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몇 가지 요리를 가볍게 맛 보았다. 그는 찻잔을 들어올리며 담담하게 차 조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무덤덤한 눈빛은 차 조수의 온몸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비록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만약 자신이 횡설수설한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왕화천과 청허 도장이 하현에게 정성껏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모습은 차 조수를 놀라게 했다. 비록 그녀는 하현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는 몰랐지만 왕화천과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두려워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문제를 설명해주는 것이었다!그리고 이때 그녀는 방금 왕화천과 청허 도장이 변승욱의 체면을 봐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것이다!이 생각에 미치자 그녀는 오늘 본 것들을 전부 뱃속에 묻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녀와 같이 가난뱅이를 싫어하고 부자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작은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상대방을 어떻게든 밟아 버린다.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면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상대방에게 미움을 사지 못한다. 그녀는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결과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현이 식사를 마치고 룸으로 돌아왔을 때 주시현과 사람들도 다 식사를 마쳤다. 하현은 함께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변승욱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보니 방금 식사 자리에서 이 사람들이 변승욱을 얼마나 추켜세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모든 사람들은 떠났다. 이슬기는 여전히 변승욱이 밀착 경호원이 되지 않도록 고수하며 하현을 잡아 당겨 그녀의 차에 타게 했다. 변승욱은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품위 있는 태도로 주시현의 차에 올라탔다. 주시현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핑크색 롤스로이스 차로 바꾸었는데 이 차가 대출을 받아서 산 것인지 렌트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하현은 그녀의 형편으로는 이
뒤편 멀지 않은 곳에서 흰색 렉서스 LX570이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게 이따금씩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달렸다. 하지만 어떻게 운전을 하든 슬기의 벤츠 곁을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하현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슬기야, 보아하니 요 며칠 심씨 집안은 너를 건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다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아.”“심씨 집안 일이 좀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나무는 고요한데 바람은 그치지를 않네.”슬기도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 후 잠시 후 천천히 말했다. “심가는 지금 킬러 조직의 위협을 받고 있어 함부로 문 밖을 나갈 수 없어요.”“심재욱이 나선다고 해도 곁에 수십 명의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할 거예요.”“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나를 잡으러 군대를 보낼 수 있겠어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연경의 신을 모셔온 건가?”슬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곁눈질로 하현을 한번 쳐다보고 난 후 갑자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지금 심가의 킬러 조직이 어느 집안을 노리고 계신지 아세요?”“어느 집안인데?”슬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그 사람들을 뭐라고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근데 지금은 작은 건물이라고 불려요!”하현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더니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밤새 봄비소리를 듣는다던 작은 건물?”“맞아요. 밤새 봄비소리를 듣는 다던 그 작은 건물이에요……”확실히 확인을 한 후 하현은 눈썹을 비비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쩐지 심가가 그렇게도 무섭더라니. 이 조직은 현재 세상에서 가장 큰 몇몇 킬러 조직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비할 데 없이 치밀한 조직이야.”“듣기로 그들의 이전 신분은 20년 전 대하의 3대 킬러 조직 중 하나인 붉은 건물이었다고 해요.”“심가는 문제가 크네.”“내가 킬러 랭킹 3위인 남시현에게 네 어머니를 보호하라
