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후 하현과 주시현은 청허 도관에 도착했다. 하현은 굳은 얼굴로 주시현의 차를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내버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뛰쳐나갔다. 주시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신사적이지 않은 남자는 처음 봤다. 하현은 그녀에게 스스로 차를 세우라고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핑크색 롤스로이스는 대출로 산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긁혀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잘 세워두어야 했다. 한편, 슬기는 벌써 청허 도장 본당에 와 있었다. 이곳엔 삼청의 진흙 조각상이 금박으로 싸여 보기에는 휘황찬란하게 보였다. 도교는 불교와 비할 수는 없지만 청허 도장 때문에 청허 도관은 대구에서 아주 유명해 많은 부자들이 왕래하는 곳이었다. 슬기는 예의를 갖춰 향을 한 다발 바친 후 무릎을 꿇고 제비를 흔들었다. 곧 제비가 떨어졌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주인이 있다. 너무 작은 것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말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차분하게 하나씩 진행하라……”제비의 운세를 보고 슬기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점치는 곳으로 걸어갔다. 거기서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30대 중반 정도 되는 도사였는데 이때 그는 슬기를 향해 인사를 하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기 여 시주님이세요?”슬기는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슬기 엄마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온 이후로 그녀는 어떻게 해도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참배객처럼 절을 하고 무슨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지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이 도사의 출현으로 그녀의 얼굴빛은 무거워졌다. 도사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여 시주님, 당황하실 필요 없어요. 그런데 누가 당신을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건 가요?”슬기는 가타부타 뭐라 하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스카 아가씨라고 했죠? 아직 확실하게 설명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누가 당신을 오라고 한 거예요?”“방현진? 아니면 미야모토?”아스카는 웃었다. “당신의 문제는 너무 많아요. 그래도 당신이 나와 같은 여자인걸 봐서 내키진 않지만 한 가지만 얘기해 줄게요.”“슬기 아가씨는 미녀에요.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남자들이 당신을 대할 때 모질게 대하지 않잖아요.” 슬기는 눈동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여자가 당신한테 손을 대면 반드시 죽을 거예요.” “슬기 아가씨, 우리를 탓하지 마세요. 탓하고 싶으면 당신 팔자가 사나운 걸 탓하세요. 어쩌다 방 도련님 눈에 든 거예요!”말을 하면서 아스카는 오른손으로 장검의 칼자루를 잡았다. 한편, 마당에는 또 유카타를 입은 섬나라 여자 네 명이 나타났다. 모두 손에 섬나라 장검을 들고 슬기가 가는 모든 길을 막았다. 슬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방금 길을 인도했던 도장를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장님, 도교는 평화롭게 항상 도법과 자연을 중요시하잖아요.” “저는 왜 당신이 섬나라 사람들과 협력해서 저를 해치려고 하는 지 너무 궁금하네요.”그 도장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 시주님, 도교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죠.”“도법도 좋지만 도법보다 돈이 더 실용적이잖아요. 그렇죠?”“일리가 있네요.” 슬기는 한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맞은 편에 있던 아스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슬기 아가씨, 전화를 걸고 싶으면 당당하게 핸드폰을 꺼내세요.”“하지만 이 부근의 신호는 우리가 다 차단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 수 없을 거예요.”슬기는 안색이 약간 변했다. 핸드폰을 꺼내서 보니 역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슬기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 넣고는 뒤로 물러 가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신호마저 차단한 걸 보니 너희들 오늘 나를 완전히 죽이려고
슬기는 두려워하는 대신 오히려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역시 너희 집 아가씨는 머리가 안 좋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남자에게는 가질 수 없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는 걸 설마 모른단 말이야?”“내가 오늘 여기서 죽으면 나는 방현진의 마음 속에 환한 달빛이 될 거야. 그럼 그때부터는 너희 미야모토 아가씨에게는 어떤 기회도 없을 거야.” 아스카는 괴상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섬나라 여자들은 남자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걸 가장 좋아해. 네가 말한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내가 내버려 둘 거 같아?”“슬기 아가씨, 걱정 마. 내가 환한 달빛을 침대 앞의 환한 달빛으로 만들어 줄 테니……” 이슬기는 눈빛이 굳어졌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너 뭐 하려고 그래!?”아스카가 왼손을 살짝 흔들자 손바닥에 작은 도자기 병이 나타났다. 그녀는 흥이 넘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정조를 지키는 여자들의 긴장을 풀게 만드는 물건이야.”“소문으로는 아무리 열녀라고 해도 복용을 하기만 하면 3분 안에 남자를 찾아야만 된다고 하더라. 게다가 갈수록 더 많이 찾게 된대.”“이따가 네가 삼키고 나면 미리 준비 해둔 젊고 힘센 망나니들을 들여 보내 줄게.”“그 녀석들은 분명 슬기 아가씨를 잘 섬겨 줄 거야.”“그리고 우리는 이 화면을 녹화해서 인터넷에 올릴 거야.” “네가 소위 경호원이라고 부르는 그 쓸모없는 변승욱이 눈치 채기 전에 이슬기 아가씨는 벌써 봄바람을 느꼈을 것 같은데?”“슬기 아가씨, 내가 준비한 거 어때?”“동영상은 인터넷에 올려 놓기만 하면 돼.”“환한 달빛이 계속 빛나게 될까?”말을 하면서 아스카는 손에 들고 있던 도자기 병을 유카타 차림의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는 빙긋 웃으며 이 약을 슬기의 입에 부으려고 했다. 슬기는 이번엔 정말 안색이 변했다. 이런 결말은 죽는 것 보다 더 처참하기 때문이다. “파렴치하네!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다 너무 파렴치해!”“너희들은
