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시 쌍살이 H시에 왔어. R시 암흑가 사람들도 끌고 말이야.” “그 두 사람에 의해 김대이와 박용구의 사업장도 완전 뒤집어졌는데 막을 수 조차 없었나 봐.” “부하들이 모두 다치거나 도망갔다던데?” “그뿐인 줄 알아? H시의 많은 깡패들이 쌍살 쪽으로 붙어서 예전 동료들에게 칼까지 겨눴데.” 하룻밤 사이에 H시 암흑가의 최고 세력이 바뀌었다. 강오그룹은 이미 R시에서 큰 손실을 입고 수습을 하는 중이라 아무런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J시 쌍살의 흉악무도함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른 아침, 세화가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천미가 특별히 전화를 걸어 주의를 주었다. [세화야, 며칠간 하늘 거울 저택에 있고 나가지 마. 제원화, 그 자식이 완전 미쳐서 J시 쌍살을 H시로 불러들였어. 김대이과 박용구 모두 그 놈들에게 당해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야. 난 상대가 다음으로 너희 가족을 노릴까 봐 걱정돼.] “응, 언니도 조심해.” 놀란 세화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전화를 끊자마자 동혁에게 외출하지 말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제원화가 우리 가족을 노리고 있다면 나 말고 동혁 씨를 겨냥할 가능성이 가장 커.’ “김대이와 박용구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동혁은 마음속으로 크게 분노했다. ‘이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겠는데? J시 쌍살이 두 사람을 공격한 건 틀림없이 나 때문이야.’ ‘두 사람이 일전에 청운각에서 내 지시에 따라 안우평 등의 뺨을 때려 제원화에게 망신을 줬으니까.’ 동혁은 김대이와 박용구가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 보고 싶었다. “김대이와 박용구가 어느 병원에 있나요? 제가 한번 가봐야겠어요.” 동혁이 전화를 걸어 천미에게 물었다. [동혁이 너 또 무슨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거야? 내가 세화에게 가족들이 하늘 거울 저택에서 외출 못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지금 넌 나가서 죽겠다고? 김대이과 박용구를 그 꼴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세화까지 다치게 하려고?] [뚜뚜...] 천미는 동혁에게 욕을
“예. 석훈이에게 바로 연락할게요.” 설전룡은 휴대폰을 꺼내 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소씨, 오씨, 정씨 세 일류 가문의 가주들이 병문안을 왔다. 세 사람 모두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철저히 자신 신분을 감추었다. 동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병원에 문병을 오신 분들이 꼭 도둑질을 하러 온 모습이군요.” “이 선생님, 설 대도독, 안녕하세요.” 세 사람은 서둘러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소윤석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선생님, J시 쌍살이 H시에 오자마자 김 회장과 박 회장이 그놈들의 손에 당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무서워서 이렇게 몰래 온 겁니다.” 예전에 청운각에서 그들은 김대이, 박용구, 하세량과 함께 앞장서서 제원화과 맞서며 동혁 쪽에 줄을 섰었다. 그래서 소씨, 오씨, 정씨, 가문의 세 가주는 다음으로 복수를 당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J시 쌍살이 자신들에게 찾아올까 봐 무서워 조마조마했다. 오종천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음 차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 가문이 중 하나가 될 겁니다. 그래서 저도 모든 가족들을 단속해 외출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무서워 죽을 지경입니다. R시의 최고 고수였던 이정산은 50명의 경호원이 보호하는 자기 집에서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정씨 가문 가주도 말했다. 그들은 제원화가 이미 경고를 퍼부었다고 동혁에게 말했다. “H시에서 선생님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모두 손봐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둘씩 차례대로 말입니다.” “제원화, 이 늙은 이가 이미 곽원산에게 혼이 났는데도 이렇게 계속 소란을 피우다니.” 동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제원화가 이렇게 죽는 줄도 모르고 계속 고집 세게 나올 줄 몰랐다.그는 제원화가 제씨 가문의 추지연 때문에 완전히 이성을 잃고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는 것을 몰랐다. “걱정 마세요. 제가 시경찰서 조동래에게 경찰들을 파견해 각 가문들을 보호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쌍살이 감히 쳐들어오면 바로
