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알겠어요.”요즘 그녀는 몸이 날이 갈수록 무거워져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윤우가 잠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잠이 빨리 드니 대충 10분 정도면 깊이 잠들겠지?’박민정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10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봤다.남자는 눈을 감고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옆모습은 유난히 잘생겨 보였다.“왜 그래?”유남준은 뭔가를 느낀 듯 물었다.그녀는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안 추워요? 이불 덮을까요?”“안 추워.”유남준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추우면 덮어.”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살짝 몸을 일으켜 이불을 두 사람 몸 위로 덮었다.유남준은 그녀가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몸매와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박민정.”“네?”“소리 내지 마. 머리가 아프니까.”유남준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분명 요 며칠 동안 의사가 검진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말이다.하지만 지금 박민정과 같이 있으니 머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그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긴장하면서 물었다.“설마 또 기억을 일부 잃는 건 아니겠죠?”유남준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몰라.”그는 지금 박민정과 계속 대화하면서 방 안이 점점 더 더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윤우가 잠들었을 거야. 나는 다른 방에서 잘게.”“그래요.”박민정은 그가 걸어가는 것을 보며 혹시나 뭔가에 부딪힐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두원 별장의 도우미들은 준비를 잘했다.유남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의자나 탁자 같은 건 아무렇게나 두지 않았다.유남준은 무사히 문 앞에 도착했다.손을 문손잡이에 올리고 아래로 내렸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그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왜 그래요?”박민정은 그가 문을 열지 못하고
“나예요, 박민정.”박민정이 대답했다.박민정의 목소리와 대답을 듣고 유남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렸다.그는 다시 박민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박민정은 그가 지금 왜 이러는지 몰라 피하려고 했다.“무슨 일이에요?”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무슨 일 있겠어? 당신이야말로 연지석과 단둘이 있으니까 기분이 좋았어?”유남준이 물었다.박민정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지금이 몇 년도라고 생각해요?”유남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손을 뻗었다.이번에 박민정은 피하기 전에 그의 품에 꼭 안겼다.“이거 놔요.”박민정이 다급하게 말했다.하지만 유남준은 놓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더 꼭 껴안았다.“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는 거야? 당신과 연지석 때문에 내가 거의 죽을 뻔했던 거 알아?”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물었다.“다 생각났어요?”유남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그냥 에스토니아에 갔다가 박민정의 이름으로 연지석 사람들에게 속아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을 기억할 뿐이었다.하지만 박민정은 지금 왜 다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는지 알 수 없었다.‘혹시 죄책감을 느낀 건가?’유남준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든 아니든 상관없이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잡고는 바로 키스를 퍼부었다.박민정은 몸이 굳어졌다. 눈을 크게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문밖에서.잠에서 깨어난 박윤우는 문이 아직 잠겨 있는 것을 보고는 기뻐했다.‘어젯밤에 아빠와 엄마가 내 말을 잘 들었군.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머리를 쓴 보람이 있어.’그는 열쇠를 꺼내 잠겨 있는 문을 열었다.그리고 곧바로 유남준이 박민정에게 키스를 퍼붓는 모습을 포착했다.박윤우는 손에 든 열쇠를 떨어뜨리더니 다른 한 손으로 다급하게 눈을 가렸다.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키스하는 모습이 여전히 보였다.“죄송해요. 일부러 들어온 건 아니에요.”밖에서 아이의 소리가 들리자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은 급히 떨어졌다.박민정의 얼굴
김인우도 병원에 있었다.유남준과 박민정이 손을 잡고 들어오자 친구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남준아.”그는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박민정은 유남준을 그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김인우에게 말했다.“들어가 보자고.”“그래.”김인우는 기어이 박민정의 손을 잡는 유남준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유남준은 곧바로 전문 검사실로 들어갔고 박민정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치료를 받은 지 좀 되었지만 박민정은 유남준이 완쾌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케이스는 의료계에서도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서다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유남준이 기억을 되찾았단 걸 알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에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예상대로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도 의사들은 유남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그 상황을 보던 김인우는 화가 났다.“왜 아무것도 검사해 내지 못해요? 돌팔이 아니에요?”“조용히 해.”유남준이 말했다.김인우는 바로 입을 다물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남준아, 정 안 되면 우리 서울이나 해외에 있는 병원에 가는 게 어떨까?”진주에서 김씨 가문의 의료 시설은 최고였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의 의료진이 최고라고 말할 수 없었다.유남준은 이러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번 알아봐야지.”서다희가 그 말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대표님, 지금 바로 가서 알아보겠습니다.”“그래.”그들의 얘기가 다 끝나고서야 박민정은 병실로 들어갔다.“지금은 좀 어때요?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고요?”“별일 없대.”유남준은 그녀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별일 없다니 다행이네요.”최근 며칠 동안 그는 자주 기억을 잃곤 해서 박민정은 걱정이 들었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목발을 짚은 한 사람이 문밖에서 안을 살펴보며 말했다.“오빠.”앙탈 부리는 그 목소
