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잔 도윤은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뒤척이다가 새벽에 잠들었고 점심이 지나서야 일어났다.일어날 때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고 있었다.지아는 멍한 상태에서 눈을 떴고, 몸은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나쁜 자식, 예전엔 3번을 안 넘기더니.당시 극도로 절제하던 도윤은 한 달에 몇 번을 할지조차 정하곤 했다.지아는 이제야 과거 도윤이의 의지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깨달았다. 그대로 내버려두니 자신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도 없었다.둘이서 하도 뒹군 탓에 온몸이 끈적끈적해서 무척 괴로웠다.“날이 밝... 읍...”지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목소리가 도윤에 의해 삼켜졌다.또 한 번의 격정적인 키스를 하고 나서야 도윤은 지아를 놓아주었다.“지아야, 좋은 아침이야.”하룻밤 사이에 몇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은 남자의 모습에 정말 요물이 아닌지 의심되었다.“날도 밝았고 씻고 싶어.”땀만 흘렸다면 참을 수 있었겠지만 몸 안팎에서 온통 도윤의 체향이 느껴졌다.“내가 길을 알아, 데려다줄게.”말하며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었고 지아에게 자신의 큰 셔츠를 입혀주었다.근처에는 사람이 없고 동물들만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나 혼자 걸을 수 있어, 내려줘.”“하지만 안아주고 싶어.”비바람이 몰아친 밤이 지나고 나니 풀과 나무가 모두 새것처럼 보였다.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이 두 사람에게 얼룩덜룩한 빛을 드리웠고, 지아는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결혼 후 매일 집에 머물며 새색시처럼 도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도윤은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않았고 어떠한 행사에 지아를 데려간 적도 없었으며, 가끔 지아를 데리고 외출할 때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갔다.영화 관람도 미리 대관하고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지아와 함께 나타나지 않았으며 다정한 모습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도윤이 지아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랑을 드러낼 수 없는 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이제 도윤은 마음껏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던 물결이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나뭇가지에 달린 꽃 한 송이가 바람에 날려 물 위에 가볍게 떨어지자 도윤은 무심코 꽃을 떠서 지아의 머리에 꽂았다.지아는 화가 난 표정을 짓더니 능숙하게 머리를 위로 끌어올려 비녀로 고정했다.“다 쉬었으면 나가.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많이 걸어야지. 이 숲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7일은 걸릴 거야.”지아가 상기시켰다.“그래.”도윤은 어젯밤에 손질한 물고기를 다음 목적지에서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갔다.둘은 짐을 챙기고 도윤은 커다란 등산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동굴 입구에 서서 왠지 모를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다.지아는 그 앞에서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안 가?”도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가자.”그는 평생 이곳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다음 날 밤, 쉼터를 찾지 못한 도윤은 덩굴로 해먹을 즉석에서 만들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침낭에 몸을 웅크린 채 머리 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지아야, 문득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칼날 같은 삶에 지쳐 있던 도윤은 가족들과 단란한 삶을 원했다.하지만 이것은 지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대답하지 않았고 도윤은 여전히 그녀를 안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도윤은 지아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오늘 밤은 괴롭히지 않을게, 자자, 자기야.”지아는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되찾은 보물 같은 존재였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남은 여정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도윤은 많이 나아진 지아의 체력에 신기해했다.정글에서 하루에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도 지아는 오랜 시간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듯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지아는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멋진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두 사람은 때마침 산기슭의 작은 어촌에 도착했고, 다행히 그곳은 전기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었다.도윤은 진환에게 연락했고, 길이 멀어 다음날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두
빤히 쳐다보던 지아는 도윤이 충격을 받을 거라 예상하고 그의 분노에 마음의 준비까지 했는데 놀랍게도 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지아는 몸은 주지만 마음은 안 주는 나쁜 여자가 되고 싶은 거네.” 과거 얽매이는 데 익숙해져 있던 지아는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애인이면 책임질 일도 없었고 굳이 전부 다 알려줄 것도 없는 데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과거나 미래에 대해 상대와 얽히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책임만 없다면 어떤 관계도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다.역시 모든 건 다 되돌아온다. 도윤은 백채원이 자신에게 결혼을 강요했던 때를 떠올렸다. 지아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지아에게 애인의 신분으로 곁에 남아 있어 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그런데 몇 년 후엔 자신이 지아에게 명분을 바랄 줄이야.애인이라는 자리라도 감지덕지할 상황이다.