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원여옥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선가 원 씨 가문 경호원 십여 명이 밖에서 들어왔다.이 경호원들은 흑주인이 아니라 남양인이었고 하나같이 왼손에는 총, 오른손엔 칼을 휘두르며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경호원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방으로 하현을 빙 둘러쌌지만 섣불리 손을 쓰지 않고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기만 했다.하현은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원여옥이 또 무슨 일을 하려는지 예의 주시했다.원여옥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말했다.“이놈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니 잘 지켜봐야 할 거야!”“이놈이 함부로 움직이면 바로 양유훤을 죽여 버려!”“둘이 분명 간통한 사이일 거야!”이 말을 듣고 하현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만약 원여옥의 손에 양유훤이 죽는다면 오늘 자신이 한 모든 일은 무의미해질 것이다.하현이 양유훤을 구하려고 하자 원여옥은 하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양제명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양유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원여옥,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이야?!”“무슨 짓을 하려고?”원여옥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스승님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하려고 그러지! 당연한 거 아냐?”“당신들 두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스승님을 이렇게 비참한 꼴로 만들었는데 남양의 전신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어찌 제자로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으실 텐데, 내 손으로 직접 보내드려야지.”원여옥은 마치 자신이 옳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말했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말했다.“양 어르신의 극야한독은 이미 내가 다 제거했어.”“그의 몸도 곧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예전의 전신의 실력을 되찾으실 거야.”“그의 체력으로 봤을 때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사실 거고!”“그러니까 당신 함부로 행동하지 마!”“뭐?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원여옥은 헛웃음을 지으며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항성 10대
”내가 정상이라고 하면 정상인 거야!”“내가 병자라고 하면 병자인 거구!”“여기는 내 구역이야. 나 원여옥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야!”의기양양한 얼굴로 앞으로 나온 원여옥은 나무 욕조 속에 누워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언뜻 보기에도 양제명의 몸속에 있던 극야한독이 다 제거된 듯한 평온한 모습이었다.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저 사기꾼 같은 하 씨 놈이 정말 무슨 방법이라도 쓴 건가?문득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원여옥의 눈빛은 갑자기 살기로 들끓었다.양제명은 다 죽어 가는 몸이어야 했다.그것이 그녀의 이익에 부합되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절대로 양제명이 회복되는 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된다!그리고 남양국은 다시 양제명의 손아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세월로 돌아갈 것이다.이것은 원 씨 가문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그만!”원여옥이 방아쇠를 당길 듯하자 하현이 손바닥을 휘둘러 경호원 하나를 그대로 날려버렸다.그러나 원여옥의 눈에선 오만한 기운이 감돌았고 순간 그녀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탕!”총소리가 정적을 뚫고 잠자는 사자를 깨웠다.총소리와 동시에 눈을 감고 있던 양제명이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총알이 날아와 양제명의 머리칼을 스치며 날아갔다.“원여옥, 무슨 짓을 하는 겐가?”양제명은 여전히 초췌해 보였지만 온몸에는 말할 수 없는 위엄이 가득 서려 있었다.총을 쏜 원여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그녀는 더 이상 총을 쏠 생각도 못 하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총을 떨어뜨렸다.그녀는 겁에 질린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스승님...”양제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말 좋은 제자였는데.”“내가 아끼던 네가...”“나에게 총을 들이대다니, 이게 무슨 뜻인가?”“날 죽이려고?”“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스승님, 오, 오해십
”하하하. 극야한독이 제거되었으니 다른 일은 다 잘 해결될 걸세.”“항성 10대 명의가 모두 나의 절친들이니 앞으로의 몸 관리는 자네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네.”양제명은 환한 미소를 하현에게 말했다.거의 십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그 누가 기쁘지 않겠는가?“할아버지, 방금 하현이 할아버지를 구하려다 원여옥의 총에 맞아 죽을 뻔했어요!”양유훤도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 기뻐하며 양제명을 부축하였다.원여옥의 행동을 일러바치는 건 덤이었다.이 말을 듣고 원여옥의 얼굴은 일순 창백해졌고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말문이 막혔다.숨이 간들간들 끊어질 듯했던 양제명 앞에서는 제멋대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하지만 이미 정상의 몸을 회복한 남양의 전신을 상대로 그녀가 미치지 않는 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는가?“하현, 이 은혜는 말로 다 표현 못 하네.”양제명은 감탄해 마지않으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천하를 호령할 때는 온 천지가 내 것 같더니만 몸져누워 손도 까딱하지 못하자 비로소 세상 인심이 야박하다는 걸 알았다네.”“이번에 자네의 치료를 받고 이렇게 살아났으니 자네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기겠네.”말을 마치며 양제명은 손짓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서 내 물건을 좀 가져와.”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양 어르신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제가 어르신을 구하는 데는 아무런 사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르신이 저에게 아무것도 주실 필요 없습니다.”양제명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사람이 너무 소탈하군. 그러나 난 자네한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네.”말을 하던 중 양유훤이 기쁜 얼굴로 다른 방에 가서 고풍스러운 상자 하나를 가져와 양제명 앞에 꺼내 보였다.양유훤은 하현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하현, 우리 할아버지를 구해 준 건 나와 우리 양 씨 가문을 구해 준 거나 마찬가지야.”“이 순간부터 나 양유훤은 당신
