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롤렉스 시계를 다 만지작거린 뒤에야 하현은 고개를 들고 엷은 눈빛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너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나를 만나러 오면 하민석이 알까 봐 두렵지 않아? 널 가지고 놀다 죽이는 거 아니야?”“그가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을 아까워하지 않겠어?”하수진은 애교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귀여워?”하현은 지난 날을 떠올리며 입가에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은 모략가, 팜므파탈, 얼음미인, 녹차녀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유독 귀엽다고 표현을 하다니,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물론 하현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무기일 뿐만 아니라 흉기이기도 했다. 나라와 국민들에게 재앙을 가져올 흉기였다. “내가 귀엽지도 않은데 오빠는 왜 그 때 나를 하씨 가문으로 데리고 갔어?”하수진의 가볍고 담담하게 말하면서 지난 날을 회상했다.“내가 겨우 8살 때 너를 하씨 집안에 데리고 왔는데, 그 때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있던 3살짜리 여자 아이가 십여 년 만에 나를 죽이려 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나는 후회하지 않아.”“과거의 나는 너무 자신만만해서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못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어.” “그래도 너, 그리고 다른 세 녀석이 나를 가르쳐줬지. 그런 점에서 나도 너희들에게 감사해야지.”하현은 입가에 담담한 웃음을 띠었다. 마치 3년 전 하씨 가문에 일어난 일들의 절반은 거짓인 것 만 같았다. “오빠, 나는 3년 전에 일어난 일이 오빠에게는 매우 불공평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이건 할머니의 결정이었고, 나는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어.”하수진은 해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언제 하수진이 감히 당치도 않은 사람이 된 거야?”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인정해, 늙은이의 명령이 없었어도 너희들은 나에게 손을 댔을 거야.”“나의 존재 자체가 너희들에게는
스위트 룸에서 하수진은 하현이 떠나간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잠시 후 갑자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둘째 오빠. 우리 형님이 방금 한 말들이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 아니면 너 들으라고 한 소리야?”스위트 룸 내부, 이때 한 남자가 손에 옥 바둑을 들고 밖으로 나오며 천천히 말했다.“나 들으라고 한 소리고, 너 들으라고 한 소리야……”“그럼 오빠는 무섭지 않아?”하수진이 말했다.“뭐가 무서워? 사나운 말을 제압하고 싶다면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돼. 하씨 가문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하민석의 병든 눈동자 사이로 옅은 붉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 평온을 되찾았다. 하수진은 이 말을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담담하게 말했다.“형님이 선전포고를 하셨으니 형수를 상대로 작게 수작 부렸던 건 그만 둘게.”“네 마음대로 해……”하민석은 스위트 룸을 나갔다. “하지만 내가 충고 한 마디만 할게. 노는 건 좋은데 어떨 때는 놀다 보면 내가 너를 구할 수 없을 지도 몰라!” 이 말을 남기고 그는 사라졌다. 곧 하수진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졌고 천장에 있는 부조를 한참 쳐다보다가 문득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이렇게 재미가 없어……”“너희들은 큰일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작은 일 밖에는 못하지. 나는 더 크게 놀고 싶어. 이번에는 큰 아주머니가 마음껏 놀아줄게……”곧 이어 그녀는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이튿날, 무거운 소식이 남원 전체에 거친 파도를 일으켰다. 천일그룹 고위 임원들은 며칠 동안 연구한 끝에 많은 자원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큰 회사로 합병하기로 결정 했는데, 그 중에는 설씨 회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설씨 회사는, 새롭게 설립된 회사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새 회사는 설씨 회사의 멤버들로 구성되었다. 기존의 프로젝트와 자산 외에 새 회사의 주요 담당 프로젝트는 대모산 리조트였다. 이 큰 프로젝트는 이미 3년 전 다른 사
이 갑작스러운 일은 설씨 집안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을 매우 기쁘게 했고 흥분해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녀들은 하 세자가 보낸 선물이 분명 미래의 아내 될 사람에게 보낸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가 이 새 회사의 51%의 지분의 권력을 얻든지 간에 그 사람이 진정한 회장이었다. 설씨 어르신은 바로 교체될 것이다. 이 날, 설씨 집안의 모든 친척들이 새로운 회사 빌딩 안에 모여 직접 내부 회의를 열었다. 설씨 어르신은 높은 회장 자리에 앉아 설씨 집안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때 설씨 집안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눈빛이 불같이 뜨겁고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 회사의 회장은 하 세자라는 큰 산에 기대어 반드시 남원의 일류 가문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자리라면, 설씨 집안으로 하여금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르게 할 수 있었다. 설씨 어르신은 다시 한 번 무기력함을 느꼈다. 설씨 가족은 남원에 온 이후로 이미 점점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하 세자 앞에서 그는 점점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어서 상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설씨 집안은 내분이 시작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있었지만, 과거의 내분은 지금까지 그에게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설씨 어르신도 자신이 직접 물러 나지 않고 계속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면 아마도 자신의 자리는 빼앗길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전에 그는 비할 데 없이 설민혁을 마음에 들어 했었고 자신의 후계자라고 높이 평가해 왔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자 자신이 회장 자리를 잃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이가 될 것 같았다.이때, 설씨 어르신도 조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필경 인물이었다. 이 순간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야심만만한 수많은 설씨네 가족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설씨 어르신은 깊은 심호흡을 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최근에 밖에서 떠도는 소문들은 다 들었을 거예요.”