지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만 언젠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지아는 손가락으로 도윤의 턱을 문지르며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그 자리 원해, 아님 싫어?”이 자세, 원해요, 싫어요?” 두 사람의 관계 자체는 이미 불평등했다.도윤은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잡고 지아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자기야, 이제부터 나도, 내 목숨도 네 거야. 뭐든 해도 돼, 다만 날 버리지만 마.”지아는 약간 손을 찌르는 도윤의 수염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하지만 도윤 씨, 난 당신에게 명분을 줄 수가 없어. 내 일상도 알려줄 수 없고 오늘 누구를 만났고 내일 누구에게 전화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을 거야.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 텐데, 그렇게 할 수 있겠어?”소유욕이 극도로 강한 도윤이 그런 조건에 동의할 수 있을까?“지아야, 네 인생에 간섭하지 않겠지만 나도 조건이 있어.”“말해봐.”“다른 남자 만나지 마.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해.”이것이 도윤의 유일한 조건이자 최후의 타협이었다.지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내가 무척 밝히는
조용한 작은 어촌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고, 진환이 데리러 왔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다만 마당에는 활주로로 사용할 만한 넓은 공간이 없었고, 헬기는 여전히 착륙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 공중에 떠 있었다.지아는 도윤의 어깨를 깨물었다.“개자식, 끝이 없네.”“지아야, 내 시간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지아는 진봉의 방정맞은 입을 떠올리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돌아서서 도윤의 목을 두 팔로 감싸며 귓불을 깨물었다.“도윤 씨, 빨리...”...헬기가 작은 광장에 멈춰서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진봉은 재빨리 작은 농가로 향했다.“보스는 왜 여기로 온 거야. 형, 여기 맞아? 잘못 온 거 아니지?”진환은 선글라스를 벗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아니야.”“누굴 찾으러 오셨나?”두 사람은 도윤의 특징을 설명했고, 주인은 그들을 이끌었다.“여기, 그쪽이 찾는 사람이 안에 있어.”진환은 감사의 뜻으로 지갑에서 돈다발을 꺼냈고, 진봉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보스, 오랜만인데 저 안 보고 싶었... 엇, 사모님?”진봉은 잘못 본 건가 싶어 서둘러 안경을 벗었다.이게 어떻게 된 건지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지아가 어떻게 여기에?지아는 진봉을 흘깃 쳐다보았다.“오랜만인데 여전히 멍청하네요.”“...”진환은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이었다.“사모님.”“형, 아니, 벌써 알고 있었어? 우린 그래도 같은 엄마 배에서 나왔는데, 왜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도윤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갔다.지아도 이런 장난을 칠 줄이야.“보스, 보스랑 사모님, 두 사람...”진봉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지아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도윤에게 물었다.“귀국할 거야?”“응, 넌 어떡할 거야?”도윤은 당연히 같이 가고 싶었지만, 방금 지아와 이야기를 나눈 터라 지금 감히 선을 넘을 수 없었다.“마침 나도 귀국하는데 좀 태워다 줘
지아는 공항 탈의실에서 미리 옷을 갈아입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크고 두꺼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도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이미 그를 데리러 온 차들이 줄을 지어져 있었다.공항을 떠나기 전, 도윤은 지아를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지아야.”지아는 팔짱을 꼈다. “도윤 씨, 우리 약속했잖아.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지?”“아니,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지금은 당신 입지가 불안정해서 오히려 당신 곁에 있는 게 안전하지 않으니까 내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최선 아니야?”지아는 예전보다 명쾌해졌고 도윤은 지아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헤어지기 아쉬웠다.“알아, 난 그냥...”지아는 갑자기 마스크를 벗고 발끝을 세워 도윤의 입술에 키스했고, 도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더 깊고 진하게 파고들었다.힘들게 되찾은 보물인 만큼 더더욱 아쉬웠다.“도윤 씨, 우리 사이에 아직 이예린이 있는 거 알잖아. 만약 그때 일이 다시 일어나서 나와 당신 동생이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누구를 구할 거야?”“난...”지아는 손가락을 도윤의 입술에 대고 말했다.“결혼을 안 하면 제약도 없고 기대도 없으니까 슬퍼하고 속상해할 일도 없지. 당신 선택에 속상할 필요도 없고. 도윤 씨, 그게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지아야, 그렇지 않아.”“그럼 이예린과 연을 끊을 수 있어?”도윤이 침묵하자 지아가 덧붙였다.“당신은 못해.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하든 어쨌든 남매라 포기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난 당신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고 나도 힘들고 싶지 않아. 이렇게 지내자. 각자의 삶을 보내면서 가끔 만나는 거 좋잖아.”도윤은 다시 한번 입맞춤을 했고, 지아는 거절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파고들었다.아무리 아쉬워도 어쨌든 헤어져야 하니까.도윤은 지아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그래.”도윤은 인파에 둘러싸인 VIP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
