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젊은이일 뿐 의사로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여길 왔지? 설마 무학의 고수는 아니겠죠?”“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모태부터 무학을 수련한 우리 같은 사람들만큼 대단하겠어요?”“난 혹시 이 사람이 사기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만약 이 사람이 잘못이라도 저지른다면 누가 책임지겠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조금씩 의문과 불만을 품기 시작하던 터였다.그들은 모두 양유훤에게 잘 보인 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한몫 잘 챙겨 볼 심산으로 여기 온 것인데 이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평범한 젊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하현이 떡하니 양유훤에 눈에 든 것 같으니 탐욕으로 눈이 벌건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하현이 눈엣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본 원가령도 하현에게 의아한 시선을 떨어뜨렸다.비록 그녀는 비꼬는 듯한 표정은 짓지 않았지만 어쨌든 여수혁의 편에 선 것임에는 분명해 보였다.많은 의혹에도 하현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자신을 비호하려던 양유훤을 막고 나섰다.하현은 여수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저는 무학의 성지에서 온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실력도 없습니다.”“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구하겠다는 배짱이 생긴 겁니까?”“의학 전문가, 무학의 고수들, 남양의 무당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평범한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여기 서 있다는 거죠?”여수혁은 하현의 말을 끊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이 이러는 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예요! 그건 결국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갈 겁니다!”“양유훤! 우린 당신이 어르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이딴 사기꾼의 말에 넘어간 걸 이해는 해!”“하지만 당신이 믿어야 할 사람은 저 사기꾼이 아니라 나야!”“이 사람은 아무리 봐도 어르신을 구할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아.”“의사도 아니고 아무 기구도 가지고 있
여수혁의 말에 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난 정말 의술도 잘 몰라. 무학의 성지에서 온 것도 아니야.”“그런데 내가 살인술에 대해선 좀 알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살릴 수도 있지. 뭐 문제 있어?”“물론 있지!”여수혁이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도 무예를 익힌 사람이니 당연히 사람을 죽이면 살릴 수도 있다는 것쯤 알아!”“하지만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어. 여러 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한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거지.”“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무학의 천재여야 하고 강호의 경험이 풍부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어?”“당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능력을 보여줘!”“보여주지 못할 거라면 어서 여기서 꺼져! 양유훤을 속일 생각도 하지 말고 어르신을 치료할 대책을 논의하는 이 자리를 방해하지도 말고 어서!”“우리는 곧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르신을 살려낼 거야. 반드시!”여수혁은 도발적인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고 그동안 그들이 강구한 치료 방안 자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훌륭한 우리 남양 사람들이 강구한 완벽한 치료 방안을 당신 같은 찌질한 대하인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여수혁은 양유훤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하현을 밟아 자신을 과시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이해? 그런 거 필요없어.”하현은 원래 여수혁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상대가 도발하고 나서니 그도 더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을 구하는 치료 방안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무학의 고수들과 연합하여 어르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거겠지!”“그리고 나서 의학 전문가들이 나서 출혈과 접골 등 일련의 동작들을 짧은 시간에 마치는 거잖아!”“마지막으로 남양굿을 이용해 어르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되살리려는 것일 테고.”“어때? 내 말이 맞지?”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을 마쳤다.“뭐? 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치료 방안
”한마디만 더 하지...”하현은 무덤덤한 시선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당신이 들고 온 이 치료 방안 말이야. 아마 누군가가 당신한테 준 것임이 틀림없어.”“그렇지만 양 씨 가문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리 없지...”옆에 있던 양유훤이 차갑게 눈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맞아. 누군가가 내놓은 것임이 분명해. 하지만 할아버지는 전쟁의 신이고 더욱이 남양의 최고수로 군림하는 사람이야. 할아버지의 내공을 없애버리다니? 이게 사람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야?”“이 치료 방안을 수행하려면 내가 당신들을 불러들여야겠지?”양유훤의 말을 들은 여수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원래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도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양유훤의 눈에 자신의 치료 방안이 이렇게 보일 줄은 몰랐다.“의술과 무술은 근원이 같아. 이건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야.”“그래서 의술을 공부하든 무술을 공부하든 발전하고 성취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해. 겸손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하현은 여수혁을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여수혁의 뒤에 서서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들은 하나같이 겸손을 배우지 못했어. 잘난 체하는 법만 배웠고 뭉쳐서 남을 의심하고 헐뜯는 것만 배웠어.”“내 능력을 증명해 보라고? 내가 그럴 필요가 있어?”“난 대단한 고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딴 말을 해?”“예를 들어 당신은 왼손을 잘 쓰지, 그렇지? 그렇지만 예전에 수련할 때 당신이 오른손을 못 쓰게 되어서 그런 거라는 걸 숨기고 있잖아?”“다른 예로 당신은 키가 크고 몸매가 날씬해 보이지만 사실 매일 밤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잖아?”“그리고 당신...”하현의 시선이 여수혁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데다 여색에만 빠져 있어서 소위 무학의 고수라는 당신의 타이틀도 모두
