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원여옥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선가 원 씨 가문 경호원 십여 명이 밖에서 들어왔다.이 경호원들은 흑주인이 아니라 남양인이었고 하나같이 왼손에는 총, 오른손엔 칼을 휘두르며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경호원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방으로 하현을 빙 둘러쌌지만 섣불리 손을 쓰지 않고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기만 했다.하현은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원여옥이 또 무슨 일을 하려는지 예의 주시했다.원여옥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말했다.“이놈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니 잘 지켜봐야 할 거야!”“이놈이 함부로 움직이면 바로 양유훤을 죽여 버려!”“둘이 분명 간통한 사이일 거야!”이 말을 듣고 하현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만약 원여옥의 손에 양유훤이 죽는다면 오늘 자신이 한 모든 일은 무의미해질 것이다.하현이 양유훤을 구하려고 하자 원여옥은 하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양제명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양유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원여옥,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이야?!”“무슨 짓을 하려고?”원여옥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스승님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하려고 그러지! 당연한 거 아냐?”“당신들 두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스승님을 이렇게 비참한 꼴로 만들었는데 남양의 전신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어찌 제자로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으실 텐데, 내 손으로 직접 보내드려야지.”원여옥은 마치 자신이 옳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말했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말했다.“양 어르신의 극야한독은 이미 내가 다 제거했어.”“그의 몸도 곧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예전의 전신의 실력을 되찾으실 거야.”“그의 체력으로 봤을 때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사실 거고!”“그러니까 당신 함부로 행동하지 마!”“뭐?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원여옥은 헛웃음을 지으며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항성 10대
”내가 정상이라고 하면 정상인 거야!”“내가 병자라고 하면 병자인 거구!”“여기는 내 구역이야. 나 원여옥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야!”의기양양한 얼굴로 앞으로 나온 원여옥은 나무 욕조 속에 누워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언뜻 보기에도 양제명의 몸속에 있던 극야한독이 다 제거된 듯한 평온한 모습이었다.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저 사기꾼 같은 하 씨 놈이 정말 무슨 방법이라도 쓴 건가?문득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원여옥의 눈빛은 갑자기 살기로 들끓었다.양제명은 다 죽어 가는 몸이어야 했다.그것이 그녀의 이익에 부합되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절대로 양제명이 회복되는 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된다!그리고 남양국은 다시 양제명의 손아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세월로 돌아갈 것이다.이것은 원 씨 가문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그만!”원여옥이 방아쇠를 당길 듯하자 하현이 손바닥을 휘둘러 경호원 하나를 그대로 날려버렸다.그러나 원여옥의 눈에선 오만한 기운이 감돌았고 순간 그녀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탕!”총소리가 정적을 뚫고 잠자는 사자를 깨웠다.총소리와 동시에 눈을 감고 있던 양제명이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총알이 날아와 양제명의 머리칼을 스치며 날아갔다.“원여옥, 무슨 짓을 하는 겐가?”양제명은 여전히 초췌해 보였지만 온몸에는 말할 수 없는 위엄이 가득 서려 있었다.총을 쏜 원여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그녀는 더 이상 총을 쏠 생각도 못 하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총을 떨어뜨렸다.그녀는 겁에 질린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스승님...”양제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말 좋은 제자였는데.”“내가 아끼던 네가...”“나에게 총을 들이대다니, 이게 무슨 뜻인가?”“날 죽이려고?”“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스승님, 오, 오해십
”하하하. 극야한독이 제거되었으니 다른 일은 다 잘 해결될 걸세.”“항성 10대 명의가 모두 나의 절친들이니 앞으로의 몸 관리는 자네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네.”양제명은 환한 미소를 하현에게 말했다.거의 십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그 누가 기쁘지 않겠는가?“할아버지, 방금 하현이 할아버지를 구하려다 원여옥의 총에 맞아 죽을 뻔했어요!”양유훤도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 기뻐하며 양제명을 부축하였다.원여옥의 행동을 일러바치는 건 덤이었다.이 말을 듣고 원여옥의 얼굴은 일순 창백해졌고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말문이 막혔다.숨이 간들간들 끊어질 듯했던 양제명 앞에서는 제멋대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하지만 이미 정상의 몸을 회복한 남양의 전신을 상대로 그녀가 미치지 않는 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는가?“하현, 이 은혜는 말로 다 표현 못 하네.”양제명은 감탄해 마지않으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천하를 호령할 때는 온 천지가 내 것 같더니만 몸져누워 손도 까딱하지 못하자 비로소 세상 인심이 야박하다는 걸 알았다네.”“이번에 자네의 치료를 받고 이렇게 살아났으니 자네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기겠네.”말을 마치며 양제명은 손짓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서 내 물건을 좀 가져와.”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양 어르신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제가 어르신을 구하는 데는 아무런 사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르신이 저에게 아무것도 주실 필요 없습니다.”양제명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사람이 너무 소탈하군. 그러나 난 자네한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네.”말을 하던 중 양유훤이 기쁜 얼굴로 다른 방에 가서 고풍스러운 상자 하나를 가져와 양제명 앞에 꺼내 보였다.양유훤은 하현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하현, 우리 할아버지를 구해 준 건 나와 우리 양 씨 가문을 구해 준 거나 마찬가지야.”“이 순간부터 나 양유훤은 당신
