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이 녀석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진루안의 말을 듣자 주변의 하객들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이렇게 뻔뻔하게 잘난 체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진루안이 곧 망신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때, 그의 말을 들은 서경아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다가갔다."저 녀석, 이제 죽었다!" 안명섭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가서 거울이나 좀 보고 그런 말을 하지, 감히 서경아가 약혼녀라고 해?" 장근수도 조롱 섞인 비웃음을 흘리며 진루안이 망신당하기를 기다렸다.주위의 빈객들도 모두 뱁새의 말로를 구경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서경아는 천천히 진루안의 팔짱을 끼더니 모든 사람들 앞에서 냉담한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이 사람은 확실히 제 약혼자, 서씨 가문의 사위가 맞아요!"삽시간에, 구경하고 있던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게다가 서경아의 말은 마치 커다란 손이 되어 그들의 뺨을 세게 내리치는 듯 해, 얼굴이 화끈거렸다.안명섭을 비롯한 사람들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진루안을 쳐다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여태까지 믿고 살아온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저 녀석이… 정말로 서씨 가문의 사위라고? 그럴 리가?등을 돌려 진루안을 쳐다본 서경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명령하듯 말했다. "조금 이따가 저와 함께 가문 본가로 가서 할아버지에게 인사해요."진루안은 여신 같은 약혼녀를 바라봤다. 이 사람이 바로 스승님이 그에게 찾아준 약혼녀였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미래의 아내의 말이니 당연히 들어야 했다."아, 기억났어. 저 사람 서씨 가문의 그 데릴사위잖아!"바로 그때, 호텔 안에서 별안간 울린 탄성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한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진루안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더니 번뜩 깨달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내 그 남자는 한껏 비아냥대며 말했다."서씨 가문 사람에게,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가씨에게 데릴사위를 찾아줬다고
오늘 그는 그 가시를 뽑아내 진루안의 가슴에 단단히 찔러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는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생각이었다.안명섭의 말에 로비의 분위기는 다시금 얼어붙었다.서경아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다. 한준서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보다 더 싫은 사람은 없었다.서경아가 한창 어떻게 자리를 떠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경호원 두 사람이 호텔 대문을 열 더니, 입구에서 흰 정장을 입은 잘생긴 남자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칼로 깎은 듯한 얼굴의 남자는 차갑고 오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다만 남자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내건 채, 최대한 점잖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의 등장에 호텔 로비의 분위기는 다시 타올랐고, 수많은 여자들의 탄성을 불러왔다.한준서를 손에 넣게 된다면 후반생은 더는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세상에, 진짜로 준서 도련님이야!""너무 멋있어, 어머!""한준서 도련님, 사랑해요. 꺄아!"수많은 여자들이 마치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환호성을 질렀다.그들은 다가가려 했지만, 살기를 담은 눈빛으로 차갑게 쏘아보는 경호원 때문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준서 도련님, 오셨습니까?"한준서가 나타난 것을 본 안명섭은 곧바로 아부하듯 달려가더니 허리를 살짝 굽히고 직접 한준서를 안내했다.그런 안명섭을 흘깃 쳐다본 한준서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안명섭에게 건네주었다. "작은 성의입니다."그것을 본 안명섭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무려 한준서가 주는 봉투를 운 좋게도 받게 되었다.만약 평소였다면 열어보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진루안이 있는 탓에 안명섭은 일부러 진루안을 흘깃 본 뒤 봉투를 열어 안에서 카드를 하나 꺼냈다."1억 원밖에 안 됩니다!" 한준서는 그저 덤덤하게 웃을 뿐, 조금도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었다.1억, 이 한씨 가문 도련님인 그에게는 조금도 많지 않았다. 그저 숫자에 불과한 금액이었다.그 말을 듣자 안명섭도 한껏 동의했다. "도련님께는 소소한 금액이
오늘 이 결혼식장에서 그는 이미 안명섭을 여러 번이나 봐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봐줄 수가 없었다.그 일격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진루안은 음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앞에 있는 한준서를 계속해서 노려봤다."그 발 치우라고, 못 알아들어?"한준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감히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 그는 정말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설마, 자신이 한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며 이미지를 망칠 수는 없어, 한준서는 화를 꾹 참았다.이내 고개를 숙여 자신이 밟은 자단 불패를 본 한준서는 그것을 주워들어 멸시하듯 살펴보다 코웃음을 쳤다. "난 또 뭐라고, 고작 이거였어?""역시 거지다워. 이런 낡아빠진 불패도 보물처럼 아끼고. 여기…" 한준서는 대수롭지 않게 자단 불패를 진루안에게 던졌다. 그 불패를 꼭 손에 쥔 진루안은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그런 진루안의 모습을 보자, 한준서는 더 비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한준서의 마음에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감히 나한테 이딴 식으로 나오다니, 죽여버리고 말 거야!'한준서의 안색을 본 서경아는 진루안이 위험해졌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되기 시작했다.