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다 싶었는지 공송연도 사나운 표정으로 거들었다.“하 씨, 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마!”“그렇지 않으면 당신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이때 장 어르신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켜고는 TV로 통화 화면을 옮겼다.갑자기 엄중한 표정을 한 사람이 TV에 나타났다.용문 집법당 당주, 용오행!용오행은 이미 항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듯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난 용오행일세!”“용문 집법당 당주!”“용 씨 가문 십삼대 종손!”“내 신분이나 지위에 대해서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잘 들어. 당신이 예전에 섬나라 귀인의 미움을 산 뒤 남양인과 결탁한 일을 난 이미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어!”“내 아들을 항성에 파견한 것은 당신의 그 행동을 멈추게 하고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서였어!”“그래서 난 지금 당신에게 명령하겠어. 내 아들 놓아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그렇지 않으면 내일 내가 항성에 가자마자 해야 될 일이 당신을 죽이는 일이 될 거야!”“당신을 죽인 뒤 당신과 관계 있는 모든 사람들도 응당의 벌을 받을 거야, 알아듣겠어?”용오정은 위엄을 떨치며 거침없이 내뱉었다.“내가 한 말은 즉시 그 자리에서 실행될 거야. 명심해!”“지금 당장 내 아들을 놓아주지 않으면 바로 죽을 거란 얘기야!”“정말 당신 용당주 맞습니까? 용 씨 가문 종손 맞냐고요?”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홀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내가 당신 아들을 풀어주길 바라세요? 그건 문제없어요. 언제든지 풀어줄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우리 용문 규칙에 따르면 용문 제자들이 모여 어지럽고 지저분하게 뒤섞여 놀았는데 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런 건 상관하지 않으세요?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은 집법당 당주잖습니까?”“당신은 일개 대구 지회장에 불과하고 장로회에선 아직 인정도 하지
총성이 울리고 용정재의 미간에는 검붉은 핏구멍이 생겼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튀어나왔다가 그대로 힘을 잃고 풀썩 늘어졌다.곳곳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은 도저히 이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다.용정재가 하현의 손에 저리 쉽게 처리되다니?용정재가 힘을 잃고 널브러지자마자 최문성은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용전 항도 지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나와 장내에 진입해 사람들을 감옥으로 압송했다.몇몇 병왕급 인사들도 모두 압송되었다.용오행과의 타협은?처음부터 하현은 이 가능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결국 하현을 향한 용문 집법당의 끊임없는 도발로 하현 쪽에서는 이미 집법당의 많은 제자들을 죽였는데 어떻게 쌍방이 타협할 수 있겠는가?집법당 뒤에 있는 장로회의 생각이 어떠한지, 용문주 쪽의 태도는 어떠한지 하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그는 이렇게 제멋대로 날뛰고 왕법을 무시하는 집법당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 생각했다.강 씨 가문 쪽에서는 강학연과 강옥연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다만 용문 항도 지회를 당분간 하현에게 일임하기로 했지만 항도 지회의 심복들은 강 씨 가문 측이 데리고 갔다.이 사람들은 강 씨 가족을 보호하는 데 힘쓸 것이다.최 씨 가문, 허 씨 가문, 동 씨 가문은 원래 항성과 도성에서 뿌리 깊은 집안이어서 스스로 가문을 보호할 수단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비록 내일 용오행이 항성에 올 것이지만 이것은 결국 용문 내부의 일이며 다른 사람이 절대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모든 준비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전문 인력이 용문 도관을 말끔히 청소한 뒤에야 하현은 용문 도관 뒤뜰에 있는 정자에 허리를 걸쳤다.그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멀리 빅토리아 항을 내려다보았다.야경이 눈에 시리도록 아름다웠다.이 아름다운 도시에 내일 용오행이 올 것이다.항성과 도성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뒤덮을 것이라는 생각이 하현의 마음을 짓눌렀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들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단정하듯 말했다.“그 쓰레기들 나한테 달려오는 족족 다 죽여 버릴 거야!”최영하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하현, 잘 들어. 내가 이렇게 말하는 목적은 당신한테 가서 다 죽여 버리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돌아가려면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야.”“내륙으로 돌아가면 용오행이 당신을 귀찮게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섬나라 전쟁의 신 미야타가 감히 당신을 귀찮게 하지는 못 할 거야.”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오늘 집법당을 평정하고 용정재를 처리했는데 내가 이대로 도망간다고?”“그러면 내 체면은 뭐가 되겠어?”최영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체면을 중시하는 건 알겠지만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야. 생사 앞에서 체면 따위는 하등의 가치도 없는 거야!”“당신이 완전히 철저하게 그들을 제압할 승산이 없다면 난 지금 당신이 떠나는 게 맞다고 봐.”“혹시 우리를 걱정하는 거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같이 떠날게.”“심지어 용전 항도 지부도 깨끗이 포기할 거야!”여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그녀의 차갑고 부드러운 얼굴에 붉은 홍조가 감돌았다.분명 냉철하고 차가운 미녀였으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푸근한 옆집 누나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수줍음이 가득한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왜? 내가 내일 그들에게 지고 죽을까 봐? 죽을까 봐 걱정돼?”“그래서 지금 떠나라고 날 설득하는 거야? 심지어 자신도 모든 것을 던지고 따라가겠다고?”“만약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난 당신 옆에서 당신의 그림자로 살 수도 있어.”최영하의 눈동자에 핑크빛 온기가 가득 흘러넘쳤다.하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이 주제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길 바라며 딴청을 부렸다.“자자, 우리 이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자고.”“내가 집법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섬나라
