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꽃들이 강풍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꽃잎 몇 장이 땅에 떨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폭우는 서서히 그치고 지아는 도윤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도윤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닌지 의심했다. 2인용 침대를 만들 거면 조금 더 넓게 만들면 안 되는 건가?싱글 사이즈 침대에 두 사람이 눕고 키가 190 가까이 되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와 함께 있자 지아에게는 다소 비좁았다.지아는 도윤과 붙지 않으면 바닥에 붙어야 했다.침낭은 펼쳐져 두 사람을 덮는 이불이 되었고, 침낭 아래 두 사람은 몸에 걸친 것 없이 서로의 피부, 체온, 윤곽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은 신혼 때도 이렇게 붙어있지 않았다.그때 도윤은 지나치게 억제하느라 아내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본성을 억누르고 있어야 했다.몇 년 동안 혼자 지낸 도윤은 다시 태어나서 그때로 돌아가면 멍청한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그런 도윤이 이제 지아 앞에서 자제력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지난 몇 년의 공백을 메우려면 지아 위에서 그대로 죽고 싶었다.도윤이 등 뒤로 지아의 허리를 감싸며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지아야, 나 정말 행복해.”“너무 행복해하지 마. 당신이랑 잔다고 해서 용서하고 재결합하려는 건 아니니까.”그들 사이에는 아직 이예린이 있었다.도윤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렇게 덧붙였다.“지금 이것만으로 난 행복해. 네가 날 위해 딸을 하나 더 낳아줬잖아.”그는 지아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수고했어.”이 말에 지아는 뒤돌아서서 도윤을 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따지기엔 늦지 않았다.“이도윤, 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야? 내가 한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줄 알고 낙태할 생각도 했다는 거 알아?”지아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벌리고 도윤의 가슴을 세게 깨물었다.“내가 무무 낳을 때 하혈로 죽을 뻔한 거 알아? 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내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알아?”도
지아는 눈을 크게 떴다. 도윤이 자신을 자기라고 부른 것에 놀라야 할지, 정관수술이라는 말에 놀라야 할지 몰랐다.도윤과의 미래는 일단 뒤로 하고 지아 본인은 정관 수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도윤은 지아의 손을 들어 손등에 입 맞췄지만 거즈의 촉감에 얇은 입술이 손등에서 손끝으로 옮겨갔다.마치 독실한 신자가 신에게 키스하는 것 같았다.“나 이도윤이 평생 지아 너만 사랑한다는 뜻이지. 과거에도, 앞으로도 늘 너였어.”지아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고 싶었고 그녀도 어른이라 정상적인 욕구도 있었다.도윤과 관계가 완화되었다고 해서 재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닌데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난 재결합한단 말 안 했어.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도윤이 지아의 손끝을 입에 머금자 지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당신, 뱉어, 더럽게.”남자는 거친 숨을 헐떡였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재혼할 명분을 찾고 싶지만 네가 지금의 삶이 좋고 결혼이라는 족쇄로 속박당하고 싶지 않다면 나도 괜찮아.”착각인가, 이게 도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도윤은 몸을 뒤집어 다시 지아를 덮쳤다.“지아야, 내가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야. 나를 욕구 해결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더라도 다시는 쫓아내지 마.”서서히 젖어 드는 지아의 눈동자에 도윤은 그녀의 입술을 몇 번이고 문지르며 말했다.“자기야, 나 좀 아껴줘, 응?”지아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요물은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도윤도 해당한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는 소설 속 여우 같았고, 목소리가 쉴 정도로 지아를 계속 괴롭혔다.도윤이 허리에 손을 얹는 것을 본 지아는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하는 거야?” 도윤은 조용히 웃었다.“지아야, 난 그냥 허리 마사지 해주려는 거야.”“무슨 마사지야, 더하면 이제 날이 밝겠어. 얼른 자!”이 남자 철로 만들어졌나.도윤은 속상한 듯
푹 잔 도윤은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뒤척이다가 새벽에 잠들었고 점심이 지나서야 일어났다.일어날 때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고 있었다.지아는 멍한 상태에서 눈을 떴고, 몸은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나쁜 자식, 예전엔 3번을 안 넘기더니.당시 극도로 절제하던 도윤은 한 달에 몇 번을 할지조차 정하곤 했다.지아는 이제야 과거 도윤이의 의지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깨달았다. 그대로 내버려두니 자신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도 없었다.둘이서 하도 뒹군 탓에 온몸이 끈적끈적해서 무척 괴로웠다.“날이 밝... 읍...”지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목소리가 도윤에 의해 삼켜졌다.또 한 번의 격정적인 키스를 하고 나서야 도윤은 지아를 놓아주었다.“지아야, 좋은 아침이야.”하룻밤 사이에 몇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은 남자의 모습에 정말 요물이 아닌지 의심되었다.“날도 밝았고 씻고 싶어.”땀만 흘렸다면 참을 수 있었겠지만 몸 안팎에서 온통 도윤의 체향이 느껴졌다.“내가 길을 알아, 데려다줄게.”말하며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었고 지아에게 자신의 큰 셔츠를 입혀주었다.근처에는 사람이 없고 동물들만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나 혼자 걸을 수 있어, 내려줘.”“하지만 안아주고 싶어.”비바람이 몰아친 밤이 지나고 나니 풀과 나무가 모두 새것처럼 보였다.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이 두 사람에게 얼룩덜룩한 빛을 드리웠고, 지아는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결혼 후 매일 집에 머물며 새색시처럼 도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도윤은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않았고 어떠한 행사에 지아를 데려간 적도 없었으며, 가끔 지아를 데리고 외출할 때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갔다.