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의 몸은 멈추지 않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뒤로 물러난 뒤에도 그는 쉴 새 없이 이쪽 저쪽으로 몸을 굴리고 뒤집으며 킬러들의 총탄을 피했다.대합실 안에서는 연신 탕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고 바닥과 벽면에는 총탄 자국들이 점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맞은편 외국인 킬러 몇 명이 다시 공격하려고 발을 내디뎠다.그러나 첫 번째 사람이 발을 디디자 하현을 향해 공격하던 다른 동료의 총탄이 그만 그의 머릿속에 박히고 말았다.하현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상대의 총탄을 유린하고 있었다.이윽고 하현은 상대의 총알이 로비의 강철 건물 용골 위에 떨어지도록 유도했다.순간 파편이 사방을 뒤덮였다!하현은 조금도 다친 데가 없었지만 다른 외국인 킬러들은 모두 바닥에 엎어졌다.하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한 구를 잡아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았다.그리고는 재빨리 대합실 밖으로 뛰쳐나갔다.저격수들은 바로 맞은편 창고 꼭대기 위에서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팡팡!”총알이 빗발치듯 난무했지만 하현은 시체를 방패막이 삼아 저격수들의 공격을 막았다.창고 밑에 도착했을 때 하현은 잡고 있던 시체를 버리고 최대한 빨리 내부 계단을 통해 창고 꼭대기로 돌진했다.상대방의 사격술은 며칠 전 천계 조이팰리스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저격수와 같았다.하현은 저놈이 누군지 정말 죽도록 알고 싶었다.“탕!”하현이 창고 꼭대기에 있는 문을 발로 차서 연 뒤 바로 총구를 겨누었다.하현의 몸이 나타난 순간 총알이 상대방을 향해 돌진했다.상대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하현의 의지가 엿보였다.곧이어 상대편에서 총알이 날아왔다.“탕!”맞은편에는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여우 가면을 쓴 여자가 나타났다.가면 아래로 뾰족한 턱이 드러났다.그 선만으로도 그녀의 몸매와 매혹적인 선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날렵한 얼굴이었다.그러나 하현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하현은 급하게 손을 놀
하현이 재빨리 창고를 떠나던 그 시각 소윤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사물함에서 기어나왔다.그녀의 얼굴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날의 블랙위도우처럼 차갑고 침착하게 모든 일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녀는 재빨리 VIP룸을 빠져나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며 공항의 혼잡한 관광객 속으로 빠져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소윤비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곽영준, 나야. 도성 국제공항에서 하현이 뜻밖에 미국 최 씨 집안 공격을 당했어.”“당신 계획이 성공했어.”“이제 곧 하현은 죽을 거야.”“서희진? 내가 이미 말했잖아. 직접 연락하지 말라니까.”전화기 맞은편에서 곽영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소윤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가 이내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곽영준, 난 단지 기뻐서 전화했던 거야. 당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축하해 주려고!”“하현이 이번에 죽지 않더라도 적어도 몇 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도성은 내륙이 아니기 때문에 하현도 여기서는 어쩔 수가 없을 거야.”“그리고 곽영준, 다른 가문들과 협력해서 도성 관청을 압박해. 그러고 나서...”“팡!”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윤비의 온몸이 떨렸고 순간 복부에선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멀지 않은 곳에서 아무 표정 없는 얼굴의 여자가 소총을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던졌다.그리고 그녀는 소윤비를 향해 목을 긋는 손짓을 했다.소윤비는 그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복부에 난 상처를 쳐다보았다.믿을 수 없었다.“감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땅에 풀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숨을 거두었다....소윤비가 죽었을 그 시각, 도성항 천계 조이팰리스 로열 스위트룸 안.최규문은 테이블 위에 자료 뭉치를 내리치며 중얼거렸다.“그 남자였군.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어디선가 본 것 같았거든.”“셋째 할아버지와 넷째 할아버지한테 손 댄 사람이 그