“종주께서 말씀하셨어요. 이들은 모두 방 도련님의 개와 말들이니 도련님의 말 한 마디면 당연히 도련님을 위해 충성을 바칠 거예요.”“우리 소식통에 따르면 이 하현 하 세자는 능력이 조금 있다고 해요.”“하지만 어쨌든 여기는 대구지 강남이 아니고 그의 3분의 1의 땅이 아니에요.”“도련님이 명령을 내리시기만 하면 우리는 벼락 같은 기세로 그를 죽일 수 있어요.”“어디서든, 언제든지……”미야모토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분명 라인은 예쁜 얼굴인데 말이 많아지자 다소 측은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현진은 손을 뻗어 미야모토의 아름다운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치 희대의 진기한 보물들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대하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책략을 배우지 않았어?”“하루 종일 사람 죽이는 짓만 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어?”“사람을 죽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행동자체가 아니라 속으로 나쁜 마음을 먹고 다스리는 거예요……”“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 같죠. 충분히 가지고 놀아야 마지막에 즐길 수가 있어요. 이해가 되세요?”미야모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순종하는 모습이었다. 방현진은 ‘피식’하고 싱겹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미야모토, 내가 너의 어떤 점을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아?”“너는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를 빼앗은 하현을 칼로 베어 버리려는 게 분명해.”“정용을 대신해서 복수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근데 너는 내 앞에서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어.”“이 점이 네가 절대다수의 많은 여자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야.”미야모토는 애교스럽게 웃었다. “방 도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어요.”방현진은 하하 웃으며 미야모토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바짓가랑이 사이에 밀어 넣었다. 미야모토는 수줍은 표정을 지었지만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방현진은 안색이 변하지 않았고
정용 휘하의 한 때 인기인이었던 유지애는 지금 반쯤 죽은 듯 보였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잠시 후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맥을 짚었다. 차에 치인 부상은 그리 크지 않았고 가장 큰 부상은 불구가 되어 생긴 것이었다. 슬기는 위험하지 않은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 하현의 뒤로 가서 조용하게 말했다. “회장님, 이 여자는 누구예요?”“이 여자를 아세요?”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슬기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가지고 있던 금창약을 꺼내 유지애의 상처를 잠시 치료한 뒤 운전사에게 구급차를 부르라고 신호를 보냈다. 금창약을 쓰자 반 혼수상태에 빠졌던 유지애는 잠시 정신이 맑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앞이 흐릿했고 그녀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그녀의 큰 적 하현이었다. 이때 그녀는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빌어먹을 섬나라 사람!”“빌어먹을 섬나라 사람!”반 혼수상태인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 이런 말을 내 뱉은 것 같았다. 하현은 흥미로운 듯 말했다. “섬나라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어?”“너희들하고 섬나라 사람들은 협력 관계 아니야?”유지애는 의식이 깨어난 상태가 아니라 빌어먹을 섬나라 사람이라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 한 후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여기까지 오다니!”하현이 몇 마디 더 물어보려고 할 때 멀지 않은 음침한 곳에서 유창하지 않은 대하의 언어가 들려왔다. 듣기에 음산하기 짝이 없고 귀에 거슬릴 정도로 극도로 불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때 사방에서 찬바람이 불어와 순간 이곳의 온도는 바로 몇 도 아래로 떨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나무가 마치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누가 귀신인 척을 하는 것 같아요!”“허허허, 누구야?”“당연히 너희들 목숨을 원하는 사람이지!”더없이 괴상한 대하
슬기는 뒤로 물러서면서 재빨리 말했다. “회장님, 회장님도 빨리 가세요.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상대방에게 또 무슨 후수가 있을까 무섭네요!”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희들 먼저 물러 나. 나도 곧 갈게!”말을 마치고 하현은 유지애를 안고 뒤로 물러갔다. 유지애는 정신이 조금 들었고 순간 하현을 알아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죽어! 나는 이 빌어먹을 섬나라 사람을 죽여 버릴 거야!”“그들이 내 가족을 다 죽였어!”“그들을 다 죽여 버릴 거야!”“죽이긴 뭘 죽여! 네가 그들을 이길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하현은 뒤로 물러서면서 불평을 토로했다. “그리고 섬나라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은 호랑이한테 가죽 벗기자고 의논하는 거랑 같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건 자업자득이야!”자업자득이라는 네 글자를 듣고 유지애는 몸을 살짝 떨더니 두 줄기 맑은 눈물을 흘렀다. 그녀는 자신이 오늘과 같은 결과를 맞이한 건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자가 당시 개똥에 눈이 멀어 섬나라 사람과 협력한 탓이었다. 자신은 세자의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제지하지 않았다. 유지애가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는 것을 보고 하현은 뒤로 물러나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다만 그가 슬기 등 사람들과 함께 다시 십여 미터 뒤로 물러났을 때 그는 희미한 검은 안개가 갑자기 세차게 휘몰아치는 것을 보았다. 