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전체를 빌려 아이 엄마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이미 아이들이 해외에 가는 일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그들은 박민정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하던 말을 멈추고 전부 시선을 주목했다.박민정은 옷을 아주 겸손하게 차려입었고 은은하고 연한 메이크업을 했다. 오른쪽 얼굴에 있는 흉터가 있어도 그녀의 세련된 아우라를 감출 수는 없었다.그녀들도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었지만 박민정의 날씬한 몸매와 예쁜 얼굴을 보고 질투를 느꼈다.그녀들은 피부관리를 항상 받고 있었지만 박민정의 피부보다 좋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의 얼굴에는 흉터가 있었다.“안녕하세요.”박민정은 시간을 확인하고서는 늦지 않은 것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최현아와 시선을 마주쳤다.유지훈과 박예찬은 같은 반이었기에 최현아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최현아는 상석에 앉아서 박민정을 못 본 척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다른 사람들은 상석에 앉은 최현아가 박민정을 무시하자 모두 그녀의 인사에 호응하지 않았다. 어제 박민정에게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던 지원이 엄마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예찬이 엄마. 와서 내 옆에 앉아요.”박민정은 고마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 뒤 그녀의 옆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최현아는 계속 말했다.“이번에 아이들의 비행기 티켓과 숙박비는 내가 책임질게요. 지금 시터 비용과 가이드 비용 그리고 여행 프로그램 비용 등이 남았는데 내가 부담하는 3억을 제외하면 16억 남았어요.”박민정은 최현아가 말하는 긴 비용 목록을 듣고서 오늘 아이들의 여행 비용을 논의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지원 엄마가 김민정에게 설명해 줬다.“우리 학교와 다른 학교는 조금 달라요. 다른 학교 아이들은 모두 각자 부담해서 가는데 우리는 학부모 위원회 분들의 가정 형편이 좋아서 아이들과 선생님의 여행 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어요.”김민정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한 엄마가 손을 들고 말했다.“전 2천만 원 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박민정이 창피를 당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마음속으로 그녀가 남은 비용을 잘못 계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예상외로 박민정은 침착하게 대답했다.“물론입니다.”그녀는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지금 카드로 할 수 있을까요?”12억이라는 돈이 현재 그녀에게는 딱히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니었다.그녀가 비싼 옷과 가방을 입지 않은 것은 단순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최현아는 오늘 박민정을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오히려 당황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박민정이라는 새로운 아기 엄마가 나타나서 12억이 넘는 비용을 지원했는데 학부모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녀는 3억을 지원했다.최현아는 억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찬 어머니 정말 마음이 넓으시네요.”다른 사람들도 박민정이 그 많은 돈을 정말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원래 그녀를 바라보던 경멸스러운 눈빛이 조금 변했다.회의가 끝난 뒤 지원 엄마는 박민정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눴다.“예찬 엄마 아이들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지원하고 가족들이 반대할까 봐 걱정되지 않아요?”“그 돈은 제가 번 거예요. 가족들 의견은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지원 엄마는 그녀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최현아가 돈이 많은 것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났고 그 뒤로는 애초에 돈이 부족할 걱정이 없는 재벌가 유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하지만 박민정은 그녀가 알기로는 인터넷 뉴스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재산을 그녀의 남동생에게 남겨줬다고 들었다.비록 그녀는 유남준과 결혼했지만 결혼한 뒤 몇 년 동안 유남준과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아예 그녀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이제 유남준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더욱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예찬 엄마 미안해요.”지원 엄마는 갑자기 사과를 건넸다.박민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사과를 하세요?”“사실 이 위원장이 나
