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얼굴을 말로 사정없이 때린 뒤 하현은 양유훤에게 양제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손짓했다.여수혁과 다른 소위 남양 무도 고수들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였지만 저렇게 큰소리치는 하현이 도대체 어떻게 양제명을 구할 것인지 궁금했다.그래서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뻔뻔스럽게 따라왔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양유훤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야 하현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약 200평 정도 되는 큰 방에 도착한 하현은 황화목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양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그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많은 기구들이 지금 양제명의 상황을 잘 말해 주었다.다만 전신이기 때문이었던지 단단한 그의 몸에는 링거도 잘 들어가지 않아 함부로 링거를 꽂을 수 없었다.양제명은 매일 애처로운 얼굴로 양유훤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물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할 수 있다.한 세대의 전신이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브라흐마 바찬이라는 인도 요승에게 패하여 결국 이런 몰골이 된 것을 보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한없는 죄책감을 느꼈다.양유훤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하현의 오른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하현, 할아버지 상황은 당신 때문이 아니야. 할아버지와 브라흐마 바찬은 원래 서로 탐탁지 않아 하던 사이였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한번 마주칠 운명이었다구.”“오늘 당신이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기뻐.”하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뺀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오른손 검지로 양제명의 맥을 짚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은 양제명의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양제명의 견갑골이 부서지며 피를 토한 건 겉으로 보이는 외상일 뿐이었다.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양제명의 체내에 원래 그의 것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분명 이 나쁜 기운은 브라
원가령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묻고 싶어도 감히 묻지 못하는 말을 물었다.양유훤의 아름다운 눈조차 하현을 향해 있었고 무언의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하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로 당신들을 속일 필요가 없죠. 그리고 오늘 난 반드시 어르신을 구할 겁니다.”양유훤은 감격에 겨워하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정말 다행이야! 정말 잘 됐어!”“하현,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양유훤이 감격에 겨운 촉촉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자 여수혁은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방금 보인 행동은 기괴하고 요상할 뿐이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제명을 두고 진찰을 했는데도 아무런 해결책도 원인도 찾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단순히 맥만 짚어 보고 당당하게 양제명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니!이 무슨 농담 같은 말인가?허풍을 쳐도 너무 얼토당토않는 허풍 아닌가?“하 씨. 허풍도 정도껏이지!”“만약 당신이 혹시라도 어르신을 구하지 못한다면 방금 당신이 한 말은 스스로 당신 얼굴을 때리는 짓이 돼!”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신장이 허약하다는 허점을 들켰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하현을 향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여수혁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던 몇몇 남양 고수들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분명 그들은 하현이 스스로 망신당하길 고대하는 사람들 같았다.그래야 그들이 그렇게 무능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침술용 은침 있어?”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말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양유훤에게 은침 한 세트를 부탁했다.그러면서 그는 알코올램프도 하나 부탁했다.하현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은침을 빨갛게 달구고 난 뒤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정수리 혈자리를 찔렀다.“침술을 쓴다고?!”“저렇게 함부로?!”이 모습을 본 여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하 씨 저놈은 의술도 모르면서 함부로 침을 놓다니! 양제명 어르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다른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을 때 양유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양제명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옆에 있던 하현을 껴안았다.“하현, 정말 고마워!”“당신은 우리 양 씨 가문의 은인이야!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럴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하지 않아. 