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을 찌르는 지아의 말에 도윤은 침묵만 지켰다.“처음에는 당신도 동생에게 속았다는 걸 알지만, 소씨 가문에 일어난 일도,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이야.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내 손목을 부러뜨리던 모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해.”“지아야, 미안해.”“그렇게 거듭되는 일들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 미안해, 난 이 오래된 원한을 잊고 다시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평온한 지아의 말은 마치 오래된 친구와 얘기를 나누듯 어떤 흥분도 담겨 있지 않았다.“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데 왜 손을 놓지 않는 거야? 다시 함께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고, 또다시 나와 심지어 내 아이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이야.”도윤은 무덤덤하게 말하는 지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아기를 보고 싶어.”“그럴 필요 없어. 아이들한테는 이미 아빠가 죽었다고 했어. 애들을 보살펴 줄 수 없다면 애초에 만나지 않는 게 낫지.”지아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미워했어. 그러면서도 당신은 여러 번 위험에서 나를 구해 주었어. 이젠 더 이상 과거의 원한도 누구의 잘잘못인지도 잴 수 없어. 칼을 겨누는 대신 서로 헤어지고 잊는 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지 않겠어?”무거워진 도윤의 마음과 반대로 지아의 마음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졌다.모든 것에 무뎌진 지아는 속세에 해탈한 신처럼 침착하고 절제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도윤은 마가 씐 악마처럼 계속해서 두 사람의 과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지금껏 많이 양보한 이유는 아직 인내심의 한계까지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선을 돌파하면 도윤은 모든 통제를 벗어나 완전히 야수로 변할 것이다.도윤은 지금 지아를 또다시 놀라게 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자신의 야수적인 본성을 제대로 숨기고 있었다.“내가 못 하겠다고 하면? 이혼하더라도 너와 아이를 볼 권리가 있지 않나?”도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앞으로 지아를 볼 수 없다면 자신은 분
지아가 침묵하자 도윤은 계속 말했다.“내가 전에 너에게 상처 주는 짓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니까 네가 나와 헤어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네 전남편일 뿐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인데, 소송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양육권이나 만날 권리는 있지 않아? 말 한마디로 내 모든 권한을 빼앗는 게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해?”이 한마디에 지아의 표정이 급변했다.“나한테서 아이를 뺏어갈 생각이야?”정말 둘이 법정으로 간다면 조건상 도윤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지아의 담담한 얼굴이 그 자리에서 조금 무너져 내렸다.“지아야, 불안해하지 마. 비유를 든 거지 양육권을 뺏으려는 게 아니야.”도윤은 서둘러 지아를 진정시키려 했다.“나는 단지 네가 다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나도 너와 아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 거야. 넌 섬에서 마음 놓고 병 치료하고, 아이들도 자유롭게 클 수 있어. 다 안전할 거라고.”지아는 눈을 내리깔고 한참을 생각했다.“좋아, 그렇게 해.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말해.”“민아가 지금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어. 데리고 가서 쉬게 하고 싶어. 서로 돌봐줄 수도 있고.”“알았어, 내가 준비할게.”도윤은 지아의 바닥을 향한 시선에서 승리의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너무 익숙한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는지 지아는 처음부터 도윤의 의도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한 가지 더, 강욱 씨 만나고 싶어요.”도윤의 눈빛에서 불쾌함이 엿보였다.“지아야, 그날 밤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살려줬을 것 같아? 그런 사람을 만날 때 내 기분은 생각해 봤어?”“강욱 씨가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알았어, 내가 데려다줄게.”도윤이 계산을 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가로등 아래 흩날리는 눈은 유난히 낭만적으로 보였다.도윤이 지아를 병원에 내려주고 하빈은 복도를 지켰다.“아가씨 오셨어요.”지아가 날카롭게 물었다.“강욱 씨는 좀 어때요?”“어젯밤 투석을
눈이 점점 많이 내리자 도윤은 차의 속도를 적절히 줄였다.뒤로 다른 차들이 뒤따라오면서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이 만들어졌다.늦은 겨울밤, 설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작은 색색의 불빛들이 사방에 걸려 있는 세상은 조용하고 온화했다.차 안은 조용했고 도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반면에 지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곧 코너를 돌기 전 도윤은 미리 속도를 늦추었다.바로 그 순간, 다른 도로의 차 한 대가 도윤이의 차를 노리고 거칠게 달려들었다.갑작스러운 변화에 도윤은 급하게 핸들을 꺾어 차를 피하고자 도로 옆으로 핸들을 돌렸다.이미 반응 속도가 매우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차량은 도윤의 차량 운전석 가장자리를 스쳤다.중형 트럭이라 강한 힘으로 도윤의 차를 대각선으로 들이받았다.문이 닫힌 가게의 유리문이 앞으로 다가왔을 때 차는 통제 불능 상태였다.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지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도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지아야, 조심해.”지아의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이윽고 고막이 깨질 것 같은 큰 충돌음이 들렸다.지아는 눈을 질끈 감고 귓가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언제 다가왔는지 도윤이 단단한 몸으로 지아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앞유리는 물론 문에 달린 유리마저 사방으로 깨졌고, 지아의 손에 유리가 박혔다.많이 아팠다.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틈도 없이 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에어백이 터지면서 지아를 단단히 감쌌다.잠시 후 차가 움직임을 멈추자 지아는 따뜻한 액체가 볼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눈을 뜨자 코앞에 있는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도윤은 이마를 다쳐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지아의 뺨에 떨어졌다.피였다. 지아는 공포에 질려 눈을 번쩍 떴다.머릿속에 미연이 죽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올랐고 도윤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남자는 이마를 다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지아의 동공은 커졌고, 도윤은 얼굴 상처보다 등에 고슴도치처럼 많은 유리 파편이 박힌 게 더 심각했