이들의 얼굴을 말로 사정없이 때린 뒤 하현은 양유훤에게 양제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손짓했다.여수혁과 다른 소위 남양 무도 고수들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였지만 저렇게 큰소리치는 하현이 도대체 어떻게 양제명을 구할 것인지 궁금했다.그래서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뻔뻔스럽게 따라왔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양유훤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야 하현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약 200평 정도 되는 큰 방에 도착한 하현은 황화목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양제명에게 시선을 모았다.그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많은 기구들이 지금 양제명의 상황을 잘 말해 주었다.다만 전신이기 때문이었던지 단단한 그의 몸에는 링거도 잘 들어가지 않아 함부로 링거를 꽂을 수 없었다.양제명은 매일 애처로운 얼굴로 양유훤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물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할 수 있다.한 세대의 전신이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브라흐마 바찬이라는 인도 요승에게 패하여 결국 이런 몰골이 된 것을 보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한없는 죄책감을 느꼈다.양유훤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하현의 오른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하현, 할아버지 상황은 당신 때문이 아니야. 할아버지와 브라흐마 바찬은 원래 서로 탐탁지 않아 하던 사이였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한번 마주칠 운명이었다구.”“오늘 당신이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기뻐.”하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뺀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오른손 검지로 양제명의 맥을 짚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은 양제명의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양제명의 견갑골이 부서지며 피를 토한 건 겉으로 보이는 외상일 뿐이었다.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양제명의 체내에 원래 그의 것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분명 이 나쁜 기운은 브라
원가령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묻고 싶어도 감히 묻지 못하는 말을 물었다.양유훤의 아름다운 눈조차 하현을 향해 있었고 무언의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하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로 당신들을 속일 필요가 없죠. 그리고 오늘 난 반드시 어르신을 구할 겁니다.”양유훤은 감격에 겨워하며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정말 다행이야! 정말 잘 됐어!”“하현,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양유훤이 감격에 겨운 촉촉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자 여수혁은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방금 보인 행동은 기괴하고 요상할 뿐이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제명을 두고 진찰을 했는데도 아무런 해결책도 원인도 찾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단순히 맥만 짚어 보고 당당하게 양제명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니!이 무슨 농담 같은 말인가?허풍을 쳐도 너무 얼토당토않는 허풍 아닌가?“하 씨. 허풍도 정도껏이지!”“만약 당신이 혹시라도 어르신을 구하지 못한다면 방금 당신이 한 말은 스스로 당신 얼굴을 때리는 짓이 돼!”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신장이 허약하다는 허점을 들켰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하현을 향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여수혁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던 몇몇 남양 고수들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분명 그들은 하현이 스스로 망신당하길 고대하는 사람들 같았다.그래야 그들이 그렇게 무능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침술용 은침 있어?”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말씨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양유훤에게 은침 한 세트를 부탁했다.그러면서 그는 알코올램프도 하나 부탁했다.하현은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은침을 빨갛게 달구고 난 뒤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정수리 혈자리를 찔렀다.“침술을 쓴다고?!”“저렇게 함부로?!”이 모습을 본 여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하 씨 저놈은 의술도 모르면서 함부로 침을 놓다니! 양제명 어르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다른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었을 때 양유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양제명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 옆에 있던 하현을 껴안았다.“하현, 정말 고마워!”“당신은 우리 양 씨 가문의 은인이야!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럴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하지 않아. 