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의 말에 하 총관의 얼굴에는 분노가 들끓었다.“하현, 네놈이 떠벌리기 좋아하고 공명심에 혹할 놈이란 건 진작에 알았지!”“그리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제재를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천도 어르신에게 섬나라 스파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거야!”“이런 핑계를 대고 겉으로 번지르르한 명분을 얻으려는 수작이잖아!”“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절대 네놈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천도 어르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함부로 지껄이지 마!”“그가 정말 섬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을 위해 오랫동안 성심을 다해서 노부인의 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그게 어떻다는 거야?”“노부인이 오랫동안 천도 어르신을 신뢰한다는 게 그가 충직하다는 증거 아니겠어? 아무 문제없다고!”“네놈이 함부로 지껄이면서 천도 어르신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한다면 네놈은 대하와 섬나라 국정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그렇게 된다면 네놈이 어떻게 책임을 질 거야?”“게다가 어쩌다 음모와 계략을 써서 네놈이 천도 어르신을 물리쳤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네놈의 진짜 실력이 아니야.”“네놈은 그냥 허풍이나 떨고 우쭐하는 놈에 지나지 않아! 분명해!”“날 더 이상 자극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네놈을 죽을 수도 있다고!”하 총관이 경고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자 하현에게 걷어차인 십여 명의 남자들이 이를 갈며 앞으로 나왔다.이번에는 그들도 많이 각성했는지 정신이 바짝 든 얼굴들이었다.그들은 몸에 지닌 총을 만지며 안전장치를 풀었다.하현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들 총 앞에서는 당당할 수 없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십여 명이 든 총구가 일제히 하현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고 천도는 어느새 오만방자한 눈빛으로 돌아와 사납게 웃어젖혔다.“하현, 넌 매우 센 놈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넌 여기서 죽을 운명인 것 같군!”“항성과 도성에서는 노부인이 날 비호해 주고 있지. 누가 날 건드릴
천도가 죽었다!천도의 얼굴에는 충격과 분노, 원망이 버무려진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신분을 숨기고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치밀하게 계획했던 일이 하현의 손에 속절없이 당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하 총관이 이미 노부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누차 경고까지 했다.그래서 천도는 감히 하현이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하현은 그 누구의 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뜻대로 해 버렸다.누가 이런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섬나라에선 네놈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이 자를 죽이지 않으면 필시 섬나라가 망하게 될 거야!”칼날이 가득 박힌 듯한 그의 눈동자에 분노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울분과 분노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한 깊은 걱정까지 담겨 있었다.그러다 천도는 마지막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하 총관 곁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시간이 멈춘 듯 깊은 정적이 흘렀다.천도...전설 속에 존재하던 항도 하 씨 가문 최고 고수.오랫동안 항도 하 씨 가문에서 신분을 속이고 잠복해 있던 신당류의 종주.일대의 전신!시대의 검객!천도가 이렇게 패하다니!?이대로 죽다니!?게다가 하현의 발에 목이 밟혀 굴욕적인 최후를 맞이하다니!하 총관 일행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그들은 자신들의 경고에도 하현이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충격적인 결말을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도대체 하현의 이런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하수진마저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녀의 머릿속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하현이 천도를 죽였다는 건 노부인과 완전히 척을 지겠다는 의미다.“죽여!”“저놈을 죽이고 천도 어르신의 원수를 갚아라!”하 총관 일행은 너 나 할 것 없이 분노를 씹어 먹은 사람처럼 으르렁거렸다.“어서 쏴! 갈기갈기 찢어 버려!”눈앞에서 한바탕 격전이 벌어질 판이었다.만약 자신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난 항도 하 씨 가문을 대신해 오랜 스파이 한 명을 처리했어요.”“고맙다고 하면 그만이지 뭘 이렇게 말들이 많아요.”“정말 내가 당신들을 죽이지 못할 줄 알아요?”하 총관은 한기가 가득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일을 언제 외부인이 이렇게 왈가왈부하게 된 거야?”“우리 항도 하 싸 가문에 함부로 끼어든 결과가 어떨지 네놈이 생각이나 해 봤어?”“얼른 무릎이나 꿇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널 상대해 줄 테다! 그때 가서 날 탓하지나 마!”하 총관은 위협적인 얼굴로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언제부터 하인들이 감히 항도 하 씨 가문을 대표한다 어쩐다 큰소리를 치게 된 거지?”위엄 있고 당당한 목소리였다.순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돌아서서 산길 쪽을 쳐다보았다.말끔한 당나라 복장을 한 하문준이 뒷짐을 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그는 곁에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마치 정원을 산책하듯 여유로운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그러나 그의 몸에서 풍기는 항도 하 씨 가문의 위엄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졌다.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다가와 차가운 눈빛으로 하 총관과 그의 일행들을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의 체면을 봐서 한 손만 자르는 걸로 하고 그만 꺼져.”“문주 어르신!”하 총관은 이를 살짝 깨물었다.분명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노부인을 등에 업고 항도 하 씨 가문을 호령했었다.그러나 문주 앞에서는 감히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그렇다 하더라도 순순히 손 한 쪽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하 총관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제가 여기 온 것은 노부인의 뜻이었습니다!”“문주 어르신은 노부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싶으면 따르지 않으셔도 됩니다.”“제 손을 자르시려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하지만 정녕 노부인과 척을 질 생각이십니까?”하문준은 담담하게 말했다.“척을 진다?
