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서둘러 마차에서 내린 최안여는 소씨 가문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갈수록 소란스러운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소씨 가문 사람들은 양심을 팔아먹은 것이오? 어찌 이리 뻔뻔하고 몰상식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벼락 맞아 죽을 인간들이 여기 다 있었구려!”

“어떤 집안에서 장인과 처남이 세상을 뜨자마자 첩을 들이는지 물어보시오. 전하께 둘째 부인을 들이는 것을 윤허하여달라 청한 것도 모자라 본처를 내쫓고 첩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하다니, 조상님들 격분이 두렵지 않소? 자손들 보기 부끄럽지 않소?”

“진국공부에 우리 모자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시누를 괴롭힐 수 없네! 과부까지 된 마당에 뭐가 겁나겠소?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시누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진국공부의 위세를 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오라버니댁인 것을 알게 된 최안여는 가슴이 뭉클했다. 지아비를 잃은 부인으로, 한 아이의 어미로 겪은 압박감이 결코 자기보다 작지 않음에도 자기를 위해 싸우고 있는 올케를 보자 최안여는 든든했다.

“내 오늘 오지 않았다면, 우리 시누의 혼수로 첩과 혼례를 치렀을테지. 지금 진국공부에 가장이 없다고 이리 멸시하는 게요?”

“랑(琅)아, 이 자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두렴. 너의 고모를 괴롭힌 자들이니, 네가 자란 뒤에도 이들이 살아있다면 반드시 너의 고모 앞에 무릎을 꿇려 사죄하게 해야 하느니라. 특히 안남후, 저 배은망덕한 자는 꼭 기억해야 한다. 비열한 자이니 혹여 네가 저런 사람이 되면, 이 어미는 널 아들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최씨 가문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양자옥(梁紫玉)의 호통 소리만 들릴 뿐, 소씨 가문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최안여는 양자옥에게 다가가 말했다.

“올케…”

정신없이 호통을 치던 양자옥이 최안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물을 떨궜다.

“아가씨, 많이 늦었지요? 벼락 맞아 죽어도 모자랄 인간들이 이런 짓을 꾸밀 줄이야.”

올해 여섯 살이 된 최랑이 최안여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랑이가 진국공부의 유일한 남자이니, 이제부터 고모님은 랑이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소씨 가문 사람에게 그동안 당하면서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던 최안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랑이가 있어 주니 내 두려울 게 없구나.”

최안여는 최랑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자기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양자옥을 마주하니 가슴이 따듯해졌다.

“올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린애부터 늙은이까지 제대로 된 인간 하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있을 만한 곳이 못 되니 그만 짐을 챙겨 돌아갑시다.”

양자옥이 단호하게 말했다.

집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바닥에 주저앉은 노부인과 산발이 된 소설령, 얼굴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소량이 보였다.

반면, 양씨는 멀쩡해 보였다.

“이게…”

최안여가 말을 잇지 못했다.

“저들을 혼내지 않으면 계속 진국공부를 무시하고 시누를 무시할 것 같아, 제가 혼 좀 냈습니다.”

최안여는 격앙된 양자옥부터 진정시켰다.

“항명한 것도 모자라 저런 미치광이를 불러들여 난동을 피워?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잘못을 인정하면 내 네 자리는 보장해 주마.”

노부인은 손으로 볼을 움켜잡고 음침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 백성들이 없었다면 소량이 제일 먼저 나섰을 것이다.

“염치없는 늙은이를 봤나! 소씨 가문이 누구 덕에 이런 생활을 하게 됐는데!”

양자옥은 기가 차서 쏘아붙였다.

“올케, 이런 자들과 논쟁할 필요 없습니다. 내 혼수에 손을 대려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이 집 하인들이 단현과 단백을 잡고 창고 열쇠를 빼앗으려 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단현과 단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최안여가 물었다.

“뉘 짓이더냐?”

하인들은 말없이 뒷걸음만 칠뿐,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고 이 둘이 모를 것 같더냐? 내 사람이 실수를 했다면 내가 처벌할 것이다. 허나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너희가 괴롭힌 게 밝혀지면 내 너희들을 반드시 후회하게 할 것이다!”

결국 겁에 질린 하인 하나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잘못을 시인했다.

“마님, 쇤네가 잘못했습니다…”

곧이어 하인 여럿이 바닥에 꿇은 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노부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못난 것들, 여기가 어딘지 모른단 말이냐! 너흰 우리 집안 하인이다, 최안여의 하인이 아니란 말이다!”

최안여가 물었다.

“왜 내 혼수에 손대려 했는지 바른대로 고하라.”

“너 때문에 임씨 가문이 한바탕 난리 났다. 그 댁에서 안남후가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이 혼례는 없던 일로 하자는 서신을 보내왔다. 네가 벌인 일이니 네게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노부인이 매우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제 혼수에 손대라고 한 것입니까?”

과연 선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매번 새로운 충격을 선사했다.

“네것 내것이 어디 있더냐, 우리 집에 시집온 이상 우리 집안 것이다. 주상께서 윤허하신 일이고, 안남후의 둘째 부인이 될 사람이니, 첫째 부인이 피해 보상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더니”

노부인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무례한 말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소량도 질세라 합세했다.

“잊지 마시오, 혼례를 하겠다고 요구한 것은 지음 낭자가 아니라 나요! 내가 우리 집 혼수 절반을 그녀에게 주겠다는데, 문제 있소?”

최안여가 웃음을 터트렸다.

“계속 염치없이 굴 겁니까?”

몰골이 흉한 소설령이 끼어들었다.

“애초에 지음 낭자의 혼사를 빼앗은 사람이 누군데, 뻔뻔하게 그런 소리를 하시오?”

최안여가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댁 조모님과 모친께서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군. 지음 낭자가 미천한 안남백부에 들어와 고생하며 못 산다고 하여 정해진 혼사를 물린 걸세.”

노부인과 양씨는 민망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량이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이간질할 생각 마시오. 지음 낭자도 부모님의 명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지만 결국 용감하게 변경까지 따라오지 않았소?”

최안여는 순진하다 못해 아둔하기까지 한 그가 전쟁에서 살아남은 게 경이로워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간 내가 들고 온 재물로 살았다고 진정 본인의 것이 되었다고 여기십니까? 제게서 가져가신 은자 70여 만 냥을 빠짐없이 가져오셔야 할 겁니다.”

“은자 70여 만 냥이라니!”

노부인의 소리가 커졌다.

“네가 정녕 미친 것이더냐?”

“아니요! 궁에 들어가 전하께 고하라는 깨우침을 주신 덕에 무사히 알현하였고 전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문 밖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지를 받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