영화 관람도 미리 대관하고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지아와 함께 나타나지 않았으며 다정한 모습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도윤이 지아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랑을 드러낼 수 없는 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이제 도윤은 마음껏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던 물결이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나뭇가지에 달린 꽃 한 송이가 바람에 날려 물 위에 가볍게 떨어지자 도윤은 무심코 꽃을 떠서 지아의 머리에 꽂았다.지아는 화가 난 표정을 짓더니 능숙하게 머리를 위로 끌어올려 비녀로 고정했다.“다 쉬었으면 나가.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많이 걸어야지. 이 숲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7일은 걸릴 거야.”지아가 상기시켰다.“그래.”도윤은 어젯밤에 손질한 물고기를 다음 목적지에서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갔다.둘은 짐을 챙기고 도윤은 커다란 등산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동굴 입구에 서서 왠지 모를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다.지아는 그 앞에서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안 가?”도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가자.”그는 평생 이곳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다음 날 밤, 쉼터를 찾지 못한 도윤은 덩굴로 해먹을 즉석에서 만들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침낭에 몸을 웅크린 채 머리 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지아야, 문득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칼날 같은 삶에 지쳐 있던 도윤은 가족들과 단란한 삶을 원했다.하지만 이것은 지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대답하지 않았고 도윤은 여전히 그녀를 안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도윤은 지아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오늘 밤은 괴롭히지 않을게, 자자, 자기야.”지아는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되찾은 보물 같은 존재였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남은 여정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도윤은 많이 나아진 지아의 체력에 신기해했다.정글에서 하루에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도 지아는 오랜 시간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듯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지아는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멋진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두 사람은 때마침 산기슭의 작은 어촌에 도착했고, 다행히 그곳은 전기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었다.도윤은 진환에게 연락했고, 길이 멀어 다음날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두
빤히 쳐다보던 지아는 도윤이 충격을 받을 거라 예상하고 그의 분노에 마음의 준비까지 했는데 놀랍게도 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지아는 몸은 주지만 마음은 안 주는 나쁜 여자가 되고 싶은 거네.” 과거 얽매이는 데 익숙해져 있던 지아는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애인이면 책임질 일도 없었고 굳이 전부 다 알려줄 것도 없는 데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과거나 미래에 대해 상대와 얽히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책임만 없다면 어떤 관계도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다.역시 모든 건 다 되돌아온다. 도윤은 백채원이 자신에게 결혼을 강요했던 때를 떠올렸다. 지아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지아에게 애인의 신분으로 곁에 남아 있어 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그런데 몇 년 후엔 자신이 지아에게 명분을 바랄 줄이야.애인이라는 자리라도 감지덕지할 상황이다.지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만 언젠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지아는 손가락으로 도윤의 턱을 문지르며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그 자리 원해, 아님 싫어?”이 자세, 원해요, 싫어요?” 두 사람의 관계 자체는 이미 불평등했다.도윤은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잡고 지아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자기야, 이제부터 나도, 내 목숨도 네 거야. 뭐든 해도 돼, 다만 날 버리지만 마.”지아는 약간 손을 찌르는 도윤의 수염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하지만 도윤 씨, 난 당신에게 명분을 줄 수가 없어. 내 일상도 알려줄 수 없고 오늘 누구를 만났고 내일 누구에게 전화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을 거야.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 텐데, 그렇게 할 수 있겠어?”소유욕이 극도로 강한 도윤이 그런 조건에 동의할 수 있을까?“지아야, 네 인생에 간섭하지 않겠지만 나도 조건이 있어.”“말해봐.”“다른 남자 만나지 마.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해.”이것이 도윤의 유일한 조건이자 최후의 타협이었다.지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내가 무척 밝히는