별거 아니야.”“하지만 어르신의 내상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야. 어르신은 절대 조용히 안정해야 해.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을 찾아 1년 반 정도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해. 그리고 몸조리를 잘 해야 해.”“하현, 그건 걱정하지 마. 뒷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말도 안 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뭔가 귀신에 홀린 것 같아!”마침내 정신을 차린 여수혁이 반응을 보였다.정신을 차린 후 그가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의술과 무술을 겸비했고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남양의 페낭에서는 의술계와 무술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그런 그조차도 양제명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럴듯한 해결책조차 내지 못했다.게다가 그의 계산대로라면 양제명의 치료 과정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었다.그런데 의사도 아닌 하현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침술로 양제명의 정수리에 몇 번 침을 놓은 것만으로 양제명이 깨어나다니!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몇몇 남양 고수들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도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도 손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3분 동안 맥을 짚은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십여 분 만에 사람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하현이 양제명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자 십
양유훤은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 후에야 하현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길모퉁이로 가서 몇 분간 통화를 이어갔다.하현은 양유훤의 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통화를 마친 양유훤은 예의 그 환한 얼굴로 하현의 곁으로 다가왔다.“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하현이 살짝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남양방 방주인 당신을 페낭에서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이야?”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농담하지 마. 항성과 도성에서라면 남양방 방주의 실력과 힘이 꽤나 영향력이 있겠지만.”“여기는 페낭이야. 여기까지 그 영향력이 미칠 리가 없잖아.”“게다가 비서와 최측근 몇 명 외에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이곳에 왔어.”“할아버지 일을 얼른 해결하고 바로 떠날 수 있을 줄 알았지.”“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내가 좀 도와줄까?”하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에 관한 몇 가지 일인데 별로 큰 문제는 아니고 다만 좀 번거로울 뿐이야.”양유훤이 양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이 남양 3대 가문이긴 하지만 내부 파벌이 상당히 심해.”“우리 큰집이 제일 세력이 강했는데 할아버지한테 일이 생겼던 그 해, 다른 집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큰집 재산을 빼앗아갔어.”“할아버지가 회복되신 후에 강력하게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 큰집 재산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어.”“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온갖 수단으로 수작을 부렸어.”“할아버지가 건재하셨을 때는 이런 수작이 먹히지가 않았지.”“하지만 할아버지가 최근에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한 후 그들은 다시 기를 펴기 시작했어.”“예를 들면?”하현은 양유훤의 능력으로도 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듣게 된 이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예를 들어 지금 같은 전화 말이지. 큰집 명의의 악성 부채가
”참, 오늘 밤에 어디서 만나는 거예요?”양유훤이 물었다.상대방은 양유훤을 한껏 내려다보는 투로 말했다.“저녁 8시, 천수만 회관!”“양유훤, 늦지 말고 와!”양유훤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할게요.”전화를 끊은 뒤에야 하현에게 시선을 돌린 양유훤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이 사람은 중간 브로커, 페낭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채연이라는 여자야.”“우리 같은 사람들과 어둠의 사람들, 두 세계를 동시에 잘 아는 여자지.”“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연결 좀 시켜달라고 부탁했어. 빚진 사람들을 좀 만나게 해 달라고 했지.”“빚진 사람들이 누군데?”하현이 물었다.“부두에 있는 운송 회사. 회사 사장 사장은 부문상이야.”“그의 뒤에는 페낭 무맹이 있어. 그래서 아주 골치가 아파.”“페낭 무맹?”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양유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남양국은 대하와 달리 무예를 익힌 사람들은 분파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모두 무맹에 가입해 그 안에서 무예를 익혀.”“페낭 무맹은 남양무맹의 할 갈래인데 세력이나 인맥이 가당치도 않아.”“남양 3대 가문도 페낭 무맹을 만나면 한 발짝 물러설 때가 많거든.”“말벌집을 누가 감히 함부로 건드리려고 하겠어?”“그래서 부문상은 페낭 무맹이라는 뒷배를 믿고 함부로 우리 양유훤의 빚도 갚지 않고 버티고 있단 말이지?”하현은 소리 없이 웃었다.“내가 해결해 줄까? 어차피 페낭 무맹이 남양무맹과 관계가 있으니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어떻게 해결될 것도 같은데.”