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저는 정말로 용문대회는 관심이 없습니다. 용문주 자리에도 관심 없구요.”“자네가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란 건 내가 잘 아네.”“하지만 대장부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용문이 어지러우면 이 바닥도 어지러워지고 나아가 나라도 어지러워진다네.”“소인배들이 우리 대하를 어지럽히는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는가?”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만진해의 말에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잠시 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어르신,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렵네요. 이렇게 된 이상 참가하지 않는 게 오히려 소인배의 짓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구체적으로 어디서 지원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그럴 필요없네.”만진해는 직접 지원서를 가져온 것이었다.하현은 그 위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만진해는 빙그레 웃으며 하현에게 지원서를 건넸다.“여기 서명만 하면 되네.”“참, 내일이 무성지구 시전이고 장소는 무성 체육관이야. 절대 놓쳐서는 안 되네.”하현은 만진해가 이미 준비해 온 지원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뭔가 함정에 빠진 기분이 되었다.하지만 이미 얘기가 끝난 것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서명을 마치며 하현은 마침 다른 일이 생각났다.“참, 어르신. 오늘 오후에 인도인을 좀 손봐 주었습니다.”“그게 이번 출전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겠죠?”만진해는 찻잔을 들려다가 손을 살짝 떨었다.“인도인? 어느 인도인?”무성에서 인도인의 위세는 작지 않았다.그만큼 무서운 인물도 많았다.그렇지 않았더라면 만진해가 이렇게 긴장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하현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무슨 차성도라고 하던 것 같던데요. 인도상회의 군사 스승이라고 했어요.”“그 외에도 브라흐마 샤주라는 놈도 있었구요.”“차성도의 뺨을 몇 대
하현은 비록 조용하고 차분하게 행동했지만 마음속에선 벌써 패권의 다툼 속에 들어가 있었다.누군가 자신을 괴롭힌다면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어젯밤은 차성도의 기품과 체면을 봐서 인도상회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만약 인도상회가 이 기회를 놓치고 감히 자신을 공격한다면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인도상회를 망쳐 놓고 말겠다고 다짐했다.하현의 자신감에 만진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오기 전에 이미 인도상회에 사람을 보내 좋은 말로 타이른 그였다.이치에 따라 일을 한다면 이런 일도 큰 소란 없이 지나갈 수 있다.그리고 하현에게는 내일 용문대회에 꼭 참가하라는 말을 남긴 뒤 만진해는 홀연히 그곳을 떠났다.하현은 인도상회 일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고 정원 벤치에 기대어 쉬었다.두 시간쯤 지나 갑자기 정원 한편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하현, 큰일 났습니다!”진주희가 굳은 얼굴로 뛰어들어왔다.그녀의 안색은 딱 보기에도 매우 좋지 않았다.하현이 얼른 물었다.“무슨 일이야? 병원에 또 무슨 일이 생겼어?”“아닙니다!”진주희는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병원 쪽에는 별일 없는데 무성호텔에서 일이 생겼습니다.”“30분 전에 무성 경찰서의 수사팀장들이 무성호텔을 급습해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던 지하 도박장을 깡그리 청소해 버렸습니다.”“현장에는 수천억의 도박 자금뿐만 아니라 브라흐마 샤주를 비롯한 굵직한 인물들까지 구속되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일부 주식과 계약서, 장부 등도 압수해 갔다고 합니다. 차성도도 이 일에 연루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지금 무성호텔 전체가 아주 쑥대밭이 되었습니다...”진주희는 줄곧 무성호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고에 대비해 그쪽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큰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하현은 똑바로 앉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성호텔이 쑥대밭이 되었다고?”하현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진주희의 핸드폰이 진동했다.누군가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핸드폰을 힐끔 쳐다본 그녀의 안색이 더욱 일그러졌다.“조사해 보니 맨 앞장선 사람이 용문 집법당의 외문 제자인 용오해의 사람이라는데요.”“지금 용문 집법당은 당신 손에 있구요.”“그렇다면 당신이 인정하든 안 하든 이 누명을 벗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하현, 이제 우린 어떻게 할까요? 용의자로 의심되는 용오해의 사람을 알아볼까요?”“아니야. 그럴 필요없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는 그 사람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어. 하지만 인도상회도 바보가 아니니 당연히 그 사람의 신원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하지만 용오해가 죽은 지금 집법당 사람들은 도리상 내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어.”“우리가 나서서 그 자가 우리 집법당과 무관하다고 하는 건 우리 얼굴을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야.”“정말 대단한 재주를 부렸군.”“나쁜 의도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말도 못 할 엄청난 손해를 입혔어...”“재미있군...”“하현, 그 말인즉슨 손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는 데가 있다는 거예요?”진주희는 적잖이 충격에 휩싸였다.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쉽게 짐작할 수 있지. 상대는 숨길 의도가 없다고 봐야겠지. 어쨌든 우리 모두는 용오해가 용천오의 사람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그럼 이 일의 배후는 용천오가 아니면 누구겠어?”“그럼 우리는...”