진루안이 사람들 앞에서 한준서에게 큰소리를 쳤으니, 속이 좁은 한준서의 성격상 절대로 진루안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그녀는 진루안이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한준서의 집안 배경은, 진루안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넘을 수 없는 태산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진루안은 그런 서경아의 마음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한준서의 화난 얼굴은 더더욱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진루안이 이곳에 온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약혼녀를 기다리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로는 바로 하나의 인과를 갚기 위해서였다.옆에 있는 이윤희를 본 진루안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여 자신이 가져온 포대 자루를 열었다."이윤희, 그때 네가 나한테 줬던 포대 자루 기
한준서는 등을 돌려 안명섭을 향해 물었다. "저 사람, 어떤 집안사람입니까?"방금 전 포대 자루에서 돈을 꺼내던 장면에 그는 정말로 깜짝 놀라버렸다.거들먹거리며 한준서의 앞으로 다가간 안명섭은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진루안은 17살 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뒤로는 학교를 그만두고 길거리를 떠돌았습니다. 배경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죠.""저 돈이라면, 다 경아 아가씨 것이겠죠!"그렇게 말한 안명섭은 서경아를 향해 몸을 살짝 숙였고, 진루안은 여전히 무시해 버렸다.동창으로서, 그는 진루안에 대해서는 전부 다 안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진루안에게 정말로 뒷배가 있었다면 이윤희는 절대로 그와 헤어질 리가 없었다."그 말은, 이 돈이 다 아가씨 거라고?" 이윤희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진루안과 서경아를 쳐다봤다.순간, 저 돈이 더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인제 보니, 진루안이 말한 성공이란 빌붙어 사는 것을 말하는 거였나?분위기는 점점 더 요상해졌지만 주위의 하객들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고, 안명섭마저도 결혼식 길시가 지난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한준서는 진루안을 뚫어지게 노려보다 이내 경호원 손에서 가죽 가방을 건네받았다. 가방 안에서 수표를 꺼낸 그는 2억을 슥슥 적더니 진루안의 발밑에 던졌다."이 돈 받고, 경아 씨 옆에서 떨어져!" 한준서는 오만하게 턱을 들어 올리며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진루안을 쳐다봤다.가난한 사람은 돈을 받게 되면 기뻐 날뛸 것이라는 것에, 그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발 밑에 떨어진 수표를 본 진루안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런 뒤 주머니에서 구깃한 수표를 꺼내더니 20억을 적고는 한준서를 쳐다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돈? 그딴 거 안 부족해!""20억 줄 테니까, 앞으로는 경아 씨에게 손댈 생각 하지 마!"주위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돈이 생긴 걸까?설령 빌붙어 산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콰직!!"악, 내 손!""아!!"두 경호원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진루안에게 왼쪽 팔이 부러진 두 사람은 처참한 꼴로 바닥에 쓰러져 앓는 소리를 냈다.순식간에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다.안명섭과 장근수는 아예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무지 믿지 못했다.눈앞의 저 녀석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몰래 나무 밑에서 울기나 하던 진루안이 맞나?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길바닥을 떠돌던 진루안이 맞긴 한가?진루안은 안명섭을 무시한 채 날카로운 한광을 드러내며 한준서를 노려봤다.그 눈빛에 한준서는 온몸이 차갑게 식더니,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뒤로 물러섰다."한준서라고 했나? 이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이미 충분히 너그러웠던 것 같으니, 더는 날 자극하지 마!"그렇게 말한 진루안은 한준서에게서 천천히 안명섭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너 이리저리 날뛰면서 날 상대하게 한준서를 부추겼지. 네 속셈 다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너와 이윤희 사이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옛 동창이라서 결혼식장 깽판 치지도 않았잖아!""그러니까 적당히 해!"진루안은 말을 마친 뒤, 다시 서경아를 바라본 뒤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밖으로 향했다."거기 서!"한준서는 일그러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쥔 채 분노에 차 크게 외치며 진루안을 뚫어지게 노려봤다.등을 돌린 진루안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내기 한 판 하겠어?" 한준서의 두 눈에 본 적 없는 살기가 드러났다."무슨 내기?" 진루안의 얼굴에 흥미가 드러났다.한준서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지금은 잠깐 허세를 부리게 두지, 내가 이기고 나면 반드시 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 거야!'저 천한 인간은 한씨 가문에 비하면 그저 별 볼 일 없는 개돼지에 불과했다!"일주일 뒤, 권술사를 부를 테니 대결하겠나? 진 사람은 팔을 자르는 걸로 하지!""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설마 응하지 않을 건 아니지?" 한준서는 진루안을 자극하며
