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전부 다 어제 일어난 일이에요.”조연아가 대답했다.“널 습격했다는 사람은 누구야? 알아냈어?”“추준이에요.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어요.”“뭐?”수화기 너머, 추연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어쩜 자기 동생한테 그런 짓을. 도박에 빠졌다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야?”“경찰이 조사를 시작했으니까 아마 곧 잡힐 거예요.”“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너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이모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연준이한테는 내가 말도 못했어.”추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모, 저 괜찮아요. 그리고 연준이한테는 그냥 비밀로 해주세요.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요.”“그래. 너... 괜찮은 거지? 힘든 일 있으면 이모한테 얘기해. 뭐든 네가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네, 이모.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 일단은 너무 졸려서 좀 잘게요.”긴장이 풀려서인지 소파에 기댄 조연아의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왔다.“그래. 그럼 얼른 자.”같은 시각. 임천 별장으로 돌아온 민지훈을 맞이한 건 오민이었다.“대표님.”“제대로 알아봤습니까?”민지훈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던 오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며칠간의 행적을 전부 기록해 두었습니다.”“통화기록은요?”“역시 알아봤지만 별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오민이 넘긴 파일을 펼쳐보던 민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연아 씨를 공격한 건 어디까지나 충동적인 행동 같습니다. 대표님께 전화를 한 사람은 아마 추준의 측근일지도 모르죠.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아 대포폰을 사용한 거고요.”오민의 설명은 충분히 합리적이었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어젯밤 병원 그리고 주변 도로 CCTV 영상 전부 다 확인해 봐야겠어요.”민지훈의 차가운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감히... 연아한테...’“알겠습니다.”“그리고 백장미 씨 통화기록도 알아보세요.”“백장미 씨요?”오민의 눈이 동그래졌다.“백장미 씨는 자살로 사망한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왜...”“자살동기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오민은 민지훈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팍 쳤다.“그러니까요. 죄책감으로 자살한 거라면 굳이 3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겠죠… 혹시 백장미는 자살이 아닌 타살? 아니면 누군가의 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살한 건가?”민지훈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누군가의 잘못을 덮어쓴 거죠.”오민은 모든 걸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연아 아가씨가 3년전 씨씨티비영상을 복구시키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아마도 회장님 사인에 대해 다시 조사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범이 자기가 저지른 일이 밝혀질까 봐 무서워서 누군가한테 덮어씌우려고 한 거네요… 생각해 보면 백장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제삼자가 부인이 되었으니, 증오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원래 부인을 살해하고 말이 통하는 시나리오다.오민은 계속 말을 보탰다.“먼저는 조하율이랑 백장미가 차 사고를 당하고 다음은 연아 아가씨가 추준의 습격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장미가 자살했고…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난 데다 백장미는 자살 이유가 충분하니까 사람들이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 거네요.”“진범도 언젠간 허점을 들어낼 거예요.”오민도 민지훈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진실은 언젠간 밝혀질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 거라도.“그 사람 찾아내 주세요. 빠른 시일 내로.”