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진봉은 비극적인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여 이렇게 외쳤다.“대표님!”도윤의 이마에는 고통으로 흘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입술은 하얗게 변했지만 도윤은 그럼에도 이렇게 말했다.“지아부터 구해.”조수석 문은 벽에 눌려서 열리지 않았고, 왼쪽에는 커다란 화물차 한 대가 있었다.진봉은 깨진 차 지붕의 유리창을 따라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대표님, 조금만 버티세요.”지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얼굴에는 눈물이 굵은 방울로 흘러내렸다.도윤은 지아를 향해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지아야, 네 말대로 됐어. 난 널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운명인가 봐.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죽으면 더 이상 너와 애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워. 미안해, 그동안 좋은 아빠, 남편이 되지 못해서 너와 아이들을 많이 힘들게 하고 다치게 했어... 콜록...”기침을 하자 입가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도윤의 머릿속에는 지아밖에 없었다.“울, 울지 마. 다신 널 해치지 않겠다고 했잖아.”하지만 손바닥에 묻은 피 때문에 닦아줄수록 지아의 얼굴은 점점 피로 번졌다.지아는 울먹이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오직 도윤이가 살길 바라는 생각뿐이었다.밖에서는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다행히 도윤은 누군가 지아를 암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정예 요원들을 많이 배치해 두었다.그리고 그들이 들이박은 가게가 엄폐물을 만들어 주었기에 진봉과 다른 사람들이 달려가 구출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총격전은 10분 동안 지속되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야 잦아들었다.조용하고 긴 거리에 경찰차 사이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도윤도 가까스로 구출되었지만 등에 유리가 가득 박혀 있었고 진봉은 차마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119를 불렀다.팔에 상처를 입은 진환은 다친 팔을 가리고 침착하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먼저 안전하게 모실게요, 이 사람들은 킬러가
지아가 도윤의 혈액형을 정확히 모르자 진봉은 이렇게 설명했다.“대표님은 희귀 혈액형인 P1이에요.”이 혈액형을 들은 지아는 눈앞이 시커멓게 변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지아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혈액형이 얼마나 희귀한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P 혈액형 체계는 ABO 혈액형 체계, RH 혈액형 체계와 구분되는 혈액형 체계로, P1, P2, P1k, P2k, p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가장 흔한 혈액형은 P1과 P2이고, 마지막 세 가지 혈액형은 더 희귀했다.하지만 단순히 P형 혈액만으로는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도윤은 부상으로 많은 양의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 정도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높았다.“어떻게 이럴 수가...”지아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진봉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다쳤을 텐데.’“사모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늘 건강하셨던 분이라 괜찮을 겁니다. 그 파편들이 전부 사모님께 날아갔어도 가벼운 정도로 얼굴을 다쳤을 테지만 이미 지병이 있으셨으니 대표님은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지아는 진봉의 소매를 붙잡고 손바닥에 식은땀을 흘렸다.“여분의 혈액이 있나요?”“분명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대표님 혈액형이 워낙 특별해서 진작 다 준비했을 겁니다. 정 안 되면 또...”그 말이 나오기 바쁘게 마스크를 쓴 의사가 안쪽에서 나왔고, 지아 역시 그의 눈빛에서 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지아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는 지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미셸은 아직 안 왔어?”“소령님은 작전 수행하러 가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려 드렸으니 곧 오실 겁니다...”쾅- 큰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비상구 문을 걷어찼다.지아는 군복을 입은 영국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비상구를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는지 여자는 옥상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늘 차분했던 얼굴이 지금은
진봉은 얼른 사람을 시켜 지아에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지아는 모든 생각이 도윤에게 집중되어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수술실 문이 열리고 미셸이 걸어 나왔다.들어갈 때만 해도 당당했던 미셸이 나올 때는 입술까지 하얗게 변해 부축을 받고 있었다.‘피를 많이 흘렸나 봐. 그래서 손과 발에 힘이 없는 거야.’미셸은 왔을 때는 너무 급한 나머지 지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발견하고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그건 지아도 마찬가지였다.미셸은 지아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다.도윤의 마음속에 항상 있던 사람.미셸도 방금 전의 수술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고 도윤의 능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엄폐물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다쳤다고 해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등 전체가 엉망이 되었다는 건 딱 하나, 다른 누군가를 막아주었다는 뜻이다.도윤이 온몸으로 보호하고 있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미셸은 지금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당당한 걸음걸이로 지아를 향해 걸어왔다.지아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미셸은 손을 들어 지아의 얼굴을 때렸다.진봉도 이렇게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미셸을 막으러 달려가면서 이렇게 말했다.“누나, 뭐 하는 짓이야?”미셸은 진봉을 무시하고 지아를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굶주린 늑대처럼 지아를 갈기갈기 찢어 배속으로 삼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당신이 대체 뭔데,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기는 해? 당신 같은 사람 만 명이 죽어도 저 안에 있는 사람 목숨값도 안 돼!”한창 도윤에 대한 걱정에 빠져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때리자 지아는 황당했다.여자의 입에서는 악랄하다고 할 수 있는 극도로 불쾌한 말까지 내뱉고 있었다.지아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누구든 당신이 알 것 없고, 저 사람이 무슨 선택을 하든 그것도 당신과 상관없죠.”도윤의 사랑이 용기를 가져다준다면 미셸은 이 점에서