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용천오가 이 일을 저지른 건 맞아. 우리와 인도상회가 죽기 살기로 싸우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이런 일에 한눈팔다가 용문대회에 나갈 틈도 없게 만들려는 수작인 거야.”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왜 우리가 그들의 페이스대로 움직여야 해?”“인도상회를 밟아 놓고 용문대회도 참가하면 되지.”“용천오가 머리가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나?! 흥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선 차현은 일행들과 함께 냉랭한 표정으로 한여침을 쳐다보았다.사방에 쫙 깔린 인도 경호원들도 모두 살벌한 표정으로 한여침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한여침은 이들의 움직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샤르마 커에게 다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샤르마 커, 맞지?”“하현의 말을 전하러 왔어.”“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 오늘 당장 해명해.”“뭐라고? 어디? 누구? 하현?”샤르마 커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아, 당신 한여침 아니야? 난 또 누구라고? 어디서 바보 멍청이가 들이닥쳤나 했네.”“오랜만에 데릴사위 앞잡이가 납셨구만!”“당신은 무성의 6대 파벌 중 하나인 도끼파잖아. 나름 이름도 있고.”“그런데 왜 그놈 심부름꾼이나 하려고 그러는 거야?”“도끼파 패거리들은 실력이 영 별로고 허풍만 센가 봐.”샤르마 커는 담배연기를 한 모금 내뿜으며 한여침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한여침이 주제넘게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는 듯 주변의 여자들도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비웃었다.“샤르마 커. 쓸데없는 말 할 필요없어.”한여침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다시 한번 묻겠어. 설은아를 때린 일 어떻게 해명할 거야?”“해명?”“날 잡으러 온 거야?”샤르마 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 샤르마 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하 씨 그놈이 감히 무성호텔을 쓸어버리고 차 군사와 브라흐마 샤주를 치다니!”“그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벌집을 건드려 놓은 거라고!”“브라흐마 아부가 절대 이 일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주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꼴이지!”“제 앞가림도 못하는 놈이 뭐? 나한테 해명을 하라고?”샤르마 커는 일어서서 손을 뻗어 한여침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그 사람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리고 당신, 한여침. 당신 이렇게 외지인 앞잡이 하다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나 해 봤어?”한여침의 안
한여침은 자신의 얼굴을 건드리고 있는 샤르마 커의 손을 젖히며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샤르마 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이렇게 하자구. 하현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어쨌든 그는 브라흐마 아부가 죽이려고 할 테니까 당신과 나 같은 하찮은 사람은 빠져 있자구.”“내가 특별히 브라흐마 아부한테 말해 놓을게. 하현을 죽이려고 할 때 밥은 먹을 수 있도록 한 손만은 남겨 놓으라고.”“하지만 당신이 날 좀 도와줘야겠어.”“내가 설유아를 정말 좋아해.”“설유아가 보고 싶어서 밤에 잠도 잘 수가 없어!”“보아하니 당신도 나쁜 사람 같진 않은 거 같으니.”“우리 좋게 좋게 지내보자고. 설유아를 제발 나한테 좀 보내줘. 그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의 고통을 좀 어루만져 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때?”샤르마 커는 한여침의 얼굴에 짙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덧붙였다.“걱정하지 마.”“내가 고기를 먹으면 당신한테도 국물은 먹게 해 줘야지. 나도 알 건 다 안다고!”차현 일행이 옆에서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한여침이란 놈은 감히 샤르마 커에게 아무 짓도 하지 못할 거란 걸 확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한여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아마도 당신은 내 체면을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 모양이군.”“그럼 용이 땅끝의 뱀을 제압할 작정인 거야?”샤르마 커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맞자. 인도에서 온 용이 당신들의 대하를 짓누르려는 거야!”“죽느냐 사느냐야!”한여침이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오늘 당신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한여침이 아니지!”샤르마 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한여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참, 당신한테 말한다는 걸 잊었어.”“전에 인도로 돌아갔던 브라흐마 아부가 오늘 밤 돌아온다는 소식이 있어.”“30분 후면 공항에 도착할 거야.”“날 건드리겠다고?”“어디 한번 해 보시지!”“하 씨 그놈이 당신
”하현!”샤르마 커 일행은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들어서자 한여침은 공손한 자세로 하현의 곁으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이 장면은 샤르마 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그는 한여침이 하찮은 인간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성 거물 중 하나인 걸 잘 알고 있었다.6대 파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꼴찌이지만 그래도 6대 파벌 중 하나인 그가 하현을 향해 깍듯하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리는 모습을 모고 하현이 쉽지 않은 사람임을 깨달았다.그러나 아무리 봐도 샤르마 커의 눈에는 데릴사위에 관청의 신고에 의지해야 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 같았다.도대체 어디 특출난 구석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곰곰이 생각하던 샤르마 커는 결국 개의치 않기로 했다.