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못할 거라고?”“왜? 날 지금 협박하고 싶어서 그래? 뒷배가 아주 든든해? 하늘을 찌를 듯 무서운 게 없어?”“아니면 당신 성이 용 씨라도 된다고 생각했어?”경호원의 말을 듣고 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하현의 말에 남자는 별다른 대답 없이 냉소만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사모님은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계셨을 거야. 내가 용천진 사장님이 사모님 곁에 심어 둔 사람이라는 걸. 사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보고할 책임이 있지.”“그리고 난 용 씨 집안과는 먼 친척 사이야.”“희박하긴 하지만 혈연관계라고!”“날 건드리면 용천진 사장님의 신임을 단번에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골칫거리를 안게 될 거야!”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남자는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밤 일은 여기서 끝나는군.”“하지만 하 씨! 잘 들어. 앞으로 수없이 많은 날이 있어. 우리 사이는 앞으로도 함께 놀 시간이 아주 많다는 거지!”“다음번엔 오늘처럼 이렇게 운이 좋지는 않을 거야! 각오해!”순간 남자는 하현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사나운 미소를 보였고 하현은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다.“왜? 용 씨 가문과 혈연관계라면서 뭐 그렇게 가깝고 두터운 사이는 아닌가 보지?”“무슨 소리! 난 용천진의 친위대야!”“지위도 권위도 높고 신임도 두터워!”“용 씨 가문의 방계라고 해도 권력이나 실력이나 날 앞설 수 없어!”“나 같은 사람은 밖에서 용천진을 대표해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고!”“뭐? 두렵지 않냐고? 헛!”남자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그의 말을 들은 다른 경호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붙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이런 사람을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남자는 자신의 말이 다른 경호원들에게 먹히는 것 같자 더욱 날뛰며 말했다.“사모님은 총명한 분이니 진작에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평소 전 사모님에게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뭘 하든 사모님은
용천진의 말을 듣고 경호원들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분명 예전부터 예상한 듯했다.핸드폰을 들고 있던 사청인은 눈가에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용천진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자문했다.하지만 용천진이 하현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때 그녀의 입장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심지어 그녀가 죽게 되어도 용천진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순간 차갑게 식은 사청인의 심장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개는 주인한테 맞아도 주인을 따른다고?”하현은 사청인의 핸드폰을 가로채듯 받아들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용천진에게 말했다.“용천진, 우리 사이의 관계로 볼 때 난 이런 말을 해도 되지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 거 아니야?”“내가 지금 개를 때릴 거야. 그런데 그 개가 주인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퍽!”순간 하현은 남자를 발로 걷어차 벽 쪽으로 날려버렸다.남자는 벽에 부딪혔다가 천천히 미끄러졌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죽지는 않아도 온몸의 뼈란 뼈는 성하지 않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다음엔 주인이 누군지 따지지도 않고 개를 때릴 뿐만 아니라 그 주인까지 날려버릴 거야!”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기 너머의 용천진은 순간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원래 용천진은 이 기회를 틈타 하현을 시험해 보려고 했었다.그런데 하현이 이렇게 과감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자신의 얼굴이 하현에게 또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이를 바라보던 경호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무성에 용천진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강단 있는 존재가 있었다니!하지만 하현이 용천진의 얼굴을 미친 듯이 때린 것을 떠올리자 그들은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었다.입을 벌리고 서 있던 사청인도 겨우 정신을 다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어떻게 용천진한테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어?”“
사청인은 용천진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용천진...”“자, 그 얘기는 그만하지.”용천진이 손을 내저으며 사청인의 말을 강하게 끊었다.“그나저나 당신, 다친 건 좀 어때?”“많이 놀랐지?”“이 개자식! 내 사람인데 당신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몹쓸 놈이야!”말을 하면서 용천진은 손뼉을 쳤다.그러자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손에 총 한 자루를 쥐여주었다.그는 하현 앞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경호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펑!”피가 한가득 튀고 나서야 용천진은 사청인을 껴안은 채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이 사람이 감히 당신한테 몹쓸 짓을 했다면 내 심복이어도 절대 내버려둘 수 없어!”“가능하다면 백 번 천 번도 더 죽일 수 있어!”“앞으로 그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 거야. 약속해!”