도윤은 지아가 떠난 후 신혼집으로 다시 들어왔고 모든 것이 처음 떠났을 때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처음에 있던 아기방도 도윤이 다시 새로 꾸몄고 가끔 지윤이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가정부는 매일 식탁 위에 섬세한 꽃다발을 놓아두고 안주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곤 했다.지아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빈 집은 그리 썰렁하지 않았다.진환은 서둘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재로 따라나섰다.그중 하나가 도윤의 시선을 끌었다.“금상어가 죽었다니, 어떻게?”도윤은 쉽게 금상어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지만 그가 손을 쓰기 전에 금상어는 죽었다.진환은 한 달 전에 다크웹에 뜬 게시물을 찾아냈다.금상어의 머리가 눈에 띄었고 도윤이 전에 적들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수법으로 처리했다.넘버 100은 금상어의 번호였다.“누가 그랬는지 알아냈어?”“영지요.”“그 여자였네.”도윤은 미간을 어루만졌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영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악마의 섬에서 가장 뛰어난 멤버였다.도윤은 그녀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고, 적절한 훈련만 받으면 훌륭한 여성 요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의 손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지만 유능한 여성 요원은 너무 적었다.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여성이 할 수 있지만,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성이 할 수 없는 것도 있었기에 업계 전반에 걸쳐 우수한 여성 요원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지는 블랙X를 선택했다.금상어는 밉보인 사람이 많아 그의 목숨을 노리는 것도 당연했다. 블랙X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데 왜 도윤의 수법을 쓰고 그가 새겼던 번호를 달았을까.“영지가 누군지 알아냈어?”“여자라는 것만 알고 현재 S급으로 승진한 상태라 내부자들만 정체를 알고 있어요.”도윤이 글을 올린 시간을 보니 독살당한 지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아무리 봐도 영지가 단순히 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그를 노리는 걸까?“지켜보라고 해.”“네.”“하씨 가문은 어때?”“하용 그 자식이 보스가 죽은 줄 알고 들떠서
지아는 웃었다.“재결합한 건 아니에요.”전효의 얼굴에는 내가 바보인 줄 아냐는 표정이 역력했다.지아는 두 손을 펼쳤다.“그래요, 재결합은 안 했지만 했어요.”“참 솔직하네.”“나도 평범한 여자인데,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지아는 전효 앞에서 다소 어리게 굴었다.이성이 아니라 남매 같은 사이였다전효는 그동안 지아를 많이 도와줬고, 지아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를 의지하는 가족으로 대하고 있었다.전효의 가족은 전부 죽었고 지아도 가족이 없었으니까.“그래도 널 보내주네.”“어쩔 수 없죠. 지금은 그 사람이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까.”지아는 전효 옆에 앉더니 팔로 전효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그러는 그쪽은 그 나이가 되도록 욕구를 어떻게 해결하는 거예요?” 전효가 지아를 힐끔 쳐다보자 지아는 두 손을 항복하듯 들었다.“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참다가 병 나지나 마요.”지아는 혀를 내밀었다.남자의 손목에 오랫동안 차고 있던 염주를 보았다. 전효는 어떤 의미에서 욕망도 추구도 없는 불자 같았다.하지만 사람을 죽일 때의 건조하고 날카로운 기운은 다른 사람 같았고, 빨리 죽이는 방법도 전효에게 배운 것이 많았다.악마와 부처를 오갔다.“오빠, 원하는 게 정확히 뭐야?”전효가 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자 염주에서 풍기는 나무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너처럼 나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누구요?”“나중에 알게 될 거야.”지아는 전효의 눈에서 혼란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처음에는 지아도 전효를 의심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나.전효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원하는 것도 없이 잘해주었다.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고 다른 속셈이 있었다면 진작에 드러났을 터라 지아는 경계를 풀고 진심으로 그를 가족으로 대했다.지아는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오빠가 뭘 하든 나와 아이들이 뒤에 있다는 것만 기억해요.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있어요.”전효는 지아가 읽을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깊게 바라보
2미터가 넘는 커다란 침대에 푹신한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다.설렘 때문인지 스릴 때문인지 지아는 잠이 오지 않았다.지난 며칠 동안 도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남자의 따뜻한 품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한 시간 동안 침대에서 뒤척여도 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머릿속은 더욱 맑아졌다.지아는 외투를 두르고 차키를 챙겨 차고로 내려갔고, 매끈한 검은색 쿠페 한 대가 도로를 질주했다.도윤은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침실로 돌아갔다.문을 열자마자 그는 방안에 희미한 술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누가 있다!도윤이 움직이기 전에 어둠 속에서 한 형체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도윤의 눈에 놀라움과 기쁨이 번졌다.“지... 음...”여자는 이미 그의 입술을 막고 있었다.날 죽이려고.한창 지아를 떠올리는데 그녀가 나타나자 도윤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지아는 불을 켜지 않았고, 어둠은 최고의 촉매제였다.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야릇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도윤이 재킷을 벗기자 놀랍게도 부드러운 가운만 입은 지아를 발견했다.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던 지아는 주도권을 쥐고 도윤을 벽에 힘껏 밀쳤다.얇은 입술로 목울대를 머금고 손은 바지에서 그의 셔츠를 빼내 단단한 허리와 배를 더듬었다.도윤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지아야, 날 죽일 생각이야?”“목숨 줄 거야?”“줄게,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줄게.”지아는 도윤의 귀를 깨물었다.“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당신 몸만 원해.”도윤은 허리를 굽혀 지아를 들어 푹신한 침대 위에 눕혔다.“다 줄게.”두 사람의 신혼 침대였다. 다만 벽에 걸려있던 결혼사진은 진작 지아의 손에 찢겼다.놀랍게도 두 사람은 신혼 때보다 더 격정적이었다.당시 지아는 너무 어려서 모든 걸 내려놓지 못했고 도윤도 일부러 자제했기에 두 사람은 늘 적당한 정도에서 멈췄다.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연히 지금과 같은 무모함과 즐거움은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