지원 엄마는 박민정의 아이디어에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박민정을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끌고 가서 말했다.“예찬 엄마, 최현아 씨가 왜 학부모 위원장이 됐는지 알아요? 유씨 가문에서 매년 유치원에 200억씩 기부하거든요. 그쪽도 유씨 가문의 며느리인 건 알지만 남편이...”눈이 멀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다.“만약 제가 더 기부하면요?”지원 엄마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학부모 위원장은 학교 측 의견도 있어요. 그리고 학부모 위원회 엄마들이 투표로 뽑는 건데 이제 막 들어온 사람에게 위원장 자리를 주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누가 감히 유씨 가문의 심기를 건드리겠어요? 다들 유씨 가문과 최현아 씨 모임에 들어가려고 난리예요. 최현아 씨 한마디면 남편 회사 일이 잘 풀리니까요.”유씨 가문의 실세가 아닌 유성혁도 이 정도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박민정은 호산 그룹을 아무나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고 확신했다.지원 엄마는 그녀가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혹시 최현아 씨에게 밉보이는 행동을 했어요?”비록 최현아와는 사촌지간이지만 그래도 시누이 사이인데 보통 가족이라도 다투기 마련인 걸 더구나 여긴 대가족이었다.“저희 사이엔 큰 갈등이 있죠.”예전에는 말로만 박민정을 모함하던 최현아가 이제는 유지훈에게 자신의 아들을 해치라고 시킨 것이다.또한 그녀는 최씨 집안 부모님까지 불러 윤우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이 말을 들은 지원 엄마는 자신이 엉뚱한 사람에게 붙은 건 아닌가 싶어 조금 겁이 났다.“예찬 엄마, 어차피 애들 학교 다니는 건 2, 3년밖에 안 되니까 그냥 최현아 씨한테 잘못 인정하고 고개 숙이고 조금만 참는 게 어때요?”참으라고?박민정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러 번 참아주면 상대는 결국 자신을 우습게 볼 것이다.“알겠어요.”그녀는 지원 엄마에게 속내를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최현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바로 가서 일러바칠지 누가 알겠나?지원 엄마가 떠나
박민정은 엄마로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준비하기로 결심했다.먼저 유치원 원장에게 투자에 대해 문의했고 원장도 흔쾌히 동의했다.그리고 박민정은 엄마들의 모임에 천천히 들어갈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엄마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고 박윤우는 잠든 눈을 비비며 불렀다.“엄마, 밥 먹을 시간이에요.”“그래.”박민정은 컴퓨터를 닫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밥 먹을 시간이 되자 박윤우는 일부러 박민정과 유남준을 함께 앉혔다.“엄마 내 맞은편에 앉아요.”아이 맞은편에는 유남준이 앉아 있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을 힐끗 보고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자리에 앉았다.식사 자리에서 유남준의 음식은 가정부가 떠줬기에 더는 당근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유남준은 식욕이 별로 없었는지 대충 몇 입 먹는 시늉을 했다.두 사람은 아주 가깝게 앉았는데, 박민정의 팔이 이따금 유남준의 팔에 닿자 그녀가 살짝 멀어지려던 찰나, 식탁 아래에서 유남준이 손을 뻗어 박민정의 의자를 옆으로 끌어당겼다.드르륵-의자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나며 박민정의 몸이 함께 흔들리더니 그대로 그의 품에 쓰러질 뻔했다.“뭐 하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안 보여서 의자를 잘못 잡아당겼네.” 유남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박민정도 더 따지지 않고 다시 의자를 옮기려는데 이번엔 유남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또 잘못 잡았어요?” 박민정은 다소 화가 났지만 때마침 박윤우가 말을 꺼냈다.“엄마, 아빠는 앞이 안 보이니까 좀 이해해 줘요.”박민정은 유남준이 아이에게 무슨 약이라도 먹인 듯 왜 윤우가 계속 그의 편을 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억지로 손을 빼고 고개를 숙여 식사를 계속했다.바로 그 순간 전화가 걸려 왔고 박민정은 에리의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에리, 무슨 일이야?”에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세 부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
