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을 생각해 줘?!이 말은 분명 상대의 의향을 묻는 질문처럼 들렸으나 실상은 친한 친구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말이었다.강학연의 말 몇 마디에 별안간 주위가 조용해졌다.장묵빈과 마리아 일행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었다.그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강학연은 조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지만 그 행동 방식은 오만하고 횡포하기로 유명하다.그런 그가 여자 뒤에 숨어 호의호식하는 듯한 사람을 만나고도 어떻게 이렇게 예의를 차려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강학연은 항성 최고 책임자라고 체면을 봐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홍성 교관조차도 두 눈 똑바로 뜨고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장묵빈이 장 씨 가문이 아니었다면, 마리아가 노국 황실 사람이 아니었다면 강학연을 똑바로 상대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강학연은 하현 앞에 예의를 차리며 공손한 분위기마저 풍겼다.최문성과 동리아는 도대체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얼떨떨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하현은 강학연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강 지회장님, 저희 처음 뵙는 거 같은데요, 그렇죠?”“처음 만나지만 용문주가 지난번에 항성과 도성에 왔을 때 나한테 몇 마디 귀띔해 주시긴 했지.”“용문은 일치단결해서 외부의 침략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강학연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진지해졌다.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용전 항도 지부의 일이 일어난 지 좀 되었는데 강학연은 이제야 얼굴을 내밀었고 하필 자신이 용문 집법당과 대적을 한 후에 나타난 것이다.이게 무슨 뜻일까?하현 혼자 집법당을 제압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일까?하현은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강 지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용문 사람들은 일치단결하여 외부의 세력
하현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강 지회장님, 그들은 당신을 저들이 키우는 개라고 했습니다.”“그들은 문을 닫아걸고 개를 풀어 날 물어 죽이려고 합니다.”장묵빈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을 치켜떴다.그는 하현을 노려보다가 마른침을 삼키며 강학연에게 말했다.“강 지회장님, 오해입니다! 오해!”“우리가 총교관의 칼을 도둑맞고 나서 하도 경황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거예요!”“부디 절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퍽!”강학연은 손바닥으로 장묵빈의 얼굴을 내려쳐 땅바닥에 넘어뜨렸다.그런 다음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법을 지키지 않는 흉악무도한 놈들은 혼이 나야지! 여봐라! 잘 들어! 지금 당장 이놈의 손발을 부러뜨려!”강학연은 장묵빈을 설득해 하현에게 사과하라고 종용할 마음이 없었다.하현같이 단호한 사람 앞에서 사과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강학연은 잘 알고 있었다.어쨌든 하현은 용문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다.강학연은 금세 뭔가 심상찮은 냄새를 맡았다.용문주가 하현을 후계자로 양성하려고 점찍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린 것이다.그렇다면 그는 지금 하현에게 더 많은 인정을 베풀어야 뒤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하현 하나 구하자고 집법당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하지만 하현을 위해 몇몇 소인배의 얼굴을 걷어차는 것은 분명 엄청난 이익으로 돌아올 수지맞는 장사였다.강학연의 말을 듣고 몇몇 키 큰 용문 사람들이 올라와서 장묵빈을 끌고 가서 손발을 부러뜨리려고 했다.“강 씨! 당신은 장묵빈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없어요!”마리아는 장묵빈의 노국 영주권을 꺼내들며 제지하고 나섰다.“이 야만인들아, 똑똑히 봐! 우리 장묵빈은 이미 노국 사람이야!”“강 씨, 감히 당신이 우리 장묵빈을 건드린다면 그건 나와 우리 노국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퍽!”마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
허민설은 원망 가득한 눈빛이었다.이번에 하구천은 많은 준비를 했었다.목적은 단 하나.단 번에 하현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강학연이 장남백의 전갈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후 누구보다 먼저 사람들을 데리고 현장을 찾아온 하구천과 허민설이었다.눈앞에서 하현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되다니!그것은 그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항상 제멋대로에 거칠 것 없이 행동하던 강학연이 장남백을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공손한 자세로 하현을 맞이하며 같이 식사를 하러 가다니!이게 무슨 상황인가?“허민설, 내가 당신한테 여러 번 말했지. 큰일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순간은 있는 거야. 그렇게 초조해서 뭐해?”하구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뭔가 전략을 짜는 듯한 미간을 보였다.“예전에 용전 항도 지부에 용문주가 나타나 하현의 편을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 일이 이미 강학연에게 전해진 것 같아.”“강학연은 아주 늙은 여우야. 함부로 움직이지도 함부로 누구 편에 서지도 않는 사람이야.”“그런데 오늘 저녁 하현과 함께 식사를 하다니. 분명 하현에 대해 뭔가 더 알아내려는 수작일 거야!”“하현이 여자 치마폭에 싸여 호의호식하는 남자라는 걸 강학연이 알게 되면 아마 지금처럼 저렇게 공손하게 대하진 않을 거야!”“마리아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예전에 강 씨 집안은 확실히 노국 황실의 개였을 거야!”“강학연이 더 이상 하현이 용문주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확신하기만 한다면 그는 언제든지 직접 나서서 하현을 죽일 거야.”“그렇게 해야 한편으로는 노국에 또 한편으론 용문 집법당에 그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일 수 있지.”“그리고 마지막으로 장 씨 집안과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에도 보란 듯이 자신의 충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고.”“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지!”하구천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허민설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하구천, 하현이 용문주가 선택