최규문이 원통한 표정을 짓자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오랜 친구 진태유는 시가에 불을 붙이면서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어이, 규문아. 내 생각에 너 너무 소심한 거 같아.”“하현을 죽이는 거, 그거 외지인 하나 죽이는 거잖아?”“그가 내륙에서 아무리 힘이 세고 배경이 좋은들 여기서 뭘 어쩌겠어?”“우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까딱하는 것만으로 죽일 수 있어!”“그동안 가만히 놔두었던 건 그냥 귀찮아서 그랬을 뿐이야.”“그런데 지금은...”진태유는 서류를 꺼내 최규문 앞에 던지며 웃었다.“네가 경찰서에 취조받으러 갔을 때 내가 오랫동안 황금 삼각주 일대를 떠돌던 퇴역 미군들을 고용해 하현 그놈을 처리하라고 했어.”“곧 좋은 소식이 돌아올 거야.”“뭐!?”침착하던 최규문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하현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다고?”“그래. 오십 명 정도 되는 미군 퇴역병들이야. 그리고 어마어마한 탄약과 총알을 준비했지.”“그러니 너 걱정하지 마. 아무리 뒤져 봐야 증거도 찾을 수 없는 물건들이야.”“이렇게 했는데 어떻게 그 미꾸라지 한 놈 못 잡겠어?!”“야 이 자식아! 사람을 보냈으면 보내는 거지 왜 미군 퇴역병을 보냈어?”최규문이 버럭 화를 냈다.“날 죽일 속셈이야?”“하현이 죽든 살든 이런 짓을 할 사람으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나일 거라고!”“진정해, 진정하라구. 규문아, 내가 말했잖아. 해외에 나간 지 몇 년 안 됐는데 어떻게 미국 매파들의 조급증만 배워 왔냐, 넌? 내가 너한테 몇 번 말했잖아. 이렇게 큰일을 만날수록 냉정을 잃으면 안 돼.”진태유는 시가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하현은 네 얼굴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네 희망호도 망하게 했어. 그리고 수백억이나 되는 돈도 가져갔어!”“이런 사람이 죽지 않고 버젓이 자기 집에서 편안히 지내는 꼴을 보고 싶냐?”“걱정하지 마. 항성과 도성 모두 우리 홍성 구역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다
항성 마사회에 도요타 몇 대가 천천히 진입하며 곧바로 경마장 입구로 향했다.동작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살기가 어리는 긴장된 순간이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특수 제복을 입은 남녀 수십여 명이 표정 없는 얼굴로 VIP룸 쪽으로 향했다.입구에 있던 경호원들은 길을 막으려고 손짓을 했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특수 제복을 보고는 하나같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며 군말 없이 길을 내줬다.지나가던 항성의 권력가들도 모두 긴장된 얼굴로 변했다.모두들 시선을 내리깔고 조심스럽게 힐끔힐끔 쳐다보았다.마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고귀한 그림을 보듯 숨죽이며 바라보았다.곧 7번 VIP룸이 열렸다.앞장섰던 여자가 싸늘한 표정을 한 채 손을 흔들었고 위엄 서린 얼굴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으로 들어갔다.특수 제작된 총기 수십여 자루가 지금 이 순간 들어서는 사람들을 향해 숨을 죽이며 노려보고 있었다.맨 앞에 서 있던 여자는 증명서를 보여주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용전은 지금부터 사건을 처리하겠습니다. 이제 말씀하셔도 됩니다.”“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모두 증언으로 인정됨을 말씀드립니다.” 핸드폰을 든 곽영준은 긴장된 표정이었고 약간은 굳어 있었다.아까 서희진의 전화를 받고 일의 경과를 알아볼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용전 사람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는 민첩하게 반응했고 가장 먼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어 잠금을 풀려고 했다.“퍽!”맨 앞에 서 있던 여자는 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곽영준이 핸드폰 통화기록을 삭제하기도 전에 뭔가 쇠붙이 같은 것이 그의 손목을 정확하게 타격했고 핸드폰은 그대로 카펫 위로 떨어졌다.곽영준은 안색이 일그러지며 자신의 핸드폰을 밟아 부수려고 했다.그러나 이때 선두에 있던 여자는 매서운 눈초리로 말했다.“핸드폰을 부순다면 난 지금 당장 당신을 사살할 겁니다.”“먼저 참수하고 나중에 보고하라, 왕실 헌장에 있는 말이죠. 어디 한번 해 보
