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당하신 용문 집법당 당주는 내가 섬나라 음류들과 내통했다는 당치도 않는 죄명을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어.”하현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만 봐도 그는 내 손에 죽어 마땅해!”“그가 죽지 않으면 앞으로 용문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하인들이 그의 손에 처단되어 나갈지 몰라!”“미아탸 신노스케는 섬나라의 전신이자 음류 검객이니 어찌 보면 나를 괴롭히는 게 정상이야.”“어쨌거나 내가 섬나라 음류의 일을 망쳤으니.”“나도 언제 섬나라에 한번 가서 섬나라 음류를 들추어내 볼 생각이었어.”“그런데 지금 그들이 이렇게 온 이상 난 힘을 조금 아끼게 된 셈이지.”“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니까.”“그 사람들이 온다고 하니 한 명도 갈 생각하지 마.”하현의 말에 최영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참, 다른 소식이 있어.”“대하에 있는 몇몇 무학 성지도 내일 여기 섬나라 사람들과 집법당 사람들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오매 도관을 필두로 젊은 세대의 교만함이 아마 가관일 거야.”“인솔자는 당신도 잘 아는 오매 도관의 사송란이야.”“그밖에 섬나라 쪽 6대 유파가 대표를 보내왔다고 해.”“신당류인 텐푸 다이토가 직접 인솔해 왔다고 하고.”“텐푸 다이토는 섬나라 신당류 검신 텐푸 쥬시로의 친아들이야.”“아버지가 가진 거의 대부분의 전술을 이어받았다고 해.”“이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은 마음뿐만 아니라 감 놔라 배 놔라 심판이라도 할 생각일 거야.”“그들은 당신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한 판을 보고 싶은 거지.”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내 사소한 일들이 언제 무학 성지들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된 거야?”“이 사람들 그냥 문제를 크게 만들어 날 곤란하게 만들려는 심산인 거 아냐?”“그리고 신당류의 텐푸 쥬시로는 입만 열면 날 죽여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 아니야?”“자기
하현이 오늘 밤 남양 회관에 온 이유는 양제명의 몸 안에 있는 극야한독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였다.이 일 외에도 여기에 온 다른 목적이 있었다.하현은 용오행 같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한다니 스스로도 준비를 해야 떳떳하지 않겠는가?하현은 양유훤의 말에 군말 없이 대답했다.“날 들여보내 줘.”양유훤도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하현을 데리고 남양 회관의 뒷마당으로 향했다.방문을 열자 양유훤은 상냥한 미소를 내걸며 말했다.“할아버지, 하현이 왔어요.”하현은 양제명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방에는 독의 기운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예전에 느꼈던 극한의 한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아직 잠들어 있는 수사자가 깨어나려는 듯 꿈틀대는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기운을 느낀 하현은 살짝 놀랐다.남양 전신의 기운이 이렇게 강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단지 조금 회복했을 뿐이고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기운을 뿜다니!전장이었으면 얼마나 강한 전운을 감돌게 할 사람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이런 점에서 자기가 그를 구해준다면 장차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하현, 오셨는가?”“환영하네.”양제명은 예전엔 아주 상태가 나빴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된 듯 보였다.이제는 침대에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하현을 본 그의 눈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빛을 발했다.하현이 입을 열었다.“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회복이 빠르십니다.”“적어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이 정도로 회복하셨다니!”“삼일 만에 이렇게까지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분명 중독되기 전 양제명은 전쟁의 신들 중 단연 최고라 꼽힐 만했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비록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위험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아주 적합한 한 수였던 셈이다.그러나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위험하고 고통
”용오행 일행은 솔직히 말해 광대일 뿐이야.”“다만 그들이 이렇게 많은 조력자들을 끌어들였으니 나도 나름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어?”“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체면이 없어 보이잖아, 안 그래?”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히 말했다.이 말을 듣고 양유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그러나 양제명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말했다.“하현, 자네 성격 참 마음에 드네!”“대장부가 하는 짓이 모름지기 이래야지. 하고 싶은 대로 해. 조심조심 몸 사리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지.”“자네가 이렇게 솔직히 말해 주니 나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겠네.”“오늘 밤 자네가 내 몸속에 있는 독소를 완전히 뽑아준다면.”“그 순간부터 자네 일은 곧 나 이 양제명의 일이 되는 거야!”하현은 환하게 웃었다.그가 기다린 것은 바로 이 한마디였다.하현은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그는 전에 준비한 독극물을 모두 끓여 큰 가마솥에 넣으라고 양유훤에게 지시했다.가마솥 밑에는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솥 안에서는 검은 거품이 계속 일렁이며 비리고 구역질 나는 냄새를 사방에 풍겼다.