한시간 뒤, 서씨 가문 본가 앞.마세라티 안."당신 방금 전에는 좀 충동적이었어요. 한씨 가문은 이동근 권술사랑 친분이 깊으니 분명 이동근을 부를 거예요.""이동근은 동강시의 최연소 권술사로 백전 연전불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그런 사람과 상대하기엔 당신에게는 아무런 승산이 없어요!" 서경아는 냉담한 말투로 마치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듯 말했다."이동근 말하는 거야?" 진루안은 작게 중얼거렸다. 불현듯 3년 전, 한 사제가 스승님을 모시겠다고 찾아왔던 것이 떠올랐다.스승님은 그들을 거두지 않고 그저 한 가지 기술만 가르쳐주었고, 그들은 기뻐하며 떠났었다.그때 그 두 사람 중 제자 쪽이 이동근이었던가?나름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괜찮아, 내가 상대할 수 있어!" 진루안은 고개를 저으며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서경아는 진루안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면 나중에 그녀가 나서서 조정하면 그만이었다."내리죠."서경아는 차에서 내려 서씨 가문의 본가를 바라봤다. 그 안에 차려진 영당을 보는 그녀의 얼굴에 울적한 기색이 드러났다.진루안의 얼굴에도 슬픔이 깃들었다.비록 이 어르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스승님인 백 군신과 나이를 초월한 친구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떠났을 줄이야.진루안과 서경아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의 영당은 몹시 성대했다.서씨 가문 어르신도 보통 인물이 아닌 데다, 서씨 가문의 체면도 반드시 지켜야 했다.복도 양측에는 흰 생화가 진열되어 있었고 영당 양측에는 더욱더 많은 화한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그리고 전방에는 위패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어르신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어르신, 저 진루안입니다. 어르신과 스승님께서 정하신 혼약, 반드시 지키겠습니다!""그러니까 마음 놓으세요. 반드시 경아 씨를 지키고 서씨 가문을 지켜내겠습니다."진루안은 영당 앞에서 깊은 절을 올렸다."서경아, 너 당장 안 나와?!""너 네가
서경아는 붉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눈앞의 요염하기 그지없는 여자를 본 서경아는 이내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작은어머니, 할아버지가 정한 혼약을 전 반드시 지킬 거예요!""한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작은어머니가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전 절대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서경아는 울지도, 그렇다고 크게 소란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어쩌면 그건 계모가 때리고 욕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15살에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서경아는 이런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서경아의 계모는 서경아가 이토록 고집스러운 것을 보자 분에 가득 찬 얼굴을 하더니 다시금 손을 뻗었다.오늘 저 망할 것을 단단히 혼쭐을 낼 심산이었다. 그러고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지 두고 보라지!그렇게 손을 뻗은 그녀는 불현듯 팔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거대한 펜치 같은 손이 그녀의 손목을 꽉 잡은 채 억지로 그 손을 아래로 눌러버렸다."누가 당신에게 경아를 때릴 자격을 줬습니까?" 진루안은 언뜻 살기가 드러난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계모는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분노를 번뜩이며 진루안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자식이, 어디서 능청을 떨어? 이건 우리 서씨 가문의 일이야. 얼른 썩 꺼지지 못해?""네까짓 게 우리 서씨 집안의 일에 끼어들려고 하다니? 얼른 꺼져버려!" 계모는 버둥대며 진루안의 팔을 뿌리치려했다.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랐지만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리하여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오른손을 들어 진루안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이 개자식!"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루안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그녀는 오늘 반드시 이 개자식에게 본때를 보여줘, 자신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작정이었다.서경아의 안색이 순간 돌변했다. 막 다가가 말리려는데
"비록 아주 귀찮은 일을 만들어줬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등을 돌려 다가온 서경아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담긴 눈빛으로 진루안을 바라봤다.키 185에, 그다지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아주 씩씩한 이 남자는 바로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찾아 준 약혼자였다.그녀는 이전까지 진루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게다가 결혼식장에 있을 때는 조금 싫다는 생각도 했었다.하지만 방금 전 보인 진루안의 행동에, 서경아는 마음이 조금 따스해졌다."뭘 고마워하고 그래요. 앞으로 우리는 부부잖아요. 당신은 제 아내고, 전 당신의…""잠깐!" 서경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속에 생겨났던 아주 조금의 호감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서경아의 안색이 나빠지더니 진루안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씩 강조하며 말했다. "당분간은 혼약을 깰 수 없지만, 저희 약속 하나 하죠!""2년을 기한으로 정하고, 그동안 당신은 제 남편으로 지내다가 2년 뒤에는 각자 빚진 거 없이 완전히 끊어내는 걸로 하죠. 할 수 있겠어요?" 서경아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말투로 진루안에게 말했다.진루안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2년 동안 당신의 애정 문제에 대해서는 안 물어볼게요. 그저 다른 여자를 집에만 데려오지 않으면, 전 절대로 간섭하지 않겠어요!""그리고 저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 없어요. 저, 서경아는 평생 남자는 만날 생각 없거든요.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서화 그룹을 건성 제일의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제 유일한 목표예요!"주먹을 꽉 쥐고 있는 서경아에게서는 슈퍼 우먼 같은 결연함이 느껴졌다.하지만 진루안은 그런 그녀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다.만약 서경아가 원한다면, 그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서화 그룹을 한 달도 되지 않아 건성 제일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하지만 진짜 자신의 신분을 말한다고 해도, 서경아는 아마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 뻔했다.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녀가 고정관념에 갇혀 자신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