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과 ‘1억’이라는 단위를 듣자 장내에는 고요한 냉기가 감돌았다.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그런데 하현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다니!그가 무죄라는 걸 믿게 만들기 충분한 발언이었다.요즘 세상에 이렇게 달콤하고 솔깃한 제안이라니!“거짓말! 거짓말하는 거야!”“그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야! 사람을 죽였다고!”“그가 이렇게 많은 돈을 뿌리는 것은 그가 마음에 찔리는 게 있기 때문이야!”“그렇지 않다면 뭐 때문에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겠어? 하물며 그와 성 씨 가문은 별로 친분도 없는데 말이야!”숨돌릴 새도 없이 사건이 급변했다.파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그러다 군중 속에서 갑자기 무도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녀가 나섰다.그들은 모두 키도 크고 실력도 좋아서 장내를 진압하고 있던 도끼파의 손길을 따돌렸다.또한 집법당 제자들은 이 낯익은 얼굴들을 보고 주저하며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우리가 이렇게 나오도록 만들다니! 우린 모두 용호태 부당주의 가족이야! 우린 진실을 말할 권리가 있어!”“우리한테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는 건 뭔가 찔려서 그런 거 아니야?”“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두려운 거잖아?”“퉤! 살인범이 여기서 허세를 부리는 것도 모자라 기자회견은 무슨 기자회견이야? 정말 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기자들 어딨어?! 내가 진실을 알려주지!”“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빚을 갚아야지! 빚을 졌으면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용호태 가족들은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언론사 기자들은 피를 본 상어처럼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돌렸다.무대 아래에 서 있던 진주희와 만천우의 얼굴빛이 살짝 일그러졌다.모든 것이 잠시나마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결국 또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이것은 결국 하현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다분했다.죽이지 않고는 결코 멈추지 않을 심
용이국이 모습을 드러내자 하현은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아니 판을 너무 작게 만드는 거 아니야?!”“이런 판에는 용천오가 나와야 제 격이지!”“뒤에 숨어 파렴치한 소인배 노릇이나 하면서 대신 당신 같은 피라미를 보내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구도가 좀 안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용천오? 판을 작게 만든다고?”하현의 말에 용이국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하 씨.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른 사건일 뿐이야. 우린 이 일에 정의를 지킬 뿐이고. 그런데 용천오가 이런 데를 올 필요가 뭐 있겠어?”“정말 가증스럽군!”“여기 피해자 가족들, 시민들, 기자들 눈빛이 서슬 퍼렇게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거야?”“아무도 당신 말에 속지 않아!”그러면서 용이국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간략하게 진술하는 한편 이전 영상과 증거를 제시해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일이 이 지경에까지 발전했으니 정말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이것은 틀림없이 내일 아침 빅뉴스가 될 것이다.순간 기자들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하 선생님, 피해자 가족과 대질하실 의향 있습니까?”“당신이 결백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이 말을 듣고 용문 집법당 제자들과 도끼파 패거리들은 마치 전장에서 적을 마주한 것처럼 표정이 굳어졌다.어쨌든 그들은 하현과 한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만약 하현이 살인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면 그들도 재수 없게 같이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용호태 가족들은 분명 용이국을 지지하고 있는 듯했다.그들이 이렇게 나타난 이상 분명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을 터였다.“피해자 가족들과 대질하실 의향 있으십니까?”하현의 일행들이 그를 말리려 했을 때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나 하현은 바르게 행동하고 똑바로 살아왔습니다. 내
이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넋이 나간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소리치며 울부짖는 모습은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기자들의 눈은 피를 본 상어처럼 혈안이 되어 있었다.이 촬영으로 헤드라인은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살인범은 혐의를 부인하고 피해자 가족은 피를 토한다...”하현은 상대방의 연기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이 모습은 기자들의 눈에 들어갔고 하현이 조금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기자들은 법의 처벌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다른 피해자 가족들도 잇따라 성토하기 시작했다.그들 외에서 일부 성 씨 가문 친척들과 친구들도 군중을 헤치고 나와 한마디씩 덧붙였다.다들 하현이 살인범이고 반드시 죽어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현장에 있던 기자들과 사람들은 모두 하현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며 격분했다.게다가 살인범이라면 당연히 경찰서에서 체포하고 억류해야 하는데 버젓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분노케 만들었다.“하현, 하 선생님.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이렇게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당신을 살인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아직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겁니까?!”용이국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하현을 보고 있었다.만천구의 출현으로 하현이 혐의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고 용천오가 말하긴 했지만 용이국은 관청과 경찰서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여론이라는 걸 잘 안다.여론의 압박이야말로 법의 쇠사슬보다 더 강력할 때가 있다.피해자 가족이 피를 흘리며 성토하게 하는 모습을 전파에 내보냄으로써 하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만들려는 것이 용이국의 의도였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어떻게 해서든 죽어야 했다!억울해하고 분노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에 용이국은 말할 수 없이 만족스러웠다.어쨌든 그는 돈도 얼마 들이지 않고 원하던 것을