이 안개는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맡아도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콰당______”두 외곽의 경호원은 이때 약간의 연기를 마셨을 뿐이었는데 바로 바닥에 쓰러져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시작해!”이를 본 슬기의 예쁜 얼굴은 싸늘해졌다. 오늘 일어난 일이 우연이든 아니든 상황을 돌파할 능력이 없다면 모두 여기서 함께 껴안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상한 목소리는 비아냥거리는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 “귀신인 척을 한다고?”“아니, 아니야! 나 나체가 귀신이야!”“너희들의 목숨을 앗아간 귀신!”“너희들이 모두 쓰러지면 내가 나가서 너희들의 목을 벨 거야.”“특히 너, 아름다운 대하 여인, 너의 머리는 나의 가장 소중한 수집품 중 하나가 될 거야!”“건방지게!”경호원 하나가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몸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 앉았다. 저항할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이 독가스에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유지애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말문이 막혔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이 온통 연기로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유지애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운전사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한 후 엑셀을 밟고 운전석에서 떠나 차를 앞으로 충돌시키게 했다. “쾅______”사람이 없는 자동차는 앞의 나무를 들이 받았고 순간 폭발음이 들렸다. 격렬한 파동이 번져 나왔고 이번에는 폭풍이 사방의 많은 연기를 날려버렸다. 하현과 슬기는 동시에 한 방향을 쳐다보았고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그림자를 보았다. “팡팡팡______”슬기가 오른손을 흔들자 정교한 화기 한 자루가 그녀의 손에 나타났고 그녀는 곧장 앞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총알이 쏟아지자 거꾸로 매달린 사람은 못마땅한 듯 여겼다. 슬기의 사격 솜씨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몸이 한쪽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비록 그의 움직임은 빨랐지만 여전히 총알 한 발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고, 얼굴에 있던 검은 천이 벗겨지고 상처자국을 남겼다. “아_____”처량한 비명이 터져 나오자 개구리 닌자의 얼굴처럼 분노의 빛이 역력했다. 그는 슬기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빌어먹을 대하인! 네가 감히 나를 다치게 하다니.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하현은
개구리 얼굴 닌자는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온 얼굴이 구역질이 났다. 이때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면서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을 실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특히 하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그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이렇게 해야 내가 하나씩 해치울 수 있지!”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거북했다. 그는 또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이 예쁜 여자.”“나는 반드시 먼저 너를 마음껏 가지고 논 다음 네 머리를 잘라 내 수집품으로 삼을 거야!”개구리 얼굴의 닌자는 까르르 웃으며 슬기에 대한 흥미를 보였다. 이번에 대하에 올 때 그는 임무를 띠고 왔다. 이들이 그의 첫 번째 임무였는데 이렇게 바로 임무를 완수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현을 죽이기만 하면 그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공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유지애를 발로 걷어차고 천천히 슬기 앞으로 다가간 후 쪼그리고 앉아 오른손으로 슬기의 뾰족한 턱을 들어올렸다. “정말 예쁘네. 대하의 꽃 아가씨, 히히히!”개구리 얼굴의 닌자는 흥분한 얼굴로 만찬을 즐기려고 했다.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던 하현이 갑자기 몸을 돌려 오른쪽 다리를 쓸어버렸다. “털컥______”맑은 소리와 함께 개구리 얼굴 닌자의 오른쪽 종아리가 그대로 부러졌고 그는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져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바보!”“너 중독된 거 아니었어!?”“네가 감히 나를 해치다니!?”개구리 얼굴의 닌자는 두 손을 흔들더니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려고 했다. 그의 동작은 빨랐지만 하현의 동작은 더 빨랐다. ‘털컥’하는 소리와 함께 하현은 두 손을 엇갈리게 하고는 비틀자 쟁쟁한 소리와 함께 개구리 얼굴 닌자의 두 손이 동시에 부러졌다. “아!”“바보!”“애송이!”“내가 널 죽여버리겠어! 죽이겠어!”개구리 얼굴 닌자의 비