박윤우는 잠들기를 거부했다. “엄마, 엄마랑 아빠가 저랑 형한테 이야기해 주면 안 돼요?”“무슨 이야기 듣고 싶어? 엄마가 나중에 들려줄게.”다정하게 말하는 박민정은 자신은 해줄 수 있어도 유남준은 필요 없다는 뜻을 전했다.유남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인공지능 로봇 가져와서 너희들에게 이야기 해주라고 할게.”“...”이 아빠가 정말 눈치도 없네.말하면 말한 대로 하는 유남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시뮬레이션이 잘 된 지능형 로봇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해주고 간단한 집안일도 돕게 했다.박윤우는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로봇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박예찬과 함께 얼른 침실로 들어가 로봇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은 두 아이가 금방 말을 듣자 문득 유남준이 기꺼이 받아줬더라면 해외에서 자신 따라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불렀다.“오늘 학부모 위원회에서 무슨 일 있었어?”멈칫한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덧붙였다.“내가 애들 아빠인데 아이를 몰래 낳더니 아직도 숨기려는 거야? 나도 알 권리가 있어.”박민정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가 갑자기 학부모 위원회에 물어봐서 망설였다.“학부모 위원회 위원장이 최현아 씨인데, 한 아이의 학부모가 알려줬어요. 학교 측 담당자와 가까운 사이인데 아이들을 따돌리고 왕따 시킬 수 있다고요.”유남준은 오늘 박민정이 아이와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살짝 망설이는 걸 보아 분명 말하지 않은 일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런 일인 줄은 몰랐다.“최현아의 위원장 자리는 유씨 가문이 수년에 걸쳐 유치원에 투자한 것과 관련이 있을 거야. 내 기억이 맞다면 할아버지가 유치원의 최대 주주지.”박민정은 유치원에 투자한 사람이 유성혁인 줄은 알았는데 그 배후가 유명훈인 걸 보니 증손자인 유지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모양이었다.“그 얘기는 들었어요.” 박민정이 말하자 유남준은 카드를 꺼내 박민정에게 건넸다.“여기 있
박민정은 지원 엄마의 SNS도 살펴봤는데 딸 자랑과 인생 글귀를 제외하면 그녀가 직업도 없고 돈도 없이 집에서 시어머니에게 끌려다닌다는 걸 알 수 있었다.박민정이 SNS를 살펴보던 중 엄마들 단톡방에 누군가 문자를 보냈다.[일요일에 다들 시간 되세요? 우리 집에 파티하러 와요.] 최현아였다.평소 최현아는 해외 출장을 가지 않을 때면 엄마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파티를 하곤 했는데 심심한 것도 있었고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함도 있었다.이번에 초대를 하며 최현아는 특별히 박민정도 언급했다.오늘 박민정을 망신시키지 못했으니 박민정이 파티에 오기만 하면 반드시 난처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먼저 답장을 보낸 건 지원 엄마였다.[좋아요, 위원장님. 빨리 만나고 싶네요.]벌써 자정인 데다 박민정은 가사를 써야 하는 상황인데 지원 엄마가 아직 깨어 있었고 게다가 가장 먼저 답장을 보낼 줄은 몰랐다.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참석하겠다며 답장을 보냈고 박민정이 답장을 하지 않자 지원 엄마가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예찬 엄마, 좋은 기회인데 이번 기회에 최현아 씨와 더 가까워지는 게 어때요?]박민정은 이처럼 학부모 위원회 엄마들을 한 번에 다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드물었기에 지원 엄마에게 이렇게 답장했다.[네, 알려줘서 고마워요.]최현아와 가까워지려 하는 건 아니었다.박민정 역시 단톡방에 답장을 보냈다.[그래요, 내일 봬요.]답장을 마친 박민정은 밤새 유명 브랜드 의류 본사에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원피스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박민정은 자신의 키와 몸무게, 사이즈를 보내며 맞춤 제작은 필요 없고 입을 수 있는 드레스면 된다고 말하며 돈은 얼마든지 내겠다고 했다.돈이 많으니 일이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마찬가지로 박민정은 전에 엄마들이 원했던 가방이나 구하지 못한 팔찌, 주얼리 등을 구입했다.단순히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할 때도 기교가 필요했다. 처음부터 비싼 선물을 주면 오히려 호감 대신 반감만 살 수 있었다.다음 날
주식 인수가 무척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박민정이 시세보다 3배나 높은 가격을 제시하자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이제 그녀는 유명훈을 제치고 54%의 지분을 가진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절차가 거의 마무리되자 원장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정민기는 그녀를 유씨 가문 저택으로 데려다주었다.유씨 가문 저택,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는 동쪽에 어르신과 작은 아들, 즉 유남준 부친 일가가 있었고, 서쪽에는 큰아들이 살고 있었다.박민정은 도착하자마자 서쪽 집사의 안내를 따라 최현아가 사는 곳으로 향했다.차로 10분 정도 달려서 최현아와 유성혁의 집에 도착했다.멀리서 봐도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고급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박민정이 차에서 내리자 탁 트인 잔디밭에는 이미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고, 아기 엄마들은 모두 최고의 복장으로 곱게 차려입고 도착해 있었다.다소 평범해 보이는 지원 엄마도 목과 손목에 값비싼 보석을 차고 있었다.다만 주얼리와 들고 있는 가방 모두 오래된 모델이라 주변에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줄곧 박민정을 기다리던 그녀는 박민정이 도착하자 다가가려는데 어제와 다른 박민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눈앞에 있는 박민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억’ 소리가 났다.