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만.”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긴 칼 한 자루를 주우며 담담하게 말했다.“이거 천도 당신 칼이죠?”“난 무릎이 뻣뻣해서 꿇지 못합니다.”“그리고 난 스스로를 땅강아지와 개미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내가 저세상으로 모셔다드리면 어떻겠습니까?”“뭐? 날 데려다준다고?”천도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내 앞에서 이런 건방진 말을 지껄이는 사람은 몇 년 만에 처음이야. 네놈의 배포는 인정할 만하군.”“하지만 네놈이 노부인의 명령을 무시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결말은 당연한 일이지.”말을 하면서 천도는 허리춤에서 천천히 장도를 뽑아 들었다.“3분이면 돼.”“네놈 정도라면 3분 안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네놈을 처리한 후 노부인께 가서 사죄를 드려야겠어.”“네놈 같은 녀석을 열두 시간이나 더 살려 두었으니 말이야.”“그건 내 죄야.”“3분도 너무 길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미소 속에는 냉랭한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1분이면 됩니다.”“1분 안에 내가 당신을 처리한다면 아침 차를 느긋하게 마실 시간도 있겠군요.”“이 자식이!”하현의 말을 들은 순간 천도의 표정이 겨울바람처럼 매서워졌다.그는 마치 유령처럼 재빠르고 유려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하현이 있는 곳으로 돌진해 손에 든 칼을 휘둘렀다.하현도 천도 못지않은 차가운 기색을 띠며 날아오는 칼날을 세차게 쪼개 버렸다.두 사람의 기세가 허황된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직접 상대에게 살수를 쓴 것이었다.“촹!”칼날이 마주치자 큰 소리가 났고 강한 기류가 폭발하면서 두 사람의 몸은 심하게 요동치며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천도의 발바닥이 땅을 스치며 깊은 도랑 자국을 두 가닥 남겼고 그대로 7~8미터를 미끄러져 겨우 멈춰 섰다.천도의 희끗희끗한 얼굴에선 약간의 긴장감과 동요가 일었다.하현은 세 발짝 뒤로 물러섰고 한 발짝 물러설 때마다 깊은 발
”젊고 실력도 괜찮군. 젊은 사람들 중에선 단연 최고라 할 만해.”“그런데 안타깝게도 넌 무도 수련 기간이 너무 짧아.”천도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어쩌면 시간이 지난 뒤에는 네놈이 날 이길 수도 있겠지.”“하지만 오늘 여기서 네놈을 만난 이상 네놈은 죽을 운명이야!”말을 마치자마자 천도는 목을 살짝 비틀어 위협적으로 ‘두둑'소리를 내며 다시 기운을 모아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반짝였다.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람을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던데 쓸데없는 말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당신의 실력도 별 볼 일 없나 보군요.”하현은 천도에 대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다만 옳고 그름을 모르고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무술을 대하는 마음이 청정하지 않다는 것을 천도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이다.하현이 보기에 이런 사람은 전신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실력을 기대하기는 힘든 사람이었다.그러니 자신의 실력으로 이런 사람을 때려눕히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촥!”천도의 안색이 일순 험악해졌다.자신 앞에서 함부로 날뛰는 하현을 좋게 봐주려야 봐줄 수 없었던 것이다.순간 천도는 몸을 움직여 날아오르듯이 앞을 향해 돌진했다.“솩!”그의 손에 있던 칼자루가 칼집을 벗어나 하현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하현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장도를 든 손을 들어 올렸다.“촹!”양측의 날카로운 칼이 마주치며 불꽃이 튀었다.두 칼이 세 번째로 마주쳤을 때 하현이 가지고 있던 장도가 갑자기 ‘촤랑’소리를 내며 부러졌다.청삼을 입은 집사들이 들고 있던 칼을 아무거나 집어 들었더니 역시나 품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순간 하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이제야 도망가기엔 너무 늦지 않았어?”하현이 물러서는 것을 보자 천도의 몸이 물찬 제비처럼 날아올라 유성처럼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천도가 들고 있던 장도는 빛의 속도로 날아왔다.칼날을
”좋아, 아주 비열하고 좋아. 어디 해 보자고.”하현은 손을 뿌리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순간 그에게서 천도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마저 사라졌다.천도는 무덤덤한 기색을 띠며 하현의 표정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놈, 넌 잘 모를 것이다.”“우리 같은 사람은 주인의 명령이 곧 법이야. 오로지 주인의 그림자로 살면서 기꺼이 주인의 도구가 되는 거지.”“주인이 우리한테 누군가를 해결하라고 하면 우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바로 해결해야 해.”“이럴 때는 승패와 생사만 있을 뿐 명예와 도의는 없어, 알겠어?”하현이 냉담하게 말했다.“난 예전에도 그 딴 것에는 관심 없었어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당신과 난 원래 다른 사람이니까.”“당당한 전신? 흥! 소신도 없는 전신이 무슨 전신입니까?”천도는 하현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냉소만 흘렸다.그의 손에 있던 장도가 다시 하늘에서 휘몰아쳤고 순간 한기를 품은 칼날은 사방을 뒤흔들며 하현을 몰아붙였다.“촥!”천도가 세차게 칼날을 휘두르며 한걸음 내딛자 손에 있던 장도가 다시 사악하게 찢어지며 사방을 울렸다.“후!”