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하현은 모처럼 밤을 새우며 용문 내외 팔당에 있는 세 사람의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다 훑어보고 난 하현은 세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그도 오랜만에 누군가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런 일도 기회가 있어야 하고 인연이 따라줘야 한다.어쨌든 그는 이제 당도대 총교관도 아니며 이 세 사람은 자신의 병사도 아니기 때문이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하현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남궁나연이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왜 그래?”하현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지금은 국술당 학생들에게 아침 수업을 가르칠 시간인데 왜 여기 온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대표님, 이 세 사람이 어제 구양연 부지회장이 말씀하신 그 실력자들인가요?”남궁나연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을 꺼내 하현에게 CCTV 화면을 보여주었다.화면에는 스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세 남녀가 있었다.여자에게서는 신선 같은 기질이 느껴졌다.남자 중 한 명은 매우 수줍어하는 듯 보였지만 다른 한 명은 검은 표범처럼 매우 강건한 얼굴이었다.세 사람은 지금 동시에 국술당 앞마당으로 들어섰다.어젯밤에 이미 자료를 살펴보았기 때문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여자는 남선, 용문 암당 사람이야.”“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이 남자는 천심낙, 용문 전당 사람이고.”“마지막으로 피부가 검은 친구는 나정봉이야. 용문 외오당이 연합해서 키워낸 사람이지.”“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온 거야?”“날 찾아?”남궁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대표님을 찾았다면 다행이게요.”“세 사람은 하나같이 무학적 소양과 실력이 뛰어납니다.”“국술당에 와서 우리 기수들이 기본기를 익히는 걸 보고 몸이 근질근질한지 앞장서서 학생들을 지도해 주었어요.”하현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지도했는데? 뭐 문제 생겼어?”“아, 아닙니다.”“지도도 잘하고 식견도 독특해요. 우리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진주희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세 사람을 뒤뜰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진주희가 사람들을 데리러 발걸음을 뗐을 때 도요타 엘파 한 대가 굉음을 내며 국술당 입구를 거의 박을 듯 사납게 달려와 멈춰 섰다.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십여 명의 남녀가 위풍당당한 얼굴로 내렸다.경비원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밀치고 안으로 돌진했다.“선생님들!”얼굴이 까칠하고 사납게 생긴 서른 중반의 여자가 주위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 앞을 헤쳐 나가더니 남선과 상담을 하고 있던 여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이어 여자는 큰소리로 말했다.“방금 인터넷에서 소식 들었어요. 국술당에 대단한 선생님들이 오셨다면서요!”“재주를 타고난 천재가 오셨다는 소문 들었어요!”“더욱 대단한 건 무학의 비법을 전수하는 데 돈도 받지 않았다면서요!”“안 그래도 우리 세 살짜리 귀염둥이 아들에게 집에서 무술을 가르쳐 줄 교관 두 명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서 이렇게 달려왔어요. 교관님들을 우리 집으로 모시려구요!”“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귀염둥이 아들은 분명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 거예요!”“당신들이 우리 아들의 교관이 된 건 정말 행운인 거예요!”여기까지 말한 여자는 주머니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탁하고 소리를 내며 탁자에 내려놓았다.“여기 이천만 원인데 등록금이라고 칩시다!”“우리 집안은 모두 도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당신들이 돈을 안 받는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안 줄 수는 없죠!”남선은 눈살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 아주머니, 우린 교관이 아닙니다.”“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뿐이에요.”“혹시 질문이 있으시면 줄을 서서 문의해 주시겠어요?”“그리고 세 살배기 아이는 무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세 살배기는 무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구요?”얼굴이 까칠한 여인의
”부인! 부인!”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집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까칠한 여자에게 달려와 인중을 꼬집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부인, 정신 차리십시오! 잘못되시면 안 됩니다!”“부인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이건 모두 당신 잘못이야!”“천한 년! 우리 부인이 당신한테 도련님을 가르치라고 하면 영광으로 알아야지!”“감히 거절해?!”“부인에게 무슨 변고라도 있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집사는 말을 마친 후 앞으로 나와 옥같이 예쁜 남선의 얼굴에 손바닥을 휘갈겼다.낭랑한 소리가 울렸다.눈앞에서 피를 토하는 여자의 모습에 놀란 남선은 자신이 무도 고수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서 뺨을 맞고 말았다.그러자 갑자기 남선도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다.전에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우려고 하면 한껏 몸을 낮추어 공손하게 제안했다.그녀는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을 처음 보았다.천심낙과 나정봉도 마찬가지였다.모두 실력이 출중한 무도 고수들이지만 인생 경험은 너무나 짧았다.남선이 얼굴을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그제야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따지려고 앞으로 나왔다.“아저씨, 이 아주머니가 피를 토한 것은 남선과는 무관한 일이에요. 좋은 마음으로 온 사람한테 누명을 씌우면 안 됩니다...”“촥촥!”집사는 다짜고짜 두 젊은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개자식!”“부인이 죽을 것처럼 피를 토하는데도 감히 또박또박 말대꾸를 해?”“죽고 싶어?”현장에 있던 학생들과 이 소식을 듣고 무술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모두 의분에 차서 집사와 까칠한 여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하지만 억지를 부리는 이들 모습에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무성에서 이렇게 함부로 날뛸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일단 이런 사람들을 건드리면 반평생은 아마 괴롭힘에 시달릴 것이다.천심낙과 나정봉 두 사람은 멍한