”자네가 이 양공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아네.”“어쨌든 자네의 몸놀림과 행실로 봤을 때 이런 외부인이 준 물건이 필요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야.”“하지만 이건 나의 작은 성의이네. 그러니 꼭 받아주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안해서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겠나?”양제명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후 양공령을 하현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양제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양공령을 본 순간 원여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사기꾼 같은 놈이 양제명의 관심을 끌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그런데 유일한 양공령마저 그에게 주려고 하다니!이 양공령만 있으면 앞으로 이 사기꾼은 동남쪽 해역에서 거칠 것이 없고 아무도 그에게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하현은 어안이 벙벙했다.양제명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챙겨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양 어르신, 이건 너무 귀한 것이라 받을 수 없습니다.”하현은 이 물건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양제명은 남양의 전신으로 불리며 동남해 전역에서 무적과도 같은 존재였다.그가 남양국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아마 앞으로 동남해 전역은 남양국을 다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그때에 양공령이 상징하는 의미와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임에 틀림없다.하지만 하현은 자신이 양제명의 영패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자신에게는 아마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이 물건은 자신보다 양유훤에게 훨씬 더 쓸모가 있을 것이다.하현의 말에 양유훤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항성과 도성에서 양공령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만약 하구천이 지금 이런 기회를 잡았더라면 당장 넙죽 엎드려 받았을 것이다.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가치가 높고 권세와도 맞먹는 양공령을 하현이 마다하다니?이 남자, 정말 신비롭고 매력적이다.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양공령을 정
다음날 오후 2시, 하현은 항성 용문 도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오늘 용오행이 항성에 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용문 도관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이전에 청소를 담당하던 아주머니도 오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하현은 도관 뒷산에 있는 정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그의 앞에 마주할 대상은 폭풍이 아니었다.그저 제멋대로 날뛰는 어릿광대일 뿐이다.그곳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최문성과 공송연 두 사람뿐이었다.공송연은 어젯밤 내내 치료를 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하현을 바라보는 공송연의 눈에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었다.“하현, 이제 아무 소용없어. 오늘 용당주가 오시면 당신은 끝이야. 이미 당신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구!”“당주 외에도 섬나라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도 곧 올 거야!”“그분은 섬나라 전신이니 당신이 아무리 깝죽거려도 그에겐 못 당할 거야!”“그러게 누가 섬나라 음류를 건드리래?!”“당신 같은 건방진 놈은 이제 끝났어!”“하하하!”공송연은 미친 사람처럼 웃어 젖혔다.어제 하현의 손에 참혹하게 죽은 용정재를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숙명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되새겼다.하현이 죽든 말든 그녀는 반드시 용정재의 복수를 감행하고 말 것이다.공송연은 지금 자신의 생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오직 하현이 수많은 사람들의 총칼에 무참히 찢어지고 발겨지는 걸 보고 싶을 뿐이었다.하현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신 뒤 담담하게 말했다.“공송연,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나 본데 마지막에 누가 죽는지 어디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당당한 대하인도 섬나라 음류 앞에선 피라미에 불과해. 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길바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먹던 사람일 뿐이잖아.”최문성은 앞으로 나서서 공송연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얼마나 세차게 내려쳤던지 공송연의 이빨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최문성은 하현의 심리를 자꾸 자극하는 공송연의 말을 가만히 듣