어쨌든 그가 보기에 무성호텔이 싹 쓸려 버렸을 때 이미 하현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었다.브라흐마 아부가 반드시 이놈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이때 한여침은 공손하게 하현에게 다가가 말했다.“하현, 이런 작은 일은 저한테 맡겨도 됩니다.”“구태여 이렇게 올 필요가 뭐 있습니까?”“샤르마 커는 형수님을 다치게 한 장본인입니다.”“이런 큰 원한은 제가 반드시 혼자 처리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한여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냉랭한 눈빛으로 샤르마 커를 힐끔 쳐다보았다.“샤르마 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렇게 또 만났군!”“그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나빠진 거야?”“나를 감당하지 못하겠으니까 이런 못된 짓까지 다 하는 거야?”“날 괴롭히지도 못하면서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죽고 싶어?”“아니면 밤에 너무 신나게 놀아서 그만 잊어버린 거야?”하현의 말을 들은 차현은 순간 심장이 쪼그라들어 피가 솟구칠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그는 사나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며 포효했다.“개자식아! 함부로 말하지 마!”“나야말로 네놈의 목을 베고 말 거야!”“에잇, 설마.”하현이 한껏 비웃었다.차현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점잖은 얼굴로 말했다.“샤르마 커, 당신은 아마 모를 거야.”“내가 보기엔 당신도 길가의 개나 고양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차현은 순식간에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개자식! 방금 뭐라고 했어?”“다시 한번 말해 봐. 내가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샤르마 커는 다시 손을 흔들며 분노한 차현 일행들을 제지했다.그 후 그는 하현을 위아래로 몇 번을 훑어보고는 비웃으며 말했다.“하현, 지금 내가 당신 눈앞에 있어. 배짱이 있으면 지금 날 쳐 봐!”“마누라가 당한 거 화풀이해 보라고!”“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겠어?”“아니, 절대!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을 리가 없지!”샤르마 커는 한껏 비아냥거렸다.마치 그의 눈에는 하현이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인간인 것처럼 눈을 내리깔았다.자신을 공격할 능력도 배짱도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샤르마 커 뒤에 있던 아리따운 여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을 하현에게 던졌다.이놈은 기껏해야 관청에 신고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좀생이 인간이다.이런 존재가 어떻게 샤르마 커와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퍽!”하현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도 귀찮아 테이블 위에 있는 맥주병을 들고 바로 샤르마 커의 이마에 꽂아 버렸다.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아무도 하현의 행동에 반응을 할 수 없었다.날카로운 소리가 울린 뒤 샤르마 커의 머리는 순식간에 피와 술과 유리 부스러기로 뒤덮였다.동시에 그가 물고 있던 담배가 툭 떨어졌다.“치익!”하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떨어진 담배를 집어 들고 샤르마 커의 이마에 지져 버렸다.“앗!”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비할 데 없이 처량한 목소리였다.샤르마 커는 지금까지 줄곧 호령만 하며 호강에 겨운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그는 몸서리를 치며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그러나 하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비명을 지르는 샤르마 커의 벌린 입에
”퍽!”하현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또 술병을 들고 서슴없이 샤르마 커의 머리를 쳤다.“아까 해명하라고 했는데 굳이 당신이 하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하지.”“이 한 병은 내 아내에게 바치는 복수야!”“퍽!”“이 한 병은 내 처제에게 바치는 복수야!”“퍽!”“이 한 병은 장모님께 바치는 복수야!”“퍽!”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병 세 개를 연이어 깨버렸고 샤르마 커의 이마에서는 핏물이 겹겹이 흘려 내렸고 유리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져 비명을 멈추지 못했다.피를 본 여자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하나같이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그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가라앉았다.“왜 건드렸어?”하현은 오른손을 뻗어 샤르마 커의 어깨를 툭툭 쳤다.“차성도는 내 앞에서 개처럼 굴어야 할 거야. 브라흐마 샤주도 내 앞에서 직접 무릎을 꿇어야 할 테고...”“샤르마 커 당신은 어디서 굴러먹던 사람이야?”“이 바닥에서 정말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아는 모양이지?”샤르마 커는 몸서리치도록 이를 갈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지금 우리 귀하신 인도인들을 모욕하고 날 건드린 거야. 뒷감당할 수 있겠어?”샤르마 커는 이런 모욕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퍽!”하현은 손을 뒤로 힘껏 젖혔다가 세차게 샤르마 커의 따귀를 때렸다.“귀하신 인도인?”“뒷감당?”“차성도도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못하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퍽!”“못 참겠거든 덤벼. 얼마든지. 강호의 규칙도 모르면서 감히 함부로 내 사람들한테 손을 대? 죽고 싶어 환장했지?!”“퍽!”“오늘 당신의 두 다리를 부러뜨려야 하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겠군!”“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눈 부릅뜨고 대들 줄은 몰랐어.”“그래서 내가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기회를 한 번 주지!”“당신네 인도인들 아주 지독하잖아?”“당신을 구하러 올 사람한테 전화해. 지금 기회를 줄 때 전화해 봐!”말을 마친 후 하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