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진의 말을 듣고 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그가 항성과 도성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르는 이유는 하수진이 말한 대로 대하 남쪽 관문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섬나라, 노국의 야심가들을 모두 항성에서 내쫓아야만 했다.이것이 하현의 마음속에 품은 대의였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양심에 부끄럽거나 하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날 하수진이 그에게 말했었다.항도 하 씨 가문 소주 자리에 앉으면 대하의 남쪽 관문을 더욱 안전하고 공고히 만들 수 있다고.지금 그 생각이 떠오르자 하현은 왠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운명이 사람을 농락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하수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어리둥절해 있던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을 힐끗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은 오랫동안 자격을 갖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그리고 하현 당신은 가장 최고의 자격을 갖춘 후계자야.”하수진은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둘의 결혼은 허상에 불과해. 연극하는 거라 생각해.”“당신만 잘하면 대하 관문도 더없이 안정되니 수지맞은 장사 아니야?”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하수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막막했다.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하백진이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그녀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하수진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야! 하수진! 너 입 닥치지 못해!”“머리에 총 맞았어?”“넌 문주의 양녀일 뿐이야. 하현과 결혼하다고 해도 그가 소주가 될 수는 없다고! 항도 하 씨 가문 사위?”“흥! 웃기고들 있어!”“내 말 잘 들어. 오늘 이런 자리는 양딸이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당장 입 닥치지 않으면 항도 하 씨 가문을 대표해서 널 가만두지 않겠어!”하백진은 살벌한 표정으로 하수진에게 으르렁거렸다.하백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 하구천이 하문준의
순간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렀다.자신의 말 한마디가 장내를 압도하는 것을 보고 하문성의 눈에서는 우쭐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나서 그는 냉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그래도 네가 항도 하 씨 가문 수양딸이니 네 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그리고 오늘은 노부인의 생신이니 특별히 봐주겠어!”“이제 너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어!”“그러니 10초 안에 당장 꺼져!”“그렇지 않으면 내가 우리 사이의 그깟 친척 관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널 칠 거야!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 마라!”말을 마치자마자 하문성은 손을 흔들었고 하민석을 비롯한 하문성 측근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려고 했다.그러나 하구봉이 냉소를 흘리며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하문성의 사람들을 막아섰다.그는 진작에 하현의 편에 섰고 지금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오로지 한 길로 갈 수밖에.게다가 하현이 갑자기 항도 하 씨 가문 사위가 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하구봉도 깜짝 놀라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이내 이 모든 것이 하문준의 뜻임을 깨달았다.하수진이 상석에 올라가면 가문에서 저항이 클 수 있다.하지만 최근에 항성과 도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거물이라면 그 결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게다가 하구봉도 하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하현이 정말로 항도 하 씨 가문 문주가 된다면 항도 하 씨 가문은 최하위이지만 5대 문벌로 자리잡을 것이고 앞으로 더 올라갈 기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5대 문벌이다!오랜 역사를 이어온 5대 문벌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한 계단 올라서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오직 절세의 귀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하문성은 하구봉이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의 측근들 앞을 가로막자 안색이 험악해졌다.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문천을 노려보며 말했다.“셋째야, 너희들이 언제부터 외부인과 손을 잡았냐?”“너 같은 기회주의자는 이럴 때 줄 잘 서야 해! 안 그
”너 이 자식!”하문성은 하문천의 질책에 기가 막혀 하마터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그러나 하문성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위엄 있는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항도 하 씨 가문에서 데릴사위를 맞이한다는데 어째 난 몰랐을까?”“너희들 내 허락은 받았니?”“아니면, 내 허락 따위 필요없다는 거냐?”위엄 있는 목소리가 퍼지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흩어지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홀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흰옷을 입은 노부인의 십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녀의 얼굴은 바싹 말랐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필시 젊었을 때 엄청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또한 그녀의 온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장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절로 무릎을 꿇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노부인의 곁에는 흰옷을 입은 여자들 외에도 청포를 입고 냉담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항도 하 씨 가문 둘째 아들 하문산이었다.