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알겠어요.”요즘 그녀는 몸이 날이 갈수록 무거워져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윤우가 잠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잠이 빨리 드니 대충 10분 정도면 깊이 잠들겠지?’박민정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10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봤다.남자는 눈을 감고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옆모습은 유난히 잘생겨 보였다.“왜 그래?”유남준은 뭔가를 느낀 듯 물었다.그녀는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안 추워요? 이불 덮을까요?”“안 추워.”유남준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추우면 덮어.”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살짝 몸을 일으켜 이불을 두 사람 몸 위로 덮었다.유남준은 그녀가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몸매와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박민정.”“네?”“소리 내지 마. 머리가 아프니까.”유남준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분명 요 며칠 동안 의사가 검진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말이다.하지만 지금 박민정과 같이 있으니 머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그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긴장하면서 물었다.“설마 또 기억을 일부 잃는 건 아니겠죠?”유남준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몰라.”그는 지금 박민정과 계속 대화하면서 방 안이 점점 더 더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윤우가 잠들었을 거야. 나는 다른 방에서 잘게.”“그래요.”박민정은 그가 걸어가는 것을 보며 혹시나 뭔가에 부딪힐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두원 별장의 도우미들은 준비를 잘했다.유남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의자나 탁자 같은 건 아무렇게나 두지 않았다.유남준은 무사히 문 앞에 도착했다.손을 문손잡이에 올리고 아래로 내렸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그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왜 그래요?”박민정은 그가 문을 열지 못하고
“나예요, 박민정.”박민정이 대답했다.박민정의 목소리와 대답을 듣고 유남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렸다.그는 다시 박민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박민정은 그가 지금 왜 이러는지 몰라 피하려고 했다.“무슨 일이에요?”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무슨 일 있겠어? 당신이야말로 연지석과 단둘이 있으니까 기분이 좋았어?”유남준이 물었다.박민정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지금이 몇 년도라고 생각해요?”유남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손을 뻗었다.이번에 박민정은 피하기 전에 그의 품에 꼭 안겼다.“이거 놔요.”박민정이 다급하게 말했다.하지만 유남준은 놓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더 꼭 껴안았다.“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는 거야? 당신과 연지석 때문에 내가 거의 죽을 뻔했던 거 알아?”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물었다.“다 생각났어요?”유남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그냥 에스토니아에 갔다가 박민정의 이름으로 연지석 사람들에게 속아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을 기억할 뿐이었다.하지만 박민정은 지금 왜 다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는지 알 수 없었다.‘혹시 죄책감을 느낀 건가?’유남준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든 아니든 상관없이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잡고는 바로 키스를 퍼부었다.박민정은 몸이 굳어졌다. 눈을 크게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문밖에서.잠에서 깨어난 박윤우는 문이 아직 잠겨 있는 것을 보고는 기뻐했다.‘어젯밤에 아빠와 엄마가 내 말을 잘 들었군.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머리를 쓴 보람이 있어.’그는 열쇠를 꺼내 잠겨 있는 문을 열었다.그리고 곧바로 유남준이 박민정에게 키스를 퍼붓는 모습을 포착했다.박윤우는 손에 든 열쇠를 떨어뜨리더니 다른 한 손으로 다급하게 눈을 가렸다.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키스하는 모습이 여전히 보였다.“죄송해요. 일부러 들어온 건 아니에요.”밖에서 아이의 소리가 들리자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은 급히 떨어졌다.박민정의 얼굴
김인우도 병원에 있었다.유남준과 박민정이 손을 잡고 들어오자 친구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남준아.”그는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박민정은 유남준을 그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김인우에게 말했다.“들어가 보자고.”“그래.”김인우는 기어이 박민정의 손을 잡는 유남준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유남준은 곧바로 전문 검사실로 들어갔고 박민정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치료를 받은 지 좀 되었지만 박민정은 유남준이 완쾌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케이스는 의료계에서도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서다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유남준이 기억을 되찾았단 걸 알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에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예상대로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도 의사들은 유남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그 상황을 보던 김인우는 화가 났다.“왜 아무것도 검사해 내지 못해요? 돌팔이 아니에요?”“조용히 해.”유남준이 말했다.김인우는 바로 입을 다물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남준아, 정 안 되면 우리 서울이나 해외에 있는 병원에 가는 게 어떨까?”진주에서 김씨 가문의 의료 시설은 최고였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의 의료진이 최고라고 말할 수 없었다.유남준은 이러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번 알아봐야지.”서다희가 그 말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대표님, 지금 바로 가서 알아보겠습니다.”“그래.”그들의 얘기가 다 끝나고서야 박민정은 병실로 들어갔다.“지금은 좀 어때요?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고요?”“별일 없대.”유남준은 그녀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별일 없다니 다행이네요.”최근 며칠 동안 그는 자주 기억을 잃곤 해서 박민정은 걱정이 들었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목발을 짚은 한 사람이 문밖에서 안을 살펴보며 말했다.“오빠.”앙탈 부리는 그 목소