민지훈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오민한테 명령했다.적은 어둠 속에 숨어있다. 똑똑한 조연아가 백장미의 사인이 자살이 아닌 누군가의 죄를 덮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대가를 불문하고 이 일을 조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대가가 목숨일지 언정 포기를 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진실에 가까울수록 더 위험한 법인데…“네.”오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 사진 몇 장을 민지훈한테 건네주었다.“도련님, 오늘 아침에 연아 아가씨랑 일출 보러 간 사진이 기자들한테 찍혔습니다. 지금 언론사에서 이 사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오민이 건네다 준 사진을 쥐고 본
”진짜 대박뉴스네. 도련님이 전 부인과 같이 데이트하며 재혼하길 원한다? 무슨 상황인지 누가 설명 좀.”…핸드폰이 너무 울려서 아직도 잠결인 조연아가 하는 수 없이 받아버렸다.“여보세요?”잠긴 목소리로 그녀가 먼저 말했다.“조연아, 무슨 상황이야 지금? 나 지금 병원에서 하율이를 돌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기사를 봤다니까! 너 아직도 못 봤어?”“기사? 무슨 기사?”조연아는 아직도 비몽사몽이다.“무슨 기사긴. 너랑 민지훈이 바닷가 데이트한 거지!”“바닷가 데이트?”조연아의 대뇌는 몇 초간 초고속 운행을 진행했다. 그제야 생각 난 그녀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버렸다.“뭐, 뭐라고? 나랑 민지훈이 같이 해 뜨는 거 보러 간 일을 말하는거야?”“그렇다니까. 기사까지 났어!”조연아가 핸드폰을 잠금 해제시키고 보니 안 읽은 소식이 몇백 통이나 있었다. 회사 홍보팀에서 보낸 것도 있고 비서실장님이 보낸 것도 있고 하태윤이랑 고주혁이 보내온 것도 있었다. 게다가 부재중전화 몇십통도 있었는데 만두 한 사람이 이십 통이나 걸어왔다는 걸…뉴스에는 온통 그녀와 민지훈의 바닷가 데이트뿐이었다.이게 찐 사랑? 민지훈과 조연아의 바닷가 데이트.이혼이 무슨 상관인가. 민지훈과 전 아내의 로맨틱 데이트바닷가+일출. 민지훈과 전 아내 조연아 재결합?미쳤다… 진짜 말도 안 돼…“조연아? 야! 야…”연아는 만두의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 민지훈한테 연락했다.“여보세...”“민지훈, 네가 그런 거야?”전화를 받자마자 쉴 틈 없이 질문을 던진 조연아다.“응?”덤덤하다 못해 아무런 감정 기복도 들리지 않는 민지훈의 대답이 들려왔다.“지금 인터넷에 퍼진 우리 사지. 네가 퍼뜨려도 된다고 허락한 거냐고.”민지훈이 어떤 사람인데, 언론사들은 그의 허락 없이 이런 사생활 사진들을 올리지 못할 것이다.“잘 찍었더라고.”그는 사진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뭐?”조연아는 잠깐 당황했다. 인정한건가?“좋은 건 다른 사람들이랑도 공유해야잖아. 사진
”일출도 같이 보고 눈밭도 같이 걸은 사람은 나뿐일 거야.”민지훈의 댓글에 사람들의 반응은 난리가 아니었다.연아는 이 댓글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누군가가 전에 알려줬던 말이 생각났다.--- 같이 일출을 보고 눈밭을 걸으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을 거래.조연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가 아직도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심지어 민지훈의 이 댓글 아래서 이 말을 해석해 주는 네티즌도 있었다.“일출은 하루의 시작이고, 눈은 일 년의 끝이잖아. 뭐, 게임 끝이지.”“제가 민지훈 도련님의 이 말을 해석해 줄게요. 일출을 같이 본 사람도 나고, 눈밭을 같이 걸어 본 사람도 나다. 조연아 넌, 나 민지훈이랑만 이 모든 걸 해봤다.라는 거죠.”“민지훈 진짜 조연아 좋아하나 봐… 그러면 애초에 이혼은 왜 했대? 너무 아쉬워ㅠㅠ 둘이 재결합하는 건가?”재결합?절대 그럴 리가 없어!내가 바보라고 저지른 잘못을 한 번 더 저질러?연아는 댓글 하나하나 보더니 화가 난 듯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 화장실로 걸어갔다.이젠 그만 생각해야지.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였고 간단하게 빵을 챙겨 먹고는 차키를 들고 회사를 향했다.회사에 곧 도착할 무렵, 그녀의 차를 본 기자들은 갑자기 차 앞으로 달려들었다.핸들을 쥐고 있던 조연아의 손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조금 들어갔다.모두 민지훈 때문에 일어난 사단이다. 나쁜 새끼.그녀는 경적을 몇 번 울려 기자들더러 비키라고 경고했지만 이미 앞뒤로 막혀버린 상태여서 기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차창을 통해 비춰들어 오는 플래시에 심지어 생방송까지 하려고 달려든 사람까지.경호원들도 차 앞으로 다가와 기자들을 말리려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지라 끄떡없었다.“조연아 씨, 민지훈 씨랑 바닷가 데이트를 하신 건 재결합 의향이 있다는 겁니까?”“민지훈 씨와 조연아 씨는 혹시 회사를 위해 재결합하시는 건가요?”조연아는 선글라스를 벗고 차창을 내렸다.“저랑 민지훈 씨는 재결합하지 않을겁니다.”그