허민설은 머릿속으로 하현의 최후를 떠올렸다.제대로 된 기반도 없이 함부로 날뛰다가 최후를 맞이할 하현을 생각하니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그들의 구역에서 그들 세력이 즐비한 상황에 하현 한 사람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란 걸 진정 모르는 걸까?제멋대로 날뛰고 경외로움이 뭔지도 모르며 여기저기 미움을 사다가 결국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모르는 놈이 분명했다.허민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핸드폰을 한번 힐끔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강학연 그 늙은 여우가 하현을 직접 해결하진 않았나 봐.”“하현을 금옥루로 데려간 뒤 다른 핑계를 대고 떠났다나 봐.”“강옥연한테 하현을 대접하라고 하고는 자신은 쏙 빠졌대.”“설마 강학연 그 늙은이가 하현과 뭔가 친분 관계를 만들려는 거 아냐?”허민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강학연과 하현 사이에 친분이 생긴다면 하현은 항성과 도성에서 더 많은 인맥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이것은 결코 하구천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강옥연...”하구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강옥연의 이름을 중얼거렸다.“강학연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우리가 어서 그에게 따끔한 주사를 놔 줘야겠군. 우리 하구천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려줘야지, 안 그래?”“항성과 도성 두 도시는 결국 항도 하 씨 손아래에 있는 땅이니까!”“누구라도 이 구역에서는 함부로 날뛸 수 없지!”“아무리 그게 하현이라도 말이야!”...항성 금옥루.하현은 테이블 중앙석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맞은편에는 기껏해야 이십 대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밝은 인상의 숙녀가 앉아 있었다.하지만 몸매는 어느 성숙한 여인보다 아름다웠고 눈매는 그린 듯 빼어난 곡선을 자랑했다.강학연은 자리에 앉자마자 급한 일이 생겼다며 떠났고 지금 하현과 강옥연 두 사람만이
강옥연은 강 씨 집안 아가씨였지만 평소에 금옥루에 와서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그런 그녀가 친구들을 모두 불렀으니 이십 대 허영심 많은 남녀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강옥연은 하현에게 물어보지 않고 태블릿PC를 들고 알아서 주문하기 시작했다.그러고 나서 강옥연과 그녀의 친구들은 크고 작은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하현은 이 장면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비록 강학연이 두 사람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하현은 강옥연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이렇게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면 그만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찻잔에만 열중했지만 강옥연의 묘한 시선은 자꾸만 하현에게 떨어졌다.강옥연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친구들도 힐끔힐끔 하현을 쳐다보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어쨌든 강 지회장님이 강옥연과 선을 보라고 부른 남자이니 남다른 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하현이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고 있자 남자들은 그가 금옥루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장관에 기가 눌렸다고 생각하며 어느덧 슬슬 무시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며 서로 자신들을 치켜세우기 바빴다.이 남자들은 모두 항성에서 유명한 졸부들의 2세였다.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강옥연의 무리에 낄 수 있었겠는가?이따금씩 슬쩍슬쩍 롤렉스 시계를 드러내며 머리를 쓸어넘긴다든지 고급 외제차 열쇠를 무심한 듯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든지 오메가 시계가 둘러쳐진 손목을 자랑스럽게 보인다든지 하는 그들의 행동은 졸부 2세들이 보이는 꼴같잖은 행태 그 자체였다.남자들을 쳐다보는 여자들의 눈에는 흐뭇한 빛이 넘실거렸다.오직 강옥연만이 이 남자들에게 별다른 시선을 보이지 않았다.용문 항도 지회는 겉으로 위용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항성 S4에 필적할 만한 것이다.그래서 어린아이들 놀이하듯 서로 자랑에 목매어 있는 모습들이 강옥연은 못내 탐탁하지 않았다.졸부 2세들의 과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조용히 차를 마시며 음미하는 하현은 모습은 오히려 강옥연에게
