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는 뒤로 물러서면서 재빨리 말했다. “회장님, 회장님도 빨리 가세요.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상대방에게 또 무슨 후수가 있을까 무섭네요!”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희들 먼저 물러 나. 나도 곧 갈게!”말을 마치고 하현은 유지애를 안고 뒤로 물러갔다. 유지애는 정신이 조금 들었고 순간 하현을 알아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죽어! 나는 이 빌어먹을 섬나라 사람을 죽여 버릴 거야!”“그들이 내 가족을 다 죽였어!”“그들을 다 죽여 버릴 거야!”“죽이긴 뭘 죽여! 네가 그들을 이길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하현은 뒤로 물러서면서 불평을 토로했다. “그리고 섬나라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은 호랑이한테 가죽 벗기자고 의논하는 거랑 같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건 자업자득이야!”자업자득이라는 네 글자를 듣고 유지애는 몸을 살짝 떨더니 두 줄기 맑은 눈물을 흘렀다. 그녀는 자신이 오늘과 같은 결과를 맞이한 건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자가 당시 개똥에 눈이 멀어 섬나라 사람과 협력한 탓이었다. 자신은 세자의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제지하지 않았다. 유지애가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는 것을 보고 하현은 뒤로 물러나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다만 그가 슬기 등 사람들과 함께 다시 십여 미터 뒤로 물러났을 때 그는 희미한 검은 안개가 갑자기 세차게 휘몰아치는 것을 보았다. 이 안개는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맡아도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콰당______”두 외곽의 경호원은 이때 약간의 연기를 마셨을 뿐이었는데 바로 바닥에 쓰러져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시작해!”이를 본 슬기의 예쁜 얼굴은 싸늘해졌다. 오늘 일어난 일이 우연이든 아니든 상황을 돌파할 능력이 없다면 모두 여기서 함께 껴안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상한 목소리는 비아냥거리는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 “귀신인 척을 한다고?”“아니, 아니야! 나 나체가 귀신이야!”“너희들의 목숨을 앗아간 귀신!”“너희들이 모두 쓰러지면 내가 나가서 너희들의 목을 벨 거야.”“특히 너, 아름다운 대하 여인, 너의 머리는 나의 가장 소중한 수집품 중 하나가 될 거야!”“건방지게!”경호원 하나가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몸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 앉았다. 저항할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이 독가스에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유지애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말문이 막혔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이 온통 연기로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유지애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운전사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한 후 엑셀을 밟고 운전석에서 떠나 차를 앞으로 충돌시키게 했다. “쾅______”사람이 없는 자동차는 앞의 나무를 들이 받았고 순간 폭발음이 들렸다. 격렬한 파동이 번져 나왔고 이번에는 폭풍이 사방의 많은 연기를 날려버렸다. 하현과 슬기는 동시에 한 방향을 쳐다보았고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그림자를 보았다. “팡팡팡______”슬기가 오른손을 흔들자 정교한 화기 한 자루가 그녀의 손에 나타났고 그녀는 곧장 앞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총알이 쏟아지자 거꾸로 매달린 사람은 못마땅한 듯 여겼다. 슬기의 사격 솜씨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몸이 한쪽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비록 그의 움직임은 빨랐지만 여전히 총알 한 발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고, 얼굴에 있던 검은 천이 벗겨지고 상처자국을 남겼다. “아_____”처량한 비명이 터져 나오자 개구리 닌자의 얼굴처럼 분노의 빛이 역력했다. 그는 슬기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빌어먹을 대하인! 네가 감히 나를 다치게 하다니.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하현은
개구리 얼굴 닌자는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온 얼굴이 구역질이 났다. 이때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면서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을 실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특히 하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그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이렇게 해야 내가 하나씩 해치울 수 있지!”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거북했다. 그는 또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이 예쁜 여자.”“나는 반드시 먼저 너를 마음껏 가지고 논 다음 네 머리를 잘라 내 수집품으로 삼을 거야!”개구리 얼굴의 닌자는 까르르 웃으며 슬기에 대한 흥미를 보였다. 이번에 대하에 올 때 그는 임무를 띠고 왔다. 이들이 그의 첫 번째 임무였는데 이렇게 바로 임무를 완수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현을 죽이기만 하면 그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공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유지애를 발로 걷어차고 천천히 슬기 앞으로 다가간 후 쪼그리고 앉아 오른손으로 슬기의 뾰족한 턱을 들어올렸다. “정말 예쁘네. 대하의 꽃 아가씨, 히히히!”개구리 얼굴의 닌자는 흥분한 얼굴로 만찬을 즐기려고 했다.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던 하현이 갑자기 몸을 돌려 오른쪽 다리를 쓸어버렸다. “털컥______”맑은 소리와 함께 개구리 얼굴 닌자의 오른쪽 종아리가 그대로 부러졌고 그는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져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바보!”“너 중독된 거 아니었어!?”“네가 감히 나를 해치다니!?”개구리 얼굴의 닌자는 두 손을 흔들더니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려고 했다. 그의 동작은 빨랐지만 하현의 동작은 더 빨랐다. ‘털컥’하는 소리와 함께 하현은 두 손을 엇갈리게 하고는 비틀자 쟁쟁한 소리와 함께 개구리 얼굴 닌자의 두 손이 동시에 부러졌다. “아!”“바보!”“애송이!”“내가 널 죽여버리겠어! 죽이겠어!”개구리 얼굴 닌자의 비