”순순히 당신들을 따라가겠습니다!”곽영준은 저항하려는 모든 의지를 내려놓고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경호원을 힐끔 바라보았다.“하지만 저들은 결백합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 좀 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선두에 선 여자가 냉랭하게 말했다.“걱정 마세요. 우리는 아무 잘못 없는 사람한테 누명을 씌우거나 하지 않으니까요.”“당신들의 경호원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한 그들의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거예요.”곽영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경호원을 향해 눈짓을 했다.지금의 상황은 아무래도 집안 어르신이 나서야 할 것 같았다....최규문과 곽영준 두 사람이 모두 용전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있던 그때.하현은 도성 경찰서 자문실에 앉아 있었다.그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최영하였다.두 사람은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고 기록한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최영하는 이미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이해했고 핸드폰을 꺼내 하현 앞에 놓았다.“하현, 또 다른 일이 있어. 당신이 말한 핵심 인물, 소윤비 말이야. 이미 죽었어.”“공항이 혼잡한 틈을 타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노렸어. 총알이 심장을 관통해 손을 쓸 수가 없었어.”“하지만 공항의 모든 CCTV가 다 공격을 당해서 소윤비가 누군가의 총에 잘못 맞아서 죽은 건지 그녀를 겨냥한 저격수가 있었던 건지는 파악하지 못했어.”“그리고 또 한 가지. 그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어. 통화기록이 3분 가까이나 되었어.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통화한 상대가 항성 S4 중 한 명인 곽영준이었어.”“곽영준? 소윤비는 나랑 얘기했을 때 줄곧 곽영준을 보호하려고 애썼어. 그런데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곽영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어?”“곽영준에게 사건 경위를 보고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지.”최영하가 나름대로 분석한 것을 말하자 하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발했다.“아니야. 소윤비가 곽영준을 공범으로 만들려고 물귀신 작전을 한 것
최영하는 하현을 내려준 뒤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침울한 표정으로 그곳을 떠났다.마당 안에는 하현만이 덩그러니 남았다.그는 주위를 한 바퀴 휙 둘러보았다.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다.아마도 이 순간 적어도 수십 명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하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그들은 두말할 것 없이 실력이 범상치 않을 것이다.“용전, 대하 초석 중의 하나!”하현은 흥미로운 표정이었다.대하의 초석 중 용위주가 수호 방위를 용옥주가 형벌을 용문주가 길바닥 조직을 용전주가 경외 구역을 관할하고 있다.이치대로라면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으니 용옥에서 이 일을 담당해야 한다.그러나 항성과 도성은 대하 권역이면서도 다른 행정 구역에도 속해 있어서 용전이 이 일을 관할하는 것이 정상이었다.하현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멀리서 특수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그는 하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하현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따라 들어갔다.전방에는 안내실이라는 곳이 있었다.그다지 크지 않은 방이 있었지만 여기저기 십여 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실내에 있는 테이블 맞은편에는 차가운 얼굴로 무장한 두 남녀가 이미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본 그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 지회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용전 항도 지부 조사팀 팀장이고 코드명은 백구입니다.”“이 두 분은 내 동료이고 코드명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하 지회장님을 이곳으로 오라고 한 것은 오늘 도성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서입니다.”“하 지회장님이 용문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권한상 우리는 당신을 직접 체포할 권리는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용문 집법당을 통해서만 처벌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오늘 사건이 너무 중대한 일이라 하 지회장님이 특별히 협조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백구는