”퍽퍽!”피해자 가족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그들은 모두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이윽고 그들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남자들은 나 죽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여자들은 피해자의 영혼을 달래듯 통곡을 늘어놓았다.비명과 고성이 뒤섞여 장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기자들과 구경꾼들은 모두 넋이 나간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피해자 가족들이 이렇게 격렬하게 항의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가족이 죽었으니 그 억울함이야 오죽했으랴!매수당했다고?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어떻게 약간의 돈으로 목숨을 건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당신들!”진주희 일행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무리 봐도 계획한 듯한 냄새가 진동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용이국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한 사람당 겨우 오십만 원 정도, 앞뒤로 다 따져봐도 겨우 몇천만 원으로 이런 퍼포먼스를 보이다니!지금 보니 수억 원의 가치가 있는 퍼포먼스였다!역대급 할리우드 연기는 평소에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기자들은 이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서둘러 셔터를 눌렀고 전후의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했다.이를 보던 사람들은 하현의 이마에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있었다.하현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썩은 벌레 보듯 능멸하는 눈빛이 역력했다.만약 현장에서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분노한 군중들이 당장에라도 하현에게 달려들 기세였다.“하현,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만천우는 이 장면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하현이 이미 뭔가를 대비했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눈앞의 장면은 도무지 통제 불능이었다.군중들은 당장이라도 인간 벽을 뚫고 앞으로 돌진할 태세였다.이때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미리 써 놓은 메시지를 어디론가 보냈다.“팅팅팅!”하현이 메시지를 보낸 지 몇 초도 지
”무슨 메시지 말입니까?”용이국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궁금한 기자들도 피해자 가족들이 보여준 문자 메시지를 힐끔 보았다.그러자 모두들 기자들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모두들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움직이질 못하고 멍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사람들에게 전달했던 일억 원을 철회한다고?”“일억!?”“수십 명의 가족들한테 주었던 일억을 철회한다고?”“그럼 이게 얼마야?”“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용이국이 피해자 가족에게 인당 일억을 줬다고?”“그리고 이제 와서 그 돈을 다 빼앗았다고?”금융을 좀 아는 기자는 몇 번만 보면 이것이 어떻게 조작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용이국이 먼저 은행에 가서 계좌이체를 예약했을 것이고 원래대로라면 24시간 후에 돈이 입금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예약을 철회했으니 이체도 당연히 없던 일이 된다.기자들은 웅성거리며 야단법석을 떨었고 용이국의 낯빛은 순식간에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일억은 무슨? 철회라니요?”“이 돈은 내가 철회한 게 아닙니다.”“철회한 게 아니라면 돈을 주세요, 그럼!”피해자 가족들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따졌다.“이건 우리랑 약속한 거랑 완전히 다르잖아요? 우리가 당신 말대로 하기만 하면 일억 주기로 했잖아요? 안 그래요?”“지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목숨 걸고 연기했는데 철회라니요?”“맞아요! 우리를 이용만 하고 돈은 안 주겠다는 거예요? 우릴 바보로 아는 겁니까?”한 무리의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의분에 차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돈 주세요! 빨리 돈 달라구요!”“그 돈은 정말 내가 철회한 게 아니에요. 난 당신들한테 일억을 주지도 않았어요!”망자의 영혼을 목놓아 부르며 열연을 펼치던 피해자 가족들이 갑자기 달려들자 자신이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짰다고 생각했던 용이국은 머릿속이 하얘졌다.“내가 어디에 그런 많은 돈이 있어서 당신들한테 줄 수 있겠어요?”“나
”다행히 우리는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라 미리 문자 알림 설정을 해 두었죠.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린 모두 당신한테 깜빡 속았을 거예요!”“경고하는데 우린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당신이 돈을 주지 않겠다면 단단히 각오하세요!”“우린 기자와 경찰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방금 하현에 대해서 했던 말들이 모두 당신이 외우라고 시킨 거란 걸 폭로해 버릴 거예요!”“하현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우리한테 사주한 거잖아요!”“당신이 계약금조로 준 오십 만원이 우리 수중에 있어요. 계좌이체 기록도 있구요!”“처음에 돈을 줬을 때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당신을 믿지도 않았을 거라구요!”“용이국, 우린 더 이상 이런 연극하지 않을 거예요. 더 이상 당신한테 놀아나지 않겠다구요!”용이국은 그야말로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자신이 철저하고 치밀하게 작전을 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도 더 이상 하현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캐묻는 모습을 본 용이국은 얼른 곁에 있던 십여 명의 남녀들을 데리고 일어났다.