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059화

Author: 김나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7-19 16:15:08
2미터가 넘는 커다란 침대에 푹신한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다.

설렘 때문인지 스릴 때문인지 지아는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도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남자의 따뜻한 품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한 시간 동안 침대에서 뒤척여도 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머릿속은 더욱 맑아졌다.

지아는 외투를 두르고 차키를 챙겨 차고로 내려갔고, 매끈한 검은색 쿠페 한 대가 도로를 질주했다.

도윤은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침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그는 방안에 희미한 술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누가 있다!

도윤이 움직이기 전에 어둠 속에서 한 형체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도윤의 눈에 놀라움과 기쁨이 번졌다.

“지... 음...”

여자는 이미 그의 입술을 막고 있었다.

날 죽이려고.

한창 지아를 떠올리는데 그녀가 나타나자 도윤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아는 불을 켜지 않았고, 어둠은 최고의 촉매제였다.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야릇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도윤이 재킷을 벗기자 놀랍게도 부드러운 가운만 입은 지아를 발견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던 지아는 주도권을 쥐고 도윤을 벽에 힘껏 밀쳤다.

얇은 입술로 목울대를 머금고 손은 바지에서 그의 셔츠를 빼내 단단한 허리와 배를 더듬었다.

도윤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지아야, 날 죽일 생각이야?”

“목숨 줄 거야?”

“줄게,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줄게.”

지아는 도윤의 귀를 깨물었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당신 몸만 원해.”

도윤은 허리를 굽혀 지아를 들어 푹신한 침대 위에 눕혔다.

“다 줄게.”

두 사람의 신혼 침대였다. 다만 벽에 걸려있던 결혼사진은 진작 지아의 손에 찢겼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신혼 때보다 더 격정적이었다.

당시 지아는 너무 어려서 모든 걸 내려놓지 못했고 도윤도 일부러 자제했기에 두 사람은 늘 적당한 정도에서 멈췄다.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연히 지금과 같은 무모함과 즐거움은 없었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0화

    지아는 샤워를 하고 몸을 씻은 후 새 옷으로 가득 찬 옷장으로 걸어갔다.도윤은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기대어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하는 여자를 보았다.그 순간 도윤은 마치 한 번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모든 게 예전과 똑같았다.지아가 얼굴에 볼 터치를 하고 있을 때 거울에 한 사람이 더 나타났고 도윤이 뒤에서 팔로 지아를 감쌌다.등 뒤에서 가슴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며 도윤은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지아야, 이렇게 예쁘게 하고 누구 만나러 가는 거야?”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건 원래 얼굴로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뜻이었다.진하지 않은 화장은 요즘 유행하는 ‘꾸안꾸’ 스타일이었고, 눈 밑 애굣살에 바른 글리터가 왠지 가련한 모습을 연출했다.도윤은 지나치게 가식적인 화장이라 지아가 좋아하지 않았던 걸 기억했다.지아는 마지막으로 블러셔 브러시를 쓸어내리고 립스틱을 다시 집어 들었다.그녀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맞춰 봐.”이런 메이크업과 지아의 미소가 어우러진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도윤은 괴로웠다.“분명 남자겠지?”“똑똑하네.”도윤은 지아의 턱을 들어 올려 끝없는 여운을 남기며 입맞춤을 했다.“지아야, 나 힘들어.”“우리 합의하지 않았어?”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도윤을 바라보았고 도윤은 그녀를 안아 화장대 위에 앉히자마자 말했다.“네 일에 참견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내 마음은 통제할 수 없어.”거침없는 키스가 쏟아졌고 지아는 그를 밀어내려 했다.“하지 마, 시간 다 됐어.”도윤은 바로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포박하며 사나운 늑대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지아야, 나도 내 권리를 행사하는 거야.”새하얀 니트를 겨드랑이까지 걷어 올리자 등 뒤의 거울은 다소 차가웠고 앞에 있는 도윤은 너무 뜨거웠다.매혹적인 지아는 이성을 잃기 전에 한 마디를 남겼다.“내 목에 자국 남기지 마.”“알았어.” 도윤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한바탕 뒹굴고 난 지아는 옷에 가려진 부분에 온통 새빨갛게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1화