설민혁의 이 말을 듣고, 설씨 집안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물론 다들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설씨 어르신이 너무 오랫동안 설씨 집안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그가 권력을 계속해서 이어가려는 마음이 있는데 누가 감히 면전에서 그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아버지, 저희는 아버지가 회장직을 이어갈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설동수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설민혁을 밀어주었다. “그래요! 할아버지가 계속 회장으로 있는 한 새 회사를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건 여전히 우리 설씨 집안이에요!”“할아버지, 우리 설씨 집안을 오늘에 까지 이르게 해주셨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인솔하에 설씨 집안이 남원의 일류 가문이 될 날도 머지 않았네요!”이런 말들을 듣고 비록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전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설씨 어르신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노부는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서 줄곧 퇴직하고 노년을 누리며 살 생각을 하고 있었어.”“하지만 너희들을 보니 민혁이를 제외하고는 정말 큰 일을 어깨에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는 거 같아!”“만약에 너희들에게 설씨 집안의 대표를 맡겼다가 남원에서 떠돌아 다니게 된다면 적게는 하 세자를 잃게 되고, 크게는 우리 설씨 집안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게 될 거야!” “됐다 됐어, 설씨 집안을 위해 내가 몇 년만 더 고생해야지 뭐!”“노부가 미리 말해두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내가 퇴직 할 때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설씨 어르신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의기양양했다. 아무래도 그는 계속 설씨 집안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설씨 어르신은 자신이 죽지 않는 한 계속 할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이 권력을 누가 양보하겠는가!설민혁을 포함해서!만약 자신이 운이 좋으면 20년도 더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권력을 내 놓으라고?만약 정말 설씨 가문을 남원에서 일류 가문으로
“맞아! 바깥에서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 거 같아!”“하 세자가 찾는 새 회장은 젊은이가 맞을 거야!”“하 세자가 새로운 기상의 새 사람을 뽑으려 한다니 이건 설씨 집안에게 기회를 주는 거예요. 설씨 집안은 실수 하지 말아야 해요……”“우리 모두가 할아버지를 지지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 세자를 거역해도 정말 괜찮을까요?”“하 세자는 우리 지분의 51%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이나 앞으로나 그가 우리 회사를 손에 쥐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여기서 회장을 뽑아봤자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은데요!?”“……”한 무리의 설씨 집안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사실상 그들은 하나 같이 입이 삐뚤어져있었다. 계속해서 늙은이가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은 무슨 기회가 있겠는가?지금 이 데릴사위가 뛰어나와 일을 저질렀으니 자연스럽게 호응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그들도 회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필경 이 데릴사위가 회장이 될 수는 없잖아?철 왕좌에 앉은 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안 좋아졌고 설민혁과 눈을 마주쳤다. 설민혁도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설씨 집안 사람들이에요. 설씨 집안의 대표를 뽑는데, 어떻게 외부인이 우리 관계를 충동질 할 수 있습니까!”“설씨 회사는 지금이나 앞으로도 오직 할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셔야 해요!”“민혁아, 나는 이 데릴사위의 말이 맞는 거 같아. 우리는 젊은 사람을 뽑아야 해!”“만약 어르신이 계속 해도 괜찮았다면 하 세자가 회장을 뽑으라는 신호를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아니면 민혁아 네가 하는 건 어때? 우리는 오히려 네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어떤 사람이 지금 웃음을 머금고 의견을 내 놓았다. 이 말을 들은 설민혁의 얼굴은 새까맣게 질렸다. 좋다, 그는 새 회사의 회장이 너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는 자신에게는 이런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때 만약 희생양을 찾지 않는다면 분명 설씨 어르신은 자신에게 화를 내실 것이 분명했다. 설민혁은 설씨 어르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때 누가 ‘적합’하든, 그 사람은 재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곧 그의 시선은 설은아에게로 떨어졌다. 어쨌든 설씨 어르신은 줄곧 그녀를 싫어하셨으니 그녀를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할아버지, 제 생각에는 은아가 가장 ‘적합’할거 같아요!”“그 동안의 기본합의서도 은아가 얘기해서 된 거잖아요! 그러니 은아가 새 회사의 회장이 되는 게 당연하죠!”설민혁은 그럴듯하게 입을 열었다. 