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농담하지 마!”“우리가 텐푸 쥬시로의 스승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아니, 설령 우리가 안다고 해도 텐푸 쥬시로는 한 세대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전신이자 최고의 검객이라고.”“이런 사람을 어떻게 24시간 이내에 데려올 수가 있어?”“그리고 당신은 항성을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를 처리했다는 거야?”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그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가 오늘 아침에 제 발로 날 찾아왔어. 그래서 난 처리했을 뿐이야.”“텐푸 쥬시로의 스승은 당신도 아는 사람이야.”“그는 바로 노부인 곁에서 여러 해 동안 잠복해 있던 천도야.”‘천도'라는 두 글자를 듣게 되자 하구봉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천도는 노부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며 노부인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수도 없이 해결한 사람이었다.그리고 천도는 하구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고 하구천 진영에서 빼어난 실력을 가진 전신이었다.그런데 하현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건가?천도가 바로 신당류의 종주라고?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던 하구봉은 계속 의아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한테 거짓말할 필요 없어.”하현은 하구봉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이전에는 천도라는 스파이가 있어서 이런 일을 할 때 조금 조심스러웠을 수 있어.”“하지만 이젠 천도도 죽었으니 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텐푸 쥬시로의 입을 비틀어 십 년 전 그 일의 진상을 알게 될까 무척 두려울 거야.”“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텐푸 쥬시로를 구출하려 하거나 그를 해치울 거야.”“지금 밖에 적어도 백 명은 넘게 깔렸어.”“마음을 단단히 먹어.”“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공로가 될 거야.”“알겠어. 호위대는 며칠 안에 모두 출동할 거야.”하구봉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텐푸 쥬시로가 노부인의 생신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당신 뒤에 퇴로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펴야겠지.”“왜냐하면 당신은 스스로가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걸 알아야 입을 열 사람이니까.”하현의 말에 텐푸 쥬시로는 눈동자를 설핏 움츠렸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군.”“아무 의미 없는 말이야.”하현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단지 당신한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오늘 아침에 내가 사람을 한 명 죽였거든.”“그 사람 이름이 천도라고 하더군.”천도라는 두 글자가 하현의 입에서 나오자 텐푸 쥬시로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는 발이 묶인 상태였기 때문에 순간 몸이 튕겨졌다.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텐푸 쥬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른 사람이 알려줬더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하지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 난 믿을 수밖에 없어.”“그런데 스승님의 신분이 어떻게 노출되었지?”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날 이길 수 없어. 바람을 맞받아치는 기술을 보였으니 자연스럽게 노출된 거지.”텐푸 쥬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스승님은 20년 넘게 항도 하 씨 가문에 잠복해 있었어. 그동안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칼솜씨를 연마했어.”“그런데 지금 보니 스승님은 결국 성공을 하지 못했군그래.”“스승님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지금 밖에선 날 죽이려는 사람이 아주 득실득실하겠군, 안 그래?”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왜 사람들은 당신을 구하려고 하지 않지?”텐푸 쥬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스승님이 계셨다면 아마 난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존재였겠지.”“그러나 스승님은 정체가 탄로 난 채 돌아가셨어.”“그러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 그들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거야.”“날 죽이는 게 여러모로 간단하겠지.”“내가 죽어 버리면 많은 일들이 그냥 미궁에 빠지게
하현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비명횡사'라는 조직을 당신이 설립했어?”“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텐푸 쥬시로의 눈동자에 지난날을 돌아보는 듯한 회한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비명횡사'라는 조직은 당시 우리 섬나라가 겪었던 경제 불황 때문에 결성되었어.”“그때 고위층들은 다시 전쟁을 일으켜 대하 전장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을 했어.”“그러나 상황이 달라졌어. 대하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거지. 지금처럼 강성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섬나라가 마음대로 억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어.”“당시 고위층들은 대하를 무찌르려면 먼저 대하의 총아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했어.”“조정에서부터 재계, 명문가, 과학계 등...”“간단히 말해서 그 당시 대하의 거물들이 우리 섬나라의 블랙리스트에 다 올랐어.”“‘비명횡사'의 결성은 대하의 총아들을 제거함으로써 대하의 정치, 경제 등을 급속히 쇠락시키기 위한 것이었지.”“조직의 멤버는 섬나라 5대 문벌, 6대 유파 출신들이었어.”“당시 섬나라 최연소 전신이라 불리던 나도 당연히 고위층에 뽑혀 조직의 수장이 되었지.”하현이 눈에 차가운 빛이 가득 퍼졌다.“그렇군. 20년 전부터 우리 대하에는 미래가 기대되는 총아들이 있었어. 그런데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 등으로 비명횡사했어. 그리고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지.”“이 모든 게 당신들 작품이란 거지?”“맞아.”텐푸 쥬시로는 군말 없이 깔끔하게 인정했다.“내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지금의 ‘비명횡사'로 이름을 바꾸었지. 이의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해야 할 일들을 수행했어.”“그 시절 난 대하의 저명한 사람들 오십 명쯤이나 죽였으니 우리의 작전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과거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말을 늘어놓는 텐푸 쥬시로의 눈에 과거 찬란했던 영광의 빛이 떠올랐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나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촉망받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었어.”“특정 인물을