온 기운을 모은 천도의 칼놀림에 장내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무서운 살기가 장내를 가득 채우며 보는 사람들마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칼날이 가는 곳마다 하현은 폭풍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처럼 사방팔방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살의를 가득 품은 칼날을 피했다.하현이 조금만 느리거나 집중력을 잃으면 금방이라도 그의 몸이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그러나 하현은 조금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칼날에 맞섰다.“촹!”칼날이 가까워지는 순간 하현은 오른발을 짚고 다시 땅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날아오는 천도의 칼에 맞섰다.많은 사람들의 눈 속에 충격의 물결이 일었다.하현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손쉽게 천도의 칼날을 막아내었다.저승사자를 몰고 온 듯 살의를 품은 천도의 칼이었다.그러나 하현의 유려
그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하현이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췄다면 처음부터 단칼에 천도를 대적할 수 있었다.하지만 처음에 하현은 뒤로 계속 물러나기만 했었다.게다가 손에 있던 칼은 한번 땅바닥에 떨어지기까지 했다.지금은 천도와 이렇게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처음엔 다들 하현이 금방 패배할 것이라고 믿었다.하수진도 눈앞의 광경을 긴장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썹을 찡그렸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으로서 그녀는 노부인의 사람인 천도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조심하지 않다가 천도의 칼에 맞을까 봐 그녀는 전전긍긍했었다.그러나 하현은 지금껏 조금도 다치지 않고 당당히 천도를 맞서고 있었다.오히려 하늘을 가를 듯 매서운 눈빛은 더욱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그때였다.천도의 몸이 어느새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고 발아래를 향해 힘껏 허공을 갈랐다.“받아랏!”단칼에 천지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독기를 품은 칼날이 하늘을 치솟아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천도는 또 한 번 묘수를 썼다.그럴 때마다 천지가 진동하는 것처럼 흔들렸다.마치 산과 바다를 갈라놓을 듯 단번에 하현을 두 동강이 낼 태세였다.천도의 묘수에도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장도를 번쩍이며 곧장 비스듬히 칼을 휘둘렀다.“촹촹촹!”허공에 뜬 천도의 칼은 순간 세 개의 칼이 되어 하현의 칼을 세 조각으로 쪼개버렸다.매서운 천도의 칼날에 하현의 몸이 계속 흔들렸다.순간 하현의 몸이 뒤로 두어 발짝 뒷걸음질쳤고 손에 든 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죽어!”천도는 계속 기세를 몰아붙였고 하현을 보고 냉소를 흘리며 다시 손에 든 장도를 휘둘렀다.하현의 몸이 흔들려 거의 방어를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하현은 가까스로 천도의 공세를 피했다.“촹!”천도의 칼이 날아들자 하현은 가지고 있던 칼을 가로로 놓아 다시 한번 천도의 공격을 헛되게 만들었다.“개자식!”여러 번의 공격에
”촹!”차가운 미소와 함께 천도의 손에 들려 있던 눈부신 칼날이 빛을 번쩍이며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이미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 마당에 천도는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숨겨 놓았던 섬나라 신당류 도법이 폭발한 순간이었다.칼놀림 하나하나가 텐푸 쥬시로를 능가할 만큼 노련하고 매서웠다.“촹촹촹!”칼날이 겹쳐질수록 천도의 공세는 더욱 매서웠다.그러나 하현은 이 순간에도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이미 당신이 신당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그렇다면 나도 이제 제대로 당신을 상대해 줘야겠군!”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의 기세가 갑자기 폭발했다.막혔던 둑이 터지듯 하현은 순간적으로 숨결을 내뿜었다.그와 동시에 하현의 손에 있던 칼이 천도의 옆구리에 꽂혔다.하현은 거침없이 칼을 든 손을 옆으로 그었다.“퍽!”눈 깜짝할 사이 하현의 칼이 그림을 그리듯 천도의 옆구리에서 춤을 추었다.하 총관 일행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기지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하현이 천도를 만나 이렇게 손쉽게 단번에 칼을 휘두르는 걸 보고 그들은 그제야 깨달았다.하현의 실력이 천도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자신의 시야에서 칼날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 천도는 안색이 급격히 일그러졌다.피할 겨를도 없었던 그는 얼른 칼을 빼들었다.“촹!”굉음과 함께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순간 무서운 회오리가 휘몰아쳐 사람들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 총관 일행도 먼지 속에 마른 기침만 할 뿐이었다.잠시 후 그들은 마침내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하현의 손바닥이 천도의 칼을 막았지만 두 사람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퍼져나갔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칼도 아닌 손바닥으로 칼에 맞서다니!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섬뜩할 정도였다!천도는 이제 슬슬 하현의 기세에 밀리기 시작했다.방금
