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만약 희생양을 찾지 않는다면 분명 설씨 어르신은 자신에게 화를 내실 것이 분명했다. 설민혁은 설씨 어르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때 누가 ‘적합’하든, 그 사람은 재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곧 그의 시선은 설은아에게로 떨어졌다. 어쨌든 설씨 어르신은 줄곧 그녀를 싫어하셨으니 그녀를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할아버지, 제 생각에는 은아가 가장 ‘적합’할거 같아요!”“그 동안의 기본합의서도 은아가 얘기해서 된 거잖아요! 그러니 은아가 새 회사의 회장이 되는 게 당연하죠!”설민혁은 그럴듯하게 입을 열었다. 이럴 때는 설은아를 밀어줄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다른 설씨 사람들은 설민혁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는 어떤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은아랑 천일그룹 사람들은 잘 아니까 회장이 되도 별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게다가 그녀는 지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데 회사에서 식충이가 될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뭐 별거 없어도 겉은 멀쩡하니까 은아를 회장으로 앉히는 게 낫겠어요!”“맞아, 은아가 가장 적합한 거 같아요!”설씨 집안 사람들이 보기에 설은아가 무슨 자격으로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무슨 용기로 승낙을 할 수 있을까?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녀를 조롱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오, 기왕 다들 이렇게 너를 밀어주고 있는데, 은아야, 너 회장 할래?”설씨 어르신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설은아를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하고 싶어?”그가 보기에 설은아는 감히 대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은아는 오늘 정신이 나가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지 들리지가 않았다. 이때 설씨 어르신의 몇 마디 추궁하는 말을 듣고서야 반응을 보였다. “할아버지, 좋아요.”설은아는 지금 조금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좋다고 반응을 한 것이다. “뭐라고
만약 설씨 집안에서 젊은 사람 중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설씨 어르신은 설은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설씨 어르신은 확고하게 말했다.“자, 하 세자 측에서 우리 설씨 집안에서 젊은 사람을 새 회장으로 뽑으려고 하는 이상!”“설은아는 우리 설씨 가문에서 확실히 큰 공이 세웠으니!”“내가 생각하기에 설은아를 새 회사의 회장으로 삼아야겠다.”이 말이 나오자 장내는 조용해졌다가 잠시 후에야 드문드문 맞장구를 쳤다. 설은아도 멍하니 있었는데 그제서야 그녀도 그녀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알아들었다. 뜻밖에도 그녀를 새 회사의 회장으로 세우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자신에게 떨어질 수가 있지?“할아버지, 절대 안돼요! 그녀는 능력이 부족해서 적합하지 않아요!”“할아버지 우리 중에서 아무나 뽑으셔도 그녀 보다는 나아요! 그녀가 무슨 자격이 있어요!”“맞아! 하 세자가 미래의 아내에게 보낸 예물도 있잖아요. 은아는 중고인데, 뭘 믿고!?”설씨 집안 사람들은 설은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설씨 어르신이 권력을 잡는 것도 원치 않았고 설은아가 그렇게 되는 것도 전혀 원치 않았다. 설민혁이라면 아마 받아 줄지도 모르지만 설은아는 너무……설씨 어르신의 안색은 냉랭했다. 그 같은 사람이 어찌 설씨 집안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채지 못하겠는가?모두들 이렇게 반대했지만 오히려 그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어쨌든 그가 보기에 설은아가 회장이 된다면 앞으로 설씨 집안은 그가 말한 대로 되지 않겠는가? 만약 설민혁을 정말 그 자리에 앉힌다면 모든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를 염두 해 두고 설씨 어르신은 기침 소리를 내면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제압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설은아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은아야! 모두들 네가 새 회사의 회장으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널 좋게 보는데!”“이건 기회야, 너 하고 싶어?”설은아는
이날, 설씨네 회사의 새 회장 선출이 남원에 널리 알려졌다. 동시에 새 회사의 이름도 정해졌다.백운 회사! 새 회사가 존재하는 이상 주요한 업무는 대모산 리조트가 되었다. 하지만 남원에서 백운이라는 두 글자는 마음대로 쓸 수 가 없었다. 가령 백운별원, 백운외원 이런 이름들은 모두 하씨 가문의 산업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백운회사 라는 네 글자가 나왔다. 뜻밖에도 천일그룹측에서 통과 시켜주었다. 듣기로 하 세자도 백운회사라는 이 이름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한동안 소문만 무성했다. 심지어 하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아직 고등학생인 설은아의 여동생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처제를 이렇게 챙기는 구나.물론 이 말을 밖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두 뒤에서 몇 마디 나눈 것뿐이었다. 