”어린 아기를 죽이는 데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냥 교통사고를 낸 거지.”“결국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렇게 문주의 아들은 죽었어.”“내 마음속 최고 악몽이었어.”“내가 그다지 예의와 염치가 있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아기를 죽인다는 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야.”“그래서 그날부터 난 조직을 해체하고 내 본연의 신분을 회복했지.”텐푸 쥬시로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누가 하문주의 어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어?”“말했잖아!”텐푸 쥬시로는 화들짝 놀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천도 스스로가 결정한 일이었다고!”“이렇게 해야 항도 하 씨 가문에 서로를 물어뜯는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야!”하현은 조금 의아했다.이 일에는 십중팔구 더 큰 손이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문준이 어린 아들을 잃는 일에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은 바로 장손 하구천이었다.그런데 지금 텐푸 쥬시로는 천도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다.“증거가 있어?”잠시 침묵하던 하현이 입을 열었다.“있어. 내 목숨만 보장해 준다면 증거를 줄게.”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화제를 바꾸었다.“그럼 이제 세 번째로 넘어가 보자고.”“당신 스승은 항도 하 씨 가문에서 수년간 잠복해 있었어. 도대체 뭘 위해서 그랬던 거야?”“그는 왜 하문준의 어린 아들을 죽이라고 한 거지?”텐푸 쥬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스승님께서 말씀하셨어. 대하에는 10대 최고 가문, 5대 문벌, 4대 초석이 있다고. 시간이 갈수록 그 세력들은 점점 더 강해질 거라고!”“조만간 대하가 세계 정상에 서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하셨어.”“그것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하 내에서 끊임없이 다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그래서 스승님은 항도 하 씨 가문을 택하셨던 거야. 그는 내부적으로 항도 하 씨 가문을 조종하여 항성과 도성이 대하 본토와 가까
한 시간 후 하현은 굳은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그의 뒤를 따르던 하구봉은 사방이 모두 자기편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긴장이 풀리는 듯 감추고 있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었다.“하현, 방금 텐푸 쥬시로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해?”“십 년 전 그 일 말이야. 천도가 정말로 항도 하 씨 가문을 멸망시키기 위해 한 일일까?”하현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그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거야. 어찌 되었건 지금 그는 우리 손아귀에 있고 그의 가장 큰 뒷배도 죽었으니까.”“살아남으려면 우리한테 협조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십 년 전 일에 대해 거짓말할 필요는 없지.”“그에게 좋을 게 없거든.”하구봉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다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하구천은?”“하구천이 이렇게 빨리 부상할 수 있었던 게 정말로 섬나라 사람들이 뒤를 받쳐 주어서일까?”“만약 이 일이 폭로된다면 항성과 도성, 항도 하 씨 가문에는 큰 지각 변동이 생길 거야.”“지각 변동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거지 뭐.”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이 일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해. 어떤 경우에도 하구천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안 돼.”“만약 하구천을 막지 않으면 항성과 도성에는 더 큰 혼란이 닥칠 거야.”예전에 하현은 하구천이 상석에 오르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단지 항도 하 씨 가문 내부 권력 투쟁에 관련된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섬나라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잠복해 있었다는 게 폭로된 지금 하구천의 지위 여부는 항성과 도성, 그리고 대하 남문 전체의 문호와도 관련된 일이 되었다.하구봉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구천 뒤에 정말 섬나라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은 하구천을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할 거야.”“그리고 한 가지 더. 텐푸 쥬시로가 말한 건 모두 대략적인 상황일 뿐 세부 사항이나 증거가 없다는 거야.”“십 년 전 일이든 하구천의 일이든 우리는 텐푸 쥬시로의 말만
