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입구에는 경비가 삼엄했다.곳곳에 총과 실탄을 장전한 보안 요원들이 물샐틈없는 경비를 보고 있었다.원가령이 어딘가에 몇 번 전화를 돌린 뒤에야 경비는 겨우 문을 열어 주었다.차는 곧 주건물 입구에 도착했다.멀리서 양유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차량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양유훤 앞에 멈춰 섰고 양유훤은 하현을 보며 반가운 듯 환하게 웃었다.“하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일이 바쁠 텐데 이렇게 급하게 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양유훤은 이미 4대 무맹이 대하무맹을 위협한 일을 잘 알고 있었다.이런 때에 하현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빨리 와 준 것에 감격하며 고마워했다.하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방주, 괜찮아. 우리 사이에 그렇게 예의 차릴 게 뭐 있어?!”“그런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접어두고.”“그래, 어르신은 좀 어떠셔?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어? 일단 어르신부터 뵙자구.”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하현, 솔직히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일로 난 오늘 아침에 각 방면의 유명인들을 모두 초청했어.”“무도 고수, 명의, 그리고 남양굿에 능통한 사람들도 있었어.”“하지만 그들 모두 뾰족한 수가 없었어.”“이제 남은 희망은 오로지 하현 당신 하나뿐이야.”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양유훤의 뒤를 따랐다.차를 세우고 나온 원가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무리 보아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현에게 무슨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입을 삐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을 따라 별장 1층 로비로 들어갔다.“어르신이 토한 어혈을 검사해 봤는데 독은 없었어요.”“하지만 어르신의 체질상 견갑골이 많이 상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기만 해서 참 걱정스럽습니다.”“무엇보다 어르신은 전신이
”양유훤!”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먼저 다가와 당당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그의 시선은 곧바로 원가령에게 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시선이 하현에게 닿았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묘한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여수혁, 수고 많았어. 여러분들도 수고 많으셨어요.”양유훤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다음 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고 하현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이 분은 냠양무맹 맹주가 아끼는 애제자 여수혁이야.”“실력도 좋고 배경도 만만치 않지.”하현은 가타부타 말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옆에 있던 원가령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뭔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현은 원가령을 힐끔 본 뒤 여수혁과 양유훤에게 시선을 옮겼다가 갑자기 소리 없이 웃었다.뭔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가 쓸데없는 데 신경을 분산시키기도 전에 얼른 양유훤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여러분, 요 며칠 동안 우리 할아버지 일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며 고생 많으셨습니다.”“그런데 할아버지가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시고 상태가 더 악화되었어요.”“여러분을 탓할 뜻은 없습니다만 오늘 치료는 여기까지 하고 싶군요.”“모두들 돌아가서 푹 쉬세요. 오늘 진료비에 대해서는 우리 양 씨 가문에서 잘 챙겨드릴 겁니다.”그녀는 말을 마치며 손을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할아버지께서는 후원에 계시니 내가 안내해 줄게.”하현은 프로젝터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면서 양유훤의 뒤를 따랐다.“양유훤, 잠깐만.”하현과 양유훤이 몇 발작 떼기도 전에 흰색 셔츠를 입은 여수혁이 한 발짝 앞서 나와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수혁이 하현과 양유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선을 집중했다.원가령도 의아한 기색을 띠며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하현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여수혁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
”대하 젊은이일 뿐 의사로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여길 왔지? 설마 무학의 고수는 아니겠죠?”“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모태부터 무학을 수련한 우리 같은 사람들만큼 대단하겠어요?”“난 혹시 이 사람이 사기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만약 이 사람이 잘못이라도 저지른다면 누가 책임지겠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조금씩 의문과 불만을 품기 시작하던 터였다.그들은 모두 양유훤에게 잘 보인 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한몫 잘 챙겨 볼 심산으로 여기 온 것인데 이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평범한 젊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하현이 떡하니 양유훤에 눈에 든 것 같으니 탐욕으로 눈이 벌건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하현이 눈엣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본 원가령도 하현에게 의아한 시선을 떨어뜨렸다.비록 그녀는 비꼬는 듯한 표정은 짓지 않았지만 어쨌든 여수혁의 편에 선 것임에는 분명해 보였다.많은 의혹에도 하현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자신을 비호하려던 양유훤을 막고 나섰다.하현은 여수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저는 무학의 성지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실력도 없습니다.”“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구하겠다는 배짱이 생긴 겁니까?”“의학 전문가, 무학의 고수들, 남양의 무당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평범한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여기 서 있다는 거죠?”여수혁은 하현의 말을 끊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이 이러는 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예요! 그건 결국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갈 겁니다!”“양유훤! 우린 당신이 어르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이딴 사기꾼의 말에 넘어간 걸 이해는 해!”“하지만 당신이 믿어야 할 사람은 저 사기꾼이 아니라 나야!”“이 사람은 아무리 봐도 어르신을 구할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아.”“의사도 아니고 아무 기구도 가지고 있
