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의 다리는 마네킹처럼 비현실적으로 곧게 뻗은 데다 약탕에 자주 몸을 담그는 습관까지 더해져 발바닥마저 백옥처럼 하얗고 투명한 핑크빛이 감돌았다.지금 이 자세는 그녀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내 치명적으로 섹시했다.도윤은 어젯밤 옥수수밭에서 둘이 했던 일을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흥분되는 것이었다.“지아야...”도윤의 입이 말랐고 지아는 고개를 돌려 먹잇감을 바라보는 늑대 같은 그의 눈빛을 보았다.아이를 넷이나 가진 부모였지만 몇 년 동안 만나고 헤어진 탓에 지아는 여전히 소녀처럼 부끄러워했다.심지어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피했다가 너무 내숭 떠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하지만 많은 것들이 지아의 몸속에는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새겨져 있었다.마치 지금처럼 지아는 물도 챙기지 않고 서둘러 침낭으로 들어갔다.지아가 놀란 것을 본 도윤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물을 꺼내 건네주었다.무심코 도윤의 손에 닿자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뜨거운 체온을 타고 느껴지며 자신의 손가락까지 젖는 것 같았다.흠칫한 지아는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했다.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부부도, 친구도, 낯선 사람도 아닌 묘한 관계였다.한 사람은 또 잘못해서 역겹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웠고, 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운 상태였다.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하다가 지우개가 어쩌다 넘어갔고, 지우개를 건네주다가 서로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설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도윤은 갈아입을 바지를 찾지 못하고 목욕 타월을 꺼내 둘렀다.밖에서는 빗소리를 제외하고는 가끔 장작이 타는 소리만 들렸다.젖은 옷은 불에 마르면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지아는 건빵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침낭 속에서 잠이 들었다.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공기를 가득 채우는 향기에 지아는 군침이 들었고 제대로 눈을 뜨기도 전에 귓가에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일어났어?”지아는 정신이
도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자른 대나무를 조립하기 시작했다.고기를 굽는 동안 나무껍질과 덩굴을 모아 약간의 가공을 거쳐 밧줄로 만들었다.그는 여전히 상의를 입지 않았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자 등 전체에 상처가 드러내며 매우 남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설명하며 작업을 했다.“땅이 벌레 때문에 더러울까 봐 대나무를 잘라서 간이침대를 만들어 밤에도 편안하게 잘 수 있게 하려고.”도윤은 이 작업에 익숙해서 최대 30분 만에 침대를 만들 수 있었다.옆에는 그가 가져온 나뭇잎과 마른풀이 있었는데, 모두 습기가 조금도 없이 말리려고 미리 불 옆에 놓아두었다. 이런 폭우 속에서 어디서 찾았는지 모를 정도였다.아무 느낌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하룻밤만 자면 되는 건데 왜 귀찮게 그래?”“널 위해선 귀찮은 거 없어.”도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업에 고개를 파묻은 채 말했다.지아가 침대 너비를 훑어보니 도윤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동굴에 불이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 자고 나면 습기가 있을 테고, 몸속의 독이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지아가 말을 꺼냈다.“저기...”도윤은 지아를 돌아보았다.“왜 그래. 어디가 불편해? 또 손이 아파?”“아니.”지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의 시선이 조금 당황스러웠다.“내 말은 어차피 만들 거면 도윤 씨 것도 하나 만들어. 이 시기엔 원래 비가 많고 내일 또 큰 비가 올지 모르는데 폭우 속에서 간다는 건 말도 안 돼.”“난 필요 없어, 귀찮아. 남자는 바닥에 드러누우면 그만이야. 밖에서 그렇게 많은걸 따질 필요가 없지.”고개를 푹 파묻고 일에 몰두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오만한 대표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도윤이 다시 한번 대나무 장대를 잡으려는 순간 작은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 앞에 맨발로 서 있는 지아의 등 뒤로 불빛이 펄떡이며 뛰어올랐다.“내 말대로 해.”“알았어.”도윤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힐끗 보았다.“근데 침낭이 하나밖에 없어서 싱