하문산은 줄곧 무학에 심취해 있었다.지금은 전성기 때만큼 보여줄 실력은 없지만 관자놀이에 우뚝 솟아오른 핏줄이 아직 그가 원기왕성하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여전히 그의 주먹은 소 한 마리도 때려잡을 정도로 건장했다.많은 사람들 한가운데 하현도 무표정한 얼굴로 노부인 일행을 쳐다보았다.노부인의 기세가 매서웠지만 그리 노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마치 땋은 머리를 하고 정좌해 있는 부처님처럼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 풍겨 나왔다.평소에 틀림없이 고고하게 아랫사람들을 부리며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게다가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거리낌 없이 하고 살았음에 틀림없다.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힘들고 무서운 사람이다.경력, 신분, 배경, 역량, 권위 모든 면에서 그녀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항도 하 씨 가문 하문준도 노부인 앞에서는 공손히 예를 갖추어
”퍽!”노부인은 손을 들어 올려 하문천의 뺨을 또 한 번 후려쳤다.하문천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고 그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하구봉이 얼른 다가와 아버지 하문천을 부축해 주었고 다행히 하문천은 바닥에 주저앉지는 않았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한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문천 같은 인물은 감히 따지지도 저항하지도 못했다.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지금 이 분은 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이며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누군가 하문천에게 큰 용기와 배짱을 준다고 해도 감히 저항하지 못할 큰 산이었던 것이다.“퍽!”“오늘은 내 생일이야. 이렇게 많은 손님들과 친척들이 왔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첫째와 넷째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것이냐?”“항도 하 씨 가문에 네 위에는 아무도 없느냐? 아니면 내가 곧 죽을 사람으로 보이느냐?”“퍽!”“언제 셋째 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형님한테 대들 수 있느냐? 그럴 자격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퍽!”“위아래도 모르느냐?”“퍽!”“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간 아주 혼쭐이 날 줄 알아라!”노부인은 한마디할 때마다 하문천의 뺨을 후려갈겼다.그러자 하문천은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렸다.“퍽!”“왜?”“아까 나 없을 땐 잘도 말하더니 이젠 할 말이 없느냐?”“또 해 보거라!”“어머니, 진정하세요.”하문천은 얼얼해진 얼굴을 만지다가 애써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쓸데없는 말 한 거 아니에요.”“어머니가 저한테 그러라고 해도 어떻게 감히 제가 어머니 생신날 소란을 피울 수 있겠어요?”“다만, 넷째는 그동안 항도 하 씨 가문을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였고 공로는 없어도 노고는 많았잖아요!”“넷째 부부는 또 십 년 전에 친아들이 죽는 사고도 겪었고 지금은 슬하에 수양딸 하나밖에 없어요!”“그래서 이제 넷째가 데릴사위를 얻어서 그의 뒤를 잇겠다는데 뭐 문제 있어요?”“정상적인 일 아닌가요?”“저도 부모 된 사람이라 공감해요!”
하문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어머니, 아무리 우리 가문의 최고 어르신 앞이라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넷째는 십 년 전 그 일을 이제 겨우 이겨내고 새 삶을 준비하고 있어요.”“우리 항도 하 씨 가문에게는 기쁜 일이고요!”“그는 지금 딸을 좋은 사람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해요. 사위를 얻는 일은 세상에 자랑스럽고 기쁜 일 아닙니까?”“사람으로서 당연한 거죠!”“어머니께서는 정녕 넷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 거예요?”“입 닥쳐라!”노부인은 앞으로 나서서 추상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여든 살이라고 해서 노망이라도 났다더냐?”“내가 넷째가 좋은 사위를 얻는 걸 뭐라고 하는 것이냐?”“사위를 상석에 앉히려는 건 결코 안 되는 일이야!”“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는 항도 하 씨 가문 직계만 될 수 있어!”“그것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핏줄을 잇는 방법이야!”“이견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이것이 우리 가문의 법규 위에 군림하는 철칙이니라!”“누가 감히 건드리려고 한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어!”“철칙 앞에서는 문주라도 이것을 어길 시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벌을 받을 것이야!”“셋째야. 한마디만 더 하면 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모자지간의 정도 모른다고 이 애미를 원망하지 말거라!”하문천은 이 말을 듣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입가에는 주체하지 못할 경련이 마구 일었다.그는 노부인의 얼굴에서 살의를 보았다.만약 여기서 그가 한마디라도 더 보탠다면 노부인은 정말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그러자 하문천은 하문준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얼굴을 가린 채 옆으로 물러섰다.하문천을 제압한 후 노부인은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는 하현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자네가 하현인가?”“내가 24시간 안에 여기를 떠나라고 분명 자네한테 전갈을 보냈을 텐데!”“자네는 내 명령을 거역했을 뿐만 아니라 내 호위병도 죽였어.”“하지만 넷째가 자네를 지지해 주었으니
