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다들 왜 그렇게 좋은 프로젝트와 자원을 설씨 회사에 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원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회사였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큰 소리로 축하해주었다. 심지에 그 자리에 있던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은 일어서서 주위의 축하를 받았다. “다음으로 설씨 회사의 대표가 기본 합의서에 서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최종적으로 합의서에 서명하는 담당자는 전에 그 영업부 부주임이었다. 그 임원은 천일 그룹을 대표해서 결과를 발표했을 뿐이었다.“어? 설은아 아가씨는요?”부주임이 고개를 내밀고 앞에 있던 몇 사람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은아는 지금 다른 일로 바빠서 저희가 은아 대신 서명을 하러 왔습니다.”설민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지연도 옆에 서서 말했다.“고위 임원들 앞에서 이미 결과를 발표하셨고 어차피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는 저희 설씨 집안에 주시는 것이니 누가 사인을 해도 똑같지 않나요?”부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 은아 아가씨가 일이 있으시다면 당신들이 서명하세요. 잘못 쓰시면 안됩니다.”“네네, 감사합니다!”설민혁은 격양된 얼굴로 합의서를 받아 들고 진지하게 쳐다보고는 ‘쓱쓱쓱‘하며 ‘설민혁’ 세 글자를 적었다.“먼저 앉아계세요. 제가 도장 하나 들고 올게요……”부주임은 기본합의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 장면을 지켜본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민혁아, 나는 방금 이 부주임이 우리에게 서명하지 못하게 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우리 설씨 회사를 좋게 본거 같아!”“그러니 설은아가 오든 말든 상관이 없었던 거지!”“빨리 할아버지께 전화 드려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자.”설지연이 부추기며 말했다. 설민혁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물론 이 결과가 설지연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에 왕태민과 협력하지 않았더
천일그룹.30분 정도를 초조하게 기다린 후 그 영업부의 부주임이 다시 돌아왔다. 지금 이 부주임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설민혁과 악수를 나눈 뒤 웃으며 말했다.“설 부사장님, 번거로우시겠지만 돌아가셔서 설 회장님께 말씀 드려주세요. 이런 업무는 어르신께서 직접 오실 필요가 없고 필요하시면 전화 한 통만 주시면 됩니다. 제 번호는 은아 아가씨가 자기고 있습니다.”“그 밖에 이건 제가 특별히 준비한 성의입니다. 이것도 전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말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예쁜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설민혁에게 건네주었다. 뭐?천일 그룹의 임원이 우리 설씨 가문의 회장에게 선물을 준다고?이게 무슨 일인가?천일 그룹을 나설 때 설민혁은 선물 상자를 들고 어질어질했다. 멍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지연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한참 동안 선물상자를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민혁아 이게 뭘까? 우리 한 번 열어보자.”설민혁도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저하며 말했다.“별로 좋지 않을 거야!”“뭐가 무서워. 사람들이 어르신께 전해드리라고 했지 열어보지 말라는 말은 안 했잖아. 우리가 보지도 않고 이게 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설지연이 말했다. 설민혁도 생각해 보더니 바로 이 아름다운 상자를 열어보았다. 선물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보았을 때 그들 두 사람은 모두 몹시 놀랐다.별장 한 채! 이 선물이란 게, 뜻밖에도 단독 별장 한 채였다! 거기다 남원 강변의 부자 동네라니!이 동네에는 남원의 진정한 상류층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많은 대가문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천일 그룹에서 이런 선물을 보내주다니.만약 다른 선물이었다면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은 아마 탐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장 한 채라니! 가격이 몇 백억은 되겠지?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이 두 사람은 열쇠를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우리 할아버지께 가서 보고 드
설씨네.지금 설씨 집안은 한자리에 모였다. 하현과 설은아까지 모두 불렀다. 이전에 임시로 세 들어 있는 별장에 모인 것이 아니라 부자 동네의 새로운 별장에 모여 있었다. 설민혁이 집에 돌아와 보고를 한 후 설씨 어르신이 제일 먼저 와서 확인을 하였다. 별장에 도착했을 때 설씨 가족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전형적인 서양식 단독 별장이었다. 별장 한 채의 부지 면적이 500평 정도 되었고 3층으로 되어 있었다. 남원에서는 이런 별장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설씨 집안에서 이런 별장은 그들의 신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설씨 어르신은 벌벌 떨면서 별장을 바라보았고, 눈동자 속은 모두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민혁은 이 순간 하하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 별장 괜찮죠? 근데 제가 듣기로 남원의 일류 가문은 모두 백운산에 있대요.” “하씨 가문도 거기에 산대요.”“우리 설씨 집안도 지금 이렇게 잘 발전하면 언젠가 그런 곳에 가서 살 수 있을 거에요.”이 말을 마친 설민혁은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그는 설은아가 성가시게 굴 시간을 주지 않았고, 직접 기본 합의서에 서명한 것과 다음으로 별장 일에 대해 보고했다. 설씨 어르신은 몹시 놀랐고 설은아에게는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더니 설씨 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민혁아, 이 별장이 천일 그룹측에서 우리에게 보낸 선물이라는 거야?”“네.”설민혁이 말했다.“물론 그 부주임이 말하기로는 그가 주는 거라고 했는데 이 별장이 몇 백억은 되지 않겠어요? 어떻게 그가 이걸 선물로 줄 수 있었겠어요?”