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여옥의 눈에서 경멸의 불꽃이 튀고 있었다.만약 지금 눈앞에 양유훤이 있었다면 당장 요절내고야 말 태세였다.양제명이라는 큰 산이 뒤에 받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양유훤이 무슨 능력으로 남양파 우두머리 자리에 앉았겠는가?양 씨 집안은 이 자리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갔다.말로는 그 자리가 탐이 나지 않는다 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녀는 늘 그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어찌 되었든 남양파는 항성과 도성에서 홍성과 견줄 만한 세력이었다.게다가 항성이라는 국제도시에서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원여옥의 말을 듣고 있던 중년 남자는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요 며칠 양 어르신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양유훤이 대하에서 온 유능한 사람에게 특별히 청했다는군요. 이 사람은 전에 화 씨 집안의 일도 해결한 적이 있고요.”“이 사람은 지금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써서 양 어르신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양 어르신이 곧 털고 일어나실 것 같습니다.”“뭐?”“대하에서 온 유능한 사람?”“그까짓 놈이 무슨 재주가 있겠어?”원여옥은 중년 남자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분풀이하듯 그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화 씨 집안의 일도 해결했다고? 혹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기꾼 아니야?”“사기꾼에게 속아 양 노인을 치료하게 하다니, 참. 뭐? 독으로 독을 제거해? 무슨 그런 방법이 다 있어?”“머리에 총 맞았어?”“깨어나지도 않았잖아?”“그리고 양유훤도 그래. 몸만 놀릴 줄 아는 사교계 꽃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항성 10대 명의들도 양 노인의 병을 고치지 못했고 미국에서 온 양의들도 속수무책이었다던데.”“항성과 미국에 한참 뒤쳐진 대하인한테 의지해서 치료를 해?”“농담도 무슨 이런 농담이 다 있어?”“양유훤은 쓰레기야. 당신들도 마찬가지고!”“대하인을 양 노인에게 접근하게 하다니!”“만약
비록 난감해하는 빛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지만 아묵은 침착하게 양유훤의 심복 십여 명을 데리고 와서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원여옥 아가씨, 여기 잠깐 계셔야 할 듯합니다!”“지금 안에서 하현이 양 어르신의 골수에서 독을 빼내고 계십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분부가 있었고요.”“골수에서 독을 빼낸다고?”원여옥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소설을 많이 읽은 거야? 아니면 영화를 많이 본 거야?”“그런 말을 믿어?”“양유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당신들은 양 노인을 죽이려 하고 있어.”“양 노인이 이렇게 죽게 내버려둘 순 없어. 적어도 비책서를 내놓을 때까지는 절대 안 돼!”“만약 양 노인이 그 사기꾼 손에 죽는다면 당신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야!”“당장 물러서!”“감히 내 앞길을 막지 마. 내 시간은 금 같은 거니까!”원여옥은 눈에 살기를 가득 품은 채 아묵을 쏘아붙였다.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는 모두 베어버릴 매서운 눈빛이었다.아묵은 심장이 벌렁벌렁거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원여옥 아가씨, 죄송합니다. 양유훤께서 특별히 분부하신 일이라 다른 하명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이에 응하지 않을 시는 죽여도 무방하다고 하셨습니다.”“탕!”원여옥은 더 이상 쓸데없는 입씨름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아묵을 향해 망설임 없이 총을 쏘았다.아묵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순간 그는 힘을 잃어 전혀 일어나지 못했다.“당신들, 감히 누가 총을? 누가 감히?”양 씨 가문 경호원들이 얼른 손을 쓰려고 했지만 어느새 원여옥이 데려온 경호원들에게 에워싸여 버렸다.양측의 수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원여옥은 더욱더 기세등등해졌다.양 씨 집안의 평범한 경호원들은 감히 그녀와 맞서지 못했다.아묵은 피를 흘리며 더듬거렸다.“원, 원여옥 아가씨, 정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절대...”“탕!”또 한 발의 총알이 아묵의
”할아버지!”양유훤은 검은 핏물을 흘리는 양제명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하현도 얼굴을 찡그리며 양제명의 상태를 살폈다.그러다가 그는 양제명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어른거리는 걸 발견했다.순간 자신이 궁지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양미간에 모여 있던 검은 기운은 양제명의 심맥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만약 그것이 심맥에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면 아마 양제명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다.하현은 의사가 아니었다.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던 그때였다.하현은 뭔가 결심을 한 듯 들고 있던 메스로 양제명의 가슴에 구멍을 내었다.어쨌든 피를 밖으로 빼내야 할 것 같았다.이렇게 함으로써 독소를 방출하고 검은 기운이 심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동작을 마친 후 하현은 기도하듯 중얼거렸다.“어서 꺼져!”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의 위엄 서린 어조는 원여옥 같은 인물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하현은 자신에게 총을 쏜 이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계속 자신의 일을 방해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양제명의 몸속 독을 제거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다만 상황이 급박한지라 직접 원여옥을 처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지금은 무엇보다 독소를 제거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조금도 지체 없이 독소를 제거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이전의 모든 과정들이 물거품이 된다.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자 하현의 손이 분주해졌다.그는 메스로 양제명의 가슴에 몇 번 더 구멍을 내었다.방금 구멍을 낸 지점에서 흘러나온 피는 아직 독소에 오염된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양제명의 가슴을 힘껏 눌러 바깥의 독이 양제명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몸속의 독과 중화시키도록 했다.그리고 하현은 다시 메스를 들고 양제명의 정수리에 세게 꽂았다.검은 핏물이 튀어 올랐고 잠시 독소의 공격이 멈춘 듯했다.“개자식!”“감히 양 어르신의 몸에