절차상으로 보이는 간단한 질문이 밤새 이어졌다.그중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었는데 백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리저리 말을 바꿔가며 수십 번 다른 방식으로 질문했다.처음에는 하현도 담담하고 냉정하게 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간이 굳어지기 시작했다.용전 항도 지부가 묻는 질문은 겉으로는 간단하고 평범한 절차상의 과정으로 보였지만 여기서 하현은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났다.백구의 질문에는 일부러 하현이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부분이 많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벌써 감금되고도 남았을 것이다.서른한 번째 질문이 이어질 즈음 때는 이미 다음날 정오가 되었다.맞은편에 있던 세 명의 용전 사람들의 얼굴은 여전히 무덤덤했다.이런 질의 과정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하현은 열 번째 커피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은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자, 당신은 지금 서른한 번이나 질문을 했어요. 나도 서른한 번째 진지하게 대답했구요.”“이제는 저도 대답하기 귀찮습니다.”“혹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시면 다시 연락 주세요.”백구는 순간 당황한 듯한 눈빛을 띠었고 뭐라고 입을 떼려고 했는데 마침 안내실 안쪽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그 후 단단해 보이는 벽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불빛이 크게 비추며 십여 개의 긴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졌다.곧이어 아름다운 몸매에 그림같이 고운 얼굴의 여인이 제복을 입은 여자 몇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그녀는 하현을 향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근래에 보기 드문 절세미인이었다.“오빠, 여기는 용전입니다.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죠.”“당신은 용문 대구 지회장이고 용문 서른여섯 번째 지회장 중 한 명일지라도 도성 국제공항에서 큰 테러를 일으킨 혐의가 확인되었으니 내 직권으로 당신을 체포할 수 있어요.”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의 빼어난 용모와 뾰족한 턱을 보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여우 가면,
하현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표정은 당당했고 말투는 한껏 상대를 비아냥거리고 있었다.그 순간 전체를 장악할 것 같던 하수진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그녀는 하현의 오른손을 거칠게 툭 쳐내며 한 걸음 물러섰다.“이봐! 이 사람 손을 끊어버려!”“차칵!”하수진의 지근거리에 서 있던 십여 명의 제복 입은 남녀가 냉담한 표정으로 총을 열고 동시에 하현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그들이 뿜어내는 살기가 하현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이 순간 하현이 피식하고 조그만 웃음소리만 내어도 그들은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길 참인 것 같았다.하현은 공간을 억누르는 살의를 느끼며 침착한 표정을 핸드폰을 꺼내어 메시지를 보냈다.그런 다음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자신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자, 발포해. 날 없앨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구.”“만약 오늘 당신이 날 없앨 수 없다면 난 당신을 없애버리고 말 거야!”“용전 항도 지부 제 1팀장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용문 대구 지회장의 팔을 끊어낼 수 있는지 잘 봐야겠어.”하현은 사방에서 조여드는 살의를 당당하게 되받아쳤다.그는 용문 대구 지회장이라는 신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하지만 때로는 그 신분이 엄청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감히!”하현을 노려보며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그녀는 잠시 후 손을 흔들어 총구를 거두게 했다.하현에겐 약간 유감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만약 여기서 감히 하수진이 먼저 선제공격을 한다면 그에게도 큰 싸움을 일으킬 구실이 생기는 셈이었다.하현의 마음을 읽은 듯 하수진은 냉랭하게 입술을 들썩였다.“오빠, 걱정하지 마.”“언젠가 그 팔은 내가 반드시 없애버릴 테니까.”“내가 당신의 죄명을 정한 후에 기꺼이 보여줄게.”“내 죄명을 정한다고? 증거는? 당신들이 어젯밤에 수십 번 반복해서 물어본 질문들에 근거해서?”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이런 허무맹랑한 취조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