”하현?”“당신이 이 국술당의 주인 하현이야?”집사는 하현을 잠시 훑어보다가 갑자기 냉소를 흘렸다.“당신이 온갖 수단을 부려 명예를 좇는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분이신가?”“돈을 벌기 위해 감히 국술당 등록금을 말도 안 되게 인상했다는 얘긴 진작에 들었지.”“아주 장사꾼 다 되셨군!”“당신이 이렇게 하는 건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돈을 벌고자 값을 더 올려 사람들로 하여금 더 사고 싶게 만드는 것과 같아!”“투기판에서 번호표를 팔아 끊임없이 돈을 손에 쥐려는 수작에 불과하다고!”“당신은 무학의 종사하면서도 사람들의 행복은커녕 무학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데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인 거지!”“오히려 몇 푼 안 되는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퉤! 더러운 것들!”여기까지 말한 집사는 갑자기 침을 뱉으며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모시는 부인이 누군지 알기나 해?”“이 부인은 무학의 성지 황금궁의 친척이야!”“만약 부인이 당신네 국술당에서 이런 변고를 당했다는 게 알려진다면 황금궁에서 절대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황금궁'이라는 세 글자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표정이 냉랭해졌다.하현은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그래서 뭐?”“일찍이 황금궁이 무학의 성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부인은 친척이라면서 황금궁에는 가지 않고 왜 우리 국술당에 와서 교관을 찾고 그래?”“보잘것없는 우리 국술당을 너무 높이 평가해 주는 거 아니야?”“당신이 뭘 알아? 우리가 돈벼락을 맞았는지? 돈을 갈고리로 끌어모으는지?”“돈도 안 받겠다잖아! 줘도 안 받겠다잖아!”집사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자신이 실언한 것을 깨닫고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하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당신, 함부로 허풍 떨지 마!”“대단하다고 소리쳐도 기껏해야 황금궁의 친척뻘인 거잖아?!”“황금궁이라는 이름을 거들먹거리면서 잇속이나 챙기는 패거리들 아니냐고!”“아쉽게도 당신들이 어떤
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거절?!”하현의 말에 까칠한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무슨 자격으로 거절을 해?”“잘 들어. 오늘 이 돈은 당신이 배상해야 해. 배상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나타나 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거야!”까칠한 여자는 하현이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거절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이어 세 사람을 가리키며 눈을 부라렸다.“그리고 너희들!”“능력이 없으면 능력이 없다고 깔끔하게 인정해!”“어설픈 실력으로 나서서 이리저리 가르치기나 하고!”“실상은 어떠냐고?”“당신들은 쥐뿔도 아니야!”“가르치는 법도 모르면서 학생들한테 지적질이야!”“그러고도 당신들이 제대로 된 인간들이야?”“내가 당신들이었다면 지금쯤 부끄러워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을 거야!”“이 문을 나서자마자 난 당신들을 고소할 거야!”“사기 혐의로 고소해 당신들 콩밥 먹이게 할 거라고!”여자의 말에 세상 경험이 없는 세 명의 젊은이들은 모두 당황한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들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사람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이봐!”“가서 의자 좀 가져와!”“오늘 내가 아무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절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잘 기억해! 내가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당신들은 웃전에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내가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었는지 똑똑히 알리란 말이야!”“그들한테 당신들 국술당을 완전히 짓밟으라고 할 거야!”까칠한 여자는 이미 억지를 부리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군!”“퍽!”한쪽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진주희는 결국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앞으로 나와 까칠한 여자에게 다가가 뺨을 후려치며 차갑게 말했다.“꺼져!”“당신은 여기서 절대 환영받지 못해!”“너!”까칠한 여자는 얼굴을 가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쾅!”10분 후, 문 뒤에서 요란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한 줄로 늘어선 오프로드 차량들이 국술당 정문 앞에 멈춰 섰다.곧이어 금빛 무도복을 입은 사나이가 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시베리아 겨울바람을 가득 안고 온 듯 차가운 얼굴이었다.뒤이어 사람들 속을 가르며 껄렁해 보이는 젊은이가 건들건들 걸어 나왔다.키는 약 175센티미터에 머리는 노랗게 염색했으며 얼굴은 지나칠 정도로 창백했다.지금 그의 얼굴은 얼음 통을 뒤집어쓴 듯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화를 내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얼굴이었다.