다른 아기 엄마들도 박민정이 입은 옷을 훑어봤는데 귀걸이마저 1억 이상이었다.누가 일류 재벌이고 누가 평범한 사장인지 한눈에 드러났다.“예찬 엄마가 들고 있는 가방, 전 세계에 단 두 개뿐인 거 아니에요? 항상 갖고 싶었는데 남편이 우리 집 재산으로는 못 산다던데요.”“저 팔찌, 저도 눈여겨본 건데 10억짜리예요!”“옷도 맞춤 제작한 것 같은데 저거 최소 1년 전에 예약해야 할 걸요.”“위원장님 가방 중 가장 비싼 게 4억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죠? 예찬 엄마가 들고 있는 이 가방은 최소 6억 이상이겠는데요?”“...”아기 엄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박민정은 그들의 부러운 눈빛을 바라보며 자신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았
지원 엄마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유지훈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정도였지만 박예찬에 비하면 훨씬 부족했다.그래도 감히 최현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던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설명했다.“위원장님, 그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우리 반 애들 다 똑똑하죠.”이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엄마들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그 누구도 자기 자식이 뒤처진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박민정도 지원 엄마가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이해했다.그녀는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돈 위에 군림하는 자라고 생각했다.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 엄마들은 각자 남편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박민정은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매 사람마다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게 힘들었다. 모든 사람이 유남준처럼 한번 보면 바로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지원 엄마가 다가왔다.“예찬 엄마, 편하게 있어요. 처음엔 모르는 게 당연하죠. 앞으로 천천히 친해지면 돼요.”박민정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지원 어머니, 학부모 위원회에서 활동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거의 1년 됐죠.”“그럼 이 사람들을 다 알아요?”지원 엄마는 곧바로 자랑스럽게 말했다.“당연하죠, 다 제가 데려온 사람들인걸요.”말을 마친 그녀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기가 데려온 사람들인데 그녀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대화하기를 꺼려했다.“그럼 제가 모든 분들에 대한 정보 프로필을 만드는 걸 도와주실 수 있나요?”지원 엄마는 당황했다.“정보 프로필이 왜 필요해요?”“제가 사람 얼굴을 잘 까먹어서 얼굴을 기억하기가 힘들거든요. 아이를 위해서 돌아가서 사진 보면서 외워두려고요.”지원 엄마는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말에 더 이상 의구심을 갖지 않았지만 맨입으로 하려 하지는 않았다.박민정은 주머니 속에서 상자를 꺼냈다.“저를 잘 챙겨주셔서 특
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조금 머쓱해졌다.“그건 좀 곤란한데요. 제가 소파에서 잘게요.”지금 그녀의 감각으로는 유남준에게서 친구 이상의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유남준은 그녀와 예의를 차릴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박민정 곁을 지나 이불을 들고 소파로 향하며 말했다.“괜찮아. 예전에 우리가 싸울 때도 내가 소파에서 잤잖아.”어딘가 억울함이 배어 있는 말투에 박민정은 점점 미안해졌다.“그래도 제가 소파에서 자는 게 맞는 것 같아요.”그녀는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여기가 원래 그녀의 집이라지만 지금은 왠지 낯설었다.사실 원래는 동생 박민호가 이 집을 물려받았어야 했지만 조하랑의 말에 따르면 박민호가 이 집을 탕진했고 유남준이 나중에 다시 사들여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하면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빚진 것이 많았다.그런데도 자신이 침대를 차지하고 그를 소파에서 자게 한다니, 그녀로서는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렇게 생각한 박민정은 유남준과 소파에서 자겠다고 다투기 시작했다.서로 이불을 잡아당기며 실랑이를 벌이던 중 박민정이 중심을 잃고 그만 유남준의 품으로 넘어졌다.유남준은 순간 숨을 멈추고 온몸이 뜨거워졌다.반면 박민정은 얼굴이 화끈거리며 땅이라도 있으면 파고들고 싶었다. 당황한 그녀는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만 실수로 그의 가슴 어디쯤을 스치고 말았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박민정의 얼굴은 지금 붉을 대로 붉어져 있었다.유남준은 목울대를 살짝 움직이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이제 그만해. 많이 피곤할 텐데 얼른 자.”