하현은 한동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다른 방향을 향했다. 이때 유지애는 이미 구조되었지만 아직은 좀 힘이 없었다. 하현은 그녀 곁으로 와서 옆에 있는 의사에게 호르몬 주사를 놓아 깨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곧 유지애는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하현을 본 순간 그녀의 안색은 더없이 복잡해졌다. 정용이 무슨 짓을 했든 어쨌든 그는 하현의 손에 죽었다. 정용의 충신으로서 그녀는 어쨌든 정용을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그녀는 하현의 도움을 받아 구조되었다. 그래서 지금 유지애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지애는 애처롭게 웃더니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모든 건 다 저의 자업자득일 뿐이에요.”“그날 세자와 신당류가 합작한 일은 제가 그에게 경고했었어요. 이건 마치 여우와 정을 나누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세자는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어요.”“결국 세자는 당신 손에 죽었고, 신당류 쪽은 벨라루스의 통제권을 되찾았고요.”“저는 세자의 기업이 섬나라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아서 거절을 했고, 그리고 난 후 그들은 나를 생포해갔고 우리 집안의 막내를 죽였어요.”여기까지 말하고 유지애의 표정은 더없이 험악해졌다. “하 회장님, 저는 당신이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원래 저의 신분으로는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아요!”“하지만 저를 도와 복수를 해주시기만 하면 벨라루스의 기업을 두 손 받들어 드릴게요!”유지애는 자신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정용이 죽은 이상 그녀는 대구에서 외톨이 신하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녀가 벨라루스의 지분을 쥐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섬나라 사람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복수는커녕 스스로를 지키기 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이때 하현에게
하현은 형나운의 말을 듣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의 상황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음기가 몸에 들어온 것뿐입니다.”“그 뿌리만 뽑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예요.”“음기가 몸에 들어왔다고?”형홍익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난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지금까지 음험한 곳에 간 적도 없어.”“게다가 내 집 마당도 모두 풍수지리사의 손을 거쳐서 특별히 설계된 거야. 애초에 지하 공사할 때도 음기가 배어들 만한 음험한 곳은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음기가 들어왔을 수가 있어?”“난 여기서 수십 년을 산 사람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어!”하현은 돌리지 않고 사실대로 솔직히 말했다.“이 음기가 이 댁에 들어온 것은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죠!”“최근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고?”형나운은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아니, 하 씨! 우리 집안이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인 줄 알아?”“음기라는 것은 보통 더럽고 음험한 곳에서 생겨나는 거야.”“우리 집처럼 깨끗한 저택에 어떻게 그런 몹쓸 기운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거야?!”“게다가 그 음기가 최근에 들어온 거라고?”“왜? 그 음기의 근원이 할아버지라고 말하지 그래?”하현은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음기의 근원은 어르신이 아닙니다. 그게 언제쯤이라고 한다면, 말하기 좀 그렇지만...”형나운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할아버지의 상황이 지금 너무 안 좋아서 우리가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러 다니는 입장이긴 하지만 우리가 바보는 아니야!”“할아버지의 몸속에 음기가 뿌리내렸다면 지금 우리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야?”형나운은 얼굴 가득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오른 데다 간민효에 대한 원망도 불쑥 치솟았다.이런 헛소리나 하는 사기꾼을 감히 형 씨 가문에 데려오다니!형 씨 가문이 아무리 은둔의 집안이라고 해도 무슨 개나 고양이나 다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허무맹랑한 말로 사람을 치료해
형나운은 형홍익의 면전에서 그날 밤의 일을 한 번 더 언급하고는 하현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했다구요.”“그때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벌써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예요.”“당신 같은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떠벌리겠지!”“난 당신 같은 사람 상대 안 해!”말을 하는 형나운의 눈동자에는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하현은 이를 듣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날 밤 내가 벤츠 차량의 철골 골격을 들지 않았더라면 이 어르신은 차량 밑에 깔렸을 거야.”형나운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개자식! 감히 우리 할아버지 목숨을 두고 뭐라고 하는 거야?”“당신이 한 말, 여러 사람 앞에서 책임질 수 있어?”“당신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 할아버지는 이틀 동안 입원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형나운은 얼굴 가득 한기를 드러내며 하현을 쏘아보았다.그날 밤 자신의 할아버지가 하현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형나운, 하현은 무술을 익힌 사람이야. 그의 힘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세. 그가 손을 쓴 이상 분명 자신이 있었을 거야.”간민효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손을 쓴 것은 호의로 한 것이지 돈 몇 푼 때문에 한 것이 아닐 거야. 하현은 인격적으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가 보장할 수 있어.”“게다가 그는 풍수지리에도 아주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어.”“신사 상인 연합회의 엄도훈이 하마터면 불운하게 죽을 뻔했는데 그를 구한 사람도 하현이고.”“바로 그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 하현을 데리고 온 거야.”“돈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마! 하현이 필요하다면 내가 언제든지 그에게 백억이든 천억이든 줄 수 있어!”“비행기에서 날 구해 줬기 때문이야!”간민효가 하현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하현의 인품을 인정해서이
