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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작가: 윤지
“다행히 아이가 제때 병원으로 보내져서 생명의 위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자주 검사 받아야 할 거예요. 아니면 동상 후유증이 남거든요.”

의사가 말했다.

최현아는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최현아와 유성혁은 서둘러 아이를 보러 병실로 갔다.

박민정은 의사가 박윤우를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물었다.

“선생님, 제 아들 윤우는 어떻게 됐나요?”

그런데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윤우 군은 백혈병입니다. 요즘 병세가 악화하여 입원해서 관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병세가 악화했다니...

박민정은 자신이 그것도 몰랐다는 것에 충격받았다. 엄마로서 자격 미달인 것 같았다.

고영란과 유명훈은 의사를 붙잡고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우리 윤우가 백혈병이라고요?”

“가족분들인데 이제 아신 거예요?”

의사가 되물었다.

고영란은 충격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들은 박윤우와 유지훈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박윤우의 몸에는 의료 기기들이 붙어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박민정과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진짜 지훈이 때리지 않았어.”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는 윤우를 믿어. 말하지 말고 쉬어.”

고영란도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윤우야, 할머니도 증조할아버지도 다 너를 믿어, 지훈이가 먼저 찾아간 거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다 해결해 줄게.”

박윤우는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 때문에 낯설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영란은 난감했지만 여전히 손자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 같았다.

두 아이에게 큰 문제가 없자 유명훈은 유남우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곧이어 그는 박민정과 고영란을 불러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유명훈은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말했다.

“민정아, 너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5년이나 사라질 수 있어? 게다가 아이가 이렇게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거야?”

박민정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고영란은 유난히 화가 났다.

“네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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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박민정은 아무 말도 없이 박윤우의 옆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곁을 떠날까 봐 두려웠다.유남준은 박민정이 끝까지 말하지 않자 인내심이 바닥났다.“밖으로 나와 봐.”유남준이 말했다.박민정은 고개를 들고 유남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떤 일은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고 말이다.그녀는 유남준을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갔다.어둠 속에 그들 두 사람만 서 있었다.“나한테 할 말 없어?”유남준이 물었다.박민정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남준 씨가 다 확인했잖아요. 난 할 말 없어요.”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그의 손가락에서 끄드득 소리가 났다.“너 내 아들 데리고 5년 동안 사라졌어. 돌아와서도 애들이 다른 사람 자식이라고 나를 계속 속였고.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이 그게 다야?”박민정은 당시에 했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그녀의 눈가가 빨개졌다.“만약 내가 임신했을 때 떠나지 않았으면 애들을 낳게 했을 거예요?”“네 말은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유남준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났다.“너 왜 내가 아이를 못 낳게 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박민정은 그때 유남준이 했던 잔인한 말들을 녹음해 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남준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게 이 고요한 침묵이었다.지금 박민정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더더욱 싫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팔을 붙잡고 힘을 꽉 주었다.“말해 봐. 작년에 내가 외국에서 널 찾지 못했으면 너 또 배 안에 있는 애들을 데리고 영원히 떠나려고 했지?”박예찬과 박윤우는 유남준의 일방적인 강요로 인해 생긴 아이들이지만 지금 배 안에 있는 아이들은 두 사람이 원해서 가진 것이다...박민정은 그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유남준에게 죄책감을 가졌다.“미안해요.”“사과하지 말고 말해. 진짜야?”유남준은 박민정이 이렇게 독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5년 동안 그는 두 아이의 성장 과정을 놓쳤는데 박민정은 임신하고 또 아이들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85화

