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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작가: 윤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1-29 16:28:12
하지만 박민정은 증명해 냈다. 난청이라도 피아노, 춤, 노래 모두 그녀는 정상인보다 모자라지 않았다.

이 기사는 마치 빛 같았다. 연지석은 그렇게 천천히 일어설 수 있었다.

연지석이 자세하게 말하는 그 빛 났던 순간들은 박민정 본인도 잊기 직전이었다.

연지석은 그녀를 묵을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박민정은 웃으면서 그한테 말했다.

“고마워. 나도 원래의 날 잊기 직전이었어.”

연지석은 그녀와 밥 먹으러 갔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도 그는 섬세하게도 박민정이 결혼한 후의 일들은 묻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이혼이 예정된 5월 15일과는 열흘 좀 넘게 남아 있었다.

한수민과의 약속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어느 아침, 돌아간 아빠를 보러 갔었다.

돌아가신 아빠의 묘비 앞에서, 자상한 사진 속의 아빠를 보며 박민정은 목이 메왔다.

“아빠. 보고 싶어요.”

여린 바람이 가볍게 박민정의 볼을 스쳤다.

그녀는 코끝이 시렸다.

“아빠. 만약 지금 아빠를 보러 가면 무조건 저한테 화내시겠죠?”

그는 묘비에 붙은 나뭇잎을 하나하나 떼여냈다.

“저도 제가 조금 더 강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죄송해요...”

묘비 앞에 한참을 서 있고서야 박민정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떠날 때 유골함을 샀다.

그러고는 사진관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흑백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걸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넋을 놓았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은정숙 아줌마였다.

“민정아. 요새 어떻게 지내?”

박민정은 은정숙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잘 지내요.”

은정숙은 한숨을 내쉬고는 잔소리했다.

“누가 너더러 나한테 몰래 돈 보내랬니? 그 돈, 나는 필요 없다. 뒀다가 너 써. 나중에 사업 같은 거 할 때나...”

지난 몇 년간, 박민정은 몰래 그녀에게 돈을 보내왔다.

그녀는 시골 사람이다 보니 그리 많은 돈을 쓸 일도 없었고 모두 저축해 두고 있었다.

전화 저편에서 은정숙의 관심 어린 잔소리를 듣자, 눈물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덮었다.

“아줌마. 어릴 때처럼 저 데리러 와줄 수 있어요?”

은정숙은 어리둥절했다.

박민정이 이어서 말했다.

“15일이요. 저 데리러 와주세요. 같이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은정숙은 왜 굳이 15일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 15일. 아줌마가 너 데리러 갈게.”

최근 병원에서 박민정에게 재검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예의 차려 거절했다.

어차피 이미 떠나기로 했는데 치료에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박민정은 자신의 은행 통장을 보면서 몇천만이 남은 잔액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떠난 뒤 은정숙에게 노후 자금으로 줄 생각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진주시에서는 비가 그친 적이 없었다.

연지석은 종종 그녀를 보러 왔다.

연지석은 그녀 혼자 베란다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걸 자주 보았다.

그리고 박민정의 난청이 심해진 걸 발견했다. 자신이 문을 두드려도 대부분 그녀는 듣지 못했었다.

가끔은 그녀가 자기 입 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보고서야 뭐라 말하고 있는지 알아듣기도 했었다.

“민정아. 이틀 뒤에 강가에서 불꽃축제 한다는데, 같이 갈래?”

박민정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래.”

진주시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강가에서 불꽃축제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예뻤다.

커플이 진주에 와서 이 불꽃놀이를 보면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결혼한 후, 한 박민정은 유남준과 데이트 신청을 했었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거절이었다.

다른 지역 사람보다 그들은 불꽃놀이를 보러 갈 기회가 더 많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토요일.

두 사람은 시간에 맞춰서 8시의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펑-”

화려하게 부서지는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지석아. 고마워. 오늘 나 굉장히 즐거워.”

연지석은 옆자리의 앙상하게 야윈 박민정을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조금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응. 나 마침 올해는 쭉 진주에 있을 거니까 매주 같이 불꽃놀이 보러 오자.”

박민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 시간 뒤면, 모든 게 끝난다.

연지석이 데려다주겠다는 걸 거절한 뒤 그녀는 혼자 강을 따라 걸었다.

오늘,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많은 사람 사이에서 박민정은 유남준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다가가 보면 낯선 얼굴이어서 박민정은 사람을 잘못 봤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매번 밖에 나올 때마다 박민정은 유남준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그로 착각했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맞은쪽 길의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예능계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는데 그건 이지원의 인터뷰였다.