그리고 설은아는 정식으로 백운회사의 회장이 되었고 이어서 각종 자원을 통합했다. 일이 그녀를 팽이처럼 바쁘게 만들었다. 요즘 하현도 생각 없이, 정신 없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곧 국경일이 되었는데도 설은아는 너무 바빠서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현, 가서 유아 좀 데리고 와줘. 곧 국경일인데 엄마가 유아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지 걱정된다고 며칠 집에 와서 묵게 하라고 하셨거든.”설은아는 한가지 일을 떠올렸다. “그래, 내가 데리러 갈게.”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가 유아와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내의 여동생이니 데리러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를 떠나 하현은 슬기에게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차 한대만 준비해줘. 낮은 급이면 돼.”“네, 회장님.” 전화 맞은편에서 슬기도 엄청 바빴다. 지시만 하고 자신은 꼼짝도 하지 않는 이 하현이 너무 성공을 해서 슬기는 지금 매일 야근을 하느라 바쁘다. 그녀는 정말 시간을 내서 차를 준비할 수가 없었고 오직 전화 한 통으로 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곧 양복차림의 구두를 신은 경
재벌 2새의 이름은 손민철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건달이었다. 집에 특별히 돈이 많아 매일 포르쉐 718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모임도 그가 만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학생들이 이런 곳에 와서 이렇게 돈을 쓸 자격이 어디 있겠는가?KTV 이런 곳은 하룻밤에 몇 백만 원씩은 쓰지 않겠는가?설민철의 오늘밤의 목적은 간단했다. 설유아에게 강제로 술을 먹여서 자극적인 사진을 몇 장 찍는 거였다. 지금 이 여학생은 이게 무섭지도 않나?으름장을 놓으면 얌전한 여자가 된다!오늘밤 설유아는 절친이 선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작은 나시에 미니스커트, 하얀 속살이 훤히 다 드러났고 유난히 긴 다리를 꼬고 있었다. 손민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옷을 입으니 설유아는 어색해서 지금 조금 불편하게 앉아 있다가 잠시 생각을 하고서는 말했다. “형부가 왔는데, 내가 안 가면 우리 언니가 욕 할거야.”“그 사람한테 몇만 원 주고 너 못 찾았으니 돌아가라고 하면 그만이지!”“우리 지금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는데 제대로 모이지도 않고 앞으로 어떻게 시험을 잘 볼 수 있겠어?”“열심히 공부했으면 잘 쉬어줘야지, 스트레스 좀 풀어야 하지 않겠어?”손민철이 설유아의 예쁜 얼굴을 보며, 지금 마음은 급하지만 화를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자! 술 좀 마시면서 즐기자고……”설유아의 새 ‘절친’들은 벌써 점수가 다 잘 나와서 지금 모두 고함치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설유아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는 것이다. 설유아만 어리숙해서 눈치채지 못했고 자신은 오늘 밤 이미 사냥감이 되어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룸의 문이 열렸고, 하현이 들어왔다. “아저씨 누구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뭐 하러 왔어요?”남학생 몇 명이 일어서서 하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그들은 여학생 앞에서 과시하고 있었다. 하현도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부끄러워하는 설유아의 표정을 보며 하현은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이 양아치 학생들은 이미 엎질러준 물처럼 일을 돌이킬 수 없도록 설유아를 처리할 생각인 것 같다.설유아만 어리숙해서, 그저 한 명의 구애자를 만난 것으로 여겼다. 전에 그녀가 서울에 있었을 때도 물론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설씨 집안의 명성이 있었기에 감히 무력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남원이 어떤 곳인가? 여러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곳이라 뭐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집 두 채는 수천억 원에 달했기에 이 여자의 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형부, 가요! 내가 안 가고 싶다는데 당신이 뭔데 나를 신경 써!”설유아는 하현이 가지 않는 것을 보고 지금 응석받이처럼 말하고 있다. 하현은 눈썹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서서 강제로 설유아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쾅______”바로 이때, 룸 문이 어떤 사람에 의해 걷어차였다. 한 사람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너 왜 그래?”자신의 친구인 것을 보고 모두들 급히 달려가 부축했다. 뒤에 한 소녀가 있었는데 얼굴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방금 맞은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설유아와 몇 몇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앞으로 급히 달려나갔다. 이 여학생은 울먹이며 말했다. “방금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어떤 사람이 나를 도와서 사람들에게 몇 마디 욕을 했다가 얻어 맞았어. 흑흑흑……”이 여학생이 아직 울고 있을 때 몇 명의 껄렁껄렁한 건달들이 들어왔다. “아이고, 생각지도 못하게 KTV에 언제 이렇게 예쁜 계집애들이 많이 생겼지? 오늘 밤 우리가 헐값에 사가야겠네!” 이 건달들은 설유아를 보자 눈이 꽂혔다. 그들은 지금 거리낌없이 그녀의 하얀 다리를 훑어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내 친구들을 때렸구나!”손민철은 지금 노기가 가득 차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학교에서 일진이었으니 어떻게 자신의 후배가 괴롭힘을 당하