    ‘왜 울어? 울고 싶은 건 난데!’유남준은 가시에 찔린 듯한 고통을 참고 박민정의 얼굴을 잡은 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했다.“민정아, 이제야 알았는데. 네가 나보다 독해. 내 아들을 데리고 떠나서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게 하니까 좋았어? 누가 너더러 임신한 채 아이들 친아빠 몰래 외국으로 떠나라고 한 거야? 난 사실을 알 자격도 없는 거야?”유남준의 말에 박민정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미안해요.”말하자마자 박민정은 고개를 들고 유남준을 바라보았다.“내가 다 갚을게요.”“어떻게 갚을 건데?”유남준이 되물었다.“얼마를 원해요?”“이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야?”유남준은 더욱 화가 났다.박민정도 어쩔 줄 몰라 제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두 사람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이 숨 막히는 대치를 깬 것은 환자복을 입은 채 일어난 박윤우였다.“엄마, 아저씨, 밖에서 뭐 하는 거예요?”말하고 나서야 박민정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그러자 박윤우는 다급히 걸어왔다.“엄마, 왜 울어? 아저씨가 우리 엄마 괴롭힌 거예요?”쓰레기 아빠가 착해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박윤우는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쥐고 유남준의 허벅지를 쳤다.“왜 우리 엄마를 괴롭혀요! 왜요!”박민정은 서둘러 눈물을 닦고 박윤우를 말렸다.“윤우야, 아저씨는 엄마를 괴롭히지 않았어. 엄마 눈이 아파서 눈물이 나온 거야...”박민정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남준은 박윤우를 들어 올렸다.“아저씨가 뭐야? 난 네 아빠야.”박윤우는 얼어붙었다.유남준은 자신이 아들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거짓말하지 마요. 아저씨는 우리 아빠 아니에요. 우리 아빠 이름은 연지석이라고요.”박윤우가 아프지 않았으면 유남준은 벌써 그의 엉덩이를 때렸을 것이다.유남준은 설명하지 않고 박윤우를 안은 채 병실로 걸어갔다.“아아, 조심 좀 해요. 벽에 부딪칠 것 같잖아요. 나쁜 아저씨!”박윤우는 아직 화가 났다.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86화

    서다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어두운 밤, 차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서다희는 오늘도 유남준과 밤을 샐 것 같아 여자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사과했다.아니나 다를까 유남준은 밤새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유남준은 박윤우를 보러 갔다가 의사에게서 아이의 상태가 안정적이란 말을 듣고는 병원을 떠났다.복도를 지나갈 때 박민정과 부딪치자 서다희는 곧바로 말했다.“사모님.”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유남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서다희는 의아해하면서도 묻지 않고 따라가기만 했다.박민정은 박윤우의 병실 앞에 도착했지만 역시 들어가지 못했다.그래서 할 수 없이 멀리서 박윤우가 괜찮은 것만 확인하고 옆에 있는 휴게실로 다시 돌아갔다.이때 조하랑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정아, 인우 씨한테 들었는데 어제 유씨 가문의 증손자 유지훈이 사라졌대.”유지훈이 사라진 소식이 이렇게 빨리 김씨 가문의 귀에 들어가다니.“이미 찾았어. 두원에 왔었거든.”박민정은 조하랑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그랬구나. 그놈 진짜 나쁘네. 윤우가 원래도 몸이 안 좋은데 너희 집에 찾아가서 애를 때리려고 했다니. 그놈이 길을 잃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윤우가 입원했겠네.”조하랑의 말이 맞았다. 만약 유지훈이 길을 잃지 않았다면 결과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하랑아, 남준 씨가 예찬이랑 윤우가 친자식인 걸 알았어.”“뭐?”조하랑은 깜짝 놀랐다.“어떻게 알았대?”“친자 확인 검사 의뢰를 했더라고. 그래서 지금 엄청 화가 나 있어. 내가 자기 아들들을 데리고 몇 년 사라진 것 때문에.”박민정은 침대에 누웠다. 어젯밤에 걱정하느라 잠을 한숨도 못 잤다.눈을 감자마자 두 아이가 뺏기는 악몽을 꿨었다.“그게 네 탓이야? 남준 씨 잘못이잖아. 그때 너한테 얼마나 나쁘게 대했는데. 만약 나였으면 절대 애를 안 낳았을 거야.”조하랑이 말했다.“그래.”“이제 생각하지 마. 화낼 테면 내라 그래.”박민정은 유남준이 화가 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87화