“가자!”“가?!”“어딜 간단 말이야?”“돈도 안 주고? 돈을 안 준다면 아무 데도 못 가!”피해자 가족들은 용이국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이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다.용이국의 경호원들과 맞닥뜨려도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결국은 서로 봐줄 의사가 없는 사람들끼리 주먹다짐이 벌어지며 난장판이 되었다.진주희와 만천우는 어이없어 하며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한 무리의 기자들은 잠시 멍해 있다가 모두 앞다투어 달려가 진상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아무리 잘 쓴 드라마도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는 없다!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뉴스 헤드라인감이었다.하현은 자신에게 음모를 뒤집어씌우려다 난장판이 된 모습을 눈앞에서 덤덤한
모든 것은 하현이 예상한 대로였다.용이국은 완전히 망했다.일억에 눈이 뒤집힌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미쳐 날뛰었다.그들은 용이국에게 눈을 희번덕이며 주먹다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음모를 폭로하고 말았다.며칠 전부터 용이국은 그들에게 연락해 오십만 원씩 매수해 현장에서 소란을 피우라고 지시했다.피해자 가족들은 용이국이 CCTV도 조작했을 거라며 피를 토했다.가짜 연기자 몇 명 섭외해 그런 영상을 만드는 것 식은 죽 먹기일 거라고 지적했다.어쨌든 이 모든 일들은 용이국의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현의 결백도 증명해 보였다.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용이국의 불행이 곧 그들에겐 특종감을 선사했으니 굳이 나서서 용이국의 체면을 세워 줄 필요가 있겠는가?그들은 가장 먼저 나서서 용이국의 불행을 퍼 날랐다.간단히 말해 용이국은 이미 완전히 끝났다!...무성, 용문 무도관.마하성은 용천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보고했다.“용천오, 용이국의 작전이 망했어.”“아주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다고.”“우리가 힘들게 계획한 모든 것들이 다 수포로 돌아갔어.”“게다가 용이국은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남을 모함하는 소인배로 전락했고.”“만천우는 현재 사건 수사의 주요 용의자로 용이국을 지목하고 있어!”“자칫 잘못하다간 모든 게 밝혀질 수도 있어!”“용천오, 이제 뭔가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차를 마시고 있던 용천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하성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용천오는 마하성의 자세한 보고를 듣고 난 뒤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재미있군. 하현, 하 세자, 하 당주! 역시 날 놀라게 해!”“공들여 준비한 계획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그가 큰 거물들을 움직이지 않고 몇천 원짜리 문자 메시지로 모든 것을 뒤엎어 버렸다는 거야!”“고작 몇천 원에 말이야!”“이런 안목과 수법은 정말 쉽지 않아!”“그동안 내가
용천오는 희미하게 눈을 흘기다가 천천히 말했다.“며칠 후면 내가 건설할 무성 신시가지 2차 지구가 정식으로 추진될 거야.”“3천 채의 부동산이 순조롭게 팔리면 우리는 대부분의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당분간은 이 일에 신경 쓰자고.”“하현 쪽은 용이국한테 일임하고.”“그에게 말해. 상대를 제압하지 못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와신상담한 후에 때를 봐서 공격하면 된다고 말이야.”“하현이 죽지 않으면 결국 그도 죽는 거야!”...“건배!”“형부의 억울함을 풀게 된 것에 건배!”“형부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저녁 6시 반, 무성 호텔 객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졌다.이번 식사는 설유아가 비상금을 털어서 거하게 샀다.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건 아니지만 설유아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엿볼 수 있었다.설은아와 최희정 외에도 진주희와 한여침 일행도 모두 초대받았다.하지만 최희정은 표정은 여전히 언짢아 보였다.그녀는 하현이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이렇게 계속 자신의 딸과 엮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녀는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그러나 하현은 이렇게 기쁜 날을 두고 최희정과 얼굴을 붉히기 싫었다.그는 수표 한 장을 꺼내 오억 원이라는 숫자를 휘갈기며 최희정와 설은아 앞에 내밀었다.그러자 온 세상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이제 어떻게 할 거야? 대구로 돌아갈 거야? 아니면 계속 무성에 머무를 거야?”하현은 술잔을 들고 설은아 곁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이번에 여기 온 것은 무성 황금 광산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당신 손에 넘어갔고...”설은아는 바보가 아니었다.그녀는 진주희가 하현을 도와 일을 성사시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지분 40%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돼.”“다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잠시 무성에 남아서 황금 회사를 관리해야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는 무성 황금 회사의 지분은 안중에도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