그런데 간민효가 이 노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그의 뒤에 서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뭔가 언짢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지금 이런 상태라면 아마도 이 노인은 머지 않아 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노인은 자신이 별로 가망이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민효야. 나 때문에 슬퍼할 필요없어. 생사는 운명이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난 진작에 내 몸이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참, 너 며칠 전에 비행기 안에서 피격당했다면서?”“그건 괜찮아?”“나한테 백 년 산삼이 몇 뿌리 있으니 가져가서 기운을 차리는데 써.”노인은 간민효에게 애정이 깊은 듯했다.간민효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삼촌,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괜찮아요.”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하현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삼촌, 소개할게요. 이분은 하현이에요. 바로 이 사람이 비행기 안에서 날 구해 줬어요.”“하현, 이분은 내 삼촌, 형홍익 어르신이야.”“형 씨 가문은 금정 은둔가 중 하나이며 조상 중에는 어느 황실을 모신 적도 있어.”“형 씨 가문은 조용하지만 금정의 정상급 왕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집안이야.”“오늘 내가 당신을 여기 데리고 온 건 당신이 이분의 증상을 좀 도와줄 수 있는지 어떤지 좀 봐줬으면 해서였어.”간민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하현, 당신이 비행기 안에서 우리 민효를 구했단 말이야?”형홍익은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마워. 우리 민효의 친구라면 앞으로 우리 형 씨 가문의 친구가 되는 거야.”하현은 서둘러 손을 뻗어 형홍익의 손을 잡았다.“어르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민효한테 소중한 사람은 저한테도 소중한 사람입니다.”잠시 후 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형혹익의 양미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하현의 눈에는 형홍익의
”붕!”15분 후 빨간 페라리 한 대가 설 씨 집안 앞에 멈추었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갔고 간민효의 아름다운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세련된 선글라스를 낀 그녀의 얼굴은 고혹적이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었다.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보였다.“하현! 여기!”하현은 이전에 간민효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지금 햇빛 아래서 빛나는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에 흠칫 놀랐다.설은아가 절세미인이긴 했지만 간민효도 절대 설은아에게 밀리는 얼굴은 아니었다.둘 다 절세미인에 한 떨기 아리따운 꽃이었지만 각기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 누가 더 예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정상적인 남자라면 절대 둘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단지 딱 한마디 할 수 있을 것이다.둘 다!하현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올라탔다.차 안은 그윽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힐끔힐끔 보이는 간민효의 긴 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설은아에게 인사 안 해도 될까?”간민효는 설은아와 친한 사이라도 되는 양 싱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하현은 인사는 무슨 인사냐는 듯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설은아가 질투라도 하면 어쩌려는 것인지?!하현의 맑은 눈빛과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고 간민효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지금까지 자신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고 뜨거운 눈빛을 보내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었다.금정은 말할 것도 없고 연경 사람들조차 자신의 외모에 군침을 흘리기 일쑤였다.하지만 하현이 이렇게 냉정하고 침착한 얼굴을 보이다니!정말 이 남자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번이 그들의 두 번째 만남이었기 때문에 간민효도 별다른 말 없이 선글라스를 낀 채 액셀을 밟았다.30분 후 페라리는 고즈넉한 호숫가 주택지에 들어섰다.이곳은 넓은 부지를