    지아가 액셀을 밟자 도윤이 차량 번호를 스캔했다.과거 지아에게 많은 집과 차를 선물했지만 이 쿠페는 그의 명의가 아니었다.지아는 예전에는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고, 운전을 하더라도 평범한 세단만 좋아했다.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쉽게 대답하지 말걸.“대표님,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가실 시간이에요.” 진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도윤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손가락으로 입가에 묻은 립스틱을 닦아내고 뒤돌아보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가자.”지아는 미리 차를 주차하고 거울을 내린 뒤 가방에서 파운데이션을 꺼내 화장을 고쳤다.거울에 비친 자신의 완벽한 얼굴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갔다.충분히 청순하고 매력적이었다.지아는 손목에 찬 팔찌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연아, 오래 기다렸지. 금방 내려갈 거야.”카페에서 감미로운 피아노 음악이 감돌았다.이 시간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하지만 이곳은 도심에 위치한 가장 문학적인 카페로, 탁 트인 통유리가 눈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다.그래서 많은 커플이 이곳에 와서 데이트하거나 맞선을 본다.눈 내리는 겨울날, 따뜻한 카페에 앉아 눈꽃이 흩날리는 길 건너편 교회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창가에서 한 남자가 영어로 번역된 잡지를 넘기면서 가끔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흘깃 쳐다보곤 했다.휴대폰이 진동하며 상대방이 차가 막혀 늦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답장을 보냈다.[괜찮아요, 기다릴게요.]상대방이 도착까지 아직 3분이 남았다고 말했을 때 페이지를 넘기는 남자의 행동이 멈칫하며 마음속에 긴장감이 감돌았다.2년 동안 채팅한 두 사람은 이제 영혼의 단짝처럼 서로 잘 알았지만 그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몰랐고 상대방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그저 상대가 해외를 돌아다니다가 최근 귀국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공항에 마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2화

    눈앞에 있는 여자는 6년 전에 본 적이 있는, 정확히 말하자면 수많은 사진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여자였다.그녀가 얼마나 뛰어난지, 어렸을 때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지,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대시를 받았는지, 한 남자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일찍 결혼을 했다가 결국 그 남자에게 버림받고 눈물겨운 하루하루를 보낸 것까지.두 사람은 실제로 두 번 만났지만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처음 봤을 때는 잠옷 차림의 여자가 배가 부른 채 카펫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는데 자신이 직접 그녀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었다.그녀는 한때 그의 사냥 대상 중 하나였던 지아였다.장민호는 오랫동안 시간 속에 묻혀 있던 누군가가 눈앞에 나타난 것에 조금 놀랐다.“당신이 앨리스...”지아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당당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아직 자기소개를 안 했네요, 전 소지아라고 해요.”지아는 당시 암살에 실패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어 조직에서 쫓겨난 장민호를 떠올렸다.그는 지금 손을 씻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하지만 장민호가 죽인 미연은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고 시신은 이미 백골이 된 지 오래였다.왜 착한 사람은 단명하고 나쁜 사람은 장수하는 걸까.6년이 지났지만 지아는 미연이 자신 대신 총을 맞는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3년 전부터 장민호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2년 전부터 접촉을 시작했다.3년 동안 덫을 놓은 후 이제 그물을 닫아야 할 때였다.장민호를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런 놈을 한 방에 속 시원히 죽일 수도 없었다.지아도 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복수할 것이다.과거 장민호는 작전을 위해 미연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고, 지아 또한 그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줄 생각이었다.“저기...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지아가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장민호는 얼굴에 가짜 마스크를 썼고 신분도 가짜라 지아가 자신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래도 킬러였던 그는 속으로 경계심이 생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3화

    민아는 지아에게 하늘 아래 어떤 남자도 거부할 수 없는 얼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얼굴은 항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아름다운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장민호는 당황한 표정이었다.지아의 뒤에는 눈송이가 흩날리는 성당이 있었고, 배꽃처럼 청순한 그녀가 자신을 향해 웃는 순간 장민호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쿵 뛰었다.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장민호는 상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이게 뭐죠?”“열어 봐요.”별로 비싸 보이지 않는 나무 상자였는데, 상자를 여는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상자 안에는 하얀 에델바이스 한 송이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에델바이스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꽃으로 매우 높은 고도에 서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더욱 귀한 꽃이었다.한 사진작가가 이 꽃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보러 갔지만 아쉽게도 직접 볼 수는 없었다.장민호는 화가로서 지아와 2년 동안 소통하며 이 꽃을 언급했었다.“에델바이스인가요, 어떻게 구했어요?”지아는 손을 흔들었다.“얼마 전 여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쪽 말이 생각나서 가져왔어요. 그림 그리면 무척 예쁠 거예요.”“어떻게 이런 꽃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죠, 당신은...”지아가 손을 들어 귀 주변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는 순간 손바닥 상처가 드러났다.며칠 전 도윤을 찾아 숲에 갔을 때 생긴 상처였는데, 상처는 아물었지만 딱지가 앉아서 창백한 피부 위로 그대로 보였다.“손은 왜 그래요?”지아는 민망한 듯 등 뒤로 숨겼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음식 주문하셨어요? 아직 아침을 못 먹어서 배가 좀 고픈데, 밥부터 먹죠.”장민호는 지아의 소매를 확 당겼고, 두 손에 딱지가 앉고 오래되지 않은 상처가 가득한 걸 보았다.“어떻게 된 거예요?”지아는 서둘러 손을 뒤로 뺐다.“녹명산을 지나가는데 누가 에델바이스를 봤다는 말을 듣고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4화