양유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용히 웃었다.“내가 처리할 거야.”“이건 우리 양 씨 가문 일이고 사업적으로도 꼭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그리고 이번에 당신이 이 먼 페낭까지 왔는데 며칠 쉬지도 못하고 내 일 때문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면 내가 얼마나 미안하겠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미안하긴 뭘 미안해. 어쨌든 기왕 온 김에 며칠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을 바라보며 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국땅에서 자꾸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또 이런 볼썽사나운 사람들과 부딪힐 줄이야!“개자식, 공항에 있을 때는 내가 상대해 줄 시간이 없어서 그냥 놔뒀지 아주 용서해 준 줄 알아?”“일등석 탔다고 잘난 척하며 사람을 때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잘 들어. 오늘 당신 엄청 재수 없는 날이야. 당신 이제 내 손에 죽었어!”예쁜 여자는 마치 이 세상을 창조한 사람인 것마냥 잔뜩 으스대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흉악한 인상에 단발머리를 한 남자도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야! 당신이 내 여자를 언짢게 한 놈이야?”“내 여자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어서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말을 하면서 단발머리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짙은 구름 연기를 내뿜었다.오만방자하기가 하늘을 찔렀다.길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흠칫 놀라 슬금슬금 피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지나가던 사람들도 이들의 행동을 보고 뭔가 꺼림직하게 느낀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들을 쓱 훑어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내가 기분 좋을 때 어서 꺼져!”“유후! 뭐라고? 꺼지라고?!”단발머리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감히 내 여자를 때리고 나더러 꺼지라고? 이런 네놈을 가만히 두고 어떻게 내 체면이 제대로 서겠어?”양유훤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이 장면을 가만히 지켜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그래도 단발머리 청년은 금세 양유훤의 존재를 알아차리며 눈을 번쩍 치켜뜨고는 군침을 흘리듯 이죽거리며 양유훤에게 다가왔다.“개자식, 보기와는 다르게 복은 많군!”“아주 부럽고 질투 나서 원! 퉤!”그러자 단발머리 남자는 대놓고 더러운 속내를 보였다.“결정했어! 이 여자야! 오늘 밤 내 별장에 데리고 와!”“며칠만 놀다 보면 완전히 단물 다 빠지겠지!”그의 뒤에 서 있던 몇몇 동료들은
하수진은 하현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므로 잘 숙성된 보이차를 준비해 두었다.은은한 차 향기가 퍼지는 가운데 하현은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비로소 온몸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양유훤은 하현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결국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하현, 이렇게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당신을 내가 갑자기 탐내서 덮치기라도 할까 봐 겁 안 나?”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오는 여인의 암시에 하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뭐라는 거야? 양방주, 난 당신을 내 형제로 생각하는데! 설마 당신이 날 덮치려고?”“당신이 그런 유혹도 못 참는다고?”“쳇!”양유훤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날 어떻게 해 보려는 남자들이 페낭에 얼마나 많은 줄 알아?!”“안타깝게도 난 그 사람들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어. 내가 반한 건 당신이거든.”“단호하게 말하건대 말이야.”“잘 들어.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기회는 다신 없어.”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냥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 안 되는 걸까?꼭 이렇게 민감하고 난감한 주제를 다뤄야 하는 건가?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와중에 양유훤의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핸드폰을 힐끔 쳐다보았다.채연이었다.채연은 양유훤에게 꼭 제시간에 갈 것을 반복해서 일렀고 꼭 혼자 갈 것을 신신당부했다.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고 일렀다.동시에 채연은 부문상의 배후가 페낭 무맹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듯 반복해서 말했다.그래서 그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더라도 절대 그와 맞서 싸우지 말 것을 세뇌시키듯 말했다.양유훤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겼다.페낭 무맹도 남양무맹도 강한 상대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못 넘을 산은 아니었다.오히려 옆에서 듣고 있던 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양유훤, 채연이란 여자 정말 재미있군.”“브로커가 당신 일에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말
