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밸리로 돌아와 창 밖의 강물을 바라보며 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은아야, 그래도 나를 믿어줘.”“난 결코 당신을 믿지 않아. 당신이 이 일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다만 닭에게 시집을 가면 닭을 따르고 개에게 시집을 가면 개를 따르라고 한 말처럼, 나는 너에게 시집을 갔으니 그저 너를 따를 수밖에.”“설령 결국 함께 죽는 원앙새처럼 된다 하더라도 나는 원망하지 않아.”설은아는 작은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하현이 웃었다. 그는 지금 며칠 후를 기대하고 있었다. 왕가, 결국 해명해야 할거야. 늦은 밤, 슬기는 갑자기 그 당시의 진상을 알아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당시 한 사설탐정이 다른 사람을 미행하던 중 우연히 동영상을 찍었는데 이 동영상이 아마 박재민의 사망원인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거예요.]이 소식을 접한 하현은 조심스럽게 방의 불을 끄고 나서야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차고로 갔다.이미 늦은 밤이라 사방에 밤이슬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슬기는 오피스룩에 포니테일을 하고 조용히 차 옆쪽에 서서 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슬기가 준비한 차는 벤츠 빅G로, 오프로드용으로 준비했다. 차에 오르자 슬기는 그제서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회장님, 3년 전 남원을 떠나신 후 회장님의 안전을 위해 회장님께 연락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차단시켜놨습니다.”“그 때 박 선생님이 후임을 몇 명 구해서 회장님이 남원에서 무슨 일을 꾸며 두었는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한 목적은 하씨 가문 쪽에서 회장님이 준비한 후임을 빼앗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재민의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당시 그의 오른팔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씨 가문은 박 선생님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 일이 왕정민 쪽으로 새어 들어갔습니다.”“왕가는 요
증거뿐만이 아니다.하현은 지금 박재민이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에까지 몰리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다.이 일은 또 어떤 사람들과 관련이 있을까!어떤 일들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것들을 아주 확실하게 조사해야 한다. 곧 그들은 호화롭기 그지없는 장원에 도착했다. 만약 슬기가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현은 이 곳이 사설 탐정소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입구에 이르자 경비원이 나왔다. 차에서 내려 검사를 받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었다. 슬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회장님, 회장님의 신분을 밝히지 마세요!”“알았어.”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 문을 열고 내렸다.곧 침착한 발걸음으로 몇 명의 경비원들이 다가왔다. 분명 퇴역한 병사들이었는데 그들의 몸에서 약간의 살기가 묻어났다. 하현과 슬기 두 사람을 보자 잠시 후 또 한 명의 여자 경비원이 걸어 나왔다. 뒤 이어 그들은 진지하고 꼼꼼하게 몸 수색을 시작했다. 틀림없이 확인을 한 후에야 하현과 슬기 두 사람은 장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의 차는 밖에 주차를 해 둘 수밖에 없었다. 장원 안으로 들어간 후 담당자가 그들을 데리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잠시 후 지하실의 큰 회의실 같은 곳에 다다랐다. 자단목으로 조각한 클래식 소파 맞은 편에 한 중년 남성이 옛날 고대 복장을 입고 손에는 물담배를 쥐고 한 모금씩 피우고 있었다. 그의 앞에 술잔은 없었고 도자기로 된 찻주전자가 있었는데 혼자서 따라 마시고 있었다. 그의 뒤편에 음흉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는데 양복을 입은 두 남자였다. 그들의 냉담한 시선만 봐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분명 모두 용병일 것이다. “회장님, 이 분이 바로 사설 탐정소의 사장님이십니다.”“이 탐정소의 이름은 없지만 사장님은 대단한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함이 공해원입니다.”“많은 재벌 스타와 보스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바로 이 사람입니다!”슬기는 하현 곁에서 한마디 귀띔을 해주었다.
