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데?”조하랑이 궁금해하며 묻자 박민정이 대답했다.“아버지의 유언장.”박형식은 죽기 전 회사가 변변치 못한 아들의 손에 넘어가 전부 말아먹게 될까 봐 따로 유언장을 하나 더 작성했다.그 유언장은 주로 두 가지 내용인데, 하나는 박민정에게 200억을 물려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민정이 아무 때든 바움 그룹을 포함한 그의 유산 전부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져갈지에 대한 여부는 박민정이 결정하기로 돼 있었다.박민정은 이 유언장을 계속 손에 쥐고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이걸 꺼내면 한수민이 갖고 있던 유언장은 무효가 된다. 이 유언장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대학에서 갓 졸업한 그녀가 회사 경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엄마와 동생 손에서 재산을 뺏을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때 이 유언장을 꺼내놓더라도 아무런 배경도 실력도 없는 그녀였기에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호락호락하고 마음이 여린 여자애가 아니다. 한수민이 만약 끝까지 몰아붙인다면 그녀도 같이 진흙탕에서 뒹굴 의지가 있다.전후 사정을 다 듣고 나서 조하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된 거구나. 그렇지만 이제 바움 그룹은 없는데...”“내가 굳이 따진다면?”박민정이 묻자 곁에 있던 예찬이가 입을 열었다.“그럼 반드시 돌려줘야지. 돌려줄 수 없다 해도 책임을 져야 하고.”박민정은 예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난 굳이 돌려달라는 게 아니야. 그냥 좀 겁을 주고 싶은 거지. 너무 설쳐대지 말라고.”조하랑은 예찬이가 자기보다 반응이 더 빠를 줄 몰랐다.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예찬이의 볼을 꼬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예찬이가 요리조리 도망가며 밥상 앞에서 한창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조하랑이 의문에 찬 눈길로 현관을 향해 보며 말했다.“배달 안 시켰는데, 누구지? 잠시만. 내가 가 볼게.”그녀는 슬리퍼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지원은 고집이고 자존심이고 모두 내다 버리고, 조하랑도 같이 보는 앞에서 박민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민정 씨, 미안해요.”박민정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조하랑은 이지원이 무릎을 꿇자 그녀가 또 무슨 나쁜 마음을 가지고 저러는 게 아닐까의심부터 들었다.“이지원 씨, 이건 또 무슨 수작이에요?”이지원은 조하랑을 쳐다보지도 않고 박민정을 향해 머리를 세게 조아렸다.“민정 씨, 예전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민정 씨가 사람 구한 공로를 가로채고 또 민정 씨를 괴롭혔어요. 죄송해요,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요.”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 박민정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이지원이 궁지에 몰리지 않고서야 자기한테 머리를 조아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바닥에 꿇어앉은 이지원은 눈시울이 새빨갰다.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분노와 질투 때문이었다.자신이 왜 박민정한테 사과해야 하는지... 언젠가는 박민정을 발밑에 깔아뭉개겠다고 다짐했다.박민정은 일어나서 이지원의 앞에 섰다.“무슨 이유로 나한테 와서 사과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난 용서 안 해요. 이제 그만 꺼져요.”그녀는 지금 이 광경을 예찬이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박민정의 말을 듣자 이지원은 얼른 일어나서 달갑지 않은 기색으로 조하랑의 집을 나섰다.“그냥 저렇게 가는 거야?”조하랑은 조금 얼떨떨해서 물었다.“저 여자 진짜로 개과천선이라도 한 건가?”박민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지. 딱 봐도 진심이 아닌 게 느껴졌어. 무슨 이유에서 저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이지원은 집을 나서며 손끝을 꽉 그러쥐었다. 그러고는 한 검은색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이제 됐어요?”차창이 내려지며 홍주영의 싸늘한 얼굴이 드러났다.“얼굴에 내키지 않는다고 쓰여 있어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유 대표님이 시킨 일을 완성했다고 내가 가서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기사한테 출발하라고 했다.하지만 그때 이지원이 잠깐, 하며 떠나려는 그