”네놈이!”하문준이 발을 내디디며 미친 듯이 포효했다.사방 10여 미터의 모래와 자갈들이 흩날렸다.많은 사람들은 문주의 기세에 놀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이 광경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청삼을 입은 집사들은 총을 든 채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입가에는 선혈이 가득 고여 있었다.그때 하 총관의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순간 그의 무릎이 ‘풀썩’하고 주저앉았다.그는 무릎을 꿇고 싶어서 꿇은 게 아니었다.하문준이 폭발하자 그 기세에 눌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게 되자 결국 무릎을 내어 놓은 것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기세는 역시 달랐다!어느 것에도 비할 데 없이 강했다!방금 숨을 거둔 천도도 충분히 기세가 강한 사람이었다.하지만 문주가 보여준 기세는 아까 천도가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하 총관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하현은 하문준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하문준이 비범한 사람이라는 건 분명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자신이 지금까지 문주를 너무 과소평가했음을 그제야 하현을 깨달았다.상위 10대 가문, 5대 문벌, 4대 초석...상위권 권력자들 중 그 누구도 쉬운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오늘 하문준이 나타난 것은 그가 노부인의 체면을 더 이상 세워 주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하문준은 뒷짐을 지고 무릎을 꿇은 하 총관을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말해 봐. 하 총관은 왜 이렇게 나한테 무례한 거지?”“죄, 죄송합니다. 문주 어르신!”하 총관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고 얼굴은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제가 어르신께 많은 심려를 끼쳤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지금 바로 물러가겠습니다!”하 총관은 하문준이 평소에 점잖고 말수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 기세를 제압하는 능력은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하문준이 제대로 폭발하자 하 총관은 그동안 자신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이것은 그가 한평생 갈고닦아도 넘볼 수 없는 격차였다!“문
천도가 숨을 거둔 날 오후.하현은 항성에 있는 마리아 병원에 나타났다.이곳은 항성에서 가장 유명한 개인병원이자 항도 하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이었다.첨단 장비와 우수한 의료 기술 때문에 유명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항도 하 씨 가문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관리가 용이하다는 것이었다.이 지역을 관리하는 주체는 항도 하 씨 가문 호위대였고 하구봉이 그 책임자였다.텐푸 쥬시로는 항성으로 끌려온 후 줄곧 반쯤 혼수상태에 있었다.하구봉은 마리아 병원의 최상층을 텐푸 쥬시로의 특별 관리 구역으로 사용했고 얼마나 많은 호위대들이 배치되었는지 모르지만 파리 한 마리도 여기서 날아갈 수 없을 만큼 경계가 삼엄했다.하현이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눈동자가 얼마나 많은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이들 눈동자에서는 말할 수 없는 적개심과 분노가 녹아들어 있었다.누굴 찾고 말고 할 것 없이 이 사람들이 바로 섬나라에서 유명한 저격수들임을 하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신당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신당류가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킬러들이었다.물론 그 배후에는 5대 문벌과 5대 유파가 이들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여기는 항성이고 텐푸 쥬시로가 하현의 손에 있기 때문에 이 쥐새끼 같은 사람들은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했다.하현은 쥐새끼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문 앞에 서서 하구봉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하구봉은 왠지 주위의 음산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하현을 보자마자 하구봉은 쓴웃음을 금치 못하며 다가와 말했다.“하현, 내가 요 며칠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하구천과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서 항성과 도성에서 날 못 쫓아내 안달이라고!”“가장 힘든 건 텐푸 쥬시로를 지키는 거야. 그를 지키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하루에 최소 50명 이상의 섬나라 사람들이 덤벼든다니까.”“닌자, 킬러, 음양사, 검객... 아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이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하현, 농담하지 마!”“우리가 텐푸 쥬시로의 스승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아니, 설령 우리가 안다고 해도 텐푸 쥬시로는 한 세대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전신이자 최고의 검객이라고.”“이런 사람을 어떻게 24시간 이내에 데려올 수가 있어?”“그리고 당신은 항성을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를 처리했다는 거야?”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그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가 오늘 아침에 제 발로 날 찾아왔어. 그래서 난 처리했을 뿐이야.”“텐푸 쥬시로의 스승은 당신도 아는 사람이야.”“그는 바로 노부인 곁에서 여러 해 동안 잠복해 있던 천도야.”‘천도'라는 두 글자를 듣게 되자 하구봉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천도는 노부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며 노부인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수도 없이 해결한 사람이었다.그리고 천도는 하구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고 하구천 진영에서 빼어난 실력을 가진 전신이었다.