오늘 밤 일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진환은 그 여파로 정신없이 바빴다.지아 옆에는 진봉만 홀로 남았다.지아는 차 안에서 두꺼운 패딩을 벗었던 터라 얇은 니트만 입고 있었다.복도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찬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지아는 이렇게 추위에 서서 도윤을 기다리던 몇 년 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진봉은 그다지 세심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지아의 뒷모습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특히 지나가던 구급대원들이 모두 일부러 지아에게 못되게 굴었다.“비켜요, 길 막지 말고.”더 이상 바쁘지도 않았지만 그저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지아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도윤이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테니까.그들의 눈에 지아는 도윤에게 그저 짐일 뿐이었다.털털한 진봉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군 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대부분 계급장을 달고 최전방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뼛속까지 오만해서 지아의 신분이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지아도 마음속 깊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상처받지 않았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언젠가 지아 자신도 남들이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라 다짐했다.지아는 이 순간, 애초에 한 남자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다.만약 자신이 공부를 제대로 마치고 뛰어난 의사가 되었다면, 꽃병 취급이나 받으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렸을까?지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언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영광을 되찾겠다고 남몰래 다짐했다!지아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허리를 곧게 펴고 서서 결과를 기다렸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 줄 알았던 미셸이 다시 돌아왔다.옷을 갈아입으러 돌아간 미셸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도 여전히 용감해 보였고, 군인은 태생부터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자리에 서 있는 지아는 나약한 버드나무처럼 동정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지만 미셸은 버드나무를 거꾸로 세운 여자 영웅 같은 인상을 주었다.옅은 화장을
몇 시간의 수술 끝에 도윤의 몸속에 있던 유리 파편은 모두 제거되었고 당분간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부상을 당하면 마취를 할 텐데, 도윤은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그 몇 시간은 지옥 같았다.도윤은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지아를 만나기만 기다렸다.미셸이 가장 먼저 도윤에게 달려갔다.“오빠, 괜찮아?”도윤은 손등에 턱을 괴고 모든 힘을 소진한 채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이미 기운이 빠지기 직전이었지만, 도윤은 문이 열린 후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도윤이 처음 본 사람은 미셸이 아니라 지아였다.미셸의 인사를 무시한 채 도윤은 미약한 목소리로 불렀다.“지아야.”지아가 그제야 도윤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도윤이 손을 내밀었고 지아가 맞잡았다.도윤의 손바닥은 더 이상 마르지 않았고 땀이 배어 있었다.“살아서 수술실에서 나가겠다고 약속했잖아.”이 말을 한 후에야 도윤은 기절했지만 지아를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그 행동에 미셸은 따귀를 맞은 것 같이 얼굴이 화끈거렸다.도윤의 사랑은 지아의 최대 무기였다.진봉이 급히 물었다.“선생님, 우리 보스는 괜찮나요?”우 박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운이 좋았어. 유리 조각이 심장에 박힐 뻔했는데 다행히 몇 센티미터 정도 간격이 있었어. 여름이었으면 바로 죽었을 텐데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서 다행이지.”“그럼 보스는 이제 괜찮다는 거죠?”“왜 힘든 걸 자초하는지 몰라. 마취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버텼어. 요즘엔 약도 잘 갈아주어야 해. 감염되면 큰일 나니까.”“감사합니다 선생님.”우 박사는 손을 흔들었다.“일단 이틀 동안 병동에서 관찰해 보죠.”도윤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우 박사도 조금은 안도한 듯 표정이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도윤은 고집스레 지아를 놓지 않았고, 지아는 침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병동까지 도윤을 밀고 가야 했다.우 박사는 미셸을 흘끗 쳐다보았다.“너도 참, 왜 남의 부부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야? 저놈 성격을 모르
