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일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진환은 그 여파로 정신없이 바빴다.지아 옆에는 진봉만 홀로 남았다.지아는 차 안에서 두꺼운 패딩을 벗었던 터라 얇은 니트만 입고 있었다.복도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찬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지아는 이렇게 추위에 서서 도윤을 기다리던 몇 년 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진봉은 그다지 세심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지아의 뒷모습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특히 지나가던 구급대원들이 모두 일부러 지아에게 못되게 굴었다.“비켜요, 길 막지 말고.”더 이상 바쁘지도 않았지만 그저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지아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도윤이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테니까.그들의 눈에 지아는 도윤에게 그저 짐일 뿐이었다.털털한 진봉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군 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대부분 계급장을 달고 최전방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뼛속까지 오만해서 지아의 신분이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지아도 마음속 깊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상처받지 않았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언젠가 지아 자신도 남들이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라 다짐했다.지아는 이 순간, 애초에 한 남자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다.만약 자신이 공부를 제대로 마치고 뛰어난 의사가 되었다면, 꽃병 취급이나 받으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렸을까?지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언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영광을 되찾겠다고 남몰래 다짐했다!지아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허리를 곧게 펴고 서서 결과를 기다렸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 줄 알았던 미셸이 다시 돌아왔다.옷을 갈아입으러 돌아간 미셸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도 여전히 용감해 보였고, 군인은 태생부터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자리에 서 있는 지아는 나약한 버드나무처럼 동정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지만 미셸은 버드나무를 거꾸로 세운 여자 영웅 같은 인상을 주었다.옅은 화장을
몇 시간의 수술 끝에 도윤의 몸속에 있던 유리 파편은 모두 제거되었고 당분간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부상을 당하면 마취를 할 텐데, 도윤은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그 몇 시간은 지옥 같았다.도윤은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지아를 만나기만 기다렸다.미셸이 가장 먼저 도윤에게 달려갔다.“오빠, 괜찮아?”도윤은 손등에 턱을 괴고 모든 힘을 소진한 채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이미 기운이 빠지기 직전이었지만, 도윤은 문이 열린 후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도윤이 처음 본 사람은 미셸이 아니라 지아였다.미셸의 인사를 무시한 채 도윤은 미약한 목소리로 불렀다.“지아야.”지아가 그제야 도윤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도윤이 손을 내밀었고 지아가 맞잡았다.도윤의 손바닥은 더 이상 마르지 않았고 땀이 배어 있었다.“살아서 수술실에서 나가겠다고 약속했잖아.”이 말을 한 후에야 도윤은 기절했지만 지아를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그 행동에 미셸은 따귀를 맞은 것 같이 얼굴이 화끈거렸다.도윤의 사랑은 지아의 최대 무기였다.진봉이 급히 물었다.“선생님, 우리 보스는 괜찮나요?”우 박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운이 좋았어. 유리 조각이 심장에 박힐 뻔했는데 다행히 몇 센티미터 정도 간격이 있었어. 여름이었으면 바로 죽었을 텐데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서 다행이지.”“그럼 보스는 이제 괜찮다는 거죠?”“왜 힘든 걸 자초하는지 몰라. 마취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버텼어. 요즘엔 약도 잘 갈아주어야 해. 감염되면 큰일 나니까.”“감사합니다 선생님.”우 박사는 손을 흔들었다.“일단 이틀 동안 병동에서 관찰해 보죠.”도윤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우 박사도 조금은 안도한 듯 표정이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도윤은 고집스레 지아를 놓지 않았고, 지아는 침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병동까지 도윤을 밀고 가야 했다.우 박사는 미셸을 흘끗 쳐다보았다.“너도 참, 왜 남의 부부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야? 저놈 성격을 모르
지아는 처음엔 그러는 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선입견을 품고 있었고 자신도 이미 모두에게 나쁜 인상을 남겼다.오늘 여기서 도윤을 지키기 위해 서 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무시할 것이다.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왜 굳이 신경 써야 하나?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지아는 오래 서 있다 보니 종아리가 아팠다.침대에 엎드리면 요통이 생길지도 모른다.“네, 다녀오세요.”지아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침대 쪽으로 갔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미셸이 화를 냈다.“당, 당신 뻔뻔하게 뭐 하는 거예요?”지아는 눈을 깜빡이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보다시피 여우는 피곤해서 좀 쉬어야 해요.”“어떻게 저 남자랑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있어요?”미셸은 급한 마음에 펄쩍 뛸 지경이었다.