대박 뉴스!민지훈 게이래! 그것도 조연아가 직접 인정했어.기사 낼 필요도 없이 이미 생방송 댓글 창은 난리가 났다.백만장자에 권력을 거머쥔 데다 배우 뺨치는 비주얼을 가진 민지훈이 게이라니?…연아가 차를 세우자마자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민지훈 게이? 전 부인 조연아가 직접 인정했다!---게이 민지훈? 뜻밖의 성적 지향성.연아는 이런 기사들에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추준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마음도 같이 무거워졌다.추준이 잡히지 않은 이상 그녀는 수시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두렵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어젯밤의 모든 일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데, 생각만 해도 마음이 떨린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티를 내면 안 되고 침착해야 한다.“연아야?”넋 놓고 있는 연아를 보고 추연이 물었다.“괜찮아? 나도 경찰한테서 소식을 듣자마자 추준 집으로 갔는데 그 놈이 돌아간것 같지는 않았어.”연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추연한테 물었다.“이모, 추건은 어떤 반응이었어요?”“자기 아들이 한 짓인 줄 알면 좋아하기 바쁠걸. 무슨 반응이 있겠어. 뭐든 모른다고 하겠지. 왜 우리 추씨 집안에 이런 인간이 태어난 거야.”추준이 도망가면 그 뒤의 배후는 당분간 끌어내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연아야?”추연은 그녀를 톡톡 쳤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정신을 차린 연아는 웃으며 추연을 대답했다.“이모, 이젠 이 일에 상관하지 마요. 지금 추준도 행방불명인데 이모가 더 조사했다 이모도 위험해질 수 있어요.”“상관하지 말라니! 내가 조카 혼자 위험하게 내버려둘 사람이야? 연아 넌 왜 모든 일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는 거야? 앞으로는 이모네 집 와서 같이 살아! 거절하기 없기야! ““이모…”거절은 거절한다는 말투로 말하는 추연을 보며 연아도 조금 의외였다.“연준이가 요즘 계속 와인창고에만 있어 집이 비어있거든. 나 혼자 살기엔 적적하기
연아도 추연의 성격은 잘 알고 있다. 일단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흔들기 어렵다는걸.“이모, 화내지 마요. 이제 퇴근하고 짐 옮기러 갈게요.”연아도 추연의 적극적인 초대에 거절하기 머쓱한지 하는 수없이 승낙했다.“그래. 이래야 맞지. 네가 그래도 거절하면 나 진짜 진지하게 화낼 거야.”“네, 네. 이모. 그러니까 화 좀 풀어요.”연아는 눈웃음을 치면서 추연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애교 부리는 연아를 보며 이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추연은 온화해진 말투로 대답했다.“일단 와인 창고 갔다 네가 퇴근하는 시간에 데리러 갈게. 너랑 같이 우여청가야지, 아니면 네가 도망갈 거잖아.” “네! 회사에서 딱 기다리고 있을게요.”“그래. 우리 예쁜 조카”추연은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빨리 돌아가 업무 봐.”연아는 추연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이모! 나이도 많으신데 운전할 때 조심하세요!”“네 이놈 계집애. 이모 아직도 젊거든!”추연은 주먹을 쥐고 때리려고 시늉하며 답했다.연아는 그런 추연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추연을 배웅하고 나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연아는 무심하게 서류를 뒤져보고 있었다. 핸드폰의 진동음이 울리더니 민지훈이 게이라는 기사가 알람으로 화면에 떴다. 이런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연아가 웃어버렸다.…같이 시간, 양주의 중심에 세워진 두 고층빌딩 안.“퍽—”민지훈은 전광판에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상을 보면서 화가 났는지 펜까지 꺾어버렸다.옆에 서 있는 오민은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었다.‘민지훈 씨는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요.’웃기고 있네. 이런 말을 입밖에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조연아뿐이다.“웃고 싶으면 웃으세요.”엄숙한 민지훈의 말투에 정신을 바짝 차린 오민은 황급히 대답했다.“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연아 아가씨가 이렇게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는 게 당황스러워서…”민지훈은 입꼬리를 당기더니 다시 눈길을 인터뷰 영상으로 옮겼다.내가 여자한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조