“형이 예전에 기억을 잃은 적이 있는데 병이 완전히 나은 게 아닐지도 몰라.”유남우는 제호 클럽의 옥상에 서 있으면서 추경은에게 말했다.“기억을 잃은 적이 있다고?”추경은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누군지 오늘 기억하지 못했던 거구나?”“너 형과 결혼하고 싶지?”유남우는 갑자기 화제를 바꿔 물었다.추경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래. 난 어려서부터 남준 오빠를 좋아했잖아.”유남준은 유씨 가문에서든 외부에서든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다만 지금은 운이 나빠서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을 뿐이다.공교롭게도 마침 그 일 때문에 추경은은 자신이 유남준과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그럼 네가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네. 자칫하면 다시 기억을 잃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유남우는 뒷말을 삼켰다.추경은은 그의 말을 이해했지만 고민이 되었다.“진주에 남기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냈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야.”“그럼 마음을 아직 덜 독하게 먹었네.”유남우가 중얼거렸다.추경은이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전화가 끊어졌다.권씨 가문의 도련님 권해신이 다가오며 말했다.“왜? 윤소현이 너 뭐 하는지 물어봐?”유남우는 그저 미소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권해신의 음흉한 얼굴에 부러움이 살짝 묻어났다.“윤소현을 건드리면 안 되긴 하지. 정수미가 대단한 인물이잖아.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도 정수미 눈치를 봤었어.”권해신은 유남우가 돌아와서도 계속 호산 그룹의 대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정수미라는 미래의 장모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했다.유남우는 웨이터가 들고 있던 술을 받아 들고는 한 모금 살짝 마셨다.“IM 그룹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냈어?”권해신은 들고 있던 술을 단숨에 비우며 말했다.“아직 알아내지 못했어. 외국인인 것 같아.”그리고 그는 또 물었다.“참, 네 형은 지금 뭐 하고 있어?”“눈먼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유남우는 이제 유남준을 전혀
지난번 이지원이 탈출한 이후 권진하는 몰래 그녀를 숨겨주고 있었다.“좋아. 이 일은 반드시 잘 처리해야 해.”권해신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병원에서.유남우에게서 아직 독하지 않다는 말을 들은 추경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그녀는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서더니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고는 유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오후.박민정과 유남준이 두원 별장에 돌아왔을 때 추경은도 도착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서 있었고, 그 옆 소파에는 유명훈이 앉아 있었다.“돌아왔어?”유명훈이 말했다.“할아버지.”박민정은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다.“그래.”유명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남준아, 민정아. 경은이는 내 오랜 친구의 딸이자 너희의 사촌 동생이기도 해. 이번에도 너희들이 경은이를 떠나게 하려다가 경은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며?”그 말인즉 박민정과 유남준이 추경은을 쫓아내려고 하지 않았다면 추경은은 돌아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유명훈이 이어서 말했다.“그래서 내가 너희 대신 결정을 내려 경은이를 여기에 머물게 했어. 몸이 회복된 후에는 너희들을 도와 아이들을 봐줄 수도 있고 민정이와 같이 회사에 출근할 수도 있잖아.”한 사람을 더 받아들이는 건 유씨 가문에 있어서 전혀 문제 될 게 아니었다.유명훈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박민정은 더 반박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옆에 있던 유남준이 입을 열었다.“집에 아이를 돌볼 가정부가 있어요. 경은이는 그래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이잖아요. 할아버지께서 경은이가 우리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따로 쉴 곳을 마련하겠습니다.”추경은은 그 말을 듣자마자 즉시 거절했다.“남준 오빠, 나 따로 쉴 필요 없어. 두원 별장에 방도 많으니 그냥 아무 방이나 하나 쓰면 돼.”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사촌 오빠 부부와 함께 살지 않으려고 할 텐데. 너는
추경은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박민정은 그녀가 정말 독하다는 걸 깨달았다.자기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니 결코 보이는 것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추경은은 박민정이 자신을 여기 머물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새언니, 오빠, 몸이 회복되면 꼭 옆에서 잘 도울게요.”“우리를 도울 필요는 없어요. 할아버님 말씀대로 경은 씨는 우리 친척이고, 이 집의 손님이에요.”박민정이 차분하게 말했다.추경은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말했다.“새언니, 정말 친절하시네요. 예전에는 이지원 씨가 제 새언니 되면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에요.”추경은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유명훈은 일이 정리된 것을 보고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윤우가 돌아온 후 그를 한 번 보고는 본가로 돌아갔다.박윤우는 유명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어쩌면 유명훈이 형을 돌보고 있는 김훈 할아버지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그는 추경은을 보자마자 유명훈이 무슨 이유로 왔는지 깨달았다.“경은 이모, 또 우리 집에 오셨어요?”그는 큰 눈을 뜨고 추경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추경은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그래, 윤우야. 앞으로 이모가 매일 옆에 있어 줄게, 어때?”“좋아요.”박윤우는 흔쾌히 대답하고는 덧붙였다.“내일 이모가 저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수 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이 다 이모를 보고 싶어 해요.”추경은은 마침 윤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두 아이의 마음을 얻어야 유씨 가문에 더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깊은 밤.유남준은 당연한 듯이 박민정을 따라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이번에는 윤우가 강요할 필요도 없었다.“왜 나 따라와요?”박민정이 물었다.유남준이 기억을 잃었던 동안엔 늘 혼자 잤었기 때문이다.유남준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당연히 자려고 들어왔지.”“자기 방이 있지 않아요?”박민정이 물었다.하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오해했다.그는 더듬더듬