공관 밖에서 사용인이 그녀한테 문을 열어주었는데 박민정의 수수한 옷차림을 보자 눈동자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박민정 씨인가요?”“네. 한 여사님과 박인호를 찾아왔어요.”사용인은 박민정을 거실로 안내하며 얘기했다.“저희 사모님은 밖에 차 마시러 나가셨고, 도련님만 집에 계십니다.”사모님과 도련님이라...이 몇 년 동안 두 사람은 꽤 부유하고 편안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였다.거실에 들어서자 박민호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비싼 명품 정장으로 몸을 휘감고 있는 그는 팔목에 몇억짜리 파테크 필리프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고, 소매에는 한 개에 몇천만 원 하는 커프스단추를 부착했다.방금 거실에 들어설 때 보니 손에 세계 명화를 들고 감상하고 있었다.분명 그림의 그자도 모르는 문외한 임이 틀림없는 그는 그림을 가져온 사람한테 대놓고 물었다. “이 그림 얼마에요?”“저희 사장님이 200억에 낙찰받은 건데요.”그림을 가져온 사람은 비위를 맞추며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200억? 좋아요. 이건 내가 받을 게요. 사장님한테 전해요, 손에 있는 물건들 내가 다 처리해 줄 거라고.”“네네네.”원하는 대답을 얻은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떠났다.박민호는 거만한 표정으로 그림을 사용인한테 툭 건네며 말했다.“내 보물창고에 갖다 넣어요.”그러는 동안 박민호는 박민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박민정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박민호가 지금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유언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정민기는 거실 밖에서 자리를 지켰다.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부터 박민호는 사용인한테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볼일을 다 보고 나서야 눈길을 누나인 박민정한테 돌렸다. 박민정한테 건들건들 다가오는 그의 눈빛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가득했다.“너 설마, 저 밖에 서있는 저 남자 때문에 유남준이랑 이혼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박민정과 유남준의 이혼 스캔들은 전 세계에 파다하게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박민호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그와 한수민 모
박민정은 아픈 목을 주무르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박민호는 아파서 바닥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도 못했다. “너… 사람을 데리고 와 나를 때려? 내가 지금 어떤 신분인지 모르지, 너?”박민정이 정민기한테 눈길을 주자 정민기는 박민호의 가슴팍을 향해 거침없이 발길질을 했다.“소송 취하해!”정민기의 우렁찬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박민호는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구둣발을 떼어내려고 애썼으나 소용없었다. 숨이 콱콱 막혀오고 뼈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에 그는 황급히 사정했다.“알았어, 알았어. 취하할게, 취하한다고.”하지만 발은 미동도 없었다.공관 내 사용인들은 도련님이 남의 발밑에 깔려있는걸 보고도 무서워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오장육부 어디 한 군데라도 안 아픈데가 없었다. 박민호는 눈물을 글썽였다.“누나, 내가 잘못했어. 누나, 제발 그만하라고 해줘. 나 죽을 거 같아.”맞고 혼나야 그는 누나라고 불렀다.박민정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박민호가 처음 때릴 때 그녀도 같이 때렸다. 박민호가 그 당시에는 아주 어려 그녀를 이기지 못했다.얻어맞고 나면 그는 울면서 ‘누나, 잘못 했어’ 하고 반성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한수민은 박민호의 편을 들며 손에 잡히는 물건을 그게 뭐든 간에 박민정한테 뿌리곤 했다.한번은 꽃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다. 그 순간 세상이 온통 피로 물든 것만 같았었다.그 후로 그녀는 얻어맞기만 하고 무서워 같이 때리지 않았다.박민정은 한참 뒤에야 상념에서 깨어나 정민기한테 말했다.“이제 가요.”“네.”…그 시각 공관 밖에는 마이바흐 한 대가 큰 나무 밑에 세워져 있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휴대전화로 위치를 파악한 후 즉시 아랫사람한테 조사해 보라고 하여 여기에 박민정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공관 내에 사람을 보내 상황을 확인하게 했는데, 얼마 후 경호원이 상황 보고를 하며박민호가 박민정의 목을 조르고 또 박민정의 보디가드에 의해 얻어맞고 피를 토했다는 내