”그 당당하신 용문 집법당 당주는 내가 섬나라 음류들과 내통했다는 당치도 않는 죄명을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어.”하현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만 봐도 그는 내 손에 죽어 마땅해!”“그가 죽지 않으면 앞으로 용문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하인들이 그의 손에 처단되어 나갈지 몰라!”“미아탸 신노스케는 섬나라의 전신이자 음류 검객이니 어찌 보면 나를 괴롭히는 게 정상이야.”“어쨌거나 내가 섬나라 음류의 일을 망쳤으니.”“나도 언제 섬나라에 한번 가서 섬나라 음류를 들추어내 볼 생각이었어.”“그런데 지금 그들이 이렇게 온 이상 난 힘을 조금 아끼게 된 셈이지.”“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니까.”“그 사람들이 온다고 하니 한 명도 갈 생각하지 마.”하현의 말에 최영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참, 다른 소식이 있어.”“대하에 있는 몇몇 무학 성지도 내일 여기 섬나라 사람들과 집법당 사람들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오매 도관을 필두로 젊은 세대의 교만함이 아마 가관일 거야.”“인솔자는 당신도 잘 아는 오매 도관의 사송란이야.”“그밖에 섬나라 쪽 6대 유파가 대표를 보내왔다고 해.”“신당류인 텐푸 다이토가 직접 인솔해 왔다고 하고.”“텐푸 다이토는 섬나라 신당류 검신 텐푸 쥬시로의 친아들이야.”“아버지가 가진 거의 대부분의 전술을 이어받았다고 해.”“이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은 마음뿐만 아니라 감 놔라 배 놔라 심판이라도 할 생각일 거야.”“그들은 당신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한 판을 보고 싶은 거지.”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내 사소한 일들이 언제 무학 성지들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된 거야?”“이 사람들 그냥 문제를 크게 만들어 날 곤란하게 만들려는 심산인 거 아냐?”“그리고 신당류의 텐푸 쥬시로는 입만 열면 날 죽여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 아니야?”“자기
하현이 오늘 밤 남양 회관에 온 이유는 양제명의 몸 안에 있는 극야한독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였다.이 일 외에도 여기에 온 다른 목적이 있었다.하현은 용오행 같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한다니 스스로도 준비를 해야 떳떳하지 않겠는가?하현은 양유훤의 말에 군말 없이 대답했다.“날 들여보내 줘.”양유훤도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하현을 데리고 남양 회관의 뒷마당으로 향했다.방문을 열자 양유훤은 상냥한 미소를 내걸며 말했다.“할아버지, 하현이 왔어요.”하현은 양제명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방에는 독의 기운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예전에 느꼈던 극한의 한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아직 잠들어 있는 수사자가 깨어나려는 듯 꿈틀대는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기운을 느낀 하현은 살짝 놀랐다.남양 전신의 기운이 이렇게 강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단지 조금 회복했을 뿐이고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기운을 뿜다니!전장이었으면 얼마나 강한 전운을 감돌게 할 사람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이런 점에서 자기가 그를 구해준다면 장차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하현, 오셨는가?”“환영하네.”양제명은 예전엔 아주 상태가 나빴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된 듯 보였다.이제는 침대에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하현을 본 그의 눈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빛을 발했다.하현이 입을 열었다.“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회복이 빠르십니다.”“적어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이 정도로 회복하셨다니!”“삼일 만에 이렇게까지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분명 중독되기 전 양제명은 전쟁의 신들 중 단연 최고라 꼽힐 만했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비록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위험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아주 적합한 한 수였던 셈이다.그러나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위험하고 고통
”용오행 일행은 솔직히 말해 광대일 뿐이야.”“다만 그들이 이렇게 많은 조력자들을 끌어들였으니 나도 나름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어?”“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체면이 없어 보이잖아, 안 그래?”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히 말했다.이 말을 듣고 양유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그러나 양제명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말했다.“하현, 자네 성격 참 마음에 드네!”“대장부가 하는 짓이 모름지기 이래야지. 하고 싶은 대로 해. 조심조심 몸 사리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지.”“자네가 이렇게 솔직히 말해 주니 나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겠네.”“오늘 밤 자네가 내 몸속에 있는 독소를 완전히 뽑아준다면.”“그 순간부터 자네 일은 곧 나 이 양제명의 일이 되는 거야!”하현은 환하게 웃었다.그가 기다린 것은 바로 이 한마디였다.하현은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그는 전에 준비한 독극물을 모두 끓여 큰 가마솥에 넣으라고 양유훤에게 지시했다.가마솥 밑에는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솥 안에서는 검은 거품이 계속 일렁이며 비리고 구역질 나는 냄새를 사방에 풍겼다.