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란은 민연주가 소파에 앉자마자 무릎을 꿇고 바로 민연주 앞에 납작 엎드렸다. “사모님, 이번 일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아가씨가 저에게 하용이 자신에게 얼마나 냉담하게 대하는지 이야기했어요.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아가씨는 제가 어릴 때부터 키워온 아이라 순간적으로 사모님께 상의하지 않고 일을 처리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상대쪽 사람들과의 충돌이 있었고, 그때부터 사모님 앞에 다시 얼굴을 들고 나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 따른 결과는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명란은 매우 영리했다. 이 말 한마디에도 미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며, 누구라도 그녀를 충실하고 헌신적인 고용인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와 동시에 민연주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민연주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민연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렇다면 좋겠지. 그랬다면 걱정할 일도 없었을 거야. 오늘은 내가 화연이 그 아이에게 맑은 북엇국을 보내주고, 하용을 설득했지만, 하용도 이번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어. 끝까지 우리 집안과 싸워서 정의를 찾겠다고 말하더군.” 이명란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우리 아가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쉽지 않을 거야. 하용은 사람도, 증거도 모두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미셸의 과거까지도 쥐고 있어. 우리 쪽에서 계속 하용을 자극하면 예전 일까지 다 드러날 테니, 이번에는 단순히 몇 년 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명란은 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에 있던 일들은 제가 모두 깔끔하게 처리해 두었으니 약점이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설령 미셸이 무사히 넘어간다 해도, 너는 보호받지 못할 거야. 네가 내 곁을 지킨 세월이 적지 않으니, 네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말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줄게.” 이명란은 잠시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사모님, 그동안 사모님께서 저를 이미
그날 밤, 도윤의 품에서 평온한 잠을 자던 지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명란은 화연을 만난 후부터 화연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특히 민연주가 다녀간 후, 이명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심이 떠올랐다. ‘설마 그 아이일까?’ 그러나 이명란도 곧 자신이 그 생각을 부정했다. ‘그때 그 병약한 아이에게 7년 동안 약을 먹였으니, 홍수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고.’ ‘게다가 그해 홍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시체조차 건지지 못한 사람도 많았으니,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병약한 아이가 살아남을 리 없었을 거야.’ 그런데도 이명란의 마음은 이유 없이 불안했다. 갑자기 하늘을 가르는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이명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 시간, 민연주는 깊은 잠에서 갑자기 깨어났다. 방금 꾼 꿈에서 그녀는 출산하던 날로 되돌아갔다. 그때, 민연주는 하루 종일 진통을 겪다가 난산 끝에 아이를 낳았지만, 겨우 아이를 한 번 보고는 지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당시 부남진은 출장 중이었고, 민연주의 곁에는 민씨 집안 사람들만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런데 누군가 아이의 팔목에 달린 이름표를 바꾸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막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겼고, 주름진 피부에 황달까지 있어서 서로 바꿔치기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내 딸...” 민연주는 텅 빈 방을 둘러보았다. 민연주와 부남진은 오래전부터 각방을 써왔고, 방 안은 따뜻했지만 그녀는 어딘가 차갑고 공허한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당시 출산하던 장면만 반복해서 떠올랐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특히 민연주가 아이를 낳던 시간에는 갑작스럽게 눈보라가 몰아쳤고, 그래서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설아'라고 지었다. 잠을 이룰 수 없던 민연주의 머릿속에는 화연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민연주는 급히 병원에 도착했다. 시계는 새벽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용은 민연주의 등장에 약간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모님이 미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네.’ “사모님, 몇 번을 말했잖아요. 헛수고하지 마세요. 미셸을 기소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용아, 나도 여러 번 말했지만, 내가 이 모든 일을 하는 건 미셸 때문이 아니야. 오늘 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잠도 안 오고, 그냥 화연이를 보러 왔을 뿐이야. 그리고 너보다는 내가 화연이를 돌보는 게 더 편할 테니.” 민연주는 하용을 억지로 옆으로 밀어내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화연을 본 순간 민연주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었고, 화연의 옆에 앉아 이불을 정돈해 주었다. 화연의 얼굴에 있던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이마를 찌푸리며 꿈속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살려, 살려줘...” 화연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작은 얼굴에 공포를 가득 담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악몽을 꿨니?” “사모님, 사모님은... 왜 여기에...” 화연은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보며 물었는데, 자신은 분명 민연주가 이미 떠났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용은 물 한 잔을 가져와 화연의 입에 가져다주며 말했다. “물 좀 마셔. 