연윤우?박예찬은 살짝 혼란스러웠다.그러나 이 사람들이 자기를 자기 동생인 박윤우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연윤우라는 이름은 동생이 다른 사람들을 속일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박예찬은 서다희가 아빠의 옆에 있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에 분명 엄마를 많이 괴롭혔을 것이다.“날 잡아서 뭘 하려는 거예요?”박예찬은 서다희에게 침착하게 물었다.서다희는 조금 놀라며 연윤우가 왜 이렇게 얌전한 아이처럼 행동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예전에는 조금만 놀려도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였다.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 보디가드의 손에 박예찬을 넘겼다.“대표님 만나러 가자.”나쁜 아빠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박예찬은 반항하지 않고 서다희의 손에 이끌려 차에 올랐다.박예찬도 왜 아빠가 신림현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지 궁금했다.마침 저택의 밖에 나왔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걸 보니 설마 아빠가 계속 엄마를 스토킹하고 있었던 걸까?이런 가능성 까지 생각하니 박예찬은 등에 소름이 끼쳤다.너무 교활했다.유남준은 차 밖에서 스며드는 한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대표님,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박예찬은 차에 오르자마자 유남준을 살폈다.‘아빠 눈이 정말 안 보이는 걸까?’박예찬은 슬며시 입을 열었다.“왜 날 납치해 온 거예요? 또 엄마를 협박하려고요?”유남준은 박예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서다희에게 말했다.“먼저 아이를 데리고 신림현으로 가.”하예찬은 신림현이라는 말에 바로 가기 싫다고 했다.“싫어요. 신림현으로 가기 싫어요. 빨리 날 풀어줘요.”박예찬이 다시 신림현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또 난감해질 것이다. 엄마는 유남준과의 관계를 어떻게 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유남준의 어두운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이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가기 싫으면 널 지금 당장 죽여버릴 거야.”그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박예찬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박예찬은 비록 아빠는 눈도 안 보이고 기억도 잃었지
박민호는 너무 겁이 나서 거의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저 그 자리에 선 채로 쉴 새 없이 다리를 떨어댔다.“매형 화내지 마세요. 제가 왜 우리 누나를 다치게 하겠어요? 지금 바로 소송 취하하라고 할게요.”유남준의 차가 멀리 떠나고 나서야 박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다시는 큰소리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1조 6천억도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유남준이 별 볼 일 없는 누나를 위해 이렇게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예전에 박민정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은 바로 유남준이었기 때문이다.한수민은 돌아와서 자기 아들이 다친 것을 보고 분노했다.“민정이가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어?”“걔 아니에요. 옆에 있던 보디가드가 그랬어요.”박민호가 말했다.하수민이 뭔가 더 말할 때 박민호는 그녀에게 유남준이 이 일에 개입했으니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고 말했다.하수민은 그 말을 듣고 침묵했다.“유남준이 민정이한테 정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박민정은 돌아오는 길에 장명철 변호사로부터 하수민이 소송을 취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제야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반면 조하랑은 박예찬이 계속 돌아오지 않자 다급하게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그녀는 아직 친아빠인 유남준이 박예찬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예찬아 너 도대체 어디 있어?”조하랑은 갑자기 박예찬이 예전에 박민정과 함께 하수민을 만나러 갔었다는 말이 떠올라 바로 택시를 타고 저택으로 달려갔다.하지만 저택의 밖에 도착 해도 박예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사진을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고 했다.조하랑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찾으러 떠났다. 그녀는 박민정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가 겁이 났다.신림현.서다희는 박예찬을 데리고 이미 도착해 있었다. 두 사람은 먼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 앉아 유남준을 기다렸다.차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니 서다희는 박예찬이 배가 고프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물었다.“먹고 싶은 거 있니?”박예