천도는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혈이 가슴을 파고들다 노혈을 내뿜으며 포효하듯 터져 나왔다.“푸!”천도가 피를 토하자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숨 쉬는 것마저 잊은 사람처럼 숨을 죽였다.하수진이든 하 총관 일행이든 하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방금 이가 부러진 청삼을 입은 집사는 자신의 눈을 힘껏 비비며 자신이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몇 번이고 확인했다.천도가 누구인가?!항도 하 씨 가문 최고 중의 최고 고수였다!젊었을 때는 식칼을 들고 남규 거리를 휘젓던 사람이었다.그동안 어떤 패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했다.이렇게 거침없이 칼을 휘둘러 대던 사람이 방금 분명 상대를 몰아붙이다가 갑자기 결연한 얼굴로 변한 하현의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충격 그 자체였다.“말도 안 돼!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천도 어르신 같은 분이 어떻게 하현의 한 방에 나가떨어질 수가 있어?”“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혹시 다른 사람이 대신 손을 쓴 거 아니야?”멍하던 정신을 가다듬으며 하 총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그는 자신이 한 대 얻어맞은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천도 같은 인물이 한 대 얻어맞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 총관의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너무 충격적인 광경을 본 탓에 입이 바짝바짝 말라 입안에서 쓴맛이 날 지경이었다.그들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화끈화끈 벌겋게 달아올랐다.“당신은 안 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천도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1분이라고 하면 1분이야. 1초도 더 지나선 안 돼.”“당신은 섬나라 사람이면서 항도 하 씨 가문에서 그 오랜 세월을 잠복해 있었어. 신분을 속이고 말이지.”“그동안 무엇을 하려고
”안타깝게도 당신은 다시 깨어난다 해도 절대 모를 거야.”“당신 실력이 나보다 못하다는 걸.”“내가 진지하게 마음먹고 덤볐더라면 당신은 내 한주먹 거리도 안 돼.”“섬나라 검객의 수준이란 게 겨우 이 정도 수준인 거지.”하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난 당신네 섬나라 사람들한테 좀 실망했어.”“실력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쓸데없는 계략이나 펼치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그나저나 당신들은 왜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야? 왜 매번 날 죽이려는 거냐고?”“아쉽게도 당신들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야.”천도는 이를 악물고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이놈아, 이번에는 네놈을 죽일 수 없었지만.”“우리 섬나라에는 고수들이 많아.”“끊임없이 몰아치는 우리의 공격을 네놈이 막아낼 성싶으냐?! 천만에!”“네놈은 조만간 곧 죽을 거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안타깝지만 당신이 지금 곧 죽을 것 같은데!”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반쯤 무릎을 꿇은 천도를 발로 걷어서 넘어뜨렸다.천도는 또 ‘푸'하고 피를 뿜었다.“개자식!”하 총관 일행은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그들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고수가 뜻밖에도 하현에게 발길질을 당해 땅바닥에 널브러질 줄은 몰랐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지금 하현이 천도의 신분을 폭로해 버렸지만 하 총관 일행은 죽은 개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이 하현이었으면 했었지 천도가 이럴 지경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당신의 반란은 여기까지야. 여기서 끝내자고.”하현은 천도의 목을 우지끈 밟았다.“당신을 죽이면 텐푸 쥬시로는 마지막 희망을 잃게 되겠지.”“그러면 아마 텐푸 쥬시로도 순순히 십 년 전 일을 털어놓을 거야.”“그러니까 성가시니까 당신은 이제 그만 가 주어야겠어.”하현은 발밑에 힘을 주려고 몸을 슬쩍 기울였다.그러나 하 총관이 얼굴을 가린 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그만!”“개자식아
하현의 말에 하 총관의 얼굴에는 분노가 들끓었다.“하현, 네놈이 떠벌리기 좋아하고 공명심에 혹할 놈이란 건 진작에 알았지!”“그리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제재를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천도 어르신에게 섬나라 스파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거야!”“이런 핑계를 대고 겉으로 번지르르한 명분을 얻으려는 수작이잖아!”“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절대 네놈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천도 어르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함부로 지껄이지 마!”“그가 정말 섬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을 위해 오랫동안 성심을 다해서 노부인의 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그게 어떻다는 거야?”“노부인이 오랫동안 천도 어르신을 신뢰한다는 게 그가 충직하다는 증거 아니겠어? 아무 문제없다고!”“네놈이 함부로 지껄이면서 천도 어르신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한다면 네놈은 대하와 섬나라 국정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그렇게 된다면 네놈이 어떻게 책임을 질 거야?”“게다가 어쩌다 음모와 계략을 써서 네놈이 천도 어르신을 물리쳤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네놈의 진짜 실력이 아니야.”“네놈은 그냥 허풍이나 떨고 우쭐하는 놈에 지나지 않아! 분명해!”