이 남자가...전에는 무모하고 위압적인 태도로 원하는 건 뭐든 요구하는 데 익숙했는데, 갑자기 예의를 갖추자 지아는 다소 어색했다.“나 배고파.”지아가 거절하자 도윤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지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많이 먹어.”그렇게 말하며 도윤은 조용히 다시 침대를 만들러 갔다.지아는 멧돼지 고기를 한입 베어 물며 얼굴을 만져보니 동굴의 온도 때문인지 뜨겁고 빨갛게 달아올랐다.도윤의 든든한 뒷모습을 보면 그런 남자를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어젯밤의 자극적인 정사는 지아에게도 남달랐다.미움은 제쳐두고, 그런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었다.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감정이다. 일련의 일들을 생각만 해도 지아는 가슴을 막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도윤과의 친밀한 행위는 과거 자신에 대한 배신과도 같았다.도윤은 다 잊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의 지아는 검은 수렁 속에 갇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지아는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진정으로 앞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이 모든 일들이 겪고 난 후 지아는 자신이 여전히 도윤을 사랑한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이 마음을 어떡해야 할까.분명 지금은 도윤도 많이 변해서 조심스러워졌지만 지아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다.그녀가 보고 싶었던 건 자신감 넘치고 강인한 도윤의 모습이었다.숲에서 멧돼지를 망설임 없이 깔끔하고 단호한 손놀림으로 죽인 것처럼.지아는 도윤이 우유부단해져서 자신 때문에 또다시 함정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지아야, 다 끝났어, 내가 해볼게.”도윤은 침대에 누워 두 번 구르며 지탱력을 테스트하고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나뭇잎과 건초를 더 깔며 입으로 중얼거렸다.“호랑이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쉽네. 호랑이 가죽을 벗겨 이불을 만들 수 있는데...”도윤은 지아와 함께 있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돌보았고 이건 남편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예전에는
지아는 씻고 나니 온몸이 편안해졌고, 마음도 서서히 맑아져 이미 결심한 뒤였다.뒤돌아보니 도윤이 작은 노인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는 물고기 덫을 짜느라 바빴다. 떠나기 전에 건빵과 물 두 병, 과일 몇 개를 가져왔는데 원래 의도는 샘물 좀 마시고 야생 과일을 따서 먹으며 가능한 한 빨리 여길 떠나는 것이었다.하지만 폭우와 갑작스러운 지아의 등장으로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내일도 비가 올 것 같자 도윤은 서둘러 물고기 덫을 뜨고 낚시 준비를 했다.지아는 어느새 도윤이 만든 대나무 침대에 앉아 새하얀 두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피곤하지 않아?”지아가 물었다.어떻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는 밤새 잠도 못 자고 오늘도 하루 종일 바빴으며, 불 옆이 엄청나게 더워서 이마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곧 끝나. 저기 강에 사는 물고기들은 살이 통통해. 비가 멈춘 뒤 물가에 내려가면 내일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거야.”말하며 도윤은 지아의 다리에서 시선을 떼고 물고기 바구니를 챙겨 어둑어둑한 밤 속으로 들어갔다.돌아왔을 때 그의 머리와 몸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는데, 찬물로 샤워를 한 게 분명했다.지아가 돌아보자 남자의 모습은 갓 목욕을 마친 인어처럼 보였고, 잘 다듬어진 복근을 따라 물방울이 신비로운 곳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늘어져 있었는데 전에 있던 매서움은 사라지고 부드러움이 보였다.남자 아이돌 리더처럼 허리 몇 번 흔들면 여자들이 미칠 것 같았다.지아는 문득 얼마 전 봤던 영상 속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몸을 흔들자 그 밑에 여자들이 수만 개의 댓글을 달며 난리를 부리던 게 떠올랐다.도윤의 몸은 일부러 헬스클럽에서 단련한 근육과는 달리 온몸에 난 상처가 야성미를 더했다.어느새 도윤은 지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양옆에 손을 지탱했다.앉아 있는 지아 위로 도윤이 살짝 몸을 숙이자 그의 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녀를 감쌌다.“뭘 보고 있는 거야?”지아는 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아는 대나무 침대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속검은 도윤이 일부러 침대를 1.2미터 정도로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어디로 도망가겠나.