”용오행, 어떻게 죽고 싶은지 말씀해 보십시오!”서슬 퍼런 눈빛이었으나 그 누구보다 침착하고 결연한 말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주위는 싸늘한 기운이 유랑하듯 유유히 감돌고 있었다.“개자식! 당신이 어떻게 당주한테 그런 말을 해?!”“우리 당주 앞에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사는 게 지겨워!?”“용문에서 우리 당주가 누구보다 위대한 애국지사요, 충직인지 몰라서 이래?”“감히 당주께 함부로 불손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다니! 당장 내가 널 죽여 버릴 것이야!”한 무리의 용문 집법당 정예들이 발끈하며 하현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집법당이 있은 뒤로 그들은 항상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웠다.그런데 오늘 하현이란 놈이 용오행에게 그런 불명예를 뒤집어씌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자신들이 하면 로맨스요,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하현, 역시 기세가 대단하군!”“실력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날카롭고 재빠른지는 몰랐어. 정말 대단해!”용오행은 이마에 핏대를 세웠지만 순간 자신의 감정을 애써 추스렸다.“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해도 오늘은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당신은 섬나라 음류 귀인을 잔인하게 죽였어. 섬나라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가 이미 항성에 와 있어!”“그가 직접 나섰다니 당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건 시간문제야. 당신은 그 오만함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용오행의 말에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가 죽으러 왔다니 힘을 아낄 수 있게 되었군요.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일부러 섬나라까지 가서 그를 멸망시켜야 했으니 그 무슨 시간 낭비 돈 낭비겠습니까?”“그런 점에선 집법당이 나한테 오히려 좋은 일을 해 준 셈이죠.”“뭐라고? 이놈이!”용오행은 무심하게 내뱉은 하현의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억눌렀다.“하현, 그만 날뛰지 그래? 입버릇이 아주 고약하구만!”“곧 알게 될 거야. 섬나라 전신, 음류 검객의
용오행의 손놀림에 뒤쪽에 있던 집법당의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들은 업무용 차 뒷좌석에서 금사남목으로 만든 관을 들었다 놓으며 ‘꽝'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리쳤다.“하현, 잘 봤지? 이건 내가 큰돈을 들여 주문 제작한 관이야!”용오행의 얼굴이 음흉하게 일그러졌다.“당신이 죽으면 내가 직접 여기에 눕혀 줄게!”“그런 다음 강남에도 가고 대구에도 갈 거야.”“당신 마누라뿐만 아니라 온 집안을 다 풍비박산 만들어 버릴 거라고!”“당신 18대 조상 무덤까지 다 파헤쳐 버릴 테니까 똑똑히 두고 봐!”“걱정하지 마. 내가 당신 가족을 위해 특별히 풍수가 좋은 곳에 묻어 줄게. 다음 생에 좋은 자손들을 낳을 수 있도록 말이야!”“아하하하하!”“개자식! 감히 나 용오행의 아들을 죽이다니!”“당신 가족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상들의 무덤을 다 파혜쳐 갈기갈기 찢어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니까 각오해!”용오행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냉정과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광기와 음흉한 기운에 사로잡힌 괴물이 따로 없었다.주위에 있던 집법당의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모두 몸서리를 치며 두려움에 떨었다.당주가 이렇게까지 분노한 적은 처음이었다.하현은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태연스럽게 찻잔에 차를 따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이야말로 오늘 어디 갈 필요 없어.”“금사남목 관이 아주 좋으니 매국노나 다름없는 당신과 섬나라 검객을 함께 묻어 버리기 딱 좋은 날인 것 같은데.”“당신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말이야.”하현이 말을 마치며 태연스럽게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개자식!”“하 씨, 당주께 함부로 굴지 마!”“이건 어디서 나오는 배짱이야?!”이때 또 다른 차량 몇 대가 도관 입구에 꼬리를 물고 멈춰 섰다.그리고 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이 섬나라 복장으로 차 문을 박차고 기세등등하게 내렸다.이들은 다른 재벌 가문 2세들과 달리 경호원이나 수행원 대신 보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송란을 바라보았다.사람을 보내 알아보지 않아도 알 만한 일이었다.그녀가 이번에 나타난 것은 하구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그리고 그녀의 뒤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사람들은 소위 무학 성지를 대표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위세를 부리며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둘 뿐만 아니라 심판을 자처하며 하현을 괴롭히려 들 것이 뻔했다.하현은 사송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심드렁하게 말했다.“사송란, 용오행의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면 당신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거야?”“용오행이 지금 관짝을 가지고 와서 입만 열면 우리 집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떠들어 대는데.”“나더러 지금 그에게 용서를 빌라고?”“당신은 어떻게 용오행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먼저 용오행이 나한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거 아닌가?”“이거랑 그거랑 같아?”사송란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당신은 제멋대로 날뛰고 섬나라 귀인을 도륙 냈어. 지금 미야타 신노스케가 섬나라 음류를 대표해서 그 죄를 물으려고 오고 있어!”“당주께서도 당신이 대하인이라는 걸 알고 특별히 금사남목 관을 만들어 오신 거야!”“이 얼마나 큰 선의야?”“은혜에 감사할 줄도 몰라?!”“우리 대하인 중에 당신같이 파렴치한 소인배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 도덕성이 추락하는 거라구!”사송란은 짐짓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카이 나오토 일가를 죽였을 때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해 보지 않았어?”“당신이 어느 정도 물건인지 생각도 안 해 봤냐고, 어?”“강남 하 세자? 용문 지회장?”“웃기지 말라고 해!”“그 정도 실력으로 감히 섬나라 음류에게 도발하다니! 이제 최고의 음류 검객이 오고 있으니 당신은 죽은 목숨이야!”하현이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미야타 신노스케가 내 적수가 된다고 확신해?”“뭐!?”사송란은 하현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다.“하 씨, 그게 무슨 말이야?”“설마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