    고영란은 예쁘고 단정한 옷차림에 매우 젊어 보였다.들어와서 박윤우를 보자 유남준의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윤우야, 난 네 친할머니야.”고영란은 허리를 숙여 박윤우를 안고 싶었다.그러나 박윤우는 피했다.“할머니,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는 할머니의 손자가 아니에요.”그러자 고영란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도 할머니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래서 즉시 부하더러 선물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했다.“윤우야, 이거 다 할머니가 너 주려고 사 온 거야.”또 자신에게 주려고 선물을 샀다니...하지만 경호원들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은 최신 게임 굿즈들이랑 고급 레고들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비싼 것들이었다.나쁜 할머니에게 돈도 많고 손도 크다니. 적어도 한수민보다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표정도 더 자상해 보이고 말이다.“할머니, 죄송해요. 엄마가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낯선 사람이라니...고영란은 또 한 번 상처받았다.“윤우야, 할머니는 낯선 사람이 아니야.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할머니가 주는 선물은 받아도 돼. 괜찮아.”솔직히 다른 아이들이 자신더러 할머니라고 부르면 화가 났을 것이다.하지만 자신의 친손자가 이렇게 부르니 더없이 기뻤다.박윤우는 하품하면서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할머니가 누군지 몰라요.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전 쉬어야겠어요. 안녕히 가세요.”고영란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이 아이는 왜 선물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단 말인가?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나?고영란은 박윤우를 어떻게 달래 줄지 몰라 당황했다.박윤우는 유남준 어릴 때와 똑 닮았다.“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네 친할머니라는 거 믿어 줄 거야?”고영란은 온화하게 물었다.그러나 박윤우는 진지하게 말했다.“할머니, 저는 안 믿을 거예요. 저한테는 할머니가 이미 있거든요.”고영란은 얼어붙었다.자신 말고 누가 감히 유남준의 엄마 행세를 한단 말인가?하지만 생각해 보니 박윤우가 외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88화

    고영란은 다시 한번 놀랐다.“뭐라고?”박윤우는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요. 지금 엄마 아빠도 저를 엄청 보고 싶어 할 거예요. 할머니도 아들이 있잖아요. 만약 할머니 아들이 입원했는데 못 보게 하면 할머니도 많이 속상하실 거죠?”박윤우는 오늘 하루 종일 엄마를 못 만났는데 경호원에게 물으니 쓰레기 아빠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자신을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그래서 쓰레기 아빠가 다시 싫어졌다.고영란은 박윤우가 쉴 새 없이 어른인 척 말하자 기쁘면서도 동시에 화가 났다.박윤우의 말을 들어 보니 유남준이 자신의 아빠인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영란은 박민정이 더욱 싫어져 주먹을 쥐었다.“윤우야, 남준 아저씨야말로 네 친아빠야.”박윤우는 그제야 고영란이 찾아온 목적을 알았다.“거짓말하지 마세요.”박윤우는 고영란에게 장난치기 귀찮아져 그녀가 들고 온 장난감을 들고 그녀를 향해 하나 하나 던졌다.그러자 고영란은 놀라며 황급히 피했다.“윤우야, 너 어떻게 할머니한테 물건을 던질 수 있어?”“할머니가 나쁜 사람이니까 그러죠!”결국 고영란의 박윤우를 못 이겨 떠났다.유남준과 유남우는 어릴 때 착하고 말을 잘 들었었는데 박윤우는 왜 이렇게 말썽을 피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민정 그게 아이를 잘못 가르쳤네.”고영란은 차에 타며 언짢은 듯 중얼거렸다.그녀와 나이가 비슷한 비서도 옆에서 맞장구쳤다.“요즘 젊은이들이 애를 잘 못 본다니까요. 사모님은 그때 큰 도련님과 작은 도련님을 얼마나 잘 가르치셨는데요.”고영란은 자신이 손자를 더 잘 교육할 수 있을 것 같아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남준아, 윤우를 본가로 데려가자. 전문적인 의료팀도 알아보고. 윤우도 이제 어리지 않은데 몸도 좋지 않고 공부도 해야 하니까 선생님도 따로 붙여줄게.”유남준은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미간을 눌렀다.“저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요.”“너 왜 그래? 기억을 잃으니까 이제 이런 최소한의 것들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저 기억 다 돌아왔어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89화