“퍽퍽퍽……”앞에 있던 건달 놈이 설민철의 얼굴에 살짝 손을 대며 웃을 듯 말 듯 말했다.“이놈아, 너 너무 날뛰는 거 아니야? 너무 건방진데? 아직도 미쳐 날뛰는 거야? 형님들이 무릎을 꿇려 줘야겠니?”“형,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제가 눈이 멀었어요!”손민철도 나가고 들어올 때를 아는 사람이라 바로 굴복했다. 곧 ‘퍽’하고 무릎을 꿇었다. 으스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목숨도 중요하다.“퍽!”앞에 있던 건달 놈이 그의 뺨을 후려 갈겼다. 그리고 나서 탁자 위의 맥주병을 들고 ‘쾅’소리를 내며 손민철의 이마에 폭격을 가했다. 손민철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무릎을 꿇고 감히 일어서지 못했다. 룸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방금 전까지 건들건들 하던 남학생들도 지금은 벌벌 떨며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 학생들은 방금 사람이 많다고 오만하게 굴었지만 지금 수십 명의 건달들을 만났으니 어디서 감히 날뛸 수 있겠는가?이때 담력이 적은 사람은 벌써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어떤 사람은 바들바들 떨며 눈 속에는 공포로 가득 차 거의 울뻔했다.뭘 뻐기나, 여학생들에게 호감을 사기는 개뿔. 지금 그들 때문에 코너에 몰렸다. “다들 쪼그려 앉아, 누가 감히 일어서. 어르신이 왜 이렇게 꽃이 붉은지 알게 해주지!”건달은 직접 손을 썼다. 잠시 후, 몇 명이 바로 발에 차여 주저 앉았다. 여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전부 부둥켜 안고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 보다 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사실 이런 건달들의 거리낌 없는 눈빛은 그녀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때 오직 설유아만이 좀 대담했다. 그녀는 필경 대가문 출신이니 식견이 좀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하현은 어느새 가장 구석진 소파에 앉아 다리를 두드리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위치는 너무 구석진 자리라 건달조차도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과연 폐물이구나, 이
“자, 규천이 형, 이쪽으로 오세요!”오늘은 대머리 형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직 뒤에 사람이 더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들어왔다. “조…… 조규천……”이 사람을 보자 손민철은 바로 오줌을 쌌다. 대머리 형은 기껏해야 신참의 패거리 중에 한 명이었다. 하지만 조규천은 달랐다!듣자 하니 맹렬한 용이 강을 건넜다고 하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손 아래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대머리 형조차도 모두 그 수하에 있는 동생일 뿐이었다. “규천이 형, 대머리 형, 여기 있는 계집애들 전부 생기발랄해! 헤헤헤!”방금 앞장섰던 그 건달은 지금 눈치를 살피는 얼굴이었다. 그 대머리 형은 그저 빙그레 웃는 표정을 지었고 시선은 일부 여학생들에게 맴돌고 있었다. 조규천에게는 거물다운 풍모가 있었다. 이 여자들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가장 예쁜 두 명을 골라서 내 방으로 데리고 와.”그는 이전에 서울에서 설은아를 탐내다가 하현에게 거의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도 총명한 편이어서 변백범에게 혼나고 난 후 변백범 밑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변백범이 남원에 파견해 전초에 서 있었다. 평소에 그는 너무 조용하면서도 겸손해서 남원에서 만난 우두머리들에게도 굽실거리는 편이었다.하지만 오늘은 학생들 몇 명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대머리 형은 그 말을 듣고는 대뜸 말했다.“여자들은 남겨두고, 남자들을 때리고 나서 풀어줘!”“누구든 밖에 나가서 함부로 말하면 어르신이 그 집안 사람들 전부 죽일 줄 알아!”“안 하죠! 안 해요!”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두려워했다. 특별히 여자들은 지금 울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그녀들이 바보도 아니고 남아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그녀들은 더 없이 잘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용기가 충만했던 설유아 역시 당황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건달들에게 짓밟히느니 차라리 죽는 게
