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분 만에 롤스로이스는 거의 분해되다시피 되었다.그러나 피비린내를 맡은 구미호처럼 달려들던 경찰들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변했다.가장 선두에 서 있던 수사팀장은 장묵빈에게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저기,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요!”장묵빈은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세웠다.“말도 안 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묵빈은 직접 차로 달려들어 하현의 격자무늬 그림을 집어 들었다.한바탕 소란스럽게 뒤적거리던 장묵빈은 화가 나서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총교관의 칼은?”“칼은 어디 있는 거야?”“없을 리가 없어!”장묵빈에게 있어 총교관의 칼은 이제 가치를 넘어서서 그 자리에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하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유 외에도 잠시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또 다른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정말로 칼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머리가 날아갈 각오를 해야 했다.“내가 말했잖아. 난 당신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칼은 무슨 칼! 난 아무것도 몰라! 관심도 없어!”“내가 그림 속에 물건을 숨겼다는 게 웃기지 않아, 안 그래?”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아침에 나왔을 때 골동품 가게에 들러 그림을 샀을 뿐이야. 설마 골동품 가게에서 그런 좋은 물건을 덤으로 줄 리 없잖아?”“자, 이제 당신들은 내 차를 분해하다시피 해서 뒤졌지만 원하는 걸 찾지 못했어.”“장묵빈, 이제 나한테 설명해 보시지?”화풍성은 의아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그러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방금 하현이 차창 밖으로 뭔가를 날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순간 화풍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게 가능하다고?그는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하현, 이 개자식아!”“당신은 내 총교관의 칼을 훔쳤어!”“그런데 설명은 무슨 설명?”장묵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함을 질렀다.“어서 물건 내놔!”“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총교관의 칼은 분명히 아침까
”개자식! 거기 서!”하현이 붉은 카펫이 깔린 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하백진이 걸어 나왔다.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을 대동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하현의 길을 막았다.“하 씨, 과거의 원한은 말하지 않겠어.”“하지만 오늘은 우리 노부인의 생신이야.”“당신은 하객으로서 조금도 신중하지 못하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구역에서 소란을 벌였어!”“아는 사람은 생신을 축하하러 참석한 줄 알겠지만.”“모르는 사람은 일부러 잔칫날을 망치러 온 줄 알겠어.”“오늘 당신이 여기에 무슨 마음으로 왔는지, 전에 다른 사람들과 왜 싸웠는지 일체 상관하지 않겠어!”“하지만 오늘 당신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체통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도 당신의 체면 따위 안중에 둘 필요없지!”“지금 당신은 우리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어! 그러니 썩 꺼져! 더 이상 한 발짝도 들여놓지 마!”“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하백진은 겨울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말했다.그녀의 뒤에는 항도 하 씨 가문 큰 아들네와 둘째 아들 가족이 서 있었다.모두들 하현을 바라보는 눈에 가시가 가득 돋쳐 있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았다.그들은 오로지 체면을 중시할 뿐이었다.이전에 한 짓이든 오늘 한 짓이든 하현이 한 모든 행동은 항도 하 씨 가문에 반항하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해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하현처럼 이렇게 위아래 없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반기를 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하 씨!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문주가 뒤에서 받쳐주고 귀빈 대접해 주니까 아주 함부로 날뛰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섬나라 황실, 중동 왕자, 북유럽의 공주님도 우리 가문에선 함부로 날뛰면 안 되는 거 몰라?”“무학의 성지, 10대 최고 가문, 5대 문벌들도 모두 오늘 같은 날은 공손히 참석해야 한다고!”“네까짓 게