용천진이 패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사청인에게 다짐하듯 말했지만 사청인은 그의 얼굴에서 따뜻함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오히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언젠가는 자신도 지금 저 경호원과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자신에게서 아무런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언제라도 자신을 버릴 것이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사청인은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그녀는 태연하게 용천진의 몸을 밀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용천진, 난 괜찮아요.”“샤워하고 한 이틀 푹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그래, 맞아. 하현은 역시 고수야. 그가 그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내 여자를 지켜줘서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나중에 봐서 적절하게 보답을 해야지.”용천진은 하현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는 듯 말했지만 그의 눈가에는 예사롭지 않은 음흉한 빛이 비쳤다.분명 그는 지금 사청인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하현을 열두 번도 더 죽이려 들 것이다.“용천진, 하현은 정말로 당신 경호원들을 해칠
용천진이 후궁 자리를 하나 더 마련하던 그 다음날.무성 국술당 안뜰.하현은 편안한 얼굴로 흔들의자에 기대어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그는 눈을 뜨고 아침 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진주희, 어젯밤 공해원한테 알아보라고 한 거 자료 도착했어?”“네, 오늘 아침 일찍 공해원 쪽에서 벌써 보내왔습니다.”진주희는 하현의 옆에 서서 향긋한 보이차 한 잔을 따라주며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내가 이해하기로는 용천진은 용문 안팎의 여덟 개 당 중 절반과 서른여섯 지회 중 절반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이 외에도 용 씨 가문 내부에 일부 장로들이 그의 편에 섰고요.”“표면상으로는 용 씨 가문의 세 젊은이 중 용천진이 가장 강력한 힘을 손에 쥔 것으로 보입니다.”“무성의 관청, 병부, 무학계에도 그의 사람이 있고요!”“다만 이 모든 방면에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치명적인 결함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그는 여전히 젊고 강력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냥 잘 관리하고 버티고 있는 것뿐이라는 겁니다.”“사실 그는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고 용천두보다는 열 살이나 많고 용천오보다는 열몇 살이나 많죠.”“남들은 지금의 용문주가 천천히 물러나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길 바라겠지만.”“용 씨 가문 장자 용천진은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겁니다.”“이러다간 계속 나이만 먹게 될 테니까요.”“용 씨 가문 규율상 일정 나이가 되면 후계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죠.”“그래서 용 씨 집안 세 젊은이 중에서 가장 절박하게 상석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 그리고 용문주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용천진일 거예요.”“용인서가 곧 죽을 것 같아서 용천진이 더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말이 돌고 있어?”하현은 진주희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맞아요.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정확한 소식통에 의하면 용인서는 정말로 이제 얼마 안 남았을 가
”다만 앞선 상황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무성에서의 용천진의 영향력을 이용해 용천오를 처리해야 해.”“아직은 용천진한테 바로 반격을 시도할 때는 아니야.”하현이 일어섰다.“용천오를 빨리 해치우는 게 좋겠어...”진주희는 의아한 눈빛을 띠며 말했다.“하현, 우리는 용천오에 대해서 70% 이상의 승산을 확신하고 있어요.”“다만 정말 그를 해치운다면 다른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하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무성 바닥은 아직 그다지 혼탁하지 않아. 우리가 용천오를 없애야 물이 더 혼탁해지지. 물이 혼탁해져야 원하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자, 진주희. 준비해. 이제 시작해야지.”30분 후 하현은 용 씨 가문 별채에 나타났다.이 별채는 용천오의 거처였다.하현은 곧바로 대문 앞에 와서 진주희에게 노점을 차리게 한 후 ‘국술당'이라는 세 글자의 현수막을 내걸었다.어제 국술당 덕분에 무성 상맹이 소유한 무학당 체인점의 학생들 절반 가까이가 몸이 회복되었고 건강도 좋아졌다.이 일로 하현의 국술당은 더 많은 돈을 벌었고 하현의 명성은 무성에서 드높이 울려 퍼졌다.그래서 하현은 용 씨 가문 별채 입구에 노점을 차린 것이다.나머지 혼수상태에 빠진 학생들은 순식간에 가족들과 함께 용 씨 가문 별채 앞에 도착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남궁나연에게 사람들을 구하라고 지시했다.자신이 서 있는 이곳은 용문주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하현은 학생 가족들이 용천오를 찾아가 항의할 것을 예상하고 이곳에 노점을 차린 것이다.하현은 학생들을 구하면서 많은 비용을 청구했고 조금도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치료할 돈이 부족했고 가족들은 하나둘씩 용 씨 가문 별채 앞으로 돌진해 울부짖으며 배상하라고 소리쳤다.어떤 사람은 큰소리로 용천오를 호통치며 양심이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30분도 채 되지 않아 용 씨 가문 별채 앞에는 성난