주변 친구들의 눈빛, 특히 설유아의 눈빛을 느꼈을 때, 손민철은 자신의 허리가 꼿꼿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규천이 형, 대머리 형, 저희 아버지가 항상 형님들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형님들은 강하고 야심 찬 분들이라고요!”“당신들 같은 거물급 인물들이 어떻게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을 괴롭히십니까?”“오늘, 제 체면을 봐서라도 이 일은 이 정도에서 끝내주시면 어떨까요?”“오늘 제 친구들이 잘못했어요. 제가 여기서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 제가 아버지께 큰 상을 한 번 차려드리라고 하겠습니다. 몇 분 큰 형님들을 잘 대접하겠습니다. 어떠세요?”말을 마치고 손민철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비록 해산물 장사를 했지만 억만장자가 되었으니 몇몇 길바닥 건달들은 그쪽에서 밥벌이를 하며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손민철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만 대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규천과 대머리 두 사람은 밥을 먹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몰라도 길바닥에서 밥 먹고 살 생각이면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그곳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때 손민철은 벌써 뒷짐을 지고 우람한 모습으로 여학생들의 추앙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규천은 곰곰이 생각하며 손민철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잠시 후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네. 지금 이 나이에, 어린 꼬맹이가 감히 내 앞에서 으스대고 있다니!” “너는 말할 것도 없고, 네 아버지가 와도 이젠 내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해! 체면?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말이 끝나자 조규천은 손민철을 손바닥으로 내리쳤고, 손민철은 바로 나가 떨어져 이가 여러 개 빠졌고, 얼굴 전체가 부어 돼지 머리처럼 되었다. 이 순간, 온 장내가 멍해졌다. 이때, 모든 사람의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방금 다들 손민철이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흑흑흑……”이때 학생들은 절망했고 일부 여학생들은 작은
황보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앞에 놓인 다과를 말끔하게 먹은 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으니 나중에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몇 벌 사자고!”“앞으로 내 대변인이 될 사람이니 말끔하게 보여야지.”“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는 대단히 수준 높은 프로젝트거든. 당신이 앞으로 접촉할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하니까 절대 무시당하지 않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하현은 오늘의 이 결정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현재 임단은 이미 금정 화원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 인수 일을 착수했다.비록 세간에서는 임단이 머리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하현은 금정 화원의 유적지가 발굴되는 순간 프로젝트 전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이러한 전제하에 황보정이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 일하겠다는데 멋진 옷 몇 벌 사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보정이 비록 풍수사로서 인정은 받았지만 방값이 꽤나 비쌌고 수입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이전에 저축해 두었던 돈은 의사를 구하는 데 거의 써 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황보정은 한참 예쁘게 꾸밀 나이였지만 제대로 된 번듯한 옷도 몇 벌 없었다.하현은 이 기회를 빌어 황보정에게 옷도 몇 벌 장만해 주고 살아갈 발판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황보정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아직 입을 만한 옷이 있어요. 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왜? 안 사게?”옆에 있던 나박하는 차를 마시며 껄껄 웃었다.“하현이 옷을 사 준다고 하잖아!”“우리가 말끔하게 차려입지 않으면 하현의 체면이 깎여!”“이제 하현은 금정 제일의 풍수지리사로 불리게 되었어!”“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허름하게 입으면 손님들이 우리 대사님의 실력을 의심할 거야!”“그러니 사양하지 마. 잠시 후에 우
다음날 아침 일찍 하현은 방을 나섰다.설은아의 방문을 지나칠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두 사람이 또다시 다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거실에 와 보니 최희정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하현이 지나가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슬쩍 곁눈질할 뿐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미간에는 그를 향한 마뜩잖은 기색이 가득했다.최희정은 어젯밤 설은아와 하현의 말다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의 뻔뻔함과 노여움을 눈빛으로 드러낸 것이다.하현도 최희정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문을 나서려는 순간 최희정이 우다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최희정이 우다금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지난번 저지른 일로 우다금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 했었다.하지만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서 하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고 집복당으로 갔다.