그는 그녀가 계속 곁에 있으면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박민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조용히 수긍했다.“네.”그녀는 내일 아침 진서연과 민수아를 찾아가 다른 방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어릴 적 기억으로는 박씨 가문의 저택은 스무 명 넘게 살아도 충분히 넉넉했으니 분명 방이 있을 터였다.박민정은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잘 지낼 수 있다고?’다음 순간, 박윤우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유남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꼬맹이 박윤우가 아직 잠들지 않고 구석에 숨어 자신과 박민정의 대화를 엿보고 있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는 먼저 박민정에게 부드럽게 말했다.“잠깐만 기다려.”“네.”박민정은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몰랐지만 이내 박윤우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아아아! 아빠, 진짜 내 친아빠 맞아요? 어떻게 애를 때릴 수 있어요?”박민정은 순간 멍해졌다. 놀랍게도 곧 박윤우의 태도가 바뀌었다.“흑흑흑... 사랑하는 아빠, 방금 농담한 거였어요. 아빠가 최고예요! 애를 때릴 리가 없죠. 다 저를 위한 거라는 거 알아요. 지금 바로 잘게요, 알았죠?”‘이게 무슨 상황이지?’‘어떻게 한 아이가 이렇게 빨리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거지?’유남준이 박윤우의 방에서 나온 후 집안은 금세 조용해졌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민수아와 진서연이 소곤소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유남준은 핸드폰을 들어 명령했다.“오늘 밤 민수아 씨와 진서연 씨에게 업무를 더 맡기죠.”그제야 집안은 완전히 고요해졌다.박민정은 거실 소파에 앉아 놀란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집안이 그렇게 시끌벅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조용해졌지?그녀는 지금 민수아와 진서연이 밤샘 근무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옷을 가져다줄게. 씻으러 가.”유남준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말했다.‘옷을?’박민정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아,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 옛날 옷은 어디 있죠? 그 위치만 알려주세요.”유남준은 그녀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고 드레스 룸으로 안내했다.드레스 룸에는 박민정의 옷이 계절별로 꽉 차 있었는데 작은 옷가게를 방불케 했다.“제가 전에 옷이 이렇게 많았어요?”박민정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그녀는 어린 시절 한수민이 옷을 거의 사주지 않았던 기억만 떠올랐다.박씨 가문의 딸이었지만 늘 낡은 옷을
김인우는 박민정이 지금은 과거와 관련된 사람들과 일들을 더 많이 접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남준은 하루 종일 그녀와 함께 박씨 가문의 본가에 머물렀고 박민정과 시간을 보내며 그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정민기가 사적으로 유남준에게 물었다.“다른 지인들도 불러볼까요?”“지금은 필요 없어요. 천천히 하죠. 민정이가 감당하기 어려울까 걱정이에요.”유남준은 박민정이 두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그녀가 힘들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정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느덧 밤이 찾아왔을 때 진서연과 다른 사람들도 돌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가 끝난 후 유남준은 박민정에게 말했다.“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며칠 뒤에 다시 오면 돼.”하지만 박민정은 움직이지 않고 소파에 앉아 말했다.“여기서 지내면 안 돼요?”옆에 있던 진서연이 바로 그녀를 껴안으며 말했다.“당연히 되죠! 보스, 예전에는 항상 우리랑 같이 지내셨잖아요.”박민정은 기뻐하며 말했다.“정말? 그럼 여기서 지낼래. 이렇게 하면 내 기억도 더 빨리 돌아오겠지.”그 말을 들은 유남준의 얼굴에는 살짝 어두운 빛이 스쳤다.그는 박민정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원했는데 어째서 늘 누군가 끼어들려는 걸까?낮에는 기억을 찾고 밤에는 자신과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걸까?게다가 자신과 함께 있어도 충분히 기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은가.“민정아, 윤우가 아직 집에 있어.”그러자 진서연이 눈치 없이 말했다.“그럼 윤우도 여기로 데려오죠!”유남준은 정말로 진서연을 내쫓고 싶었다.결혼하지 않았다고 부부에게 단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박민정은 이 말을 듣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고 유남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좋아, 그럼 나랑 윤우도 같이 이사 올게.”‘같이?’박민정은 살짝 당황했다. 방금 전에는 단지 윤우만 데려오라는 뜻 아니었나?하지만 유남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여기 남아도 되는지 묻는 건 중요하지