“천억? 좀 비싸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동영상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알지?”하현이 웃었다.“아이고, 형제여. 내가 이 영상을 찍었을 때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썼는지 알기나 해?”“게다가 다른 증거 자료도 준비했는데……”“뒤에서 엉켜있는 관계들이 한 두 집안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이 동영상이 떠돌면 아마 여러 집안이 날 죽이려고 달려들 거야……”“천억이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야.”공해원은 '당신 이러면 참 곤란하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일에 관여한 사람은 왕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자료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말을 했을 때 하현의 눈빛이 차갑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공해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심지어 다른 증거자료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당시 의도치 않게 우연히 이런걸 찍은 건 아닌 것 같은데?”“당시 당신이 이런 것들을 찍을 수 있었던 건 당신이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사실 당신도 그 일에 관여했다는 걸 의미하는데……”이 말을 한 후 하현은 벌써 한 발짝 앞으로 나갔고 몸에는 살의가 번지고 있었다. “우두둑 우두둑______”이때 공해원 뒤에 있던 두 경호원이 동시에 걸어 나왔는데 그들의 살기 역시 똑같이 매서웠다. 분명 공해원이 명령을 하면 그들은 하현을 없앨 기세였다. 공해원은 담담하게 물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말했다.“당신은 그 사람의 대변인이고, 당신 배후에 있는 귀인은 말할 수 없이 귀하신 분이라 나는 당신에게 미움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하지만, 만약 당신이 함부로 군다면 나 역시 개의치 않고 당신을 하늘로 보내고 당신 배후에 있는 사람과 얘기 할겁니다!”“그 사람이 비록 강하긴 하지만, 필경 남원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지 않았나? 그렇지?”분명 공해원은 자신만만했다
“쾅!”공해원은 책상을 사납게 내리치더니 벌떡 일어나 하현에게 돌진하며 소리를 질렀다.“제기랄, 너 지금 장난해? 감히 나를 놀려!? 넌 오늘 여기서 나갈 수 없어!”“철컥______”그 순간 공해원의 뒤에 있던 두 경호원이 동시에 허리에 찬 비수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지하실 문이 열리더니 밖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하현과 슬기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들은 모두 용병이었다. 힘이 세고 전쟁터에 출전했던 적이 있던 사람들이라 하나 같이 몸에 살벌한 기운이 맴돌았다. 공해원은 하현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하씨, 너 밖에서 못 들어 봤어? 남원에서 누가 감히 어르신을 건드려?” “네 뒤에 그 사람이 있으면 다냐? 하찮은 대변인 주제에 감히 어르신 앞에서 날뛰다니! 너 죽고 싶어?!” 공해원은 너무 화가 났다. 여태껏 그를 거역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현은 웃으며 말했다. “흥정하는 거야. 당신이 너무 터무니 없는 가격을 내 놓으니 나도 자연스레 돈을 깎는 거지!” “게다가 나는 성의를 다했어. 그리고 통상적으로 이런 물건은 당사자에게 제공을 하는 거고 돈을 받지 않는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공해원과 경호원들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몇 백억짜리 물건을 2백원에 사겠다고? 제 정신이야!공해원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현을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너 진심이야?”“당연히 진심이지, 2백 원.”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진심으로 얘기하지. 천억에 사가던지 아니면 내가 네 두 손 두 발을 다 잘라 버릴 테니까 네가 골라!”공해원은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허……” 하현은 가볍게 웃으며 슬기를 쳐다봤다.“어떤 사람이 내 두 손 두 발을 없애버리려고 하네, 나 너무 무서워!”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회장님 안심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딱 들어도 이 대화는 공해원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약한 여자에게 보호를 받으려고 한다고?장난
하현의 근육이 비할 데 없이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근육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는 가로 세로로 교차된 아주 옅어 보이는 흉터가 몇 백 개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흉터들은 옅을수록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부 흉터는 심지어 십여 년 전에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흉터는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체력 훈련을 할 때 남겨지는 것이다. 용병이라도 몸에 이런 흉터가 열 몇 개 정도 있으면 영광이었다. 공해원은 자신이 비싸게 주고 부른 경호원들이 하나같이 꺼리는 기색을 띠자, 그는 의아해 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너희들 뭐 하는 거야? 무서워?”“데릴사위 한 사람이 너희들을 놀라게 한 거야?”“내가 오늘 너희들 밥 안 먹였니?”“누구든 그를 쓰러뜨리는 사람은 내가 2억을 주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마침내 누군가가 억누르지 못하고 몸을 앞으로 내던졌다.“쿵______”하현의 번개처럼 빠른 주먹이 용병의 가슴의 중심을 폭격했다. 이 용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곧이어 몸이 날라가 수십 미터 떨어진 벽에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경련이 일어 일어날 수도 없었다. “영춘권.”공해원은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그는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 한 눈에 이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권법에 십여 년 정도 담그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위력이었다. “같이 가자!”이때 다른 경호원들도 적수를 만났다는 것을 알고 모두 다같이 달려들었다.“아아아______”“으아_____”이따금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고, 잠시 후 경호원들이 모두 거꾸로 날아 하나같이 녹초가 되어 땅바닥에 떨어져 기어 오르지도 못했다.옆에 있던 슬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회장님은 과연 멋있으시다. 공해원은 어안이 벙벙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강남 영춘권을 제대로 전수 받았구나……”
