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한대경이 A 국 주변에 군사 기지를 세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니, 그가 가진 속셈이 이미 뻔히 드러난 상황이었다.예전의 도윤은 이런 기밀 사항들을 지아와 논의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지아를 자신과 같은 위치에 놓고 함께 논의해 주는 것 같았다.“지금 세계는 다섯 개의 강대국이 주도하고 있어. A 국뿐만 아니라 C 국의 한대경, 그리고 네가 구해준 V 국의 왕비도 포함되지. 나머지 두 나라는 겉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계속해서 뭔가를 꾸미고 있어. 사람이 모이면 다툼이 일어나는 법인데, 하물며 나라라면 말할 것도 없지.”“군사력 순위로 본다면, 가장 강한 건 Z 국과 H 국인데, 설마 이 두 나라인가?”“맞아. Z 국에는 너도 아는 사람이 있잖아. 기억나? 소시후. Z 국에서 소씨 가문은 최고의 가문이야. 재력과 권력이 모두 대단하지.”소시후의 이름이 나오자, 지아에게는 마치 아주 먼 과거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소시후의 신장병은 이제 괜찮을까?”“3년 전에 신장 이식을 받았다고 들었어. 그 후로는 소식이 거의 없지만, 아마 살아 있을 거야.”“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러면 할아버지를 암살하려 한 게 Z 국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는 거야?”“아니,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H 국과 관련이 있는 듯해. 다만 아직 실질적인 증거는 없어.”“H 국과 하씨 가문 사이에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에는 둘뿐이라 그는 걱정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너도 알다시피, 네 할아버지가 하용과 부씨 가문이 가까워지는 걸 막고 있는 이유가 있어. 하용은 부씨 가문의 한낱 말에 불과해. 하씨 가문이 뒤에서 벌이는 일은 단순히 밀수로 끝나지 않아. 물론 모든 가문이 완전히 깨끗하진 않지만, 하씨 가문을 자세히 파헤치면 그 안에 너무나도 많은 어두운 비밀들이 나올 거야. 부씨 가문이 하씨 가문과 연을 맺으면, 그 불길이 부씨 가문까지 번질 수 있어.”“그러면 왜 하씨 가문을 없애지 않는 거야?”“
지아의 눈빛에는 걱정이 엷게 서려 있었다.“모레는 괜찮지만... 당신이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해.”“왜?”도윤이 조용히 물었다.지아는 망설이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그날 다루기 어려운 환자 예약이 있어서.”도윤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봤다.“남자 환자야?”지아는 잠시 시선을 피하며 당황한 듯 미소 지었다.“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수술을 했는지 알잖아. 남자 환자도 있고 여자 환자도 있어.”도윤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낮게 속삭였다.“하지만 그 남자는 다른 환자들과는 다르지, 그렇지?”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응, 좀 더 골치 아픈 환자라 기억에 남는 거야.”“자기야,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홀렸던 거야?”도윤은 그 남자가 평범한 환자가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아가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걸 보면 말이다.지아는 도윤의 품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다른 남자는 없어, 오직 당신뿐이야.”그날 밤, 지아는 부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윤과 함께 남았다. 그들은 신혼 시절을 회상하며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예전의 도윤은 지아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너무나 순수해서, 마치 얇은 종이처럼 연약하고 쉽게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폭풍 같은 시련을 함께 견디며 더욱 깊고 성숙한 관계로 성장했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도 그들의 호흡은 더 잘 맞아 떨어졌다.예전의 지아는 순종적이고 의존적이었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생기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그녀는 도윤에게 더 많은 감정적 가치와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가 도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지아는 알지 못했지만, 도윤은 그 점에서 그녀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아침이 밝았지만, 지아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도윤은 지아의 피곤한 얼굴을 바라보며 깨우지 않고, 그녀의 뺨에 살짝 입맞춤했다.그는 조용히 일어나
소지아가 위암 양성 판정을 받았던 날, 이도윤은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깨에 멘 숄더백 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선배, 수술 안 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바로 입원 수속 밟자.”“됐어요,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디기 힘들 거예요.”임건우는 몇 마디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소씨 가문 파산 이후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차마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건우는 소지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배,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임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지아가 대학을 휴학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계의 천재로 불리던 소지아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 소계훈이 치료를 받는 최근 2년 동안, 오직 소지아만이 바쁜 일정을 쪼개 그를 돌보았다. 정작 소지아 자신은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지나가던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밤, 소지아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자 소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추위가 씻겨나갔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 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방의 조명은 무척 따뜻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소지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이게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봐.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 신이 이제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건가...’소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누워 몸을 웅크렸다.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아래에 깔린 담요까지 촉촉하게 적셨다.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지켜내지 못 했어. 근데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세상을 떠난, 소지아의 정신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어둠에 잠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보호자님,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서 이미 수술실로 옮겼습니다.”“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하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산 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목에 두른 숄만 해도 수백만 원을 호가했고, 점원은 백채원을 알아보고 얼른 맞이했다.“사모님, 오늘은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으셨네요?”“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착용해 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승리에 도취되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백채원을 무척 아낀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공식적인 법적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소지아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왜 하필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백채원이 부드럽게 물었다.