    누가 보면 어떡하냐니?유남준은 코웃음을 쳤다.운전하던 기사는 놀라서 이마에 땀이 맺혔다.“병원으로 가.”유남준이 지시했다.“네. 알겠습니다.”병원에서 박윤우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우리 엄마 만날래요. 왜 안 오는 거예요? 엄마...”도우미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윤우야, 말 잘 듣지? 일단 밥 먹자, 응?”박윤우는 전에 도우미에게 잘 대했었는데 지금은 박민정을 만나고 싶어서 도우미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먹을래요. 얼른 엄마 불러줘요.”도우미는 난감했다. 사모님의 연락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이때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가 병실의 문을 열었는데 유남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대표님.”도우미가 말했다.“나가요.”유남준이 진지하게 말했다.도우미는 그릇과 수저를 내려놓고 병실에서 나갔고 경호원은 바로 문을 닫았다.이제 병실 안에 박윤우와 유남준만 남았다.박윤우는 표정이 어두운 유남준의 얼굴을 보고 영문을 몰랐다.“아저씨, 우리 엄마는요?”유남준은 더듬거리며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앉았다.“내가 두 번 말해야 해? 아빠라고 불러.”유남준의 말투는 차갑고 엄숙했다.박윤우의 얼굴은 왠지 빨개졌다. 연지석에게는 아빠라는 호칭이 쉽게 나왔는데 이상하게 친아빠 앞에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흥. 아저씨는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내가 친자 확인 검사 결과 보고서 가져와서 보여줄까?”유남준이 물었다.그러나 박윤우는 여전히 모른 척했다.“친자 확인 검사가 뭐예요? 난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하지만 유남준은 속이기 쉽지 않았다. 그는 박윤우도 박예찬처럼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너한테 물어볼 거 있어. 네 엄마가 나 나쁘다고 했었어?”유남준이 갑자기 이렇게 묻자 박윤우는 의아해했다.예전에 외국에 있을 때 박민정은 유남준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그저 가끔 티브이나 기사에서 유남준에 관한 내용을 보면 표정이 심상치 않은 정도였을 뿐이었다.그때 박윤우는 눈치를 채고 형에게 조사해 보라고 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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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우는 유남준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부로 손가락을 굽히며 세는 척했다.“한 명, 두 명, 세 명... 적어도 열 몇 명은 되는 것 같은데요? 다 잘생겼었어요.”열몇 명이라...그 말에 유남준은 무조건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예전에 그가 박민정과 결혼했을 때는 그녀 옆에 다른 남자가 전혀 없었었다. 그런데 이제 박민정을 좋아하는 남자가 열몇 명이나 있다니?“그래서 민정이가 그 사람들과 만났었어?”박윤우는 침대에 누워서 볼록 튀어나온 배를 만지면서 일부러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저도 몰라요. 제가 계속 엄마 옆에 따라다닌 게 아니라서요.”그러자 유남준은 벌떡 일어섰다.“너 잘 쉬고 있어.”박윤우는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유남준의 손을 잡았다.유남준의 큰 손을 만지자 박윤우는 처음으로 아빠의 손을 잡는 느낌을 받았다.“아저씨, 어디 가려고요?”유남준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왜? 또 뭐 있어?”박윤우는 장난을 이쯤에서 끝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남준을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저 예전에 아저씨를 티브이 뉴스에서 본 적 있어요. 엄마가 티브이에서 아저씨를 볼 때마다 넋이 나가 있었어요.”유남준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자.”“네.”박윤우는 유남준의 말을 듣고 자려고 했다.유남준은 밖으로 나가서 경호원에게 몇 시인지 물었다.경호원이 대답했다.“벌써 9시가 됐습니다.”9시가 되었는데도 안 돌아오다니.유남준은 병원을 떠나지 않고 박윤우 병실에 딸린 작은 침실로 갔다.한 편.박민정은 에리와 토론하면서 곡에서 이상한 부분을 적어놓고 돌아가서 수정하려고 했다.“이번에도 예찬이랑 윤우가 같이 안 왔네. 애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에리가 아이들에 대해 묻자 박민정은 윤우가 입원했고 예찬이는 친구네에서 지내고 있다고 간단히 대답했다.식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나왔다.에리가 차 문을 열면서 말했다.“타. 집까지 바래다줄게.”에리는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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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우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그야 당연하죠. 내가 하랑 씨가 좋아했던 그 녀석보다 훨씬 잘생겼거든요.”“그 녀석이요?” 조하랑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강연우 말이에요.” 김인우는 여전히 그를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이 말에 조하랑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나 그 사람 안 좋아한지 꽤 됐거든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김인우는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정말 신경 안 써요?” 김인우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조하랑은 왠지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다.“네, 신경 안 써요.”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할수록 김인우는 더 의심스러웠다.김인우는 이미 조하랑과 강연우의 과거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당시 조하랑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청년과 결혼하려 했고 강연우 역시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걸 뻔했다.그런 뜨거운 사랑, 그런 소중한 기억을 과연 쉽게 잊을 수 있을까?김인우는 생각할수록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혔다.“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조하랑은 그의 침묵에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늘따라 몸이 이상했다. 김인우 곁에 있으니 더더욱 불편했고 머릿속에는 온갖 이상한 생각들이 스쳤다. 그가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몸매도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까지 들 정도로.김인우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그래요, 병원 가요.”그는 조하랑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향했다.하지만 문에 도착한 순간 잠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문 열어요!” 김인우는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인들 역시 모두 사라진 듯했다.조하랑은 문에 기대며 말했다.“누가 문을 잠갔죠? 할아버지는 어떻게 들어오시려고요?”“그 양반이 들어온다면 완전 변태인 거예요.” 김인우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리자 조하랑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할아버지한테 그런 말 하지 마요.”김인우는 그녀가 아직도 김훈을 두둔하는 걸 보며 답답해했다.‘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나중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6화