“날 더 이상 자극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네놈을 죽을 수도 있다고!”하 총관이 경고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자 하현에게 걷어차인 십여 명의 남자들이 이를 갈며 앞으로 나왔다.이번에는 그들도 많이 각성했는지 정신이 바짝 든 얼굴들이었다.그들은 몸에 지닌 총을 만지며 안전장치를 풀었다.하현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들 총 앞에서는 당당할 수 없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십여 명이 든 총구가 일제히 하현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고 천도는 어느새 오만방자한 눈빛으로 돌아와 사납게 웃어젖혔다.“하현, 넌 매우 센 놈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넌 여기서 죽을 운명인 것 같군!”“항성과 도성에서는 노부인이 날 비호해 주고 있지. 누가 날 건드릴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
하현의 말을 들은 황보동은 미간에 깊게 팬 주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유심히 보려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아줌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아주머니, 앞으로 옷을 입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티셔츠를 거꾸로 돌려서 입으면 계속 목을 조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숨쉬기도 힘들고 잠도 푹 잘 수 없습니다!”“그것만 주의하면 십중팔구는 아무 어려움 없이 푹 잘 수 있을 거예요.”“물론 계란은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하현의 말을 듣고 온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모두 어리둥절해져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잠시 후 엷은 미소가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다.가만히 눈을 들어 아줌마를 보니 역시나 옷을 거꾸로 입고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목을 조르고 있으니 당연히 호흡이 곤란해지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을 것이다.황보동은 이 아줌마보다 하현이 더욱 궁금해졌다.황보동은 일단 아줌마에게 부적을 써서 건네주었고 이윽고 두 번째 손님이 다가왔다.두 번째 손님은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는데 머리가 좀 헝클어져 있었고 미간에 약간 거뭇거뭇한 빛이 돌았다.몸에는 약취가 풍겨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황보동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나침반을 꺼내 잠시 바라본 뒤 담담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자네, 이분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 보게.”하현은 노인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노인은 아마 며칠 전에 외출할 때 개똥을 밟았고 실수로 또 시궁창에 빠졌을 겁니다.”“그로부터 며칠 동안 운이 없게도 외출할 때마다 크고 작은 재해를 입었습니다.”“물만 마셔도 이가 시릴 지경일 겁니다.”“요즘 아주 운이 나쁜 일 연속이었을 거예요.”“해결책은 간단합니다.”“집으로 돌아가 목욕재계하고 사흘 밤낮으로 쉬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그리고 앞으로 외출할 때는 하늘만 쳐다보지 마세요.”“척추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를 찾아가 물리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병이
”제가 사기꾼일까 봐 집복당의 이름을 빌려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셨던 거죠.”“그래서 이천억이란 금액을 불러 절 놀래켰고요.”“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니 안심할 수 있는 거죠.”“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없다면 대사님의 손녀를 구하려고 할 테고요. 혹시라도 제가 구한다면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다는 얘기가 되니 집복당의 새 주인이 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거죠.”“한마디로 황보대사님이 매우 고심하고 계시다는 뜻이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결국 대사님 같은 분은 스스로 최소한의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게 있는 겁니다. 돈 때문에 그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거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황보동을 바라보았다.풍수를 보러 온 십여 명의 손님들이 하현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어쩐지 평소 붙임성 좋고 환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황보대사가 이상하리만큼 싸늘하게 대하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로군!하현의 말을 듣고 황보대사의 의도를 간파한 간민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소를 떠올렸다.그녀도 분명 황보동의 인품을 믿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이보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도 능력이지만 풍수지리사는 입만 번지르르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진짜 실력이 좋아야 하는 거야.”“만약 자네가 입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라면 남을 살리고 도와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 입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도 잃을 수가 있어.”