기자가 물었다.

“지원 씨. 이번에 돌아오신 게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서라는데, 소원을 이루어셨나요?”

카메라를 쳐다본 이지원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말했다.

“오늘 저녁 8시에, 저랑 같이 진주의 불꽃놀이를 봤어요.”

영락없는 공개 열애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순간, 스크린에서는 이지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생의 사랑」

평생의 사랑...

박민정은 평생토록 유남준만 좋아해 봤다.

왜 좋아하게 됐을까?

박민정의 기억 속, 그건 십여 년 전의 어느 오후였다. 그녀가 혼자 박씨 집안에 있을 때 마침 옆에 있는 흰 셔츠를 입은 유남준을 봤다.

책을 읽고 있을 때,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자, 그녀를 도와준 유남준이 신처럼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유씨 집안 부모님들이 아빠와 유남준이 크면 유남준에게 시집오라고 우스갯소리를 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많았다. 인제 와서는 박민정도 자기가 왜 유남준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

그 시각.

유남준은 그 뉴스를 보지 못했다.

일을 마친 그는 버릇처럼 핸드폰을 살폈으나 박민정의 소식이 없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핸드폰을 꺼버리고 옆에 버렸다.

비서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대표님. 알아냈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연지석, 박민정 님의 소꿉친구인 것 같습니다.”

유남준의 기억 속에도 그리고 언론에서도.

박민정의 소꿉친구는 늘 유남준이었다.

비서의 말에 의하면 연지석은 박민정이 시골에서 자랄 때 알게 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박민정이 자신을 알기 전에 그를 알게 된 것이다.

유남준은 도화살 가득한 남자를 떠올리고는 얼굴을 구겼다.

“대표님. 김인우 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 분부했다.

“오늘 바쁘다고 전해.”

비서는 어리둥절했다.

유남준은 최근들어 퇴근만 하면 김인우 같은 재벌들과 유흥을 즐겼으면서, 오늘은 왜 아닌 거지?

유남준은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그러고는 운전해서 박민정이 묵던 모텔로 갔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야 박민정이 이사 간 지 이미 며칠이나 됐다는 걸 발견했다.

유남준은 갑자기 짜증이 나서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살폈다.

박민정에게 전화를 칠 결심을 내린 순간 전화가 울렸다. 이지원이었다.

“뭔데?”

“남준 오빠. 듣기로는 민정 씨 어머니가 민정 씨 결혼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요?”

유남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댓글 (2)
goodnovel comment avatar
고해린
민정이가 잘못한것도 아닌데.. 왜 다들 민정이 한테만..
goodnovel comment avatar
hyoungum kim
너무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좋아하는사람과 같이 살아도 좋았던 추억이 없었다는게 이혼후에야 소꿉친구를 만나 겨우 불꽃놀이보고 즐거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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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두 번째 절기인 소만. 남방에서는 종종 폭우가 내렸다.퇴원한 후 며칠 동안 연지석은 자주 시간을 내서 박민정과 함께했다.약을 먹은 후유증으로 박민정의 몸 상태는 더 나빠졌다.하지만 그녀의 정신상태는 꽤 좋아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데로부터 억지로라도 음식을 삼켰다.연지석과 함께 할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유남준을 언급하지 않았다.어떤 사람은 너무 아파서 입에 담는 것마저도 상처일 때가 있다.그리고 친구가 자신을 따라서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혼자 있을 때, 박민정은 유남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이혼에 관한 일에 대해서 어떻게 입을 열지 몰랐다.그러던 어느 날.박민정은 밖에서 음식을 사고 돌아가는 길이었다.한 사람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이지원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예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서 있었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다.“민정 씨. 민정 씨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있는 거 알아요?”이지원의 눈썹이 둥글게 말렸다.박민정은 여기서 그녀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둘은 조용한 카페를 찾아 창가 자리에 앉았다.커다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이지원이 마스크를 벗자 오밀조밀한 얼굴이 드러났다.“안심하세요. 남준 오빠한테 듣기로는 박민호 씨가 최 사장님 돈 가지고 민정 씨 어머니 모시고 도망치고 있다더라고요. 그분들이 민정 씨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예요.”박민정은 이미 연지석을 통해 들었었다.한수민과 박민호가, 박민정이 제때 최 사장과 결혼하지 않아 보복이 두려워서 도망길에 올라서 당일에 해외로 도망쳤다고.그 누가 그토록 부유하던 박씨 집안이 고작 600억 때문에 패가망신할 거라 생각했겠는가?박민정은 조용히 다 듣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할 말 있으세요?”이지원의 시선이 그녀의 배를 향했다. 임신한 게 아직 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손바닥 살을 세게 꼬집었다. 박민정을 당장 폭로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말해봐요. 어떻게 해야 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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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21화