“하현, 아침은 먹었어요?”집복당 입구에 도착해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황보정이 나와 있었다.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제는 집복당 일을 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황보정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다과를 좀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 볼래요?”황보정은 오늘 짧은 잔꽃 무늬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고운 자태였고 걸을 때 슬쩍슬쩍 보이는 하얀 다리는 눈부시게 빛났다.특히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하현은 싱그러운 젊은의 기운을 물씬 느꼈다.아찔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가 말했다.“그럼 감사히 먹어 볼게.”“감사할 사람은 나예요. 내 눈을 낫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몸도 정상으로 돌려놓았잖아요!”황보정은 동작이 재빨랐다.“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내가 남들 관상을 봐주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내가 박명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상을 계속 봐준다면 결국 내가 천기를 누설할 거라고 하셨어요.”“이번엔 다행히 당신을 만나서 살았지만 다
”풍수?”“하 대사?”“풍수관?”설은아는 명함을 움켜쥐고 노기 어린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제대로 된 일을 하지는 않고 강호의 사기꾼이 되겠다는 거야?”“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당신이 풍수지리술을 안다는 걸 어떻게 몰랐을까?”“풍수를 보는 일이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일인지 알아?”“몇 마디 말로 사람들을 속이며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야!”“자칫 잘못하다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기도 하는 거야! 알기나 해?”하현의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면서 설은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집복당, 아홉 대째 내려오는 대단한 실력, 주역 대사...하현은 자신의 본업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남원이나, 무성, 대구에서는 하현이 정말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금정에 와서 하현과 간민효가 친밀하게 지내더니 지금 눈앞에 내놓은 명함이라는 것을 보고 설은아는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이전에 하현이 보여준 모든 것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지난 모든 것은 하현이 설 씨 가문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상 같은 것이었다!그리고 이 허상을 만든 장본인은 하현이 밖에서 만나고 있는 간민효임이 틀림없다!금정 간 씨 가문의 간민효는 이 모든 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여자이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들이다!분노한 설은아를 보며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우선,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볼 필요가 없어.”“난 당신한테 말할 수 있어. 나와 간민효는 금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과거의 모든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어.”“둘째, 그녀와 난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야. 당신한테 하나하나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 함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어.”“셋째, 내가 풍수관을 연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야. 내가 개업을 할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는 걸 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
나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말했다.“하현, 주광록은 여섯 은둔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주 씨 가문 출신이야.”“은둔가 주 씨 가문은 예전에 금정이 수도였던 시절의 왕가였어.”“그래서 금정 은둔가 중에서 주 씨 가문의 권세가 가장 강해.”“주 씨 가문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대개가 다 관청이나 관청 산하에 있지.”하현은 생각에 잠긴 듯 살짝 눈썹을 오므렸다.그는 요즘 보이지 않는 세력이 은둔가들을 공격하는 듯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그러나 은둔가 가문들이 자신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없었다.짚이는 데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나천우 부부와 헤어진 뒤 하현은 다시 집복당으로 돌아가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을 둘러보고 몇 가지 풍수적인 사항을 짚어본 뒤 그곳을 떠났다.설 씨 집안으로 돌아온 그는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열었다.