별거 아니야.”“하지만 어르신의 내상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야. 어르신은 절대 조용히 안정해야 해.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을 찾아 1년 반 정도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해. 그리고 몸조리를 잘 해야 해.”“하현, 그건 걱정하지 마. 뒷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말도 안 돼!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뭔가 귀신에 홀린 것 같아!”마침내 정신을 차린 여수혁이 반응을 보였다.정신을 차린 후 그가 가장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의술과 무술을 겸비했고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남양의 페낭에서는 의술계와 무술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그런 그조차도 양제명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럴듯한 해결책조차 내지 못했다.게다가 그의 계산대로라면 양제명의 치료 과정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었다.그런데 의사도 아닌 하현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침술로 양제명의 정수리에 몇 번 침을 놓은 것만으로 양제명이 깨어나다니!이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몇몇 남양 고수들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도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도 손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런데 하현이 3분 동안 맥을 짚은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십여 분 만에 사람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하현이 양제명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자 십
양유훤은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 후에야 하현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길모퉁이로 가서 몇 분간 통화를 이어갔다.하현은 양유훤의 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통화를 마친 양유훤은 예의 그 환한 얼굴로 하현의 곁으로 다가왔다.“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하현이 살짝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남양방 방주인 당신을 페낭에서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이야?”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농담하지 마. 항성과 도성에서라면 남양방 방주의 실력과 힘이 꽤나 영향력이 있겠지만.”“여기는 페낭이야. 여기까지 그 영향력이 미칠 리가 없잖아.”“게다가 비서와 최측근 몇 명 외에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이곳에 왔어.”“할아버지 일을 얼른 해결하고 바로 떠날 수 있을 줄 알았지.”“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내가 좀 도와줄까?”하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에 관한 몇 가지 일인데 별로 큰 문제는 아니고 다만 좀 번거로울 뿐이야.”양유훤이 양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이 남양 3대 가문이긴 하지만 내부 파벌이 상당히 심해.”“우리 큰집이 제일 세력이 강했는데 할아버지한테 일이 생겼던 그 해, 다른 집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큰집 재산을 빼앗아갔어.”“할아버지가 회복되신 후에 강력하게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 큰집 재산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어.”“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온갖 수단으로 수작을 부렸어.”“할아버지가 건재하셨을 때는 이런 수작이 먹히지가 않았지.”“하지만 할아버지가 최근에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한 후 그들은 다시 기를 펴기 시작했어.”“예를 들면?”하현은 양유훤의 능력으로도 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듣게 된 이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예를 들어 지금 같은 전화 말이지. 큰집 명의의 악성 부채가
”참, 오늘 밤에 어디서 만나는 거예요?”양유훤이 물었다.상대방은 양유훤을 한껏 내려다보는 투로 말했다.“저녁 8시, 천수만 회관!”“양유훤, 늦지 말고 와!”양유훤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할게요.”전화를 끊은 뒤에야 하현에게 시선을 돌린 양유훤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이 사람은 중간 브로커, 페낭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채연이라는 여자야.”“우리 같은 사람들과 어둠의 사람들, 두 세계를 동시에 잘 아는 여자지.”“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연결 좀 시켜달라고 부탁했어. 빚진 사람들을 좀 만나게 해 달라고 했지.”“빚진 사람들이 누군데?”하현이 물었다.“부두에 있는 운송 회사. 회사 사장 사장은 부문상이야.”“그의 뒤에는 페낭 무맹이 있어. 그래서 아주 골치가 아파.”“페낭 무맹?”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양유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남양국은 대하와 달리 무예를 익힌 사람들은 분파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모두 무맹에 가입해 그 안에서 무예를 익혀.”“페낭 무맹은 남양무맹의 할 갈래인데 세력이나 인맥이 가당치도 않아.”“남양 3대 가문도 페낭 무맹을 만나면 한 발짝 물러설 때가 많거든.”“말벌집을 누가 감히 함부로 건드리려고 하겠어?”“그래서 부문상은 페낭 무맹이라는 뒷배를 믿고 함부로 우리 양유훤의 빚도 갚지 않고 버티고 있단 말이지?”하현은 소리 없이 웃었다.“내가 해결해 줄까? 어차피 페낭 무맹이 남양무맹과 관계가 있으니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어떻게 해결될 것도 같은데.”양유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용히 웃었다.“내가 처리할 거야.”“이건 우리 양 씨 가문 일이고 사업적으로도 꼭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그리고 이번에 당신이 이 먼 페낭까지 왔는데 며칠 쉬지도 못하고 내 일 때문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면 내가 얼마나 미안하겠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미안하긴 뭘 미안해. 어쨌든 기왕 온 김에 며칠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