그러나 하현은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양제명의 몸을 자세히 검사했고 양유훤에게 수술용 기구 몇 개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밤 12시가 되어 갈 즈음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하현은 직접 양제명을 일으켜 나무 욕조에 양제명의 몸을 담그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앞으로 두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양유훤, 당신이 직접 밖에서 좀 지키고 있어.”“아무도 들여서는 안 돼.”“누군가 들어와서 방해라도 하게 된다면 바로 실패야.”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독극물을 이용한 이 방법은 허무맹랑하고 사도에 쉽게 빠지는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와서 방해한다면 독가스를 역행하게 만들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양제명은 독소를 제거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게 된다.하현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양유훤도 이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
”양 어르신, 오늘 제가 하는 독극물 제거 방법은 치료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큰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하현은 수술용 기구를 몇 개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좀 참으셔야 할 것입니다.”양제명은 이 말을 듣고 실소를 터뜨렸다.“하현, 난 전장을 누빈 사람이야. 전쟁의 신.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게 뭐가 있겠는가?”“이 극야한독보다 더 음험하고 악독한 것도 겪었을 걸세.”“어르신이 이렇게 자신하시니 저도 괘념치 않고 시작하겠습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통에서 침을 꺼내 양제명의 척추에 푹 찔렀다.잠시 후 하현은 양제명의 몸에 꽂았던 침을 뽑았다.침에는 검은 액체가 묻어 나왔다.분명 양제명의 몸속에 있던 독소는 대부분 척추에 숨겨져 있는 듯했다.독소를 빼내고 나자 양제명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확 좋아졌고 새로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본 하현은 환한 미소를 띠며 메스를 손에 들고 양제명의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칼자국을 내었다.“푸푸푸푸.”시커먼 핏물이 튀어나와 나무 욕조에서 서로 중화되어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하현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전에 남아 있던 독소를 모두 빠져나가게 하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진정 가장 큰 극야한독은 여전히 양제명의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극야한독은 매우 완강하고 악독해서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이 이 독소를 건드리자 독소들이 완강하고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음.”한때 전장을 평정했던 전쟁의 신인 양제명도 이 극한의 고통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양손으로 나무 욕조의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나무 욕조가 그의 손아귀에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양유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움직이지 마세요!”“이 독이 어르신의 몸속에 들어가 극야한독을 완전히 중화시켜야 하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야.”“그래야 어르신의 몸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어.”양유훤은
이윽고 독소 제거 치료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하현은 메스를 꺼내 조심스럽게 양제명의 양미간을 찔렀다.한 줄기 검은 피가 선명하게 흘러내렸다.이제 이쪽만 뽑아내면 양제명의 몸속에는 극야한독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다.양제명의 정신력으로 볼 때 하룻밤이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듯 보였다.“쾅!”하현이 마지막 핵심 독소를 뽑아내고 있을 때였다.십여 대의 지프차가 남양 회관 앞에 거칠게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위장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양 남자들이 쏟아져 내렸다.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을 가득 머금은 채 허리춤에 훈장처럼 총을 차고 들어온 남자들은 한눈에 딱 봐도 전문 경호원들 같았다.곧이어 맨 가운데 차 문이 열리면서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남녀 몇 명이 세상 당당한 모습으로 내렸다.단발머리를 한 남양 여자가 선두에 서 있었다.그녀의 피부는 너무 검지도 너무 희지도 않은 말쑥한 보리 색이었고 몸매는 더할 나위 없이 매끈했다.몸에 걸친 옷이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에 날개를 날아 주었다.독보적인 미모의 여자는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단연 눈에 띄었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거만한 기질이 줄줄 흘렀다.걸을 때 나는 하이힐 소리에서는 뼈가 부러지는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남양 회관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빛이 변했다.여자가 남양 회관으로 들어서자 술잔을 부딪히던 남녀가 모두 얼굴을 찡그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여자를 보면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웃음꽃을 피우던 남양 남자의 얼굴에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원여옥이 항성엔 어쩐 일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이 항성에 와서 권력을 움켜쥔 뒤 남양 거리 쪽을 다 장악하려는 거 아니야?”“남양 거리는 지금 양 씨 가문에서 꽉 잡고 있는데 말이야!”“하지만 원여옥이 남양에서는 훨씬 더 대단한 인물이잖아. 원 씨 가문은 현재 남양 3대 가문 중에서도 우두머리라 할 수
