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만 더 하지...”하현은 무덤덤한 시선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당신이 들고 온 이 치료 방안 말이야. 아마 누군가가 당신한테 준 것임이 틀림없어.”“그렇지만 양 씨 가문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리 없지...”옆에 있던 양유훤이 차갑게 눈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맞아. 누군가가 내놓은 것임이 분명해. 하지만 할아버지는 전쟁의 신이고 더욱이 남양의 최고수로 군림하는 사람이야. 할아버지의 내공을 없애버리다니? 이게 사람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야?”“이 치료 방안을 수행하려면 내가 당신들을 불러들여야겠지?”양유훤의 말을 들은 여수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원래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도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양유훤의 눈에 자신의 치료 방안이 이렇게 보일 줄은 몰랐다.“의술과 무술은 근원이 같아. 이건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야.”“그래서 의술을 공부하든 무술을 공부하든 발전하고 성취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해. 겸손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하현은 여수혁을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여수혁의 뒤에 서서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들은 하나같이 겸손을 배우지 못했어. 잘난 체하는 법만 배웠고 뭉쳐서 남을 의심하고 헐뜯는 것만 배웠어.”“내 능력을 증명해 보라고? 내가 그럴 필요가 있어?”“난 대단한 고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말을 해?”“예를 들어 당신은 왼손을 잘 쓰지, 그렇지? 그렇지만 예전에 수련할 때 당신이 오른손을 못 쓰게 되어서 그런 거라는 걸 숨기고 있잖아?”“다른 예로 당신은 키가 크고 몸매가 날씬해 보이지만 사실 매일 밤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잖아?”“그리고 당신...”하현의 시선이 여수혁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데다 여색에만 빠져 있어서 소위 무학의 고수라는 당신의 타이틀도 모두
이들의 얼굴을 말로 사정없이 때린 뒤 하현은 양유훤에게 양제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손짓했다.여수혁과 다른 소위 남양 무도 고수들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였지만 저렇게 큰소리치는 하현이 도대체 어떻게 양제명을 구할 것인지 궁금했다.그래서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뻔뻔스럽게 따라왔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양유훤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야 하현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약 200평 정도 되는 큰 방에 도착한 하현은 황화목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양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그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많은 기구들이 지금 양제명의 상황을 잘 말해 주었다.다만 전신이기 때문이었던지 단단한 그의 몸에는 링거도 잘 들어가지 않아 함부로 링거를 꽂을 수 없었다.양제명은 매일 애처로운 얼굴로 양유훤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물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할 수 있다.한 세대의 전신이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브라흐마 바찬이라는 인도 요승에게 패하여 결국 이런 몰골이 된 것을 보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한없는 죄책감을 느꼈다.양유훤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하현의 오른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하현, 할아버지 상황은 당신 때문이 아니야. 할아버지와 브라흐마 바찬은 원래 서로 탐탁지 않아 하던 사이였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한번 마주칠 운명이었다구.”“오늘 당신이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기뻐.”하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뺀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오른손 검지로 양제명의 맥을 짚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은 양제명의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양제명의 견갑골이 부서지며 피를 토한 건 겉으로 보이는 외상일 뿐이었다.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양제명의 체내에 원래 그의 것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분명 이 나쁜 기운은 브라
원가령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묻고 싶어도 감히 묻지 못하는 말을 물었다.양유훤의 아름다운 눈조차 하현을 향해 있었고 무언의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하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로 당신들을 속일 필요가 없죠. 그리고 오늘 난 반드시 어르신을 구할 겁니다.”양유훤은 감격에 겨워하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정말 다행이야! 정말 잘 됐어!”“하현,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양유훤이 감격에 겨운 촉촉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자 여수혁은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방금 보인 행동은 기괴하고 요상할 뿐이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제명을 두고 진찰을 했는데도 아무런 해결책도 원인도 찾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단순히 맥만 짚어 보고 당당하게 양제명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니!이 무슨 농담 같은 말인가?허풍을 쳐도 너무 얼토당토않는 허풍 아닌가?“하 씨. 허풍도 정도껏이지!”“만약 당신이 혹시라도 어르신을 구하지 못한다면 방금 당신이 한 말은 스스로 당신 얼굴을 때리는 짓이 돼!”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신장이 허약하다는 허점을 들켰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하현을 향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여수혁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던 몇몇 남양 고수들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분명 그들은 하현이 스스로 망신당하길 고대하는 사람들 같았다.