“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손해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소지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뻗어 반지를 도로 빼앗아왔다.“안 팔래요.”“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이 반지 정말 맘에 드는데, 그래도 아는 사이니까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간절하게.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옆에 있던 점원이 나서서 얼른 충고했다.“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아가씨 반지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저희 쪽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사모님이란 호칭은 소지아의 귀에 무척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이도윤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백채원이 감히 이도윤의 아내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하게 했었는데.겨우 1년만에, 사람들은 모두 백
변진희는 소지아가 8살 때 떠났다. 그날은 소계훈의 생일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할 생각으로 신나게 들어왔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합의서였다.소지아는 엄마를 쫓아가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신발이 벗겨져도 모른 채 달렸다. 마침내 붙잡은 변진희의 다리를 안고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엄마, 가지 마요!”고귀한 여자는 그녀의 앳된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엄마, 나 이번에 전교 일등 했는데, 아직 내 시험지 못 봤잖아요. 엄마 사인받아야 한단 말이에요.”“엄마, 가지 마요, 나 말 잘 들을게요, 앞으로 놀이동산에도 안 가고 더 이상 엄마 화나게 하지 않을게요, 말 잘 들을 테니까 제발...”소지아는 당황하여 엄마를 붙잡기 위해 애걸복걸했다. 변진희는 단지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말했다.소지아는 낯선 아저씨가 그녀를 대신해서 트렁크를 차에 실은 뒤 손을 잡고 떠난 것을 보았다.그리고 맨발로 땅에 넘어질 때까지 수백 미터를 쫓아갔고, 무릎과 발바닥은 모두 상처투성이였으며,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차가 떠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때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커서야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는 것을 알고 아예 이혼을 제기하고 홀몸으로 나가 딸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았다.십여 년 동안 소지아는 변진희와 연락한 적이 없었고, 평생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그러나 운명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결국 엄마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목이 메여오자 소지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변진희도 딸의 마음을 알고 일어나서 소지아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와 앉혔다.“네가 나 미워하는 거 알아. 그때 너는 너무 어렸고, 많은 일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어. 엄마는 다 설명할 수 없었어.”변진희는 손을 뻗어 소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 딸 많이 컸네, 엄마가 이번에는 귀국해서 오래 있을
변진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도윤을 바라보았다. 이도윤이 결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 대표, 우리는 외국에서 생활한 지 오래돼서, 국내 뉴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우리 딸이 자네와 무슨 관계지?”이도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 이혼 수속 밟고 있어요.”소지아는 자신의 진심이 결국 그가 과거일 뿐이란 말로 얼버무릴 줄은 몰랐다.‘화를 내야 할까?’당연히 화가 났다.더 큰 감정은 한심하다는 느낌이었다. 정말 눈이 멀어 이런 짐승 같은 인간을 남편으로 삼았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소지아는 다이아몬드 반지 상자를 꺼내 이도윤의 이마에 세게 던졌다.“너 같은 쓰레기는 이제 꺼져. 내가 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당신과 결혼한 일이야. 내일 9시에 우리 이혼해. 가정법원에 나타나지 않으면 겁쟁이야!”상자가 그의 이마에 부딪혀 빨갛게 멍이 들었다. 땅에 떨어졌고 반지는 발밑으로 떨어졌다. 이번에 소지아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반지를 밟고 문을 내팽개치고 떠났다.최근 2년 동안 소지아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이 일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녀는 멀리까지 뛰지 못하고 길가에서 기절했다.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빗방울은 마치 이 세상이 그녀에 대해 드러내는 적의와 같았다.그냥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음모가 가득한 세상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다시 깨어났을 때,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따뜻한 불빛은 어둠을 몰아냈고, 방 안의 보일러는 봄처럼 따뜻했다.“깼어?”소지아는 눈을 뜨자마자 임건우의 부드러운 눈을 보았다.“선배, 날 구한 거예요?”“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네가 길가에 쓰러져 있길래 데려왔어. 그리고 몸이 흠뻑 젖은 것을 보고 하인에게 옷 갈아 입히라고 했고.”남자의 눈빛은 맑고 깨끗하며 조금의 음흉함도 없었다.“고마워요, 선배.”“죽을 끓이고 있으니 물 먼저 마셔.”소지아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아니
차가운 강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와 칼처럼 추위는 뼛속 깊이 스며들었고 소지아는 일어나 계속 쫓아갔다.그러나 형편없이 망가진 소지아의 몸은 얼마 뛰지 못하고 심하게 넘어졌다. 차 문이 다시 열리자, 반질반질한 구두 한 켤레가 나타났다.소지아는 남자의 빳빳한 바짓가랑이를 따라 천천히 위로 바라보며 이도윤의 차가운 두 눈을 마주했다.“이...”소지아는 허약하게 입을 열었다.뼈마디가 분명한 두 손이 그녀 위에 떨어졌고, 순간 소지아는 그녀를 반하게 했던 하얀 셔츠의 소년을 본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두 손을 맞잡은 순간, 이도윤은 차갑게 손을 빼서 소지아에게 희망을 주었다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며 소지아의 몸이 재차 바닥으로 떨어졌다.소지아가 넘어지는 순간 마침 바닥의 깨진 유리 파편에 눌려 눈부신 피가 손바닥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잠시 놀랐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소지아는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전에는 소지아의 손가락에 작은 상처만 나도 한밤중에 병원으로 데려간 이도윤이었다.의사는 또 웃으며 말했다.“일찍 오셨으니 다행이지 좀만 더 늦었으면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남을 뻔했네요.”기억 속의 사람은 앞에 있는 남자와 겹쳐졌고, 눈매는 여전히 과거와 같지만 달라진 것은 애정 어린 관심이 싸늘함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이도윤은 차갑고 매정하게 말했다.“소지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널 잘 알지. 마라톤 달리면서 공중제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걸음 달렸다고 넘어져?”소지아를 바라보는 이도윤의 눈빛은 마치 차가운 비수를 그녀의 몸에 꽂은 것처럼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소지아는 다소 창백한 입술을 깨물며 해석했다.“아니야, 널 속인 것 없어. 요새 좀 아파서 몸이 좀 약해진 거지...”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키 큰 남자가 허리를 굽히고 몸을 숙여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거친 손가락은 소지아의 바싹 마른 입술을 어루만졌다.“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군. 넌 너의 그 위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