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들의 돈을 원하지 않아요. 당신들이 내 어머니를 놓아준다면 전 이 주식의 50%를 그냥 포기할 수 있어요.”설은아는 한마디 한마디 당당하게 말했다.“그저 어머니가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하면 돼요.”“촤랑!”방금까지 온화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곽추연이 갑자기 손을 뿌리치며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졌다.“어디서 건방진 소릴 하고 있어!”“방주, 지금 우리 화 씨 가문이 당신 수중의 주식을 손에 넣으려고 당신 어머니를 납치했다는 말이야?”“우리 화 씨 가문 사업체가 이렇게나 큰데 돈으로 뭔들 못할까?”“뭣하러 그런 짓을 벌이겠어?”곽추연의 눈빛이 당장이라도 설은아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당신 아무 데나 가서 물어봐. 우리 화 씨 가문에서 당신 어머니를 납치했다고 떠들어 보라고. 누구 그 말을 믿는지 똑똑히 봐!”“농담하는 거지? 우리 집안이 어떤 가문이야? 도성 최고 가문이야.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내륙에서 온 두 사람 너무 웃겨? 분명 우리 화 씨 집안에 빌붙어 대구 엔터테인먼트 지분 50%로 먹고살고 있으면서 뭐가 이리 당당한 거야?”“우리 화 씨 가문이 이제 그들과 합작할 생각이 없는데도 뻔뻔스럽게 우릴 자꾸 건드리고 있어.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 집안이군!”“내륙에서 온 사람들은 욕심이 너무 많아. 여사님이 이미 그들에게 500억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돈이 적다고 생각하는지 어머니를 납치했느니 어쩌느니 억지를 부리고 있어...”“돈을 더 받고 싶다면 솔직하게 말해. 안타깝지만 우리 여사님은 이런 수법 전혀 안 통해.”“저 사람들은 여사님이 넷째 도련님처럼 쉬운 상대인 줄 알았나 봐. 팥으로 메주를 만들었다고 해도 덥석 믿을 줄 알았어?”주변에 서 있던 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아냥거리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기 시작했다.그들의 눈에는 하현과 설은아가 욕심만 그득한 소인배로 보이는 것 같았다.돈을 얻기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쓰레기라
”여기 서명해.”화옥현은 탁자 위에 있던 몽블랑 만년필을 들고 한껏 가식적인 품위를 드리운 채 설은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서명만 하면 다 끝날 일이야. 더 이상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아.”그 순간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도성 경찰서 형사들이 도착한 것 같았다.허빈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설은아, 아직도 서명 안 하고 있는 거야?”“더 이상 머뭇거린다면 경찰들이 곧 들이닥쳐 하 씨 성 가진 저 남자를 끌고 가 감옥에 가둬버릴 거라구!”설은아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거의 정신을 지배당한 사람처럼 홀린 듯 서명을 하려고 했다.“퍽!”하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몽블랑 만년필을 바닥에 던져버린 다음 탁자 위에 있던 서류를 집어 단숨에 갈기갈기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은아, 서명하지 마!”“화 씨 가문 사람들 행태를 보니 우리가 서명해도 그들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들이 절박하게 손에 넣고 싶은 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대구 엔터테인먼트 지분 50%, 그것뿐이야.”“그들이 이런 수작으로 우릴 놀이판으로 끌어들였으니 우리도 저들과 같이 한번 놀아 주자구!”“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야. 우리 지분 50%를 분할해서 도성에 직접 우리가 운영할 수 있는 카지노를 여는 거야!”“난 화 씨 집안이 어떻게 쓰러지는지 두 눈 똑똑히 볼 거야!”화 씨 집안의 카지노 지분으로 또 다른 카지노를 연다고?화 씨 집안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건가?!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듯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많은 사람들은 한껏 비웃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그를 분수도 모르는 주제넘은 사람으로 여겼다!화 씨 집안은 도성 최고 가문이다!도성에 있는 여섯 개의 절대옥패 중 네 개가 화 씨 집안의 손에 들어있다!하현은 그야말로 외부에서 들어온 외지인인데 화 씨 집안의 지분을 분할해 새로운 카지노를 열어서 화씨 집안이랑 경쟁을 하겠다니!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인가?모두가 어림도 없다
”자, 허풍 좀 그만 떨어요!”“당신네 내륙인들은 어쩜 허풍이 그리 세! 아주 그냥 허풍이 하늘을 찌르네 찔러! 이제 그만 작작 좀 하라구요!”키가 크고 영리하게 생긴 여자 경찰이 하현에게 면박을 주며 다가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당신이 하현이란 사람입니까?”“화씨 집안 경호원들과 우리 경찰들을 때렸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우리랑 같이 좀 가 보시죠!”하현은 여자 경찰이 하는 말은 무시한 채 차가운 눈빛으로 곽추연을 바라보았다.“부인, 잠깐만요!”“당신들은 내 장모님을 납치한 죄가 있어요.”“그리고 오늘 내 아내를 괴롭힌 죄가 있죠.”“난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요.”“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이 모든 것 열 배 백 배로 다 갚아드릴 테니까.”“난 당신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옥패도 다른 가문에 떨어지는 걸 꼭 지켜볼 거니까요!”하현은 곽추연 한 사람 없애는 것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이런 사람들에게는 냄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새 지옥의 맛을 보여줘야 한다.“지금 우리 화 씨 가문을 멸망시키겠다는 소리야?”화옥현은 긴말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매섭게 하현을 노려보았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 경찰서에서 어떻게 걸어 나올지 그것부터 걱정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화옥현은 하현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어 하현의 얼굴을 건드렸다.“이것도 인연이라 내가 한 가지 일러두지.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 중 70%는 우리 화 씨 집안사람들이야.”“내가 말했지. 도성에선 우리 집안이 곧 왕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똑똑히 보여줄게.”“지금 당신 속이자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곽추연은 위엄 서린 몸짓으로 다시 상석으로 올라와 앉으며 말했다.“몇 년 동안 내 앞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이 수백 명은 될 거야.”“하지만 결국 모두가 다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용서를