동영상은 곧 큰 TV로 재생이 되었다. 강변 주변의 내팽개쳐진 공사장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 한 놈이 바로 왕씨 가문 사람이었고, 왕정민은 그 현장에 없었다.거기다 젊은 남녀들도 있었다. 하현은 몇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조금도 알아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 중 한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구경선.일류 가문이자 구씨 가문의 방계였고, 박재민의 여자친구이기도 했다. 박재민은 강가에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강대교 위에 몇 줄기의 그림자가 이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확실히 보이지가 않았다. 그 다음……왕씨 가문 사람은 박재민 앞으로 가서 돈다발을 던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민, 어서 말을 하고 돈 가지고 멀리 꺼져버려. 아니면 여기서 죽든지. 그 천한 목숨을 버리든, 네가 선택해……”“너희들…… 내가 여기 있는 지 어떻게 알았어?”박재민은 비할 수 없이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 거야. 재민아. 네가 어떻게 왕씨 가문과 싸울 수 있겠어? 게다가 왕씨 가문이 우리와 얘기를 하려고 하잖아. 우리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 건 분명 이미 우리의 체면 세워준 건데, 네가 이 사람들의 체면을 깎으면 안되지. 어서 대답해!”구경선은 노파심에서 거듭 충고를 하며 권유했다. “그래 재민아, 네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도 좀 생각해 줄래?”“우리는 오랫동안 너랑 함께 지냈는데 만약에 우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가 참을 수 있겠어?”“왕 세자는 우리를 상위층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고, 그 대가로 그 폐물이 준비한 모든 걸 그냥 말해주기만 하면 될 뿐이야. 이 얼마나 수지가 맞는 장사냐!”분명 이때 박재민은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그의 여자친구, 그가 가장 신뢰했던 여자친구가 지금 그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현을 팔아 넘기라고 권하고 있었다. “너희들!” 박재민의
“너희들!!!”박재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친구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자신을 협박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먼저, 그를 잡아!”왕씨 집안 사람이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곧 이어 박재민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감고 뒤편에 있던 큰 강으로 뛰어 내렸다.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 장면을 보고 하현의 얼굴은 짙은 어두움이 극에 달했다. 쾅!하현은 주먹으로 옆에 있는 탁자를 내리쳤다!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뜻밖에도 주먹으로 내리치자 사분오열되어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하현의 살기는 번져 나가지 않았고, 이 순간 방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그는 그가 남원을 떠난 지 3일 만에 박재민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박재민은 그의 기업을 지키기 위해, 핍박을 받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옆에 있던 공해원이 하현을 힐끗 쳐다보며 벌벌 떨었다.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전설의 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사람이 이미 돌아왔었구나!그가 발만 굴러도 강남 전체가 바뀐다. 이 생각에 미치자 공해원은 재빠르게 말했다. “이 일은 보시는 대로 입니다. 박재민 선생님이 투신했을 때 그를 핍박했던 사람들은…… 왕가, 구경선, 그 밖의 몇 명입니다……”“그 몇 사람은 주변 인물들이라 잘 모르시겠지만 그들은 당시 박재민 선생님의 절친들이었습니다……” “박 선생님이 투신한 이후 이 사람들은 모두 왕가의 도움을 받아 각자 자기 회사를 꾸려가고 있습니다……”“특별히 구경선은 구씨 집안의 방계라 더 좋은 이득이 있었죠……”공해원은 한쪽으로는 설명을 하면서 또 다른 한쪽으로는 약간의 문서와 신문, 사진 등을 증거 자료로 내 놓았다. “와자작______”곧 이어, 공해원은 하현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가루로
이튿날.하현은 아침 일찍 구씨 가문의 미디어 회사에 도착했다.하현은 홀에 도착해 구경선의 초대형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에는 구경선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마치 여신과 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집안의 방계, 당시에는 18살의 인플루언서였을 뿐이었는데, 여기까지 왔다니 괜찮네……”“그런데 자신의 남자친구를 팔아 먹다니, 허허……”하현은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얼굴에는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옆에 있던 슬기가 조용히 말했다. “회장님, 제가 구경선씨와 미리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바로 다음이 우리 차례입니다.”“응, 그래.”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기왕 구경선을 만나러 왔으니 그녀의 규칙을 따라야지. 그도 조급할 것이 없었다. 얼마 후, 접대원이 건너왔다.“하 선생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를 따라 오세요……”맨 꼭대기 층의 회장 사무실. 입구에 아직 몇 명의 경호원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몸 수색을 한 차례 마친 후에야 하현과 슬기를 들여보내 주었다. 이런 점에서 구경선은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회장 사무실로 들어가니 구경선은 지금 업무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올리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하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다 될 거예요!”바로 이때 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구경선, 너 정말 위풍당당하구나.”“어!?”이 말을 듣자 구경선은 갑자기 조금 낯이 익은 거 같기도 했고, 마치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구경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앞에 선 사람을 본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치며 입을 열었다. “하현!?”당시 그들은 모두 대학 동창이었기에 그들은 당연히 서로 아는 사이였다. 다만 구경선은 결코 하현의 진짜 신분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하현이 박재민과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마치 전설의 그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