    박민정은 그제야 이지원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다름 아닌 이간질이었다.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이혼은 우리 둘 사이의 문제인데 굳이 지원이랑 싸워야겠어? 지원이 지금 병원이야.”박민정은 흠칫 놀랐으나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챘다.그녀는 이지원이 이렇게 비열한 수단으로 자신을 모함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걸 유남준이 철석같이 믿고 있다니...“믿거나 말거나 전 지원 씨랑 딱 한번 만났고 아무 짓도 한 적 없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병원.유남준의 표정은 잔뜩 어두웠고 이지원은 이마에 붕대를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그녀는 박민정과 만난 후, 스스로 머리를 부딪히는 고통을 불사하고 박민정을 모함했다.“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이지원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진 뭉치를 꺼내 유남준에게 건넸다.이 사진들은 박민정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사람을 시켜 찍은 것이다.“더 이상 숨겨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오빠, 사진 보고 화내지 마요.”사진을 건네받은 유남준은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고 겹겹이 쌓인 사진 속에는 박민정과 연지석 두 사람뿐이었다.유남준은 썸에 가까운 사진 한 장을 보며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이지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사진들을 제가 먼저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만약 사진들이 퍼졌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어요.”유남준은 마음이 착잡했다.병원에서 나온 그는 블랙 캐딜락에 앉아 사진에 필요한 돈을 이지원에게 보내라며 서다희에게 명령했다.“박민정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알겠습니다.”서다희는 즉시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박민정은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꿈속에서 유남준과 이지원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또한 지난 몇 년간의 꿈도 꾸었다.유남준은 화가 나서 그녀를 버린 채 해외로 떠났고 아무리 찾으려 해도 만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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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30화

    유남준의 대답에 박민정은 기가 막혔다.“내가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요? 뭐, 연지석이랑 계약 취소하고 에리도 해고할까요?”유남준은 깊은 눈동자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할 수만 있다면...”“절대 안 돼요!”박민정이 그의 말을 끊었다.“제 친구인 것도 있긴 하지만, 능력을 봐서라도 절대 남준 씨 말대로 해줄 수는 없어요.”유남준은 박민정의 말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예전이었으면 무슨 일이 있든 박민정은 항상 유남준의 말대로 했을 텐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변해버렸다.유남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그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내가 하려던 말은, 가능하다면 그 두 사람이랑 조금 거리를 뒀으면 좋겠다는 거야. 내가 질투 나니까.”유남준은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마음을 담아 해명했다.그 말은 들은 후에야 박민정은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았다.“미안해요. 아까는 내가 너무 성급했네요. 말도 끝까지 못 듣고.”잠시 망설이던 박민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걱정 마요. 난 그 두 사람을 단순한 친구로만 생각할 뿐, 다른 감정은 전혀 없으니까요.”비로소 안심한 유남준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박민정은 그대로 유남준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물었다.“오늘 이렇게 온 거, 쉬는 날이어서 온 게 아니죠?”“내 회사야. 내가 쉬는 날이라고 하면 쉬는 날이지.”박민정은 아직도 유남준의 회사가 IM 그룹이라는 것을 모른 채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일반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우린 사업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요. 얼른 회사로 돌아가서 다시 일 봐요.”그녀 역시 회사 운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리더인 회사 대표부터 게으른 태도로 일한다면 밑에 있는 직원들도 열심히 일할 리 없었다.“알겠어.”유남준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지금의 기분은 조금 전보다 한결 나아졌다.오늘에서야 힘들게 민수아와의 데이트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9화