동혁은 세화가 다치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는 병원에 잠깐 있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가기 전에 하원종에게 최선을 다해 김대이와 박용구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제원화는 임시로 고급 단독주택단지로 거처를 옮겼다. 이 단독주택단지의 개발업자는 N도의 건설그룹으로 그룹 회장이 제원화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고급 단독주택단지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세밀한 검문을 받았다. 제원화는 이곳으로 옮겨와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동혁의 예상대로 그는 정말 동혁이 암흑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행방을 알아내라고 할까 봐 걱정했다. 또 경찰에게 직접 자신을 찾아오라고 할 수 도 있었다. 비록 그는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동혁을 깔보고 있었지만 자신이 애초에 동혁을 바보로 여기며 얕잡아봤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이동혁의 H시 인맥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어.’ 이번 계획을 위해 그는 미리 제설희과 양정석 등을 J시로 먼저 돌려보냈다. “이제 소씨, 오씨, 정씨 가문을 손 볼 차례인가?” 소파에 앉은 제원화가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 소식을 알아보러 나간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소씨, 오씨, 정씨 가문의 집 앞, 그리고 항난그룹과 혜성그룹의 회사 앞에 경찰특공대 순찰차가 주차되어 있어 손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병운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원화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이동혁, 이 자식이 아주 치밀한 데가 있어. 예전에는 그놈을 얕봤지만 지금은 아주 밉살스러울 정도야. 거기다 하동해를 곽원산, 그 개X식이 끌어내리면서 하세량이 다시 시장 자리에 올랐어. 그렇지만 않았어도 이동혁 한놈만 상대하면 됐는데. 덕분에 고민을 좀 해야 하겠군.” 제원화는 이를 갈며 곽원산을 욕했다. ‘이동혁이 이미 방비를 마쳐서 쌍살이 느긋하게 소씨, 오씨, 정씨 가문을 찾아가기가 어려워졌어.’ ‘쌍살이 아무리 솜씨가 뛰어나도 총알이 날아오면 몸이 벌집이 될 거야.’ 그때 현병운이 제안했다. “회장님, 수소야 항난그룹
천진은 동혁을 뼈저리게 증오했다. 그의 얘기만 들어도 바로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였다. 제원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당신의 꿈을 이루어 드리죠. 수소야와 딸을 끌어낼 방법이 없을까요?” 천진은 생각했다. ‘소야를 속여서 나오게 할 방법이 있지만 마리는 나와 친하지 않아서 어려운데.’ ‘내가 갑자기 소야에게 마리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 이 여자가 의심할 테고.’ ‘그렇다면 마리부터 먼저 해결해야 돼.’ “제 회장님. 소야의 딸이 태양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아빠니까 딸의 하교를 마중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천진이 음침하게 말했다. 제원화는 즉시 손짓을 해서 현병운에게 그와 함께 가보라고 했다. ... 태양유치원. 백문수가 마리를 데리러 왔을 때 천진을 이미 그녀를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마리 얼굴의 표정을 보니 천진이 무서운 듯했다. “자네, 지금 마리를 데리러 온 건가?” 백문수가 놀라 물었다. 그는 천진이 마리를 데리러 오는 것을 처음 보았다. 천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소야가 마리를 데려 오라고 했어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먼저 돌아가세요.” “어? 어, 그래.” 백문수는 천진이 마리를 차에 태우는 걸 보고 이상해서 수소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진 씨, 왜 거짓말해? 내가 언제 당신한테 마리를 데려오라고 했어?” 수소야가 전화를 걸어와 따져 물었다. [여보, 당신이 나와 재혼한 후 난 여태 마리 아빠 노릇을 한 적이 없어. 그래서 오늘 저녁에 마리하고 슈퍼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려고. 표도 내가 이미 다 사놨어.] 천진이 친절하게 말했다. [당신도 빨리 와. 은하쇼핑몰의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릴게. 알다시피 마리가 나와 친하지 않아서 좀 어색해하잖아.]수소야는 천진의 음흉한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천진이 마리에게 잘하는 것을 보고 조금 기쁘고 안심이 되어 가겠다고 대답했다. “수 사장님, 회장님께서 저희가 사장님을 경호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사장님을 노릴