”하긴, 페낭 무맹인 여영창의 씀씀이로 봐서 천억이라는 액수는 눈에도 안 차지.”“그러니 이번에 가장 잘 처리해야 할 사람은 결국 부문상이야.”양유훤은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자료를 하나 꺼내 하현에게 건넸다.“내가 이미 파악해 둔 부문상이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야.”“그는 공명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 외에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여자 놀음하는 데도 아주 취미가 많지.”“외지에서 온 여성 관광객한테 아주 흥미가 많다나 봐.”“섬나라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인도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아주 관심이 많대.”“대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양유훤은 하현을 쳐다보며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전에 페낭으로 여행 온 대하 여자를 보고 마음에 들어서 건드렸다가 그 여자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놨지.”“결국 강직한 성격인 여자는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여자 가족들이 페낭에 와서 직접 관청에 신고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어.”“하지만 이 일은 결국 여영창의 손에 넘어가 처리되었지.”양유훤의 눈에 찬 서리가 가득 고였다.“그 일로 부문상은 자신이 페낭의 밤의 황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정말 상대도 하기 싫은 사람이야.”하현의 눈 속엔 파렴치한에 대한 분노로 한기가 흘러넘쳤다.“그런데 그놈은 파렴치한 짓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자멸한다는 이치도 모르는 건가?”양유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만약 부문상 같은 사람들이 그런 이치를 믿었다면 아마 일찌감치 부처님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겠지, 안 그래?”“우리 가문은 남양 3대 가문이라고 불려. 내가 그 가문 명패를 내걸고 있는데도 부문상은 천억이라는 부채를 상환하지 않고 있어.”“다른 집안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와 같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기회조차 없었을 거야!”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후 핸드폰을 꺼내 원청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7시가 가까워 오자 하현과 양유훤은 함께 집을 나섰고 차를 타자마자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
정상적으로 데릴사위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는가?블랙골드 카드까지?백억이 무슨 장난인가?몇몇 아리따운 여직원들도 하나같이 입꼬리를 치켜들고 경멸의 빛을 쏘아보냈다.남자가 되어서 여자한테 빌붙어 얻어먹고 사는 것도 모자라 여자의 돈을 몰래 빼내서 블랙골드 카드까지 만들다니!이런 남자는 그 자체로 망신이고 도덕적으로도 완전히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돼지우리에 가둬야 딱 맞을 정도였다.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안에 있는 돈, 내 돈이야.”“뭐? 당신 돈이라고?”김나나는 냉소를 흘렸다.“밥벌이도 못해서 은아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어떻게 이 많은 돈이 났다는 거야?”“설 씨 집안의 돈을 훔친 게 틀림없어!”“당신, 이거 불법인 거 알아? 하늘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김나나는 핸드폰을 꺼내 설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분명 이 일을 빌미로 하현을 설은아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속셈인 것이다.그런 다음 정정당당하게 그녀의 오빠를 설은아에게 소개해서 둘을 연결할 생각이었던 것이다.“당신이 이러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하현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행장님을 만나야겠어.”“뭐라고? 당신이 만나고 싶다고 하면 행장님이 어서 오세요 하고 만나 준대? 허!”김나나는 혐오와 경멸이 가득 뒤섞인 얼굴로 계속 퍼부었다.“은아가 와서 당신이 설 씨 집안 돈을 훔친 걸 알면 당신은 완전히 끝장이야!”하현과 설은아가 재혼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생각을 떠올리자 그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나나, 무슨 일이야?”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에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추었고 설은아는 쏜살같이 차에서 내렸다.하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설은아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감돌았다.“하현, 당신 여기서 뭐 해?”이때 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띵’소리를 내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아한 분위기의 중년 남자가 몇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걸어왔다.
”당신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설 씨 집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데도 그걸로 모자라?”“그래서 이젠 은아의 돈까지 훔쳐 쓰려고 하는 거야?”“그 돈으로 뭘 할 생각이야? 설마 내연녀 명품백이나 사 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김나나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하현을 도둑만도 못한 남자 보듯 헐뜯었다.은행 직원들과 고객들도 모두 하나둘씩 고개를 갸웃거리며 데릴사위 주제에 주제를 모른다는 둥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얘기 다 끝났어?”하현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말 다 했으면 저리 가. 업무 방해하지 말고!”만약 상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하현은 벌써 뺨을 후려갈겼을 것이다.“경고하는데! 잘 들어!”“3일 주겠어!”“3일 안에 은아 곁에서 사라져!”“재결합이라니! 흥 재결합이라니?!”“꿈도 꾸지 마!”“내 말 똑똑히 들어. 은아는 당신이 그렇게 갖고 놀 여자가 아니야!”김나나는 세상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세웠다.눈을 아래로 한껏 내리깔고 하현을 바라보던 그녀는 매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무엇보다 우리 오빠가 이제 곧 퇴원해.”