    안내데스크 직원은 순간적으로 공포가 엄습해왔다. 저 사람이 정말 박 대표의 남편이라면 자신은 끝장인 게 뻔했으니 말이다.하지만 회사 직원들에게 기재된 박 대표의 소개 글에는 분명 남편과 이혼한 상태라고 되어 있었다.“그냥 우리 와이프랑 밥이나 한 끼 먹으려고 왔지.”말을 마친 유남준은 안내데스크로 고개를 돌리더니 처음으로 그 여직원을 협박하기 시작했다.“잘리고 싶지 않으면 그 남자들 정보는 순순히 부는 게 좋을 거야!”상황 파악을 마친 서다희가 곧장 데스크 직원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그리고 안내데스크 직원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명함을 받아들었다.“네, 네...”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몰랐던 박민정이 다가와 물었다.“오늘은 출근 안 해요?”“오는 쉬는 날이야.”유남준은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목요일인데 쉬는 날이라고요? 당신 회사 직원들은 참 좋겠다.”박민정이 대답했다.곁에서 유남준과 박민정의 사이에 끼어 애매한 포지션이 되긴 싫었던 진서연이 말했다.“보스, 저는 수아 씨랑 이 근처 좀 돌기로 약속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래.”박민정은 흔쾌히 그 말에 대답했다.유남준도 고개를 돌려 서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우리 따라오지 말고 수아 씨 찾으러 가. 회사 직원들 간식거리도 좀 챙겨가고.”그의 의도는 아주 명백했다. 그저 XS 그룹의 직원들에게 박민정의 남편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었다.박민정은 그런 유남준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요. 뭐 먹고 싶은데요?”“나는 다 괜찮아. 네가 먹고 싶은 거로 먹자.”유남준은 정말 식사를 위해 찾아온 게 아니라 박민정의 회사 사람들에게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그래요.”박민정도 예의상 해봤던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그녀는 곧장 유남준을 데리고 자신이 자주 가는 회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배불리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소화도 시킬 겸 함께 산책했다. 그러던 중 궁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8화

    듣고 있던 매니저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에리는 아마 본인도 그렇게 정직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됐어, 화 그만 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하지만 에리는 지금 밥이 넘어갈 기분이 아니었다.“넌 유남준이 연지석의 존재를 알 거라고 생각해?”그 질문에 미간을 찌푸린 매니저가 대답했다.“너 이건 좀 아니지 않아?”“뭐가 아닌데.”휴대폰을 집어 든 에리는 연지석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는 사실을 유남준에게 알려주었다.유남준의 표정이 보기 좋게 험악해졌다.“연지석이 왜 또 거기 있는 겁니까?”그런 유남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서다희는 어이가 없었다.‘언제는 자기한테 이런 일 하나하나 알려주지 말라더니?’“게다가 부사장이라고요?”유남준의 기분이 점점 심연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침에 박민정을 회사까지 데려다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에리에 대해서만 몇 가지 물어보려 했다.하지만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옆에는 연지석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있었다.유남준은 저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대표님, 왜 그러십니까?”서다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오늘 휴가 내고 XS 본사 한 번 가봐야겠어.”그쪽 회사로 가서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내가 정말 다른 사람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서다희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자신의 대표를 따라나섰다.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불안해할 때도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XS 그룹.1층 로비의 안내데스크 직원은 유남준과 서다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선생님, 죄송하지만 저희 대표님과 미리 약속이 안 되어 있으셔서 올라가실 수 없습니다.”정중하게 말을 마친 안내 직원은 유남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눈앞의 남자가 너무 잘생긴 탓이었다.연지석 부대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얼굴이었다.그 말에 윤남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이 회사 박 대표의 남편인데, 따로 예약까지 해야 하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7화

    정수미에게 붙여둔 미행인이 박민정과 유남준에게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모든 것을 전해 들은 박민정이 혀를 찼다.“정말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네. 그래도 이제 함미현이 걱정하고 있는 게 뭔지는 잘 알겠네요.”유남준 역시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한 듯했다.“윤소현이 이미 함미현의 정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정수미 친딸이라는 함미현 씨가 윤소현 말에 너무 고분고분 따르더라고요. 이제 모든 게 다 이해가 되네요.”박민정인 이제 정수미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곁에 딸이라고 남아 있는 사람 중에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친딸도 가짜였다니.이제는 염혜란까지 사라졌다. 박민정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를 마치고 유남준과 함께 돌아갔다.운전기사는 박민정을 회사 정문에 내려주었다.박민정이 차에서 내리려 하던 그때, 유남준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잠시만.”“왜요?”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잠시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던 유남준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니야. 저녁에 데리러 올게.”“알겠어요.”박민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들어 회사에서는 꽤 많은 신입 직원들을 채용했고, 그중에는 호산 그룹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회사로 들어선 박민정은 오늘따라 유난히 떠들썩한 회사 분위기를 눈치챘다. 자세히 보니 여직원들 여럿이 스튜디오와 고층을 오가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서연아, 무슨 일이야?”진서연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이게 다 우리 회사 요물들 때문이잖아요.”“요물들이라니?”서류 뭉치를 들고 지나가던 설인하가 말했다.“연지석이랑 에리잖아요.”설인하의 말을 들은 박민정도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그럴 만도 한 것이 그 두 명은 정말 요물이 다름없었다. 생김새부터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탓에 회사 여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보스, 요즘에 그 능력 있는 홍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6화