    지아는 테이블 가득 음식을 주문했고 대부분 장민호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장민호는 조금 당황했다.“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어머니가 남강 출신이라면서요, 그러면 그쪽 음식 좋아한다는 건 쉽게 알아낼 수 있죠?”지아는 적당히 캐치했다.그녀는 해외에서 본 오로라, 빙하, 사막, 심해 등 자신이 본 것을 아낌없이 공유했다.“정민호 씨, 사막에서 눈 본 적 있어요? 정말 놀라워요, 하늘과 땅에 두 가지 색만 남아있어요.”어린아이처럼 즐겁게 풍경을 이야기하던 지아는 스테이크가 나올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미안해요, A시에 친구가 많지 않아서 첫 만남에 말이 많았는데 괜찮으시죠?”장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록 다 봤던 풍경이지만 지아의 화려한 언변에 과거의 회색빛 풍경이 갑자기 색을 띠는 것 같았다.“아니요, 재밌어요.”지아는 디저트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온라인에서처럼 여전히 말수가 없으시네요.”“미안해요, 원래 말주변이 부족해요.”“그럴 줄 알았어요.” 겉은 시럽으로 감싸고 안에는 씨를 제거하고 아이스크림을 넣은 과일을 맛보던 지아는 느껴지는 3가지 맛에 눈까지 가늘어졌다.“와, 무슨 이런 디저트가 다 있지?” 지아는 접시에 놓였던 과일을 장민호의 접시에 옮겨주었다.“먹어봐요, 너무 맛있어요. 입안에서 톡 터져요.”장민호는 이런 사람들과의 접촉이 익숙하지 않았다. 킬러라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그가 어떻게 남이 주는 것을 먹을 수 있겠나.“난...”지아는 장민호가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작은 포크로 집어 입에 가져다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빨리 먹어 봐요, 안 먹으면 녹아요.”장민호는 얼떨결에 한입 베어 물었고, 지아의 하얀 손목에 있는 붉은 색 팔찌를 보고 동공이 움츠러들었다.바로 자신이 미연에게 선물한 팔찌였다!당시 장민호는 미연이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 대충 아무 팔찌나 샀고, 비싸지는 않았지만 미연은 너무 기뻐했다.훌륭한 킬러는 어떤 역할이든 해내야 했기에 임무를 마치고 본연의 모습으로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5화

    지아는 우느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이미 너무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는데 눈물을 흘리자 가련하기 그지없었다.이 모든 상황을 만든 장본인인 장민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감정은 배우가 아니면 전혀 연기할 수 없었다.“울지 마요,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가 없으니 잘 보내줘야죠.”지아는 숨을 몰아쉬면서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다.“일부러 분위기를 망치려던 건 아닌데 그 친구를 생각하니 그만...”장민호는 그녀에게 휴지 몇 장을 뽑아 건네주며 위로했고, 그제야 지아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며 손으로 쥐를 쓰다듬었다.“아직 살날이 남았으니 약속대로 이걸 착용하고 먼 곳으로 다녀야죠.”“방금 아기를 낳았다고 했는데 그럼 이미 결혼한 건가요? 이렇게 만나는 거 불편하지 않아요?”지아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아니요, 아기도 없고 전 이미 이혼했어요.”지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얀 형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소지아,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민아 어디로 숨겼...”지아는 세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세찬을 향해 식탁보를 힘껏 들어 올린 뒤 장민호의 셔츠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뛰어요!”장민호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뛰기 시작했고 지아는 다가오는 웨이터에게 말했다.“뒤에 있는 사람이 계산할 거예요.”평소 결벽증이 있는 세찬은 지아 때문에 덮어쓴 오물을 정리할 틈도 없이 그가 도망갈까 걱정하던 직원들에게 붙잡혔다.젠장.세찬은 지아가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지아가 가는 길에 남자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허, 이도윤 또 당했네.그 생각에 세찬은 기분이 훨씬 좋아졌고 자신의 양복을 벗으며 지시를 내렸다.“이도윤 앞으로 돌리고 양복 청구서도 함께 보내.”어쨌든 지아는 이미 A시에 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었다!세찬이 도윤의 번호를 누르자 진환이 전화를 받았다.“강 대표님, 보스는 지금 아주 중요한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기가 어려운데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6화