“싹!”바로 이때 섬나라 장검을 든 섬나라 여자들은 안색이 변하더니 아스카의 명령도 필요 없이 자기들도 모르게 동시에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또 한 사람이 슬기를 향해 달려들어 그녀를 인질로 잡으려고 했다. “펑펑펑______”이 순간 하현이 손을 댈 필요도 없이 도포를 입은 한 사람이 군중들 사이에 나타났다. 곧이어 먼지를 휘날리며 세 개의 섬나라 장검을 쓸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세 섬나라 여자들은 날라가 벽에 부딪히더니 피를 뿜어내고는 힘없이 쓰러졌다. “어린 것들이 감히 우리 청허 도관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너 정말 우리가 풀만 먹는 줄 알아?”“쓰레기!”청허 도장이 갑자기 나타나서 손에 먼지를 털자 철사 같은 실이 날리더니 그 섬나라 여자들의 미간을 뚫었다. 이 사람들 말고 또 다른 한 사람도 그 피바다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방금 슬기를 이곳으로 데리고 들어온 도장이었다. 청허 도장도 비범한 실력을 가지진 사람이었다. 비록 하현의 일격을 받아낼 수는 없었지만 이 야비한 놈들을 처치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침내 그는 한걸음에 달려 나와 슬기를 막아서며 경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하현은 웃으며 수표 한 장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날렸다. 그러자 그는 공수하며 절을 했다. 청허 도관의 계획을 이해하려면 청허 도장부터 손을 대는 것이 가장 쉽다. 청허 도장은 무력으로 위협하는 건 안될 수도 있지만 돈을 뿌리기만 하면 쉽게 기꺼이 협조할 것이다. 하현과 청허 도장이 비밀리에 거래하는 모습을 보고 아스카는 미친 듯이 펄쩍 뛰었다. 그녀는 이전부터 청허 도장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건드리지 않고 그의 부하 도사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청허 도장이 개입을 할 줄은 몰랐다. 골치 아프게 된 것이다. 아스카는 안색이 변하더니 청허 도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청허 도장이죠?”“우리 신당류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순순히 말을 듣고 아무
이때 자신 앞에서 고양이처럼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우는 아스카를 보며 하현은 요동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나랑 붙겠다고? 넌 자격이 없어.”“범아, 네 실력을 보여줘.”변백범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눈동자에는 한 줄기의 전의가 스쳐 지나갔다. 어젯밤의 전투 이후에 그는 벌써 자신의 세력을 굳건하게 다졌다. 이때 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당도의 칼자루를 잡고 한 발을 내디디며 마치 화살처럼 몸을 튕겨 아스카가 있는 쪽을 향해 돌진했다. “보잘것없는 길바닥 사람이 우리 섬나라 검도 고수와 맞붙으려고 하는 거야?”“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아스카는 비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섬나라에서 온 신당류 고수들 중에 출중한 인물이라고 자부하며 자신의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대일로 싸우면 그녀는 모든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쓱!”아스카가 칼을 내리치자 허공에 한 줄기 빛이 번뜩이더니 변백범의 목구멍을 향해 떨어졌다. 섬나라 검도는 여태껏 미관은 중시하지 않았고 대신 빠르고 강하며 정확한 것을 중요시했다. 전세계 무술에서 꽤나 이름이 있었고, 아무리 강한 것도 부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며, 빠른 속도에 대항할 만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일격을 가한다면 변백범도 죽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스칼의 칼은 빨랐지만 아쉽게도 변백범의 칼은 더 빨랐다. 아스카의 칼이 그의 목구멍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변백범이 한쪽으로 피하는 바람에 아스카의 칼은 허공을 가르게 되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오른손을 살짝 휘두르며 ‘챙’소리를 냈다. 발도술! 아스카의 얼굴엔 한 줄기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피할 겨를도 없이 목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풉______”그녀의 목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단칼에 베었다! 소위 신당류의 고수가 이 정도라니! ……슬기와 하현이 삼청전 밖에 나타났을 때 뒷짐을 지고
이 모습을 보고 하현과 슬기는 모두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폭풍전야와 같은 긴박한 이 순간에…하필 누군가가 바퀴를 잠근 것이다.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느낌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하현은 차에 붙어 있던 종이를 집어 들고 몇 번 쳐다본 뒤 담담하게 말했다. “청허 도관 경비실에서 붙인 거네.”“경비원들일 뿐인데 함부로 차를 걸어 잠그고 딱지를 떼다니. 이거 경비원을 오래했더니 자기가 경찰서 형사인줄 아나 보네!”말을 하면서 하현은 청허 도장에게 알리려고 핸드폰을 들고서야 자신이 그의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바로 이때 멀리서 제복 차림의 30-40대로 보이는 두 경비원이 담배를 물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다가왔다. 