”자네가 이 양공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아네.”“어쨌든 자네의 몸놀림과 행실로 봤을 때 이런 외부인이 준 물건이 필요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야.”“하지만 이건 나의 작은 성의이네. 그러니 꼭 받아주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안해서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겠나?”양제명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후 양공령을 하현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양제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양공령을 본 순간 원여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사기꾼 같은 놈이 양제명의 관심을 끌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그런데 유일한 양공령마저 그에게 주려고 하다니!이 양공령만 있으면 앞으로 이 사기꾼은 동남쪽 해역에서 거칠 것이 없고 아무도 그에게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하현은 어안이 벙벙했다.양제명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챙겨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양 어르신, 이건 너무 귀한 것이라 받을 수 없습니다.”하현은 이 물건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양제명은 남양의 전신으로 불리며 동남해 전역에서 무적과도 같은 존재였다.그가 남양국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아마 앞으로 동남해 전역은 남양국을 다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그때에 양공령이 상징하는 의미와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임에 틀림없다.하지만 하현은 자신이 양제명의 영패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자신에게는 아마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이 물건은 자신보다 양유훤에게 훨씬 더 쓸모가 있을 것이다.하현의 말에 양유훤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항성과 도성에서 양공령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만약 하구천이 지금 이런 기회를 잡았더라면 당장 넙죽 엎드려 받았을 것이다.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가치가 높고 권세와도 맞먹는 양공령을 하현이 마다하다니?이 남자, 정말 신비롭고 매력적이다.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양공령을 정
다음날 오후 2시, 하현은 항성 용문 도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오늘 용오행이 항성에 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용문 도관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이전에 청소를 담당하던 아주머니도 오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하현은 도관 뒷산에 있는 정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그의 앞에 마주할 대상은 폭풍이 아니었다.그저 제멋대로 날뛰는 어릿광대일 뿐이다.그곳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최문성과 공송연 두 사람뿐이었다.공송연은 어젯밤 내내 치료를 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하현을 바라보는 공송연의 눈에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었다.“하현, 이제 아무 소용없어. 오늘 용당주가 오시면 당신은 끝이야. 이미 당신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구!”“당주 외에도 섬나라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도 곧 올 거야!”“그분은 섬나라 전신이니 당신이 아무리 깝죽거려도 그에겐 못 당할 거야!”“그러게 누가 섬나라 음류를 건드리래?!”“당신 같은 건방진 놈은 이제 끝났어!”“하하하!”공송연은 미친 사람처럼 웃어 젖혔다.어제 하현의 손에 참혹하게 죽은 용정재를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숙명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되새겼다.하현이 죽든 말든 그녀는 반드시 용정재의 복수를 감행하고 말 것이다.공송연은 지금 자신의 생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오직 하현이 수많은 사람들의 총칼에 무참히 찢어지고 발겨지는 걸 보고 싶을 뿐이었다.하현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신 뒤 담담하게 말했다.“공송연,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나 본데 마지막에 누가 죽는지 어디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당당한 대하인도 섬나라 음류 앞에선 피라미에 불과해. 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길바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먹던 사람일 뿐이잖아.”최문성은 앞으로 나서서 공송연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얼마나 세차게 내려쳤던지 공송연의 이빨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최문성은 하현의 심리를 자꾸 자극하는 공송연의 말을 가만히 듣