곧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진봉은 비극적인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여 이렇게 외쳤다.“대표님!”도윤의 이마에는 고통으로 흘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입술은 하얗게 변했지만 도윤은 그럼에도 이렇게 말했다.“지아부터 구해.”조수석 문은 벽에 눌려서 열리지 않았고, 왼쪽에는 커다란 화물차 한 대가 있었다.진봉은 깨진 차 지붕의 유리창을 따라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대표님, 조금만 버티세요.”지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얼굴에는 눈물이 굵은 방울로 흘러내렸다.도윤은 지아를 향해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지아야, 네 말대로 됐어. 난 널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운명인가 봐.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죽으면 더 이상 너와 애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워. 미안해, 그동안 좋은 아빠, 남편이 되지 못해서 너와 아이들을 많이 힘들게 하고 다치게 했어... 콜록...”기침을 하자 입가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도윤의 머릿속에는 지아밖에 없었다.“울, 울지 마. 다신 널 해치지 않겠다고 했잖아.”하지만 손바닥에 묻은 피 때문에 닦아줄수록 지아의 얼굴은 점점 피로 번졌다.지아는 울먹이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오직 도윤이가 살길 바라는 생각뿐이었다.밖에서는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다행히 도윤은 누군가 지아를 암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정예 요원들을 많이 배치해 두었다.그리고 그들이 들이박은 가게가 엄폐물을 만들어 주었기에 진봉과 다른 사람들이 달려가 구출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총격전은 10분 동안 지속되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야 잦아들었다.조용하고 긴 거리에 경찰차 사이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도윤도 가까스로 구출되었지만 등에 유리가 가득 박혀 있었고 진봉은 차마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119를 불렀다.팔에 상처를 입은 진환은 다친 팔을 가리고 침착하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먼저 안전하게 모실게요, 이 사람들은 킬러가
지아가 도윤의 혈액형을 정확히 모르자 진봉은 이렇게 설명했다.“대표님은 희귀 혈액형인 P1이에요.”이 혈액형을 들은 지아는 눈앞이 시커멓게 변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지아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혈액형이 얼마나 희귀한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P 혈액형 체계는 ABO 혈액형 체계, RH 혈액형 체계와 구분되는 혈액형 체계로, P1, P2, P1k, P2k, p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가장 흔한 혈액형은 P1과 P2이고, 마지막 세 가지 혈액형은 더 희귀했다.하지만 단순히 P형 혈액만으로는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도윤은 부상으로 많은 양의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 정도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높았다.“어떻게 이럴 수가...”지아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진봉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다쳤을 텐데.’“사모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늘 건강하셨던 분이라 괜찮을 겁니다. 그 파편들이 전부 사모님께 날아갔어도 가벼운 정도로 얼굴을 다쳤을 테지만 이미 지병이 있으셨으니 대표님은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지아는 진봉의 소매를 붙잡고 손바닥에 식은땀을 흘렸다.“여분의 혈액이 있나요?”“분명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대표님 혈액형이 워낙 특별해서 진작 다 준비했을 겁니다. 정 안 되면 또...”그 말이 나오기 바쁘게 마스크를 쓴 의사가 안쪽에서 나왔고, 지아 역시 그의 눈빛에서 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지아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는 지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미셸은 아직 안 왔어?”“소령님은 작전 수행하러 가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려 드렸으니 곧 오실 겁니다...”쾅- 큰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비상구 문을 걷어찼다.지아는 군복을 입은 영국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비상구를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는지 여자는 옥상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늘 차분했던 얼굴이 지금은