그들은 둘 다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슬기와 하현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모두 혐오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 보았다. 그들은 분명 하현을 가난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현을 쳐다보았을 때 그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이런 요괴급 여자는 그들이 본 인터넷 스타나 연예인들 보다 백 배나 아름다웠다. 이 순간 앞에선 경비원이 담배 한 모금을 하현의 얼굴에 내뿜으며 곁눈질을 하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이 차 당신 거예요?”“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차 바퀴 좀 풀어주세요.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그리고 벌금이 10만원이네요.”슬기는 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 핸드백에서 지폐 10장을 꺼내 깔끔하게 건넸다.스포츠 머리 경비원이 ‘피식’웃으며 나오더니 슬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아가씨, 이게 무슨 뜻이야? 우리가 무슨 거지인 줄 알아? 만 원짜리 몇 장으로 우리를 보내려고?”슬기는 또 한 묶음의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차갑게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해?”알록달록한 지폐가 바닥에 떨어지니 두 경비원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그들은 허리를 굽혀 돈을 주울 마음이 없었다. 스포츠 머리 경비원이 차갑게 말했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고, 큰 소리 한번 잘 치네. 경비원 주제에 자기가 정말 천왕이라도 되는 줄 아나?”“말끝마다 해명 하라, 처리 하라 그러게?”“너희들이 법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해?”스포츠 머리 경비원이 무전기를 꺼내 한 마디 하자 사방팔방에서 십여 명의 경비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하지만 하현을 쳐다보는 이 경비원들의 눈빛은 경멸과 조롱하는 빛이 짙었다. 달려온 경비원이 손가락을 뻗어 하현을 정면으로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인마, 이 주차장에선 어르신이 법이야!”“그래!”하현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는 한 발짝 내딛더니 뺨을 내리쳤다. “퍽!”큰 소리와 함께 앞에선 경비원은 날아가 차에 부딪혔고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현은 날아간 경비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휴지로 오른손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 앞에서 뻐기다니 너희들 정말 대단하네.”하현의 날카로운 눈빛과 담담한 말투에 스포츠 머리 경비원은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그는 줄곧 주차장에서 횡포를 부려왔으니 언제 누가 감히 자신의 머리를 밟은 적이 있겠는가?곧이어 그가 손을 흔들자 십여 명의 경비원들은 순간 하나같이 경찰봉과 전기 충격기를 꺼내 하현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현은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 내딛고는 오른손을 휘두르며 뺨을 날렸다. “퍽퍽퍽______”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고 십여 명의 경비원들은 얼굴을 감싼 채 바닥에 쓰러졌다. 어떤 사람은 뺨을 맞고 목에 경련이 일어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 이때 멀리서 마침 주시현과 변승욱이 다가왔다. 이 모습을 본 주시현은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하현이 주차장에서 사람을 때릴 정도로 이렇게 사나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은 청허 도관의 주차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어느 신도들이 얌전하게 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깍듯하게 대할 것이다. 도련님과 규수집 따님들이라도 여기에 온 참배객들은
이때 주시현도 반응을 보였고 멀리서 입을 열며 말했다. “하현, 손대지 마!”“제발 손대지 마!”“이 경비대장은 청허 도장의 본가 친척이야. 네가 그를 다치게 하면 오늘 일은 끝장이야!”주시현의 말을 듣고 스포츠 머리 경비원도 반응을 했다. 그는 눈에 경련을 일으키며 이때 재빨리 말했다. “맞아, 청허 도장은 내 사촌동생이야!”“넌 날 때릴 수 없어!”“너 내 사촌동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그는 대구에서 적이 없을 정도야!”“네가 감히 나를 건드렸다간 청허 도장이 한 손으로 너를 쓰러뜨릴 거야!”청허 도장이라는 네 글자는 대구 3분의 1의 땅에서 엄청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경비원들이 평소에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부적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 경비원들은 평소 이러한 명복으로 위세를 떨치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하현을 두렵게 하거나 공포에 떨게 만들지 못했다. 스포츠 머리 경비원은 계속 뒤로 물러나더니 안색이 안 좋아졌다. “너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도대체 뭘 하려고?”“퍽!”하현은 그의 뺨을 날리며 그를 내동댕이친 다음 그의 가슴을 밟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 대단하다며?”“강하다며?”“내가 건드렸는데 어쩔래?”멀리서 주시현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하현, 너 네가 뭘 하고 있는 줄 알아?”“사고치고 있는 거야!”“큰 사고를 치고 있다고!”“슬기씨, 빨리 하현 좀 말려봐요. 이 사람은 정말 청허 도장의 먼 친척이에요!”“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 수 있겠어요!?”주시현은 조금 화가 났다. 하현은 심각성을 모르는 셈이었다. 슬기도 심각성을 몰랐다.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너희들 죽고 싶구나!슬기는 담담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원래 하현에게 큰 일을 만들지 말라고 한 마디 타이르고