이런 생각이 스치자 하현은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두며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파고들지 않기로 결정했다.그리고 싱긋 웃으며 돌아서서 설은아의 방에서 나갔다.하현의 행동을 보고 설은아는 내심 못마땅한 듯 조용히 콧방귀를 뀌었다.남자가 너무 마음이 약한 거 아닌가 하고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던 것이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김 씨 가문의 일을 좀 더 조사해 보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나가기도 전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하현은 핸드폰을 힐끔 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현,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하지 않으면 연락 안 할 셈이었어?”전화기 맞은편에서 간민효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간민효?”하현은 간민효가 이런 이른 시간에 자신에게 전화할 줄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했다.“아직도 간민효야? 그냥 성 떼고 이름 불러!”간민효의 목소리에는 살짝 비트는 어조가 실려 있었다.“아, 민효.”하현는 간민효의 성화에 응하며 말했다.“아침 일찍부터 웬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하현은 간민효 같은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아침 일찍 전화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침 일찍 차라도 한잔하자고 전화할 리 만무했다.“사실 공항에서부터 당신한테 관심이 많았어.”“그래서 사람을 보내 당신을 좀 살펴보라고 했지.”간민효는 자신의 행동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어쨌든 누군가가 날 상대하려고 당신을 보낸 거라면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미리 말하지 않은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 사과할게.”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해해.”기내에서 C4 총기도 발견되었으니 간민효 입장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고 찝찝한 일이었을 것이다.간민효가 사람을 보내 자신을 미행하고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래서 요 며칠 동안 당신이 한 일을 난 거의 다 알고 있어.”“그래서?”하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시선을 올리며 물었다.“친한 어른이 한 분 계신데 한 달 전부터
설은아는 김나나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김나나, 난 네 오빠랑 일면식도 없고 얼굴도 몰라.”“그러니까 그만해.”김나나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우리 오빠는 훌륭한 사람이야. 우리 김 씨 가문 어른인 김준영의 심복이기도 해!”“금정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우리 오빠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인 줄 알아?”“난 네가 내 절친이니까 너한테 기회를 주려던 것뿐이야. 우리 오빠 같은 격조 높은 인물을 너한테 주는 거야!”“남들한텐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고!”김나나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설은아, 너 절대 지금의 행복에 젖어 살지 마!”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베개에 기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김나나, 이제 그만해. 나 내일 할 일 있어서 그만 자야겠어.”설은아는 김나나와 더 이상 이런 얘기로 왈가왈부하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그래, 잘 자.”화면 속 김나나는 빙긋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하지만 설은아, 난 우리 오빠한테 큰소리쳤단 말이야!”“너와 전 남편이 3년 동안 함께 했지만 한 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그러니 너 절대 엉뚱한 짓 하지 마!”“그렇지 않으면 우리 오빠가 네 전 남편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말을 마친 김나나는 ‘뚝’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설은아는 언짢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이 입을 열었다.“김나나는 뭐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 왜 이렇게 거만한 거야?”설은아는 하현이 묻는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김 씨 가문의 출신인 김나나는 예전에 대구에 있을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그때 그런대로 사이가 괜찮았어.”“하현, 나나가 좀 거침없는 성격이라 그런 말을 한 거야. 그러니 나나가 한 말, 마음에 두지 마.”“그리고 나나가 자기 오빠에 대해 한 말도 신경 쓰지 마. 난 전혀 본 적도 없는 사람이야!”말을 마친 설은아는 문득 자신이 왜 하현에게 이
하현은 그 여자를 알지 못해서 살짝 의아해하며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설은아는 금정에 온 이후로 아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어찌 보면 사업상 많은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어머, 설은아. 지금 너 뒤에 있는 사람이 설마 그 소문으로만 듣던 네 남편은 아니겠지?”전화기 건너편에 있던 여자는 하현의 모습을 눈치채고는 갑자기 싫은 티를 팍팍 내었다.“그런 남자를 아직도 방에 들이는 거야?”설은아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김나나,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와 재결합한다고.”“설은아! 너 정말 진심이야? 아니면 농담하는 거야?”화면 속 김나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남자 정말 아니잖아! 그건 금정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야! 그렇게 어렵게 이혼했는데 왜 갑자기 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거야?”“무엇보다 너 내가 한 말 잊었어?”“널 우리 오빠한테 소개해 주려고 한다는 말 잊었냐고?!”“우리 오빠는 김 씨 가문 거물이야!”“너와 우리 오빠가 함께 한다면 완전히 강대강의 연합이라고!”말을 하는 김나나의 얼굴에는 꼭 두 사람을 연결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설은아가 금정 김 씨 가문 사람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이 여자는 설은아를 김 씨 가문 사람과 연결시켜주려고 했다.자신에게 짓밟힌 김탁우를 떠올리자 하현은 이 모든 것이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하지만 잠시 후 설은아가 하는 말을 듣고 하현의 미간이 다시 한번 살짝 일그러졌다.“내 기억이 맞다면 네 오빠가 김탁우 맞지?”“어? 내가 듣기로는 그가 항성에서 누군가와 이미 약혼했다던데.”“어떤 것들이 그딴 쓸데없는 말을 퍼뜨리는 거야?”김나나는 하현을 향해 시위라도 벌이는 양 소리를 높였다.“설은아, 너 소식이 좀 늦구나!”“우리 오빠가 항성에 있을 때 남영 여자가 우리 오빠한테 첫눈에 반한 건 사실이야.”“하지만 어떤 남자가 달려