무슨 꿈을 꿨니?” 화연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제 미셸에게 심하게 부딪힌 이후로 화연의 머리가 계속 어지러웠고, 잠들자 길고 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한 어린 소녀가 매일 학대당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으며, 따뜻한 옷도 입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어린 소녀는 자신의 ‘외할머니’에게서도 학대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어린 소녀는 매일 상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외할머니’는 매일 어린 소녀에게 우유 한 병을 주었다. 소녀가 7살이 되던 해, 큰 홍수가 났고, 외할머니는 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가면서 어린 소녀에게 집에 있는 중요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결국 어린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푹 쉬는 거야. 네 신원에 관한 건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 “머리가 너무 아파요.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 두려워요. 오빠, 제발 부탁이에요.” 하용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져오게 했다. 화연이 가장 잘하는 것은 수채화와 유화였고, 하용이 곁에 없을 때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그림이었다.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그림에 몰두하면서 손끝에서 수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화연의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의 그림은 거칠고 강렬한 느낌을 풍겼다. 민연주가 그 독특한 화풍을 보자, 깜짝 놀라며 말했다. “혹시 네가 그 ‘Lee’라는 화가니?” Lee는 국제적으로 매우 유명한 화가였다. 8년 전, Lee의 작품 ‘역풍’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고, ‘금화상’을 거머쥐었다. 그때부터 Lee의 모든 출품작은 엄청난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다. 특히 ‘역풍’은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수집품으로 꼽혔고, 민연주는 이 그림을 60억에 구매했다. ‘60억’은 갓 데뷔한 신인 화가에게는 매우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민연주는 명문가 출신이며, 외가도 학문과 예술을 중시하는 집안이었다. 어머니도 근현대 유명 화가였기 때문에, 민연주는 어릴 때부터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고, 여가 시간에는 미술 전시회를 다니며 취미 생활을 즐겼다. 당시 민연주는 ‘금화상’ 시상식에 초대받아 시상자로 나섰고, Lee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녀는 Lee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시상식 당일 화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한 비서가 대신 시상식에 참석하여 상을 받았다. 그 후로 Lee는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듯이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민연주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즉, 그렇게 잠재력이 있는 화가가 사라진 것이 말이다. 지금도 그 그림은 민연주의 침실에 걸려 있어 매일 그녀에게 ‘인생’이란 역풍을 헤쳐 나가는 것과 같다는 걸 상기시켰다. 화연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지아는 미셸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잠에서 깨서 투덜거리며 말했다. “정말 시끄럽네.” 옆에서 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자의 혀를 잘라버릴까?” 지아는 잠이 확 달아나서 눈을 떴다. “점점 더 폭력적이네.” 도윤은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자기야, 나에게는 네 행복이 가장 중요해. 미셸이든 다른 사람이든, 네 행복만큼 중요한 건 없어.” 미셸의 소란 덕분에 지아는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지아도 미셸이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지 궁금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가 보니, 미셸의 방 앞은 이미 엉망이었다. 미셸의 욕설이 계속해서 귀에 들려왔다. “너희들 같은 쓸모없는 것들, 아침밥 하나 제대로 못 만들다니. 이렇게 주인을 우롱해도 되는 거야?” 지아는 바닥에 널브러진 음식 재료들을 한 번 훑어보고, 미셸이 뜨거운 국을 끼얹은 듯한 젊은 가정부의 상태를 보았다. “무슨 일이야?” 이 가정부는 새로 온 사람이라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부씨 가문의 아가씨가 까다롭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일을 떠넘기다 결국 자신에게까지 일이 떠밀려온 것이었다. “아가씨께서 아침 식사를 달라고 하셔서 여러 종류를 준비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으신다며 화를 내셨어요.” “왜 남에게 말하니? 내가 부씨 가문의 진짜 아가씨야! 이 배신자들!” 지아는 어린 가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가서 화상 연고 발라.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 “하지만...” “괜찮아. 가도 돼.” 어린 가정부는 지아에게 감사하는 눈빛을 보내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미셸은 이를 보고 크게 화를 냈다. “소지아, 너 잘난 척 그만해. 아빠가 너를 인정했다고 해서 내 앞에서 잘난 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부씨 가문의 진짜 아가씨는 나야!” ‘진짜 아가씨’라는 말이 미셸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더욱더
