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궁으로 가는 마차 안.

단청이 분노에 차서 말했다.

"염치없는 집안 같으니라고. 마님… 아니, 아씨께서 그곳에 계속 계시는 것이야말로 불행한 일이 옵니다.”

단주도 단청의 말에 동감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스러웠다.

“진국공부엔 대감과 대감 마님이 떠나신 뒤로, 조카님이신 영공 저하와 부인만 계시옵니다. 아씨께선 어디로…”

최안여가 단주의 말을 끊었다.

“어디를 가든 저 배은망덕한 자들과 함께 사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늘 자중하면서 능력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또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보다 미천한 가문에 시집을 가 안위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데 걸린 시간은 햇수로 2년이었다.

더는 숨죽이며 살지 않기로 했다.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과부가 된 오라버니댁과 조카였고 어떻게든 진국공부를 지켜야 했다.

“단백에게 알렸으니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우린 전하를 알현할 준비만 하면 된다.”

단청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단주는 점점 가까워지는 궁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아씨, 전하께서 정말 우리의 사정을 들어주실까요?"

최안여가 차분하게 답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공신과 부모와 형제를 여읜 고아 중 누구의 공이 더 크겠느냐? ”

순간, 마차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아이를 조심하십시오!”

외마디 고함 소리와 함께 거리가 혼잡해졌고 마차 한 대가 급히 돌진해 오는 아이를 피하고자 방향을 틀다가 그녀가 타고 있는 마차와 부딪힐 뻔했다.

“괜찮으십니까?”

마부가 마차를 멈추며 그녀를 먼저 살폈다.

“송구하옵니다. 급히 방향을 틀다 보니 모두를 놀라게 했사옵니다. 주인님께서 모든 손해를 책임지시겠다고 하옵니다… 혹, 안남후부의 어느 귀인께서 타고 계시는지요?”

다른 마차의 마부가 달려와 물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시위(侍衛)는 이미 주변 상인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그녀도 살짝 놀랐지만, 두 마부가 능숙하게 상황을 처리했기에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괜찮소.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 이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진해 오던 아이가 바닥에 꿇어앉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도와주셔요, 어머니께서 피를 토하십니다.”

“허심, 의관을 불러오너라.”

마차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마부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최안여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내렸고 그녀의 뒤로 단청과 단주가 뒤따랐다.

열 살 남짓의 어린 소녀가 구석에서 허망한 듯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어디에 있느냐?”

최안여가 물었다.

“저쪽에 계십니다!”

소녀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손끝으로 가리키며 길을 안내했다.

“주군, 여인이옵니다. 안남후 부인일 텐데, 의술을 다룬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 쇤네가 의관을 불러오리까?”

허심이 물었다

“부르거라.”

간결하면서도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소녀를 따라가며 골목 끝자락까지 가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인을 둘러싸고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이 떠오른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여인의 눈꺼풀을 젖히고 살펴보더니 맥을 짚었다.

감정이 격해진 소녀는 자기 울음소리 때문에 진찰에 영향을 줄까 봐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삼켰다.

갑작스러운 분노로 심장에 무리가 갔고 장기간의 영양 부족으로 인해 심폐 손상이 유발된 것이다.

하지만 최안여는 혼자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할 새언니가 걱정되어 손에 있는 약을 전부 건넸고 지금 그녀는 치료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엇이 필요하오?”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에서 사고 날 뻔한 마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언제든지 힘에 부친 듯한 그를 부축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한 두 남자가 따랐다.

“심장을 보호하는 호심단이 필요하옵니다.”

최안여가 그를 훑어보며 말했다.

“약곡.”

남자가 입을 열자, 잠시 망설이던 사람은 곧 허리춤에 숨겨둔 도자기 병에서 조심스레 약 한 알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약 상태를 살펴본 그녀는 곧바로 여인의 입에 약을 넣었고 상인 중 한 명이 따뜻한 물 한 그릇을 건넸다.

“위험한 고비를 일단 넘기긴 했다. 집에 다른 분들 계시니?”

그녀의 질문에 소녀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떨궜다.

“아버지와 조모께서 우리를 내쫓는 바람에…”

자신들의 아씨와 닮은 듯한 소녀의 말에 단청과 단주는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 소녀에게 더욱 연민을 느꼈다.

군중은 그 소녀에게 더욱 연민을 느꼈다.

“외조부나 숙부는 없더냐?”

소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모두 아주 먼 곳에 계셔요.”

“네 아비는 어떤 사람이더냐?”

“이번에 승전하고 돌아온 사병이신데, 이번에 오랜 친구를 영친(迎親)하여 둘째 부인으로 삼을 거랍니다.”

최안여는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란 신분을 막론하고 배은망덕한 존재구나, 그것이 본성이겠지.’

소녀의 말에 백성들의 탄식 소리가 깊어졌다.

최안여는 정신을 잃은 여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약을 건넨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인이 정신을 차린다 해도 그녀의 몸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안남후 부인, 무슨 말씀이라도?”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자의 말에 백성들은 길에 쓰러진 여인을 구한 것이 진국공의 영애인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많은 이들이 진국공 부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백성들은 부친과 오라비를 한날에 잃은 최안여를 걱정했고 진국공부를 지킬 자가 없다는 사실에 개탄했다.

백성들은 진국공의 사위가 전공을 세워 돌아온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지아비까지 전장에서 잃었더라면 어찌 살아갈 수 있을꼬.

최안여는 남자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황제 폐하의 성지가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 소식이 벌써 여기까지 퍼진 걸 보니, 소씨 가문 사람들과 싸운 것을 스스로 소문 퍼뜨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더는 안남후 부인이라 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아비가 군공으로 임씨 가문의 적녀 임지음을 둘째 부인으로 들이려한것도 모자라, 선친과 오라버니의 시신을 모셔오던 중에 회임까지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 이 길로 궁에 들어 전하께 죄를 고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입니다.”

그녀의 말에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안남후와 의녀 임지음의 진면모를 알게 된 백성들은 분노했다.

남자의 얼굴이 어지러이 변하더니 의구심이 깃든 눈빛으로 최안여를 바라보았다.

“소씨 가문에는 제정신인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누군가 불만을 토로했다.

“옳습니다. 소씨 가문의 노부인께서 안남후 부인을 얼마나 칭송했는데요. 안남후의 배반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듣다 못 한 단청이 나섰다.

“우리 아씨께서 진국공부에서 밤을 지새우며 상을 치르고 있을 때, 그 집안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임씨 가문의 여식과 사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임씨 가문과도 얘기도 끝냈답니다. 우리 아씨께서 상을 치를 때 그들은 안남후의 승진 기쁨을 만끽하며 즐거워했고, 오늘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씨까지 불러 기어코 성지를 받들게 했지요.”