황보동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일 방해하지 말고 어서 썩 꺼져!”말을 하면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나침반을 내려놓고 붉은 종이를 꺼내 부적을 쓰려고 했다.“제 추측이 맞다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대사님은 이 아줌마가 악습에 깊이 마음을 다쳤다고 판단해 이 부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할 겁니다.”나침반을 든 황보동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황보동은 냉담한 눈빛으로 얼굴도 들지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우리 집복당은 시장에서 파는 허드레 물건이 아니야. 이천억! 다른 가격으로는 안 팔아!”“어때? 살 거야? 말 거야?”차갑고 매마른 말투였다.하현은 눈동자를 살짝 움츠렸다.상대는 분명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간민효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황보대사님, 우리 장사꾼들은 신용을 중시합니다.”“정직이 천하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어제 분명 이백억에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왜 갑자기 이천억이 된 거죠?”“전 이미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이곳에 대한 평가를 꼼꼼히 진행했어요.”“이곳은 많아 봐야 백오십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어요. 손볼 곳도 너무 많고요.”“어르신이라 아주 후하게 쳐서 이백억을 제시한 거예요.”“제 호의를 무시한 채 이렇게 얼토당토않는 가격을 제시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간민효는 돈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버릴 만큼 많지는 않았다.특히 황보동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이백억은 어제 가격이고.”“이천억은 오늘 가격이야.”“집복당은 우리 황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이야. 내가 원하는 만큼 받아야 팔 수 있어.”“당신이 아무리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물론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사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내 손녀만 치료해 준다면 공짜로도 줄 수도 있어.”황보동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뭔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어온 아줌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아줌마는 최근 밤마다 악몽을 꾸고 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보동은 나침반을 꺼내 빙빙 돌리며 계속 미간을 찌푸렸다.황보동이 자신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간민효도 화가 나기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저릿해져 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흥!”난처해하는 하현의 모습을 보고 간민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복당은 금정에서 이미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금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었어.”“옛날에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다들 어마어마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내가 어릴 때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뭔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안타깝게도 지금 집복당의 주인인 황보동은 한동안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과학의 길만 좇았지.”“그러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아무도 이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자 다시 돌아왔어.”“하지만 그의 풍수지리술은 그의 조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어서 결국 점점 몰락하게 되었지.”“10여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대부분이 이 근처 오래된 이웃뿐이야.”“첫째는 가까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고 둘째는 가끔 좋은 날과 길일을 보는 데는 아주 뛰어난 풍수지리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야. 셋째는 아주 싸다는 매력 때문이지.”“다만 이렇게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아서 아마 결국 사라질 거야.”“참, 반년 전 황보동의 유일한 손녀이자 집복당의 9대 계승자, 황보정이 갑자기 두 눈을 잃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 뭐야.”“황보정은 집복당을 계승할 만큼 풍수지리사의 자질이 뛰어났어. 그래서 집복당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금정 일부 명문가들도 관심을 가졌고.”“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출사를 했을 때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어떤 원인도 찾을 수가 없었지.”“집복당 일가가 여러 해 동안 천기를 누설한 결과라는 말도 있어.”“황보동도 풍수지리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대.”“그래서 지금 황보동도 많이 낙담한 상태야.”“이 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