“흥, 입만 살아서 그럴듯하게 떠들긴. 내가 모를 줄 알아? 넌 그놈과 이미 침대에서 나뒹굴었잖아. 감히 바람을 피워서 내 체면을 구기다니. 지금 내가 그놈을 산 채로 찢어 죽여도 모자란다고.” 천진은 흉악한 얼굴로 광분해 소리쳤다. “이, 미X놈, 난 동혁 씨와 아무 일도 없었어.” “있든 없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이동혁이 오늘 죽었다는 거니까.” “...” 차 안이 시끄러워서 수소야를 경호하던 경호원들이 이미 상황을 눈치챘다. “불길한데? 누군가 사장님을 납치하려 하는 거 같아. 당장 저 차 세워.” 경호원들의 차 두 대가 막 출발하려 할 때였다. 부근에 주차에 있던 차들이 갑자기 시동을 걸더니 경호원 차들을 가로막아 꼼짝 못 하게 했다. 차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깡패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따그락, 따그락.” 쇠파이프가 땅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선두에는 주재원이 서있었다. 다급해진 경호원들은 가장 빠른 시간으로 깡패들을 해결했지만 수소야 모녀를 태운 차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사장님을 어디로 데려갔지?” 수소야의 경호원은 화가 나서 한 발로 주재원의 가슴을 밟았다. 피를 흘리는 주재원은 비웃으며 대답했다. “제 회장님이 수소야 모녀를 청운각으로 끌고 간다고 하셨어. 이동혁에게 수소야 모녀가 쌍살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한 시간 안에 그곳으로 가라고 전해.” “절대 경찰에 신고해서도 강오그룹에 도움을 청해도 안돼.” 퍽!경호원이 발로 주재원을 차자 기절했다. “송소빈 비서에게 전화해서 회장님께 빨리 보고하라고 해.” 곧 동혁은 송소빈의 전화를 받았다. “제원화, 이 자식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동혁은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냈다. ‘소야 씨에 대한 경호는 이미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원화, 그놈이 천진을 찾아내 이용할 줄은 몰랐어.’ ‘수소야 모녀가 쌍살, 두 변태 놈 손에 넘어갔다면 너무 위험해.’ 동혁은 살기등등하게 문을 나서며
제원화는 천성이 신중해서 항상 모든 일에 퇴로를 남겨놓았다. 그는 자신의 거처가 드러날까 봐 부하들에게 수소야 모녀를 자신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다. [없습니다.] “좋아” 제원화는 J시 쌍살을 불러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너희들이 나를 위해 힘써주니 내가 감사의 뜻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영상 속의 이 모녀는 오늘 밤 너희들 것이야. 너희들이 충분히 즐기고 나서 이동혁 그놈을 쓰러뜨리고 천천히 괴롭혀죠.” 쌍살은 살인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색욕도 아주 강해 일찍이 인간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들이 R시에 도착한 그날 밤에도 이정산의 며느리는 그들에게 산 채로 유린당하다 죽었다. 지금 영상 속의 수소야 모녀를 본 그들은 변태 같은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제원화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청운각으로 갔다. 청운각에 이르자 한 사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바로 수소야 모녀를 차로 데려온 성동규였다. “그 모녀는 어디 있지?” 여흥수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는데 보기만 해도 성동규의 두피가 저릴 정도였다. 성동규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혔다. “두 분, 위층으로 가시지요.” 쌍살과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아래층에 차 한 대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 두 남자가 그 차에서 내렸다. 바로 동혁과 석훈이었다. 성동규는 즉시 제원화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회장님, 이동혁이 도착했는데 한 사람과 함께 왔습니다.” [누구?] 제원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차문을 열어 준 걸 보니 운전기사 같기도 합니다.” [쓸모없는 인간, 이런 때에도 격식이나 따지고 있다니.] 제원화는 안심했다. ‘이동혁에게 차 문을 열어줄 정도의 운전기사라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할 거 없지.’ [들어오게 하고 쌍살이 알아서 천천히 데리고 놀게 해.] 제원화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동혁 넌 이제 끝이야.’ ‘쌍살의 손에