하현은 한동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했다. 이때 유지애는 이미 구조되었지만 아직은 좀 힘이 없었다. 하현은 그녀 곁으로 와서 옆에 있는 의사에게 호르몬 주사를 놓아 깨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곧 유지애는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하현을 본 순간 그녀의 안색은 더없이 복잡해졌다. 정용이 무슨 짓을 했든 어쨌든 그는 하현의 손에 죽었다. 정용의 충신으로서 그녀는 어쨌든 정용을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그녀는 하현의 도움을 받아 구조되었다. 그래서 지금 유지애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지애는 애처롭게 웃더니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모든 건 다 저의 자업자득일 뿐이에요.”“그날 세자와 신당류가 합작한 일은 제가 그에게 경고했었어요. 이건 마치 여우와 정을 나누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세자는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어요.”“결국 세자는 당신 손에 죽었고, 신당류 쪽은 벨라루스의 통제권을 되찾았고요.”“저는 세자의 기업이 섬나라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아서 거절을 했고, 그리고 난 후 그들은 나를 생포해갔고 우리 집안의 막내를 죽였어요.”여기까지 말하고 유지애의 표정은 더없이 험악해졌다. “하 회장님, 저는 당신이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원래 저의 신분으로는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아요!”“하지만 저를 도와 복수를 해주시기만 하면 벨라루스의 기업을 두 손 받들어 드릴게요!”유지애는 자신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정용이 죽은 이상 그녀는 대구에서 외톨이 신하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녀가 벨라루스의 지분을 쥐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섬나라 사람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복수는커녕 스스로를 지키기 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이때 하현에게
하현은 도장을 건네 받고 몇 번 쳐다본 후 담담하게 말했다. “섬나라 사람들이 나를 겨냥해 왔으니 나는 당연히 그들을 처리할 거야.”“이렇게 하면 너를 도와서 복수를 해준 셈이지.”“그리고 만약 네가 갈 곳이 없으면 당분간 조남헌 곁을 따라다녀.”하현은 담담한 기색이었다. 유지애는 적수이긴 했지만 약간의 기량과 재치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는 지금 외톨이 신하였기 때문에 자신 외에는 그녀를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곁에 남아서 그녀를 제압할 수만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이것은 하현의 한 수였다. 지금 닥치는 대로 배치를 해 두면 앞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녁시간이 곧 다가왔다. 슬기는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여인은 외모로 보나 몸매로 보나 비할 데 없이 매력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이미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얼굴이 붉어졌고 약간의 수줍음을 띠었다. 하현은 그녀를 보고 앉으라고 손짓을 한 후 조용히 말했다. “오늘 일은 이미 잘 알고 있어. 섬나라 사람들은 나를 겨냥해 온 거야. 이번에는 내가 너를 끌어들였어.” 슬기는 멍해졌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섬나라 사람이 미야모토 맞죠?”“맞아.”하현은 슬기가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해했다. “그 여자라면 회장님을 겨냥해서 온 게 아니라 저를 겨냥해서 온 것일 수도 있어요.”말을 마치고 슬기는 핸드폰에서 자료를 꺼내 하현에게 전달했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보더니 잠시 후 한 줄기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미야모토는 섬나라 신당류 당대 종주의 마지막 제자일 뿐만 아니라 섬나라 미야그룹가의 큰 아가씨야.” “그녀는 뜻밖에도 기꺼이 방현진 곁을 따라다니며 힘껏 섬기고 있어.” “보아하니 우리 방 도련님 정말 재주가 좋네!”슬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연경 네 도련님은 대구 여