    하인은 김훈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주방으로 가더니 국 한 냄비를 들고 왔다.“국 좀 마셔라.” 김훈은 두 사람에게 국을 권했다.김인우는 거절하려다 김훈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는 멈칫했다.“왜? 할아버지가 증손주를 보고 싶다는데 안 되겠냐? 국 한 그릇 마시라는 것도 거부하는 거냐?”이 말을 듣고 나니 김인우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할아버지, 앞으로 재촉만 안 하신다면 국 한 그릇이 아니라 열 그릇도 마시겠습니다.”조하랑도 분위기에 따라 국을 한 그릇 들이켰다.“할아버지, 이 국 정말 맛있어요.”김훈은 인자한 표정을 지었으나 눈빛에는 슬쩍 장난기가 스쳤다.“맛있으면 더 마셔라.”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하랑아, 인우야, 이 할애비를 원망하지 말아라. 나도 너희 둘의 감정에 불 좀 지펴주려는 거니까.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겠니?'김인우와 조하랑은 김훈이 뭔가 꾸미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국 한 냄비를 모두 비워버렸고 거기에 밥과 반찬도 푸짐하게 먹었다.김인우는 심지어 겉옷까지 벗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이 국 정말 보양에 좋은가 봐요. 몸이 엄청 뜨겁고 힘이 넘칩니다.”김훈은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렇지. 내가 좋은 재료를 듬뿍 넣었거든.”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로 이렇게 몸에 좋은 건 밤에 먹지 말아야겠어요. 너무 덥네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이때 김훈이 그를 불러 세웠다.“어디 가려고?”“너무 더워서 바람 좀 쐬려고요.”김인우가 문으로 향하자 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나가지 마. 예찬이도 아직 안 돌아왔고 너희 둘 다 이 늙은이와 함께 있어야지.”김훈의 강한 말에 두 사람은 거절할 수 없어 그대로 남았고 결국 가족 셋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았다.오늘따라 김훈은 평소 즐겨보던 뉴스 대신 로맨스 드라마를 틀었다.이를 본 김인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할아버지, 이런 거 좋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5화

    설인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결국 방성원의 모습은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머리가 지끈거렸고 손에 쥔 휴대폰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휴대폰 화면 속에는 과거 설씨 집안이 어떻게 경쟁자에게 모함당하고 함정에 빠졌는지, 그 모든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방씨 집안의 이름은 없었다.설인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아빠, 설마... 아빠가 잘못 알고 계셨던 거예요?”하지만 허공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고 텅 빈 방안엔 그녀의 메마른 목소리만 메아리쳤다.설인하는 너무 지쳐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수년간 품어왔던 증오.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을 단 하루 만에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그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한편, 방성원은 당시 설인하의 아버지가 누구를 만났는지 조사하고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린 탓에 많은 것들이 이미 사라지고 희미해져 있었다.방성원은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한 개비, 또 한 개비. 하지만 짙은 연기가 그의 답답한 마음을 조금도 풀어주지 못했다.그때, 아이의 작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방성원은 화들짝 놀라 담배를 급히 비벼 끄고 창문을 활짝 열고는 소리쳤다.“아주머니!”보모가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대표님!”방성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애가 어떻게 나왔어요?”보모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아까부터 은정이가 계속 울면서 엄마, 아빠를 찾길래... 제가 잠깐 데리고 나왔어요.”방성원은 혹여나 딸이 자신의 담배 냄새를 맡을까 걱정이 앞섰다.“애 데리고 가서 설인하랑 놀게 해요. 다만, 설인하가 애를 데리고 도망치진 못하게 조심하고.”“네.”보모는 활짝 웃으며 아이를 안고 설인하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둘이 사라지자 방성원은 욕실로 향했다. 그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옷까지 갈아입은 후 설인하의 방 앞에 섰는데 멀리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설인하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4화