“안돼, 다가오지 마!” 수소야가 놀라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양아빠, 보고 싶어. 양아빠, 엉엉...” 마리가 듣는 사람의 마음이 아플 정도로 크게 울었다. 그러나 짐승 같은 쌍살은 동정심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변태욕이 더 커졌다. 쌍살이 음흉하게 웃으며 구석에 움츠리며 서있는 모녀에게 달려들었다. “죽고 싶어?” 갑자기 방 밖에서 노호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크게 들려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천진은 놀라서 얼이 빠진 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소야에게 그 외침은 천상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동혁 씨!” 그녀는 크게 소리쳤다. “어? 이동혁이라고?” 쌍살는 즉시 수소야 모녀에게 다가가는 걸 멈추고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음산한 눈동자에서 한줄기 살기가 솟아올랐다. 여흥수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으러 왔나 보네.” “제 회장님께서 바로 죽이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 천천히 괴롭혀주라고 하셨어.” 여흥수가 불만 가득 입을 삐죽거렸다. “그럼 우리 저놈 온몸의 뼈를 으스러뜨리자. 난 사람 비명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더라고.” 그가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수소야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마리를 놔두고 쌍살에게 달려들었다. “제가 이놈들을 막을 테니, 동혁 씨 빨리 도망가요.” 그녀는 용기를 내어 두 팔로 쌍살 중 한 사람을 힘껏 껴안으려고 했다. ‘동혁 씨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었는데. 난 동혁 씨가 우리들 때문에 이 두 악귀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걸 볼 수 없어.’ 짝!여흥수가 손바닥으로 수소야를 후려갈겼다. “주제넘게 나서지 마.” “엄마!” 마리가 울부짖으며 쪼그리고 앉아 쓰러진 수소야를 부축했다. “쌍살, 죽고 싶어?” 분노가 치솟은 동혁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놀라서 휘둥그레 눈을 뜬 천진이 동혁의 용기에 감탄했다. “너 정말 배짱 좋다.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감히 쌍살에게 덤비려 하다... 악!” 동혁이
“으아아, 분하다.” 여흥수는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방금 전의 흉포함과 오만함은 어딜 간 듯 보이지 않았고 사고를 당한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흥수야!” 여흥일의 눈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들 형제는 J시 암흑가를 주름잡았다. 사람을 죽이고 가문을 무너뜨려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 그런데 지금 여흥수는 석훈을 단 한 번 건드리지도 못하고 무참히 참패했다. 더욱이 폐인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여흥일은 자신의 동생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서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처음으로 석훈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놈.’ “야, 다음은 네 차례야.” 석훈이 여흥일을 가리켰다. 정세가 반전되어 지금 석훈은 사냥꾼이 되었고 여흥일은 사냥감이 되었다. 여흥일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형님, 저희 형제가 잘못했습니다. 조용히 동생을 데리고 돌아가게 해 주시면 오늘 일은 잊겠습니다. 앞으로 절대 복수도 하지 않을 겁니다.” 여흥일에게 이전의 광기와 흉악함은 사라졌고 마치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침착하게 말을 했다. “너희 형제가 밖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친놈들은 아닌 것 같네. 보아하니 그간 변태 짐승으로 보이려고 연기한 건가?” 석훈은 여흥일에게 다가가며 냉랭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넌 내게 조건 따위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어. 봐주기엔 이미 늦었다고.” 석훈은 여흥일의 의도를 파악했고 속지 않았다. “그렇다면 같이 죽는 수밖에.”여흥일의 눈이 다시 광기로 번뜩였다 그가 움직였다. 하지만 상대는 석훈이 아니라 뒤에 있는 수소야 모녀였다. 여흥일이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흐흐, 네가 나를 놓아주지 않겠다면 이 두 여자는 나와 함께 죽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뒤를 맞았다. “윽!” 여흥일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너...” 그는 너무 놀라 고개를 돌려 석훈을 바라보았다. ‘이놈은 귀신이야?