그래야 그들이 그렇게 무능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침술용 은침 있어?”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말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양유훤에게 은침 한 세트를 부탁했다.그러면서 그는 알코올램프도 하나 부탁했다.하현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은침을 빨갛게 달구고 난 뒤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정수리 혈자리를 찔렀다.“침술을 쓴다고?!”“저렇게 함부로?!”이 모습을 본 여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하 씨 저놈은 의술도 모르면서 함부로 침을 놓다니! 양제명 어르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다른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을 때 양유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양제명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옆에 있던 하현을 껴안았다.“하현, 정말 고마워!”“당신은 우리 양 씨 가문의 은인이야!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럴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하지 않아. 별거 아니야.”“하지만 어르신의 내상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야. 어르신은 절대 조용히 안정해야 해.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을 찾아 1년 반 정도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해. 그리고 몸조리를 잘 해야 해.”“하현, 그건 걱정하지 마. 뒷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말도 안 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뭔가 귀신에 홀린 것 같아!”마침내 정신을 차린 여수혁이 반응을 보였다.정신을 차린 후 그가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의술과 무술을 겸비했고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남양의 페낭에서는 의술계와 무술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그런 그조차도 양제명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럴듯한 해결책조차 내지 못했다.게다가 그의 계산대로라면 양제명의 치료 과정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었다.그런데 의사도 아닌 하현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침술로 양제명의 정수리에 몇 번 침을 놓은 것만으로 양제명이 깨어나다니!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몇몇 남양 고수들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도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도 손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3분 동안 맥을 짚은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십여 분 만에 사람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하현이 양제명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자 십
양유훤은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 후에야 하현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길모퉁이로 가서 몇 분간 통화를 이어갔다.하현은 양유훤의 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통화를 마친 양유훤은 예의 그 환한 얼굴로 하현의 곁으로 다가왔다.“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하현이 살짝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남양방 방주인 당신을 페낭에서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이야?”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농담하지 마. 항성과 도성에서라면 남양방 방주의 실력과 힘이 꽤나 영향력이 있겠지만.”“여기는 페낭이야. 여기까지 그 영향력이 미칠 리가 없잖아.”“게다가 비서와 최측근 몇 명 외에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이곳에 왔어.”“할아버지 일을 얼른 해결하고 바로 떠날 수 있을 줄 알았지.”“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내가 좀 도와줄까?”하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에 관한 몇 가지 일인데 별로 큰 문제는 아니고 다만 좀 번거로울 뿐이야.”양유훤이 양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이 남양 3대 가문이긴 하지만 내부 파벌이 상당히 심해.”“우리 큰집이 제일 세력이 강했는데 할아버지한테 일이 생겼던 그 해, 다른 집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큰집 재산을 빼앗아갔어.”“할아버지가 회복되신 후에 강력하게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 큰집 재산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어.”“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온갖 수단으로 수작을 부렸어.”“할아버지가 건재하셨을 때는 이런 수작이 먹히지가 않았지.”“하지만 할아버지가 최근에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한 후 그들은 다시 기를 펴기 시작했어.”“예를 들면?”하현은 양유훤의 능력으로도 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듣게 된 이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예를 들어 지금 같은 전화 말이지. 큰집 명의의 악성 부채가