이럴 때는 설은아를 밀어줄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다른 설씨 사람들은 설민혁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는 어떤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은아랑 천일그룹 사람들은 잘 아니까 회장이 되도 별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게다가 그녀는 지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데 회사에서 식충이가 될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뭐 별거 없어도 겉은 멀쩡하니까 은아를 회장으로 앉히는 게 낫겠어요!”“맞아, 은아가 가장 적합한 거 같아요!”설씨 집안 사람들이 보기에 설은아가 무슨 자격으로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무슨 용기로 승낙을 할 수 있을까?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녀를 조롱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오, 기왕 다들 이렇게 너를 밀어주고 있는데, 은아야, 너 회장 할래?”설씨 어르신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설은아를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하고 싶어?”그가 보기에 설은아는 감히 대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은아는 오늘 정신이 나가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지 들리지가 않았다. 이때 설씨 어르신의 몇 마디 추궁하는 말을 듣고서야 반응을 보였다. “할아버지, 좋아요.”설은아는 지금 조금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좋다고 반응을 한 것이다. “뭐라고
만약 설씨 집안에서 젊은 사람 중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설씨 어르신은 설은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설씨 어르신은 확고하게 말했다.“자, 하 세자 측에서 우리 설씨 집안에서 젊은 사람을 새 회장으로 뽑으려고 하는 이상!”“설은아는 우리 설씨 가문에서 확실히 큰 공이 세웠으니!”“내가 생각하기에 설은아를 새 회사의 회장으로 삼아야겠다.”이 말이 나오자 장내는 조용해졌다가 잠시 후에야 드문드문 맞장구를 쳤다. 설은아도 멍하니 있었는데 그제서야 그녀도 그녀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알아들었다. 뜻밖에도 그녀를 새 회사의 회장으로 세우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자신에게 떨어질 수가 있지?“할아버지, 절대 안돼요! 그녀는 능력이 부족해서 적합하지 않아요!”“할아버지 우리 중에서 아무나 뽑으셔도 그녀 보다는 나아요! 그녀가 무슨 자격이 있어요!”“맞아! 하 세자가 미래의 아내에게 보낸 예물도 있잖아요. 은아는 중고인데, 뭘 믿고!?”설씨 집안 사람들은 설은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설씨 어르신이 권력을 잡는 것도 원치 않았고 설은아가 그렇게 되는 것도 전혀 원치 않았다. 설민혁이라면 아마 받아 줄지도 모르지만 설은아는 너무……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냉랭했다. 그 같은 사람이 어찌 설씨 집안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채지 못하겠는가?모두들 이렇게 반대했지만 오히려 그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어쨌든 그가 보기에 설은아가 회장이 된다면 앞으로 설씨 집안은 그가 말한 대로 되지 않겠는가? 만약 설민혁을 정말 그 자리에 앉힌다면 모든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를 염두 해 두고 설씨 어르신은 기침 소리를 내면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제압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설은아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은아야! 모두들 네가 새 회사의 회장으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널 좋게 보는데!”“이건 기회야, 너 하고 싶어?”설은아는
이날, 설씨네 회사의 새 회장 선출이 남원에 널리 알려졌다. 동시에 새 회사의 이름도 정해졌다.백운 회사! 새 회사가 존재하는 이상 주요한 업무는 대모산 리조트가 되었다. 하지만 남원에서 백운이라는 두 글자는 마음대로 쓸 수 가 없었다. 가령 백운별원, 백운외원 이런 이름들은 모두 하씨 가문의 산업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백운회사 라는 네 글자가 나왔다. 뜻밖에도 천일그룹측에서 통과 시켜주었다. 듣기로 하 세자도 백운회사라는 이 이름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한동안 소문만 무성했다. 심지어 하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아직 고등학생인 설은아의 여동생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처제를 이렇게 챙기는 구나.물론 이 말을 밖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두 뒤에서 몇 마디 나눈 것뿐이었다. 그리고 설은아는 정식으로 백운회사의 회장이 되었고 이어서 각종 자원을 통합했다. 일이 그녀를 팽이처럼 바쁘게 만들었다. 요즘 하현도 생각 없이, 정신 없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곧 국경일이 되었는데도 설은아는 너무 바빠서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현, 가서 유아 좀 데리고 와줘. 곧 국경일인데 엄마가 유아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지 걱정된다고 며칠 집에 와서 묵게 하라고 하셨거든.”설은아는 한가지 일을 떠올렸다. “그래, 내가 데리러 갈게.”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가 유아와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내의 여동생이니 데리러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를 떠나 하현은 슬기에게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차 한대만 준비해줘. 낮은 급이면 돼.”“네, 회장님.” 전화 맞은편에서 슬기도 엄청 바빴다. 지시만 하고 자신은 꼼짝도 하지 않는 이 하현이 너무 성공을 해서 슬기는 지금 매일 야근을 하느라 바쁘다. 그녀는 정말 시간을 내서 차를 준비할 수가 없었고 오직 전화 한 통으로 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곧 양복차림의 구두를 신은 경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