”도련님, 추건이 도망갔답니다.”민지훈은 그의 말에 마음이 철컹 내려앉는듯 했다.“찾아내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추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연아는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도 연아 주위에 위험 요소들이 가득한데 추건까지 맴돌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네, 알겠습니다.”오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화면 속은 여전히 조연아의 인터뷰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차 안에 앉아있는 조연아가 선글라스를 끼고 확신에 찬 말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오고 있었다.“누구 여자인지 간지는 나네.”하지만 그녀가 “민지훈은 여자한테 관심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자 다시 굳어버린 민지훈의 표정이었다. 조연아가 저지른 일인데, 참을 수밖에 없지.저녁 시간에 민지훈은 회의실에 앉아 개인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기자는 민지훈의 포스에 눌려 조심스러운 말투로 다음 질문을 이어왔다.“지훈 님이 게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소문일 뿐입니다.”“그러면 조 회장님께서 지훈 님이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하시는 건 사실이 아니라 그저 커플 사이의 말다툼뿐인 거네요?”“일부분이 사실이기도 합니다.”그의 대답에 어리둥절한 기자였다.“저는 조연아 말고는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습니다. 남녀 모두.”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아, 그리고 저랑 민지아 씨는 약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이 아닌 소문을 퍼뜨린 분들한테는 꼭 끝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말이 끝나자, 미련도 없다는 듯 회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민지훈의 이번 인터뷰로 인해 그와 조연아의 사이가 더욱더 미스테리로 되어버렸다.“민지훈이 조연아 얘기만 나오면 완전히 달라지잖아. 말투도 엄청 상냥하고. 그런데 민지아랑 약혼한 사이가 아니라고 말할 때는 또 엄청 진지해.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만 상냥하다니까! 민지훈 최고!”“헐, 조연아 부럽다… 민지훈이 조연아한테만 관심이 있다잖아! 둘 사이 공개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
그는 비웃는 듯이 말했다.“연아 유산되게 만들었을 때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을 안 해봤어요?”송진희는 이 말에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민지훈의 눈길도 피하기 시작했고 질타하던 목소리도 많이 낮아졌다.“너… 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니? 나 때문에 유산된 거라고? 그건 조연아가 아기를 갖고 싶지 않아 저절로 3층에서 뛰어내린 거야! 그저 이 애를 이용해…”“닥쳐!”화가 치밀어 오른 민지훈은 그녀의 말을 제지했다.이런 민지훈의 모습에 겁먹은 송진희도 몇 발짝 물러섰다…“지, 지훈아. 근거 없는 일이잖아… 어떻게 엄마를 모함해? ”송진희의 말투는 전처럼 당당하지 않았다. “전엔 그 여자 말 하나도 믿지 않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도리어 네 엄마인 내 말은 의심하고!”민지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예전엔 당신만 믿었기 때문에 연아한테 상처만 줬었지.”말투는 차가웠지만 조연아 얘기만 나오면 눈빛은 부드러워졌다.“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단호하게 말을 끝내자, 미련도 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오민과 송진희도 급하게 따라갔다. 귀부인의 모습은 어디 간 지 없고 초라하게 매달리고 있었다.“지훈아, 너 미쳤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조연아가 먼저 뻔뻔하게 우리 민 씨네랑 결혼하려고 했던 거잖아. 그래서 너도 미워했던 거고. 그런데 이제 며칠 지났는데 갑자기 왜 사람이 다 달라진 거야? 지금 조연아 그년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우리 모자 사이를 이간질한 거지?”민지훈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걔랑 결혼하는 건 제가 한 약속입니다.”예전엔 민지훈 뒤만 졸졸 따라다녔던 조연아였다. 아무리 민지훈이 밀어내고 내쫓아도 떠나질 않았는데 결국 둘이 결혼하게 되었다니. 어떻게 보면 그때 조연아한테 했던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하지만 그렇게 자기만 좋아해 준 조연아한테 상처만 주고 울게만 만들고 그녀의 목숨까지 지켜내지 못할 뻔했다.그 모든 것이 비수처럼 그의 마음을 찔러왔다.그녀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