”그리고 그가 우리한테 자세한 세부 사항과 증거들을 줬다는 건 이미 섬나라 계획을 망치게 하고 섬나라 고위층을 팔아먹은 셈이 돼.”“이런 상황에서 텐푸 쥬시로는 더 이상 섬나라 고위층들의 신임을 얻기 어려워.”“우리가 다시 한번 미끼를 던져서 텐푸 쥬시로가 신당류 사람들을 데리고 다른 5대 유파들과 싸우게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그때 텐푸 쥬시로가 우리한테 사람을 파견해 달라고 하면 보내주고 총을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면 돼.”“우리는 텐푸 쥬시로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텐푸 쥬시로가 돌아오게 만들 방법을 강구해야 해.”“섬나라 사람들이 하구천 하나로 우리 대하 정세를 어지럽히려고 했어.”“그럼 우리는 텐푸 쥬시로를 보내는 거지. 벌여 놓은 판에서 누가 더 잘 노는지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그래서 문주께서 아무 이견이 없으시다면 난 정말 텐푸 쥬시로를 풀어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물론 하현은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하지는 않았다.텐푸 쥬시로는 풀려난 이후에 감히 다시 되돌아 그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그러나 하현이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는다면 그것은 손바닥 한번 휘적거리는 일일 뿐이어서 별로 힘들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하현 당신은 역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작전을 짜고 있었군. 이미 승리를 거둔 거나 마찬가지야.”어디 하나 구멍 없이 치밀한 하현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하구봉은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하구봉은 감탄해 마지않는 얼굴로 말했다.“섬나라 사람들이 우릴 상대할 때 쓰던 방법이야. 우린 지금 되갚아 주고 있는 거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어유, 제법인데!하현은 웃으며 하구봉의 어깨를 툭 쳤다.“이제야 당신 아버님 수준으로 올라왔구만!”하구봉은 이 말을 듣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마침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제야 하구봉은 어정쩡한 표정을 고쳐잡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다른 일 없으면 난 이만 문주께 가서 말씀드릴게.”하
”곤, 바로 이놈이야! 날 계속 괴롭힌 사람이!”“이놈이 우리 친구 무카이 나오토 일가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오빠를 바깥으로 유랑하게 만든 장본인이야.”“간도 크게시리 내 얼굴을 때린 놈이라구!”“네가 나 대신 좀 혼내줘!”검은 옷을 입은 청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하현을 노려보았다.“야! 네가 우리 홍두 누나 몸에 손을 댄 놈이야?!”“정말 위풍당당하고 패기가 넘치군!”“능력이 있거든 또 덤벼 보시지! 나랑 곤한테 덤벼 보라고!”검은 옷을 입은 청년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껄렁껄렁하게 하현 앞으로 걸어왔다.동시에 그는 가늘고 긴 시가에 불을 붙여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신 뒤 하현의 얼굴에 연기를 가득 뿜었다.“어서 덤벼 봐! 나한테 덤벼 보라고? 날 때려 보시지!”“당신이 능력 있는지 없는지 한번 보여 달라고?”하현은 이 녀석이 진홍두의 총알받이임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린놈을 괴롭히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뭐? 어린놈?”“이 자식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금 뭐라는 거야?!”하유곤은 자신을 무시하는 하현에게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그는 하현이 어떤 신분이든 상관하지 않는 인물이었다.감히 자신에게 이렇게 도발하는 사람은 반드시 밟아 죽여야 직성이 풀렸다.어찌 되었든 하유곤은 항도 하 씨 가문 둘째 아들 하문산의 외아들이었다.그는 항성과 도성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며 거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다만 최근에 줄곧 외국으로 유학을 가 있었고 며칠 전 노부인의 생신 때문에 서둘러 귀국한 것이었다.“어서 밟아 버려!”“무슨 일 생기면 이 하유곤이 다 책임질게!”하유곤이 흥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어서 처리해!”“본때를 보여주라고!”화려한 옷을 입은 수십 명의 남녀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그들은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다.아마도 모두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인 모양이었다.그들은 평소에도
”유곤!”하유곤이 하현의 주먹에 맞아 뺨이 날아가는 것을 본 진홍두는 공포에 휩싸이며 급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그녀는 오늘 특별히 하유곤을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이런 꼴을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개자식!”“감히 우리 유곤을 때려!”하유곤은 얼굴을 감싸쥔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그리고 분노를 뿜어내듯 큰소리로 포효하며 발악했다.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비슷한 수모조차 당한 적 없는 하유곤이었다.지금 눈앞에 일어난 일은 단순히 하유곤의 얼굴을 때린 것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과 체면을 짓밟은 행동이었다.순간 하유곤은 분노로 들끓는 얼굴로 땅바닥에 두 동강 난 쌍절곤을 집어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퍽!”하현은 또 한 번 무덤덤한 손놀림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하현, 이놈이!”이를 바라보는 진홍두의 눈가에 분노의 경련이 폭풍처럼 몰아쳤다.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하유곤의 얼굴은 더욱 흉악해졌고 그는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양쪽 얼굴에 붉은 손자국이 벌겋게 존재감을 드러낸 모습이 여간 낭패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하현이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으며 말했다.“하유곤, 맞지? 항도 하 씨 가문 하유곤!”“성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모양이야.”“뭐, 더 이상 따지고 싶은 마음도 없어.”“어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여기는 당신이 입을 놀릴 만한 곳이 아니야.”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하현의 모습에 하유곤은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고 있었다.그는 교만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청년이었다.그 어떤 마음으로도 지금의 심정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하현 이놈을 죽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본때를 보여줘!”“이 개자식!”“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따위로 말하는 거야?!”“너따위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훈계질이냐고?!”“정말 화딱지 나서 미치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