”용오행, 어떻게 죽고 싶은지 말씀해 보십시오!”서슬 퍼런 눈빛이었으나 그 누구보다 침착하고 결연한 말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주위는 싸늘한 기운이 유랑하듯 유유히 감돌고 있었다.“개자식! 당신이 어떻게 당주한테 그런 말을 해?!”“우리 당주 앞에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사는 게 지겨워!?”“용문에서 우리 당주가 누구보다 위대한 애국지사요, 충직인지 몰라서 이래?”“감히 당주께 함부로 불손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다니! 당장 내가 널 죽여 버릴 것이야!”한 무리의 용문 집법당 정예들이 발끈하며 하현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집법당이 있은 뒤로 그들은 항상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웠다.그런데 오늘 하현이란 놈이 용오행에게 그런 불명예를 뒤집어씌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자신들이 하면 로맨스요,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하현, 역시 기세가 대단하군!”“실력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날카롭고 재빠른지는 몰랐어. 정말 대단해!”용오행은 이마에 핏대를 세웠지만 순간 자신의 감정을 애써 추스렸다.“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해도 오늘은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당신은 섬나라 음류 귀인을 잔인하게 죽였어. 섬나라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가 이미 항성에 와 있어!”“그가 직접 나섰다니 당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건 시간문제야. 당신은 그 오만함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용오행의 말에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가 죽으러 왔다니 힘을 아낄 수 있게 되었군요.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일부러 섬나라까지 가서 그를 멸망시켜야 했으니 그 무슨 시간 낭비 돈 낭비겠습니까?”“그런 점에선 집법당이 나한테 오히려 좋은 일을 해 준 셈이죠.”“뭐라고? 이놈이!”용오행은 무심하게 내뱉은 하현의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억눌렀다.“하현, 그만 날뛰지 그래? 입버릇이 아주 고약하구만!”“곧 알게 될 거야. 섬나라 전신, 음류 검객의
용오행의 손놀림에 뒤쪽에 있던 집법당의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들은 업무용 차 뒷좌석에서 금사남목으로 만든 관을 들었다 놓으며 ‘꽝'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리쳤다.“하현, 잘 봤지? 이건 내가 큰돈을 들여 주문 제작한 관이야!”용오행의 얼굴이 음흉하게 일그러졌다.“당신이 죽으면 내가 직접 여기에 눕혀 줄게!”“그런 다음 강남에도 가고 대구에도 갈 거야.”“당신 마누라뿐만 아니라 온 집안을 다 풍비박산 만들어 버릴 거라고!”“당신 18대 조상 무덤까지 다 파헤쳐 버릴 테니까 똑똑히 두고 봐!”“걱정하지 마. 내가 당신 가족을 위해 특별히 풍수가 좋은 곳에 묻어 줄게. 다음 생에 좋은 자손들을 낳을 수 있도록 말이야!”“아하하하하!”“개자식! 감히 나 용오행의 아들을 죽이다니!”“당신 가족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상들의 무덤을 다 파혜쳐 갈기갈기 찢어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니까 각오해!”용오행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냉정과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광기와 음흉한 기운에 사로잡힌 괴물이 따로 없었다.주위에 있던 집법당의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모두 몸서리를 치며 두려움에 떨었다.당주가 이렇게까지 분노한 적은 처음이었다.하현은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태연스럽게 찻잔에 차를 따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이야말로 오늘 어디 갈 필요 없어.”“금사남목 관이 아주 좋으니 매국노나 다름없는 당신과 섬나라 검객을 함께 묻어 버리기 딱 좋은 날인 것 같은데.”“당신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말이야.”하현이 말을 마치며 태연스럽게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개자식!”“하 씨, 당주께 함부로 굴지 마!”“이건 어디서 나오는 배짱이야?!”이때 또 다른 차량 몇 대가 도관 입구에 꼬리를 물고 멈춰 섰다.그리고 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이 섬나라 복장으로 차 문을 박차고 기세등등하게 내렸다.이들은 다른 재벌 가문 2세들과 달리 경호원이나 수행원 대신 보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송란을 바라보았다.사람을 보내 알아보지 않아도 알 만한 일이었다.그녀가 이번에 나타난 것은 하구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그리고 그녀의 뒤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사람들은 소위 무학 성지를 대표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위세를 부리며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둘 뿐만 아니라 심판을 자처하며 하현을 괴롭히려 들 것이 뻔했다.하현은 사송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심드렁하게 말했다.“사송란, 용오행의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면 당신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거야?”“용오행이 지금 관짝을 가지고 와서 입만 열면 우리 집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떠들어 대는데.”“나더러 지금 그에게 용서를 빌라고?”“당신은 어떻게 용오행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먼저 용오행이 나한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거 아닌가?”“이거랑 그거랑 같아?”사송란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당신은 제멋대로 날뛰고 섬나라 귀인을 도륙 냈어. 지금 미야타 신노스케가 섬나라 음류를 대표해서 그 죄를 물으려고 오고 있어!”“당주께서도 당신이 대하인이라는 걸 알고 특별히 금사남목 관을 만들어 오신 거야!”“이 얼마나 큰 선의야?”“은혜에 감사할 줄도 몰라?!”“우리 대하인 중에 당신같이 파렴치한 소인배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 도덕성이 추락하는 거라구!”사송란은 짐짓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카이 나오토 일가를 죽였을 때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해 보지 않았어?”“당신이 어느 정도 물건인지 생각도 안 해 봤냐고, 어?”“강남 하 세자? 용문 지회장?”“웃기지 말라고 해!”“그 정도 실력으로 감히 섬나라 음류에게 도발하다니! 이제 최고의 음류 검객이 오고 있으니 당신은 죽은 목숨이야!”하현이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내 적수가 된다고 확신해?”“뭐!?”사송란은 하현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다.“하 씨, 그게 무슨 말이야?”“설마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