진봉은 얼른 사람을 시켜 지아에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지아는 모든 생각이 도윤에게 집중되어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수술실 문이 열리고 미셸이 걸어 나왔다.들어갈 때만 해도 당당했던 미셸이 나올 때는 입술까지 하얗게 변해 부축을 받고 있었다.‘피를 많이 흘렸나 봐. 그래서 손과 발에 힘이 없는 거야.’미셸은 왔을 때는 너무 급한 나머지 지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발견하고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그건 지아도 마찬가지였다.미셸은 지아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다.도윤의 마음속에 항상 있던 사람.미셸도 방금 전의 수술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고 도윤의 능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엄폐물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다쳤다고 해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등 전체가 엉망이 되었다는 건 딱 하나, 다른 누군가를 막아주었다는 뜻이다.도윤이 온몸으로 보호하고 있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미셸은 지금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당당한 걸음걸이로 지아를 향해 걸어왔다.지아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미셸은 손을 들어 지아의 얼굴을 때렸다.진봉도 이렇게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미셸을 막으러 달려가면서 이렇게 말했다.“누나, 뭐 하는 짓이야?”미셸은 진봉을 무시하고 지아를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굶주린 늑대처럼 지아를 갈기갈기 찢어 배속으로 삼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당신이 대체 뭔데,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기는 해? 당신 같은 사람 만 명이 죽어도 저 안에 있는 사람 목숨값도 안 돼!”한창 도윤에 대한 걱정에 빠져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때리자 지아는 황당했다.여자의 입에서는 악랄하다고 할 수 있는 극도로 불쾌한 말까지 내뱉고 있었다.지아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누구든 당신이 알 것 없고, 저 사람이 무슨 선택을 하든 그것도 당신과 상관없죠.”도윤의 사랑이 용기를 가져다준다면 미셸은 이 점에서
오늘 밤 일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진환은 그 여파로 정신없이 바빴다.지아 옆에는 진봉만 홀로 남았다.지아는 차 안에서 두꺼운 패딩을 벗었던 터라 얇은 니트만 입고 있었다.복도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찬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지아는 이렇게 추위에 서서 도윤을 기다리던 몇 년 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진봉은 그다지 세심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지아의 뒷모습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특히 지나가던 구급대원들이 모두 일부러 지아에게 못되게 굴었다.“비켜요, 길 막지 말고.”더 이상 바쁘지도 않았지만 그저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지아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도윤이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테니까.그들의 눈에 지아는 도윤에게 그저 짐일 뿐이었다.털털한 진봉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군 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대부분 계급장을 달고 최전방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뼛속까지 오만해서 지아의 신분이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지아도 마음속 깊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상처받지 않았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언젠가 지아 자신도 남들이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라 다짐했다.지아는 이 순간, 애초에 한 남자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다.만약 자신이 공부를 제대로 마치고 뛰어난 의사가 되었다면, 꽃병 취급이나 받으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렸을까?지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언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영광을 되찾겠다고 남몰래 다짐했다!지아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허리를 곧게 펴고 서서 결과를 기다렸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 줄 알았던 미셸이 다시 돌아왔다.옷을 갈아입으러 돌아간 미셸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도 여전히 용감해 보였고, 군인은 태생부터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자리에 서 있는 지아는 나약한 버드나무처럼 동정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지만 미셸은 버드나무를 거꾸로 세운 여자 영웅 같은 인상을 주었다.옅은 화장을
몇 시간의 수술 끝에 도윤의 몸속에 있던 유리 파편은 모두 제거되었고 당분간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부상을 당하면 마취를 할 텐데, 도윤은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그 몇 시간은 지옥 같았다.도윤은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지아를 만나기만 기다렸다.미셸이 가장 먼저 도윤에게 달려갔다.“오빠, 괜찮아?”도윤은 손등에 턱을 괴고 모든 힘을 소진한 채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이미 기운이 빠지기 직전이었지만, 도윤은 문이 열린 후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도윤이 처음 본 사람은 미셸이 아니라 지아였다.미셸의 인사를 무시한 채 도윤은 미약한 목소리로 불렀다.“지아야.”지아가 그제야 도윤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도윤이 손을 내밀었고 지아가 맞잡았다.도윤의 손바닥은 더 이상 마르지 않았고 땀이 배어 있었다.“살아서 수술실에서 나가겠다고 약속했잖아.”이 말을 한 후에야 도윤은 기절했지만 지아를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그 행동에 미셸은 따귀를 맞은 것 같이 얼굴이 화끈거렸다.도윤의 사랑은 지아의 최대 무기였다.진봉이 급히 물었다.“선생님, 우리 보스는 괜찮나요?”우 박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운이 좋았어. 유리 조각이 심장에 박힐 뻔했는데 다행히 몇 센티미터 정도 간격이 있었어. 여름이었으면 바로 죽었을 텐데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서 다행이지.”“그럼 보스는 이제 괜찮다는 거죠?”“왜 힘든 걸 자초하는지 몰라. 마취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버텼어. 요즘엔 약도 잘 갈아주어야 해. 감염되면 큰일 나니까.”“감사합니다 선생님.”우 박사는 손을 흔들었다.“일단 이틀 동안 병동에서 관찰해 보죠.”도윤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우 박사도 조금은 안도한 듯 표정이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도윤은 고집스레 지아를 놓지 않았고, 지아는 침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병동까지 도윤을 밀고 가야 했다.우 박사는 미셸을 흘끗 쳐다보았다.“너도 참, 왜 남의 부부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야? 저놈 성격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