양측이 팽팽한 기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수진이 갑자기 앞으로 나와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오늘은 하현이 생일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왜냐하면 오늘부터 하현은 항도 하 씨 가문 사위가 되었거든요. 항도 하 씨 가문 소주가 된 거죠!”하수진의 말은 천둥소리처럼 장내를 울렸다.사람들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위?! 소주?!”하백진은 눈 밑이 파르르 떨렸고 눈앞의 모든 것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도저히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문준이 감히 노부인의 생일날 이런 일을 벌이다니!어젯밤 노부인 앞에서 하문준은 하구천의 후계자 계승 건을 두고 하문성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문성 측은 하문준이 충분한 이익을 얻기만 한다면 쉽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은...그렇지 않아도 하현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던 하구천과 하유곤은 말할 수 없이 얼굴이 일그러졌고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동시에 하현에게서 말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하구봉, 하민석, 곽영준 등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을 들은 사람처럼 홀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문준만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나머지 모두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도, 노부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귀빈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그 어떤 반응도 내놓지 못했다.하현이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역량을 이용해 하수진을 돕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어차피 하문준이 요즘 보였던 태도와 무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그래서 오늘 하현을 겨냥해 여기저기 도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 것이었고 이는 모두들 진작에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 일이었다.하지만 하문준이 하현을 사위
하수진의 말을 듣고 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그가 항성과 도성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르는 이유는 하수진이 말한 대로 대하 남쪽 관문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섬나라, 노국의 야심가들을 모두 항성에서 내쫓아야만 했다.이것이 하현의 마음속에 품은 대의였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양심에 부끄럽거나 하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날 하수진이 그에게 말했었다.항도 하 씨 가문 소주 자리에 앉으면 대하의 남쪽 관문을 더욱 안전하고 공고히 만들 수 있다고.지금 그 생각이 떠오르자 하현은 왠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운명이 사람을 농락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하수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어리둥절해 있던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을 힐끗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은 오랫동안 자격을 갖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그리고 하현 당신은 가장 최고의 자격을 갖춘 후계자야.”하수진은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둘의 결혼은 허상에 불과해. 연극하는 거라 생각해.”“당신만 잘하면 대하 관문도 더없이 안정되니 수지맞은 장사 아니야?”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하수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막막했다.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하백진이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그녀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하수진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야! 하수진! 너 입 닥치지 못해!”“머리에 총 맞았어?”“넌 문주의 양녀일 뿐이야. 하현과 결혼하다고 해도 그가 소주가 될 수는 없다고! 항도 하 씨 가문 사위?”“흥! 웃기고들 있어!”“내 말 잘 들어. 오늘 이런 자리는 양딸이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당장 입 닥치지 않으면 항도 하 씨 가문을 대표해서 널 가만두지 않겠어!”하백진은 살벌한 표정으로 하수진에게 으르렁거렸다.하백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 하구천이 하문준의
순간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렀다.자신의 말 한마디가 장내를 압도하는 것을 보고 하문성의 눈에서는 우쭐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나서 그는 냉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그래도 네가 항도 하 씨 가문 수양딸이니 네 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그리고 오늘은 노부인의 생신이니 특별히 봐주겠어!”“이제 너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어!”“그러니 10초 안에 당장 꺼져!”“그렇지 않으면 내가 우리 사이의 그깟 친척 관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널 칠 거야!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 마라!”말을 마치자마자 하문성은 손을 흔들었고 하민석을 비롯한 하문성 측근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려고 했다.그러나 하구봉이 냉소를 흘리며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하문성의 사람들을 막아섰다.그는 진작에 하현의 편에 섰고 지금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오로지 한 길로 갈 수밖에.게다가 하현이 갑자기 항도 하 씨 가문 사위가 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하구봉도 깜짝 놀라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이내 이 모든 것이 하문준의 뜻임을 깨달았다.하수진이 상석에 올라가면 가문에서 저항이 클 수 있다.