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저를 안 놔주잖아요.”말을 하는 동안 지아는 옆으로 누우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리고 미셸 씨는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 말고도 더한 일도 했는데 그게 미셸 씨와 무슨 상관이죠?”그 말에 미셸은 말문이 막힌 채 또다시 같은 말만 반복했다.“당신들 이미 이혼했잖아! 예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미셸 씨, 뭘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 얽혀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진봉은 이불을 챙겨 빠르게 달려왔다.“사모님, 이불 여기 있어요. 오늘 밤 피곤하실 테니 좀 쉬세요.”미셸은 이해할 수 없었다.“저 여자가 뭘 했길래 피곤해?”진봉은 지아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뒤돌아서서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모님은 이렇게 오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야만인처럼 매일 싸움이나 하러 다니는 누나와 달라서...”진봉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미셸은 종아리를 걷어찼다.“누가 야만인이야? 다시 말해 봐! 그리고 이왕 챙겨올 거면 내 이불까지 가져와야지.”“커플 사이에 끼어서 뭐 하는 거야?”미
과거의 배후도 찾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일 처리 방식이 전혀 다른 새로운 적까지 나타났다.지아는 생각에 잠겼다. ‘평생을 다른 사람의 비호 아래 숨어 살아야 하나?’미연의 죽음과 자신을 구하려다 다친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잔인했던 비 내리는 밤이 지아의 마음속에 그림자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더 강해지지 않으면 매번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다 날이 밝아질 때 도윤의 모든 수치가 안정되어서야 지아는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방은 몹시 조용했고, 미셸은 그 틈을 타서 도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작전 수행 중에는 가면을 써서 아무도 도윤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자신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지금 이 순간 지아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도윤과 가까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도윤에게 굿모닝 인사를 건네는 지아가 얼마나 행복할까.열심히 지켜보던 와중에 도윤이 갑자기 눈을 떴고, 미셸은 뭔가 나쁜 짓을 했다가 들킬 것 같은 불안감에 당황하며 눈을 피하려고 애썼다.그런데 뜻밖에도 미셸의 마음과 눈은 도윤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도윤은 미셸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도윤이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여전히 지아였다.도윤은 지아의 모습을 가슴에 새기고 싶고, 지아의 얼굴을 눈에 가득 채우고 싶다는 듯 욕심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팔이 저렸는지 손을 바꾸며 지아의 뺨을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그제야 도윤은 방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시선이 지아의 얼굴에서 멀어지자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미셸은 도윤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입을 열려는 찰나, 도윤은 손을 뻗어 입술에 대고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미셸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도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그는 자신만큼 들뜨지 않았다는 것
도윤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알아. 잠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네 손을 놓기 싫었어.”도윤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욱 병들어 보였다.생사를 넘나들며 수술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깨어나자 멀쩡한 사람처럼 행동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마취제를 안 썼다고 들었어.”“내가 죽으면 마지막으로 널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워서.”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아는 마취제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다칠 때마다 힘겹게 버텨야 했다.출산으로 인한 출혈과 팔에 꿰맨 상처, 손목을 다쳤을 때도.도윤은 마취도 하지 않고 지아가 겪은 모든 고통을 마음속에 확실히 간직하고 싶었다.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지아를 보고 싶었다.어젯밤 응급처치가 정말 효과가 없었다면 도윤은 잠든 채로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지아는 도윤의 대답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도윤이었다.“가능한 한 빨리 섬으로 데려다줄게.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안전하지 않다는 건...”도윤은 진환을 불렀다.바삐 움직이던 진환은 눈이 충혈된 채 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보스, 저희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진환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도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두 손 위로 턱을 괴고 있었다.“큰 재앙을 당한 뒤에 복이 찾아오겠지. 가서 지아를 빨리 데려다줘.” 도윤의 어조는 단호했다.이럴 때 가장 원하는 것은 곁에 있어 주는 것임이 분명했지만, 자신을 먼저 보내는 걸 보아 도윤이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사실 어젯밤부터 도윤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지아는 진환을 바라보았다.“뭘 알아냈어요?”하지만 진환은 도윤을 바라보았고 도윤의 허락 없이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지아야, 애들이 밤새 널 많이 그리워했어. 소망이와 해경이도 벌써 모였을 테니까 너도 서둘러 가. 난 이제 괜찮아.”너무 이상했다.