“치료 방법은? 있어?” 유남준이 묻자 김인우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당장은 몸을 천천히 회복시키는 것밖에 없어. 완치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어.”그는 이어 조언했다.“몸을 돌보는 동안 익숙한 사람들과 장소를 자주 접하게 해주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될 거야.”유남준은 짧게 알겠다고 대답한 뒤 병실로 향했다.여전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박민정은 자신이 점점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최근 들어 자주 두통을 겪었고 꿈도 많이 꾸었다.처음엔 그저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야 그 모든 것이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유남준이 병실에 들어섰을 때 박민정은 여전히 창밖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민정아, 이제 집으로 가자.”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박민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애틋하게 들리는 그 한마디에 가슴이 두근거렸다.며칠 전, 유남준이 그녀를 강제로 병원에 데려왔던 일이 떠오르자 그녀는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저... 제가 혼자 갈 수 있어요.”유남준은 미소를 지었다.“알아. 이번엔 안아주지 않을게. 혼자 걸어가도 돼.”그는 늘 강단 있고 급한 성격이었다.그래서 박민정이 병원에 오기를 꺼릴 때 고민할 틈 없이 그녀를 안고 병원으로 데려왔던 것이다.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며 유남준을 일부러 피했다.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운전기사에게 지시했다.“민정이가 예전에 자주 다녔던 길로 가.”“알겠습니다.”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이 익숙했다.1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리 곳곳에는 변화가 엿보였다.박민정은 그것들이 낯설지 않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차는 곧 박민정의 옛 집, 박씨 집안의 본가에 도착했다.현재 이곳에는 진서연, 설인하, 민수아 그리고 정민기가 함께 머물고 있었다.정민기는 1년 동안 박민정을 찾기 위해 애썼고 그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박민정이 차에
윤소현은 이 말에 차갑고 깊은 한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는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다시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이지원이 비교적 빨리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엔 짜증이 가득했다.“윤소현 씨, 이번엔 또 무슨 일이시죠?”윤소현은 길게 말할 생각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우리 한번 만납시다. 꼭 할 말이 있어요.”지금 이지원은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윤소현은 더 이상 뜻밖의 사고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그러나 이지원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그만하시죠. 우린 이미 갈 길이 달라졌잖아요. 당신은 유씨 집안 사모님 자리에서 잘 보내시고 전 제 아이돌 생활이나 열심히 할게요. 이제 서로 엮이지 맙시다.”그녀는 유남준이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해 자신에게 복수를 가할까 두려웠다.그러나 윤소현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이지원 씨, 당신이 지금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에요. 유남준이 이미 박민정을 찾아내 데리고 왔고 지금 그 여자를 치료 중이에요. 박민정이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다음 일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어요?”전화기 너머로 한순간 침묵이 일었다. 이지원은 곧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잠깐 나가 있을게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사실이에요? 유남준이 박민정을 데려갔다고요? 말도 안 돼요. 유남우는 분명 박민정이 이제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믿기 싫다면 그만두죠.”윤소현이 차갑게 말을 끊자 이지원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좋아요. 어디서 만나요?”윤소현은 그녀에게 약속 장소를 메시지로 보냈다.이지원은 오늘의 스케줄을 취소하고 개인 차량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녀는 유남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남우 씨, 박민정이 돌아왔어요. 그 여자가 정말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제 일도 들통 나는 거 아니에요? 당신은 그때 제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잖아요!”하