”퍽!”원여옥은 길을 가로막는 남자에게 쓸데없는 말 대신 그의 얼굴에 뺨을 후려갈겼다.“개자식,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함부로 말을 걸어?”“지금의 남양파의 이 기세를 남양 3대 가문이 피땀 흘려 만든 거라는 사실, 잊었어?”“남양파에서 우리 원 씨 가문의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지 몰라? 그런 내가 어디 못 올 데라도 온 거야?”“내가 남양 거리에 왔는데 일일이 보고라도 하고 다녀야 돼?”“가당키나 해?”“아니면 양유훤 밑에서 굴러먹다 보니 당신 주인이 누구인지 그새 잊은 거야?”원여옥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살의를 뿜으며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었다.남자의 말이 원여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분명하다.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중년 남성의 얼굴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벌겋게 떠올랐고 눈꺼풀은 쉴 새 없이 파동을 일으켰다.그는 지금 감히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허리를 굽신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원여옥 아가씨, 농담하시는 거죠?”“아가씨가 내 주인인 걸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다른 뜻은 없습니다.”“지, 지금은 많이 늦,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서 푹 쉬세요. 오시느라 노곤하셨을 텐데!”“마침 남양파에서 삼계호텔 스위트룸을 오랫동안 잡아 놓고 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가서 쉬셔도 됩니다!”“퍽!”원여옥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내가 언제 쉬러 간다고 했어?”“당신 추잡한 꼴 여기서 계속 보는 거 역겨워서 지나가려던 거잖아!”“그런데 당신이 내 길을 막은 거고. 계속 이렇게 막을 거야?”“양유훤이 남양파의 우두머리이긴 하지만 우리 가문도 남양파를 감찰할 자격이 있다는 거 잊지 마!”“게다가 만약 우리 눈에 마음 안 들면 언제든지 양유훤을 끌어내릴 수 있어. 말 한마디면 되는 일이야!”원여옥은 불쾌하고 언짢은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얼굴을 찡그렸다.“한 가지 더 일러두자면 난 중요한 일 아니면 여길 올 이유가 없었어
원여옥의 눈에서 경멸의 불꽃이 튀고 있었다.만약 지금 눈앞에 양유훤이 있었다면 당장 요절내고야 말 태세였다.양제명이라는 큰 산이 뒤에 받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양유훤이 무슨 능력으로 남양파 우두머리 자리에 앉았겠는가?양 씨 집안은 이 자리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갔다.말로는 그 자리가 탐이 나지 않는다 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녀는 늘 그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어찌 되었든 남양파는 항성과 도성에서 홍성과 견줄 만한 세력이었다.게다가 항성이라는 국제도시에서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원여옥의 말을 듣고 있던 중년 남자는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요 며칠 양 어르신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양유훤이 대하에서 온 유능한 사람에게 특별히 청했다는군요. 이 사람은 전에 화 씨 집안의 일도 해결한 적이 있고요.”“이 사람은 지금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써서 양 어르신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양 어르신이 곧 털고 일어나실 것 같습니다.”“뭐?”“대하에서 온 유능한 사람?”“그까짓 놈이 무슨 재주가 있겠어?”원여옥은 중년 남자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분풀이하듯 그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화 씨 집안의 일도 해결했다고? 혹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기꾼 아니야?”“사기꾼에게 속아 양 노인을 치료하게 하다니, 참. 뭐? 독으로 독을 제거해? 무슨 그런 방법이 다 있어?”“머리에 총 맞았어?”“깨어나지도 않았잖아?”“그리고 양유훤도 그래. 몸만 놀릴 줄 아는 사교계 꽃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항성 10대 명의들도 양 노인의 병을 고치지 못했고 미국에서 온 양의들도 속수무책이었다던데.”“항성과 미국에 한참 뒤쳐진 대하인한테 의지해서 치료를 해?”“농담도 무슨 이런 농담이 다 있어?”“양유훤은 쓰레기야. 당신들도 마찬가지고!”“대하인을 양 노인에게 접근하게 하다니!”“만약
비록 난감해하는 빛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지만 아묵은 침착하게 양유훤의 심복 십여 명을 데리고 와서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원여옥 아가씨, 여기 잠깐 계셔야 할 듯합니다!”“지금 안에서 하현이 양 어르신의 골수에서 독을 빼내고 계십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분부가 있었고요.”“골수에서 독을 빼낸다고?”원여옥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소설을 많이 읽은 거야? 아니면 영화를 많이 본 거야?”“그런 말을 믿어?”“양유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당신들은 양 노인을 죽이려 하고 있어.”“양 노인이 이렇게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 적어도 비책서를 내놓을 때까지는 절대 안 돼!”“만약 양 노인이 그 사기꾼 손에 죽는다면 당신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야!”“당장 물러서!”“감히 내 앞길을 막지 마. 내 시간은 금 같은 거니까!”원여옥은 눈에 살기를 가득 품은 채 아묵을 쏘아붙였다.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는 모두 베어버릴 매서운 눈빛이었다.아묵은 심장이 벌렁벌렁거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원여옥 아가씨, 죄송합니다. 양유훤께서 특별히 분부하신 일이라 다른 하명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이에 응하지 않을 시는 죽여도 무방하다고 하셨습니다.”“탕!”원여옥은 더 이상 쓸데없는 입씨름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아묵을 향해 망설임 없이 총을 쏘았다.아묵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순간 그는 힘을 잃어 전혀 일어나지 못했다.“당신들, 감히 누가 총을? 누가 감히?”양 씨 가문 경호원들이 얼른 손을 쓰려고 했지만 어느새 원여옥이 데려온 경호원들에게 에워싸여 버렸다.양측의 수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원여옥은 더욱더 기세등등해졌다.양 씨 집안의 평범한 경호원들은 감히 그녀와 맞서지 못했다.아묵은 피를 흘리며 더듬거렸다.“원, 원여옥 아가씨, 정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절대...”“탕!”또 한 발의 총알이 아묵의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