”참, 오늘 밤에 어디서 만나는 거예요?”양유훤이 물었다.상대방은 양유훤을 한껏 내려다보는 투로 말했다.“저녁 8시, 천수만 회관!”“양유훤, 늦지 말고 와!”양유훤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할게요.”전화를 끊은 뒤에야 하현에게 시선을 돌린 양유훤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이 사람은 중간 브로커, 페낭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채연이라는 여자야.”“우리 같은 사람들과 어둠의 사람들, 두 세계를 동시에 잘 아는 여자지.”“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연결 좀 시켜달라고 부탁했어. 빚진 사람들을 좀 만나게 해 달라고 했지.”“빚진 사람들이 누군데?”하현이 물었다.“부두에 있는 운송 회사. 회사 사장 사장은 부문상이야.”“그의 뒤에는 페낭 무맹이 있어. 그래서 아주 골치가 아파.”“페낭 무맹?”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양유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남양국은 대하와 달리 무예를 익힌 사람들은 분파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모두 무맹에 가입해 그 안에서 무예를 익혀.”“페낭 무맹은 남양무맹의 할 갈래인데 세력이나 인맥이 가당치도 않아.”“남양 3대 가문도 페낭 무맹을 만나면 한 발짝 물러설 때가 많거든.”“말벌집을 누가 감히 함부로 건드리려고 하겠어?”“그래서 부문상은 페낭 무맹이라는 뒷배를 믿고 함부로 우리 양유훤의 빚도 갚지 않고 버티고 있단 말이지?”하현은 소리 없이 웃었다.“내가 해결해 줄까? 어차피 페낭 무맹이 남양무맹과 관계가 있으니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어떻게 해결될 것도 같은데.”양유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용히 웃었다.“내가 처리할 거야.”“이건 우리 양 씨 가문 일이고 사업적으로도 꼭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그리고 이번에 당신이 이 먼 페낭까지 왔는데 며칠 쉬지도 못하고 내 일 때문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면 내가 얼마나 미안하겠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미안하긴 뭘 미안해. 어쨌든 기왕 온 김에 며칠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을 바라보며 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국땅에서 자꾸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또 이런 볼썽사나운 사람들과 부딪힐 줄이야!“개자식, 공항에 있을 때는 내가 상대해 줄 시간이 없어서 그냥 놔뒀지 아주 용서해 준 줄 알아?”“일등석 탔다고 잘난 척하며 사람을 때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잘 들어. 오늘 당신 엄청 재수 없는 날이야. 당신 이제 내 손에 죽었어!”예쁜 여자는 마치 이 세상을 창조한 사람인 것마냥 잔뜩 으스대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흉악한 인상에 단발머리를 한 남자도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야! 당신이 내 여자를 언짢게 한 놈이야?”“내 여자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어서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말을 하면서 단발머리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짙은 구름 연기를 내뿜었다.오만방자하기가 하늘을 찔렀다.길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흠칫 놀라 슬금슬금 피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지나가던 사람들도 이들의 행동을 보고 뭔가 꺼림직하게 느낀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들을 쓱 훑어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내가 기분 좋을 때 어서 꺼져!”“유후! 뭐라고? 꺼지라고?!”단발머리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감히 내 여자를 때리고 나더러 꺼지라고? 이런 네놈을 가만히 두고 어떻게 내 체면이 제대로 서겠어?”양유훤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이 장면을 가만히 지켜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그래도 단발머리 청년은 금세 양유훤의 존재를 알아차리며 눈을 번쩍 치켜뜨고는 군침을 흘리듯 이죽거리며 양유훤에게 다가왔다.“개자식, 보기와는 다르게 복은 많군!”“아주 부럽고 질투 나서 원! 퉤!”그러자 단발머리 남자는 대놓고 더러운 속내를 보였다.“결정했어! 이 여자야! 오늘 밤 내 별장에 데리고 와!”“며칠만 놀다 보면 완전히 단물 다 빠지겠지!”그의 뒤에 서 있던 몇몇 동료들은
하수진은 하현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므로 잘 숙성된 보이차를 준비해 두었다.은은한 차 향기가 퍼지는 가운데 하현은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비로소 온몸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양유훤은 하현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결국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하현, 이렇게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당신을 내가 갑자기 탐내서 덮치기라도 할까 봐 겁 안 나?”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오는 여인의 암시에 하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뭐라는 거야? 양방주, 난 당신을 내 형제로 생각하는데! 설마 당신이 날 덮치려고?”“당신이 그런 유혹도 못 참는다고?”“쳇!”양유훤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날 어떻게 해 보려는 남자들이 페낭에 얼마나 많은 줄 알아?!”“안타깝게도 난 그 사람들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어. 내가 반한 건 당신이거든.”“단호하게 말하건대 말이야.”“잘 들어.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기회는 다신 없어.”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냥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 안 되는 걸까?꼭 이렇게 민감하고 난감한 주제를 다뤄야 하는 건가?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와중에 양유훤의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핸드폰을 힐끔 쳐다보았다.채연이었다.채연은 양유훤에게 꼭 제시간에 갈 것을 반복해서 일렀고 꼭 혼자 갈 것을 신신당부했다.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고 일렀다.동시에 채연은 부문상의 배후가 페낭 무맹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듯 반복해서 말했다.그래서 그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더라도 절대 그와 맞서 싸우지 말 것을 세뇌시키듯 말했다.양유훤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겼다.페낭 무맹도 남양무맹도 강한 상대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못 넘을 산은 아니었다.오히려 옆에서 듣고 있던 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양유훤, 채연이란 여자 정말 재미있군.”“브로커가 당신 일에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말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