이때 강우금과 진홍민의 시선이 스테이크 칼을 들고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어, 하 씨...”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멍해졌다.진홍헌도 하현을 알아보았다.그는 자신이 가장 창피한 순간에 하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 그와 맞닥뜨리다니!자리를 떠나려던 강우금과 진홍민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여웅의 팔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가리키며 작은 입을 가리켜 뭐라고 소곤소곤거렸다.이여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진홍헌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상대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그는 속으로는 화가 들끓었지만 자신이 이여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부딪힌다면 결국 자신은 묻힐 곳도 찾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탁!”하현이 스테이크를 계속 썰려고 하던 순간 이여웅이 갑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발을 올렸고 의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하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 의자를 피했다.의자는 땅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술잔은 어지러이 널브러졌고 식사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개자식!”나박하가 벌떡 일어났지만 하현이 그를 제지했다.하현은 눈을 지그시 뜨고 이여웅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이참, 여웅 오빠, 이게 무슨 짓이지?”이여웅은 담배를 움켜쥐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이봐, 당신이 우리 진홍민과 강우금을 화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사람이지?”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대화를 튼 두 사람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홍헌은 이 상황이 창피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은 담담하게 내뱉었다.“괜히 진홍헌을 잡는 척하지 마. 나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내 머리릴 짓밟고 싶었지만 나한테 나가떨어질 게 겁이 났어?”“우후!”이여웅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홍민아... 네가... 어떻게...”진홍헌은 자신의 동생도 이여웅에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똑똑해. 아주 똑똑해...”이여웅은 껄껄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여동생이 외모는 별로지만 아주 똑똑하군.”“내가 당신 총명함을 봐서 함께 데리고 가지!”진홍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웅 오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진홍민도 중천그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만약 그녀가 빨리 이여웅 같은 사람을 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진홍헌은 똥 씹은 얼굴을 했지만 이여웅은 두 여자를 끌어안고 깔깔대며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가자, 오늘 날 기쁘게 한다면 둘 다 내가 수양딸로 거둘게!”“앞으로 난 의붓아버지로서 매달 일억씩 용돈을 줄게!”“자, 아빠라고 불러!”그러자 진홍민과 강우금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와! 너무 좋은 아빠다!”진홍민은 이여웅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우금도 지금 이 순간 이여웅의 재산이 진홍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여웅의 품에 안긴 것이다.심지어 진홍민은 속으로 조심스레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이여웅을 잘 모신다면 나중에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중천그룹 주식이 자신에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그러면 자신이 쉽게 중천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이여웅은 환하게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당신은 먼저 꺼져!”“오늘 밤 당신 여자친구와 여동생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앞으로 난 당신의 매부이자 동서이자 아버지야...”“하하하하!”말 같지도 않은 이여웅의 말을 들으니 아무리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진홍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를 갈며 말했다.“개자식!”“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오호! 아주 미녀들이시군!”이여웅의 시선이 강우금에게 쏠려 그녀를 위아래로 바쁘게 훑어보았다.“강우금, 오늘 내가 82년산 마오타이를 가져왔는데 나와 함께 위층에 가서 맛보는 건 어때요?”“참, 미리 말해 두자면 난 다른 사람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내 체면을 무시한다는 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말을 하면서 이여웅은 자신의 오른손을 스리슬쩍 강우금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어머, 이거 왜 이래요?!”“나 술 잘 못 마셔요. 기껏해야 두 잔밖에 못 마신다고요...”강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명품 매장에서 퇴출된 후 그녀는 진홍헌의 품에 안겨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자친구로서의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싫은 척하는 듯했지만 속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듯 한껏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습에 이여웅은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었다.“형님,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입니다...”