”그뿐입니까?”용천오는 다이닝의 긴 테이블에 앉아 우유를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하 씨 그놈이 고작 한다는 게 이 정도야?”“좀 더 참신한 수를 쓸 수는 없었어?”“이것밖에 못해? 정말 실망이군. 재미없어.”마영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용천오, 그뿐만이 아닙니다.”“지난 이틀간의 영향으로 우리 무성 상맹의 주가가 아침에 개장하자마자 폭락했습니다.”“불과 몇 분 만에 10분의 1 가까이 떨어졌습니다!”“지금 무성 상맹의 원로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모두 전화를 걸어와 길길이 뛰고 있어요. 빨리 저놈을 없애버리라고 성화예요!”“그렇지 않으면 주식시장에서 잃은 돈 이천억을 보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왜냐하면 애초에 그들은 원금 보장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에요.”하현과 몇 차례 싸운 후 용천오의 정신력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었다.그런데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늙은이들이!”용천오의 도도한 눈동자에 분노의 소용돌이가 일었다.“자기들끼리 울고불고 앞다투어 무성 상맹에 가입하고 상장할 때도 서로 주식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배당을 받아서 돈을 벌 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더니!”“이제 돈 좀 잃으니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먹으려고 해?”용천오는 가느다란 담배를 들어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 깊게 빨았다가 말을 이었다.“늙은이들한테 전화해서 지금은 이 고난을 함께 할 때라고 전해 줘.”“이 고비를 넘기면 모두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그들이 와서 난리를 부려 일을 더 크게 만든다면!”“아주 이판사판 모두 다 함께 죽자는 거지!”“하지만 지금 그들이 잠시 물러나 있는다면 이 고비는 잘 넘어갈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올해 배당금은 세 배로 준다고 약속해!”용천오의 말투에는 어느새 살의가 가득 서려 있었다.그의 성격상 이 늙은이들이 자신을 위협하는 한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문제는 그 늙은이들이 아니라도 지금
”도련님!”마영아가 물러가 일을 처리하려고 했을 때 용 씨 가문 별채의 집사가 숨을 헐떡이며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용천오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왜 그래?”“하현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용천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왜? 왜 날 만나자는 거야?”“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떠보려고?”“아니면 뭐 우스갯소리라도 할 생각인가?”집사는 망설이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물건을 사러 왔고 도련님과 화해를 하고 싶다며 도련님을 만나길 원합니다.”용천오는 원래 하현을 상대할 마음이 없었지만 물건을 사고 화해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잠시 후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들어오라고 해.”하현이 평화 회담을 원한다면 그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계속 싸우다 보면 양쪽이 다 다칠 수 있다.곧이어 두 손을 뒷짐진 채 하현이 별채 안 다이닝에 모습을 드러내었다.아직 아침식사 중이던 용천오를 보고 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용천오, 너무 여유로운데. 이런 상황에서도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니 말이야. 당신의 담력과 정신력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해! 인정! 인정!”“오죽하면 와신상담을 몇 년 동안 하면서 결국 용 씨 가문 중심에 우뚝 섰을까, 안 그래?”“내가 당신 처지였다면 당신처럼 그렇게 냉철하지 못했을 거야.”혼잣말을 하듯 말을 늘어놓는 하현을 보고 용천오는 치즈 한 조각을 뚝 잘라 삼키며 말했다.“하현, 당신과 난 그럴 얘기를 주고받을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잖아? 할 말이 있으면 얼른 하고 물러가!”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용천오, 따지고 보면 우리 사이에는 그리 원한이 쌓일 일이 없었어.”“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은 내 아내를 때렸을 뿐만 아니라 내기에 졌으면서 승복하지도 않고 조한철과 브라흐마 아부 등과 야합해서 나쁜 짓을 꾸몄어...”“그래서 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었어.”“결국 일이 지금
위협하는 용천오의 말에 하현은 가타부타 대답은 없이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용천오, 당신이나 나나 둘 다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야.”“똑똑한 사람들끼리 빙빙 돌려 말할 필요가 뭐 있어.”“이런 잔꾀로 날 망칠 수 있었다면 무성에서의 당신 능력으로 진작에 난 망했을 거야.”“그런데도 당신은 아직도 날 협박하는 거야?”“당신이 지금까지도 날 어떻게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알잖아? 지금 당신의 그런 협박이 나한테 먹힌다고 생각해?”마영아는 하현의 오만함과 불손함에 격노하며 테이블을 탁 쳤다.“하현! 당신 분수를 좀 알고나 말해!”“협박이 먹히겠냐고?”“그 사람들은 모두 당신 사람들이야. 그들이 진술을 번복하면 당신이 자작극을 벌인 거라는 걸 세상이 다 알게 될 거야!”“그러면 당신은 끝장이야! 알기나 해?!”“지금 당신을 떠받드는 그 사람들, 아마 그때쯤이면 당신을 죽이고 싶어 안달일 거야!”“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들은 다 흩어지고 만다는 걸 몰라?!”“쫙쫙쫙!”하현이 손뼉을 치며 만면에 미소를 내걸었다.“용천오, 당신 주변 사람들 말주변 한번 좋군!”“단지 머리가 좀 나쁠 뿐이야.”하현은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진실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그 학생들이 믿겠어?”“그 가족들이 당신 말을 믿겠어?”“그들은 무성 상맹, 용천오가 날 제압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모함했다고 생각할 뿐이야.”“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더 골치가 아프게 돼!”하현이 머리가 나쁘다고 하자 마영아는 몹시 언짢은 듯 날카롭게 핏대를 세우며 맞섰다.“하 씨! 머리가 나쁜 사람은 바로 당신이야!”“여론의 힘은 쇠도 녹인다는 말 몰라?”“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거짓 행동에 대해 증언하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그때 우리가 기자회견을 하면 당신은 그냥 매장이야!”마영아는 여기서 한 수만 더 쓰면 하현은 반드시 이 사회에서 매장당할 거라고 굳건히 믿고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