“그렇구나, 보아하니 천일 그룹이 정말 우리 설씨 집안을 좋게 본 모양이야!”“근데, 왜지?”설씨 어르신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전에 설은아와 이슬기의 관계를 생각했다. 심지어 다른 것도 생각해봤다. 설은아가 하 세자에게 기대어 있는 여자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관건은 그도 부자라는 것이다. 그는 부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설씨 어르신의 이 말을 듣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몇몇 여자들이 흥분하며 얼굴이 빨개졌다!전에 그들은 설지연이 왕가의 왕태민에게 시집갈 것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지금 전설의 하 세자가 청혼을 했다!만약 왕씨 집안이 호족이라면 하씨 가문은 호족 중의 호족이다! 전설의 하 세자, 한 손으로 20조의 그룹을 만들고 혼자 힘으로 황혼으로 기울어진 하씨 가문을 다시 최정상으로 만든 사람! 이런 사람은 모든 소녀들에게 진정한 백마 탄 왕자, 진정한 이상형이다!그녀들은 감히 이런 만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건 완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중들 속에서 설은아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전에 그녀가 하 세자의 내통녀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녀도 이 소문을 들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일이니 그녀 자신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 세자와 자신은 반푼어치도 관계가 없었다. 지금 하 세자가 직접 사람을 보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 흔들 만큼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보내온 것도 그가 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하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절대 그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설지연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사실상 설지연은 왕씨 집안 사람과 접촉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도 아직 기회가 있었다. 설은아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설유아는? 올해 그녀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애라 지금 바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다.“저는 그저 총 관리자 일뿐, 세자의 일은 모릅니다.” 하 매니저는 이 말을 내 뱉고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고, 그는 감히 하현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가 바로 떠나고 난 후 설씨 가족은 금빛 찬란한 황금옥과 알록달록한 지폐를 보고 이 순간 군침을 흘렸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 그들이 몸을 담고 있는 별장도 예물의 일부였다. 이 예물은 아마 남원 역사상
전에 설은아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들은 이제 자연히 사라졌다. 이것은 설은아가 절대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하하하하, 민혁이 말이 맞아. 우리는 경쟁상대가 하나 줄었네!”“하현아! 너는 과연 우리 집 좋은 사위구나!”“우리는 정말 너에게 감사해. 앞으로 누가 감히 너를 괴롭힐 수 있겠니? 내가 제일 먼저 반대할게!”하현은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그는 전혀 이런 일들을 준비하지 않았다. 슬기도 분명 이런 일들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씨 집안에서 감히 누가 자신의 허락이 없이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하민석인가?그는 생각이 깊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꾀를 잘 쓴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수단은 그가 써낸 것 일리가 없다. 그럼 쌍둥이인가?그럴 리가 없다. 그 쌍둥이는 항상 조용해서 하씨 가문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비록 하씨 대문호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현재 하씨 가문에서 진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하민석이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건 바로 그 여자다.자신도 잘 모르는 그 여인. 고혹적인 그녀의 모습이 하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무런 기색을 띄지 않았고, 일종의 희미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씨 집안 전체에서 그가 가장 꺼려하는 것은 사실 하수진이었다. 하수진은 세상 남자들을 멸시했다!이 여자만이 그가 상대의 목적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이상하게 행동했다. 비위를 맞추는 건가?아니면 단순히 설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본격적으로 엮이게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말 의도하는 바를 알 수가 없었다. 이 여자, 너무 위험하다!……“싸우지 마! 이 물건들은 내가 먼저 보관하고 있을게! 하 세자가 정식적으로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도대체 우리 집의 어떤 여자에게 마음이 있는지 알게 되면 내가 자연히 이 예물들을 그녀에게 줄게!”설씨 어르신은 결정을 내렸다. 별장 일에 대