”원여옥, 날 함부로 폄훼하지 마!”양유훤은 차가운 눈빛으로 원여옥의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하현 이 사람은 내가 모셔온 사람이야!”“그는 살인술을 알고 우리 할아버지의 독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구!”“지금 거의 마지막 단계에 다 왔어. 이것만 마치면 우리 할아버지는 무사히 회복하실 수 있어.”“몇십 년 더 살 수 있을 정도로 정정하게 돌아오실 거라고!”“이건 우리 남양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남양국에도 아주 중요한 일이야!”“지금이 독을 빼내는 데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야. 원여옥, 제발 하현을 방해하지 마!”양유훤이 원래 성격대로 했다면 아마도 벌써 손을 써서 제압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크게 싸우는 것이 할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그래서 그녀는 억지로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진심에 의지해 이 앙큼한 원여옥을 설득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양유훤, 너 정말!”원여옥은 양유훤에게 잡힌 오른손을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분을 삭일 수도 없어 얼굴이 쉴 새 없이 울그락불그락했다.감히 양유훤이 자신의 말을 거역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원여옥의 마음속에선 양유훤에 대한 정의할 수 없는 두려움이 일렁거렸다.만약 양제명의 몸속 독소가 완전히 제거되어 그가 회복한다면 정말 모든 것이 다 끝장이다!“찰싹!”이런 생각이 들자 원여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왼손을 번쩍 들어 양유훤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양유훤의 몸이 비틀거렸고 그녀의 고운 얼굴에 선명한 선홍색 손자국이 떠올랐다.“양유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당신이 대하의 의사에게 양 어르신을 치료해 달라고 청했으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그런데 지금 누구를 모셔왔다고? 살인술을 안다고?”“지금 나랑 농담해?”“살인술을 아는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고?”“그런 사람이 정말 양 어르신을 구한다고?”“당신은 지금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어 친할아버지를
원여옥의 경호원들이 지체 없이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이 구역의 주인은 양유훤이었다.“탕탕탕!”하현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양유훤은 이미 원여옥이 들고 있던 총을 빼앗은 후 몸을 둘려 하현의 앞을 가로막고서 방아쇠를 당겼다.돌진하던 경호원들이 피를 뿜으며 땅바닥에 쓰러졌다.이를 본 다른 경호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었다.원여옥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남양국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원여옥이었다.그런데 감히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경호원들이 픽픽 쓰러지는 꼴을 보다니!원여옥은 매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이년이! 네 할아버지를 죽이겠다면 그뿐이지 감히 우리 원 씨 가문을 공격해?”“이봐, 양유훤도 함께 붙잡아. 감히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바로 쏴 버려!”“나중 일은 다 내가 책임지겠어!”“내가 너같이 덜떨어진 여자 어떻게 못할 것 같아?”원여옥의 명령이 떨어지자 원 씨 가문 경호원들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이번에는 모두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들고 하나같이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원여옥, 말 그렇게 함부로 할 거야?”양유훤이 원여옥의 이마에 총을 겨누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당신 사람들이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간다면 난 당신을 죽일 거야. 함께 죽는 거야!”“당신이 먼저 죽을지, 내가 먼저 죽을지 이따 보면 알겠지.”양유훤의 위협에 경호원들은 몸을 움찍거리며 얼른 걸음을 멈추었다.경호원들은 표정이 굳을 대로 굳어 완전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있는 양유훤의 감정이 매우 격앙된 것 같아서 숨도 쉴 수 없이 아찔한 상황이었다.만약 지금처럼 그녀를 계속 자극한다면 정말 모든 것을 무릅쓰고 총을 쏠 수도 있는 것이다.앞장서 있던 원여옥의 얼굴빛도 확 변했다.그녀는 경호원들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하현은 두 여자의 싸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 씨 가문 경호원들끼리 서로 눈을 마주치며 우물쭈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탕!”양유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총알이 원여옥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벽면에 꽂혔다.“내가 말했을 텐데!”“앞으로 나서면 바로 죽여 버릴 거라고!”매의 발톱 같은 매서운 양유훤의 눈빛이 원여옥 일행을 노려보았다.얼음으로 조각한 사람처럼 그녀의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모두 물러서! 당장 꺼지라구!”자기 혼자 몸으로 상대를 제압할 방법이 없다고 해도 양유훤은 주저하지 않고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원여옥은 양유훤의 기세에 깜짝 놀랐고 얼이 반쯤 나간 얼굴로 양유훤을 쳐다보았다.