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재를 놓아줘!”“함부로 굴지 마!”집법당 제자들이 당황하며 허둥지둥 달려들었다.만약 용정재가 죽는다면 그들의 말로도 끔찍할 거라는 걸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용정재의 안위를 책임지는 세 명의 고수들도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다.문 앞에 있던 공송연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집법당에서 소위 정예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이 최문성에게 일격을 당해 이미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밖에는 이미 용전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싸늘한 기색으로 들어섰다.최영하가 온 것이 분명했다.이 모습을 본 공송연은 얼굴에 절망이 가득 들어찼다.만약 하구천의 사람들이 온다면 그들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하지만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까지 왔으니 모든 것이 이미 끝장이었다.용정재가 죽은 개처럼 하현의 발아래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고 하현의 총은 용정재의 이마를 향해 있었다.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그녀들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소리쳤다.“하 씨, 당신 무슨 자격으로 지금 그러는 거야?”“용정재는 용문 집법당 당주의 아들이야!”“또한 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용 씨 집안 자제라고!”“당신 용정재를 이렇게 만들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을 줄 알아?”예쁘장한 여자들은 형세를 읽지 못하고 여전히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장 어르신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나 하현을 손가락질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 지금 뭘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당신은 지금 외부와 내통했다는 죄목을 지고 있어! 그런데 감히 용정재를 다치게 하다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문주가 와도 당신을 구해 주지 못할 거야!”“당신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당주께서 내일 몸소 항성과 도성을 방문한다는 걸 알기나 해?”“용정재를 건드리면 당주께서 납시는 거야. 당신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응?”비록 하현의 몸놀림이 무섭고 두렵기는 하나 지금 용정재의 부하들은 전설
이때다 싶었는지 공송연도 사나운 표정으로 거들었다.“하 씨, 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마!”“그렇지 않으면 당신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이때 장 어르신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켜고는 TV로 통화 화면을 옮겼다.갑자기 엄중한 표정을 한 사람이 TV에 나타났다.용문 집법당 당주, 용오행!용오행은 이미 항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듯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난 용오행일세!”“용문 집법당 당주!”“용 씨 가문 십삼대 종손!”“내 신분이나 지위에 대해서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잘 들어. 당신이 예전에 섬나라 귀인의 미움을 산 뒤 남양인과 결탁한 일을 난 이미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어!”“내 아들을 항성에 파견한 것은 당신의 그 행동을 멈추게 하고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서였어!”“그래서 난 지금 당신에게 명령하겠어. 내 아들 놓아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그렇지 않으면 내일 내가 항성에 가자마자 해야 될 일이 당신을 죽이는 일이 될 거야!”“당신을 죽인 뒤 당신과 관계 있는 모든 사람들도 응당의 벌을 받을 거야, 알아듣겠어?”용오정은 위엄을 떨치며 거침없이 내뱉었다.“내가 한 말은 즉시 그 자리에서 실행될 거야. 명심해!”“지금 당장 내 아들을 놓아주지 않으면 바로 죽을 거란 얘기야!”“정말 당신 용당주 맞습니까? 용 씨 가문 종손 맞냐고요?”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홀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내가 당신 아들을 풀어주길 바라세요? 그건 문제없어요. 언제든지 풀어줄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우리 용문 규칙에 따르면 용문 제자들이 모여 어지럽고 지저분하게 뒤섞여 놀았는데 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런 건 상관하지 않으세요?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은 집법당 당주잖습니까?”“당신은 일개 대구 지회장에 불과하고 장로회에선 아직 인정도 하지
총성이 울리고 용정재의 미간에는 검붉은 핏구멍이 생겼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튀어나왔다가 그대로 힘을 잃고 풀썩 늘어졌다.곳곳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은 도저히 이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다.용정재가 하현의 손에 저리 쉽게 처리되다니?용정재가 힘을 잃고 널브러지자마자 최문성은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용전 항도 지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나와 장내에 진입해 사람들을 감옥으로 압송했다.몇몇 병왕급 인사들도 모두 압송되었다.용오행과의 타협은?처음부터 하현은 이 가능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결국 하현을 향한 용문 집법당의 끊임없는 도발로 하현 쪽에서는 이미 집법당의 많은 제자들을 죽였는데 어떻게 쌍방이 타협할 수 있겠는가?집법당 뒤에 있는 장로회의 생각이 어떠한지, 용문주 쪽의 태도는 어떠한지 하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그는 이렇게 제멋대로 날뛰고 왕법을 무시하는 집법당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 생각했다.강 씨 가문 쪽에서는 강학연과 강옥연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다만 용문 항도 지회를 당분간 하현에게 일임하기로 했지만 항도 지회의 심복들은 강 씨 가문 측이 데리고 갔다.이 사람들은 강 씨 가족을 보호하는 데 힘쓸 것이다.