유남준은 박민정에게 거부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며 말했다.“이제 어른이니 고집 좀 그만 부려. 내가 데려가는든 네가 혼자 가든 결국 똑같잖아.”박민정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그에게 내려놓으라고 소리쳤지만 유남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소현은 질투심을 억누르며 속으로 혀를 찼다.결국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억지로 끌려 나갔다.그 후, 유남우도 피폐한 표정으로 응접실을 나섰다.이를 본 윤소현은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남우 씨, 이제 어쩔 거예요?”그러나 유남우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너는 먼저 돌아가.”그 말만 남긴 채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유남우가 해임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회사 전역에 퍼졌고 이 소식을 들은 홍주영은 그의 사무실 밖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그는 대표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도련님.”홍주영이 안으로 들어오자 유남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넌 계속 회사에 남을 거야?”홍주영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도련님 따라갈 거예요.”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에 유남우는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맙다.”홍주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그럼 제가 짐을 챙기겠습니다. 저희 같이 나가요.”“그래.”사무실 문 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소현은 유남우가 자신보다 한낱 부하 직원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질투로 속이 뒤집혔다.결국 그녀는 높은 굽 구두를 신은 채 쿵쿵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홍 비서, 자리에 돌아가서 짐부터 챙겨요.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남우 씨 아내니까요.”홍주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윤소현 옆을 지나쳤다.유남우는 그녀가 짐을 정리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윤소현은 짐을 챙기면서도 속으로 후회했다.‘왜 내가 유남우를 고집했을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유남준에게 항상 밀리기만 했잖아. 같은 형제
김인우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게 된 후에야 일단 이지원을 그냥 두기로 했다.한편, 윤소현은 유남준의 위협적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우리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애써 자신을 다잡으려 했다.그러나 유남준은 비웃듯 가볍게 웃고는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윤소현은 의자에 앉았지만 속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예전 같았으면 정수미가 절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믿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박민정 역시 정수미의 딸이었고 그것도 친딸이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응접실에서 유남우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눈 밑이 검게 그늘져 있었는데 아마도 전날 밤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이었다.“왜 날 속였어요?”박민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유남우는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널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야. 우린 원래 함께해야 할 사이였잖아.”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게 전부에요? 오빠 때문에 난 아이들 네 명이나 버리게 됐고 기억까지 잃었어요!”박민정은 자신이 먹었던 약이 기억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 약을 과다 복용하면 신경이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유남우는 박민정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그저 우리 사이에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지우고 싶었어.”“지우고 싶었다고요?”그 말은 마치 타인의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벼웠다.박민정은 다시 물었다.“오빠는 정말 날 사랑한 적 있어요?”그녀는 의심스러웠다.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돌아보면 유남우가 그녀를 좋아했던 건 맞을지 몰라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고 느꼈다.어떤 사랑이 이렇게 집착적일 수 있을까?“물론이야.”유남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민정아, 난 윤소현과 결혼하지 않았어. 그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야. 우리 함께 외국으로 떠나자. 과거의 일은 모두 잊고.”그러나 박민정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싫어요.”그녀는 지금의 유남우가