“우리 오빠가 보는 앞에서 감히 당신이 은아한테 찝쩍거린다면 우리 오빠한테 혼쭐날 거야! 알아?!”하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김나나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곧장 VIP 창구로 가서 블랙골드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안에 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솩!”하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나나는 얼른 돌진해 그의 카드를 중간에서 가로챘다.“내가 부행장이야. 어디 당신 카드나 좀 보자고!”“뭐? 블랙골드?”고혹적인 빛을 띠는 블랙골드 카드를 보며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블랙골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신분이 아주 높거나 재산이 많다.금정 같은 곳에서도 블랙골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상류층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잠깐만! 블랙골드에 당신 이름이 여기
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무슨 충고?”“옛날부터 불로장생하는 것과 풍수는 깊은 연관이 있어.”“당신이 그들의 이목을 끄는 거야. 뱀을 동굴에서 나오게 유인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증거가 될 만한 뭔가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우선은 유명한 풍수지리사가 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그래서 말인데, 풍수관을 차리는 건 어때?”“한편으론 조심스럽게 그들의 동태를 살필 수도 있고 한편으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목을 끄는 거지.”“더욱 중요한 것은 금정이 오래된 고도로서 기괴한 일이 적지 않다는 거야.”“소문난 풍수지리사로 이름을 날리며 금정에 많은 인맥을 쌓는다면 당신한테 나쁠 것도 없잖아?”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일리가 있어. 역시 금정 간 씨 가문 아가씨다워!”“풍수지리사라, 흥미로운 직업이지.”“하지만 난 풍수를 전문적으로 보는 풍수지리사가 아니야.”간민효는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당신이 관심만 있다면 내가 나머지는 모두 처리할게!”“가게든, 직원들이든, 자격증이든 모든 것들 다!”“고개만 끄덕여 준다면 다른 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게 내가 다 준비할게!”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그렇게 해! 아무 문제없어!”말을 하는 사이 차는 어느덧 금정은행 입구에 도착했다.하현은 전에 이슬기에게 현금 이천억을 마련하라고 한 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설은아는 돈 쓸 곳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불시의 상황에 미리 대비해 놓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금정은행 로비에 들어서자 하현은 로비 매니저를 향해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VIP실이 어디죠?”어쨌든 이런 고액의 업무는 귀빈실에서 처리해야 한다.“어머? 당신 그 데릴사위 아냐?”바로 그때 주변에 향기로운 꽃향기를 풍기며 높은 하이힐만큼이나 콧대를 치켜세운 아름다운 여자가 하현 앞에 나타났다.하현은 눈앞의 여자를 희미한 눈길로 바라보
형나운은 결국 하현을 주인이라 불렀다.그때 간민효가 하현을 데리러 왔고 형 씨 가문 집사가 공손하게 백억짜리 수표를 건네는 것을 보았다.형 씨 가문은 골동품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형홍익이라는 거대한 수장이 없다면 형 씨 가문의 사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진정한 후계자가 생기기 전까지는 형 씨 가문에게 형홍익의 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하현이 형홍익을 구한 것은 형 씨 가문 전체를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래서 형 씨 가문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에게 사례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비록 돈을 받을 뜻은 없었지만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받았다.그러고 나서 간민효의 페라리에 올라타 형 씨 가문을 떠났다.차 안에서 하현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간민효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민효, 당신은 내가 어르신을 구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액셀을 밟던 간민효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엄도훈의 팔괘경과 삼촌의 구안천주가 같은 곳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당신이 엄도훈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삼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어.”하현은 어안이 벙벙한 채 눈을 크게 치켜떴다.“같은 곳에서?”간민효는 담담하게 어조로 말했다.“같은 조직이라고 해야 하나?”“역사의 그늘 속에서 신비롭게 존재하는 조직.”“이번에 그들이 엄도훈과 삼촌한테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마 십중팔구 금정의 몇 개 은둔가를 직접 겨냥하고 저지른 게 틀림없어.”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장생전?”하현이 이 세 글자를 꺼내자 간민효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며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차는 굉음을 내며 멈춰 섰고 간민효는 놀란 눈을 한 채 가쁘게 숨을 들이마셨다.“하현, 당신이 어떻게 장생전을 알아?”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말했다.“남양의 페낭에서 이 조직과 한 번 맞붙어 당한 적이 있어.”“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번에 내가 금정에 온 이유가 아내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