조용한 작은 어촌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고, 진환이 데리러 왔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다만 마당에는 활주로로 사용할 만한 넓은 공간이 없었고, 헬기는 여전히 착륙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 공중에 떠 있었다.지아는 도윤의 어깨를 깨물었다.“개자식, 끝이 없네.”“지아야, 내 시간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지아는 진봉의 방정맞은 입을 떠올리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돌아서서 도윤의 목을 두 팔로 감싸며 귓불을 깨물었다.“도윤 씨, 빨리...”...헬기가 작은 광장에 멈춰서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진봉은 재빨리 작은 농가로 향했다.“보스는 왜 여기로 온 거야. 형, 여기 맞아? 잘못 온 거 아니지?”진환은 선글라스를 벗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아니야.”“누굴 찾으러 오셨나?”두 사람은 도윤의 특징을 설명했고, 주인은 그들을 이끌었다.“여기, 그쪽이 찾는 사람이 안에 있어.”진환은 감사의 뜻으로 지갑에서 돈다발을 꺼냈고, 진봉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보스, 오랜만인데 저 안 보고 싶었... 엇, 사모님?”진봉은 잘못 본 건가 싶어 서둘러 안경을 벗었다.이게 어떻게 된 건지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지아가 어떻게 여기에?지아는 진봉을 흘깃 쳐다보았다.“오랜만인데 여전히 멍청하네요.”“...”진환은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이었다.“사모님.”“형, 아니, 벌써 알고 있었어? 우린 그래도 같은 엄마 배에서 나왔는데, 왜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도윤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갔다.지아도 이런 장난을 칠 줄이야.“보스, 보스랑 사모님, 두 사람...”진봉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지아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도윤에게 물었다.“귀국할 거야?”“응, 넌 어떡할 거야?”도윤은 당연히 같이 가고 싶었지만, 방금 지아와 이야기를 나눈 터라 지금 감히 선을 넘을 수 없었다.“마침 나도 귀국하는데 좀 태워다 줘
지아는 공항 탈의실에서 미리 옷을 갈아입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크고 두꺼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도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이미 그를 데리러 온 차들이 줄을 지어져 있었다.공항을 떠나기 전, 도윤은 지아를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지아야.”지아는 팔짱을 꼈다. “도윤 씨, 우리 약속했잖아.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지?”“아니,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지금은 당신 입지가 불안정해서 오히려 당신 곁에 있는 게 안전하지 않으니까 내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최선 아니야?”지아는 예전보다 명쾌해졌고 도윤은 지아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헤어지기 아쉬웠다.“알아, 난 그냥...”지아는 갑자기 마스크를 벗고 발끝을 세워 도윤의 입술에 키스했고, 도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더 깊고 진하게 파고들었다.힘들게 되찾은 보물인 만큼 더더욱 아쉬웠다.“도윤 씨, 우리 사이에 아직 이예린이 있는 거 알잖아. 만약 그때 일이 다시 일어나서 나와 당신 동생이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누구를 구할 거야?”“난...”지아는 손가락을 도윤의 입술에 대고 말했다.“결혼을 안 하면 제약도 없고 기대도 없으니까 슬퍼하고 속상해할 일도 없지. 당신 선택에 속상할 필요도 없고. 도윤 씨, 그게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지아야, 그렇지 않아.”“그럼 이예린과 연을 끊을 수 있어?”도윤이 침묵하자 지아가 덧붙였다.“당신은 못해.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하든 어쨌든 남매라 포기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난 당신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고 나도 힘들고 싶지 않아. 이렇게 지내자. 각자의 삶을 보내면서 가끔 만나는 거 좋잖아.”도윤은 다시 한번 입맞춤을 했고, 지아는 거절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파고들었다.아무리 아쉬워도 어쨌든 헤어져야 하니까.도윤은 지아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그래.”도윤은 인파에 둘러싸인 VIP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
도윤은 지아가 떠난 후 신혼집으로 다시 들어왔고 모든 것이 처음 떠났을 때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처음에 있던 아기방도 도윤이 다시 새로 꾸몄고 가끔 지윤이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가정부는 매일 식탁 위에 섬세한 꽃다발을 놓아두고 안주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곤 했다.지아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빈 집은 그리 썰렁하지 않았다.진환은 서둘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재로 따라나섰다.그중 하나가 도윤의 시선을 끌었다.“금상어가 죽었다니, 어떻게?”도윤은 쉽게 금상어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지만 그가 손을 쓰기 전에 금상어는 죽었다.진환은 한 달 전에 다크웹에 뜬 게시물을 찾아냈다.금상어의 머리가 눈에 띄었고 도윤이 전에 적들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수법으로 처리했다.넘버 100은 금상어의 번호였다.“누가 그랬는지 알아냈어?”“영지요.”“그 여자였네.”도윤은 미간을 어루만졌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영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악마의 섬에서 가장 뛰어난 멤버였다.도윤은 그녀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고, 적절한 훈련만 받으면 훌륭한 여성 요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의 손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지만 유능한 여성 요원은 너무 적었다.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여성이 할 수 있지만,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성이 할 수 없는 것도 있었기에 업계 전반에 걸쳐 우수한 여성 요원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지는 블랙X를 선택했다.금상어는 밉보인 사람이 많아 그의 목숨을 노리는 것도 당연했다. 블랙X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데 왜 도윤의 수법을 쓰고 그가 새겼던 번호를 달았을까.“영지가 누군지 알아냈어?”“여자라는 것만 알고 현재 S급으로 승진한 상태라 내부자들만 정체를 알고 있어요.”도윤이 글을 올린 시간을 보니 독살당한 지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아무리 봐도 영지가 단순히 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그를 노리는 걸까?“지켜보라고 해.”“네.”“하씨 가문은 어때?”“하용 그 자식이 보스가 죽은 줄 알고 들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