하지만 최근에 항성과 도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거물이라면 그 결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게다가 하구봉도 하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하현이 정말로 항도 하 씨 가문 문주가 된다면 항도 하 씨 가문은 최하위이지만 5대 문벌로 자리잡을 것이고 앞으로 더 올라갈 기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5대 문벌이다!오랜 역사를 이어온 5대 문벌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한 계단 올라서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오직 절세의 귀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하문성은 하구봉이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의 측근들 앞을 가로막자 안색이 험악해졌다.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문천을 노려보며 말했다.“셋째야, 너희들이 언제부터 외부인과 손을 잡았냐?”“너 같은 기회주의자는 이럴 때 줄 잘 서야 해! 안 그
”너 이 자식!”하문성은 하문천의 질책에 기가 막혀 하마터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그러나 하문성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위엄 있는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항도 하 씨 가문에서 데릴사위를 맞이한다는데 어째 난 몰랐을까?”“너희들 내 허락은 받았니?”“아니면, 내 허락 따위 필요없다는 거냐?”위엄 있는 목소리가 퍼지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흩어지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홀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흰옷을 입은 노부인의 십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녀의 얼굴은 바싹 말랐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필시 젊었을 때 엄청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또한 그녀의 온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장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절로 무릎을 꿇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노부인의 곁에는 흰옷을 입은 여자들 외에도 청포를 입고 냉담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항도 하 씨 가문 둘째 아들 하문산이었다.하문산은 줄곧 무학에 심취해 있었다.지금은 전성기 때만큼 보여줄 실력은 없지만 관자놀이에 우뚝 솟아오른 핏줄이 아직 그가 원기왕성하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여전히 그의 주먹은 소 한 마리도 때려잡을 정도로 건장했다.많은 사람들 한가운데 하현도 무표정한 얼굴로 노부인 일행을 쳐다보았다.노부인의 기세가 매서웠지만 그리 노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마치 땋은 머리를 하고 정좌해 있는 부처님처럼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 풍겨 나왔다.평소에 틀림없이 고고하게 아랫사람들을 부리며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게다가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거리낌 없이 하고 살았음에 틀림없다.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힘들고 무서운 사람이다.경력, 신분, 배경, 역량, 권위 모든 면에서 그녀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항도 하 씨 가문 하문준도 노부인 앞에서는 공손히 예를 갖추어
”퍽!”노부인은 손을 들어 올려 하문천의 뺨을 또 한 번 후려쳤다.하문천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고 그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하구봉이 얼른 다가와 아버지 하문천을 부축해 주었고 다행히 하문천은 바닥에 주저앉지는 않았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한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문천 같은 인물은 감히 따지지도 저항하지도 못했다.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지금 이 분은 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이며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누군가 하문천에게 큰 용기와 배짱을 준다고 해도 감히 저항하지 못할 큰 산이었던 것이다.“퍽!”“오늘은 내 생일이야. 이렇게 많은 손님들과 친척들이 왔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첫째와 넷째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것이냐?”“항도 하 씨 가문에 네 위에는 아무도 없느냐? 아니면 내가 곧 죽을 사람으로 보이느냐?”“퍽!”“언제 셋째 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형님한테 대들 수 있느냐? 그럴 자격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퍽!”“위아래도 모르느냐?”“퍽!”“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간 아주 혼쭐이 날 줄 알아라!”노부인은 한마디할 때마다 하문천의 뺨을 후려갈겼다.그러자 하문천은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렸다.“퍽!”“왜?”“아까 나 없을 땐 잘도 말하더니 이젠 할 말이 없느냐?”“또 해 보거라!”“어머니, 진정하세요.”하문천은 얼얼해진 얼굴을 만지다가 애써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쓸데없는 말 한 거 아니에요.”“어머니가 저한테 그러라고 해도 어떻게 감히 제가 어머니 생신날 소란을 피울 수 있겠어요?”“다만, 넷째는 그동안 항도 하 씨 가문을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였고 공로는 없어도 노고는 많았잖아요!”“넷째 부부는 또 십 년 전에 친아들이 죽는 사고도 겪었고 지금은 슬하에 수양딸 하나밖에 없어요!”“그래서 이제 넷째가 데릴사위를 얻어서 그의 뒤를 잇겠다는데 뭐 문제 있어요?”“정상적인 일 아닌가요?”“저도 부모 된 사람이라 공감해요!”