여수혁의 말에 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난 정말 의술도 잘 몰라. 무학의 성지에서 온 것도 아니야.”“그런데 내가 살인술에 대해선 좀 알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살릴 수도 있지. 뭐 문제 있어?”“물론 있지!”여수혁이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도 무예를 익힌 사람이니 당연히 사람을 죽이면 살릴 수도 있다는 것쯤 알아!”“하지만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어. 여러 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한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거지.”“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무학의 천재여야 하고 강호의 경험이 풍부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어?”“당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능력을 보여줘!”“보여주지 못할 거라면 어서 여기서 꺼져! 양유훤을 속일 생각도 하지 말고 어르신을 치료할 대책을 논의하는 이 자리를 방해하지도 말고 어서!”“우리는 곧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르신을 살려낼 거야. 반드시!”여수혁은 도발적인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고 그동안 그들이 강구한 치료 방안 자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훌륭한 우리 남양 사람들이 강구한 완벽한 치료 방안을 당신 같은 찌질한 대하인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여수혁은 양유훤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하현을 밟아 자신을 과시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이해? 그런 거 필요없어.”하현은 원래 여수혁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상대가 도발하고 나서니 그도 더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을 구하는 치료 방안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무학의 고수들과 연합하여 어르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거겠지!”“그리고 나서 의학 전문가들이 나서 출혈과 접골 등 일련의 동작들을 짧은 시간에 마치는 거잖아!”“마지막으로 남양굿을 이용해 어르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되살리려는 것일 테고.”“어때? 내 말이 맞지?”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을 마쳤다.“뭐? 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치료 방안
”한마디만 더 하지...”하현은 무덤덤한 시선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당신이 들고 온 이 치료 방안 말이야. 아마 누군가가 당신한테 준 것임이 틀림없어.”“그렇지만 양 씨 가문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리 없지...”옆에 있던 양유훤이 차갑게 눈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맞아. 누군가가 내놓은 것임이 분명해. 하지만 할아버지는 전쟁의 신이고 더욱이 남양의 최고수로 군림하는 사람이야. 할아버지의 내공을 없애버리다니? 이게 사람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야?”“이 치료 방안을 수행하려면 내가 당신들을 불러들여야겠지?”양유훤의 말을 들은 여수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원래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도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양유훤의 눈에 자신의 치료 방안이 이렇게 보일 줄은 몰랐다.“의술과 무술은 근원이 같아. 이건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야.”“그래서 의술을 공부하든 무술을 공부하든 발전하고 성취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해. 겸손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하현은 여수혁을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여수혁의 뒤에 서서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들은 하나같이 겸손을 배우지 못했어. 잘난 체하는 법만 배웠고 뭉쳐서 남을 의심하고 헐뜯는 것만 배웠어.”“내 능력을 증명해 보라고? 내가 그럴 필요가 있어?”“난 대단한 고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말을 해?”“예를 들어 당신은 왼손을 잘 쓰지, 그렇지? 그렇지만 예전에 수련할 때 당신이 오른손을 못 쓰게 되어서 그런 거라는 걸 숨기고 있잖아?”“다른 예로 당신은 키가 크고 몸매가 날씬해 보이지만 사실 매일 밤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잖아?”“그리고 당신...”하현의 시선이 여수혁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데다 여색에만 빠져 있어서 소위 무학의 고수라는 당신의 타이틀도 모두
이들의 얼굴을 말로 사정없이 때린 뒤 하현은 양유훤에게 양제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손짓했다.여수혁과 다른 소위 남양 무도 고수들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였지만 저렇게 큰소리치는 하현이 도대체 어떻게 양제명을 구할 것인지 궁금했다.그래서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뻔뻔스럽게 따라왔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양유훤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야 하현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약 200평 정도 되는 큰 방에 도착한 하현은 황화목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양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그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많은 기구들이 지금 양제명의 상황을 잘 말해 주었다.다만 전신이기 때문이었던지 단단한 그의 몸에는 링거도 잘 들어가지 않아 함부로 링거를 꽂을 수 없었다.양제명은 매일 애처로운 얼굴로 양유훤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물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할 수 있다.한 세대의 전신이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브라흐마 바찬이라는 인도 요승에게 패하여 결국 이런 몰골이 된 것을 보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한없는 죄책감을 느꼈다.양유훤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하현의 오른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하현, 할아버지 상황은 당신 때문이 아니야. 할아버지와 브라흐마 바찬은 원래 서로 탐탁지 않아 하던 사이였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한번 마주칠 운명이었다구.”“오늘 당신이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기뻐.”하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뺀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오른손 검지로 양제명의 맥을 짚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은 양제명의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양제명의 견갑골이 부서지며 피를 토한 건 겉으로 보이는 외상일 뿐이었다.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양제명의 체내에 원래 그의 것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분명 이 나쁜 기운은 브라