왕인걸의 말은 이의진을 탓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다.순간 이의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왕 사장님이 안 물어보셨잖아요?”“물어봤으면 진작에 알려줬을 거예요.”“그리고 하현과 밥을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씀만 하세요. 내가 왕 사장님을 도와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죠!”말을 마치며 이의진은 자신이 하현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듯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그러나 이의진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자신의 오빠가 최희정을 압박하기만 한다면 데릴사위인 하현이 절대 최희정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의진의 말에 왕인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좋아, 좋아! 내일 내 사무실로 와.”이의진은 눈에는 점점 더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자신의 앞날에 환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다.이 씨 가족들도 모두 감격에 겨운 얼굴로 서 있었다.마음속으로는 역시 이의진이 인재는 인재라며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고 훗날 자신들의 뒤를 확실히 봐줄 인물이라고까지 여겼다.이러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밖에!“이의진,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의진을 앞에 두고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고 그의 한마디에 그녀의 환상 같은 꿈이 일순 깨져버렸다.“왕인걸, 당신도 성인인데 왜 그렇게 쉽게 속는 거야? 옳고 그름이 분간이 안 되는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 알겠어!”왕인걸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하현을 배웅했고 이어 몸을 돌려 이의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이의진은 낭패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 상황은 전적으로 그녀가 자초한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몇 마디 하지 않았더라면 하현이 그녀의 면전에서 체면을 뭉개는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체면이 뭉개지는 하현의 말에도 이 관계를 이용하여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그러나 왕인걸은 이 씨 가족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무시했다.그 대신 왕인걸은 재빨리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히 입을 열었다.“하현!”하현?!왕인걸의 목소리는 존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대도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진의 부모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이의진의 집안 친척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뭐야, 이게?하현?하 씨 성을 가진 데릴사위가 정말 이렇게나 능력이 있다는 얘긴가?이의진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왕 사장님, 지금 누굴 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은 데릴사위일 뿐이에요!”왕인걸은 이의진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굽신거리며 말했다.“하현, 아! 형수님도 와 계셨군요!”“이곳에서 두 분을 만나다니 제 생의 영광입니다!”“정말 오늘은 대운이 열린 날인가 봐요!”“만나서 영광입니다.”“너무 반가워요!”왕인걸은 흥분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왕인걸과 하현이 아는 사이란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왕인걸이 반가워서 잔뜩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이의진은 입을 떡 벌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하현이 자신의 직속상관, 그것도 왕인걸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설은아는 왕인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의상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왕 사장님, 안녕하세요.”그러나 하현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왕인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아내를 탐하려고 했던 자에게 한 손만 부러뜨리고 놓아준 것만 해도 하현은 많이 봐준 셈이었다.“하현, 지난번엔 내가 많이 잘못했어. 두 사람이 돌아간 뒤 간민효한테 아주 호되게 혼났어!”“나도 내 잘못을 깊이 깨닫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하현의 냉담한 표정에서 초조함을 느낀 왕인걸은 마음이 떨려 허리까지 구부리며 안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