    도윤은 차갑게 얼굴을 찡그렸다.“뭐라고?”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믿지 않았을 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지아는 그의 품에서 뜨겁게 키스를 나누었으니까.하지만 세찬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니 뭔가 본 게 틀림없었다.“오늘 내가 뭘 봤는지 알아?”“빨리 말해.” 도윤은 으스스한 기운을 뿜어냈다.“이 몸이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말하기 싫네.”“그럼 너도 김민아 씨의 행방 알 생각 마.”세찬 쪽에서 탁자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개자식,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줄 알았어.”“말해봐, 뭘 봤어?”“말하면 어디 있는지 알려줘.”“그래.”세찬은 식당에서 감시카메라 영상을 가져와 보냈다.지아는 오늘 남자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하지만 감시 카메라 속 남자는 낯선 얼굴이었고, 지아는 그 앞에서 웃다가 우는 등 낯선 모습을 보였다.지아가 남자에게 과일을 먹여주는 것을 본 도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진환은 목을 움츠리고 자신의 존재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지아는 도윤의 금기를 건드렸다.하지만 진환도 이 낯선 남자가 누군지 궁금했다.“알아내.”“네.”진환은 서둘러 자신의 일을 하러 나갔고, 도윤은 몇 번이나 앞뒤를 살피다가 문득 핵심을 알아챘다.남자의 걷는 자세가 조금 이상했다. 예전에 다리를 다친 것 같은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일반인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누구지?지아는 여전히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보여주고 있고, 도윤은 이 팔찌가 미연의 팔찌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미연이 묻혔을 때 지아가 손에서 빼낸 팔찌였는데 이 남자 앞에서 팔찌에 대해 얘기하고 지아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실마리가 서서히 잡혀가고 있었다.진환 역시 금방 돌아왔다.“대표님, 확인해 보니 그 남자 이름은 정민호이고 화가예요.”“정민호 아니야, 장민호야.” 도윤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그 사람!!!”장민호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진환은 증오에 찬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그 전투에서 여러 형제

    Last Updated : 2024-07-19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67화

    자신도 아는 걸 지아가 모를 리 없었다.정글을 여행하는 동안 지아는 자신이 결코 여린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당시 미연의 죽음으로 마음이 아팠던 그녀는 분명 장민호를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사모님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도윤이 분명하게 말했다.“장민호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기꺼이 진심을 내어줬을 때 무자비하게 짓밟아서 모든 모욕과 고난을 겪게 하고 강미연처럼 죽기 전에 모든 상처를 받게 하려는 거지.”진환은 하늘 아래 도윤만이 지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그러니까 사모님은 장민호를 만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려는 거였네요. 보스 걱정되지 않으세요...”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넌 원수가 널 건드리게 둘 거야? 봐, 지아는 떠날 때도 옷소매를 잡고 손가락을 건드리지 않잖아.”지아는 장민호를 마음속으로 매 순간 죽이고 싶어 했기에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는 없었다.하지만 설령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다른 남자 곁에 있는 그녀를 생각하니 도윤은 마음속으로 불쾌했다.“그럼 장민호 문제는...”“일단 두고 보면서 함부로 개입하지 마. 강미연 씨는 지아에게 중요한 사람이야. 이 일로 지아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아. 지아는 3년 넘게 이 일을 계획해 왔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윤은 팔짱을 끼고 섰다.“한 번쯤은 믿어봐야지.”과거 지아는 항상 도윤이 지나치게 이기주의적이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본인의 삶을 지배한다고 말했다.독선적인 도윤은 지아의 마음을 한 번도 배려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도윤은 이번에 기꺼이 지아를 위해 변하기로 했다.“형, 보스랑 둘이 나 몰래 무슨 말 하는 거야?”지아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진봉은 누구든 보면 자신 몰래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꺼져!” 도윤은 기분이 매우 안 좋았고 진봉은 눈치도 없이 달려들어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그게... 강 대표님이 돈 내시라고 하면서 이 양복도 사모님

    Last Updated : 2024-07-20

Latest chapter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6화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5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4화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3화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2화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1화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70화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69화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68화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