    방성원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었다.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설인하 앞에 섰고 차가운 눈빛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은정아, 아빠한테 와.”방은정은 방성원의 손길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작은 두 눈 가득 망설임과 혼란이 서려 있었다.설인하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더 꽉 끌어안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뒤쪽 문이 쾅 하고 닫혔고 설인하는 당황해 외쳤다.“방성원, 당장 문 열어! 날 내보내!”방성원은 비웃듯 미소를 지었다.겨우 이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다시 나가게 해달라고?“만약 내가 안 열어주면?”설인하는 한 손으로 방은정을 안고 다른 손으로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그러나 방성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품에서 아이를 낚아챘다.아직 어린 방은정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단순한 놀이로 착각하고 까르르 웃었다.설인하의 품이 텅 비자 그녀는 휴대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성원의 팔에서 아이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한 여자가 성인 남성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방성원은 한 손으로 설인하를 가볍게 제압한 채 다른 손으로 아이를 보모에게 넘겼다.“방으로 데려가요.”“네”보모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고 감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설인하는 방성원에게 억눌린 채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그녀는 분노에 치를 떨며 외쳤다.“방성원, 이 개자식아! 은정이를 돌려줘! 은정이는 내가 열 달 동안 품어 키운 내 딸이야! 넌 고작... 고작 삼 초면 끝났잖아! 대체 무슨 권리로 내 아이를 빼앗는 거냐고!”방성원은 그녀의 새로운 욕설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밖에서 안 좋은 것들만 배워온 모양이군.’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좋아, 이제 말발이 꽤나 늘었네?”그는 설인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어딜 데려가는 거야? 놓으라고!”설인하는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어딜 가겠어. 네 정신 좀 차리게 하려는 거지.”방성원은 그녀를 과거 함께 지냈던 방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3화

    박민정이 보낸 사진은 곧바로 단짝 친구들 단톡방에 반응을 불러왔다.민수아가 먼저 메시지를 남겼다.[부럽다, 여긴 어디야? 풍경 진짜 멋지다!]조하랑도 금세 답장을 보냈다.[아마 민정이랑 예찬이랑 캠핑 간 곳일걸?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있네. 아직 사람들이 많이 안 간 것 같아.]진서연 역시 대화를 이어갔다.[저 회사 가기 싫어요... 휴가 때 우리도 꼭 놀러 가요. 진짜 오랜만에 나들이하고 싶어요.]친구들은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띄웠고 설인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모티콘 몇 개로 답장을 남겼다. 그러고는 곧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의 일상은 순탄치 않았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일에 매달렸고 잠시 한가해지기만 하면 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지금 방은정은 방성원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그녀는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설인하는 이미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었는데 곧 양육권을 반드시 되찾아올 생각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문득 고개를 들자 연지석이 어느새 그녀 앞에 서 있었다.그녀의 멍한 표정을 보며 연지석이 물었다.“요즘 집에 무슨 일 있어요?”설인하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네? 무슨 말씀이시죠?”연지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 몇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이 서류들, 전부 오류가 있어요. 확인해봐요.”설인하가 서류를 펼쳐보니 숫자들이 엉망으로 기재돼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실수에 깨달음을 얻었다.“아...”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하지만 연지석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수정은 필요 없고 그냥 오늘은 집에 가서 쉬세요.”설인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그 말이 혹시 해고 통보는 아닐까 싶어 다급히 말했다.“부사장님, 죄송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두 번 다시 이런 실수 안 할게요.”절박함이 담긴 목소리와 곧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2화

