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굳어버린 박민정을 느끼지 못한 채 유남준은 몸을 한껏 더 숙여 입술에 뽀뽀했다.그 모습에 박윤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뽀뽀만 하라고 했지 입술에 키스하라고 하지 않았는데!’“엄마.”박윤우의 부름에 박민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유남준을 밀쳐냈다.“그만하고 밥 먹어요. 이러지 말고.”유남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그래.”그렇게 일가족이 단란하게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조금 쉬고 나서 9시쯤 씻으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박윤우가 박민정의 손을 잡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엄마, 오늘 아빠하고 나하고 같이 자자.”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유남준이 먼저 대답했다.“윤우야, 인제 세 살짜리 어린이도 아니고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박윤우는 그 대답에 그저 멍하기만 했다.‘왜 이러시는 거지? 아빠 도와주려고 이러고 있는 거잖아!’하지만 유남준은 박윤우의 마음을 몰라주었고 박윤우 역시 어떻게 사인을 보내면 좋을지 몰랐다.“알았어요.”자기 마음을 몰라주니 박윤우는 더 이상 도와주기가 귀찮아졌다.하지만 유남준은 그 마음을 몰라준 것이 아니라 박민정과 단둘이 누워있고 싶었던 것이었다.먼저 방으로 박윤우를 보내고 나서 유남준은 박민정의 뒤로 쪼르르 따라갔다.박민정은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는데.“왜 이렇게 쫓아다녀요?”유남준은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같이 자려고.”“안방으로 들어가서 자요. 저는 객실에서 자면 돼요.”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채로 박민정이 대답했다.임신한 몸이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유남준과 함께 눕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박민정이 거절할 것으로 생각지 못한 유남준은 두말하지 않고 앞으로 두어 걸음 다가가 그녀를 번쩍 들었다.“아니, 같이 잘 거야.”박민정이 반항을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안방으로 안고 갔다....고요한 밤.윤씨 가문 사람들은 아직 잠에 들지 못했다.법원에서 보내온 압수 집행서를 보면서 윤석후는 눈살을 찌푸렸다.“박민정은 대체 어디서 그
윤석후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주식을 팔자마자 유남준이 뒤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그의 모든 주식을 사들인 것에 대해.그것도 모르고 윤석후는 이득을 봤다며 좋아했을 것이다.“계속 소송 진행하지 않으면 박민정한테 무조건 그 돈을 다 갚아야 한다는 거잖아요?”윤소현이 물었다.이때 윤석후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는데.“소현아, 박민정이 저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 건 내가 아직 네 엄마랑 부부 사이여서 그러는 거야. 만약 내가 이혼하면 이는 한수민 개인의 채무가 되는 거야.”그 말을 들은 윤소현은 반박하지 않았다.“내일 엄마 찾으러 가요.”한수민보다는 돈이 더 좋은 윤소현이다.다음날 이른 아침.한수민의 병실은 오랜만에 북적거렸다.윤석후와 윤소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자기를 보러 온 줄 알고 한수민은 윤석후를 일부러 상대조차 하지 않은 채 윤소현하고만 얘기를 주어 받았다.그동안 단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은 윤석후는 자기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윤소현에게만 눈짓을 했다.윤소현 역시 이에 대해 눈치 차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이윽고 윤소현은 박민정의 모든 행위에 대해 부채질하며 한수민에게 알려주었다.“미친 거 아니야? 정말로 돈을 요구했단 말이야?”모든 걸 듣고 난 한수민이 욕설을 퍼부었다.“엄마, 간병인한테 듣자 하니 박민정이 어제도 찾아왔다면서요. 무슨 일로 온 거죠?”“별거 아니고 그냥 돈 갚으라고 그 소리 하려고 온 거야.”한수민은 윤소현의 손을 잡고서 덧붙였다.“소현아, 네가 고생이 많다.”“앞으로 매주 찾아온다고 했었어 그 미친년이.”윤소현은 떠보며 물었는데.“엄마, 다른 방법은 없어요? 돈 갚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없나요?”잠시 침묵하더니 한수민은 말을 아끼며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윤소현은 더 이상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저희한테 있긴 해요.”“그게 뭔데?”“아빠랑 이혼해 주세요.”순간 벼락에 맞은 것만 같은 한수민이었다.두 사람이 이렇