하문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어머니, 아무리 우리 가문의 최고 어르신 앞이라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넷째는 십 년 전 그 일을 이제 겨우 이겨내고 새 삶을 준비하고 있어요.”“우리 항도 하 씨 가문에게는 기쁜 일이고요!”“그는 지금 딸을 좋은 사람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해요. 사위를 얻는 일은 세상에 자랑스럽고 기쁜 일 아닙니까?”“사람으로서 당연한 거죠!”“어머니께서는 정녕 넷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 거예요?”“입 닥쳐라!”노부인은 앞으로 나서서 추상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여든 살이라고 해서 노망이라도 났다더냐?”“내가 넷째가 좋은 사위를 얻는 걸 뭐라고 하는 것이냐?”“사위를 상석에 앉히려는 건 결코 안 되는 일이야!”“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는 항도 하 씨 가문 직계만 될 수 있어!”“그것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핏줄을 잇는 방법이야!”“이견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이것이 우리 가문의 법규 위에 군림하는 철칙이니라!”“누가 감히 건드리려고 한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어!”“철칙 앞에서는 문주라도 이것을 어길 시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벌을 받을 것이야!”“셋째야. 한마디만 더 하면 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모자지간의 정도 모른다고 이 애미를 원망하지 말거라!”하문천은 이 말을 듣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입가에는 주체하지 못할 경련이 마구 일었다.그는 노부인의 얼굴에서 살의를 보았다.만약 여기서 그가 한마디라도 더 보탠다면 노부인은 정말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그러자 하문천은 하문준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얼굴을 가린 채 옆으로 물러섰다.하문천을 제압한 후 노부인은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는 하현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자네가 하현인가?”“내가 24시간 안에 여기를 떠나라고 분명 자네한테 전갈을 보냈을 텐데!”“자네는 내 명령을 거역했을 뿐만 아니라 내 호위병도 죽였어.”“하지만 넷째가 자네를 지지해 주었으니
하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황보동은 냉담한 눈빛으로 얼굴도 들지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우리 집복당은 시장에서 파는 허드레 물건이 아니야. 이천억! 다른 가격으로는 안 팔아!”“어때? 살 거야? 말 거야?”차갑고 매마른 말투였다.하현은 눈동자를 살짝 움츠렸다.상대는 분명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간민효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황보대사님, 우리 장사꾼들은 신용을 중시합니다.”“정직이 천하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어제 분명 이백억에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왜 갑자기 이천억이 된 거죠?”“전 이미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이곳에 대한 평가를 꼼꼼히 진행했어요.”“이곳은 많아 봐야 백오십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어요. 손볼 곳도 너무 많고요.”“어르신이라 아주 후하게 쳐서 이백억을 제시한 거예요.”“제 호의를 무시한 채 이렇게 얼토당토않는 가격을 제시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간민효는 돈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버릴 만큼 많지는 않았다.특히 황보동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이백억은 어제 가격이고.”“이천억은 오늘 가격이야.”“집복당은 우리 황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이야. 내가 원하는 만큼 받아야 팔 수 있어.”“당신이 아무리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물론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사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내 손녀만 치료해 준다면 공짜로도 줄 수도 있어.”황보동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뭔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어온 아줌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아줌마는 최근 밤마다 악몽을 꾸고 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보동은 나침반을 꺼내 빙빙 돌리며 계속 미간을 찌푸렸다.황보동이 자신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간민효도 화가 나기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저릿해져 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흥!”난처해하는 하현의 모습을 보고 간민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복당은 금정에서 이미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금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었어.”“옛날에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다들 어마어마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내가 어릴 때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뭔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안타깝게도 지금 집복당의 주인인 황보동은 한동안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과학의 길만 좇았지.”“그러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아무도 이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자 다시 돌아왔어.”“하지만 그의 풍수지리술은 그의 조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어서 결국 점점 몰락하게 되었지.”