곧 지아의 손바닥이 대나무 침대 가장자리에 닿았다.어젯밤엔 욱하는 마음에 한 말이었다. 강욱의 신분으로 자신을 만졌을 때도 지아는 역겨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인간은 화가 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입히는 경향이 있었고 지아는 다시 그 말을 할 리가 없었다.“홧김에 한 말이야.”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된 지아는 어제와 같은 담대함이 없었다.도윤은 야생 표범처럼 침대에 무릎을 꿇고 조금씩 앞으로 기어갔다.곧 지아는 그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완전히 둘러싸였고 두 손으로 겨우 온몸을 지탱하고 있었다.도윤의 입술이 지아의 가늘고 하얀 목에 닿자 지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며 불리한 상황에 부닥쳤다.얇은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지아는 부드러운 도윤의 말을 들었다.“이러면 어때, 역겨워? 역겹다면 그만할게.”남자는 그녀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사람의 마음과 본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 도윤은 확실히 달인이었다.지아는 섬세하게 피어난 꽃처럼 폭우 속에서 가볍게 흔들리며 몸을 떨었다.도윤의 입술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진득한 느낌에 지아의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가슴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얇은 입술이 지아의 머리카락에 닿았고, 이로 비녀를 물어 부드럽게 빼내자 지아의 수천 가닥 검은 머리카락이 아래로 떨어졌다.도윤은 지아가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좋았다. 나른하면서 매혹적이었다.비녀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지아야, 넌 이런 모습일 때가 가장 아름다워.”이렇게 말하며 도윤은 비녀의 끝으로 지아의 피붓결을 따라 스쳐 지나갔는데 시원한 촉감이 쇄골을 지나 계속 내려가다가 단추 앞에서 멈췄다.마치 금기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도윤은 부드럽게 물었다
격렬한 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꽃들이 강풍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꽃잎 몇 장이 땅에 떨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폭우는 서서히 그치고 지아는 도윤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도윤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닌지 의심했다. 2인용 침대를 만들 거면 조금 더 넓게 만들면 안 되는 건가?싱글 사이즈 침대에 두 사람이 눕고 키가 190 가까이 되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와 함께 있자 지아에게는 다소 비좁았다.지아는 도윤과 붙지 않으면 바닥에 붙어야 했다.침낭은 펼쳐져 두 사람을 덮는 이불이 되었고, 침낭 아래 두 사람은 몸에 걸친 것 없이 서로의 피부, 체온, 윤곽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은 신혼 때도 이렇게 붙어있지 않았다.그때 도윤은 지나치게 억제하느라 아내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본성을 억누르고 있어야 했다.몇 년 동안 혼자 지낸 도윤은 다시 태어나서 그때로 돌아가면 멍청한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그런 도윤이 이제 지아 앞에서 자제력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지난 몇 년의 공백을 메우려면 지아 위에서 그대로 죽고 싶었다.도윤이 등 뒤로 지아의 허리를 감싸며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지아야, 나 정말 행복해.”“너무 행복해하지 마. 당신이랑 잔다고 해서 용서하고 재결합하려는 건 아니니까.”그들 사이에는 아직 이예린이 있었다.도윤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렇게 덧붙였다.“지금 이것만으로 난 행복해. 네가 날 위해 딸을 하나 더 낳아줬잖아.”그는 지아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수고했어.”이 말에 지아는 뒤돌아서서 도윤을 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따지기엔 늦지 않았다.“이도윤, 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야? 내가 한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줄 알고 낙태할 생각도 했다는 거 알아?”지아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벌리고 도윤의 가슴을 세게 깨물었다.“내가 무무 낳을 때 하혈로 죽을 뻔한 거 알아? 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내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알아?”도