여수혁은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고 느끼며 이를 갈았다.“양유훤, 당신 생각 잘 해야 할 거야. 아직 당신 할아버지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양 씨 가문 큰집이 아직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구!”“게다가 당신이 아직도 양 씨 가문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은 큰집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야. 그래서 양 씨 가문에서도 함부로 당신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는 거지. 단지 그뿐이야.”“만약 당신이 오늘 한 말이 전해진다면 그 많은 지지자들은 다 사라질 거야!”“양 씨 가문에 무슨 권세가 있겠어?”“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을 것 같아?”“당신이 이 남자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해?”여수혁은 분노하며 퍼부었다.그의 저력이 여전히 꽤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었다.그는 양유훤이 한 남자를 위해 양 씨 가문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중요한 상황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그를 두려워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난 지금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내일도 할 수 있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구!”양유훤이 차갑게 내뱉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여기 나타난다고 해도 난 모두에게 알릴 수 있어!”“하현은 내 남자야. 페낭에서 누가 그를 건드리고 싶어도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지 않는 한 절대 안 돼!”“당신...”여수혁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질투의 화신이 온몸을 점령한 듯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입을 열었다.“하현은 대하 사람이잖아? 그런데 언제 당신 눈에 든 거야?”“아무리 시집을 가고 싶어도 좀 쓸 만한 방패막이를 찾아!”“이런 쓸모없는 놈을 구하다니!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퍽!”양유훤은 손바닥을 후려쳤다.“하현을 모욕하는 것은 날 모욕하는 것과 같아!”여음채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양유훤, 당신이 왜 이 남자를 이렇게 비호하는지 모르겠지만!”“이 남자
내 남자?짧은 이 한 마디에 여수혁은 천둥소리를 들은 듯 귀가 먹먹해졌다.양유훤의 신분은 말할 수 없이 높다!지금 양 씨 가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말라죽은 낙타가 말보다 큰 법이다.양유훤은 양 씨 집안의 실세로서 배후에는 양제명이 그녀의 뒤를 받치고 있었다.그녀의 남자라.그것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상징한다.적어도 지금 페낭에서는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 외에 양 씨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양유훤이 비호하는 하현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여수혁이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라는 아주 비범한 신분을 가졌다고 해도 양유훤이 하현을 비호하고 나선다면 그로서도 절대 어쩔 수 없었다.양 씨 가문이 정말로 무너지고 페낭의 몇몇 세력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지금 이 시점에서 양유훤의 권세는 여전할 것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수혁이 줄곧 양유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지금 양유훤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여수혁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양유훤!”여수혁이 무겁게 입을 열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이 녀석의 정체는 당신도 나도 잘 알고 있어!”“그를 비호하기 위해 굳이 당신의 남자라고 말을 하다니!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 생각이나 해 봤어?”“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를 당신의 남자라고 선언하는 순간 당신은 그를 끝없는 위험에 빠뜨리게 된 거야.”“그런데도 당신 계속할 거야?”“그래,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양유훤이 단호하게 말했다.“하현은 내 남자야. 나 양유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틀림없는 사실이야!”“누군가가 그를 건드리려면 내 시체부터 밟고 지나가야 할 거야!”“여수혁, 당신이 해 볼 테야?”여수혁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양유훤, 내가 당신한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마!”“당신은 절대 이 남자를 지킬 수 없어!”“퍽!
하현은 싱긋 웃으며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말했다.“만약 내가 거절한다면?”“내 호의를 거절한다고?”여수혁은 쥐를 쫓으며 희롱하는 고양이의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분명 하현이 거절하길 바라는 눈치였다.“미안하지만 양유훤의 체면을 더는 봐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당신을 놓아주긴 어렵지 않을까?”“그렇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여음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언짢은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여수혁 앞에서도 여전히 센 척하는 거야?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여전히 시치미를 뗀다 이거지?여수혁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인데 당신은 아직도 사태 파악도 못하고 허세를 부린다고?설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절대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잠시 후 여수혁이 손을 흔들자 군중 뒤에서 무도복을 입은 남녀 수십 명이 걸어 나왔다.그들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꺼내며 기세등등하게 칼날을 번쩍거렸다.칼날이 빛을 받고 위용을 드러내자 여음채와 부일민은 점점 조롱과 멸시에 가득 찬 미소가 얼굴 가득 번졌다.여수혁은 마치 자신이 천왕 노자라도 된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두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만들어!”“감히 반항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네 명의 무맹 제자들이 앞으로 나와 하현의 이마에 장검을 들이대었다.어떤 사람은 야구 방망이를 꺼내 당장이라도 하현의 다리를 부러뜨릴 듯한 자세를 취했다.이 모습을 보자마자 하구봉은 매서운 눈빛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공격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그를 만류했다.그와 하구봉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하지만 강옥연과 원가령 두 사람이 이 일에 엮이면 정말로 발을 빼기 힘들어진다.이것은 하현이 원하는 일이 절대 아니다.“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이야.”하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빗발치는 칼날을 무시하고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은 양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