“10여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대부분이 이 근처 오래된 이웃뿐이야.”“첫째는 가까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고 둘째는 가끔 좋은 날과 길일을 보는 데는 아주 뛰어난 풍수지리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야. 셋째는 아주 싸다는 매력 때문이지.”“다만 이렇게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아서 아마 결국 사라질 거야.”“참, 반년 전 황보동의 유일한 손녀이자 집복당의 9대 계승자, 황보정이 갑자기 두 눈을 잃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 뭐야.”“황보정은 집복당을 계승할 만큼 풍수지리사의 자질이 뛰어났어. 그래서 집복당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금정 일부 명문가들도 관심을 가졌고.”“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출사를 했을 때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어떤 원인도 찾을 수가 없었지.”“집복당 일가가 여러 해 동안 천기를 누설한 결과라는 말도 있어.”“황보동도 풍수지리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대.”“그래서 지금 황보동도 많이 낙담한 상태야.”“이 집복
”해결되었으면 됐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세상 일에 대해 그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어떤 일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사소한 일들은 소꿉놀이 같아서 정말로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다른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간민효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듯 홀가분한 모습으로 하현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우리 금장 간 씨 가문의 다른 하찮은 일보다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어차피 우린 연대한 사이잖아?”“참, 당신의 풍수관이 생기면 내가 첫 고객이 되고 싶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장난치지 마.”“내가 뭘 얼마나 잘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간민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연, 인연이야...”“이 일은 당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 같은데...”하현은 간민효의 말을 듣고 눈꺼풀을 펄쩍거리며 얼굴빛이 붉어졌다.“자, 장난치지 말고 당신이 선택한 곳부터 둘러보자고.”하현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이 모습을 본 간민효는 빙긋 웃으며 하현의 팔짱을 끼고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차에 타고 있던 나박하는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이런 상황을 보고 당연히 설은아에게 바로 고자질해야 했다.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하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주인 격인 그를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나박하가 고민에 빠진 그 시각 하현 일행은 이미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집복당 안 넓은 부지 앞쪽에는 큰 홀이 있고 한쪽에는 서재가 있었으며 그 안에는 각종 풍수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뒤편에는 사랑채 몇 개와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다만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내부는 꽤나 낡아 보였고 바닥의 청석도 파손된 곳이 적지 않았다.종이로 칠한 창문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많아서 괴기스러운 영화를 찍거나 스릴러물을 촬영하기 딱이라는 생각마저
설은아의 말을 들은 하현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김탁우가 감쪽같은 위장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설은아는 그의 과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뭐, 어쨌든 우린 재혼할 거니까.”“남자들을 많이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왜? 다른 뛰어난 사람을 보면 내가 홀딱 빠져 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설은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당신은 간민효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난 다른 남자랑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일이 이렇게 흘러 버렸는데 자신이 설명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설은아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자자, 질투하지 마.”“내가 한 번 본 남자한테 사랑에 빠질 여자로 보여?”“김탁우는 오늘 밤 나한테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온 것뿐이라고.”“그러니 당신도 다른 여자들과는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았다가 내가 알기라도 하면 당신 곤란해질 거야.”“어쨌든 우린 아직 이혼한 사이니까!”말을 마친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로 주먹을 한 방 날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하현은 이 광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지금 누구도 두려운 사람이 없었다.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한 여자 앞에서는 자신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게다가 이 여자는 지금 이 기회를 빌려 자신과 다른 여자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경고장까지 날리며 그를 압박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하현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어나서 설은아와 얘기라도 좀 나눠 보려고 했다.하지만 설은아는 어제 일은 다 잊은 듯 씨익 웃으며 일이 있다고 말한 뒤 홀연히 집을 나섰