그러나 하현은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양제명의 몸을 자세히 검사했고 양유훤에게 수술용 기구 몇 개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밤 12시가 되어 갈 즈음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하현은 직접 양제명을 일으켜 나무 욕조에 양제명의 몸을 담그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앞으로 두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양유훤, 당신이 직접 밖에서 좀 지키고 있어.”“아무도 들여서는 안 돼.”“누군가 들어와서 방해라도 하게 된다면 바로 실패야.”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독극물을 이용한 이 방법은 허무맹랑하고 사도에 쉽게 빠지는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와서 방해한다면 독가스를 역행하게 만들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양제명은 독소를 제거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게 된다.하현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양유훤도 이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
”양 어르신, 오늘 제가 하는 독극물 제거 방법은 치료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큰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하현은 수술용 기구를 몇 개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좀 참으셔야 할 것입니다.”양제명은 이 말을 듣고 실소를 터뜨렸다.“하현, 난 전장을 누빈 사람이야. 전쟁의 신.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게 뭐가 있겠는가?”“이 극야한독보다 더 음험하고 악독한 것도 겪었을 걸세.”“어르신이 이렇게 자신하시니 저도 괘념치 않고 시작하겠습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통에서 침을 꺼내 양제명의 척추에 푹 찔렀다.잠시 후 하현은 양제명의 몸에 꽂았던 침을 뽑았다.침에는 검은 액체가 묻어 나왔다.분명 양제명의 몸속에 있던 독소는 대부분 척추에 숨겨져 있는 듯했다.독소를 빼내고 나자 양제명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확 좋아졌고 새로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본 하현은 환한 미소를 띠며 메스를 손에 들고 양제명의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칼자국을 내었다.“푸푸푸푸.”시커먼 핏물이 튀어나와 나무 욕조에서 서로 중화되어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하현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전에 남아 있던 독소를 모두 빠져나가게 하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진정 가장 큰 극야한독은 여전히 양제명의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극야한독은 매우 완강하고 악독해서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이 이 독소를 건드리자 독소들이 완강하고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음.”한때 전장을 평정했던 전쟁의 신인 양제명도 이 극한의 고통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양손으로 나무 욕조의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나무 욕조가 그의 손아귀에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양유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움직이지 마세요!”“이 독이 어르신의 몸속에 들어가 극야한독을 완전히 중화시켜야 하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야.”“그래야 어르신의 몸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어.”양유훤은
이윽고 독소 제거 치료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하현은 메스를 꺼내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양미간을 찔렀다.한 줄기 검은 피가 선명하게 흘러내렸다.이제 이쪽만 뽑아내면 양제명의 몸속에는 극야한독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다.양제명의 정신력으로 볼 때 하룻밤이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듯 보였다.“쾅!”하현이 마지막 핵심 독소를 뽑아내고 있을 때였다.십여 대의 지프차가 남양 회관 앞에 거칠게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위장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양 남자들이 쏟아져 내렸다.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을 가득 머금은 채 허리춤에 훈장처럼 총을 차고 들어온 남자들은 한눈에 딱 봐도 전문 경호원들 같았다.곧이어 맨 가운데 차 문이 열리면서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남녀 몇 명이 세상 당당한 모습으로 내렸다.단발머리를 한 남양 여자가 선두에 서 있었다.그녀의 피부는 너무 검지도 너무 희지도 않은 말쑥한 보리 색이었고 몸매는 더할 나위 없이 매끈했다.몸에 걸친 옷이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에 날개를 날아 주었다.독보적인 미모의 여자는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단연 눈에 띄었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거만한 기질이 줄줄 흘렀다.걸을 때 나는 하이힐 소리에서는 뼈가 부러지는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남양 회관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빛이 변했다.여자가 남양 회관으로 들어서자 술잔을 부딪히던 남녀가 모두 얼굴을 찡그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여자를 보면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웃음꽃을 피우던 남양 남자의 얼굴에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원여옥이 항성엔 어쩐 일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이 항성에 와서 권력을 움켜쥔 뒤 남양 거리 쪽을 다 장악하려는 거 아니야?”“남양 거리는 지금 양 씨 가문에서 꽉 잡고 있는데 말이야!”“하지만 원여옥이 남양에서는 훨씬 더 대단한 인물이잖아. 원 씨 가문은 현재 남양 3대 가문 중에서도 우두머리라 할 수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