    최현아는 잠시 말문이 막히더니 눈빛 속으로 차가운 기색이 스쳤다.“다 큰 어른이면서 내 말뜻을 모르겠어?”그녀는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아니면...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건가?”박민정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부끄러울 게 뭐가 있죠? 저랑 남우 씨는 줄곧 친구였을 뿐이에요.”최현아는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래? 참 신기하네. 난 아직까지 남녀 사이에 그런 순수한 우정이 존재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그녀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유남준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남준 씨, 그냥 하는 말이에요. 두 사람이야 부부니까 잘 지내면 그만이죠. 제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유남준은 박민정의 말이 당연히 진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의 마음을 한층 더 편안하게 했다.“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형수님.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랑 민정이는 잘 지낼 거니까요.”유남준은 그렇게 답하며 오히려 최현아에게 은근히 감사함을 느꼈다.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을 대신해줘서.최현아의 입가가 씁쓸하게 일그러지더니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사라지자 박민정의 얼굴에도 어두운 기색이 드리워졌다.귀국한 뒤로 아무도 그녀와 유남우 사이의 일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 역시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질문을 받으니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박민정은 조용히 유남준을 바라보았다.“나를... 믿어요?”남녀가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믿기란 솔직히 쉽지 않을 것이다.유남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박민정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대답 안 해도 돼요. 당신이 믿든 안 믿든, 난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유남준은 재빨리 그녀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물론 널 믿지.”유남준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그리고... 만약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아. 네가 그때 날 기억하지 못했던 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1화

    “옆모습이요?” 박민정이 조용히 물었다.“그건 내가 어렸을 때 우연히 찍은 사진이야. 예뻐 보여서 그냥 간직했지.”유남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러다 어느 날 네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깨달았어. 그 사진 속 소녀가 바로 어린 시절의 너라는 걸.”박민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정말이에요?”“당연하지.”유남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그가 그 사실을 알아챘던 건 해외에 있을 때였다.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우연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하지만 그날, 그는 박민정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마음이 간질거렸다.“정말 신기한 우연이네요.” 그녀가 나직이 말하자 유남준도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진을 오랫동안 간직해왔지만 정작 그 속의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은 몰랐으니.생각해 보면 박민정이야말로 그에게 있어 첫눈에 반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랐다.둘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의 어색함을 조금씩 지워갔다.잠시 후, 유남준이 물었다.“해외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하루하루 어떻게 지냈던 거야?”박민정이 사라졌던 그 1년, 유남준은 매일같이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하며 지낼까.박민정은 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유남우 씨랑 해외에 있으면서 치료도 받고 최면 치료도 했어요. 그 외에는 혼자 별장에 머물렀죠.”그녀는 덤덤히 말했다.“낯선 곳에서 밖에 나가도 늘 혼자였어요.”유남준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이 밀려왔고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짙게 스며들었다.“미안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남준 씨가 사과할 일은 아니에요. 내가 무슨 고생을 한 것도 아닌걸요.”유남우가 비록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만 그녀의 의사는 존중했고 필요한 건 다 채워주었다.둘은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새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멀리서 최현아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남준 씨, 드디어 왔네요.“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30화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박민정은 급하게 말했다.“어머, 또 비가 오네. 우리 우산 안 가져왔잖아요.”산에 오르기 전, 날씨 예보를 확인했을 때는 비 소식이 없었는데...유남준은 서둘러 배낭을 열어 확인했지만 역시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괜찮아. 비가 그치면 다시 올라가면 돼.”유남준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박민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근데 예찬이는 괜찮을까요? 혼자 있는데...”“세 살짜리도 아니잖아. 걱정하지 마.”유남준의 말에 박민정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박예찬은 세 살은 아니지만 겨우 다섯, 여섯 살밖에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마침 그녀가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박민정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휴대폰 화면을 보니 아이는 이미 우비를 입고 있었다.“엄마, 지금 어디예요? 비가 오고 있어요.”박민정은 주위를 비춰주며 말했다.“우린 아직 여기 정자에서 쉬고 있어. 너희는 산 정상에 도착했어?”박예찬은 대충 거리를 가늠해 보더니, 박민정이 있는 곳에서 정상까지는 아직 한 시간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다.“네, 저희는 도착했어요. 선생님이 비옷 나눠 주셨어요. 근데 엄마, 우산은 챙겼어요?”아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박민정은 거짓말을 했다.“그럼, 챙겼지.”“다행이네요. 그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올라와요. 길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고요.”박예찬의 다정한 당부에 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알겠어, 조심할게.”이렇게 보니 정작 걱정할 필요가 있는 건 박예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괜히 아이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전화를 끊은 후, 그녀는 유남준을 향해 말했다.“우리 가요. 천천히 가면 돼요.”“좋아.”유남준이 일어섰다.박민정도 기둥을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지만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그대로 유남준의 넓은 품속으로 쓰러지듯 안겨 버렸다.박민정은 순간 당황했다.“죄송해요. 그냥 갑자기 일어나서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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