“진 회장님, 자고로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신 남편이 나와 골스 재단을 무시하며 도발한 이상, 이 정도 내 요구는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대니얼은 경호원이 10명이나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는 냉소를 머금고 무심한 듯 말했다. “물론, 요구를 거절해도 상관없어요.” “그렇다면 난 당신과 당신 남편이 내 요구를 거절한 결과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니까.” 이 말을 하고 그는 손을 내저었다. “처벅!” 그의 뒤에 있던 10명의 경호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세화는 경호원들이 낀 선글라스에서 자신과 동혁을 향한 열 줄기 야수 같은 시선을 느꼈다. 미세한 살기가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역시 전쟁터에 나가서 피를 본 노병들다웠다. 그들 특유의 살기로 인해 앞에 서있는 세화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을 뿐만 아니라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여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모두들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연회장의 분위기는 극도로 무거워졌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앞으로 대니얼 씨의 눈밖에 나면 아주 큰일이 나겠어.’ 연회장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의 같은 생각을 했다. “여보, 겁낼 거 없어.” 바로 그때 동혁이 갑자기 일어나 자연스럽게 세화의 앞을 막아서자 살기가 차단되었다. 이상하게도 경호원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스러운 살기가 동혁을 거치면서 마치 먼지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10명의 경호원들이 동혁을 주시하자 더욱 강한 살기가 동혁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폭풍 같은 살기에도 동혁은 여전히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그 순간 경호원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들의 모든 살기가 그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 죽고 싶나요?” 바로 그때 동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 “윽.
“진 회장님, 당신의 저 쓸모없는 남편은 이제 끝이야.” 주다정의 목소리는 득의양양하며 독기가 가득했다. 대니얼은 동혁을 보고 비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혁에게 두 번이나 뺨을 맞은 일로 복수를 고민하다가, 특별히 사람을 소개받아 이 열 사람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고용했다. “헉.” 주다정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 한번에 숨을 들이마시는 듯한 소리를 냈다. ‘경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대단해 보이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열 명이나 오다니.’ 사람들은 순간 동혁이 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대니얼의 발밑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모두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세화는 마음속에서 점점 두려움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혁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설득했다. “동혁 씨, 저 대니얼이라는 사람하고 맞서지 말아. 괜히 화풀이를 당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 방법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부드럽게 넘어가자.” “걱정 마. 내가 절대 동혁 씨를 무릎 꿇리지 않을 거니까. 기껏해야 돈으로 조금 보상해 주면 그만 일거야.” 세화는 동혁의 성격이 강하지만 때로는 마음 약한 구석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혁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일어나서 대신 사과했다. “대니얼 씨, 제 남편이 저 때문에 아까 괜한 실수를 한 거 같네요.” “어떻게 하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 주시겠어요?”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건 좀 지나치니, 다른 방식으로 사과를 대신할게요.” 세화가 저자세로 나오자 대니얼은 웃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두 눈으로 세화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세화는 마음이 불안해지며 상대방이 무슨 부당한 요구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니얼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냉랭하게 말했다. “만약 진 회장님이 제 요구를 들어준다면, 쓸모없는 남편에 대한 회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을 생각해 지난 모든 무례한 일들을 묻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하죠.” 세화는 마음속에서 더욱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요구가 뭔지 말