그가 나타난 것을 보자 까칠한 여자와 십여 명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우르르 몰려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오셨어요?!”“바로 이 자식들이에요. 그들은 당신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아주 우리 황금궁을 우습게 알아요!”“제발 정신 좀 차리게 혼쭐을 내 주세요!”남자는 까칠한 여자를 향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사촌누나.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바로 보고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이렇게 큰 무성에서 누가 감히 우릴 무시하는 거야?”“뭐? 저 사람이 황소군?!”그의 이름을 듣자 사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웅성거렸다.황소군은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의 문하생 중 한 명이었지만 그에게는 황금궁 문하생에 몸담고 있는 큰형이 있었다.이 때문에 그는 황금궁 바깥에서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게다가 이 녀석은 무학이라는 업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자주 황금궁의 이름을 빌려 밖에서 남녀들을 괴롭히고 위세를 부렸다.황금궁이라는 세 글자의 무게는 확실히 무시하지 못할 힘이 있었다.그래서 황소군은 황금궁의 간판을 메고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거들먹거렸다.방금 전만 해도 사람들은 까칠한 여자가 황금궁을 언급했을 때 허풍 떤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황소군이 나타난 것을 보
”됐어. 나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내가 그런 사소한 것에 시시비비를 따질 것 같아?”“천하의 도리를 따지는 거야. 내 체면은 중요하지 않아!”황소군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남궁나연, 당신도 황금궁 출신이니 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황소군은 오는 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파악한 것이 분명했다.“첫째, 사촌누나에게 일억 원을 배상해!”“둘째, 이 세 명의 젊은 실력자들은 사촌누나 집으로 가서 3년 동안 무료로 무술을 가르쳐.”“셋째,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과해!”“그리고 당신은 나와 함께 가야겠어. 그러면 오늘 이 일은 없던 일로 해 주지!”“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없어! 나중에 날 원망하는 일이 없길 바라!”남궁나연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들이 잘못햇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뭐야? 지금 나랑 이치를 따지겠다는 거야?”황소군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당신들 정말 나한테 혼나고 싶어서 그래?”“내 말 잘 들어. 내가 당신들의 이 국술당부터 부셔야겠군. 그리고 당신들도 싹 갈아엎어버리고 말이야. 당신들은 내 말대로 할 수밖에 없어!”“무성에서 황금궁은 하늘이야!”“나 황소군은 바로 천왕노자라고!”“황금궁의 궁주는 당신처럼 날뛰지 않겠지?”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남궁나연이 입을 떼기도 전에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당신네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나한테 와서 함부로 굴고, 때리고 모욕하고 하는데 도리는 무슨 도리?”“당신이 황소군이든 황태군이든 난 지금 당신들이랑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 사람들 데리고 어서 꺼지기나 해!”“그렇지 않으면 정말 못 볼 꼴을 볼 거야! 그때 가서 날 탓해도 소용없어!”남궁나연은 흠칫 놀라며 하현을 바라보았다.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금궁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횡포를 부릴 줄도 몰랐지만 그들을 대하는 하현의 행동이 이렇게 당당할
”난 당신과 달라.”하현이 무뚝뚝한 얼굴로 황소군을 보며 입을 열었다.“매달 짓밟아 죽이고 싶은 악한 사람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나긴 해.”“하지만 사는 게 지겨운 사람이 있다면 뭐 몇 명쯤 밟아 죽이는 것도 상관없지.”“내가 있는 이곳은 황금궁은커녕 그 어떤 궁이라도 봐주지 않아.”하현은 까칠한 여자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그리고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이 여자, 무릎 꿇고 내 사람들에게 공손히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해.”“그러지 않으면 이 여자를 폐인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나 하현이야. 내가 한 말은 꼭 지켜!”“예수님이 와도 그녀를 지킬 수 없을 거야!”“와우!”황소군이 발끈하며 껄껄 웃었다.“젊은이 배짱 한번 보소!”“나 황소군한테 맞서겠다는 거야?”“젊은 나이에 뭔가 이뤘다고 생각해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해해.”“하지만 당신처럼 죽자고 덤비는 사람은 정말 몇 안 돼!”“내 명령 한 마디면 당신 같은 허풍선이는 당장에 묶을 수 있어!”말을 하면서 황소군이 손을 흔들자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석궁을 들고나와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석궁들은 모두 황금궁의 특산품으로 무도 고수들의 방어를 위해 특별히 사용되었다.남궁나연은 석궁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황소군, 언짢은 일이 있으면 우선 말로 하세요. 함부로 무력을 쓰지 말고요.”“남궁나연.”황소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당신 나한테 그럴 말할 깜냥이나 된다고 생각해? 밖에서 남자들한테 인기 좀 많다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나 본데 그렇다고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은 안 되지 않아?”“내 말 똑똑히 들어. 난 여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법을 몰라. 그저 잔인한 손으로 꽃을 파괴하는 법만 알지!”“알아들었으면 저리 꺼져!”“아니면 내가 당신부터 처리할 테니까!”남궁나연이 입술을 깨물며 한마디 내뱉었다.“황소군, 하현은 당신과 이렇게 무력으로 맞설 생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