최 씨 가문, 허 씨 가문, 동 씨 가문은 원래 항성과 도성에서 뿌리 깊은 집안이어서 스스로 가문을 보호할 수단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비록 내일 용오행이 항성에 올 것이지만 이것은 결국 용문 내부의 일이며 다른 사람이 절대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모든 준비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전문 인력이 용문 도관을 말끔히 청소한 뒤에야 하현은 용문 도관 뒤뜰에 있는 정자에 허리를 걸쳤다.그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멀리 빅토리아 항을 내려다보았다.야경이 눈에 시리도록 아름다웠다.이 아름다운 도시에 내일 용오행이 올 것이다.항성과 도성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뒤덮을 것이라는 생각이 하현의 마음을 짓눌렀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들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단정하듯 말했다.“그 쓰레기들 나한테 달려오는 족족 다 죽여 버릴 거야!”최영하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하현, 잘 들어. 내가 이렇게 말하는 목적은 당신한테 가서 다 죽여 버리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돌아가려면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야.”“내륙으로 돌아가면 용오행이 당신을 귀찮게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섬나라 전쟁의 신 미야타가 감히 당신을 귀찮게 하지는 못 할 거야.”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오늘 집법당을 평정하고 용정재를 처리했는데 내가 이대로 도망간다고?”“그러면 내 체면은 뭐가 되겠어?”최영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체면을 중시하는 건 알겠지만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야. 생사 앞에서 체면 따위는 하등의 가치도 없는 거야!”“당신이 완전히 철저하게 그들을 제압할 승산이 없다면 난 지금 당신이 떠나는 게 맞다고 봐.”“혹시 우리를 걱정하는 거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같이 떠날게.”“심지어 용전 항도 지부도 깨끗이 포기할 거야!”여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그녀의 차갑고 부드러운 얼굴에 붉은 홍조가 감돌았다.분명 냉철하고 차가운 미녀였으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푸근한 옆집 누나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수줍음이 가득한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왜? 내가 내일 그들에게 지고 죽을까 봐? 죽을까 봐 걱정돼?”“그래서 지금 떠나라고 날 설득하는 거야? 심지어 자신도 모든 것을 던지고 따라가겠다고?”“만약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난 당신 옆에서 당신의 그림자로 살 수도 있어.”최영하의 눈동자에 핑크빛 온기가 가득 흘러넘쳤다.하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이 주제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길 바라며 딴청을 부렸다.“자자, 우리 이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자고.”“내가 집법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섬나라
”그 당당하신 용문 집법당 당주는 내가 섬나라 음류들과 내통했다는 당치도 않는 죄명을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어.”하현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만 봐도 그는 내 손에 죽어 마땅해!”“그가 죽지 않으면 앞으로 용문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하인들이 그의 손에 처단되어 나갈지 몰라!”“미아탸 신노스케는 섬나라의 전신이자 음류 검객이니 어찌 보면 나를 괴롭히는 게 정상이야.”“어쨌거나 내가 섬나라 음류의 일을 망쳤으니.”“나도 언제 섬나라에 한번 가서 섬나라 음류를 들추어내 볼 생각이었어.”“그런데 지금 그들이 이렇게 온 이상 난 힘을 조금 아끼게 된 셈이지.”“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니까.”“그 사람들이 온다고 하니 한 명도 갈 생각하지 마.”하현의 말에 최영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참, 다른 소식이 있어.”“대하에 있는 몇몇 무학 성지도 내일 여기 섬나라 사람들과 집법당 사람들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오매 도관을 필두로 젊은 세대의 교만함이 아마 가관일 거야.”“인솔자는 당신도 잘 아는 오매 도관의 사송란이야.”“그밖에 섬나라 쪽 6대 유파가 대표를 보내왔다고 해.”“신당류인 텐푸 다이토가 직접 인솔해 왔다고 하고.”“텐푸 다이토는 섬나라 신당류 검신 텐푸 쥬시로의 친아들이야.”“아버지가 가진 거의 대부분의 전술을 이어받았다고 해.”“이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은 마음뿐만 아니라 감 놔라 배 놔라 심판이라도 할 생각일 거야.”“그들은 당신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한 판을 보고 싶은 거지.”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내 사소한 일들이 언제 무학 성지들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된 거야?”“이 사람들 그냥 문제를 크게 만들어 날 곤란하게 만들려는 심산인 거 아냐?”“그리고 신당류의 텐푸 쥬시로는 입만 열면 날 죽여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 아니야?”“자기
하현이 오늘 밤 남양 회관에 온 이유는 양제명의 몸 안에 있는 극야한독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였다.이 일 외에도 여기에 온 다른 목적이 있었다.하현은 용오행 같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한다니 스스로도 준비를 해야 떳떳하지 않겠는가?하현은 양유훤의 말에 군말 없이 대답했다.“날 들여보내 줘.”양유훤도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하현을 데리고 남양 회관의 뒷마당으로 향했다.방문을 열자 양유훤은 상냥한 미소를 내걸며 말했다.“할아버지, 하현이 왔어요.”하현은 양제명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방에는 독의 기운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예전에 느꼈던 극한의 한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아직 잠들어 있는 수사자가 깨어나려는 듯 꿈틀대는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기운을 느낀 하현은 살짝 놀랐다.남양 전신의 기운이 이렇게 강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단지 조금 회복했을 뿐이고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기운을 뿜다니!전장이었으면 얼마나 강한 전운을 감돌게 할 사람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이런 점에서 자기가 그를 구해준다면 장차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현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하현, 오셨는가?”