그런데 하현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건가?천도가 바로 신당류의 종주라고?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던 하구봉은 계속 의아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한테 거짓말할 필요 없어.”하현은 하구봉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이전에는 천도라는 스파이가 있어서 이런 일을 할 때 조금 조심스러웠을 수 있어.”“하지만 이젠 천도도 죽었으니 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텐푸 쥬시로의 입을 비틀어 십 년 전 그 일의 진상을 알게 될까 무척 두려울 거야.”“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텐푸 쥬시로를 구출하려 하거나 그를 해치울 거야.”“지금 밖에 적어도 백 명은 넘게 깔렸어.”“마음을 단단히 먹어.”“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공로가 될 거야.”“알겠어. 호위대는 며칠 안에 모두 출동할 거야.”하구봉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텐푸 쥬시로가 노부인의 생신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당신 뒤에 퇴로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펴야겠지.”“왜냐하면 당신은 스스로가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걸 알아야 입을 열 사람이니까.”하현의 말에 텐푸 쥬시로는 눈동자를 설핏 움츠렸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군.”“아무 의미 없는 말이야.”하현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단지 당신한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오늘 아침에 내가 사람을 한 명 죽였거든.”“그 사람 이름이 천도라고 하더군.”천도라는 두 글자가 하현의 입에서 나오자 텐푸 쥬시로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는 발이 묶인 상태였기 때문에 순간 몸이 튕겨졌다.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텐푸 쥬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른 사람이 알려줬더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하지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 난 믿을 수밖에 없어.”“그런데 스승님의 신분이 어떻게 노출되었지?”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날 이길 수 없어. 바람을 맞받아치는 기술을 보였으니 자연스럽게 노출된 거지.”텐푸 쥬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스승님은 20년 넘게 항도 하 씨 가문에 잠복해 있었어. 그동안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칼솜씨를 연마했어.”“그런데 지금 보니 스승님은 결국 성공을 하지 못했군그래.”“스승님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지금 밖에선 날 죽이려는 사람이 아주 득실득실하겠군, 안 그래?”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왜 사람들은 당신을 구하려고 하지 않지?”텐푸 쥬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스승님이 계셨다면 아마 난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존재였겠지.”“그러나 스승님은 정체가 탄로 난 채 돌아가셨어.”“그러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 그들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거야.”“날 죽이는 게 여러모로 간단하겠지.”“내가 죽어 버리면 많은 일들이 그냥 미궁에 빠지게
하현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비명횡사'라는 조직을 당신이 설립했어?”“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텐푸 쥬시로의 눈동자에 지난날을 돌아보는 듯한 회한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비명횡사'라는 조직은 당시 우리 섬나라가 겪었던 경제 불황 때문에 결성되었어.”“그때 고위층들은 다시 전쟁을 일으켜 대하 전장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을 했어.”“그러나 상황이 달라졌어. 대하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거지. 지금처럼 강성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섬나라가 마음대로 억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어.”“당시 고위층들은 대하를 무찌르려면 먼저 대하의 총아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했어.”“조정에서부터 재계, 명문가, 과학계 등...”“간단히 말해서 그 당시 대하의 거물들이 우리 섬나라의 블랙리스트에 다 올랐어.”“‘비명횡사'의 결성은 대하의 총아들을 제거함으로써 대하의 정치, 경제 등을 급속히 쇠락시키기 위한 것이었지.”“조직의 멤버는 섬나라 5대 문벌, 6대 유파 출신들이었어.”“당시 섬나라 최연소 전신이라 불리던 나도 당연히 고위층에 뽑혀 조직의 수장이 되었지.”하현이 눈에 차가운 빛이 가득 퍼졌다.“그렇군. 20년 전부터 우리 대하에는 미래가 기대되는 총아들이 있었어. 그런데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 등으로 비명횡사했어. 그리고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지.”“이 모든 게 당신들 작품이란 거지?”“맞아.”텐푸 쥬시로는 군말 없이 깔끔하게 인정했다.“내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지금의 ‘비명횡사'로 이름을 바꾸었지. 이의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해야 할 일들을 수행했어.”“그 시절 난 대하의 저명한 사람들 오십 명쯤이나 죽였으니 우리의 작전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과거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말을 늘어놓는 텐푸 쥬시로의 눈에 과거 찬란했던 영광의 빛이 떠올랐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나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촉망받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었어.”“특정 인물을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