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최안여의 입궁 소식에 소씨 가문 사람들은 좋은 날 손님을 맞이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임지음도 눈치껏 귀가하겠다며 일어섰고 소량은 다정한 위로를 건네며 그녀를 집까지 배웅했다.

예상외의 선전에 흥이 났던 그녀는 대문을 지키고 있는 수위에게 은자까지 내렸다.

임씨 가문의 하인들도 자기네 아씨께서, 부모님 몰래 전장으로 나간 사고뭉치 아씨께서 조만간 신분 상승을 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연유로 임씨 가문의 대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줄을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소란스러운 광경에 궁금증을 못 참고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건넨 축하의 말에 임씨 가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댁 여식이 전공을 앞세워 부모 형제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가정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지요?”

축하는 커녕 모욕을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임지음은 분노에 휩싸였다.

“여기가 뉘 댁인 줄 알고 소란을 피우는 게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딸이 안쓰러웠던 온씨(溫氏)가 크게 호통쳤으나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글자가 선명하게 적힌 방문(榜文)을 펼치더니 소리 높여 읽었다.

“임씨 가문의 효녀는 다른 사람의 서방을 빼앗기 위해 군공을 세운 것으로, 이는 부친의 정치적 생명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닐 지뢰다.”

“변경에서 안남후와 수차례 동침한 임씨 가문의 적녀가 귀경하던 중 회임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감축할 일인가.”

방문에 적힌 내용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두 번째 방문에 적힌 진국공 부자가 전사한 와중에도 밀회를 가지다가 결국 회임까지 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내 여식은 절개를 잃지 않았을뿐더러 군공을 세운 공신으로 추대받았고 왕비마마께서도 찬탄을 금치 못하셨다. 내 여식을 모욕한 자들을 용서치 않겠다!”

호부원 외랑이었던 임지음의 부친, 임지원(林志遠)이 으름장을 놓자, 사람들은 그제야 조용해졌다.

이 틈에 온씨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근거도 없는 소문으로 전하와 왕비마마의 과찬을 받은 사람을 매도하다니! 주상께서 사하신 혼례를 모욕하는 것은 나라님을 능멸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르시오!”

최안여를 내쫓았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임지음에 관한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다.

임지음은 갑작스러운 사건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간 쌓아왔던 명예를 완전히 잃을 것이야.’

겨우 정신을 다잡은 임지음은 큰 소리로 물었다.

“대체 누가 지시했소? 이미 최씨에게 자리를 흔들지 않을 것이니 이 한 몸 누울 거처만 마련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이리 모욕을 당해야 할 일이오? 변경에서 치료한 장수 중에 그대들의 가족도 있을 터인데, 그들이 이 사실을 알면 무슨 생각할 것 같소?”

그녀가 변경에서 세운 공을 떠올리던 사람 중 일부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며 옹호했다.

“목숨을 희생할 각오로 변경으로 나간 약한 여인에게 오명을 씌우라 지시한 게 누구인지 말하시오.”

그녀는 고의로 사건의 배후를 지목하게 해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최안여를 떠올렸고 꽹과리를 치던 사람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진국공의 여식이 우릴 이곳에 보내 축하하게 했소.”

임지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사람은 말을 이어갔다.

“그 낭자가 말하길, 진국공부는 그간의 전공으로 부를 얻거나 남을 핍박한 적 없는 청렴결백한 가문이기에 임씨 가문의 여식과 한 명의 지아비는 섬길 수 없을뿐더러 안남후와 이혼한 뒤, 전사한 공신과 함께 회경하던 중에도 밀회를 가진 두 정인을 응원하겠다오.”

“혹 회임한 사실을 인정 못 하겠다면 의관을 불러 확인하는 것은 어떻소?”

자신만만하던 임지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자, 백성들은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끄럽지도 않나…”

“이리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 진국공 부자를 모셔 오던 중에도 그런 짓을…”

백성들의 수군거림이 커지자 임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임지음은 이 모든 것이 악몽 같았다.

“안남후가 백작에서 후작이 되는 동안, 임씨 가문의 여식이 제후에게 인정을 받는 동안, 호부원의 외랑께서 승진을 못 한 것은 자녀 교육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라 합디다.”

임지원은 화가 났지만, 보는 눈이 많았던 탓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온씨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느낀 임지음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임씨 가문 사람들은 황급히 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내쫓은 뒤 대문을 닫았다.

한편, 양심전.

어전은 한없이 고요해졌다.

최안여의 간청에 주상은 용안을 찌푸리며 물었다.

“고작 둘째 부인 때문에 휴부하겠다는 것이냐?”

최안여가 예를 갖춰 답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녀가 의술을 조금 알고 있사온데, 진맥을 통해 지음 낭자가 회임한 지 달포가 넘은 것을 발견했사옵니다. 어의를 보내시어 확인하시어도 되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상의 옆을 지키던 태감(太監)은 하마터면 손에 들린 부진을 부러뜨릴 뻔했다.

주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하께서 신녀와 진국공부를 억압하며 벌하고자 안남후의 혼례를 윤허하신 것이 아님을 모르지 않사옵니다. 다만, 부족하기만 한 신녀가 부인된 도리를 못한 탓에 지아비의 오만방자한 성격을 고치지 못하였사옵고 애첩에 정신이 팔려 조강지처를 배반하는 본성도 바꾸지 못하였사옵니다. 지음 낭자가 변경에서 세운 공에 비교하면 신녀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자기가 비꼬듯이 말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던 그녀는 말을 잠시 멈추고 어심을 살핀 뒤 말을 이어갔다.

“신녀는 안남후가 정조를 지키는 의무를 하지 않을지언정,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여기 옵니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였나이다. 비록 신녀도 잘한 것은 없사오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결정을 바꾸지 못하겠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양심전에 또다시 오랜 침묵이 흘렀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그녀는 어느때보다 결연해 보였다.

“그만. 과인이 소량을 안남후에 봉하면서 사혼까지 한 것을 온 세상이 다 알 터, 너희 부부가 휴부를 하면 필히 논란될 것이다.”

“과인도 너의 억울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간 시댁에서 너의 지참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지? 짐이 너희 부부의 합의 이혼을 허하고 소씨 가문에 너의 혼수와 재물을 돌려주라는 명을 내리는 게 어떠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안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양심전을 나왔다.

“아씨, 어찌 되었습니까?”

단청이 황급히 달려왔다.

“윤허하여 주시었다. 단백과 단현도 짐 정리를 마쳤을 것이다. 교지가 내려오면 출발하자꾸나.”

그녀의 말에 단청과 단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데, 단주가 이내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씨, 진국공부로 돌아가시는 거지요?”

진국공 부자가 없는 진국공부가 아직도 그녀의 친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을 태운 마차가 어느새 안남후부에 도착했다.

단주는 대문 앞에 몰린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두 모습을 발견했다.

“아씨, 영공 저하와 부인께서 아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왔다고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