차라리 말하지 않으면 모를까, 도윤이 그런 말을 하자 지아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언제까지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이기적으로 굴 거야?”지아는 그동안의 불만을 모두 쏟아냈다.“예전에 난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어. 당신 일이 워낙 비밀스러우니까 묻지도 않았고 난 당신이 어디로 출장 가는 것도 몰랐어. 그게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인 줄 알았는데 결국 나한테 돌아온 건 뭐야?”“지아야.”도윤은 손을 뻗어 지아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지아는 피했다.“당신은 내 모든 걸 아니까 기분 좋을 땐 엄청난 돈을 들여서 나를 위한 선물까지 사주면서 아껴주다가, 기분 안 좋을 땐 그걸 다 뺏어가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잖아. 그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이도윤이라는 것 말고 내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어? 애초에 당신은 나를 애완동물 대하듯 사랑했어. 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당신의 이기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 아냐?”도윤은 화난 지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아는 그동안 자신에 대한 원망이 컸던 것 같다.“지아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내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위험해질 걸 알기 때문에 우리 집안도 이미 해외로 이주한 거야. 다가올 불행을 막으려고.”도윤은 한숨을 쉬었다.“그래, 이렇게 된 이상 네가 알고 싶은 건 다 말해줄게. 어차피 내 신분은 유출됐어. 진환아, 알아낸 거 다 말해. 여기 외부인도 없으니까.”진환은 허락받고 먼저 방 문을 닫은 뒤 지아에게 말했다.“사모님, 어젯밤 일은 사모님을 노린 게 아니라 누군가 보스를 죽이려고 한 거고, 사모님은 그냥 어쩌다가 함께 당한 겁니다.”역시 지아의 촉이 맞았다. 전에 겪었던 일행과 수법이 전혀 달랐으니까.“도대체 누구예요, 누가 감히?”“제가 초보적으로 알아낸 바에 따르면, 현지에 있는 일부 음지 조직인데 나라에서 이 지역을 매우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어서 일부 잔당이 존재하더라도 감히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그럼 왜...”
진환은 심각한 표정이었다.“보스의 정체가 드러나면 과거 보스에게 원한을 품었던 여러 세력이 반드시 보복을 위해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 겁니다. 어젯밤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의 배후에 있는 조직은 10년 전 S지역의 중심인물인데 무모하게 나서기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기 전에 보스를 끌어내릴 생각인 겁니다.”지아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그럼 이제 도윤 씨가 위험하지 않나요?”“여기는 아직 안전하지만 군사 지역을 벗어나면 모든 곳이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저희가 블랙 넷에서 누군가가 익명의 현상금 게시물을 게시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스를 죽이면 200억을 받을 수 있다는데 이러한 고가의 현상금 게시물은 보통 일부 개인 암살자와 용병까지 끌어모으죠. 큰 보상에는 용자가 나서는 법이니까요.”도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아를 위로했다.“전에 널 내 곁에 둔 건 내가 지켜줄 수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젠 내 곁이 제일 위험하니까 떠나야 해.”자기는 목숨을 걸면서 지아에겐 떠나라고 한다.지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떠날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당신 등에 난 상처가 아물면 떠날 거야.”“지아야, 너...”도윤은 지아가 이유를 듣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줄 알았는데, 이곳에 남겠다고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오해하지 마, 계산은 확실히 할 거야. 당신이 내게 상처 준 건 잊지 않았어. 하지만 이 상처는 나 때문에 생긴 거니까.”“하지만...”“진환 씨가 여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어? 며칠 더 있어도 괜찮지 않나?”도윤은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다소 놀랐다.“당연히 괜찮죠. 이런 때에 사모님께서 여기 계시면 저는 오히려 좋죠.”진환은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대표님,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는 이미 챙겨드리고 있고 상대도 여지를 남겨 놓았으니 일단 치료부터 하고 처리하시죠. 지금은 푹 쉬세요.”진환이 그렇게 말하며 문을 나서
소지아는 간호사가 약을 바꾸는 방법을 열심히 지켜보았고, 방안에 두 사람만 남겨지게 되자 그제야 이도윤에게 화를 냈다.“여보?”“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끈질기게 조르는 걸 어떡해.”지아는 여전히 쌀쌀맞게 말했다.“이 대표는 스캔들도 많네.”이불을 들추자 붕대로 칭칭 감긴 등이 보였다.도윤이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놨다.“지아야, 그 사람은 딱 한 번 붕대를 갈아줬을 뿐이야. 그것도 어깨 쪽 붕대, 딱 한 번뿐이야.”“우린 이혼한 사이니까 그 사람이 당신한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아무 상관없는 걸?”지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붕대를 가위로 잘랐다.“지아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여자는 너뿐이야. 다른 여자는 없어.”도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아는 계속해서 비꼬려고 했으나 붕대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처에 말이 막혔다.상처가 심각할 거라 예상했지만 직접 보니 기분이 달랐다.등에 온전한 부위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지아는 가슴이 아파졌다.엎드린 도윤은 지아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고 지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지아야, 나와 백채원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지아는 일단 상처를 소독하며 이어질 도윤의 말에 기대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라거나, 누군가 약을 먹여 조종했다는 말이 나올가 두려웠다.도윤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사실 오래전부터 너한테 진실을 밝히고 싶었어. 하지만 그때의 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잖아. 내가 어젯밤에 수술대에서 죽어버렸다면 넌 영원히 진실을 알지 못할 거야. 난 더 이상 여한을 남기고 싶지 않아. 지아야, 저번에 내가 너한테 건넨 친자확인서는 가짜가 아니야.”지아의 손이 뚝 멈춰 섰다.“뭐라고?”“처음부터 난 백채원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우리 둘 사이에 아이가 있겠어? 지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우리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