”손서기 매니저님.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 주문한 지 삼십 분도 더 되었다구요. 왜 애피타이저도 안 나오는 거예요?”“나 주시윤을 무시하는 거예요?”과시욕이 강한 주시윤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손목에 차고 있던 오메가 시계를 보란 듯이 드러내며 고급 외제차 열쇠를 흔들어 보였다.“여러분, 안녕하세요.”손서기는 주시윤은 쳐다보지도 않고 빙긋이 웃으며 시선을 한 바퀴 빙 훑더니 강옥연에게 고정시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방금 알고 보니 이 룸은 이미 예약되어 있었어요.”“지금 다른 룸은 없고 홀에서 그냥 드시면 안 될까요?”“화장실 옆쪽에 테이블을 하나 추가했어요.”“제 성의 표시로 오늘 주문하신 금액에서 20% 할인해 드리겠습니다.”손서기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들어온 목적을 숨김없이 말했다.“이미 예약되었다구요?”화가 치밀어 오른 주시윤이 가장 먼저 나섰다.“이 룸은 강옥연이 미리 예약한 거예요. 게다가 우리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기나 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예약했다구요?”“여길 비우라구요?”“농담이죠, 예?”“그래요? 어떻게 된 거죠? 프런트 데스크에서 아마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제가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손서기는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그렇지만 그 일은 그 일이고 이 일은 이 일이죠.”“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항성에서 유명한 분들이시니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금옥루의 룸은 일정한 지위와 신분을 가지신 분만 들어올 수 있어요. 다들 아시죠?”“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러분들 신분으로는 이 룸을 예약할 자격이 안 됩니다.”“화장실 옆쪽에 따로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로서도 최선을 다 한 거예요.”“그러니 여러분들도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손서기는 한마디 한마디 단호하게 힘주어 말했다.“어쨌든 예약한 손님들이 곧 오실 텐데 여러분들이 여기 계속 계시면 서로 불미스러운 일이잖아요? 만약 그렇게 된
조금 전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씩씩거리던 주시윤은 허민설이라는 말에 갑자기 움찔하며 고개를 떨구었다.다른 졸부 2세들도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었다.허민설은 항성 S4 최고 가문인 허 씨 가문 사람이다.그뿐만 아니라 항도 하 씨 가문 하구천과 매우 가깝게 지내는 최측근이다.허민설에게 미움을 산다는 것은 하구천에게 미움을 산다는 얘기다!그곳에 있던 졸부 2세들은 하구천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바로 겁을 잔뜩 먹었다.어찌 감히 그에게 미움 사는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강옥연 씨, 허민설이 온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하셨죠?”손서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강옥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이제 상황을 아셨으면 홀에 있는 테이블로 옮겨 주시겠어요?”“이따가 다른 직원들한테 맥주나 음료수 서비스 잘 해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섭섭하지 않게 드릴 거예요.”웃는 듯 마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는 손서기를 보며 하현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이 여자, 하는 짓이 매우 얄밉고 음흉하다.만약 오늘 밤 강옥연이 허민설이라는 이름에 겁을 먹고 여기서 물러난다면 강 씨 집안의 체면은 물론이고 용문 항도 지회장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된다.강옥연이 일어서려는 것을 보고 하현은 그녀가 겁을 먹고 물러서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오히려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손서기 앞으로 나갔다.“매니저님. 당신이 이 식당 매니저라면 지금 이 식당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계시겠죠?”강옥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손서기는 한껏 비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연히 알고 있죠...”“퍽!”손서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옥연은 이미 손바닥을 후려쳐 손서기의 뺨을 날렸다.“누가 주인인지 알면서도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한 거야?”“계속 오냐오냐해 줬더니 아주 자기가 주인인 줄 안다니까!”
강옥연은 거침없이 이리저리 손바닥을 휘둘렀다.손서기의 얼굴은 점점 더 푸르스름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우리 강 씨 집안이 요 몇 년 동안 너무 겸손하게 굴었더니 당신은 우리 집안을 아주 마음대로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 거야?”“우리 할아버지가 당신한테 너무 관대하게 대해서 오히려 당신은 우리 강 씨 집안의 권위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어?”“다른 주인에게 기대면 우리 강 씨 집안을 무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구?”“퍽!”“어서 당장 꺼져!”강옥연은 쇄기를 박듯 마지막으로 손서기의 뺨을 후려쳤다.“짐 쌀 시간은 줄 테니 어서 썩 꺼져!”“다음에 내가 금옥루에서 또 당신을 보게 되면 그땐 당신 죽여 버릴 줄 알아!”손서기는 망나니처럼 머리가 헝클어졌고 얼굴은 푸르스름하게 부풀어 올라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조금전 거들먹거리며 룸에 들어왔던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낭패와 처참함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강옥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용문 항도 지회장의 손녀인 그녀가 만약 위축되어 겁을 먹었다면 하현은 아주 실망하며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결단력 있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담력을 가졌다니!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기세에 하현은 적잖이 감탄한 눈치였다.다른 졸부 2세들은 강옥연을 멀뚱멀뚱 바라볼 뿐 입도 떼지 못했다.평소 점잖고 조용해 보이던 강옥연이 이렇게 발끈하며 기세등등하게 다른 사람의 뺨을 후려갈길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소위 군계일학이라고 하는 말은 지금의 강옥연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강옥연, 금옥루는 당신 집안에서 단독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야. 다른 주주들의 승인도 없이 금옥루의 매니저를 마구 때리고 해고하려고 해?”“이건 규칙에 어긋나는 짓이잖아?”손서기가 강옥연에게 다시 대들려고 했을 때 갑자기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