    10분 후.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을 얻어 진정된 함미현은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이제 윤소현으로 바뀌었다.방 안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윤소현은 차오르는 눈물에 목소리도 똑바로 낼 수 없었다.“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다 엄마를 위해서 그랬던 거예요.”“날 위해서였다고?”윤소현의 말을 듣는 순간, 정수미는 분노 섞인 헛웃음을 터뜨렸다.“날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남을 해쳤단 말이니? 어디 한번 말해봐. 염혜란 씨를 죽인 게 어떻게 날 위해서였다는 건지.”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던 윤소현이 입을 열었다.“염혜란만 사라지면, 미현이한테는 엄마만 남잖아요. 그러면 미현이도 굳이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써도 될 거고.”“고작 그 이유라는 거니?”정수미는 윤소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윤소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엄마, 저는 그냥 엄마가 행복하시길 바랐던 거예요.”“저는 엄마를 위해서 제 친엄마인 한수민이랑 천륜까지 끊었는데 미현이가 양엄마를 끊어내지 못할 건 또 뭔데요? 걔가 못 끊겠다고 하니까 제가 대신 나서서 직접 끊어준 거예요. 덕분에 미현이한테는 지금 한 명의 엄마만 남게 됐잖아요!”윤소현의 태도는 아주 당당했다.정수미는 말을 마친 윤소현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이런 못된 것!”정수미의 손바닥이 거쳐 간 윤소현의 뺨은 이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수미가 살면서 처음으로 윤소현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다.“엄마, 어떻게 저를 때리실 수가 있어요? 저는 항상 엄마를 친엄마라고 생각해왔는데, 미현이 오니까 이젠 저한테 손찌검도 하시네요.”윤소현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정수미를 올려다보았다.“그러니까 너는 지금, 이게 다 내 잘못이라는 거니? 내가 너랑 한수민을 끊어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내 가정을 파탄 낸 사람이 바로 한수민이었으니까! 그리고 너는 그 여자랑 윤석후의 딸이었고. 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5화

    함미현은 한동안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이제 어떡하죠? 어떻게 이렇게 악랄할 수 있죠? 정수미에게 말해도 될까요?”함미현은 더 이상 정수미를 엄마라고 부르기 싫었다.박민정은 정수미가 함미현을 도와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영상은 줄게요. 정수미에게 얘기해서 도와달라고 해도 되지만 저는 정수미가 정말 윤소현에게 손을 댈 거로 생각하진 않아요.”윤소현은 정수미가 어릴 적부터 키우던 딸이었으니 말이다.박민정은 정수미가 혈연을 우선시하는 성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지금은 오히려 정수미가 두 딸 중 누굴 선택할지 궁금해졌다.함미현은 바로 결심했다.“지금 바로 가야겠어요.”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멈춘 그녀는 치명적인 문제를 떠올렸다.‘윤소현이 내 약점을 잡고 있는데...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수미에게 얘기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정수미는 나랑 동하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왜 그래요?”박민정은 함미현이 망설이는 모습에 의아했다.함미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정씨 가문에서 제 위치는 정말 낮아요. 제가 영상을 보여준다고 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포기할래요. 민정 씨,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함미현은 급히 호텔을 떠났다.박민정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조금 전까지 정수미에게 따지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저러는 거지?’호텔을 나선 함미현은 윤소현이 염혜란을 해친 영상을 손에 쥐고 무거운 마음을 억눌렀다.그녀는 너무나도 우울했다.“엄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수미를 찾아가야 할까?”함미현은 앉아서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윤소현이 왜 갑자기 염혜란을 해친 건지 궁금해졌다.‘엄마가 죽는다고 윤소현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지?’함미현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한참을 앉아 천천히 생각한 그녀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정수미가 복수를 하겠지만 친딸이 어디 있는지 무조건 물을 거야. 근데 정씨 가문의 친딸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4화