박예찬은 온몸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어렸을 때 이후로 누군가가 엉덩이를 때린 것은 처음이었다.“이 나쁜 놈.”“죽여버릴 거야.”박예찬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유남준을 죽여버리겠다고 아우성쳤다.두 사람이 집에 도착했을 때 박민정은 조하랑에게서 박예찬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들었다.그런데 유남준이 박예찬을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집어 들고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박예찬은 아직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내가 죽여버릴 거야.”박민정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뒤 유남준의 손에서 아이를 뺏어왔다.박예찬은 그녀의 품에 돌아가니 죽여버리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고 아주 살갑게 딱 붙어 있었다. 전에 유남준이 박윤우도 데려갔던 것이 떠올라 박민정은 박예찬을 꼭 껴안으며 바로 유남준에게 물었다.“유남준 씨 내 아들한테 무슨 짓이에요?”박예찬은 박민정의 품에 안긴 뒤 천천히 진정되었고 박민정에게 더 꼭 붙으려고 했다.유남준이 말하기도 전에 박예찬은 바로 박민정에게 고자질했다.“오늘 내가 가서 택배를 가지고 오는데 저 나쁜 아저씨가 잡아갔어. 그리고 이제 부터 내 새아빠라고 했어.”새아빠...박민정은 가슴이 철렁했다.유남준도 부정하지 않았다.“민정아. 나도 윤우가 너와 연지석의 아이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데려왔잖아.”“우리 이제 같이 살자.”말을 마친 뒤 유남준은 또 박예찬에게 말했다.“연윤우. 넌 싫어도 참아. 이제 커서 능력이 생기면 그때 가서 날 죽여.”“지금 네 엄마는 내 와이프니까 법적으로 내가 네 새아빠야.”연윤우...박민정은 그제야 유남준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다급하게 박예찬의 입을 막으며 유남준에 말했다.“연우는 지석 씨가 돌봐줘도 괜찮아요. 우리가 함께 살 필요는 없어요.”“돌봐준다고?”유남준은 오늘 길가에서 혼자있는 박예찬을 만난 일을 박민정에게 말했다.“그게 아버지로서 아이를 돌보는 거야?”박민정의 품에 입이 막힌 채로 안겨 있던 박예찬은 그 말을 듣고 까만 눈동자가 복잡하
박예찬은 슬퍼하는 엄마를 보고 순간 당황하며 작은 손을 들어 엄마를 안아 주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엄마, 나랑 동생은 영원히 엄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다른 사람이 뺏어갈 수도 없어.”박민정은 박예찬의 위로에 그를 꼭 끌어안았다.“고마워 예찬아.”박예찬은 애교가 별로 없었기에 엄마와 자주 포옹을 하진 않았다.예전에는 박민정이 안으려고 하면 박예찬은 항상 튕기며 거절했었다.사실 박예찬은 엄마와의 포옹이 좋았지만 쑥스러웠을 뿐이다.지금도 박예찬의 얼굴은 빨갛게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엄마 우리 지금 저 사람을 속여야 하는 거야? 저 사람이 계속 나를 연우로 알고 있어야 하는 거지?”박민정은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아니. 저 남자는 이미 엄마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걸 알고 있어.”그녀는 박예찬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박예찬은 엄마의 말에 작은 머리로 곰곰이 생각하는 듯싶었다.“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먼저 예찬이라고는 말하지 않을게. 그러면 되지?”“그래.”두 모자는 약속했다.박예찬은 그제야 엄마가 자기를 혼내지 않은 것에 안심했다.이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민정아.”은정숙이었다.박민정은 바로 가서 문을 열었고 박예찬도 문을 향해 달려갔다.“할머니.”은정숙은 박예찬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이미 방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를 듣고 알고 있었다.그녀는 박예찬에게 웃어주며 아이를 데리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다.박민정이 거실로 나왔을 때 유남준은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남준 씨.”박민정은 앞으로 걸어가 입을 열었다.“만약 지금 후회하는 거라면 아직 늦지 않았어요. 우리 이혼해요.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민정아. 배 속에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라고 했잖아?”박민정은 멈칫했다.“그렇다면 이제 한 아이가 더 생긴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야.”유남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