“엄마, 또 바지에 오줌 눴어요?”싫어하는 모습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낸 윤소현이다.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한수민은 이불을 당기면 어떻게든 냄새를 가리려고 했다.그 모습에 윤소현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이 지경까지 되었으면 이혼할 법도 한데, 대체 왜 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예요?”이제 곧 죽게 될 몸인데, 짐이 되지 말고 홀로 모든 걸 안고 떠나라는 소리였다.하지만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난처하기 그지없는 한수민이다.“생각해 볼게. 그만 가 봐.”“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박민정이 모든 걸 빼앗아 갈지도 몰라요.”윤소현 역시 이곳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 윤석후를 데리고 떠났다.그들이 떠난 뒤 간병인이 바로 들어왔다.“사모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불러드릴까요?”눈시울이 붉어진 한수민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시트 좀 갈아주세요.”외부인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써 왔던 그녀이다.간병인은 먼저 한수민을 부축해 일어서고 시트를 갈려고 했는데, 오줌을 눈 그곳에서 피가 가득했다.그동안 많은 환자들을 간병해 왔지만, 그곳을 보는 순간 간병인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피... 피가 엄청 많아요...”한수민 역시 눈길을 돌렸는데,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어서! 어서 의사 불러와요.”죽음이 두려운 한수민이다.의사와 간호사가 급히 달려왔고 그들은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간호사가 한수민에게 말했다.“환자분, 마음 편히 놓으세요. 말기에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건 정상이거든요.”“제가 알아본 게 좀 있는데, 제가 곧 죽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요?”한수민이 간호사의 옷자락을 꽉 잡고 물었다.지금까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그녀는 아직 이 세상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간호사와 의사는 한수민에게 도저히 잔인한 사실을 말해줄 수 없었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쉬고 있으라고만 했다.옆에서 모든 걸 지켜본 간병인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한수민을 바라보았다.“사모님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한수민은 차를 타고 병원 밖으로 빠져나왔다.하도 오랜만이라 격세감이 들 정도였다.“손님, 어디로 모실까요?”운전기사가 물었다.순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수민은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몰랐다.그렇게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박씨 가문 본가로 향하기로 했다.30분 뒤, 차는 박씨 가문 본가에 도착했다.법원 손을 거쳐 이미 다른 이의 집으로 넘어갔겠고 생각하고 본가에 변화가 많을 줄 알았다.하지만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보니 본가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집안이든 밖이든 깨끗하기 그지없었고 마당에는 벗꽃이 하늘거리고 있었다.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채로 한수민은 천천히 다가갔다.이지원이 본가를 산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수민이다.이지원을 본지 하도 오래되었기에 한수민은 이 집을 유남준이 1년 전에 사들인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어떻게 오신 거죠?”청소하던 아줌마가 한수민을 보고 나왔다.한수민은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이 집 원래 주인이에요.”“이 집 주인은 박씨 가문이 아닌가요?”아줌마는 다소 의아해하며 덧붙였다.“박민정 씨와 어떻게 되는 사이시죠?”유남준은 일찍이 명의를 박민정에게 넘겨주었는데,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고 청소 아줌마만 보내왔던 박민정이다.한수민은 아줌마의 입에서 다른 정보를 알아냈으나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 뜻은 이 집주인이 박민정이란 말이에요?”“네, 저는 정해주신 시간대로 청소하러 오는 사람이고요.”거듭 확인해도 한수민은 믿어지지 않았다.‘박민정이 무슨 돈으로 본가를 사들인 거지?’그렇게 넋을 잃고 있을 때 아줌마가 또다시 물었다.“사모님 친척분 되시는 거예요? 들어가서 좀 기다리고 계실래요? 오늘 사모님 오실 거예요.”한수민은 거절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인테리어도 작은 소품까지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변한 게 있다면 거실에 흑백으로 된 박형식의 사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박형식은 사진을 보게 되는 순간 한수민은 눈동자가 흔들렸고 감정이 복잡