”솨솨솩!”흰옷을 입은 여자들 십여 명이 동시에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들은 모두 굶주린 늑대처럼 죽일 듯이 하현을 쏘아보았다.그들이 하현에게 접근하려는 순간 갑자기 뒷마당 근처에서 아리따운 형체가 툭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그녀가 오른손을 흔들자 소매 끝에서 표창이 사정없이 날아왔다.은빛이 스쳐 지나갔고 흰옷을 입은 여자들은 흠칫 놀라며 몸을 피했으나 그들의 손목에는 검붉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흰옷을 입은 여자들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떠올랐다.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격을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누가 감히 내 사위를 건드리는 겁니까?”당난영이 차갑고 냉랭한 얼굴로 패기 넘치게 들어섰다.“문주 부인?”“제수씨?!”“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겁니까?”문주 부인 당난영이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하현을 직접 비호하는 모습을 보고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은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화 씨 가문, 최 씨 가문, 동 씨 가문 등 내빈들도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하현과 항도 하 씨 가문의 관계가 이렇게 깊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노부인은 하현에게 물러가라고 했지만 문주 부인은 그를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이 장면은 하구천을 비롯한 하문성 가족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당난영이 이렇게 나타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모두 물러서시오!”당난영이 하현 앞을 가로막고 서서 위엄 있는 표정을 지었다.“하현은 나한테 귀한 사위입니다. 그가 항성과 도성에 있는 한 내가 그의 뒤를 단단히 받치며 보호할 것입니다!”“이 사람을 못살게 굴려면 내 시체부터 밟아야 할 거예요!”당난영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속에 범접하지 못할 강력한 아우라가 넘쳐흘렀다.모두가 그녀의 확고한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하현을 건드리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당난영, 이 무슨 행패야?”노부인은 어리둥절한 가운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대체 이 무슨 어리석은 망
당난영의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그제야 사람들은 하문준이 항도 하 씨 가문 소주를 지명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사실 모든 사람들이 하구천을 항도 하 씨 가문 소주로 묵인했지만 한 번도 하문준의 승인을 받은 적은 없었다.그래서 하구천은 그렇게도 하문준의 양자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명분이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다!명분이 서야 하구천은 진정한 소주가 될 수 있었다.그동안 하구천은 하문준이 하수진을 내세워 자신과 라이벌 구도로 만들려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상황은 약간 불리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하구천의 생각으로는 절대 노부인이 소주 자리에 여자를 앉힐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노부인도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도 동의하지 않을 게 뻔했다.그런데 지금 문주 부인 당난영이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하현을 사위로 삼고 그를 상석에 앉히겠다고 하는 것이다.순간 하구천의 마음속에서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하현의 능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일단 하현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자신이 십수 년 동안 계획했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이런 생각이 미치자 하구천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했다.당난영의 말을 듣던 노부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던졌다.자신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는 하현에게 처음으로 진지한 눈길을 보냈다.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하현을 바라보던 노부인은 다시 하문준에게 시선을 돌렸다.“넷째야, 말해 보거라.”“문주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데릴사위로 삼아서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소주로 삼고 싶으냐?”지금까지 별달리 입을 열지 않았던 하문준이 마침내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뒤 노부인에게 깍듯이 예를 올렸다.“맞습니다. 제 아내의 생각이기도 하고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저도 하현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소주가 되었으면 합니다.”“저의 권한으로 하현
하현은 하문준이 하구천의 야심을 누르고 그에게서 모든 기회를 없애버리기 위해 이렇게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하문준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하현을 격랑에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오늘부터 하구천 집안은 자신과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다.하문준이 얼마나 고심했고 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하현도 잘 안다.하지만 어쨌든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하현은 앞으로 나가 자신이 데릴사위가 될 마음이 없음을 선언하려고 했다.하지만 당난영과 하수진의 간절한 눈빛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이 둘도 하현이 오늘 결국은 권력을 장악할 것이란 걸 확신했다.그러나 문제는 하구천을 상석에서 밀어내고 섬나라와 노국의 세력마저 항성과 도성에서 쳐내려면 결국 어쩔 수 없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닥쳐!”“모두들 입 닥쳐!”바로 그때 노부인이 손에 들고 있던 용머리 지팡이를 치켜들며 노한 기색을 드러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의 일에 언제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당신들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수하들일 뿐이야!”“10대 가문, 그리고 다른 4대 문벌, 4대 초석이 와도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그 누구도 없어!”노부인은 기분이 몹시 상한 모양이었다.“여기서 감히 누구라도 한마디만 더 하거라!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야! 지난 몇 년 동안 항성과 도성에서의 우정이 깨지더라도 날 탓하지 마!”화풍성이 간신히 애써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노부인, 우리가 항도 하 씨 가문 일에 간섭하려는 게 절대 아닙니다.”“우리는 그저 항성과 도성이 대하에서 영원히 편안하기를 바랄 뿐입니다!”“우리는 단지 항도 하 씨 가문이 해외 세력의 노리개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요!”“우리는 그 목표를 위해서 작은 힘을 보태고 있을 뿐입니다!”“모두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노부인은 화풍성의 말에 냉소를 흘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