쳤을 텐데.’“사모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늘 건강하셨던 분이라 괜찮을 겁니다. 그 파편들이 전부 사모님께 날아갔어도 가벼운 정도로 얼굴을 다쳤을 테지만 이미 지병이 있으셨으니 대표님은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지아는 진봉의 소매를 붙잡고 손바닥에 식은땀을 흘렸다.“여분의 혈액이 있나요?”“분명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대표님 혈액형이 워낙 특별해서 진작 다 준비했을 겁니다. 정 안 되면 또...”그 말이 나오기 바쁘게 마스크를 쓴 의사가 안쪽에서 나왔고, 지아 역시 그의 눈빛에서 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지아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는 지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미셸은 아직 안 왔어?”“소령님은 작전 수행하러 가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려 드렸으니 곧 오실 겁니다...”쾅- 큰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비상구 문을 걷어찼다.지아는 군복을 입은 영국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비상구를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는지 여자는 옥상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늘 차분했던 얼굴이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