바로 그때 마세라티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서는 것이 보였다.차창 아래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김탁우였다.곧이어 조수석에서 내리는 설은아의 모습이 보였고 김탁우는 신사다운 점잖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이를 본 순간 하현은 눈빛이 차갑게 식었지만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설은아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곧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방문이 열리자마자 방금 돌아온 설은아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하현이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당신, 방금 다 봤어?”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은아를 쳐다보았다.“그가 당신한테 접근한 것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야.”“다음부턴 만나지 마.”하현이 자신을 힐난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설은아는 갑자기 화가 났다.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하현, 지금 상당히 선을 넘은 것 같은데!”“잊지
”오늘은 나천우 부부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의 실랑이는 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다음엔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가서 후회하는 일 없길 바랍니다!”“나천우, 제수 씨. 나 먼저 갈게요!”“다음에 또 얘기해!”말을 마친 후 주광록은 차 열쇠를 들고 불쾌한 낯빛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나이도 젊은 사람이 저렇게 건방지게 굴다니!사기꾼 주제에 감히 날 속이려 해?흥!어림도 없지!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뭐? 죽음의 기운?어이가 없어서 원!하현에 대한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거리던 주광록은 이참에 하현의 집복당에 대해서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샅샅이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불법적인 부분이 발견되는 즉시 그의 집복당을 당장 문 닫게 만들 작정이었다.앞으로 하현이 자신 앞에 어떤 얼굴로 찾아올지 두고 볼 참이다.“주 부장님!”“형님!”나천우는 양측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섰다.“형님! 가지 마세요!”“하 대사는 형님을 속이지 않습니다.”“믿어도 된다고요!”“나천우, 나 씨 가문 사람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나빠? 풍수지리술 따위를 믿다니!”주광록은 언짢은 듯 한껏 무시하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진심으로 충고할게. 이 사기꾼과는 더 이상 왕래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된통 속아서 있는 돈 다 뺏기게 될 거라고!”“사업가로서 이런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말에 의존하지 말고 사업 구상이나 잘 해!”주광록은 분명 나천우 부부까지 원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말을 마치자마자 주광록은 얼른 뒤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은 한숨을 내쉬었고 각자의 운명이 있음을 느끼며 더 이상 주광록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나천우와 임단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 부부를 따라 쫓아나왔다.하현은 주광록이 검은색 아우디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온통 죽음의 기운이 감돌던 아우디 차체는
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맞습니다. 바로 이 차 열쇠입니다. 당신 차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괜찮으시다면 차를 좀 보여주시겠습니까?”하현의 말을 듣고 주광록은 피식하고 웃었다.하지만 고위직에 있는 그는 이런 이유로 함부로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단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나천우를 쳐다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 사장, 당신이 소개한 이 친구가 농담을 꽤나 잘 하는군.”“오늘은 처음 만난 자리라 농담하는 걸로 알고 더 이상 따지지 않겠어.”“하지만 다음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나천우가 또 이런 사람을 소개한다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의 말이었다.나천우는 흔들림 없는 하현의 근엄한 표정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 부장님, 하 대사는 농담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닙니다!”“조심스럽게 충고를 드리자면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만약 금정 지맥도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나천우 부부도 하현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하현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나천우 부부는 오히려 하현의 말에 더 믿음이 확고해졌다.임단은 하현에게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주된 내용은 그들에게 있어 주광록은 인성 좋은 형님이니 어떻게 해서든 그를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주광록이 꽤나 청렴한 관리임을 눈치챈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광록을 쳐다보았다.“주 부장님, 제 말이 거슬렸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들어봐 주시길 권합니다.”“혹시 최근에 이 차를 가지고 묘지를 가 본 적 있거나 어떤 불길한 물건을 본 적 있으세요?”“아니요!”주광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이 차는 최근에 새로 산 차예요. 최근에는 몰고 다닌 적도 없어요.”“난 묘지에 가 본 적도 없고, 불길한 물건을 본 적도 없어요.”“말하자면 이 차는 오늘 처음 운전한 겁니다!”“평소에 차 열쇠를