하현은 어깨를 약간 으쓱하며 말했다.“진실은 모두 CCTV에 있어요. 전체를 다 촬영한 영상이 있다구요. 당신들 필요해요?”“전체를 촬영한 영상이라고?”여자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은 우리 도성 경찰이 바보인 줄 알아요? 우리도 진작에 현장에서 확인했어요. CCTV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부서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전체를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는 거예요?”“지금 당신이 말한 그 영상, 가짜죠?”“현재 기술로 동영상을 편집 조작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게다가 난 현장 증인한테도 벌써 증언을 받아두었어요. 모든 증인이 나서서 증거를 제시했어요. 당신이 사람을 때리고 경찰을 때렸다는 일관적인 진술을 확보했죠.”“이제 와서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인정하지 않겠다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경찰들 탓은 하지 마세요.”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왜요? 소위 말하는 증인 몇 명 데려다가 나한테 누명 씌우려고 준비 단단히 하셨나 봐요?”“사건의 발단 경위는 조사해 봤어요?”“현장 증인의 진술은 확실한 건가요?”“현장에서 물증이라도 발견되었습니까?”“아무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내가 죄를 저질렀다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까? 당신 무슨 생각인 거예요?”여자 경찰이 발끈하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가르치는 거예요?!”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전화 좀 하고 싶어요.”그는 도성 경찰들과 하나하나 이치를 따지고 싶었지만 화옥현이 그에게 말했듯이 경찰서 사람들 70%가 화 씨 집안사람들임을 확인한 것 외에 아무런 수확도 얻을 수 없었다.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런 경찰들과는 어떤 법도 공정하게 집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 사람들이 이렇게 법도 규칙도 없이 움직이니 하현도 그들의 박자에 맞춰 줄 수밖에.남자 경찰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자백이나 하지 무슨 전화는 전화예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전화
하현은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최문성에게 전화했어요.”“최문성?!”여자 경찰은 눈동자가 멍하니 굳어졌다.도성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그 정도 거물들은 대부분 이름을 알고 있다.그러나 여자 경찰은 얼른 얼굴 표정을 바꾸어 비꼬는 기색을 보였다.“최문성이라면 우리 도성에서 유명한 그 최 씨 집안 그 최문성 말입니까? 항상 공정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분이죠.”“게다가 우리 경찰서의 고위층인 그야말로 거물이에요.”“그런 사람이 어떻게 당신 같이 사람을 때리는 놈을 도와준다는 거예요?”“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예요?”“힘 있는 사람의 인맥을 이용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될 만한 사람을 거들먹거려야지, 이건 뭐 가당키나 하겠어요?”“아니면 이름만이라도 거론하면 우리가 벌벌 길 줄 알았나 보죠?”남자 경찰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난조로 말했다.남자가 아무 능력도 없이 경찰서 와서 속임수를 쓰려는 수작은 보기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하현은 그들의 냉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되는지 기다려 보든지요.”“그러죠. 당신이 죄를 인정하든 말든 우린 상관없어요. 우린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법에 따라 우리는 당신을 72시간 동안 감금할 수 있어요!”여자 경찰은 심드렁하게 말했다.“우린 먼저 가서 밥이나 먹자구요. 다 먹고 나서 당신과 천천히 다시 실랑이를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앞으로 며칠 동안 당신 잠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 우리가 당신과 아주 천천히 놀아 줄 거니까요. 당신이 즐거울 때까지 끝까지 놀아줄 거예요!”“물론 당신은 최문성이 당신의 구세주가 되어 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여자 경찰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허풍 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2, 3일 가둬두면 저절로 꼬리를 내리고 살려달라 울고불고 매달릴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하현은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고 혼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뿐 아무 말도