지아는 처음엔 그러는 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선입견을 품고 있었고 자신도 이미 모두에게 나쁜 인상을 남겼다.오늘 여기서 도윤을 지키기 위해 서 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무시할 것이다.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왜 굳이 신경 써야 하나?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지아는 오래 서 있다 보니 종아리가 아팠다.침대에 엎드리면 요통이 생길지도 모른다.“네, 다녀오세요.”지아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침대 쪽으로 갔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미셸이 화를 냈다.“당, 당신 뻔뻔하게 뭐 하는 거예요?”지아는 눈을 깜빡이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보다시피 여우는 피곤해서 좀 쉬어야 해요.”“어떻게 저 남자랑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있어요?”미셸은 급한 마음에 펄쩍 뛸 지경이었다.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저를 안 놔주잖아요.”말을 하는 동안 지아는 옆으로 누우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리고 미셸 씨는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 말고도 더한 일도 했는데 그게 미셸 씨와 무슨 상관이죠?”그 말에 미셸은 말문이 막힌 채 또다시 같은 말만 반복했다.“당신들 이미 이혼했잖아! 예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미셸 씨, 뭘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 얽혀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진봉은 이불을 챙겨 빠르게 달려왔다.“사모님, 이불 여기 있어요. 오늘 밤 피곤하실 테니 좀 쉬세요.”미셸은 이해할 수 없었다.“저 여자가 뭘 했길래 피곤해?”진봉은 지아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뒤돌아서서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모님은 이렇게 오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야만인처럼 매일 싸움이나 하러 다니는 누나와 달라서...”진봉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미셸은 종아리를 걷어찼다.“누가 야만인이야? 다시 말해 봐! 그리고 이왕 챙겨올 거면 내 이불까지 가져와야지.”“커플 사이에 끼어서 뭐 하는 거야?”미
과거의 배후도 찾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일 처리 방식이 전혀 다른 새로운 적까지 나타났다.지아는 생각에 잠겼다. ‘평생을 다른 사람의 비호 아래 숨어 살아야 하나?’미연의 죽음과 자신을 구하려다 다친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잔인했던 비 내리는 밤이 지아의 마음속에 그림자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더 강해지지 않으면 매번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다 날이 밝아질 때 도윤의 모든 수치가 안정되어서야 지아는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방은 몹시 조용했고, 미셸은 그 틈을 타서 도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작전 수행 중에는 가면을 써서 아무도 도윤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자신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지금 이 순간 지아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도윤과 가까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도윤에게 굿모닝 인사를 건네는 지아가 얼마나 행복할까.열심히 지켜보던 와중에 도윤이 갑자기 눈을 떴고, 미셸은 뭔가 나쁜 짓을 했다가 들킬 것 같은 불안감에 당황하며 눈을 피하려고 애썼다.그런데 뜻밖에도 미셸의 마음과 눈은 도윤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도윤은 미셸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도윤이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여전히 지아였다.도윤은 지아의 모습을 가슴에 새기고 싶고, 지아의 얼굴을 눈에 가득 채우고 싶다는 듯 욕심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팔이 저렸는지 손을 바꾸며 지아의 뺨을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그제야 도윤은 방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시선이 지아의 얼굴에서 멀어지자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미셸은 도윤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입을 열려는 찰나, 도윤은 손을 뻗어 입술에 대고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미셸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도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그는 자신만큼 들뜨지 않았다는 것
도윤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알아. 잠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네 손을 놓기 싫었어.”도윤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욱 병들어 보였다.생사를 넘나들며 수술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깨어나자 멀쩡한 사람처럼 행동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마취제를 안 썼다고 들었어.”“내가 죽으면 마지막으로 널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워서.”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아는 마취제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다칠 때마다 힘겹게 버텨야 했다.출산으로 인한 출혈과 팔에 꿰맨 상처, 손목을 다쳤을 때도.도윤은 마취도 하지 않고 지아가 겪은 모든 고통을 마음속에 확실히 간직하고 싶었다.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지아를 보고 싶었다.어젯밤 응급처치가 정말 효과가 없었다면 도윤은 잠든 채로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지아는 도윤의 대답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도윤이었다.“가능한 한 빨리 섬으로 데려다줄게.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안전하지 않다는 건...”도윤은 진환을 불렀다.바삐 움직이던 진환은 눈이 충혈된 채 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보스, 저희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진환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도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두 손 위로 턱을 괴고 있었다.“큰 재앙을 당한 뒤에 복이 찾아오겠지. 가서 지아를 빨리 데려다줘.” 도윤의 어조는 단호했다.이럴 때 가장 원하는 것은 곁에 있어 주는 것임이 분명했지만, 자신을 먼저 보내는 걸 보아 도윤이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사실 어젯밤부터 도윤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지아는 진환을 바라보았다.“뭘 알아냈어요?”하지만 진환은 도윤을 바라보았고 도윤의 허락 없이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지아야, 애들이 밤새 널 많이 그리워했어. 소망이와 해경이도 벌써 모였을 테니까 너도 서둘러 가. 난 이제 괜찮아.”너무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