“정말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날 낳아준 것을 봐서라도 죽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박민정의 모습을 보고서 한수민은 비아냥거렸다.“유남준이 너한테 홀딱 빠져서 지금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거 같지? 천만에!”“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죽게 두지 않아?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야! 우리 소현이가 얼마나 우수하고 대단한지 알아? 소현이가 있어서 내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 지 알기나 해? 그냥 떠보면서 하는 소리였는데, 이렇게 네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야? 개를 키워도 너보다 낫겠어...”욕설을 퍼붓고 있는 한수민이다.박민정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다시 집안으로 돌아와 박윤우와 함께 제사 준비를 했다.한참이나 욕설을 퍼부은 한수민은 아랫배가 또다시 아파 나기 시작했고 피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청소 아줌마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괜찮으세요?”하지만 한수민은 이미 밀려온 통증에 말조차 할 수 없었다.아줌마는 황급히 박민정을 찾으러 갔고 바지까지 피에 흠뻑 젖었다는 말을 해주었다.채소를 다듬고 있던 박민정은 멈칫거렸으나 가지 않았다.“병원으로 바래다 드리라고 경비원한테 부탁해 주세요.”“네.”박윤우도 함께 채소를 다듬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박민정을 바라보았다.“엄마, 외할머니 걱정되면 나가 봐.”박민정의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 잘 알고 있는 박윤이다.하지만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어린아이한테 한수민과 자기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윤우야,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키워주시면 어른이 되고 나서 부모님을 도로 돌봐줘야 한다는 말이 있단다.”“만약 내가 윤우를 낳기만 하고 키워주지 않았다면 윤우는 앞으로 엄마를 돌봐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박윤우는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외할머니께서 엄마한테 모질게 했으면 우리 그냥 신경 쓰지 말자.”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박민정은 박윤우를 꼭 안아주었다.실은 전까지만 해도 한
박밈정은 윤소현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한수민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했던 딸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병원 앞에 이른 한수민은 핸드폰을 들고서 윤소현에게 말했다.“이미 와 있어요.”그 말을 듣고서 윤소현은 더 이상 핑계를 찾지 않았다.“나도 갈게.”전화를 끊고 비서에게 차를 대기하라고 했다.병원 안에서.수술을 마친 한수민은 한참이나 기절해 있었다.힘겹게 눈을 뜬 한수민의 시야로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베란다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던 윤소현이었다.“소현아...”힘없는 한수민의 소리에 윤소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가갔다.“엄마, 깨어나셨네요.”한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야?”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윤소현은 거짓말을 했다.“네, 앞으로 혼자 병원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너무 위험하지 않아. 네?”병원으로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정이 떠났다.“알았어. 우리 소현이 말 들어야지.”윤소현을 바라보고 있는 한수민은 눈빛은 그토록 자상할 수가 없었다.분위기를 보아 윤소현은 자리에 앉았다.“엄마, 전에 드렸던 그 제안에 대해서 생각 다 하셨어요? 이혼 냉각기라는 것도 있고 하니 얼른 결정 내리셔야 해요.”한수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예요? 개의치 않으셔도 괜찮아요. 어차피 한 달 동안 냉각기도 있잖아요.”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윤소현이다.“그래.”한수민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재산만 지킬 수 있다면 박민정에게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억울함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럼, 내일 아빠랑 엄마 구청으로 모시고 갈게요.”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윤소현은 바로 태도를 바꾸며 한수민과 담소를 나눴다.윤소현이 떠나고 나서 옆에 있던 간병인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사모님, 제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러는데요... 사모님 수술하시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분은 저분이 아니에요.”“