류성중은 자신의 말에도 동혁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세화를 노려보았다. “세화야, 쓸모없는 네 남편 놈이 아직도 뭘 모르는구나. 그리고 너는 또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빨리 네 남편이 대니얼 씨에게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해.” “대니얼 씨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혼내줄지 각오해.” 류성중의 말에 분노한 세화의 하얀 얼굴이 더 차갑게 변했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친외삼촌 맞아? 어떻게 조카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지?’ ‘내 남편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니얼, 저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하라니?’ ‘단지 저 외국인이 Y국의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거야?’ 세화는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그때 동혁이 그녀의 손을 힘껏 잡았다. “여보, 별것도 아닌 두 사람 때문에 이렇게 화낼 필요 없어. 그냥 동네의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 “난 오히려 오늘 누가 날 사과하게 만들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 동혁은 세화를 끌어당겨 앉혀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라주고, 자신도 한 잔을 따른 다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마치 공기처럼 그저 안 보이는 사람 취급하며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동혁의 모습을 본 류성중은 화가 나 표정이 구겨졌다. ‘지금 동혁이, 저놈은 상황이 어떤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여기서 가장 신분이 미천하고 지위도 가장 낮은 놈이 감히 대니얼 씨를 도발해?’ ‘정말로 죽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대니얼 씨, 저 부부가 정말 예의가 없네요. 대니얼 씨와 골스 재단을 완전 무시하고 있어요.” 대니얼 곁에 있던 주다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녀의 관심은 동혁이 아니라 줄곧 세화에게 쏠려 있었다. 세화와 동혁이 대니얼을 이렇게 화나게 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도리어 기뻐했다. 그녀는 세화가 외모, 신분, 지위에서 자신보다 몇 단계나 높은 위치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많이 받
“물론 잘 알다마다요.” 대니얼은 말을 하며 자신의 뺨을 만졌다. 동혁에게 두 번씩이나 뺨을 맞은 굴욕적인 일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뼈에 사무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동혁의 눈과 마주쳤을 때 그의 마음속 원한이 하마터면 분출될 뻔했다. 대니얼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난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원화투자회사의 사장 자리조차도 모두 아내의 친한 친구 덕분에 얻게 된 거죠.”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데릴사위 주제에 뜻밖에도 이렇게 제가 참석하는 연회에 나오다니, 기가 막히군요.” 대니얼은 류성중을 바라보며 화를 내며 말했다. “부이사장님, 정말 실망스럽군요. 이건 우리 골스 가문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이 화가 난 목소리에 류성중의 볼이 다 떨렸다. 류성중이 동혁을 다시 바라볼 때 그의 안색은 극도로 나빠져 있었다. “세화야, 이 쓸모없는 놈이 네 덕분에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 된 거였어? 근데 왜 그 일은 내게 말하지 않은 거야?” 류성중의 마음은 후회가 가득했다. ‘세화가 동혁이를 데리고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대니얼 씨가 화만 났잖아.’ 류성중 외에 연회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혁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다시 경외에서 경멸로 바뀌었다. “어쩐지 데릴사위 주제에 어떻게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으로 2조의 자금을 관리하는지 했어. 모두 진 회장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은 거였군.” “정말 웃기지도 않아서, 그러고도 아까 전에 저 인간이 자기 신분을 성신제약의 양 사장과 비교하며 큰소리친 거야? 아주 가소롭구먼.” “진 회장님은 이 쓸모없는 데릴사위의 체면을 생각해서 앞에서는 이 사실을 숨겼겠네.” “역시 쓸모없는 인간은 어딜 가나 똑같아. 어떤 자리에 않아도 자신이 쓸모없는 데릴사위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니까.” 이런저런 조롱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모두 아까 전에 동혁에게 “꺼지세요.”라는
모두가 대니얼을 둘러싸고 아부했지만 세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니얼은 이것에 불만을 품었지만 동시에 첫눈에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미인인 세화에게서 강한 소유욕을 느끼게 되었다. 대니얼 곁에 있던 주다정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세화를 바라보는 눈에는 질투가 가득했다. “하하하, 이쪽은 제 친조카인 진세화라고 합니다. 세방그룹과 혜성그룹의 회장으로 있지요. 마침 대니얼 씨에게 소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류성중은 대니얼이 세화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기뻤다. 그는 고개를 돌려 명령조로 세화에게 말했다. “세화야 뭐 하고 있어? 대니얼 씨가 너와 인사를 하고 싶어 하시잖아. 빨리 이리 와서 인사해라.” 대니얼은 약간 놀라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세화를 다시 쳐다보았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여자가 두 그룹의 회장일 줄이야.’ 그 순간 대니얼은 마음속에서 결심했다. ‘저 여자든, 저 여자의 회사든.’ ‘모두 내가 차지해야겠어.’ “진 회장님, 좋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대니얼 씨의 눈에 띄었잖아요. 