진홍헌은 이여웅의 오른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떼었다.진홍헌은 강우금이 죽고 못살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홍헌은 앞으로 금정 바닥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형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다른 여자들 소개해 드릴게요...”“퍽!”눈앞의 여자에게 한껏 흥미가 끓어올랐던 이여웅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진홍헌의 얼굴에 내리쳤다.진홍헌은 한방에 온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그의 얼굴을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체면?”“진홍헌이 내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어서 세우네 마네 하는 거야?”이여웅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진홍헌은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형님, 그 여
흥미로워하는 이여웅의 눈빛을 본 순간 진홍헌의 눈꺼풀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는 방금 일부러 이여웅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본 척했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금정 부잣집 도련님 망신은 혼자 다 시켜 놓고 어째서 이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인사하는 법도 못 배웠어?!”“아주 정말 거만하군그래!”말을 하는 동안 이여웅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진홍헌 앞에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자기 세상인 것처럼 한껏 떠들고 있던 진홍헌은 이여웅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아, 형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비록 진홍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이여웅을 상당히 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이여웅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영 마뜩잖은 눈치였다.“오호, 중천그룹 진홍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이 이여웅을 못 본 척할 정도로?”“눈이 나쁜 거야? 아니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야?”이여웅은 진홍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분 나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형님, 너그럽게 봐주세요.”평소에 어디서도 당당하던 진홍헌이었지만 지금 이여웅 앞에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애써 웃음을 쥐어 짜내었다.하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오르자 나박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진화개발은 중천그룹 주식의 50%에서 60%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빌렸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큰소리치는 중천그룹도 진화개발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해요.”“듣자 하니 진홍헌이 당신 처제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대구 정 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 합병될 수도 있거든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데에는 다 이유
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그날 간민효가 비행기에서 총기를 가진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 그것도 완연결이 한 짓인가?”“맞아요. 얼마 전 간민효가 공격을 받은 것도 아마 대부분 완연결과 관련이 있어요.”“보아하니 해골파가 손을 쓴 것 같던데 배후에는 아마 완연결이 있었을 거예요. 확실해요.”엄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 보기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된 일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고 보니 그 사건들이 모두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하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이번에 금정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그가 금정에 오자마자 장생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하현은 자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장생전이 운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지.”하현은 손을 뻗어 엄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어디 갈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엄도훈이 몸을 곧게 펴며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형님, 임페리얼 빌딩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30분 후, 차는 임페리얼 빌딩에 도착했다.이곳은 금정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아래 4층까지는 대형 쇼핑몰이고 위층은 오피스텔이었다.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모두 금정의 대기업들이었다.엄도훈은 비록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시계를 슬쩍 본 뒤 나박하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서 막 식사를 주문하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레스토랑 문을 벌컥 차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남자는 진홍헌이었고 여자는 그의 여동생 진홍민, 그리고 전에 황보정에게 옷을 사 주다가 싸움이 벌어진 강우금이었다.“정말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