설재석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온 큰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고, 딸의 기본 합의서는 다른 사람이 서명을 해버렸다.지금 다른 설씨 식구들의 딸들이 모두 부잣집에 시집 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속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보아하니, 하현 이 폐물과 은아는 반드시 이혼을 시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살 필요가 없어. 우리의 삶은 더욱 비참해질 뿐이야!”희정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재석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나는 안 시키고 싶은 줄 알아? 어르신이 경고하셨잖아. 설씨 집안의 경삿날인데 만약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내 책임이라고!”“설씨 어르신은 은아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뺏을까 봐 두려워하고 계셔. 이런 상황에서 은아가 이혼하기를 원치 않으실 거야!”희정은 ‘짝’하고 설재석의 뺨을 때리며 매섭게 말했다. “설재석, 너는 설씨 어르신이 말하면 뭐든지 다 그대로 하니? 너는 네 의견도 없어?” “먼저번에는 왕세자, 그 다음은 하 세자야!”“만약 우리 딸이 그 폐물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건 다 우리 것이 될 수 있었어!”“지금 우리 딸은 아무것도 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힘들게 얻은 것조차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넌 이게 공평한 거 같아?”설재석은 탄식하며 말했다.“나도 불공평한 거 알아, 하지만……”“됐어. 이 일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은아와 폐물은 반드시 이혼 시킬 거야. 이번에는 계속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을 거야!”희정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전에 너무 부드러웠다고 여겼다. 비록 계속 말로는 그들에게 이혼하라고 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들이 바로 가서 이혼을 하도록 호되게 독촉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딸은 아마 하 세자에게 시집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남원의 하늘! 진정한 최상급 가문! 일단
한 30분 정도를 기다린 뒤에야 하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음식을 손에 들고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방금 시장에 갔다가 할인하는 음식을 좀 사왔어요. 오늘 저녁 같이 먹어요.”은아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희정과 설재석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절대적인 실망감이 넘쳐났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했다. 설은아가 이혼하고 싶어하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자. 결국 그들도 단념했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설유아를 향해 있었다.……다음날 설은아는 회사에 출근을 해야 했고 하현도 함께 나갔다. 떠나기 전 희정은 부탁하며 말했다.“은아야, 이제 곧 국경일 휴일이잖아. 네 동생이 막 전학을 와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적응을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네가 휴일에 가서 유아 좀 집으로 데리고 와.”희정은 지금 완전히 단념을 하고 큰 딸은 쓸모가 없으니 작은 딸을 키우려고 하였다. 자신의 막내딸을 잘 키워서 이번엔 꼭 귀한 사위를 데리고 와야 한다.“알겠어, 엄마.”설은아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사실 요 며칠 그녀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씨 회사는 지금 남원에서 모든 업무를 다시 시작해서 잘하고 있었고, 회사 건물 부지도 선정이 잘 되었다. 천일그룹측에서는 수시로 시찰을 하러 오고 있는데 매번 태도가 아주 좋은 걸로 봐서 하 세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설은아는 더욱 더 소외되어 갔다. 원래 설씨 어르신은 그녀에게 한 자리를 주기로 했지만, 지금은 아예 회사 후방에 있는 부서에서 일을 하도록 지시하셨다. 이 부서로 말할 것 같으면 듣기에는 좋으나 사실상 아무 할 일도 없는, 돈도 없고 권리도 없는 그런 자리였다. 하지만 설은아는 이런 상황에서 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저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이 모든것을 지켜보고 있는 하현이였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치 아무 생각이
골동품 롤렉스 시계를 다 만지작거린 뒤에야 하현은 고개를 들고 엷은 눈빛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너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나를 만나러 오면 하민석이 알까 봐 두렵지 않아? 널 가지고 놀다 죽이는 거 아니야?”“그가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을 아까워하지 않겠어?”하수진은 애교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귀여워?”하현은 지난 날을 떠올리며 입가에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은 모략가, 팜므파탈, 얼음미인, 녹차녀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유독 귀엽다고 표현을 하다니,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물론 하현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무기일 뿐만 아니라 흉기이기도 했다. 나라와 국민들에게 재앙을 가져올 흉기였다. “내가 귀엽지도 않은데 오빠는 왜 그 때 나를 하씨 가문으로 데리고 갔어?”하수진의 가볍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지난 날을 회상했다.“내가 겨우 8살 때 너를 하씨 집안에 데리고 왔는데, 그 때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있던 3살짜리 여자 아이가 십여 년 만에 나를 죽이려 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나는 후회하지 않아.”“과거의 나는 너무 자신만만해서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못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어.” “그래도 너, 그리고 다른 세 녀석이 나를 가르쳐줬지. 그런 점에서 나도 너희들에게 감사해야지.”하현은 입가에 담담한 웃음을 띠었다. 마치 3년 전 하씨 가문에 일어난 일들의 절반은 거짓인 것 만 같았다. “오빠, 나는 3년 전에 일어난 일이 오빠에게는 매우 불공평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이건 할머니의 결정이었고, 나는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어.”하수진은 해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언제 하수진이 감히 당치도 않은 사람이 된 거야?”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인정해, 늙은이의 명령이 없었어도 너희들은 나에게 손을 댔을 거야.”“나의 존재 자체가 너희들에게는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