소란은 여기서 끝났다.하현은 임수범과 이산들을 더 이상 압박할 생각이 없었다.그가 해야 할 일은 두 사람의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었다.자신의 앞에 놓인 곤궁한 처지를 헤치고 운명을 바꿔 나가는 일은 오로지 나박하가 감당할 몫이었다.소란스러운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던 왕인걸은 등줄기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현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 순간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다.소란이 끝난 후 왕인걸은 임수범 일행을 내쫓고 하현과 나박하의 테이블에 반찬 몇 가지를 더 제공해 준 뒤 나박하의 멤버십 기간을 1년 연장해 주었다.오늘 밤 그는 완벽하게 하현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고 할 수 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왕인걸의 어깨를 툭 건드릴 뿐이었다.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왕인걸의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다.식사가 끝나자 하현은 나박하에게 자신을 설 씨 집안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다음 날 다시 와서 적당한 가게를 찾는 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설은아는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설은아의 성격상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다지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마세라티 한 대가 대문 앞에 멈춰 섰다.덩치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설은아의 차 문을 멋스럽게 열어주며 에스코트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설은아와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걸었다.하현의 시선을 눈치챈 듯 남자는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돌아섰다.하현의 눈동자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항성에서 원가령과 약혼을 하려다가 자신에게 뺨을 얻어맞은 김탁우였던 것이다!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마도 성형을 한 뒤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넋이 나간 임수범은 초점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하현은 천천히 일어서서 그의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쳤다.“임수범, 방금까지 큰소리 뻥뻥 치지 않았어?”“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찍 소리도 하지 않는 거야?”“내가 방금 힘 좀 써 봤는데, 어때? 이젠 승복할 수 있겠어?”이산들 일행은 이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하현이 감히 임수범을 이렇게 모욕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임수범은 굴욕적인 하현의 말을 듣고도 입이 붙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산들은 밀려오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말했다.“임수범, 이 개자식이 감히 당신 얼굴을 건드리잖아?! 뭐 하는 거야? 어서 죽여 버리지 않고!”“퍽!”임수범은 손바닥을 뒤로 힘껏 젖혔다가 이산들의 얼굴에 내동댕이치며 버럭 소리쳤다.“입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보고도 몰라? 당신 병신이야?”“뭐? 감히 하현한테 대들라고?”“감히 하현을 상대하라고 날 부추기는 거야?”“죽고 싶어?”말을 하면서 그는 발을 들어 이산들을 향해 힘껏 발길질을 했다.이 여자만 아니었다면 그가 이런 비참한 몰골로 하현에게 미움을 살 일이 있었겠는가?지금 상황 판단 잘 하지 않으면 그는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하현?이산들의 얼굴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동시에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어쨌든 임수범이 덜덜 떨 정도로 하현이 높은 신분이라면 나박하도 덩달아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니 머지않아 출세의 길이 열릴 것이다!이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자 순간 그녀의 마음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하현, 오늘 밤은 내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내가 눈이 멀었어요.”“이렇게라도 이제 서로 알게 되었으니 부디 나한테 사과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말을 마치며 임수범은 미소를 머
이산들은 하현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얇은 입술을 치켜들어 연신 냉소를 흘렸다.“당신도 나박하랑 똑같아. 아무것도 없으면서 허세나 잔뜩 부리는 쓰레기들이야!”임수범도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말을 보태었다.“야, 당신이 정말로 나와 금정개발의 협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면 내가 당장이라도 여기서 당신한테 무릎 꿇고 아버지라 부를게!”주변에 있던 예쁘장한 여자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임수범의 말에 동조했다.하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경멸과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들은 하현이 허무맹랑한 말로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임수범을 힐끔 쳐다보며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어디 내 아들이 되어 볼 테야?”“흥! 가당치도 않지!”“뭐? 너...”하현에게 잔뜩 화가 난 임수범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이산들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곁눈으로 슬쩍 핸드폰을 본 뒤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그러자 그녀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벌벌 떨기 시작했고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게 핏기를 잃어갔다.