원가령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묻고 싶어도 감히 묻지 못하는 말을 물었다.양유훤의 아름다운 눈조차 하현을 향해 있었고 무언의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하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로 당신들을 속일 필요가 없죠. 그리고 오늘 난 반드시 어르신을 구할 겁니다.”양유훤은 감격에 겨워하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정말 다행이야! 정말 잘 됐어!”“하현,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양유훤이 감격에 겨운 촉촉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자 여수혁은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방금 보인 행동은 기괴하고 요상할 뿐이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제명을 두고 진찰을 했는데도 아무런 해결책도 원인도 찾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단순히 맥만 짚어 보고 당당하게 양제명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니!이 무슨 농담 같은 말인가?허풍을 쳐도 너무 얼토당토않는 허풍 아닌가?“하 씨. 허풍도 정도껏이지!”“만약 당신이 혹시라도 어르신을 구하지 못한다면 방금 당신이 한 말은 스스로 당신 얼굴을 때리는 짓이 돼!”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신장이 허약하다는 허점을 들켰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하현을 향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여수혁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던 몇몇 남양 고수들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분명 그들은 하현이 스스로 망신당하길 고대하는 사람들 같았다.그래야 그들이 그렇게 무능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침술용 은침 있어?”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말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양유훤에게 은침 한 세트를 부탁했다.그러면서 그는 알코올램프도 하나 부탁했다.하현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은침을 빨갛게 달구고 난 뒤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정수리 혈자리를 찔렀다.“침술을 쓴다고?!”“저렇게 함부로?!”이 모습을 본 여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하 씨 저놈은 의술도 모르면서 함부로 침을 놓다니! 양제명 어르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다른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을 때 양유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양제명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옆에 있던 하현을 껴안았다.“하현, 정말 고마워!”“당신은 우리 양 씨 가문의 은인이야!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럴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하지 않아. 별거 아니야.”“하지만 어르신의 내상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야. 어르신은 절대 조용히 안정해야 해.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을 찾아 1년 반 정도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해. 그리고 몸조리를 잘 해야 해.”“하현, 그건 걱정하지 마. 뒷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말도 안 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뭔가 귀신에 홀린 것 같아!”마침내 정신을 차린 여수혁이 반응을 보였다.정신을 차린 후 그가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의술과 무술을 겸비했고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남양의 페낭에서는 의술계와 무술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그런 그조차도 양제명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럴듯한 해결책조차 내지 못했다.게다가 그의 계산대로라면 양제명의 치료 과정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었다.그런데 의사도 아닌 하현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침술로 양제명의 정수리에 몇 번 침을 놓은 것만으로 양제명이 깨어나다니!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몇몇 남양 고수들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도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도 손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3분 동안 맥을 짚은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십여 분 만에 사람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하현이 양제명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자 십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
”확실히 이 외지인놈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도 뭐?”“우리 황천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맞아! 하현이 부 사장 무릎을 꿇게 한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그런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땅강아지가 운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진짜 실력자를 만나면 아무 힘도 못 써!”“결국 실력 없는 자가 스스로 무능함에 분노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야!”“황천화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곧 알게 되겠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대하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페낭에서는 이신욱의 저력을 능가할 수 없다.“형님!”“황 선생!”“황 도련님!”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황천화에게 몰려들었고 선두에 선 이신욱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신욱,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까지 나서서 체면을 세워 줘야 할 일이 도대체 뭐냐구?”황천화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먹거렸다.마치 세상에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는 듯.이신욱은 차가운 눈초리로 비아냥거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외지인 주제에 우리 페낭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다니!”“그래?”황천화는 실눈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신욱을 힐끔 쳐다보았다.그의 코는 푸르덩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이빨도 두어 개 비어 있었다.안색이 나쁜 건 말할 것도 없었다.비록 황천화는 이신욱을 그리 높이 보진 않았지만 이신욱은 일찌감치 황천화의 가능성을 보고 명절 때마다 그에서 그득한 선물을 보낸 덕분에 꽤 황천화 덕을 보고 있었다.그래서 황천화도 이신욱에 대해 슬슬 좋은 감정이 생겼다.그런데 지금 그런 후배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다.황천화의 안색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이신욱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