    애초 그녀가 함미현에게 박민정의 자리를 대체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렇게 큰 변화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동하의 병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염혜란은 후회하지 않았지만 죄책감을 느꼈다.그녀는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그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아 앞으로 다가갔다.윤소현은 염혜란이 박민정에게 진실을 말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염혜란은 마지막 힘을 다해 한마디 했다.“미... 안... 해요.”그녀의 손이 침대에서 떨어지며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함미현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엄마!”윤소현은 염혜란이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늙은 년이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네.’박민정은 염혜란이 자신에게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 계속 생각했다.‘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지?’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정수미가 밖에서 들어오며 염혜란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그녀는 함미현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미현아, 너무 슬퍼하지 마. 그렇게 울다가 몸 상한다.”함미현은 정수미의 목소리를 듣고 염혜란이 그녀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정수미를 노려보았다.그 시선에 정수미는 가슴이 내려앉았다.함미현은 주먹을 꽉 쥐고 억눌린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엄마랑 단둘이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정수미는 잠시 망설였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그녀와 윤소현, 박민정은 수술실을 나섰다.밖은 이미 밝아져 있었다.수술실 안에서는 함미현의 통곡 소리가 들렸고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정수미는 걱정스러운 한편 괴로운 마음도 들었다.‘미현이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본 걸까? 마치 내가 염혜란을 죽였다는 듯이 봤는데...’윤소현이 혼란스러워하는 정수미에게 다가갔다.“엄마, 어제 밤새 쉬지 못하셨죠?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그녀의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수미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미현이 기다려야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3화

    박민정은 영상을 들여다보며 충격을 받았다.영상 속에는 윤소현이 저지른 죄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박민정은 윤소현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영상이 아니었다면 박민정은 윤소현이 한 일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유남준 역시 영상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에 빠졌다.박민정이 핸드폰을 꺼내며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유남준이 그녀를 막아섰다.“잠깐만.”“왜요?”명확한 증거가 있으니 윤소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이 영상만으로 윤소현을 확실하게 몰아세울 수 없어. 지금 아주머니에게 수술해 주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 사람인지 생각해 봐.”박민정이 순간 깨달았다.“이해했어요. 저 사람들이 윤소현이 아주머니를 해친 게 아니라, 주입한 약물이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거죠?”“그래.”유남준은 박민정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한 것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박민정은 그제야 조금 전까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유남준이 막아서 다행이었다.그녀는 경호원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영상은 저한테 보내주세요.”“네.”경호원은 빠르게 영상을 박민정의 이메일로 보내주었다.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수술실 문이 드디어 열렸다.의사가 문을 열고 나오자 함미현이 급히 달려가며 물었다.“선생님, 어머니는 어떻게 됐나요?”의사가 깊은숨을 내쉬며 답했다.“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세요.”그 말에 함미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왜 이렇게 됐죠? 어젯밤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어요?”의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정수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앞으로 다가갔다.“미현아,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먼저 어머니께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드려.”함미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수술실로 뛰어갔다.정수미는 의사를 한쪽으로 불러내며 조용히 말했다.윤소현도 그 모습을 보고 뒤따르려 했지만 정수미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22화

    정수미는 박민정의 시선을 마주하고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낯설지 않은 눈이었다.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박민정은 정수미와 마주치자 예의 있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정수미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두 딸 때문에 정수미는 박민정에게 호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그래. 오랜만이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그녀는 먼저 말을 꺼냈다.“병원에 당연히 친구 보러 왔죠. 정 대표님도 그렇지 않으세요?”박민정은 정수미가 염혜란을 보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그럼 같이 갈까요?”박민정이 제안하자 정수미는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다.“좋지.”박민정은 앞서 걸었고 유남준은 그녀의 옆에서 따라갔다.정수미는 그 둘을 보며 윤소현이 항상 말하던 박민정과 유남우의 관계를 떠올렸다.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뒤따르던 정수미가 유남준에게 말했다.“유 대표님,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함께 오시는 걸 보니 아내를 정말 아끼시는군요. 앞으로도 아내를 잘 지켜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마시고요.”정수미의 말에 유남준과 박민정은 모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박민정은 정수미가 자신의 딸인 윤소현을 위해 가시 돋친 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유남우에게 관심을 둔 적도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적도 없었다.유남준은 정수미의 말을 알아차리고 돌아서며 말했다.“저는 제 아내를 믿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딸이나 잘 보살펴 주시죠.”정수미는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얼어붙으며 말문이 막혔다.옆에서 걷고 있던 비서가 정수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유남준이 정말 박민정과 유남우 사이의 일을 모르는 걸까요?”“글쎄. 모른 척하는 사람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정수미는 딸인 윤소현의 말이 맞다고 믿으며 유남준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두 일행은 동시에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함미현과 윤소현은 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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