“형이 예전에 기억을 잃은 적이 있는데 병이 완전히 나은 게 아닐지도 몰라.”유남우는 제호 클럽의 옥상에 서 있으면서 추경은에게 말했다.“기억을 잃은 적이 있다고?”추경은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누군지 오늘 기억하지 못했던 거구나?”“너 형과 결혼하고 싶지?”유남우는 갑자기 화제를 바꿔 물었다.추경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래. 난 어려서부터 남준 오빠를 좋아했잖아.”유남준은 유씨 가문에서든 외부에서든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다만 지금은 운이 나빠서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을 뿐이다.공교롭게도 마침 그 일 때문에 추경은은 자신이 유남준과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그럼 네가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네. 자칫하면 다시 기억을 잃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유남우는 뒷말을 삼켰다.추경은은 그의 말을 이해했지만 고민이 되었다.“진주에 남기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냈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야.”“그럼 마음을 아직 덜 독하게 먹었네.”유남우가 중얼거렸다.추경은이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전화가 끊어졌다.권씨 가문의 도련님 권해신이 다가오며 말했다.“왜? 윤소현이 너 뭐 하는지 물어봐?”유남우는 그저 미소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권해신의 음흉한 얼굴에 부러움이 살짝 묻어났다.“윤소현을 건드리면 안 되긴 하지. 정수미가 대단한 인물이잖아.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도 정수미 눈치를 봤었어.”권해신은 유남우가 돌아와서도 계속 호산 그룹의 대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정수미라는 미래의 장모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다.유남우는 웨이터가 들고 있던 술을 받아 들고는 한 모금 살짝 마셨다.“IM 그룹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냈어?”권해신은 들고 있던 술을 단숨에 비우며 말했다.“아직 알아내지 못했어. 외국인인 것 같아.”그리고 그는 또 물었다.“참, 네 형은 지금 뭐 하고 있어?”“눈먼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유남우는 이제 유남준을 전혀
지난번 이지원이 탈출한 이후 권진하는 몰래 그녀를 숨겨주고 있었다.“좋아. 이 일은 반드시 잘 처리해야 해.”권해신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병원에서.유남우에게서 아직 독하지 않다는 말을 들은 추경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그녀는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서더니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고는 유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오후.박민정과 유남준이 두원 별장에 돌아왔을 때 추경은도 도착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서 있었고, 그 옆 소파에는 유명훈이 앉아 있었다.“돌아왔어?”유명훈이 말했다.“할아버지.”박민정은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다.“그래.”유명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남준아, 민정아. 경은이는 내 오랜 친구의 딸이자 너희의 사촌 동생이기도 해. 이번에도 너희들이 경은이를 떠나게 하려다가 경은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며?”그 말인즉 박민정과 유남준이 추경은을 쫓아내려고 하지 않았다면 추경은은 돌아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유명훈이 이어서 말했다.“그래서 내가 너희 대신 결정을 내려 경은이를 여기에 머물게 했어. 몸이 회복된 후에는 너희들을 도와 아이들을 봐줄 수도 있고 민정이와 같이 회사에 출근할 수도 있잖아.”한 사람을 더 받아들이는 건 유씨 가문에 있어서 전혀 문제 될 게 아니었다.유명훈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박민정은 더 반박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옆에 있던 유남준이 입을 열었다.“집에 아이를 돌볼 가정부가 있어요. 경은이는 그래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이잖아요. 할아버지께서 경은이가 우리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따로 쉴 곳을 마련하겠습니다.”추경은은 그 말을 듣자마자 즉시 거절했다.“남준 오빠, 나 따로 쉴 필요 없어. 두원 별장에 방도 많으니 그냥 아무 방이나 하나 쓰면 돼.”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사촌 오빠 부부와 함께 살지 않으려고 할 텐데. 너는
추경은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박민정은 그녀가 정말 독하다는 걸 깨달았다.자기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니 결코 보이는 것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추경은은 박민정이 자신을 여기 머물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새언니, 오빠, 몸이 회복되면 꼭 옆에서 잘 도울게요.”“우리를 도울 필요는 없어요. 할아버님 말씀대로 경은 씨는 우리 친척이고, 이 집의 손님이에요.”박민정이 차분하게 말했다.추경은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말했다.“새언니, 정말 친절하시네요. 예전에는 이지원 씨가 제 새언니 되면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에요.”추경은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유명훈은 일이 정리된 것을 보고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윤우가 돌아온 후 그를 한 번 보고는 본가로 돌아갔다.박윤우는 유명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어쩌면 유명훈이 형을 돌보고 있는 김훈 할아버지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그는 추경은을 보자마자 유명훈이 무슨 이유로 왔는지 깨달았다.