최문성은 나무라듯 말했다.“대표님,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밥 먹을 기분이 나세요?”하현은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만약 내가 일부러 여길 들어왔다면 당신 믿겠어?”최문성은 하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일부러 들어와요? 여길?”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대구에서 도성으로 온 요 며칠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장모님이 납치되셨고 난 여러 차례 습격을 당했어. 아내는 카지노 지분을 빼앗기게 생겼고...”“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밀하고 끈질겨. 세상에 이런 우연은 없어.”“일부러 누군가 치밀하게 계획한 게 아니라면.”하현은 돼지국밥을 먹으며 최문성에게 한 가지 일깨워주었다.“최문성, 당신도 우리 당도대 출신이야. 때론 겉으로 보이는 거 말고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어.”“예를 들어 말이야. 지금 날 여기서 내보내는 게 유리한지?”“아니면 이 기회에 배후에 있는 진범을 찾아내는 게 더 유리한지?”최문성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대표님은 누가 장모님을 납치했는지 이미 알고 계시는 거예요?”“도대체 누가 대표님을 습격했는지 아세요?”하현은 조용조용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추측일 뿐이지만.”“오늘 여기 들어와서 지난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곰곰이 되짚어 봤어. 내 짐작이 맞다면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분명히...”“그 손은 아마도 항성 4대 가문 중 하나일 거야.”“4대 가문 중 유일하게 항성 곽 씨와 항성 이 씨 가문이 나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어.”“하지만 항성 곽 씨 집안은 역량이 그리 크진 않아. 이렇게까지 길게 손을 뻗진 못해.”“그렇다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항성 이 씨 가문이야. 아니면 항성 이 씨 가문의 배후에 있는 큰손이든가.”최문성은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대, 대표님, 그러니까 항
양복을 입은 도성 경찰 십여 명이 스물일곱 여덟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를 에워싸고 있었다.여자는 키가 170 센티미터에 육박하는 늘씬하고 육감적인 몸매에 아주 세련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언뜻 보기로도 보통내기는 아닌 듯했다.그녀의 얼굴은 차가운 바람을 집어삼킨 듯 식어 있었고 화를 내고 있지 않았음에도 당당한 위엄이 묻어났다.그녀의 아우라에 남자들은 똑바로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자세히 이목구비를 뜯어보니 얼굴 생김새가 최문성과 비슷해 보였다.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저절로 공손해졌고 함부로 얼굴을 찌푸리지도 못했다.그녀의 출현으로 사무실 전체가 숨쉬기조차 힘든 팽팽한 긴장감으로 휩싸였다.모든 경찰들은 지금 입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자칫 사소한 말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최문성은 그녀를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모든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든 그녀의 정체는 도성 최 씨 가문, 최영하였다!“뭔가 소란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어떻게 안 와 보겠어?”최영하는 싸늘함이 극에 달한 표정으로 최문성에게 호통쳤다.“다 큰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뭔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뭔지 아직도 분간이 안 되는 거야?”“우리 최 씨 가문이 비록 도성의 최고 위치에 있지만 내가 항상 말했잖아!”“이런 자리일수록 더욱 조심하면서 법을 잘 따라야 한다고!”“누가 너더러 최 씨 가문의 힘을 빌려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랬어? 누가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어기고 비행을 저지르라고 했냐구?”겁에 질린 듯 최문성은 우물쭈물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누나, 나 아무...”“시끄러!”“어제 일은 내가 말도 안 꺼냈어! 지금 경찰서 와서 이런 소란을 피우면서 뭘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거야!?”최영하는 불같은 얼굴로 최문성을 노려보다가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당신이 하현, 맞죠?”“당신이 어디서 나타난 사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한다구요?”최영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지금 그녀는 세부 사항을 캐묻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하현, 당신은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우리 도성은 당신네 내륙과는 달라요. 우리는 왕법 사회라구요!”“경찰서에 들어온다고 함부로 사람을 대할 수도 없고 일부러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없어요.”“그런데 지금 내 동생을 불러서 어떻게 좀 봐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당신은 분명히 내 동생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당신을 도와주길 원하면서 오히려 누군가가 당신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말하는군요!”“날 바보 취급하는 겁니까?”“나이도 젊은 사람이 우리 도성에 와서 법과 규율을 무시하다니. 이제 보니 내륙의 아주 몹쓸 관행들만 가지고 왔군요!”“잘 들어요. 우리 도성에선 그런 수작 안 통해요!”최영하는 현장 수사관 몇 명을 지목하더니 차갑게 말했다.“이 사건은 특히 더 공정하게 처리하세요. 사익을 위해 법을 어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제가 직접 관할하겠어요.”“사건은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면 됩니다!”“누구도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어길 수 없어요!”최영하는 도성 제일가는 당찬 아가씨일 뿐만 아니라 도성 경찰서에서는 이인자이며 실세 중의 실세였다.신분으로 본다면 최문성보다 한 급 위였다.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녀의 사람됨이었다.그녀는 성격이 칼같고 군더더기 없는 사람이었다.절대로 어영부영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말 한마디면 최문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게 할 수도 있다.하지만 하현은 그녀의 어마어마한 위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최영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최문성의 누나라는 이 여자가 모든 수사관들에게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스스로 결연하게 죽을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누구를 그렇게 결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최영하는 최문성을 데리고 나갔고 방금 하현을 심문했던 두 경찰관은 이번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