박민정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그제야 수신 버튼을 눌렀는데.“연지석?”하도 오랜만에 하는 전화라 박민정은 상대가 연지석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래. 나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내내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마침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괜찮아?”윗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연지석은 한참 침묵했다.“아니.”그러자 박민정은 다시 다급해 물었다.“어디 아파?”“여기저기 다 아파. 이제 겨우 정신 든 거야.”연지석은 살짝 억울해하며 덧붙였다.“보러 오지도 않고.”그 말에 박민정은 미안하기만 했다.“너 지금 어디에 있어? 오늘 밤 비행기로 보러 갈게.”“그래. 주소 보내줄 테니 이리 와.”연지석은 먼저 전화를 끊고서 주소를 보내주었다.주소를 받아 적고 난 뒤 박민정은 다시 전화를 걸어 몸 상황이 어떠한지 물었다.연지석은 너스레를 떨었는데.“염라 대왕님께 인사드리고 왔어. 근데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다고 아직 죽으면 안 된다고 빌고 빌어서 다시 날 보내준 거야.”박민정은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장난으로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짐부터 챙기고 내일 갈게.”연지석이 이제 막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친구 하민재가 손짓을 했다.“나 보러 와도 되는 거야? 유남준 씨 뭐라고 하지 않아?”유남준에 대해 언급하자 박민정은 죄책감이 더 깊어졌다.연지석이 그렇게 된 것에 유남준의 몫이 대단했기 때문이다.“그럴 리가. 하물며 내가 무슨 그 사람 부속품도 아니고 내가 내 발로 가겠다는 데 뭐라고 할 게 뭐가 있어.”“알았어.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그래.”연지석은 전화를 끊고서 고개를 돌려 하민재를 바라보았다.매혹적인 두 눈에 불쾌함을 띄고서 입을 열었다.“고요 속의 외침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왜 자꾸 손짓하고 난리야.”하민재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제대로 얘기하고 와야지. 아니면 어떻게 여기까지 널 보러 올 수 있겠어.”연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유부녀야. 대체 언제까지 포
침묵하고 있던 유남준은 박민정이 옆을 지나갈 때 팔을 덥석 잡았다.“같이 가.”아내 홀로 라이벌을 만나러 가게 가만히 둘 리가 없다.박민정은 의아하기만 했는데.“따라가서 뭐 하려고요?”“외국은 안전하지 않아. 너 지켜주려고 따라가려는 거야.”유남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연지석이 있는 곳은 안전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또다시 박민정을 데리고 숨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때 후회해도 쓸모없을 것이다.그렇게 자기만을 사랑했던 박민정인데 갑자기 연지석과 함께 4, 5년 동안 사라졌으니 말이다.하물며 지금 두 사람 사이는 예전처럼 가까운 것도 아니라 그냥 보낼 수 없었다.혹시나 또 사라질 수도 있으니.“괜찮아요. 에스토니아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그리고 지석이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는 것도 좀 그렇고요.”“뭐가 그렇다는 거야? 난 네 남편이야.”유남준은 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박민정은 그제야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자기 팔을 꼭 잡고 있던 유남준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내가.”유남준은 여전히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넌 걱정이 안 돼. 환경이 걱정된다는 거지.”“그럼, 혼자 갈래요.”박민정은 고집을 피웠고 더 이상 그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유남준도 따라서 들어왔는데, 분위기는 한껏 굳어졌다.모르는 이가 봐도 유남준이 박민정을 ‘믿지’않고 있는 것이다.이때 박윤우가 천천히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아빠, 엄마 걱정되시면 몰래 따라가도 되잖아요.”유남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한기가 대단했다.“그게 포인트가 아니야.”박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지.박윤우는 손으로 턱을 짚고서 그럴듯하게 물었다.“그럼, 뭐가 문제죠? 엄마가 지석 삼촌 만나러 간다고 해서 질투 난 거예요?”“저라면 질투 날 것 같기도 해요. 지석 삼촌 키도 크고 잘생기고 게다가 엄마랑 죽마고우로 지내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