“양유훤, 당신 정말 고집불통이구만. 만약 이러다가 양 어르신이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남양 3대 가문에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당초에 모두가 당신을 믿었기 때문에 양 어르신을 항성에 데려왔을 때 아무도 당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은 정말 실망스러운데.”“당신을 막지 않은 게 정말 후회될 정도야!”원여옥은 정말로 후회가 되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방금 들어오자마자 하현을 쏴 버렸어야 했다.지금부터는 절대 아까처럼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양유훤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뒤에 있는 사람은 내 할아버지야.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고.”“우리 양 씨 집안 일이야. 그런데 언제부터 당신네 원 씨 집안이 감 놔라 배 놔라야?”“원 씨 집안이 그럴 자격이 있어?”“아무 자격 없잖아!”원여옥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양유훤, 당신 뭐야?”“내가 양 어르신의 제자라는 걸 잊었단 말이야?”“한번 스승은 평생의 아버지라는 말도 몰라!”“그런 면에선 내가 너보다 항렬도 높은 거야! 알겠어?”“내가 이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우리 원 씨 집안 자식들에게 일어난 일, 당신 아직 나한테 설명도 하지 않았어!”“그런데 뭐? 날 막
젊은 여자는 원여옥의 발길질에 나뒹굴며 양유훤이 있는 곳에 부딪혔다.자신의 심복 중 하나가 눈앞에서 발길질 당하는 모습을 보고 천성이 선량한 양유훤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젊은 여자를 부축하려고 했다.그러나 양유훤이 오른손을 뻗는 순간 세상에 닳고 닳은 젊은 여자는 갑자기 한 줄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양유훤은 흠칫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반 박자 늦었다.“퍽!”젊은 여자는 발을 들어 양유훤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그러자 그 여자의 발이 양유훤의 오른손 손목을 딱 쳤다.양유훤은 오른손에 전해오는 고통에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양유훤이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한 사이 그 젊은 여자는 양유훤의 허리를 발로 걷어차 양유훤을 뒤로 날려버렸다.원여옥은 이 모습을 보고 간악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용 씨 가문 경호원은 양유훤이 떨어뜨린 총을 얼른 주워 들고 양유훤을 겨누었다.순식간에 형세가 역전된 것이었다.양유훤은 온몸을 짓누르는 통증 때문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원여옥, 이렇게 뻔뻔하고 음흉한 여자라니!”그리고 나서 양유훤은 자신에게 발길질을 한 심복 여자에게 차가운 눈길을 돌렸다.“추단아, 내가 널 심복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날 이리 배신하다니!?”양유훤이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원여옥의 표정은 더욱 득의양양해졌다.“파렴치한 사람도 아니고 배신자도 아니야!”“추단아는 내가 원래 심어놓은 첩자였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지.”“우리 원 씨 가문 자제에게 일이 닥친 것, 누군가가 양제명을 살리고 있다는 거, 나 다 알고 있었어.”“당신들 남양파가 일개 무리에 불과하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너무 날뛰게 놔둘 수는 없지!”“당신은 남양파의 우두머리로 남아 양제명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비책과 심법술을 얻으면 되지 않겠어?”“그런 다음 추단아가 그걸 쥐도 새도 모르게 훔쳐오
원여옥의 거친 명령에 경호원들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에게 달려들었다.양측이 충돌하는 소리를 하현도 듣고 있었지만 양제명을 치료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일단 그가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어찌 되었든 그는 의사가 아니었다.그저 이런 살인술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았을 뿐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지식 안에서 온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남양파의 내부 사정에 이런 복잡한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눈앞에 보이는 원여옥은 전신수련비서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여자 같았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긴 호흡을 들이쉬며 오른손에 아홉 개의 메스를 쥐고 양제명의 몸에 있는 아홉 개의 지점에 찔렀다.“팅팅팅팅!”검은 기운이 한 줄기 실가닥처럼 하현의 눈앞에 떠올랐고 온 신경을 쏟아부어 마지막 칼을 꽂았을 때 양제명의 모든 극야한독이 마침내 제거되었다.다만 아무리 전쟁의 신이었던 양제명이라 할지라도 단숨에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확실히 양제명의 얼굴에는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하현은 마지막 칼을 꽂자마자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돌린 후 손바닥을 뒤로 젖혔다.“퍽!”원여옥의 경호원의 몸이 튕겨올라 원여옥 앞에 풀썩 떨어졌다.“개자식!”“감히 맞받아치다니!”원여옥은 이 모습을 보고 얼굴이 일그러졌다.“어서 저놈을 쳐! 총을 쏴!”나머지 다섯 명의 경호원들은 총을 들어 안전장치를 풀었다.양유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이 사람들은 원 씨 가문이 흑주에서 비싼 비용을 들여 고용한 용병들이야!”“포악하기로 유명하다구!”“조심해야 해!”흑주 용병?하현은 언짢은 듯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방금 그는 양제명을 치료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터였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놈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게다가 이 용병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다.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