“환영하네.”양제명은 예전엔 아주 상태가 나빴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된 듯 보였다.이제는 침대에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하현을 본 그의 눈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빛을 발했다.하현이 입을 열었다.“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회복이 빠르십니다.”“적어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이 정도로 회복하셨다니!”“삼일 만에 이렇게까지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분명 중독되기 전 양제명은 전쟁의 신들 중 단연 최고라 꼽힐 만했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비록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위험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아주 적합한 한 수였던 셈이다.그러나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위험하고 고통
”용오행 일행은 솔직히 말해 광대일 뿐이야.”“다만 그들이 이렇게 많은 조력자들을 끌어들였으니 나도 나름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어?”“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체면이 없어 보이잖아, 안 그래?”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히 말했다.이 말을 듣고 양유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그러나 양제명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말했다.“하현, 자네 성격 참 마음에 드네!”“대장부가 하는 짓이 모름지기 이래야지. 하고 싶은 대로 해. 조심조심 몸 사리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지.”“자네가 이렇게 솔직히 말해 주니 나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겠네.”“오늘 밤 자네가 내 몸속에 있는 독소를 완전히 뽑아준다면.”“그 순간부터 자네 일은 곧 나 이 양제명의 일이 되는 거야!”하현은 환하게 웃었다.그가 기다린 것은 바로 이 한마디였다.하현은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그는 전에 준비한 독극물을 모두 끓여 큰 가마솥에 넣으라고 양유훤에게 지시했다.가마솥 밑에는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솥 안에서는 검은 거품이 계속 일렁이며 비리고 구역질 나는 냄새를 사방에 풍겼다.그러나 하현은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양제명의 몸을 자세히 검사했고 양유훤에게 수술용 기구 몇 개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밤 12시가 되어 갈 즈음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하현은 직접 양제명을 일으켜 나무 욕조에 양제명의 몸을 담그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앞으로 두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양유훤, 당신이 직접 밖에서 좀 지키고 있어.”“아무도 들여서는 안 돼.”“누군가 들어와서 방해라도 하게 된다면 바로 실패야.”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독극물을 이용한 이 방법은 허무맹랑하고 사도에 쉽게 빠지는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와서 방해한다면 독가스를 역행하게 만들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양제명은 독소를 제거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게 된다.하현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양유훤도 이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
”양 어르신, 오늘 제가 하는 독극물 제거 방법은 치료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큰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하현은 수술용 기구를 몇 개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좀 참으셔야 할 것입니다.”양제명은 이 말을 듣고 실소를 터뜨렸다.“하현, 난 전장을 누빈 사람이야. 전쟁의 신.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게 뭐가 있겠는가?”“이 극야한독보다 더 음험하고 악독한 것도 겪었을 걸세.”“어르신이 이렇게 자신하시니 저도 괘념치 않고 시작하겠습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통에서 침을 꺼내 양제명의 척추에 푹 찔렀다.잠시 후 하현은 양제명의 몸에 꽂았던 침을 뽑았다.침에는 검은 액체가 묻어 나왔다.분명 양제명의 몸속에 있던 독소는 대부분 척추에 숨겨져 있는 듯했다.독소를 빼내고 나자 양제명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확 좋아졌고 새로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본 하현은 환한 미소를 띠며 메스를 손에 들고 양제명의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칼자국을 내었다.“푸푸푸푸.”시커먼 핏물이 튀어나와 나무 욕조에서 서로 중화되어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하현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전에 남아 있던 독소를 모두 빠져나가게 하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진정 가장 큰 극야한독은 여전히 양제명의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극야한독은 매우 완강하고 악독해서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이 이 독소를 건드리자 독소들이 완강하고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음.”한때 전장을 평정했던 전쟁의 신인 양제명도 이 극한의 고통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양손으로 나무 욕조의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나무 욕조가 그의 손아귀에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양유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움직이지 마세요!”“이 독이 어르신의 몸속에 들어가 극야한독을 완전히 중화시켜야 하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야.”“그래야 어르신의 몸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어.”양유훤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