하현은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의 가슴에는 ‘백서문’이라는 세 글자가 적힌 명찰이 붙어 있었다. 슬기의 시선도 동시에 그에게로 향하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항 백가 사람, 용옥 대구 제1대 대장.”하현은 소항 백가라는 네 글자를 듣자 마자 순간 상대방이 백모용, 백진수의 사촌 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항 백가, 이제 자신을 목 졸라 죽이고 싶어 하겠지?다만 이런 평범해 보이는 최정상 가문이 이 정도 권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젊은 세대조차도 용옥 내부에 침투할 수 있다니. 이 생각에 미치자 하현은 내색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하현! 이슬기!”백서문은 손을 흔들며 부하들에게 하현과 사람들을 둘러싸라고 지시한 후 뒷짐을 지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방금 제보를 받았어!”“너희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섬나라 친구들의 손발을 다치게 하고 또 별장에 가두었어!” “너희들은 행동은 나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대하와 섬나라 사이의 역사적 우의에도 영향을 미쳤어!”“너희들은 너무 악랄해. 나는 여기서 너희들이 우리 용옥에 체포되었음을 선언한다!”“너희들은 침묵할 권리가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어. 하지만 기억해. 너희들이 지금 하는 모든 말들은 모두 나중에 증거가 될 거야!”백서문은 거들먹거렸다. “하현, 이슬기, 나는 너희들이 태어난 내력이 모두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비록 내가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너희들이 굳이 법을 어기려고 한다면 내 손에 있는 화기에 눈이 없다는 걸 탓하지 마!” “체포를 거부하는 사람을 사살하는 데는 나는 아무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어!”백서문은 냉랭한 기색이었다. 그는 자연히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두 사촌 동생이 하현 때문에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소항 백씨 가문은 여러 번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참았
“퍽!”하현은 군소리 없이 앞을 향해 발을 걷어차려 했다. “하 회장님!”슬기는 재빨리 하현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충동적으로 굴지 마세요!”하현은 백서문을 몰랐다. 하지만 슬기는 일찍이 백서문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살인 면허가 있는 용옥 대구 제1대 대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뺨을 때린 것은 하현이 손을 쓰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만약 하현이 정말 손을 쓴다면 용옥의 수십 개의 화기가 동시에 화염을 뿜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현처럼 대단한 사람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슬기에게 필사적으로 제지를 당해 하현은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후 눈을 가늘게 뜨고 백서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감히 슬기를 건드리다니 이 뺨 한 대는 내가 기억해 두겠어.”“나를 믿어. 넌 후회할 거야!”“왜? 네가 날 때리려고?”백서문은 냉담한 기색이었다. 그는 오늘 목적이 아주 간단했다. 하현이 손을 쓰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건드려봐! 내가 너를 총으로 쏴서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한 번 보자!”“퍽!”말을 마치고 그는 손등으로 하현 앞에서 슬기의 뺨을 한 대 때렸다. 그는 손 놀림이 아주 뛰어나고 속도도 빨라 슬기도 피할 겨를이 없었다. 낭랑한 소리와 함께 슬기의 얼굴에는 또 하나의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그리고 백서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쳐다보며 손에 들고 있던 짧은 화기를 하현의 이마에 갖다 대고 담담하게 말했다. “왜? 나를 때리려고?”“때리려면 때려봐!”“네가 손을 쓰기를 기다리고 있잖아!”슬기는 재빨리 다시 하현 앞을 가로막으며 속삭였다. “하 회장님, 충동적으로 굴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하현은 표정이 굳어졌다. 입을 열지 않고 차갑게 백서문을 주시했다. “쳇, 무슨 하 세자, 하 회장이라고!?”“약한 사람은 깔보면서 강한 사람 앞에서는 찌질한 놈일 뿐이네!”하현이 손을 쓸
하지만 왕주아의 신분을 꺼리면서도 지금 백서문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왕 회장님, 왕 이사장님, 이건 용옥의 일이에요. 당신은 관청 사람이 아니라 비즈니스계 사람일 뿐이에요. 이렇게 함부로 귀찮게 굴다가 규정을 어기게 될까 무섭지 않아요?”“당신이 이렇게 외부인을 도와서 나서다니 왕남균 어르신께서 아세요?”왕주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 일은 할아버지께 보고드릴 필요 없어요. 게다가 하현은 내 남자 친구예요. 그의 일은 내 일이에요!”“오늘 일은 우리 왕가가 처리하겠어요!”슬기는 조용히 하현을 꼬집었다. 하현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내 아내도 아닌데 꼬집긴 뭘 꼬집어?이때 왕주아의 기세에 백서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그는 왕주아의 분노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왕가, 그렇게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도 절대 건드리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만약 임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소항 백가 전체가 연루될지도 모른다. 이 생각에 미치자 소항 백가의 부와 명예를 떠올리며 자신을 상석에 앉혀주겠다는 약속을 떠올렸고 백서문은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그는 왕주아를 응시하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왕 회장님, 당신은 왕씨그룹의 회장이자 이사장이지만 결국 장사꾼에 불과해요!”“수다 떨고, 친구 사귀고, 사업 얘기하고, 이런 것들이 당신 전문이죠!”“사건을 조사하고, 증거를 찾고, 나쁜 사람을 잡는 건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이 아니에요!”“게다가 이건 우리 용옥의 일이에요. 왕 회장님이 용옥에 개입을 했다가 불필요한 문제가 생길까 두렵지 않으세요?”말을 마치자마자 백서문은 손가락을 탁 치더니 호통을 치며 말했다. “하현과 슬기를 잡아!”순간이었을 뿐이지만 특수 제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자들은 살벌하게 수갑을 꺼냈다. 왕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 대장님, 정말 무차별적이네요? 우리 왕가 체면도 세워주지 않는 건가요?”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색의 왕씨 경호원들이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