화를 내던 임수범은 당혹스러워하는 이산들의 표정을 보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이산들, 무슨 일이야? 왜? 무슨 일이냐고?”이산들은 얼이 나간 모습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금정개발 고위층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과의 계약에 문제가 있어서 날 해고하기로 결정했대...”“그리고 경찰서 사람들이 내가 구매한 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개입하겠다고 했대!”“뭐라도 하나 꼬투리가 잡히면 난 끝장이야!”“임수범, 나 좀 도와줘! 제발 나 좀 도와줘!”“난 당신 여자잖아!”이 말을 들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무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현에게로 넘어갔다.이산들도 그제야 이 모든 게 하현이 한 짓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개자식!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현은 임수범 일행들이 호들갑을 떨든 뭘 하든 내버려두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저 술잔을 빙글빙글 흔들며 몇 모금 음미하고만 있었다.나박하는 하현이 겁을 먹은 줄 알고 얼른 일어나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임수범, 오해야. 이 모든 게 다 오해라고!”“내가 당신을 오해한 거라고?”임수범은 손을 뻗어 나박하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뭔데?”“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오해네 어쩌네 그러는 거야?”말을 마치며 임수범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향했다.임수범은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난 마음씨가 착해서 함부로 손을 쓰지 않아! 내 사람들이 손을 쓰게 하지도 않아!”“어쨌든 때리고 죽이는 일은 우리 같은 고귀한 도련님한테는 안 어울리는 일이거든. 너무 저급하잖아!”“너무 무능한 짓거리고!”“하지만 당신 가족이 직접 나서서 당신의 이 보잘것없는 놈을 죽이게 만들 거야!”“그리고 난 뒤 난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예쁜 마누라를 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약 그렇지 않고 예쁜 마누라를 얻는다면 결국 나 좋은 일만 되는 거지!”험악한 말을 내뱉은 임수범은 오만하게 웃었다.“앉아요.”하현은 저자세를 보인 나박하를 끌어당겼고 무덤덤한 얼굴로 임수범을 쳐다보았다.“임수범?”“건축자재업을 한다지?”“맞아. 내가 바로 임수범이야!”“내가 뭘 하는지는 왜 말하는 건데? 용서라도 빌려고? 아니면 나한테 덤비겠다는 거야?”“그런데 당신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난 당신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감히 나한테 덤벼들다니!”“내가 매달 몇 번씩이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들을 짓밟긴 하지만 당신처럼 이렇게 당돌한 사람은 처음이야.”“자자, 그래 내 이름 내 배경, 내 회사 다 알려 줄게. 어디 능력 있으면 마음대로 날 건드려 봐!”잠시 후 임수범은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이산들은 이 광경을
왕인걸의 안내를 따라 하현과 나박하는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나박하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현은 룸에 들어가는 것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그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레드 와인 한 병을 개봉하여 마시기 시작했다.“하현, 우리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요?”나박하가 망설이는 얼굴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내가 당신 실력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비록 이산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나박하의 원한이 조금은 풀리긴 했지만 그녀 뒤에 있는 임수범을 떠올리자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지금의 그는 누굴 건드리고 말고 할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무슨 말이에요?”하현은 똑바로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당신은 이제 나의 형제이자 친구입니다.”“당신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나한테도 미움을 산 것입니다.”“당신 체면이 서지 않으면 내 체면도 서지 않는 거죠!”“지금은 떨어진 당신의 자존심을 조금 들쳐 세웠을 뿐인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예요?”나박하는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이 날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하지만 난 정말로 당신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요!”“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내가 당신을 형제라고 여긴 이상 다른 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하현은 나박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어서 식사를 계속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당신한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금정 바닥에서 내가 당신을 보호하는 한, 천왕 노자가 와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어요.”“날 믿어 보세요!”“퍽!”하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식당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누군가가 발로 문을 걷어차며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선두에 선 남자는 아르마니 정장 차림이었고 걸리는 건 다 부숴버릴 것처럼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이산들의 인솔 하에 그는 나박하와 하현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