나천우는 주광록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형님, 사양하지 마세요.”“하현, 이 형님 좀 봐줘!”“이 형님이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그래!”주광록은 어쩔 수 없이 나천우의 체면을 생각해 몸을 곧게 펴며 말했다.“알았어. 자, 그럼 하 대사 좀 봐 보세요!”방금 두 사람이 악수를 했을 때 하현은 주광록의 몸에 죽음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죽음의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가?간단히 말해서 사람의 운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겉으로 보기에 그의 몸은 여전히 건강한 듯했지만 사람 전체에 생기가 뚝 떨어진 것이다.죽음의 기운은 보통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만 나타난다.하지만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염라대왕이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바로 이런 불길한 기운이 죽음의 기운인 것이다.하현이 자세히 주광록의 얼굴을 보니 역시나 온몸이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만약 그가 관직에 몸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미 열흘이나 보름 전에 죽었을 것이다.관운이 그를 그나마 비호해 주었기 때문이다.다만 관운이 그를 지켜주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죽음의 기운이 퍼지면 결국 주광록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한참을 주광록에게 시선을 깊숙이 고정했던 하현은 그의 손에 차량 열쇠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아마도 아우디 A8인 것 같았다.하현의 눈에는 바로 이 열쇠가 불길한 기운의 집합체로 보였다.지금 이 순간도 죽음의 기운이 계속 퍼져 주광록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하현은 잠시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 부장님,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제가 보기엔 부장님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아마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게다가 이 불길한 기운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잦은 사고가 발생했거나 심각한 병이 덮쳤을 겁니다.”“
나천우의 말을 들은 주광록은 다 이해한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어르신도 참 강경한 스타일이시지.”“예전에는 나한테도 방법을 좀 생각해 봐 달라고 하셨었지. 아는 명의들 좀 소개해 달라고.”“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당신이 아는 사람들이었어.”분명 주광록은 은둔가 나 씨 가문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천우의 아버지가 그에게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임단은 주광록에게 손수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많이 애써 주신 거 다 알아요.”주광록은 자리에 앉은 뒤 나천우 부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그런데 두 분이 이렇게 느긋하게 차도 마시러 나올 기분이 되었다니, 아마 문제가 해결된 모양이지?”“하하하! 확실히 해결되긴 했죠!””안 그랬으면 주 부장님의 혜안이 밝았다고 할 수 없죠, 안 그래요?”“그리고 이 모든 게 다 하 대사 덕분입니다.”“주 부장님, 제가 소개해 드리죠.”“이분은 저와 형제나 다름없고 저의 귀인이자 뛰어난 풍수지리사, 하현입니다!”“또한 우리 부부의 오랜 골치거리였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하현, 이분은 금정 관청 주택건설부 부장님이신 주광록, 내 형님이나 마찬가지야.”“앞으로 금정개발에 무슨 어려움이 있거나 누군가 집복당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면.”“언제든지 주 부장님한테 전화해. 그러면 그가 모든 걸 책임지고 해결해 줄 거야! 장담해!”하현은 나천우가 자신을 위해 금정의 인맥을 소개해 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다지 탐탁지는 않았지만 오른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주 부장님, 안녕하세요.”주광록도 하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말했다.두 사람의 손바닥이 닿은 순간 하현의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주광록을 바라보았다.죽음의 기운?한창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주광록의 몸에서 죽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