부장경은 화가 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이제는 내 앞에서 연기할 생각도 없는 거냐?” 도윤은 차 문을 열고, 마치 자신이 지아의 남편인 양 지아를 눈 속에서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이미 다 들켰는데 제가 뭘 더 아닌 척하겠어?” 만약 도윤이 부씨 가문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이씨 가문이 주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때가 오기 전, 그는 부남진에게 한 방에 당할 게 뻔했다. 부남진이 일부러 눈감아 주는 한, 도윤도 그저 부남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이유는 없었다. “지아가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부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도 상관없어.” 도윤을 바라보는 장경은 도윤의 모습이 마치 꼬리를 흔들며 친근함을 표시하는 커다란 강아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부씨 가문은 도윤을 사위로 삼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는데, 이젠 도윤이 스스로 부씨 가문으로 들어오겠다고 자청하다니. “세상 참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쥐가 고양이 결혼식의 들러리를 서는 꼴이라니.” 부장경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꿈 깨라. 우리 집안은 네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도윤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허락하든 안 하든 나는 여기 있을 거야.”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느낀 지아가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아까 파도리에 간다고 했잖아. 거기에는 왜 가는 거야?” “미셸의 할머니는 A 시 외곽에서 살고, 외할머니는 외진 어촌에서 살았어. 만약 누군가 아이를 숨기려 한다면, 어디에 두겠어?” “거기가 파도리?” “그래. 그리고 내 사람들이 미셸의 할머니도 한때 한 어린 소녀를 데리고 있었던 걸 알아냈어.” 지아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도윤은 이미 지아를 돕기 위해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일로 지아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부장경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히 사람들 눈길 끌려고 생색
운전기사는 뒷유리에 생긴 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스, 차가...” “상관없어. 물은 튀었나?” “네, 튀었습니다.” “그럼 됐어.” 운전기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보스도 오랜 세월 참고 살더니, 앞으로 그 화가 폭발하든지 아니면 정말 기이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 같은데.’ 하용이 본래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행동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방식은 점점 예측 불가능해졌다. 한편, 지아는 마을의 건물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전에 자연재해로 많이 파괴된 적이 있지 않았어?” “맞아. 아가씨, 우리 마을은 20여 년 전에 큰 홍수가 났어. 그때 물이 정말 무서웠지. 우리 마을이 워낙 가난해서 복구도 제대로 못 하고, 지금도 2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한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혹시 이 마을에 투자하러 오신 건가요?” 두 사람의 옷차림은 마을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눈에 봐도 부자인 게 분명했다. 요즘 많은 마을이 어려웠던 삶을 벗어나 잘살게 되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누구든 큰 사업가가 와서 이곳에도 투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지아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며 물었다. “어르신, 혹시 예전에 그 큰 홍수 때, 한 어린 소녀가 휩쓸려 간 적이 있나요?” “어린 소녀? 그건 뭐라 말하기 어렵구먼. 그때는 사람도 집도 많이 떠내려갔으니까.” 도윤은 지아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슨 생각이 난 거야?” “아직 확신할 수 없어. 혹시 현금 있어?” 도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수표는 안 될까?” 지아는 그의 주머니에서 개봉하지 않은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도윤은 조금 당황한 듯 귀 끝이 붉어지며 말했다. “자기야, 나... 그냥... 심심할 때 한 대 피우는 거야. 요즘 담배 거의 안 피워.” 지아는 담배를 노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르신, 부탁 좀 드릴게요. 제가 찾는 그 소녀는 그때 큰 홍수 당시 7살이었을
지아 역시 과거에 비슷한 고통을 겪었던 경험이 있기에, 지아는 화연을 도와주고 싶었다. “우리 지아, 참 바보같긴. 이 세상에 네가 겪은 고통만큼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 도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아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렸다. 부장경과 하용은 이미 맞닥뜨려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서로 마주친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하용은 차갑게 부장경을 쳐다보며 물었다. “미셸 때문에 여기에 온 거예요?” 하용은 부씨 가문의 저택에서 명확히 서로의 관계를 끊은 이후로 부장경에게 더 이상 공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부장경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용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과 함께 인내심이 바닥난 모습이 역력했다. 이렇게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하용의 태도를 본 부장경은 어느 정도 하용의 입장을 이해했다.“오해하지 마라. 미셸 때문에 온 건 맞지만, 미셸을 도와주려고 온 건 아니야.” 하용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부씨 가문은 필사적으로 가족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누가 쉽게 가족이 위기에 처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 “그렇다면 여기 온 이유가 뭡니까?” “그건 말할 수 없어.” 두 사람은 동시에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누구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으니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때 뒤에서 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하용 씨, 두 분의 목적이 같으니 인제 그만 다투세요.”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동시에 지아의 말을 곱씹었다. ‘목적이 같다고?’ ‘우리의 목적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지아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말했다. “하용 씨, 제 추측이 ㅇ, 오늘 오신 이유는 여동생의 가족을 찾기 위해서죠?” 하용은 지아의 말에 잠시 멈칫하며 도윤을 쳐다봤다. ‘이 녀석이 또 무슨 수법을 써서 내 비밀을 알아냈나?’ 도윤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 “날 쳐다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