지아는 눈을 크게 떴다. 도윤이 자신을 자기라고 부른 것에 놀라야 할지, 정관수술이라는 말에 놀라야 할지 몰랐다.도윤과의 미래는 일단 뒤로 하고 지아 본인은 정관 수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도윤은 지아의 손을 들어 손등에 입 맞췄지만 거즈의 촉감에 얇은 입술이 손등에서 손끝으로 옮겨갔다.마치 독실한 신자가 신에게 키스하는 것 같았다.“나 이도윤이 평생 지아 너만 사랑한다는 뜻이지. 과거에도, 앞으로도 늘 너였어.”지아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고 싶었고 그녀도 어른이라 정상적인 욕구도 있었다.도윤과 관계가 완화되었다고 해서 재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닌데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난 재결합한단 말 안 했어.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도윤이 지아의 손끝을 입에 머금자 지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당신, 뱉어, 더럽게.”남자는 거친 숨을 헐떡였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재혼할 명분을 찾고 싶지만 네가 지금의 삶이 좋고 결혼이라는 족쇄로 속박당하고 싶지 않다면 나도 괜찮아.”착각인가, 이게 도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도윤은 몸을 뒤집어 다시 지아를 덮쳤다.“지아야, 내가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야. 나를 욕구 해결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더라도 다시는 쫓아내지 마.”서서히 젖어 드는 지아의 눈동자에 도윤은 그녀의 입술을 몇 번이고 문지르며 말했다.“자기야, 나 좀 아껴줘, 응?”지아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요물은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도윤도 해당한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는 소설 속 여우 같았고, 목소리가 쉴 정도로 지아를 계속 괴롭혔다.도윤이 허리에 손을 얹는 것을 본 지아는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하는 거야?” 도윤은 조용히 웃었다.“지아야, 난 그냥 허리 마사지 해주려는 거야.”“무슨 마사지야, 더하면 이제 날이 밝겠어. 얼른 자!”이 남자 철로 만들어졌나.도윤은 속상한 듯
푹 잔 도윤은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뒤척이다가 새벽에 잠들었고 점심이 지나서야 일어났다.일어날 때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고 있었다.지아는 멍한 상태에서 눈을 떴고, 몸은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나쁜 자식, 예전엔 3번을 안 넘기더니.당시 극도로 절제하던 도윤은 한 달에 몇 번을 할지조차 정하곤 했다.지아는 이제야 과거 도윤이의 의지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깨달았다. 그대로 내버려두니 자신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도 없었다.둘이서 하도 뒹군 탓에 온몸이 끈적끈적해서 무척 괴로웠다.“날이 밝... 읍...”지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목소리가 도윤에 의해 삼켜졌다.또 한 번의 격정적인 키스를 하고 나서야 도윤은 지아를 놓아주었다.“지아야, 좋은 아침이야.”하룻밤 사이에 몇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은 남자의 모습에 정말 요물이 아닌지 의심되었다.“날도 밝았고 씻고 싶어.”땀만 흘렸다면 참을 수 있었겠지만 몸 안팎에서 온통 도윤의 체향이 느껴졌다.“내가 길을 알아, 데려다줄게.”말하며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었고 지아에게 자신의 큰 셔츠를 입혀주었다.근처에는 사람이 없고 동물들만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나 혼자 걸을 수 있어, 내려줘.”“하지만 안아주고 싶어.”비바람이 몰아친 밤이 지나고 나니 풀과 나무가 모두 새것처럼 보였다.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이 두 사람에게 얼룩덜룩한 빛을 드리웠고, 지아는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결혼 후 매일 집에 머물며 새색시처럼 도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도윤은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않았고 어떠한 행사에 지아를 데려간 적도 없었으며, 가끔 지아를 데리고 외출할 때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갔다.영화 관람도 미리 대관하고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지아와 함께 나타나지 않았으며 다정한 모습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도윤이 지아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랑을 드러낼 수 없는 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이제 도윤은 마음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