유석진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답했다.“궁금해할 필요 없어. 곧 직접 오실 거야.”사실 그도 IM 그룹의 대표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마 외국인일 것이다. 아니면 어떻게 그런 대단한 능력과 자본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이 든 사업가일 가능성도 제법 클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던 유석진의 눈앞에서 사무실 문이 밖에서 열렸고 비서가 들어와 공지했다.“여러분, IM 그룹의 대표님이 도착하셨습니다.”유남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새로운 대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내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유남준과 박민정이었기 때문이다.유석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 역시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유남준?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비서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이사님, 이분이 바로 IM 그룹의 대표며 호산 그룹의 전 대표님이십니다.”유석진은 그 말을 듣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가슴이 벌렁거렸다.옆에 있던 유성혁은 두 다리가 떨렸고 그의 아내 최현아는 더욱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리고 회의실 한쪽에 있던 유남우와 윤소현 역시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그들과 경쟁했던 IM 그룹이 유남준의 소유였다니... 그래서 호산의 약점을 이렇게 정확히 알아냈던 거였다.최현아는 유남우의 옷자락을 슬쩍 당기며 속삭였다.“도련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하지만 유남우는 아무 말 없이 박민정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민정아, 넌 이미 선택을 끝낸 거야?”그의 말은, 기억을 잃은 그녀가 여전히 유남준을 택했느냐는 뜻이었다.박민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조금 있다가 따로 얘기해요.”“그래.”유남우의 목소리는 한층 잠긴 듯했다.유남준은 자리 앞으로 걸어나와 입을 열었다.“제가 바로 IM 그룹의 대표입니다.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주죠.”그가 옆에 있던 서다희에게 눈짓하자 서다희는 관련된 증명 자료를 꺼내
마침 윤소현도 회사에 갔다니...유남준은 전화를 끊고 운전기사에게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현재, 호산 그룹 본사에서 유석진과 그의 아들 유성혁 그리고 며느리인 최현아는 유남우에게 대표 자리를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남우야, 우리 이미 얘기했잖아. 너한테 회사를 맡겼는데 회사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됐어. 주식은 폭락하고 말이야. 이제는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 아니겠어?”유남우는 회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차분히 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고위직들과 주주들에게 물었다.“다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유남우는 다시 물었다.“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면 누가 이 자리에 앉을 건가요?”유성혁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아버지가 이 자리에 앉는 게 가장 적합하지 않겠어?”유성혁은 올해 초 병원에서 퇴원한 뒤, 유남준이 회사를 돌보지 않는 틈을 타 다시 설치기 시작했다.유남우 자신도 사실 회사를 잘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단지 형에게서 회사를 빼앗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큰아버지 가족의 압박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유남우는 속으로 박민정을 떠올리며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렇다면 주주총회를 다시 열어 투표로 결정합시다. 전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최현아가 비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려요? 다들 당신이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윤소현이 들어왔다.“누가 내 남편을 몰아내려는 거예요? 내 남편이 물러나면 우리 정씨 가문은 유씨 가문과 더 이상 협력하지 않을 거예요. 잘 생각해 보라고요!”익숙한 협박이었다. 회의실의 고위직들과 주주들은 이미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최현아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쏘아붙였다.“동서, 우리 유씨 가문은 정씨 가문과 협력하기 전에도 잘만 운영됐어. 그런데 협력한 이후로 오히려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