저희는 대니얼 씨를 쫓아다니며 말을 걸었는데 모두 무시하더라고요.” “진 회장님, 뭐 하고 계세요? 빨리 가서 인사하세요. 다니엘 씨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이건 좋은 기회예요. Y국 귀족과 연결되는...” 세화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자들이 입을 열어 부추겼다. 그녀들은 세화처럼 대니얼의 눈에 띄고 싶었다. 세화는 대니얼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내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상대가 자신과 돈을 모두 챙기겠다는 흑심을 품은 지는 몰랐지만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인사 한 마디를 하지 않으면 대니얼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세화는 이유 없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 배경에 힘이 있고 H국에서 특별한 신분을 가진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러했다.그래서 세화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줄곧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동혁이 갑자기 앞으로 두 걸음 나와 그녀를
사실 주다정은 H시에서 큰 스타라고도 할 수 없었다. 세화와 동혁은 주다정에 대해 전혀 몰랐고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알아본 H시 사람들 몇 명이 이렇게 까지 말한 건 대니얼 앞에서 그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남자들이 부러움의 표정을 지었다. 주다정은 미인이었는데 경제채널 사회자로 활약하는 만큼 고학력을 가진 지적인 이미지도 있었다. 이런 여자는 일반적으로 성공한 보통 남자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그래서 연회장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주다정에게는 별로 관심 없는 존재였다. ‘지금 저 주다정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기혼남인 대니얼을 따라 여길 왔다고?’ ‘남자로서 저 대니얼이라는 사람이 너무 부럽구먼.’ 쏟아지는 아부에도 주다정은 차분하면서 도도한 여신의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녀는 그저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약간의 거리감을 유지했다. 만약 그녀가 대니얼의 팔짱을 끼고 있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그녀를 시크한 여신으로 여겼을 것이다. “대니엘 씨, 여기 다른 분들 몇 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류성중은 옆에 있는 왕근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H시 의료공단의 왕근식 부장입니다. 오늘 연회도 바로 이분이 준비한 거지요.” “안녕하세요, 대니얼 씨.” 왕근식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니얼 씨가 있는 골스재단의 프로젝트가 투자 유치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의약 쪽인가요?” “그렇다면 저희 H시를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이곳에서 정책상의 문제가 생겨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대니얼 씨께서 언제든지 저희들에게 연락하세요.” “저희 모두가 반드시 성심성의껏 대니얼 씨를 돕겠습니다. 연락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왕근식이 적극적으로 말했다. 그는 비록 대니얼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이후 그가 자신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 어쨌든 골스재단은 Y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큰 재단이었다.
‘류 부이사장님이 저렇게 나서서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도착한 손님이 대단한 사람이나 보네.’ 연회장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협조적으로 류성중의 뒤를 따라 함께 연회장 입구로 향했다. 류성중은 의료공단의 부이사장이었지만 그 Y국에서 온 사람과 사실 그 어떤 관계도 없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세화를 끌어들여,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세화가 상대방과 교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을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 자신도 약간의 친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류성중은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살폈는데 여전히 가만히 서있는 세화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세화야,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고 있어? 넌 함께 가서 Y국 귀족 분과 인사하고 싶지 않아?” 세화는 원래 Y국 귀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류성중의 모습을 보고 억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동혁 역시 어찌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단지 대니얼이 오늘 밤에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세화를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곧 연회장 입구 밖의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동혁, 세화 등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살피면서 오고 있는 귀족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류성중은 오늘 밤 연회의 주인공으로서 당연히 사람들 선두에 나서서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곧바로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체격이 큰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동혁의 예상대로 이미 두 번이나 만났던 대니얼이었다. 