박민정은 유남준이 사실 아직도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먼저 기억 상실증이나 잘 치료해요. 갑자기 또 이런 일 생기게 하지 말고요.”박민정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어쨌든 예전의 유남준은 정말로 사람을 싫증 나게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응.”유남준은 짧게 대답했다.며칠 후면 연휴가 다가오는데 박민정은 유씨 가문 본가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조금 골치가 아팠다.“자요. 나 너무 피곤해요.”하지만 유남준은 자고 싶지 않았다.그는 박민정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자. 난 안 졸리니까.”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거칠었다.유남준이 박민정의 이마와 입술에 입을 맞추자 박민정은 눈을 크게 떴다.그러자 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그러지 마요.”그녀는 고개를 돌리고는 손으로 유남준을 막았다.유남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착하지. 말 들어.”박민정은 늦은 밤의 유혹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다음 날.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전 11시였다.유남준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박민정은 이제 임신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가끔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적응은 되지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샤워를 하고 꼼꼼히 세수와 양치를 한 후 방에서 나왔다.추경은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박민정이 마침내 방에서 나오자 추경은은 내심 불편했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새언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추경은은 아직도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녀를 도와주기는커녕 피해만 주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았다.“괜찮아요.”“그렇다면 알겠어요, 조심하세요.”추경은은 말을 마친 후 테이블 위의 과일을 집어 들고는 여유롭게 먹기 시작했다.박민정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추경은은 자신의 악보를 뒤적이고 있었다.“그거 어디서 가져온 거예요?”박민정은 손을 뻗어 악보를 빼앗았다.이 악보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곡들이 많았다.하지만 추경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뉴스에서 새언니
한 시간 뒤.칠흑 같은 어둠을 마주하고 있는 박민정과 추경은.그렇다, 두 사람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납치당했다.누군가가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어주고 나서야 박민정은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지금 형편없이 낡은 공사장에 납치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어느 한 기둥에 꽁꽁 묶여 있는 추경은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새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한 시간 전, 두 사람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었다.차에서 장정 몇 명이 우르르 내려더니 다짜고짜 두 사람을 강제로 차에 오르게끔 했다.추경은은 여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채로 벌벌 떨며 언성을 높이고 있다.그런 그녀에게 박민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입 다물어요!”어떻게 된 일인지 그 누가 봐도 한눈에 보이는 장면인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박민정은 또다시 본능적으로 상대가 윤소현의 말에 따라 움직인 정수미라고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곧 그 진실이 드러나라고 말았다.공사장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또각또각 안으로 들어왔다.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박민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이지원?”박민정을 향해 한걸음 씩 천천히 다가간 이지원은 허리를 서서히 숙이며 입을 열었다.“박민정, 어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이지원의 말대로 박민정은 이러한 날이 오게 될 줄이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대체 무슨 배짱으로 자기와 추경은을 납치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추경은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지원 언니, 저예요! 저 추경은이라고요! 저 잊으신 거 아니죠?”이지원은 그제야 납치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추경은?”잠시 생각하더니 이지원은 그제야 추경은이 좀 생각났다.“네, 전에 만난 적 있잖아요. 우리 유씨 가문에서 본 적 있어요.”추경은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이 흥분하며 말했다.“추경은?”이지원은 천천히 기억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하지 마.”윤소현은 박민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소리쳤고 박민정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무릎 꿇고 사과해!”윤소현은 단호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그녀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그녀를 망신시키고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무릎을 꿇으라고?’박민정은 아이를 해친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그건 못 해요.”윤소현은 다시 정수미와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보셨죠? 증거가 다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잖아요. 사과조차 하지 않겠다고요.”그녀는 이어 말했다.“이제 경찰서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요.”윤소현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영란과 정수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 박민정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해쳤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을 터였다.그러나 박민정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다.아이의 상처는 모두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고 박민정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그녀는 간단히 사건 경위를 설명한 뒤, 임시로 구금되었다.혼자 차가운 공간에 남겨진 박민정은 종종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유남준이 그녀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본가로 돌아갔다가 박민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물어본 끝에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이후 고영란과 연락을 취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도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 아이를 해쳤다고 믿어요?”유남준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누가 뭐래도 네가 했을 리 없어. 넌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