“경은 이모, 또 우리 집에 오셨어요?”그는 큰 눈을 뜨고 추경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추경은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그래, 윤우야. 앞으로 이모가 매일 옆에 있어 줄게, 어때?”“좋아요.”박윤우는 흔쾌히 대답하고는 덧붙였다.“내일 이모가 저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수 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이 다 이모를 보고 싶어 해요.”추경은은 마침 윤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두 아이의 마음을 얻어야 유씨 가문에 더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깊은 밤.유남준은 당연한 듯이 박민정을 따라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이번에는 윤우가 강요할 필요도 없었다.“왜 나 따라와요?”박민정이 물었다.유남준이 기억을 잃었던 동안엔 늘 혼자 잤었기 때문이다.유남준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당연히 자려고 들어왔지.”“자기 방이 있지 않아요?”박민정이 물었다.하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오해했다.그는 더듬더듬
박민정은 유남준이 사실 아직도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먼저 기억 상실증이나 잘 치료해요. 갑자기 또 이런 일 생기게 하지 말고요.”박민정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어쨌든 예전의 유남준은 정말로 사람을 싫증 나게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응.”유남준은 짧게 대답했다.며칠 후면 연휴가 다가오는데 박민정은 유씨 가문 본가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조금 골치가 아팠다.“자요. 나 너무 피곤해요.”하지만 유남준은 자고 싶지 않았다.그는 박민정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자. 난 안 졸리니까.”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거칠었다.유남준이 박민정의 이마와 입술에 입을 맞추자 박민정은 눈을 크게 떴다.그러자 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그러지 마요.”그녀는 고개를 돌리고는 손으로 유남준을 막았다.유남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착하지. 말 들어.”박민정은 늦은 밤의 유혹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다음 날.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전 11시였다.유남준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박민정은 이제 임신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가끔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적응은 되지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샤워를 하고 꼼꼼히 세수와 양치를 한 후 방에서 나왔다.추경은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박민정이 마침내 방에서 나오자 추경은은 내심 불편했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새언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추경은은 아직도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녀를 도와주기는커녕 피해만 주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았다.“괜찮아요.”“그렇다면 알겠어요, 조심하세요.”추경은은 말을 마친 후 테이블 위의 과일을 집어 들고는 여유롭게 먹기 시작했다.박민정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추경은은 자신의 악보를 뒤적이고 있었다.“그거 어디서 가져온 거예요?”박민정은 손을 뻗어 악보를 빼앗았다.이 악보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곡들이 많았다.하지만 추경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뉴스에서 새언니
한 시간 뒤.칠흑 같은 어둠을 마주하고 있는 박민정과 추경은.그렇다, 두 사람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납치당했다.누군가가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어주고 나서야 박민정은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지금 형편없이 낡은 공사장에 납치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어느 한 기둥에 꽁꽁 묶여 있는 추경은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새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한 시간 전, 두 사람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었다.차에서 장정 몇 명이 우르르 내려더니 다짜고짜 두 사람을 강제로 차에 오르게끔 했다.추경은은 여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채로 벌벌 떨며 언성을 높이고 있다.그런 그녀에게 박민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입 다물어요!”어떻게 된 일인지 그 누가 봐도 한눈에 보이는 장면인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박민정은 또다시 본능적으로 상대가 윤소현의 말에 따라 움직인 정수미라고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곧 그 진실이 드러나라고 말았다.공사장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또각또각 안으로 들어왔다.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박민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이지원?”박민정을 향해 한걸음 씩 천천히 다가간 이지원은 허리를 서서히 숙이며 입을 열었다.“박민정, 어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이지원의 말대로 박민정은 이러한 날이 오게 될 줄이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대체 무슨 배짱으로 자기와 추경은을 납치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추경은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지원 언니, 저예요! 저 추경은이라고요! 저 잊으신 거 아니죠?”이지원은 그제야 납치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추경은?”잠시 생각하더니 이지원은 그제야 추경은이 좀 생각났다.“네, 전에 만난 적 있잖아요. 우리 유씨 가문에서 본 적 있어요.”추경은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이 흥분하며 말했다.“추경은?”이지원은 천천히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