대니얼은 언제나처럼 날씬하고 정장을 입고서 자신이 귀족임을 드러냈다. 그의 곁에는 명품 정장을 입은 젊은 H국 여자가 따라왔는데 세련된 화장에 기품이 있는 모습이었다. 대니얼의 팔짱을 낀 채 긴 목을 높이 치켜든 그녀는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거만하게 쳐다보았다.곧 그녀의 시선이 세화에게 고정되었고,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세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세화는 그녀의 눈빛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저 공손한 미소
“우와.” 류성중의 말에 사람들이 놀라며 감탄했다. ‘Y국의 전통 있는 귀족 출신에 10위권 내의 다국적 재단을 등에 업고 있다고?’ ‘이런 배경이라면 단연 거물급 손님이잖아.’ 많은 사람들이 류성중이 언급한 손님과 사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반대로 동혁의 얼굴에는 이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류성중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그의 머릿속에 대니얼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류성중은 동혁의 이런 생각을 모른 채 과시하는 말투로 계속 말했다. “이 귀족분이 이번에 아주 대단한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야. 국내 많은 회사들이 이 프로젝트 투자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마침 내가 그와 사이가 좋아.” “동혁이, 네가 이제 막 원화투자회사에 사장으로 부임했으니 분명 좋은 프로젝트에 투자해서 뭔가 성과를 내고 싶을 거야.” “어때? 내가 이따가 그분을 소개해 줄까?” 류성중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서서 동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류성중은 원화투자회사 사장이라는 동혁의 신분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해서 마음속에서 동혁에 대한 우월감을 유지하려 했다. “호의에 감사해요. 하지만 그러실 거 없어요. 전 괜찮아요.” 동혁은 웃으며 부드럽게 거절했다. 류성중은 동혁이 이렇게 단번에 거절할 줄은 몰랐고 순간 의아해하면서 짜증이 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세화에게 말했다. “세화야, 내가 아까 도형이 편을 들며 몇 마디 했다고, 동혁이가 아직도 이 외삼촌에게 좀 삐진 거 같구나. 난 그래도 결국 가족 편인데 말이야.” “그래, 동혁 씨, 외삼촌한테 너무 그러지 마.” 세화가 동혁을 잡아당기며 눈치를 주었다. 동혁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난 원래 뒤끝이 없어. 단지 그 대단한 프로젝트에 별로 관심이 없을 뿐이야.” 이 말을 듣고 류성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동혁이 사리분간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그 사람을 잘 몰라서 그래. 일단 조금 있다가 한번 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말이 통하지 않자 류성중은 그렇
“이 개X식, 우리 회사 투자 유치를 망치다니. ” 현재 연회장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양도형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꽉 쥐고 분노와 증오에 찬 눈으로 동혁을 노려보며 달려들어 욕을 했다. “투자를 망친 건 내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에요.” “단지 서류상으로만 신청한 투자에다 아직 심사 시작도 안 했는데 마치 2000억 투자를 받은 것처럼 허풍을 떨었잖아요.” “게다가 더 우스운 건 이걸 여자에게 어필할 자신의 능력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내 아내와 자신이 어울린다고 착각하는 거죠.” 동혁은 몸을 숙여 아까 전 양도형이 자신에게 건넸던 카드를 집어 들었다. 주워서 묻은 먼지를 털고 다시 양도형의 얼굴에 던졌다. “자, 이거 도로 가져가요. 당신은 내 아내와 어울리지 않아요.” 짝! 은행 카드가 양도형의 뺨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 비록 아프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굴욕감이 양도형을 폭발시켜 버렸다. “이 개X식, 내가 죽여버릴 거야.” 양도형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주먹을 쥐고 동혁을 때리려고 했다. “그만해.” 그 순간 류성중이 갑자기 호통을 치자 양도형은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도형아, 바로 N도로 돌아가. 괜히 여기서 더 망신당하지 말고.” 류성중의 분노한 표정을 본 양도형은 마침내 오늘 밤 자신이 동혁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동혁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는 아무 말없이 그대로 돌아섰다.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내뱉었다. 특히 동혁에 대해 양도형과 같은 생각을 품었던 사람들은 더 두려움을 느꼈다. ‘저 이동혁이 그저 쓸모없는 데릴사위인 줄 알고 비아냥거렸으니, 큰일이야.’ 그들이 아까는 동혁을 비웃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들 자신이 비웃음을 사게 생겼다. 하지만 동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자신을 조롱했던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류성중은 그런 동혁을 보고 머리가 아파왔다. ‘방금 전까지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혁을 무시하고 도형이를 높이 치켜세웠는데.’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